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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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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연극 강좌. 문종근 객석과무대 예술감독의 강연이다. '마산연극의 이해'. 마산의 연극 역사는 종종 공부를 해왔던 터라 복습하는 한 달이 되겠다.


강의는 산대도감이 있던 시절부터 언급하면서 시작됐다. 가무악탈놀음을 다루던 조선시대 관청.

그래서 신파극이 생기기 전까지 판소리, 탈춤, 창극 등이 공연예술로 많이 시연되었으나 일제 강점기 들어서면서 일본이 국내 곳곳에 신파극단을 만들어 공였했고 일본인 중심의 신파극은 임성구에 의해 조선인 중심의 신파극단이 생긴다.

이후 현대 사실주의 연극의 시작이랄 수 있는 토월회 출범. 몇 개 작품을 올리지 못하고 문을 닫음.

현대극의 본격적인 시작은 '극예술연구회'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이 또한 일제의 강압에 의해 해체된다.

이 시기 유치진도 압력에 못이겨 친일행적을 남기게 된다.




지금까지는 전국 차원의 연극사를 개괄 정리했다.


20년대부터 마산에서 연극이 시작됐으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어떤 연극이 이루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 

한하균 선생, 연극 때문에 중풍. 사모님이 연극 자료 모두 없애버려.

그래서 연극은 포스터나 팸플릿, 티켓 등의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다.

당시 신문에 난 기사에 의해 기독교 관련 연극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20년대 마산지역에 와서 공연을 했던 배우는 김기진, 김석원, 마해송, 홍난파, 홍해성 등.


악극단 공연.

막간극. 무대 세트 바꾸는 과정. 30분간 공연. 이 때 윤심덕 노래. 김우진 희곡 작가. 

사의 찬미 1920년 레코드 취입. 도나우강의 푸른 물결 곡에 윤심덕이 가사를 붙여 제목을 붙인 노래. 7월에 취입. 발매.

8월 간부연락선 타고 돌아오는 배에서 유서를 남기고 동반투신.


1932년 극예사 단체 만듬. 김여찬, 이훈산 발기. 천전막, 윤종화느 박성욱, 기무산.

주축멤버는 이광래, 김형윤, 서성삼, 이일래, 옥준수, 강폐정, 조영란 정진업, 김연옥, 이덕상, 박훈산 등.


이광래. 호는 온재. 마산 연극의 1세대. 이광래의 형 이일래. 산토끼 작곡가. 

일 와세다대학에서 연극공부. 

1935년 신춘문예 '촌선생' 당선. 서울행. 이때 극예술연구회 입단. 유치진과 주축멤버로 활동.

평생 40여 편 작품 만들어. 사실주의, 상징주의 등 다양하게 작품활동.

6.25 딸 잃고 학교에서 후진양성.

1950년 서울서 원방각 극단 창단


1940년대. 마산 문창교회 청년회 이일래, 이년우, 김수돈, 정진업 등 계몽운동 전개. 주로 성극 공연. 함세덕의 '추석'도 공연.

1950년대. 51년 국립극단 배우들이 마산으로. 김동원(김세환 아버지) 다방 만들어 마산 인물과 친분 쌓아.

김수돈 연출 <군상> 공연. 정진업, 임향, 복혜숙, 김영옥 등 출연. 국제극장.

얘들이 서울로 돌아가서는 잠시 공연활동 주춤.

마산의 연극인들이 학교에 들어가 연극활동. 마산상고, 마산고, 마산여고, 제일여고, 성지여고, 창신농고 연극반 창설.

1958년 극예술연구회 창단되면서 연극 활성화.

정진업. 문장지에 '카튜샤' 추천 받아 등단. 화인 김수돈도 추천받아 등단.

이광래가 만든 황금좌에 들어가 만주 순회공연 참여. 이후 마산서만 연극활동.




김수돈, 창신학교에서 교사생활. 니혼대 다시 공부하러 갔다가 1942년 3월부터 마산서 유치원 교사로 활동. 

김수돈 일화. 러브 스토리. 다양한 학교에서 교사생활. 제일여고에서 오랫동안 교사생활. 7년. 

정진업과 함께 시인이면서 연극. 한때 좌익으로 몰려 도피생활.


이일래, 김수돈, 정진업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한하균 선생의 경남도민일보 연재물 '오동동야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http://dino999.idomin.com/956


신파극, 기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60대 접어들면서 마산 연극에 공백기 발생. 62년부터 배덕환, 한하균 등이 마산예술인극장 창립. 3세대 연극인들 본격적인 활동 시작. 

배덕환 교수의 아들은 마산교구 주교로 있어.

63년 마산연극협회가 만들어져. 산하에 극단 상주 구조로 전환.

64년 <영웅과 병사>

69년 <나폴레옹과 이발사>


70년대 들어와서 현대 연극 활성화 시기.

70년대 중반 이후 마산 연극의 르네상스가 이루어져.

1971년. 해인대학이 경남대로 개명. 

창원연극은 80년대 이후 개진.

이 시기 4세대라 할 수 있는 이상용 등장.

이상용 작가, 이종일 연출가

75년 2월. 마산가톨릭문화원 지하 백랑다방에서 '마산데아트르' 동인극회 만들어 <공모살인> 공연. 하나 하고 해체. 이상용 징집으로.

76년 이후 주도적으로 대학극이 이끌어가는 시대. 마산연극의 전환점이랄 수 있는 시기.

마산 출신 서울활동 연극인, '마산학생연극회' 신용수, 하영화, 신현숙, 강상훈. 김진식 주축.

유신독재 시절. 연극운동으로 시대에 항변하는 시기이기도.

이들에 의해 마산간호전문대 극회 1976년 5월 창단, 마산대 극회, 창원전문대 극회 등등 공연.

마산학생연극회 주로 번역극 공연. 

1977년 5월 경남대극회 창립. 최태황, 이종일, 현태영, 문종근 등

1977년 77연극동우회. 정해완 연출. 서울서 청포도극회 출신. 77은 1회 공연으로 해체.

77년 또 하나의 중요한 극단인 불씨극회 창립. 가톨릭여성회관 소속. 신용수, 안병윤, 김경수 무대디자이너 등 노동자들이 참여. 1983년 극단 불씨촌으로 개명. 86년까지 활동.


1980년 극단 무대예술 창단.


문종근 첫작품 <할멈들의 발톱> 8명 출연. 김형사 역. 첫날 연습. 짧은 문장. 18개. 3개월 연습. 하루 4시간. 처음 리딩 시간. "야, 들어와. 안자. 이름이 뭐야? 주소? 너, 도둑질했지? 너 왜이래?" 라고 해야하는데 니" 와이래?" 하는 바람에 관객 웃고. 연출, "다시 해!' 목소리 약해서 그러나 싶어 더 크게 "야, 와이래?" 그래서 배우 꿈 접고 연출 공부. 당시 연출기법 가르쳐주는 사람 없어 독학. 86년 극단 마산 들어가 계속 연출작업. 2000년도 나와 객석과 무대 창단 활동. 총 90여편 작업. 많이 할 때는 5~6편 작업. 아동극 돈이 된다. 그래서 아동하게 돼. 아동극 팀 오전 한바탕 뛰고나면 오후엔 청소년극 연습, 저녁엔 성인극.

대박난 작품 한 편도 없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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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침에 노유정 씨 왈 "바래다 준다 할 때 따라나서라"하는 바람에 후다닥 챙겨 나섰더니... 노트북을 깜빡 잊었네. 그것도 수영장을 나서서 3·15아트센터 가는 버스를 탔을 때야 생각이 났으니... 돌아갈 수도 없고... 하는 수 없이 원시적 받아쓰기를 하자 심정으로 강의실에 들어갔다.


습관이란 게 참 무서워. 이면지에 받아쓰기를 하는데 노트북으로 바로 받아쓰기할 때보다 집중이 안 돼. 유튜브 링크도 제때 찾아서 붙이고 캡처하고 그렇게 정리해야 뭔가 제대로 되는 기분인데... 강의 내용을 볼펜으로 재생하는 데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지금 보니 이게 뭔 글자인지 알아묵기 어려운 것도 있고.



동서대 오세준 교수가, 그 자신 뮤지컬 배우이기도 하다, 이번 4월 한 달 동안 '뮤지컬의 이해'라는 제목으로 4번을 강의했는데 워낙 열정적이라 마지막 단원인 한국의 뮤지컬을 다루지 못한 게 아쉽긴 하다. 하긴 강의를 진행하면서 조금씩 언급하긴 했다.


오늘 강의 내용은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브로드웨이와 영국의 뮤지컬이다. 프랑스 뮤지컬도 히트친 게 있긴 하다만... 


원래 뮤지컬의 본고장 영국이 주춤하는 사이 미국은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공연했다. 그러던 것이 80년대 접어들면서 영국은 대작들을 내놓게 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작품들이 이때 제작된다.


캣츠, 오페라 유령, 레미제라블, 미스사이공. 우리나라에서만 이 네 개의 뮤지컬을 4대 뮤지컬이니 뭐니 이상한 이름을 붙여 규정짓는데, 외국에선 이런 짓거리 안 한다고.



캣츠나 오페라 유령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작품이다. 한 사람이 이런 대작들을 연속해서 만들어낸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단 말밖엔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더 대단한 건 카메룬 매킨토시라는 사람이다. 위 네 개의 작품을 모두 제작한 사람이다. 뮤지컬 예술을 보는 눈이 얼마나 탁월했으면 투자해 만드는 작품마다 대 히트를 치느냐는 거지.


요새 기사를 읽다 보면 댄스컬이니 살롱뮤지컬이니 국적 불명의 단어들이 많이 사용되는데 이것들 모두 언론사 작명력에 의한 신조어라는 점 명심. 외국에선 이런 표현 안 쓴다고.


기존의 뮤지컬이 대사하고 노래하고 뭐 그런 형태였다면 앤드루 로이드 웨버에 의해 송 쓰루 뮤지컬이 등장했단다. 대사도 모두 노래로 표현되는 작품이지. 



레미제라블 감상. 

오페라의 유령 감상.


오페라의 유령을 보면서 연극 작업도 좀 수준 높은 영상 촬영을 해야겠단 생각. 오페라의 유령 공연 비밀을 이야기해주는데... 공개해도 될는지... 립싱크 부분이 많다고. 거울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나 크리스틴의 고음 부분.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로 해놓고 다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ㅋㅋㅋ



여튼 1980년대 이후의 뮤지컬은 무대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공연은 첨단화되기 시작했다고.


<싱 인 더 레인>이라는 작품. 진 캘리 주연으로 유명한 영화다. '사랑은 비를 타고' 주제곡은 아직도 그의 목소리를 타고 라디오에서 종종 흘러나온다. 그런 명성에 힘입어 뮤지컬화 되었다. 그것도 무대에서 비를 뿌리는 혁신적인 무대장치와 함께. 그런데 쫄딱 망했단다. 아무리 잘하는 배우가 무대에서 첨단시설의 혜택을 입고 연기를 해도 진 캘리의 정서를 그대로, 또는 능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완전히 다르게 했다면 몰라도.


비 내리는 무대 궁금하겠다. 영화도 아니고 외부도 아니고 극장 안 무대에서 진짜 비가 내린다고? 오 교수는 이 부분 이야기를 하다가 한 마디 덧붙였다. 이 작품에 대한 리뷰가 여러군데서 실렸는데, 딱 한마디, '진짜 무대에서 비가 내린다'만 핵심 키워드였다고. 배우들 연기가 어떠니, 작품이 어떠니 별 언급이 없었단다.


80년대에는 기존의 영화를 뮤지컬로 리메이크한 작품이 많았다고. 뮤지컬 <페임>도 그중에 하나. 이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진 지 10년 만에 뮤지컬로 만들어졌는데, 영화의 한 장면, PA예술학교 애들이 도로 위 자동차 위에서 굴리며 페임 노래와 춤을 하던 장면, 그게 아주 인상적인데 실제 무대 위에선 그 장면을 어떻게 연출할 수가 없으니... 결국 영화만큼 성공하지 못했다는 얘기.


오페라의 유령을 보자. 미국 브로드웨이에 가면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이 여러 수십 개의 버전이 있단다. 수많은 극단에서 소설을 각색해 무대에 올리니 모르는 사람이 가서 본다면 엉뚱한 작품을 감상하게 될 수도 있다고. 잘 골라야 실망하지 않는다는.


<노트르담 드 파리>라는 작품 역시 많은 버전이 있단다. 다 소설만큼의 감동을 무대에 실을 수가 없다 보니 많이 실패하는데, 디즈니에서 만든 것조차 실패. 그런데 딱 하나 프랑스에서 만든 것, 그거 하나 히트를 쳤단다. 음악을 제대로 만들어서.



<미스 사이공>은 어쩌면 첨단 무대 테크놀로지의 결정체다. 이 작품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병사와 베트남 아가씨에 대한 이야기다. 노래 중에 '아메리칸 드림'이란 게 있다. 미국에선 대머리도 자랑하는 곳 등등 아메리칸 드림은 왜곡된 환상이라는 등. 미국도 베트남도 껄끄러운 이 작품은 다름 아닌 영국에서 만들었다. 처음엔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으나 지금 브로드웨이 히트작품이라고.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히트를 쳤던 작품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참, 첨단 무대기술! 무대에 헬리콥터가 등장한다고. 그냥 무대장치로 서 있는 게 아니라 착륙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대체 어떻게? 크레인을 활용해 헬기 앞부분을 매달고 헬기의 기울기는 컴퓨터로 제어해서 움직이게 했다고. 와! 세상에. 아시바에 합판 붙여 색칠하고 밀어서 공연하던 때와는 완전 격세지감이다. 그러면... 돈없는 극단 우짜라꼬?!


영국이 이렇게 뮤지컬로 히트를 치자 미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월트 디즈니가 <미녀와 야수>로 출사표를 딱 꺼내 든 것이렷다. 애니메이션으로 성공을 거뒀던 작품이라 아이들에게 얼마든지 호감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인데다 이 뮤지컬 작품이 공연무대인지 애니메이션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완벽히 애니메이션과 동일한 싱크로율을 보였단 얘기. 게다가 공연을 애가 좋아한다고 애만 보나? 하다못해 엄마나 아빠가 따라가 볼 것이고, 애가 하나면 모르겠는데 둘 셋 되어봐. 한 번 공연 보는데 최소한 80만 원. 그러니 제작사 대박 터뜨린 거지.



그런데 90년대 뮤지컬 대부분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애니메이션 콘텐츠로 대박을 이룬 디즈니가 성인뮤지컬 <아이다>, 작곡가 베르디의 '아이다'로 유명한 이 작품을 호기롭게 제작했는데 실패! 이유가 지금의 우리로선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데, 남녀 주인공이 키스하는 것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장면이라고. 왜? 남자는 백인이고 여자는 흑인이거든. 당시 미국의 정서가 그랬다는군.


'아이다' 이 작품 우리나라에선 옥주현이 선탠하고 흑인 연기를 했는데 이젠 이런 식의 설정은 먹히지 않는 시대라는 게 오 교수의 말. 누굴 예로 들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예를 들자면, 블랑카가 "사장님, 나빠요!" 하는데 한국 사람이 동남아 사람처럼 흉내 내지 말고 동남아 사람이 와서 직접 연기를 해야 먹힌다는 것이다. 일리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요새는 무대도 자막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외국어 못 알아듣는 거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음.... 고민해야 할 부분이 생겼는걸.


뮤지컬 계도 최근으로 오면서 작품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다고. 1996년 <렌트>라는 작품은 에이즈로 죽어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당시 크게 히트를 쳤지만 지금은 한물간 작품으로 리메이크도 하지 않는다고. 대신 <사운드 오브 뮤직> 이런 작품들은 그렇게 오래되어도 계속 공연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클래식의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 클래식은 인간의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문제를 다룬 것. 그런 작품이 오래 산다고. 하긴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오늘날에도 계속 재생산되는 것을 보면...


뮤지컬의 기원이 여러 쇼를 무대에 올려 스토리를 꾸민 것이라고 한 것처럼 음악을 묶어서 스토리를 만들고 제작된 작품이 있다. <맘마미아>, 아바의 노래를 엮어서 뮤지컬 작품을 만들었다. 노래의 대부분 가족과 사랑이어서 스토리를 꾸미기도 쉽다. 그래서 성공한 케이스다.


그룹 퀸의 노래도 이처럼 뮤지컬로 제작된 게 있는 데 실패. 이뿐만 아니라 대부분 노래를 가지고 스토리를 엮어 뮤지컬을 만든 작품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2000년대 뮤지컬은 단연 첨단 테크놀로지 무대가 핵심으로 여겨질 정도다. 음향이든 무대든 조명이든 또는 여러 기술적인 요소든 첨단기술에 의한 화려한, 깜짝 놀랄 정도의 작품이 아니면 관객은 심드렁해질 뿐이다. 그런데 기술은 어마어마하게 발전했는데 소재의 고갈로 뭐 재미있는 작품이 없다는 것이 오늘날 뮤지컬 계의 딜레마다.


그래서 지금은 창의적 문화콘텐츠가 핵심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콘텐츠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부각한 것이다. 조앤 롤링의 작품 <해리포터> 시리즈 '저주받은 아이'가 무대화됐다. 강력한 스토리에 화려한 마법이 무대에서 펼쳐지니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공연이 뭐? 총 5시간짜리라고. 한 번 보려면 80만 원 기본인데... 그래도 영국에선 표를 구하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있단다. 세상 참. 이런 작품 하나 만들어보면 소원이 없겠다.


끝으로 디즈니의 <라이온 킹>을 감상했다. 화면을 보고서 깜짝 놀랐다. 배우들이 어떻게 동물을 묘사하는지 보고선 어떻게 저런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수 있었을까 했는데... 일본의 분라꾸(文樂)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라이언킹 영상을 집에서 다시 찾아봤다. 선명한 영상으로 가까이서 보니 실감이 더 난다. 캡처한 화면 추가





아무리 일본의 문락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고 하지만 정말 아이디어 응용력이 대단하다. 앞으로 작업할 연극에도 충분히 아이디어 자극제로 참고할 영상이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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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개막했는데 업무 시간이라 가보질 못했다. 성춘석 민미협경남지회장이 경남도민일보 지면평가위원이기도 해서 또 개인적으로 술잔을 기울인 사이라 어떻게 해서라도 시간을 내어 가보자 마음 먹었던 게 오늘 오전이다. 어쩌면 오늘 지리산 등반하기로 했던 계획이 다른 일로 말미암아 취소된 게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난 김에 회사도 들러 이런저런 기사 챙겨보면서 모레 쓸 칼럼도 구상하구. 뭐 잘됐지.... 그래도 틈 없는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정이 등반 취소로 갑자기 헐렁해진 바지처럼 된 느낌이라 시간에 자꾸 신경이 쓰이는 것은 병인양도 하다.


어쨌든, 3.15아트센터 2층 1전시실에 전시중인 민족미술인협회 회원들의 작품에는 현실고발과 풍자, 색다른 느낌의 아이디어 등이 가득해 만족스러운 감상이었다. 작품들 중에 몇몇 눈에 들어왔던 것 추려 올려놓고 기억의 스위치로 삼으려한다.


입구. 방명록이 놓여있다. 다 보고 나오면서 이렇게 썼다. "오늘을, 현실을, 미래를 생각게 하는 작품들."



신미란 작가의 '그녀의 이상한 농장'. "지난 10여년 대한민국의 역사를 후퇴시킨 일당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동물이나 식물 등 다양한 형상으로 표현된 그리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입 큰 개구리, 미꾸라지, 독사의 자식들, 박근혜, 박정희, 새누리로고, 정유라 말, 최순실의 선글라스, 기결수복의 숫자의 의미, 이명박, 이영선 레고아저씨 폰딱이 등 다양한 형상을 찾아보시고 그 의미를 나눠보시면 관람의 즐거움이 배가됩니다."라고 작품 옆 A4지에 적혀있다. 숨은그림 때문에 더 작품에 흥미를 느끼게 되고 집중하게 된다.



부정선거? ㅋㅋ. 



얼핏 촛불 속에 평화의 상징 비둘기가 날아가는 모습이 보이는 듯도 하고... 이 말 때문에 많은 사람 시력테스트하게 생겼당...ㅋㅋ



얼룩진 태극기. 무엇이든 본분에 맞지 않은 사용으로 기능이 왜곡되기도 하고 더렵혀지기도 한다는 교훈.



액자 틀에 이렇게 적혀있다. "내가 다섯 해나 살다온 하와이 호놀룰루시의 동물원 여러가지 종류의 김승과 새들이 길러지고 있었는데 그 구경거리의 마지막 코스 '가장 사나운 짐승'이라는 팻말이 붙은, 어느 우리 속에는 대문짝만한 큰 거울이 놓여있어 들여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찔끔 놀라게 하는데, 오늘날 우리도 때마다 거울에다 얼굴도 마음도 비쳐보면서 슷로가 사납고도 고야간 짐승이 되지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가장 사나운 짐승' 구상. 그렇겠지... 그럴 거야. 가장 사나운 짐승이 나일 것이라는 교훈.



민중의 표정은 이런 모습일까. 웃을 일이 정말 없다. 몰라, 세상, 사바세계와 연을 끊고 살면 웃는 표정이 나올까.



고려 산해경. 산해경이 중국의 오래된 지리서란 얘기도 있고, 상상의 세계를 그려낸 괴담집이란 얘기도 있다. 그 이야기를 고려시대로 옮긴 그림인 모양이다. 강은 구렁이가 되고 물고기가 날아다니고, 눈이 옆구리에 붙은 동물.... 각각 무슨 상징이 있고 의미가 있는 모양이다. 그런 차원에서 민화와 많이 닮았다.



작품이라 만지질 못했는데, 뭐 친환경 예술품이라고 봐야겠지. 바닷속 고래를 형상화한 것 같은데. 재료가 알루미늄캔이다. 가까이서 보면 무엇을 형상화했는지 도저히 알수 없지만 이렇게 한걸음 떨어져 보니 그림이 보인다. 사람도 그럴 것이다.



두시영 작 '모두 함께 아리랑' 얼핏 무슨 추상화인가 싶다가 그림 속 양태를 하나하나 짚어서 보면 군중이 어울려 춤을 추는 모습이 보인다. 얼마 전에 유사한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보았다는 것만 기억하지 어디서 봤는지, 누구의 작품인지 도저히 떠오르질 않는다. 나이 탓인가?



항해. 음.. '항해'면 NC다이노스 올해 슬로건? ㅋㅋ. 조형의 아이디어는 좋긴 한데... 솔직히 썩 유쾌하지는 않다. 물고기의 표정이 슬퍼보여서. 인간에게 코뚜레를 하고 신나게 달리는 물고기의 항해를 볼 수도 있을까?



한영희 '두려움 없는 땅' 볼펜으로 그린 그림이라 "야, 대단하다"싶어 촬영했다. 근데 솔직히 느낌은 막막하다.우리가 딛는 땅 우리 몸이 내린 뿌리가 튼튼해 바람에 아니 흔들리고, 머리로는 많은 가지처럼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일까... 그래서 벌겋게 열도 나고..ㅋㅋ



북쪽에서 본 한반도. 그리고 촛불. '우리는 하나다' 그래, 미국을 상대로, 일본을 상대로, 중국을, 러시아를, 영국을, 프랑스를, 케냐를, 멕시코를 세계 어느 국가든 그들을 상대로 우리는 한 팀인 거지.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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