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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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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첩룡을 죽이라니까!”

용들의 삼각관계에 휘말려 생긴 노여움 풀던 곳 ‘가야진사’


낙동강변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에 있는 가야진사는 본처 용과 첩으로 들어온 용의 싸움에 휘말린 조 사령이란 사람의 이야기가 서려 있는 곳이다. 조 사령이란 사람의 실수로 첩룡을 죽여야 하는데 잘못 칼을 휘둘러 남편 용인 황룡을 죽였다. 그러자 본처인 용이 마을에 재앙을 내렸고, 그저 마을 사람들은 용의 마음을 달래느라 아주 오래전부터 용신제를 지내오고 있다는 이유 있는 스토리가 전해져 온다.



가야진사 제단을 둘러싼 네개의 홍살문.



제단에서 바라보면 첩첩이 문을 통과해 위패를 모신 가야진사가 보인다.



가야진사.


먼저 양산문화원에서 펴낸 ‘양산고을 옛이야기’ 책에 소개된 내용 중 이야기 부분만 옮겨 읽어보자.


옛날 양산 고을을 옥당이라 칭할 때의 이야기다. 양산군수의 명을 받은 조 사랑이 경상감사가 있는 대구로 길을 떠났다.


그런데 현재의 가야진사 부근인 원동 용당리로 접어들 무렵부터 여인 하나가 뒤를 따르는 것이었다. 용당리는 인근 나루터로 인해 사람 통행이 잦은 곳이라 조 사령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해질 무렵 주막에 들어선 조 사령은 인근 나루터로 북적이던 주막이 웬일인지 썰렁해 이상하게 생각했다. 주모에게 하룻밤 묵을 것을 청하고 방으로 들어왔는데 주모가 난처한 얼굴로 주막이 썰렁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요 며칠 새 주막에서 묵은 남정네들이 하루에 한 명씩 야밤에 커다란 구렁이에 놀라 기절했다는 것이다.


방안에서 쉴 준비를 하고 있던 조 사령은 마침 밖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목소리에 끌려 밖을 내다봤다. 옆방으로 들어가는 여인은 다름 아닌, 낮에 자신의 뒤를 따라오던 여인이었다.


꺼림칙함에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던 조 사령도 밤이 깊어지자 단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여인이 들었던 옆방에서 들려오는 흐느끼는 소리에 조 사령은 잠을 깨고 말았다.


밖으로 나간 조 사령은 용기를 내어 여인을 불렀다. 방문이 열리자 안을 들여다 본 조 사령은 깜짝 놀라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당연히 방 안에 있어야 할 여인은 보이지 않고 흡사 커다란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형상의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벌벌 떨고 있던 조 사령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움직이려 하는데 놀랍게도 구렁이 형상의 괴물이 말을 하는 것이었다. 자신은 용이 되어 승천하기 직전의 이무기로 저 앞 황산강 용소에 사는 황룡의 본처라며 간곡한 청이 있으니 제발 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용소에는 자신과 남편 황룡, 첩룡 세 마리 용이 살고 있는데 황룡이 첩룡의 꾐에 빠져 자신에게 주어야 할 여의주를 첩룡에게 주고 함께 승천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내일 정오에 남편 황룡과 첩룡이 용소에서 싸움을 벌이도록 할 터이니 첩룡을 죽여달라고 했다.



가야진사에 모셔진 황룡과 청룡들을 그린 삼룡도.



가야진용신제전수회관 앞에 세워진 삼룡석상.


조 사령은 신과 마찬가지인 용을 죽일 만한 용력이 없다며 난색을 표했지만 이무기는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면 복이 따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화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다음날 조 사령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배를 저어 용소를 찾았다. 정오가 되자 이무기의 말처럼 황룡과 청룡이 강물 위로 솟구치며 싸우는 것이었다. 조 사령은 싸우는 용들을 향해 준비해 간 장검을 힘껏 내리쳤다.


커다란 비명을 울리며 용 한 마리가 강물로 떨어졌고 주변 강물은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때 어제 만난 본처 용이 청룡이 되어 모습을 드러냈다. 본처 용은 울부짖으며 조 사령이 죽인 것은 첩룡이 아니라 남편인 황룡이라는 것이었다.


화가 난 본처 용은 조 사령을 원망하며 용궁으로 함께 가야 한다며 조 사령을 끌고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그 후 이 마을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재앙이 뒤따랐다. 마을 사람들은 용이 노한 것이라고 믿고 해마다 용신제를 지냄으로써 재앙을 이겨내고자 했다.


그것이 바로 가야진용신제다. 제를 지낼 때는 돼지를 용소에 던지면서 “돼지가 가라앉습니다(沈下豚)!”하고 세 번을 반복해 외치며 용신에게 제물을 바친다. 용신제의 제상에는 반드시 메 세 그릇과 잔 세 개, 탕 세 그릇을 놓는다.


그것은 용소에 황룡 한 마리와 청룡 두 마리가 살고 있다고 전하기 때문이다. 가야진사 사당 내의 제상 위에는 가야진지신(伽倻津之神)이란 신주 위패가 모셔져 있고, 뒷벽에는 세 마리 용의 모습이 그려진 삼룡도가 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가야진사에서 지내는 용신제는 매년 음력 3월 초 정일(丁日), 즉 ㅅ3월 들어 첫 번째로 맞는 정()자가 들어가는 날에 지냈다. 그러나 지금은 대중이 음력의 그날을 기억하기도 쉽지 않은 터라 근사치에 있는 날 중에 휴일을 잡다 보니 양력 55일 어린이날에 하게 됐다.



용신제 제물로 바쳐지는 돼지.



가야진지신’이란 글이 새겨진 위패.



용신제례가 끝나면 위패는 다시 덮개를 닫은 뒤 가야진사 안에 모셔진다.


가야진사의 용신제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9호다. 가야진사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얘기는 삼국유사에 나오는데, 신라의 종묘는 제2대 남해왕이 시도대왕 혁거세의 묘당을 세워 제사를 지낸 것이 시초라고 한다. 신라는 대사, 중사, 소사로 나누어 지냈는데 가야진 용신제는 중사에 해당한다.


중사는 제후가 왕명을 받들어 명산대천에서 올리던 제사로 오악(산신), 사해(해신), 사진(지신), 사독(천신)으로 구분되는데, 가야진용신제는 사독에 해당한다. 신라 때부터 전해오던 가야진용신제는 일제강점기 홍수로 사당이 헐린 데다 일제가 제례를 금지해 어려움에 처했지만 마을주민들이 밤에 몰래 천태산 비석골에 가서 제사를 지내면서 명맥을 이어왔다.


2010년 한국문물연구원에서 발굴작업을 했는데 이곳에서 조선 초기 각종 분청자기를 다량 발견되었으며 이 유물들은 양산박물관에 옮기어 전시하고 있다. 마침 지난 5일 용신제가 있는 날이었다. 용신제는 부정가시기, 칙사맞이굿, 용신제례, 용소풀이, 사신풀이 등 5개 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용신제 행사에 관해선 다음 기회에 풀어보기로 한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지난 주에 이어 경남이야기에 실린 전설텔링 '우리 서방님 혹시 못 보셨나요?' 몽골어 배우기 2편입니다. 몽골분에게는 한국어 배우기가 되겠군요. 관심있으신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똑딱귀신 이야기가 전해오는 창녕군 영산면 교리 마을 입구 도로.


“주모, 돈 못 받을까 그러쇼? 우리 술값 낼 돈은 있다 이거야. 좋은 분위기 망치지 말고 술이나 더 내오라구!”


Эзэгтэй минь, мөнгөө өгөхгүй байх гэж санаа зовоод байгаа юм биш биз? Бид архиныхаа мөнгийг өгнө дөө. Ийм сайхан байдлыг битгий эвдэх гээд бай л даа. Дахиад жаахан архи аваад ир?”


천석이 빈 술잔을 술상에 ‘탕’하고 내리치며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지르는 통에 만복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Чонсог хоосон хундагаа ширээн дээр хүчтэй гэгч нь тавиад гэнэт уурссан дуугаар хашгирмагц Манбуг сэрлээ.”


“아니, 미안하네. 내가 깜빡 졸았나봐! 망치는 내일 바로 빌려줌세. 석수장이한테 망치가 없으면 쓰나? , 내 자네 이야긴 다 듣고 있었다네.”


Уучлаарай. Би жаахан зүүрмэглэчихэж. Алхаа маргааш өгье. Чулууны дархан хүн алхгүй бол болохгүй? Би чиний яриаг бүгдийг нь сонсож байгаа”


만복의 엉뚱한 소리에 천석은 황당해했고 주모와 옆의 평상에서 술을 마시던 동네 사람들은 파안대소를 하였습니다. 천석은 다른 사람에게 창피했는지 그 자리에서 바로 일어섰습니다.


Манбугийн тэс хөндлөн яриаг сонсож гайхсан Чонсог, уушийн газрын эзэгтэй болон эргэн тойрон архи ууж байсан хүмүүсээс маш их санаа зовов. Чонсог ичсэндээ суудлаасаа шууд бослоо.


“여보게 만복이, 가세. ~. 거기서 엉뚱한 말을 해서는….”


Хүүе, Манбугаа явъя. Тэс хөндлөн юм яриад суухын...”


천석은 만복을 부축해서 주막을 나왔습니다. 주모가 뒤따라 나왔습니다.


Чонсог Манбугийг түшин зуушын газраас гарлаа. Зуушын газрын эзэгтэй даган гарч ирэв.


“술값은 주고 가야지.”


Архиныхаа мөнгийг өгөөд яваач ээ”


“달아놓으시게. 내일 줌세.”


Тэмдэглээд орхичихоо. Маргааш авчраад өгье.”


두 사람은 동구 밖까지 어깨동무를 하고 휘청휘청 걸어 나왔습니다.


Тэр хоёр тосгоны зах хүртэл бие биенээ түшин наана цаана алхалсаар хүрч ирлээ.


천석은 친구 만복이가 자기 마을로 돌아가려면 낮은 고개를 넘어야 하므로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Чонсог найз Манбугийг тосгон руугаа явахдаа намхан даваа давна гэдгийг бодохоор санаа нь зовж байлаа.


마침 보름달이라 사위는 훤했지만 그래도 오밤중이어서 술 취한 친구가 사고라도 당하지 않을까 염려를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Аз болоход арван тавны сар мэлтийн гэрэлтэж байгаа ч шөнө дөлөөр согтуу найзыгаа элдэв асуудалд орохвий гэж зовсондоо салж ядан байлаа.


“만복이 자네, 많이 취한 것 같은데 그냥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가는 것이 어떤가?”


Манбугаа миний найз, их согтсон байна. Зүгээр өнөөдөр манайд хоноод явбал ямар вэ?”


“무슨 말인가? 우리 마눌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는데 빨리 가봐야지.”


Юу гэсэн үг вэ? Эхнэр минь хүлээж байгаа, хурдхан явахгүй бол болохгүй”


만복은 한사코 집으로 가야 한다며 천석의 만류를 뿌리쳤습니다.


Манбуг эрс шийдэмгийгээр гэртээ харина гэж зөрсөн болохоор Чонсог явуулахаас өөр аргагүй боллоо.


‘뭐 하루 이틀 있는 일도 아니고 오늘은 좀 과했지만 별일이야 있겠어?’ 이렇게 생각하고 천석은 만복에게 재차 밤길 조심하라 이르고 보내주었습니다.


Анх удаагаа ч биш дээ, өнөөдөр жаахан хэтрүүлсэн л болохоос гайгүй байлгүй дээ?’ гэж бодон Чонсог Манбугийг болгоомжтой яваарай хэмээн явуулав.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전설텔링)전쟁의 신()(현장을 찾아서)

함안 군북면 방어산 마애삼존불과 진주 지수면 방어산 정상


이번 5회에 걸쳐 연재된 전쟁의 신() 전설텔링은 방어산(防禦山)이라는 산의 이름이 지어진 유래에 그치지 않고 더 역사적으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가야시대로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았습니다. 가야와 왜가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했던 사실, 또한 신라가 고구려에 원군을 요청했던 사실, 또 그 시점이 고구려 광개토대왕 때였다는 여러 가지 정황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꾸몄던 것이지요.


방어산이라는 이름은 함안군과 진주시에서 소개하는 전설에서 그 유래가 잘 나타납니다. 진주 지수면 내고장 유래에 보면, ‘방어산은 이름 그대로 병란과 왜구를 무찌르고 방어했다는 산’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산 정상에는 성을 쌓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여기에 묵신우 장군의 용맹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온다 하면서 방어산에 관한 전설이 소개됩니다.


“장군의 겨드랑이에는 날개가 달려 절벽과 골짜기를 날아다니면서 300근 짜리 활을 잡아당기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중에 병란이 일어나 적군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장군은 3000명의 군사와 중 혜성의 도움을 받아 방어산 봉우리에 성을 쌓고 적과 맞섰다. 적은 방어산 맞은 편 봉우리에 진을 치고 공격해왔으나 장군은 성문을 굳게 닫은 채 한 달을 버티다가 적이 지칠 무렵에 화전(불화살)으로 공격, 일시에 적을 무찔렀다. 장군의 이러한 지략을 본 적은 ‘이는 필시 신병(神兵)의 병술이다’며 도주하고 말았다.”


과연 방어산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습니다. 2편 연재하던 시기에 방어산을 올랐습니다. 방어산은 진주 지수에서 오르는 길도 있으나 이야기의 주인공인 무시우(묵신우) 장군이 안라국, 즉 아라가야 사람이므로 함안에서 오르기로 하였습니다.


방어산을 쉽게 오르는 길을 인터넷이나 위성지도를 통해 관찰해보니 함안 군북면 마애사에서 오르는 길이 가장 수월하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산에 오르면서 보물 제159호인 마애삼존불도 구경할 수 있고요.


마애사 주차장은 차량 100대 이상 댈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컸습니다. 주차장 한쪽에 마애쉼터가 있는데 그 옆에 방어산 등산 안내도가 세워져 있습니다. 방어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아주 보기 좋게 그려놓았습니다. 이 안내판엔 방어산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 소개하겠습니다.



“방어산은 괘방산(451m)과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어 두 산을 함께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웅산이라고도 불렸으며, 정상에 서면 아득히 지리산이 보이고, 동남쪽에는 여항산이 보인다. (…) 산의 7부 능선에는 보물 제159호로 지정된 높이 5미터의 거대한 방어산 마애불이 있으며, 산은 높지 않으나 군데군데 암반이 많고 능선이 제법 굴곡되어 있어 산행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산행은 방어산만 오르는 코스와 괘방산을 함께 오르는 코스가 있다. 방어산만 오르려면 하림리 낙동마을 뒤쪽에서 시작하여 마애사, 방어산 마애불을 거쳐 정상에 오른 후 군북면 박곡리 남강휴게소로 하산하면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다른 코스는 하림마을에서 마당바위를 거쳐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는데, 정상에서 괘방산까지 산행하려면 방어산 고개와 전망대, 괘방산을 거쳐 어석재로 하산하면 5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정상은 큰 바위로 되어 있어 장군대라고 부르기도 하며, 이곳에서 50미터 아래와 200미터 아래 지점에는 마당바위와 흔들바위가 각각 있다. 흔들바위는 높이 8미터, 6.5미터의 끄덕바위라고도 불리며 기울어진 쪽으로 부자가 난다는 전설이 있다.”


마애사 하나만으로도 사찰 안 여기저기 볼만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대웅전에 해당하는 극락보전 법당과 산령각, 종각, 포대화상이 조각된 약수, 그리고 쌀가마니를 지게에 지고 있는 청년 상이 있습니다. 다시 이곳으로 하산한다면 돌아오는 길에 봐도 되지만 아니라면 약간 시간을 내어 둘러보는 것도 좋겠네요.


마애사에서 방어산으로 오르는 산길에 돌탑이 특히 눈에 띄는데, 아주 정교하게 잘 만든 것들입니다. 그냥 지나가는 산인들이 하나씩 소원을 빌며 쌓아 올린 것과는 느낌이 확연히 다른 것이에요. 누군가 숙달된 기술이 있는 사람이 쌓은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마애사를 갓 벗어난 등산로는 걷기 편한 길입니다. 낙엽이 등산로 위를 포장해놓아 사박사박하니 걷기도 좋았습니다. 길가에나 바위 곳곳에 작은 돌탑을 쌓아 올린 정성들이 보입니다. 어떤 것은 아주 기울어진 바위 위에 중심을 잘 잡아 쌓아 올린 것도 있더군요. 하나하나 쌓을 때마다 공을 들인 마음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니 ‘보물 159호 마애 약사삼존불 성불하소서 200m’라고 적힌 나무말뚝이 보입니다. 200미터면 금방이겠다 생각하고 걸음을 옮깁니다. 유선형의 예쁜 돌탑을 또 만납니다. 신선 서넛이 앉아 바둑 두며 훈수도 뒀을 법한 평바위가 나타납니다. 잠시 신선처럼 앉아서 물을 한 잔 마십니다.





여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마애약사삼존불이 있습니다. 119조난위치 표지판이 현위치가 마애불임을 알려줍니다. 길따라 올려다보니 뭔가 호기심을 끄는 돌탑이 보입니다. 돌을 활용해 용을 만들어놓았군요. 용머리는 조각을 해서 달았습니다. 명판을 보니, ‘용탑’이라는 제목 아래에 ‘河己失音 官頭登可’(물 흐르듯 아무 소리 없이 열심히 하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 라는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박제연, 김세희 두 사람의 이름이 있는데 아마도 이 용탑을 만든 사람들이겠죠.


용탑에서 몇 걸음 안 올라가서 보물 159호 마애삼존불이 나타납니다. 큰 바위 벽에 음각으로 그려놓은 것인데 얼핏 보아서는 그림의 윤곽을 잘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안내문을 읽어봅니다.


“방어산 절벽의 바위를 다듬어 선으로 새긴 통일신라시대의 약사삼존불입상이다. 아매불로서는 아주 드물게 만들어진 연대(801)를 새겨, 통일신라 불상조각사를 연구하는데 아주 귀중한 자료이다.


가운데의 본존은 왼손에 들고 있는 약그릇으로 약사여래임을 알 수 있는데, 얼굴이 약간 길고 큰 몸에 비해 어깨가 좁으며 힘없이 표현된 몸은 긴장감이 없다. 100여 년 전 불상의 활력이 넘치던 이상적 표현이 현실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양쪽의 협시보살은 본존을 향해 자연스럽게 서 있는데, 왼쪽은 일광보살로 남성적인 강한 인상이고, 오른쪽은 월광보살로 눈썹 사이에 달무늬가 새겨져 여성적이다.”


삼존불 앞으로 쭉 가면 비로자나불이 나옵니다. 웅장한 바위 벽 앞에 금동으로 조성됐습니다. 바위들의 모습이 오묘하네요. 통천문 형태의 바위가 있는데 여기엔 사람이 살았던 흔적도 보입니다. 문도 있고 장판도 깔렸네요. 게다가 취사를 하였는지 가스통도 있습니다.





돌탑 위에 모신 비로자나불 앞에 제기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불공을 드리는 사람들이 여전히 활용하는 공간인 듯합니다. 방어산으로 가려면 다시 마애불로 돌아와야 합니다. 마애불 오른 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고개가 나옵니다. 이정표엔 방어산 1.25㎞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힘이 절로 납니다. 그런데 제법 많이 걸었다 싶은데, 마애사에서 겨우 550미터밖에 오지 않았군요. 이제부터 등산로엔 바위도 있고 돌부리가 많은 산길입니다.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산의 상층부라 경치도 좋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낮은 산들이 맥을 이루며 누워있습니다. 그 위엔 구름이 제법 두껍게 덮여 있군요.


등산로 첫째 헬기장을 만났습니다. 방어산 0.8, 어석재 5.1㎞라고 이정표에 적혀 있습니다. 마애불에서 340미터 올라온 거리입니다. 이제 능선따라 걷는 길입니다. 산행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기가 있는 등산코스여서 그런지 각종 산악회에서 왔다는 표시를 해놓았네요. 종종 이런 리본이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등산로가 분명하지 않을 때나 길이 헷갈릴 때 말이죠. 정상 400미터 남았다는 이정표를 만납니다. 점점 걸음에 힘이 들어갑니다.




두 번째 헬기장을 지나니 줄을 타고 바위를 오르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 힘들지는 않습니다. 여기를 올라서니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사방이 탁 틔어 속까지 후련해지는 듯합니다. 맞은 편 비탈만 오르면 바로 방어산 정상입니다.


방어산 정상은 멀리서 보면 큰 바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를 장군대라고 부르지요. 물론 정상에는 나무도 자라고 풀도 자랍니다. 지나가는 길 절벽 아래로 내려다보니 아찔합니다. 이 정상에도 방어산의 유래와 등산코스가 그려진 안내판이 있습니다. 해발 530m를 나타낸 방어산 표지석도 있고요.







청명한 날씨라면 멀리 지리산도 보일 법 하군요. 정상에 올라서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북쪽으로 남강이 흐릅니다. 저 강은 얼마 가지 않아 남지에서 낙동강과 만납니다. 강 상류 쪽, 지수 쪽으로 평야들이 많이 보입니다.


서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전설텔링 이야기에서 광개토군의 공격루트로 설정했던 관음사 코스 등산로도 발아래 보입니다. 관음사는 보이지 않고 바로 아래에 있는 소류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쪽 방향은 절벽이기 때문에 가까이 가서 내려다보기 겁이 납니다.




방어산 정상에 올라서니 이야기 속 안라국 병사들의 기개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지형이라면 서쪽의 적을 방어하기엔 천애의 요새란 생각도 듭니다.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는 길, 산성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등산로를 이탈해 찾으면 어딘가 있지 싶긴 한데 이번 글은 전설 현장을 확인하는 수준이라기보다 묵신우 장군 전설이 스민 방어산을 소개하는 수준에서 다녀온 이야기로 들려드렸습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전설텔링)전쟁의 신()(5)

함안 방어산 묵신우 장군에 얽힌 전설


(지난줄거리) 신라의 요청으로 아라가야인 안라국을 토벌하기 위해 남하한 광개토왕의 군사 5만 명은 안라국 서쪽 요새인 방어산을 눈앞에 두고 지수평야에 군진을 칩니다. 항복보다는 항거를 선택한 안라국왕은 아들인 무시우 대장군에게 방어의 책임을 맡기고 방어산 일대에 수비를 강화합니다.


광개토군의 첫 공격은 무시우의 장수 중에 가장 몸이 날랜 쾌수의 정탐에 의해 500명이나 되는 군사가 불화살에 맞아 전멸하게 되고 작전에 실패한 현무는 주군 광개토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광개토의 두 번째 작전은 백호를 안라국에 잠입시켜 국왕을 살해하고 내분을 일으키게 하여 정복하는 방법입니다.


같은 시각, 무시우 역시 쾌수를 시켜 고구려군으로 위장하여 내분을 조장, 고구려군의 전력을 무력화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래서 쾌수와 백호는 대가야 땅 시장에서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백호의 정체를 어렴풋이 눈치 챈 쾌수가 백호에게 시비를 걸어 안라국으로 가지 못하게 막습니다. 그러나 대가야 병사들이 현장에 출동하는 바람에 백호를 놓칩니다. 쾌수는 하는 수 없이 안라국으로 돌아와 무시우에게 상황을 보고합니다.


쾌수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하는 백호는 기회를 틈타 안라국왕의 궁궐로 잠입합니다. 국왕의 침실 앞에서 백호는 쾌수의 등장에 깜짝 놀라고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백호는 쾌수의 실력을 한 번 보았기 때문에 정식으로 무예를 겨뤄보고 싶어 도전장을 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실력을 겨우지만 백호의 참패로 끝납니다.


방어산 정상 높은 기둥에 묶인 백호의 모습을 본 광개토는 주작을 불러 구출작전을 세웁니다. 주작은 안라국으로 들어가 안라국 병사로 위장합니다. 마침내 산채가 있는 방어산 정상까지 잠입에 성공한 주작은 최종 방어선을 뚫고 백호를 묶은 밧줄을 끊습니다. 그러고는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는 주작, 그 뒤를 따라 뛰어 주작의 허리를 잡은 백호, 두 사람은 대형 보자기 낙하산에 의지해 본진으로 돌아옵니다.


광개토의 총공격 명령이 떨어집니다. 방어산 아래쪽은 물샐틈없는 밀도의 고구려 군사들이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습니다. 방어산 기지를 지키고 있는 안라국 군사들에게 비상이 걸렸습니다.


…………………………………………………


“서쪽 골짜기를 사수하라!”

“북쪽 능선이 허술하다. 수비를 강화하라!”


안라국 병사들은 저마다 소리를 지르며 전의를 불태웠습니다.


“자! 오늘은 삼천의 병사가 삼만 대군을 무찌르는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이다. 모두 죽음을 각오하고 적을 맞이하기 바란다.!”

“와아!”


무시우가 바위 위에서 고함을 치자 안라국 병사들은 더욱 큰 목소리로 전의를 다졌습니다.


“적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궁수들은 모두 불화살 발사 준비를 하라!”


궁수부대장 비화가 무시우 옆에서 소리쳤습니다. 비화는 고구려 군사들에게 가장 공격하기 좋은 지점까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동작 그만!”


광개토의 보병부대 사령관인 청룡이 명령하자 대군의 발소리가 뚝 멈췄습니다. 일시에 세상이 조용해졌습니다.


“방패 준비!”


청룡의 명이 떨어지자 고구려군은 모두 일제히 방패를 머리 위에 올렸습니다. 방어산 위에 있던 안라국 병사들은 이러한 고구려군의 카드섹션을 하는 듯 모습에 한편으론 놀라기도 하면서 불화살 공격이 효과적이지 못할 것 같아 걱정도 되었습니다.


안라국 병사들은 무시우 장군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무시우는 표정에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미 모두 알고 있다는 듯한 얼굴입니다. 무시우는 비화에게 신호를 하였습니다.


“모두 화살 끝에 기름주머니를 달아라!”


무시우와 비화는 고구려군이 방패를 이용해 불화살을 막을 것이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각종 식물에서 채취한 기름을 충격에 약한 주머니에 담아 준비했던 것입니다. 이 기름주머니는 화살이 목표물에 꽂히면 그 충격으로 터지게 되고 그와 함께 바로 불이 옮겨 붙어 더 큰 불로 번지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전진!”


청룡의 명령이 떨어지자 방패를 머리에 얹은 고구려 병사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 ! 발소리도 딱딱 맞아떨어졌습니다. 5만 대군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자 안라국 병사들은 공격을 기다리면서도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고구려 군사들 대단하군!”

“무슨 소리야! 우릴 침략하는 적군이야. 한 놈도 빠짐없이 이곳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막아야 우리가 사는 거라구!”

“아, 알았어. 그…래도 멋지지 않냐?”

“어허, 정말 이 친구.”


그때 비화의 손이 올랐습니다. 안라국 병사들은 일제히 화살 끝에 불을 붙여 고구려군을 향해 쏘았습니다. 방패 사이로 불화살이 날아오는 그 모습을 본 고구려 병사 중 담이 약한 자는 그냥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기도 하였습니다.


“불화살이 날아온다. 모두 방패를 빈틈없이 붙여라!”


고구려군의 방패들이 일제히 다닥다닥 붙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대형 융단이 끝없이 펼쳐진 모습이었습니다. 이 광경 역시 감탄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습도 잠시 후면 불지옥 속에서 이글거리는 한낱 장작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고구려 병사들은 방패 위로 떨어지는 화살의 촉감을 느꼈습니다. 광개토와 청룡은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완벽한 작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윽고 들리는 병사들의 비명. 광개토와 청룡의 눈이 더 커졌습니다.


“이럴 수가!”


광개토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습니다. 광개토는 급히 청룡에게 후퇴를 명령했습니다.


“후퇴하라!”


하지만, 전진하던 병사들이 갑자기 후퇴하기란 쉽지 않은 일. 곳곳에서 병사들이 넘어지고 아군의 발에 짓밟히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불화살에 기름을 달아 공격할 줄이야. 적장 무시우의 전술이 신묘하구나!”


광개토는 아군의 피해에 속이 쓰리긴 하지만 자신의 전술을 간파하고 그에 능가하는 전술을 펼치는 무시우의 병법에 경의를 표할 정도로 탄복했습니다.


1차 공격에 실패하고 물러난 광개토군은 두 시진이 지난 후에 다시 공격을 시도했습니다. 이번에는 궁수부대를 앞세워 역으로 화공을 펼친다는 계획입니다. 방어산 자락에 있는 모든 나무를 불태워 무시우군이 불과 그을음에 고통을 받게 하고 이와 더불어 공격선을 확보하려는 전술입니다.


방어산 정상 바위 위에서 고구려군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무시우는 광개토의 전술을 간파하고 곤혹스런 표정이 되었습니다. ‘이를 막을 방법이 마땅히 없다. 산 아래에서부터 불을 질러 타오르게 하면 방어산 기지는 그야말로 초토화가 된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른 무시우는 자신이 직접 나서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고구려 궁수부대가 점점 가까워 오자 무시우는 바위 끝에 우뚝 서서 큰 날개를 펼쳤습니다. 한 번 크게 날개를 펄럭이자 무시우의 몸이 하늘로 솟구쳤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고구려 병사들에게로 날아갔습니다. 무시우의 이런 모습을 본 고구려 병사들은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1(전설텔링)20150106전쟁의신5


“아니,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날아다닐 수가 있단 말인가?”

“안라국에 인간새가 있다더니 사실이었구만.”


광개토 역시 무시우의 이런 보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냉철하기로 누구보다 뒤지지 않는 광개토왕입니다. 이 순간이 무시우를 쓰러뜨릴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지요.


“궁수는 일제히 적장을 향해 화살을 퍼부어라!”


무시우는 어느새 고구려 궁수들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와 있었던 것입니다. 고구려 궁수들이 쏜 화살이 까맣게 밀려왔습니다. 무시우는 다시 날개를 힘차게 퍼덕여 몸을 뒤로 뺐습니다. 화살들이 다시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무시우는 좌우로 움직이면서 화살통에서 불이 붙은 화살 다섯 개를 꺼내 걸고 시위를 당겼습니다. 불화살은 그대로 고구려 궁수들을 쓰러트렸습니다. 무시우의 이런 모습을 본 고구려 궁수들은 기겁하여 화살을 쏠 엄두를 내지 못하였습니다.


“궁수는 총공격하라!”


청룡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그제야 고구려 궁수들은 다시 화살을 장전하고 무시우를 향했습니다. 무시우는 계속 불화살을 쏘았고 방어산에서도 안라국 궁수들이 고구려군을 향해 화살을 쏘았습니다. 고구려 궁수의 수가 너무 많다 보니 무시우가 아무리 쓰러트려도 화살공격은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이런 공방이 두 시진(4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이젠 무시우도 점점 지쳐갔습니다. 무시우의 손에 쓰러진 고구려군은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끝없이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느라 무시우도 이제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잠시 방심한 사이, 고구려군의 화살 하나가 날갯죽지에 박혔습니다.


그러나 무시우는 전혀 개의치 않고 고구려군에게 화살을 퍼부었습니다. 화살이 떨어지면 방어산으로 돌아가 화살을 챙겨 바로 날아와 공격을 이어갔습니다. 광개토는 무시우의 이런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다가 이 전쟁에서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후퇴한다.”

“존명!”


옆에 있던 청룡이 광개토의 명을 받아 전군 후퇴를 명했습니다. 그렇게 전쟁은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방어산 기지에선 환호가 이어졌습니다. 모두 서로 부둥켜안고 좋아했습니다. 몇몇 병사들은 울먹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광개토는 안라국 정벌을 포기하고 군사를 돌렸습니다. 5만 명이었던 고구려군은 4만 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광개토는 소수의 병력으로 자신의 대군에 맞선 무시우의 용맹과 지혜를 높이 샀습니다. 무시우 장군 같은 군인이 있는 안라국이 부럽기까지 하였습니다. 비록 전쟁에서 이기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고구려 대군이 물러났고 안라국은 다시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안라국 사람들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자녀들과 함께 방어산을 오르며 무시우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무시우 대장군은 말이야, 아주 적은 군사로 5만이 넘는 고구려 군사를 물리치고 우리 아라가야를 지킨 훌륭하신 분인데….” ()


[관련기사]


(전설텔링)전쟁의 신()(1)

(전설텔링)전쟁의 신()(2)

(전설텔링)전쟁의 신()(3)

(전설텔링)전쟁의 신()(4)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전설텔링)전쟁의 신()(2)

함안 방어산 묵신우 장군에 얽힌 전설


(전편 줄거리) 한반도 남쪽, 가야의 여러 부족국가들과 신라, 백제가 서로 경계를 이루고 있던 서기 400년 경 신라의 잦은 침범으로 위협을 느끼던 안라국은 백제와 왜를 끌어들여 공동방어 정세를 이룹니다. 이에 신라는 삼국 연합군에 대항하려고 고구려를 끌어들입니다.


신라의 원군 요청을 받은 광개토는 즉시 출병을 합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신라의 요청에 따른 출병을 넘어 가야와 왜까지 고구려에 복속시키려는 계획이 들어있었습니다. 국내성에서 출발한 광개토의 군사들은 남하하는 곳곳에서 주둔군을 차출, 안라국 접경지역에 도착했을 때엔 그 군사의 수가 무려 5만에 이르렀습니다.


고구려 광개토가 공격해온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안라국 왕과 신하들은 고민에 빠집니다. 싸울 것이냐 항복할 것이냐. 겨우 3000의 군사에 불과한 안라국이 5만의 광개토 군을 상대한다는 것은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격이어서 일부 신하들은 왕에게 항복을 간합니다. 한참 논란 끝에 안라국왕이 결단을 내립니다. 항전하라.


안라국왕의 아들이자 대장군인 무시우가 3000의 군사를 이끌고 방어산에 진지를 구축합니다. 방어산은 안라국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입니다. 지수평야에 진지를 구축한 광개토와 일전을 앞둔 긴장감이 흐릅니다.


사위를 분간할 수 없는 깜깜한 밤. 방어산 요새 바위 위에 올라선 무시우는 너무 조용한 광개토 군의 동태가 수상하다 여겨 부하 장수 쾌수를 시켜 정찰하도록 합니다. 동작이 빠른 5명의 정찰대와 함께 산 아래로 내려간 쾌수는 광개토 군 선발대를 발견합니다. 적의 수는 500.


쾌수와 정찰대가 쏘아올린 불화살을 신호로 방어산 정상 무시우 장군의 화살부대는 일제히 불화살을 퍼붓습니다.


………………………………………………………………………………


“들켰다. 퇴각하라!”


광개토의 군사들은 일순 당황했고 허둥거렸습니다. 광개토의 부하장수 중 살수로 명성이 자자한 현무가 퇴각명령을 내렸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불화살은 빈틈없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날아오는 불화살을 멍하니 보고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졌습니다. 불화살을 가슴에 맞고 온몸을 비틀거리다 불에 타 목숨을 잃는 병사들도 부지기수였습니다.


현무는 이를 갈았습니다. 아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담덕(광개토의 본명) 형님을 모시고 수많은 전쟁을 거치는 동안 자신의 살수부대가 선발을 맡아 지금까지 한 번도 실패해 본 적이 없었고 이번 작전도 그야말로 어둠과 같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적에게 노출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장군, 어서 피하십시오. 불화살은 최대한 저희들이 막아보겠습니다. 어서요!”


현무는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습니다. 부하들이 방패로 날아오는 불화살을 막으면서 후퇴하였습니다. 어느 정도 불화살의 사정권에서 벗어나자 부하들은 모두 쓰러져 있었고 주변 숲은 불길에 휩싸여 더는 들어갈 수도 다시 나올 수도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500명의 부하들을 허무하게 잃은 현무는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자신의 계획에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돌이켜보았습니다. ‘지수평야에 진을 치고 안라국 무시우와 대척을 이룬지 사흘. 그동안 정적만 있었을 뿐 아무런 충돌도 없었다. 벌써 공격을 감행했을 수도 있고 더 공격을 미룰 수도 있었다. 적은 대규모 병력이 일시에 공격할 것이란 계산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뻔한 싸움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정세를 역이용해서 살수들로만 구성한 현무 군사들이 몰래 잠입해 적을 교란시켜 전쟁을 승리로 이끌 계획이 아니었던가.’ 현무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억지로 옮기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정면에서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습니다. 현무는 자연스레 고개를 돌려 방어산 정상을 쳐다보았습니다. 길게 띠를 이룬 횃불들이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역풍이 불어 소리는 약했지만 적의 환호성도 들리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그 횃불과 환호는 더욱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폐하! 살수부대의 작전이 실패한 것 같습니다.”


진지 끝에서 망을 보던 병사가 광개토의 본진으로 쫓아와 아뢰었습니다.


“살아남은 아군이 하나도 없느냐?”

“지금으로선….”

“현무 장군은?”


광개토는 자신의 오랜 벗이자 동생인 현무의 생사가 궁금했습니다. 적장 무시우의 전력과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현무의 작전계획을 윤허한 것이 못내 후회가 되었습니다. ‘좀 더 살펴본 뒤에 작전을 펼칠 걸 그랬어.’ 광개토는 주먹을 꽉 쥐었습니다. ‘무시우, 보통 놈은 아니구나.’


“폐하! 현무 장군이 살아 돌아왔습니다.”


다른 병사가 황급히 달려와 보고하였습니다. 현무가 살아있다는 말에 광개토는 병사의 추가 보고도 듣지 않고 천막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병사가 뒤따라 나왔습니다.


“현무 장군이 어디에 있느냐?”

“이제 막 군진에 들어와서 이리로 오고 있사옵니다.”

“그래. 현무 장군과 함께 살아 돌아온 병사가 몇이나 되더냐?”

“그게…, 현무 장군 혼자이옵니다.”


이윽고 현무가 광개토 앞에 다다랐습니다.


“폐하, 죽여주십시오. 이놈이 작전에 실패하고 군사들을 모두 잃었사옵니다.”


현무는 광개토 앞에 무릎을 꿇고 통곡을 하였습니다.


“일어서거라. 내 잘못도 크다.”

“제가 고집만 피우지 않았더라도….”

“이젠 지나간 일. 되씹어서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


광개토는 현무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부관, 주작, 청룡, 백호 장군에게 가서 작전회의가 있으니 속히 모이라고 이르라!”


한편, 방어산 정상 무시우의 군진에선 승리의 기쁨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안락국 군사들의 환호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쾌수 장군이 다섯 명의 정찰병과 함께 군진으로 돌아오자 더욱 환호성이 커졌습니다.


“수고했다, 쾌수. 이번 작전은 완벽하게 우리의 승리다. 이제 적들도 함부로 우리에게 달려들지 못할 것이다.”

“예, 이제 시작입니다. 우리의 화력을 똑똑히 보았을 테니 인해전술로 쳐들어오진 못하겠지요. 대신 다양한 전술로 공격을 시도할 것입니다.”

“그래, 광개토가 어떤 전술을 펼칠지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무시우는 쾌수의 어깨에 손을 얹고 군진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적의 선발대는 우리의 불화살에 전멸했다. 떨고 있는 적들을 보아라! 우리의 승리가 눈앞에 있다! 안라국 만세!”

“안라국 만세! 무시우 장군 만세!”


무시우는 병사들 앞에서 쾌수를 안았습니다. 환호성은 더 커졌습니다.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높이 치솟았습니다. 무시우는 그런 병사들에게 다시 긴장을 풀지 말고 경계할 것을 지시하고 군막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무시우를 따라 쾌수를 비롯한 마금, 비화, 혜목 장군이 들어왔습니다. 광개토에게 현무와 주작, 청룡과 백호가 있다면 무시우에겐 이 네 명이 있습니다. 쾌수가 발빠른 움직임이 장점이라면 마금은 다루지 못하는 쇠가 없을 정도로 무기제작에 뛰어나며 검이면 검, 창이면 창 무예 또한 출중해 맞붙어 그를 당해내는 자가 없을 정도입니다.


또한, 비화는 궁술에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는 장군입니다. 그가 쏜 불화살이 목표물에서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혜목은 무시우의 책사입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제갈량과 비견되는 인물입니다. 천리안을 가진 데다 통찰력 또한 뛰어나 작전을 펼침에 있어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혜목, 이번엔 광개토가 어떤 작전으로 공격할 것 같은가?”

“우선 첩자를 활용하여 우리의 전력을 탐색하려 할 것입니다. 연후 우리 군의 사기를 꺾으려 시도할 것이며 어쩌면 궁내 폐하를 시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과연 그러하다. 대비책은 있는가?”

“예, 장군.”


혜목의 이야기를 들은 무시우와 나머지 세 명의 장군은 감탄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무시우의 군막은 밤늦게서야 불이 꺼졌습니다. 이튿날 무시우의 군사들은 이리저리 바삐 움직였습니다. 새로운 작전에 맞춰 군진을 다시 짰기 때문입니다.


마금 이끄는 군사들은 백제와 대가야에서 안라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길목을 지켰으며 비화는 군사들을 길목은 물론 산으로 침투할 적에 대비해 위치를 폭넓게 잡아 배치하였습니다. 지난밤 정찰 업무를 완벽히 성공시킨 쾌수에겐 다시 특별한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바로 적진 속으로 들어가 광개토군의 정보를 캐오는 첩보작전이 떨어진 것입니다.


쾌수는 아침 일찍 민간인 복장을 하고 대가야 쪽으로 떠났습니다. 다라국의 민간인으로 위장해 광개토군에 지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괴나리 봇짐 하나를 달랑 메고 안라국 북쪽으로 흐르는 남강을 건넌 쾌수는 어젯밤 혜목이 신신당부한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여보게, 쾌수. 이번 전쟁의 승패는 자네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세. 적진으로 들어가면 우선 방어산에 전쟁의 신이 있다고 소문을 퍼뜨리게. 특히 그 소문이 거짓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돌도록 해야 하네. 그래야 우리 장군께서 모습을 드러낼 때 그들의 사기가 더 떨어질 테니까. 그 다음엔 광개토 휘하의 각 부대 장수들의 성향이 어떤지 파악하게. 그중에 혹시 이번 선봉대를 지휘한 장수가 있다면 그의 신임을 얻도록 하게. 적절한 때에 쓰임이 있을 것이야.”


한편, 광개토의 휘하 장수 중에서 말이 없고 무예가 특히 뛰어나서 신임을 두텁게 얻고 있는 백호 장군 역시 민간인 복장을 하고 군진을 나섰습니다. 그는 안라국 안으로 잠입해 방어산의 동태를 살피고 적당한 시기에 국왕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았습니다. 광개토는 그 틈을 이용해 공격을 펼칠 계획이었습니다.


방어산 인근이야 전쟁의 기운으로 숨이 막힐 정도의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다라국 쪽은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다라국 남부지역 시장은 평소대로 각국의 교역이 활발했습니다. 특히 다라국은 백제와 신라, 왜에까지 교류가 활발해 어느 때나 시장이 번성했습니다.


쾌수는 자신이 살고 있는 안라국도 외국의 위협을 받지 않고 이렇게 평화스러운 시절을 보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쾌수의 눈에 독특한 물건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옥으로 만들어진 목걸이였습니다. 아내에게 꼭 어울리는 장신구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거, 얼마나 하오?”

“두냥이오. 귀한 물건이라 없어서 못판다오. 딱 하나 남았으니 댁은 횡재한 거요.”


장사치가 너스레를 떨면서 쾌수 눈앞에다 옥목걸이를 들이밀었다.


“잘 보세요. 이 옥빛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지간한 미녀가 아니면 소화하지 못하는 고급품이라오.”

“두냥이면 너무 비싼데….”


쾌수가 망설이자 장사치는 더욱 곰살맞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비싼 데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근데, 보아하니 손님의 부인께서 미인이 아니신 모양이오. 이런 구하기도 어려운 옥목걸이를 두고 망설이는 것을 보면?”

“거참, 상술이 보통 아니구료. 알겠소. 내 아내가 미인이라서 사는 거요.”

“아이고, 대인이십니다. 통이 여느 사람과는 다른 분이군요. 예쁘게 포장해드리리까?”

“포장은 필요 없고! 옛소. 한냥!”

“뭐요? 한냥?”


장사치의 배실배실 웃던 표정이 일순 일그러지며 험상궂게 변하였습니다. 쾌수 역시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패악질을 벌일 기세로 으르렁거렸습니다.


“좋소. 그럼 한냥 반!”

“아니, 한냥 두푼!”


그렇게 실랑이를 하는 동안 쾌수 뒤쪽으로 온몸에서 무거운 기운이 서린 한 사내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하지 못할 쾌수가 아니었습니다. 백호 역시 방금 지나친 사내의 기운을 감지하였습니다. 자신과 맞먹는 강한 에너지를 느끼고는 이마에서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살짝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장신구 매점 앞에 서있던 사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다음 주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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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전쟁의 신()(1)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3)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수지봉 월명총에 얽힌 전설


(전편 줄거리)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한 초겨울 역녀 월명은 다른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이후에도 공식 업무가 끝나는 유시반각까지 기다렸다가 퇴근할 무렵이었습니다. 그때 멀리서 말발굽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옵니다. 경주에서 출발해 나주로 가는 파발관원인데 업무 마감시각 안에 도착하려다 너무 지친 나머지 당도하자마자 말에서 떨어집니다.

월명은 말을 진정시키고 관원을 보았는데 여느때와는 다른 감정을 느낍니다. 파발관원이 식사대접을 청하자 처음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식사를 합니다. 첫눈에 반한 파발관리 수영은 다음날 나주로 떠났고 다시 만날 것이라고 전혀 생각도 않았는데 다음날 저녁 경주로 돌아가던 길에 다시 함양으로 옵니다.

좋아하는 마음은 있었어도 기대하지 않았던 만남이어서 더욱 반가웠지만 월명은 오히려 자신의 마음과 달리 수영에게 얄밉게 행동합니다. 수영이 처음엔 자신이 착각을 하고 무례하게 대했나 생각이 들어 죄송한 마음을 나타내는데 월명이 짓궂은 장난을 쳤다는 것이 드러남으로써 서로의 관심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날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월명의 집으로 간 수영은 월명의 아버지지로부터 집에서 자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월명의 아버지도 수영에게 관심이 간 것입니다. 밤늦도록 막걸리를 주거니받거니 하며 이야기를 나누더니 어느새 장인, 사위 하며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열흘 후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경주로 떠났던 수영은 약속대로 열흘 후 함양으로 아예 이사를 옵니다. 여기서 거주하며 장사를 시작한 수영은 파발꾼의 인맥을 살려 전국을 대상으로 한 행상을 시작합니다. 2년 만에 제법 많은 돈을 번 수영은 정식으로 월명에게 청혼하여 결혼을 하게 됩니다.

열흘 간의 신혼생활을 행복하게 보낸 마지막 날 수영의 고향 경주에서 편지가 옵니다. 편지를 본 수영의 얼굴에 어둠이 깔립니다.


……………………………………………………………………………………..


“아들 보거라. 멀리 있으니 자주 근황을 알 수도 알릴 수도 없어 마음이 편치 않구나. 각설하고, 어머니가 위독하시다. 열일을 제쳐놓고 속히 집으로 오길 바란다.”


아버지의 친필 편지였습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급하였는지 글씨도 거의 초서에 가까웠습니다. 편지에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멀리 함양 처가에서 사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속내가 들어 있어 수영은 죄송하면서도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주지 않는 아버지가 서운하기도 하였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월명이 수영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위독하시답니다. 급히 오라는 전갈이군요.”

“어떻게 위독하시던가요?”

“그것까진 서찰에 쓰여있지 않아요. 좀체 이런 편지를 쓰지 않으시는 아버지께서 짤막하게 글을 써서 보내신 걸 보면 어머니 건강이 몹시 안 좋은가 보오.”

“여기 걱정은 마시고 얼른 가서 어머니를 살펴드리세요.”


수영은 아내 월명을 꼭 안았습니다.


“어머니 건강이 좀 나아지면 바로 오겠소. 나 없는 동안 건강 잘 챙기고 아버님도 잘 보살펴드리세요.”


장인에게도 사정을 이야기한 수영은 마구간에서 말을 꺼내어 올라탔습니다. 편지를 전해줬던 친구 득수와 함께 떠났습니다.


남편이 떠난 자리가 휑한 것처럼 월명의 마음도 뻥 뚫린 듯하였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위독하다는 데도 너무 멀리 있다 보니 찾아뵙지 못하는 게 죄송하단 생각이 들었는지 월명은 장독간에 정한수를 떠 놓고 매일 밤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습니다. 아무리 치성을 드려도 시어머니에게 차도가 없는 건지 남편은 돌아오지도, 편지를 보내지도 않아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월명은 금세 올 것 같던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서서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병구완을 하다 남편마저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너무 궁금하고 답답해 경주로 나설까 하다가 또 행여나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라면 서로 길이 엇갈릴 수도 있는 일이므로 선뜻 나서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추운 겨울이 다 지나고 따뜻한 봄이 되었습니다. 산에 들에는 온갖 꽃들이 다시 생명을 얻어 피어나고 나비와 새들이 날아들었습니다. 새순이 돋는 나뭇가지에는 새들이 몰려와 아름다운 소리로 지저귀었습니다.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월명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그래, 이제 봄이 되었으니 어머니의 건강도 새생명을 얻은 것처럼 쾌차하실 테고 남편도 경쾌한 말발굽소리를 내며 돌아올 거야.’ 월명은 다시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얘야, 이 죽 조금이라도 먹거라. 속이 든든해야 기운도 차리지.”

“죄송해요, 아버지. 목이 따가워 음식을 삼킬 수가 없어요.”


월명은 정한수 앞에서 치성을 드리다 한 번 쓰러진 뒤론 건강이 급격히 악화해 몸져누운 지 한 달이 다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날 시어머니의 건강을 기원하며 치성을 드린 지 한 달 보름만의 일이었습니다.


남편 수영에게선 두달 반이 지나도록 전혀 연락이 없습니다. 월명은 이제 날도 따뜻해졌기 때문에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직접 찾아가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아버지, 근 석 달이 되었는데도 그이의 소식이 없으니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역장 나리께 사정을 하여 말을 타고 경주엘 다녀오겠습니다.”

“그 몸으로 어딜 간다는 거냐? 그리고 역마를 사사로이 이용하고자 청을 넣는다는 것은 역장님을 난처하게 만드는 것이니 옳지 않은 일이다. 내가 경주로 가는 행상을 통해 서찰을 보낼 터이니 넌 딴 데 신경 쓰지 말고 몸조리나 잘 하거라.”


아버지 말씀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월명은 너무 갑갑한 나머지 자신이 직접 가지 않으면 불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 하신 말씀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마음이 불안해서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이러다 더 병이 날 것 같아요.”


딸의 마음병이 더 심해질 거라는 말에 아버지도 더는 만류하지 못하였습니다.


“알겠다. 그렇다면 채비를 할 테니 국밥집 둘금이와 둘금이 오래비랑 셋이 함께 다녀오너라.”

“예, 고맙습니다. 아버지.”


월명은 곧 남편 수영을 만날 수 있다는 기분에 몸이 훨씬 나아진 듯하였습니다. 월명은 바로 둘금 어머니가 운영하는 국밥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둘금이네는 월명네와 친척보다 더 가까이 지내는 이웃입니다. 월명은 기운도 없고 숨도 가빴지만 기쁜 마음에 아픈줄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아주머니, 아버지께서 한석이 오라버니랑 둘금이랑 함께 경주 가는 것을 허락하셨어요. 아주머니께서도 허락을 해주세요.”

“그리 좋으냐? 그 먼 길을. 지금 니 몸 상태로선 쉽지 않은 여행이 될 텐데….”

“괜찮습니다. 이제 기운이 솟는 것 같아요.”


국밥집 둘금 어머니의 반 허락을 받은 월명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넉넉잡아 닷새 후면 남편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것 같았습니다. 어찌 기운이 났던지 월명은 둘금 어머니에게 국밥을 한 그릇 달라고 했습니다.


“죽도 제대로 못 먹는 니가 이 국밥을 삼킬 수 있겠냐? 최대한 부드러운 고기로 국밥을 떠줄 테니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거라.”

“네, 고맙습니다. 어머니.”

“하하하. 녀석. 늘 아지매 아지매 하더니 웬, 갑자기 어머니야? 하하하.”


월명은 둘금 어머니로부터 국밥을 건네 받고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월명의 속이 이상해졌습니다. 먹은 것도 없는데 뭔가가 식도를 타고 거꾸로 치솟아 올라오는 듯하였습니다.


“우웩!”


분명히 속에서 굵직한 뭔가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 듯했는데 그러나 아무것도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웩, 우웩!”


연거푸 토가 올라오자 월명은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둘금이 어머니가 따라와서 등을 두드려주었습니다.


“얘가, 왜 이러냐? 먹은 것도 없다 하더니? 가만!”


둘금모는 뭔가 생각난 듯이 손가락을 짚었습니다.


“월명아, 달거리 끝난 게 언제냐? 혹시 임신한 거 아니냐? 아이구, 맞구만. 맞아!”


선뜻 대답을 못하고 멍하니 있는 월명을 바라보며 둘금모는 경사가 난 듯 좋아라 하였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평상으로 다시 돌아가더니 손님들에게 큰소리고 말했습니다.


“손님들, 오늘은 내가 너무 기쁜 날이라 밥 더 드시고 싶은 분은 말씀하세요. 얼마든지 공짜로 더 드리리다. 내 딸이나 진배없는 월명이 임신을 했어요. 아이를 가졌단 말이오. 하하하!”


월명은 살며시 자신의 배를 만져보았습니다. 아직 느낄 수는 없지만 이 속에 사랑하는 남편과 자신의 아이가 들어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아가, 이렇게 우리가 만나는구나. 너를 만나서 아주 행복하다.’ 월명의 입덧은 어느새 멎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다시 배가 고파졌습니다.


다시 자리로 돌아간 월명이 국밥 앞에 앉아 숟가락을 뜨려고 하자 속이 다시 울렁거렸습니다.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성스레 담은 국밥을 한 술도 뜨지 못하고 그대로 일어서려니 괜히 둘금 어머니에게 미안하였습니다.


“어머니, 죄송해요. 맛있게 국밥을 담아주셨는데 이렇게 먹지도 못하고….”

“괜찮아. 무슨 소리냐? 입덧을 하면 누구나 그런 것을. 혹시 따로 먹고 싶은 것은 없어? 이 아줌씨가 뭐든 다 해줄 테니 말해보거라.”

“아뇨. 없어요. 이제 집에 갈게요. 경주에 갈 채비도 해야 하고.”

“참, 그렇구나. 경주엘 간댔지? 임신 초기에 몸조리를 잘하지 못하면 애가 떨어지는 수가 있는데…. 조금 더 있다가 아기가 뱃속에서 자리를 잡고 나면 떠나는 게 어떻겠니?”


순간 월명의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아기가 생겨 그저 행복하였던 것은 장거리 여행을 가야 하는 상황을 연결지어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꺼번에 할 수 없는 두 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지자 월명은 갈등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의 소식이 너무나도 궁금해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데 뱃속 아기 때문에 장기간 여행을 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월명의 기분은 다시 우울해졌습니다. 남편을 보러 갈 기분에 날아갈 듯 기뻤는데 이제 그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고민 끝에 하는 수 없이 아버지 말씀대로 경주로 가는 행상을 통해 기별을 넣는 수밖에 없습니다.


기별을 넣은지 또 한 달이 지났습니다. 마당을 오락가락하며 모이를 쪼아 다니던 암탉들도 더위를 피해 마루 아래로 들어가 수시로 날개를 퍼덕거렸습니다. 월명은 매일같이 남편에게서 올 편지를 기다렸습니다. 마을 어귀까지 나가 기다리길 밥 먹듯 하였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물론이고 편지를 전해줄 법한 행상들의 모습도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월명은 다시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어쩌면 지난 한 달은 아이 때문에 버틸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밤마다 월명을 괴롭혔습니다. 뒷산 소쩍새가 울어 깊은 밤 적막을 몇 번이나 깰 때까지 잠들지 못하던 월명은 새벽녘 샛별이 떠오를 녘에서야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월명이 잠들었을 때 희한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안개 자욱한 길을 거닐고 있는데 갑자기 절벽이 나타나더니 남편의 몸이 절벽 아래로 쑥 빠져버리거나 또 다른 날에는 괴물이 나타나 남편을 덥석 잡아가는 그런 꿈이었습니다.


그런 남편의 손을 잡고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자신의 힘으론 역부족입니다. 꿈속에서 남편을 잃고 허우적거리다가 깨어 보면 벌써 햇볕이 창문을 열어라고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월명의 이마에는 땀이 흥건히 맺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뒤숭숭한 꿈 때문에 대청마루에 앉아 고개를 떨어뜨리고 멍하니 마당을 바라보고 있는데 커다란 그림자가 시선에 들어왔습니다. 월명은 서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행상차림을 한 남자가 태양을 등지고 월명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반쯤 뜬 눈으로 들어온 사내를 보고 월명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계속)


[관련기사]


(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1)

(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2)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2)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수지봉 월명총에 얽힌 전설


(전편 줄거리)월명은 사근역 역녀로 출퇴근을 하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씨가 착해 역을 오가는 관원들이 수작을 종종 걸지만 한 번도 그들과 식사를 같이하거나 마을을 안내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역문을 닫을 쯤에 급한 말발굽소리가 들립니다.


월명이 밖으로 나가가 파발마는 역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지친데다 흥분되어 몸을 일으켜 세우고 그 바람에 파발 관원이 땅에 떨어집니다. 그 순간 관원이 말발굽에 밟힐 위기에 처하자 월명이 소리를 쳐서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관원이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일어서면서 서로 눈이 마주치는데 월명의 가슴이 콩닥거립니다. 이런 일은 처음 느껴보는 것입니다. 월명은 말을 마방에 데리고 가면서도 진정이 되지 않습니다.


늦은 시각에 도착한 게 미안해서 관원은 저녁을 사겠다고 하고 식당으로 갑니다. 월명은 처음으로 파발관원이 산다는 식사에 응한 것입니다. 식사를 함께 하면서 관리의 이름이 수영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월명은 수영을 깨워 역으로 함께 갑니다. 월명은 김 역장에게 말해 중등마를 내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수영은 나주로 떠납니다. 수영을 보낸 월명은 가슴이 휑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수영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지 못한 것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다음날 역시 역참 문을 닫을 시각. 월명은 퇴청 준비를 하고 나서는데 수영이 나타납니다. 월명은 그에게 달려가 안기는 상상을 합니다. 그러자 수영이 그를 와락 껴안습니다.


………………………………………………………………..


월명은 자신도 모르게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처음으로 마음을 주었던 수영이지만 이렇게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무 얼떨결에 남자의 품에 안긴 터라 두 팔은 축 늘어뜨린 채로 서 있었습니다.


“월명, 보고 싶었소. 어제 헤어진 뒤 그대 생각만 하였소. …?”


월명은 자신도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러자 수영이 자기 혼자 반가워 무례를 범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아, 미안하오. 내가 너무 반가운 마음에…. 용서하시오.”


수영은 월명을 안았던 팔을 풀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습니다. 월명은 수영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수영은 더욱 당황하였습니다. 수영은 어쩔 줄 모르고 말을 더듬기 시작했습니다.


“그, 그게 그러니까…. 월명낭자가…, 내 마음이…. , 이런 어떻게 말해야 하나?”

“하하하하. 나리께선 참 순수하신 분이군요.”


월명은 가슴이 콩닥거려 어찌할 바를 몰라 멍하니 수영의 얼굴을 보았던 것뿐인데, 수영이 당황해 하며 말도 더듬거리자 그만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수영도 그런 월명을 한참 바라보다가 함께 웃었습니다.


두사람은 이틀 전에 갔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남강변을 걸었습니다. 파발마들이 다니는 곳이어서 강변을 따라 길게 길이 나 있었습니다. 길을 따라 또 물억새가 한 번씩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흰머리칼을 휘날리며 춤을 추었습니다.


“이 마을엔 좋은 사람들이 참 많아요.”


월명은 이번에 경주로 가면 언제 또 오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어쩐지 속내를 내보이는 것 같아 얼른 말을 돌린다는 게 마을 사람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더군요. 몇 분 만나보진 못했지만 다들 친절하시고….”

“국밥집 아주머니 있죠? 그분 딸이 제 친구랍니다. 둘금이라는 애인데 걔, 엄마와는 달리 아주 미인이랍니다.”

“그런가요? 아주머니도 예쁘게 생겼던데, 그보다 더하다면 절세미녀겠는데요. 하하.”

“…. 나리, 둘금이란 애 소개시켜 드릴까요?”

“…….”


월명은 속으로 후회가 되었습니다. 수영에게 왜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자신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는데 자꾸 딴 이야기만 늘어놓게 되는 것이 속상했습니다. 수영 역시 함께 경주로 가서 살고 싶다라든지 월명만 원한다면 이곳에서 살겠다든지 이런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을 꺼내지 못하는 자신이 갑갑했습니다.


점점 밤은 깊어갔습니다. 월명도 이제 집으로 들어가야 할 시각이 되었습니다. 수영 역시 월명과 오랫동안 함께 있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결혼도 안 한 남녀가 밤늦게까지 인적이 드문 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동네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일이니까요.


“너무 늦은 것 같은데 집까지 바래드리겠소.”


수영이 걸음을 멈추며 말했습니다. 월명 역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습니다.


“그래요. 너무 늦은 것 같네요.”


두 사람은 월명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앞에는 월명의 아버지가 나와 있었습니다. 해시정각(오후 9)이 다 되었는데도 과년한 딸이 집으로 들어오지 않자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평소엔 아무리 늦어도 술시반각(오후 8)을 넘긴 적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왜 이리 늦은 거냐?”


월명의 아버지는 딸의 옆에 웬 남자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속으로 적잖게 놀랐습니다. 한편으론 과년한 딸이 남자의 배웅을 받아 집까지 온다는 것은 반갑기도 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얼굴이라 걱정도 되었습니다. 역에서 일을 하다 보니 뜨내기 관리들이 월명에게 집적거리는 일이 많았던 데다, 물론 그럴 때마다 딸이 현명하게 대처하곤 했지만 자칫 마음을 주었다가 상처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옆에…, 누구냐?”

“아, 아녜요. 아버지. 그냥…, 나주서 경주로 돌아가던 파발 관원입니다. 마을 구경을 하고 싶대서….”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그런 적이 없던 니가 웬일이냐?”

“아, 안녕하십니까? 경주에 사는 이수영이라고 합니다.”


월명의 아버지는 재빨리 눈치를 챘습니다.


‘이 아이가 경주 총각을 좋아하는구나.’


월명 아버지는 총명하기로 함양에서도 소문난 딸이 남자를 집앞에까지 배웅받아 데려온 것은 그만큼 마음에 두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자네 술 마실 줄 아는가?”

“네, 조금씩은 마십니다.”

“주막에 가서 막걸리 두 병 사오게.”

“네? , 알겠습니다.”


수영은 너무 뜻밖의 일이라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속으로 연모하는 사람의 부친이 자신에게 술심부름을 시킨다는 것은 함께 술을 마시자는 얘기일 테고, 그렇다면 호감을 보인다는 얘기가 되므로 아주 기뻤습니다.


수영이 주막으로 가자 월명의 아버지는 딸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저 총각이 그렇게 마음에 드느냐?”

“지금까지 봐왔던 사람과는 달라 보였습니다.”

“알겠다. 애비가 저 총각의 마음이 어떤지 살펴보마.”


월명은 부엌으로 가서 술안주를 만들었습니다. 주안상을 마련해 나왔을 때 술 두 병을 사들고 돌아온 수영과 마주쳤습니다.


“이렇게 밤이 늦었는데 아주머니께서 술을 팔던 모양이죠?”

“네, 문을 닫았으니 딴 데 가보라는 걸 딴 데는 아는 곳이 없다며 한사코 졸랐지요. 하하.”

“그래서 늦었군요. , 들어가세요.”


월명의 아버지와 수영은 술상을 가운데에 놓고 마주앉아 막걸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정담을 나누었습니다. 월명은 이야기를 듣는 중에 수시로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두 사람의 정담이 툭하면 혼담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월명이 술 심부름을 몇 번이나 하였는지 모릅니다. 아버지는 수영에 대해 아주 큰 호감을 느끼게 되었고 수영 역시 아버지의 솔직한 태도와 말에 터놓고 얘기하며 즐거워하였습니다. 어느덧 자정을 넘기고 멀리서 밤부엉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장인 어른, 이제 일어나 보겠습니다.”

“어? 좋지 장인 어른. 이보게 사위. 오늘 잠은 여기서 자게나. 이 시각에 객점 문 두드려봤자 욕만 얻어먹고 쫓겨날 걸세.”


월명은 자기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여전히 아버지 방에서는 두 사람이 웃으며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립니다. 멀리서 다시 부엉이가 연방 목청을 뽑습니다.


얼마나 눈을 붙였을까. 월명은 닭울음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밖을 나오니 동쪽 산등성이 위로 동이 트고 있었습니다.


‘장인 어른, 따님과 혼인을 하고 싶습니다. 이번에 경주에 돌아가면 경주관헌 일을 정리하고 이곳으로 이사를 오겠습니다. 여기서 장사를 시작하여 돈을 벌겠습니다. 그래서 살림을 차릴 정도가 되면 정식으로 청혼을 올리겠습니다.’


월명은 어젯밤 수영이 아버지에게 한 말을 되새기면서 살포시 미소를 짓고는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월명 역시 아버지와 수영을 위해 아침을 짓다 보니 어느덧 자신이 수영의 아내가 된 듯하여 낯이 붉어졌습니다.


아침을 먹은 후 월명과 수영이 역참으로 향했습니다. 수영의 기분은 아주 좋았습니다. 월명의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고향에 돌아가 어머니 허락만 받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역참에 도착한 월명은 수영에게 말을 내어주었습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열흘쯤 걸릴 것 같소. 반드시 돌아올 테니 꼭 기다려 주시오.”


월병은 수영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딱 열흘 후.


수영은 약속대로 함양 수동마을에 나타났습니다. 경주에서 완전히 함양으로 이사를 온 것입니다. 수영은 월명의 집 옆에다 집을 지었습니다. 이미 월명과의 관계를 어찌 알았는지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함께 도왔습니다. 수영은 이곳에서 생활을 하며 행상을 시작하였습니다.


수영은 5~6년간 파발 업무를 맡아 일했기 때문에 전국 어느 곳에 무엇이 많이 나고 어디서 그런 물건이 비싸게 팔리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수영은 전국으로 다녔기 때문에 어느 때엔 열흘간 집을 비우는 때도 있었습니다. 함양으로 돌아왔을 때엔 늘 월명과 함께 했습니다.


전국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다 보니 계절과 지역의 특성을 잘 파악해 장사 물품을 정해야 했습니다. 수영에겐 그런 안목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나자 수영에겐 많은 돈이 모였습니다. 수영은 이제 월명에게 청혼을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월명도, 월명의 아버지도, 또한 마을 사람들도 공통으로 그렇게 느꼈는지 이젠 살림을 합치라는 얘기를 공공연히 하였습니다. 월명과 수영은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수영의 부모님은 너무 먼 거리여서 참석하지 못하였지만 함양으로 오는 도붓장수를 통해 축하한다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축하해주니 정말 행복하오.”

“우린 하늘이 맺어준 부부인가 봐요. 서로 좋아해도 반대하는 가족이나 가문의 어른들 때문에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요. 궁합이 맞지 않아 못하고, 예단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 결혼식을 앞두고 파혼하기도 하고.”

“서로 잘 사귀다가 싸움 한 번 한 걸 제대로 수습하지 못해서 헤어지기도 하지요.”

“그러고 보면 우린 천생연분이구료. 하하하하.”

“그래요. 하하하하.”


월명과 수영은 밤늦도록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신혼 첫날밤을 보냈습니다. 이들의 첫날밤을 밖에서 지켜보던 마을 아주머니들은 이제나저제나 신랑이 신부의 옷을 벗기는 모습을 보고자 기다렸는데 계속 이야기만 나누는 모습을 보곤 길게 하품을 하며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수영은 결혼 후엔 한동안 장인의 짚신을 짜고 가마니를 만드는 등 일을 도우며 월명과 함께 지냈습니다. 월명도 열흘간 역참일을 쉬었습니다. 하루하루 월명과 수영의 집에선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무뚝뚝했던 수영의 장인도 사위와 함께 일을 하면서 늘 즐거워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집앞을 지날 때마다 어허, 이 집에 깨가 한도 끝도 없이 쏟아지네그려 하면서 부러워했습니다.


그렇게 아흐레가 지났습니다. 내일이면 월명은 역참으로 출근을 하고 수영은 다시 전국을 다니며 행상을 떠날 것입니다. 아흐렛날 오후가 되자 두 사람은 서로 보면서 이러한 생활이 더 지속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나누었습니다.


“잠깐 잠깐 떨어져 살다 보면 우리의 사랑이 더 깊어질 수도 있을 거요. 너무 아쉬워 말아요.”

“그렇겠지요. 당신을 기다리는 것도 즐거움일 수 있을 거예요.”

“행상을 다녀올 때마다 당신에게 선물을 사오리다.”


서로 그렇게 말은 했지만 잠시라도 떨어져 산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았습니다. 짧게는 사흘 정도이지만 원행을 떠날 때엔 열흘이 넘게 걸리기도 하니까요. 수영은 월명의 손을 꼭 잡은 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조만간 행상을 접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보게, 수영이! 오랜만일세. 결혼했다면서? 늦게라도 축하하네.”


수영이 파발 관원 일을 할 때 알게 된 도붓장수 득수가 어스름녘에 찾아왔습니다.


“이런! 득수가 아닌가? 이게 몇 년 만이야? 함양엔 어쩐 일로?”

“경주에 갔다가 자네 집에 들렀지. 그런데 아버님이 자네에게 전해주라며 편지를 주더군. 마침 나도 거창에 일도 있고 해서 가는 길에 이렇게 온 거라네.”


수영은 편지를 건네받고 펼쳐보았습니다. 편지를 읽던 수영의 얼굴이 일순 잿빛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계속)


[관련기사]


(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1)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새롭게 전설텔링이 시작되었습니다. 1편을 쓴 뒤에 현장을 찾았는데... 기록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더군요. 이번에도 현장을 찾느라 좀 고생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첫 작품이었던 '우곡각자' 바위보다야 훨씬 고생이 덜했고, 신동대굴이나, 속씻개굴, 일명 이순신굴을 찾을 때보다도 조금 고생은 덜했지요. '우리서방님 못보셨나요' 전설텔링처럼 열녀의 이야기라 좀 재미가 덜하긴 한데... 몇 가지 장치를 넣어 약간 색다르게 꾸며보도록 하지요. ^^ 


(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1)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수지봉 월명총에 얽힌 전설


월명총은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월명마을 뒷산에 있습니다. 그 산을 월명총이 있다 하여 월명산이라고도 하는데 다른 이름으론 수지봉이라고 부릅니다. 수지산이라고도 하고요. 이 산봉우리에 월명총이 있습니다.


월명이란 여인은 사근역참에서 일하는 역녀였는데 그 신분이 천민은 아니었습니다. 평민이면서도 천한 일을 하였던 거지요. 그래서 역노비와는 신분 상 차이가 있었답니다. 월명의 이웃에 경주 출신의 행상을 하는 총각이 있었는데, 이는 키가 크고 얼굴도 잘생겼고 마음씨도 좋아 동네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이 총각은 행상을 하며 살았습니다. 경주가 고향이긴 하지만 여기서 열심히 살다 보니 고향도 까맣게 잊은 채 생활했다는군요. 월명과 그렇게 이웃으로 살다 보니 자연히 눈도 자주 마주치고 스스럼없이 만나다 보니 자연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던 거지요.


둘은 서로를 잘 이해해주었습니다. 서로 위하는 마음이 너무나 간절했기에 이웃사람들의 권고로 혼례를 하고 신혼살림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깨가 쏟아지는 신혼생활을 이어가던 중 경주에서 경주인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게 됩니다.


경주로 함께 가려니 너무 먼 거리여서 경주인은 아내 월명을 남겨두고 곧 돌아오겠다고 하고 혼자 떠납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하지만 곧 돌아오겠다던 남편은 소식이 없습니다. 그러다 월명은 몸져눕게 되고 결국은 정신마저 이상해지면서 숨을 거두고 맙니다.


경주인은 아내가 죽은 지 까맣게 몰랐지요. 어서 어머니 병환이 완쾌되어 아내에게 달려가고 싶지만 차도가 없는 어머니의 병세에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머니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맙니다.


어머니의 사망은 경주인으로선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한편으론 아내에게 달려갈 수 있는 상황이 되기도 해 장사를 치르고 함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경주인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에 몇날 며칠을 월명의 무덤에서 슬퍼하다가 끝내 죽고 맙니다.


마을 사람들은 월명과 그의 남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월명과 나란히 무덤을 만들어주었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다 숨진 월명의 무덤을 월명총이라고 이름을 지어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가슴이 짠해지는 전설입니다. 사랑과 그리움, 기다림의 심리적 정서가 오롯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사랑하고 떠나고 그리워하고 기다리다 이승을 하직하는 안타까운 사연은 우리 전설에 흔히 등장하는 유형입니다.


근본 맥락은 어찌 바꿀 수는 없지만 여러 정황을 이야기 곳곳에 장치해 조금 새롭게 이야기를 꾸며보겠습니다. 월명의 남편, 경주인. 이름을 뭘로 지으면 좋을까요? 월명, 달이 밝으니 물이 품은 달그림자란 의미로 수영이라고 지으면 어떨까요? 시기는 조선 초기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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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달로 접어들면서 밤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습니다. 이런 날이 며칠 계속 되자 역참을 찾는 이도 일찍 마방에 말을 맡기고 객점으로 향했습니다. 월명은 역리들이 실무를 보는 작청 앞에서 양 소매에 손을 파묻은 채 떨어지는 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거라. 더는 길손이 오지 않겠구나.”


월명은 고개를 돌렸습니다. 작청 사무실에서 김 역장이 문을 열고 나오며 추위에 떨고 있는 월명을 측은한 듯 보며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역장나리. 그래도 혹시 늦게 말을 몰아 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는데 유시 반각(오후 6)까지는 기다렸다가 퇴근하겠습니다요. 나머지 일은 제게 맡기시고 나리께선 먼저 퇴청하시지요.”

“원 녀석도. 그럼 밖에서 이러고 있지 말고 사무실에 들어가 있으려무나. 요즘은 유시 정각만 되어도 어두워지기 시작하던데 일없으면 일찍 퇴청하거라.”

“예, 나리.”


월명은 김 역장의 등에다 꾸벅 절을 하고 작청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정말 요즘은 유시 정각 이후 역무가 있는 날이 별로 없었습니다. 추위 때문에 문서를 나르는 관원들도 무리하지 않고 적당한 시간이 되면 역참에 말을 맡기고 주막에 가서 술로 몸을 녹이거나 일찌감치 객점에 들어가 따뜻한 봉놋방에서 몸을 녹이곤 하였습니다.


얼추 유시 반각이 되었지 싶은지 월명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사무실 문단속을 하고 마방으로 갔습니다. 행랑채로 들어가려던 역노 막득이가 아는 체를 하였습니다.


“아직 퇴청 안 하셨수? 요샌 해가 일찍 떨어지니까 유시도 안 돼 죄다 퇴청하던데.”

“응. 혹시나 싶어서요.”

“다른 사람들처럼 대충대충 일하슈. 알아주는 것도 아니구. 허허.”


막득은 월명보다 대여섯 살 많지만 천한 노비 신분이라 평민인 월명에게 함부로 말하진 않았습니다. 월명 역시 아무리 역노라지만 나이가 한참 위인 사내에게 말을 함부로 놓을 수 없다고 여겨 위해주었습니다.


“다다다다….”


월명이 역참문을 닫고 돌아서려는데 급한 말발굽소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습니다.


“히히히힝~!”


말은 월명이 서 있는 곳까지 다다르더니 앞발을 들고 몸을 세웠습니다. 그 순간 말에 타고 있던 관원이 땅바닥으로 쿵하고 떨어졌습니다.


“아얏!”

“이봐욧! 어서피해요!”





월명도 다급했습니다. 말이 너무 흥분했는지 날뛰면서 관원을 밟으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월명의 고함을 들은 관원은 재빨리 몸을 굴려 간발의 차이로 말의 발굽을 피했습니다.


“워~, . , 착하지.”


월명은 고삐를 잡고 말을 진정시켰습니다. 신기하게도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흥분된 말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를 정도였는데 월명의 목소리에 말은 금세 얌전해졌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관원이 놀란 듯 월명을 쳐다보았습니다.


“아가씨, 말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구료.”


관원이 모자를 벗어 흙 묻은 옷을 툭툭 털면서 말했습니다.


“어디 다치진 않으셨어요?”

“아, . 괜찮아요. 이 정돈 늘 겪는 일이라. 하하.”


관원은 겸연쩍게 웃었습니다. 그 순간 월명은 관원의 순수한 웃음이 무척 귀엽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 속에서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 뭐지? 이 느낌. 갑자기 얼굴도 확 달아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이 관원, 아주 잘 생겼다. 키도 헌칠하네. 말씨도 부드럽고 포근하다.’ 월명은 넋이 나간 듯하였습니다. 월명이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는데 관원이 밝은 표정으로 말을 꺼냈습니다.


“저기 아가씨, 역참 문 닫은 건 아니죠? 사근역 마치기 전에 도착하려고 100리를 숨도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봐주시죠. 헤헤.”


월명은 관원이 가까이 다가오자 얼른 몸을 돌려 역참 문을 열었습니다. 관원이 말고삐를 잡고 바로 등에 바짝 붙어 뒤따라오는 것 같았습니다. 월명은 빠른 걸음으로 마방을 향해 걸었습니다. ‘따그닥 따그닥.’ 뒤따르던 관원은 갑자기 앞의 아가씨가 빠른 걸음으로 걷자 서둘러 따라붙었습니다.


월명은 마방에 말을 넣고 콩과 겨, 여물을 섞어 쑤어 만든 말죽을 주었습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말은 게걸스레 먹었습니다. 월명은 말의 목등을 톡톡 두드려주고 관원과 함께 마방을 나왔습니다.


“아가씨, 퇴근길인데 이렇게 폐를 끼쳐 미안하오. 고맙소.”

“괜찮습니다.”

“말과 함께 100리를 달렸더니 나도 몹시 시장하구려. 근처에 국밥 잘하는 데 있으면 소개 부탁하오.”

“네, 바로 앞에 괜찮은 국밥집이 있어요. 따라오세요.”


국밥집 앞에서 관원이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습니다.


“저, 식사를 대접했으면 하는데 저녁 식사 전이면 함께 하시죠?”


월명은 말을 타고 온 수많은 외지 관원들이 툭하면 같이 밥을 먹자거나 함께 길을 걸으며 이 고을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거나 하는 일이 많아 이런 류의 발언에 어찌 대응할지 훤했지만 이 관원에 대해서만은 왠지 거부하기 싫었습니다.


“네.”


국밥집 안으로 들어서자 아주머니가 웬일이냐 하는 눈으로 월명에게 다가왔습니다.


“이 관원도 외지에서 말을 몰고 온 것 같은데 웬일리래? 천하에 고고한 월명이 관원과 함께 밥을 다 먹고? 호호호.”

“아주머니,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냥 오늘따라 너무 배가 고파서 따라왔어요.”


관원이 그제야 마주앉아 있는 아가씨의 이름이 월명이라는 것을 듣고는 아직 통성명도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가씨 이름이 월명이군요. 저는 수영이라고 해요. 이수영. 경주가 고향이에요. 경주부 관헌에서 말단 관원으로 일하고 있지요.”

“네. 전 오월명…. 역녀로 일한 지 3년이 되었네요.”


수영도 함께 국밥을 먹으면서 월명에 대해 호감을 느꼈습니다. 음식을 먹는 모습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수영은 숟가락을 뜨다 말고 멍하니 월명의 모습을 바라보기도 하였습니다. 월명이 무슨 일인가 하고 수영을 쳐다보면 얼른 밥숟가락을 움직였습니다. 두 사람은 그날 늦게까지 함께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이 객점에서 주무셔요.”

“네, 오늘 정말 고맙소.”

“내일 나주까지 가려면 아침 일찍 나서야 할 거예요. 출근하면서 깨우러 올게요. 편히 주무세요.”


월명은 수영이 객점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자리에 누웠어도 그의 얼굴이 눈앞을 어른거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입니다. 월명의 나이 열여덟. 전국에서 오가는 뭇 사내들과 대화를 나누고 연화산 아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슴 설레는 남정네가 없었는데 수영만은 달랐습니다. ‘사랑이란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다음날 아침 월명은 일찍 일어났습니다. 역참으로 가는 길에 객점에 들러 수영을 깨웠습니다. 함양에서 나주까지는 경주에서 함양까지 왔던 거리만큼 가야 하기 때문에 일찍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사근역에도 늘 500리를 반나절에 달릴 정도의 상등마가 서너 필 대기하고 있긴 하지만 하급관원에게 지급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중등마인데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역리가 판단하는 거여서 월명이 마음대로 수영에게 중등마를 내어줄 수가 없는 게 괜히 속상했습니다.


월명은 수영과 함께 역참으로 갔습니다. 김 역장이 일찍 출근해 있었습니다. 월명이 인사를 하고 수영을 소개하였습니다. 어제 늦게 당도한 경주부 관원이라고. 오늘 나주까지 가야하는데 중등마를 내어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을 했습니다. 말을 내어주는 일은 역리가 어느 정도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어서 월명이 말을 꺼냈던 것입니다.


김 역참은 한 번도 남에게 부탁 같은 것을 하지 않던 월명이라 좀 놀랐습니다. 경주부사의 편지를 나주목사에게 전하는 내용이라 크게 급하거나 중대한 사안이 아니지만 하등마를 타고 가면 나주에 도착하기 전에 모든 업무가 끝나는 유시 반각을 넘길 게 뻔했기에 김 역장은 월명의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잘 되었습니다. 중등마를 타고 가시면 시간 안에 도착할 거예요.”

“고맙소. 이 은혜를 잊지 않으리다.”


그렇게 수영은 아침 일찍 나주로 말을 몰고 떠났습니다. 월명의 가슴은 갑자기 휑해졌습니다. 애써 태연한 척하였지만 김 역장의 눈은 속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내를 마음에 품었느냐?”

“…. 몰라요.”


월명은 마방이 있는 쪽으로 달렸습니다.


“허허허. 그 녀석.”


월명은 며칠 사람들이 타지 않아 운동이 필요했던 하등마 하나를 꺼내 올라탔습니다. 그리고는 들판을 마구 달렸습니다. 하등마라도 월명이 조련을 하면 중등마 못지않았습니다. 찬바람이 얼굴을 세게 때렸습니다. 월명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남강변을 한참 달리다가는 고삐를 놓고 팔을 벌린 채 달리기도 하였습니다. ‘또 볼 수 있을까?’


그랬습니다. 수영에게 마음이 빼앗겼지만 다시 언제 그를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헤어지면서 머뭇머뭇 다시 보자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보내버렸던 것입니다. 그냥 운명에 맡긴다는 마음이었지만 한참 후에야 이걸로 마지막이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불같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오후 유시 반각 시각에 맞춰 퇴청을 준비하고 있는데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늦은 시각에 또 누가?’ 하고 밖으로 나가니 수영이 말에서 내리고 있었습니다. 월명은 너무 반가워 뛰어가서 그의 품에 안기는 상상을 했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잘 있었어요? 오늘 또 여기서 하루를 묵게 되네요. 너무 늦은 건 아니죠?”

“아녜요. 말고삐 이리 주세요.”


월명이 수영에게서 말고삐를 받으려는 순간 수영이 월명을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전설텔링)효자 이평과 무량산 호랑이(마지막편)

고성 대가면 유흥리 실존인물인 효자 이평에 얽힌 전설


(지난줄거리) 아버지의 병환이 심해지자 이평은 직접 대변을 확인하면서까지 극진히 부친간호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정성에도 아버지는 세상을 하직하고 이윽고 갑자기 몸이 쇠약해진 어머니마저 병환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납니다.


부친에 이어 모친까지 연이어 돌아가시자 이평은 자신의 효가 부족하여 그렇다며 슬피 웁니다. 며칠째 산소에서 울다 결국 쓰러진 이평을 마을사람들이 데려와 간호를 합니다. 기력을 어느 정도 되찾은 이평은 부모님 산소에서 시묘살이를 하겠다고 합니다. 워낙 고집이 완강한 터라 마을 어르신들도 더는 말리지 못하고 묘 옆에 움막을 짓는데 도와줍니다.


이평의 소문이 자자해지자 함께 공부하던 이웃마을 아이들이 시샘을 합니다. 갑현이를 비롯한 아이들은 밤에 몰래 귀신으로 변복해 이평을 놀래킬 요량으로 산으로 들어서지만 짐승의 소리와 바람소리에 되레 겁을 먹고 줄행랑을 칩니다.


이평은 조만간 겨울이 닥치면 지하에 계신 부모님께서 추워하실까 염려되어 산소 주변에 석축을 쌓기 시작합니다. 가까이 있는 돌부터 차곡차곡 쌓아나갔지만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그래서 먼곳까지 가서 돌을 운반하려다 보니 금세 지쳐버립니다. 그렇게 2개월이 지났습니다.


추위가 닥쳤습니다. 하루는 밤늦도록 산소를 몸으로 감싸며 쓰다듬다가 이평은 피로에 지쳐 잠이 들고 맙니다. 몸에 성에가 내렸는데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평의 꿈에 부모님이 나타납니다. 얼굴만 보고 돌아가는 부모님을 가지 말라고 부릅니다.


이평을 감싸고 있던 호랑이는 이평이 신음소리를 내자 흔들어 깨웁니다. 이평은 깜짝 놀라지만 호랑이가 자신을 잡아먹지 않은 데다 사람의 말까지 하자 이것 역시 꿈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꿈이라고 생각하니 호랑이가 그렇게 두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평은 호랑이와 농담도 주고받으며 하룻밤을 보냅니다.


………………………………………………………….


이평의 이야기를 쭉 들은 호랑이는 이평이 괜찮은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느 인간들은 배은망덕하고 욕심에 눈이 멀어 이웃을 해하고 부모형제마저 배신하기를 죽먹듯 한다는데 이평이라는 이 아이는 전혀 그런 사욕이 없으며 부모님을 극진히 모셨으며 돌아가신 후에도 이렇게 3년 동안이나 시묘살이를 하겠다니 이처럼 가상한 아이가 어디 있겠냐 싶었습니다. 이평도 호랑이의 사연을 듣고 싶었습니다.


“내가 태어난 곳은 백두산이야. 이땅에서 가장 높은 곳이지. 내 형제는 모두 여섯인데, 제일 맏형은 낭림산맥에 살고, 둘째는 함경산맥, 셋째는 마천령, 넷째인 나는 태백산맥, 다섯째는 소백산맥, 막내는 묘향산맥에 살아. 매년 첫 호랑이날에 우리가족은 백두산에 모여 함께 지내지.”

“그럼 섣달그믐께나 여길 떠나야겠구나. 여기 온지 얼마나 됐는데?”

“지난 가을에 무량산에 왔어. 온지 얼마 안 되어 너의 울음소리를 듣고 부모님이 돌아가셨구나 알게 되었지. 너 참 서럽게 울더라.”

“그랬구나.”

“백두산으로 돌아가기 전까진 네 부모님 산소 가에 석축을 쌓는 일 도와주고 싶은데, 같이 할까?”

“그렇게 해주면 나야 좋지!”


이평은 기분이 좋아 호랑이의 목을 끌어안았습니다. 털이 부드럽고 따뜻했습니다. 보름달이 서쪽 들판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서당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의 소리가 시끌벅적해졌습니다. 오늘은 훈장선생님이 이평의 이야기를 화두삼아 꺼낸 것이 논쟁으로까지 번졌습니다.


“갑현아, 넌 평이한테 무슨 감정이 있는 거니? 가서 확인해본 것도 아니면서 너무 심한 말을 한 거 아냐?”


시형은 수업시간 때 갑현이가 이평에 대해서 거짓효자라고 한 것에 대해 친구들 앞에 사과하라고 계속 주장했습니다. 갑현이의 친구들은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두둔하고 나서는 바람에 논쟁이 격해졌는데, 훈장이 그 논쟁을 중단시키지 않았다면 싸움까지 벌어졌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런 그들이었기에 수업이 끝나자 다시 말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우린 한 마을에 살기 때문에 평이가 어떤 아이인지 너희들보다 훨씬 더 잘 안다. 그런데, 너희들은 평이를 얼마나 알고 있기에 가짜 시묘살이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냐? 평이가 시묘살이하는 곳에 가보기나 하고 그런 말 하는 것이냐?”


시형이 갑현에게 쏘아붙였습니다.


“너희들은 평이 말만 믿고 객관적으로 현실을 볼 줄 모르는구나. 생각을 해봐라. 이 겨울에 산에 어떻게 혼자 지낼 수가 있으며, 산짐승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조그만 움막에서 혼자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참 어리석기는.”

“그래, 니 말대로 평이가 시묘살이를 하지 않는다고 치자. 벌써 두 달째 양식이 떨어졌을 때 말고는 마을에 내려온 적이 없는데, 그러면 평이가 어디서 잔다는 말이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어디 자는 데가 있겠지. 아니면 너희들 몰래 집에 와서 새벽에 다시 산으로 돌아가든가.”

“그걸 말이라고 하니? 평이가 그럴 이유가 없잖아. 하루 이틀 집에서 잔다고 해서 죄가 되는 것도 아닌데 몰래 숨어서 자고 갈 이유가 없는데 왜 그렇게 억지만 부려?”

“좋다. 그러면 지금 당장 평이가 시묘살이 하는 곳으로 함께 가보자.”


갑현이는 평이가 효자라고 온동네 소문난 것에 시샘이 나서 거짓효자라고 억지주장을 하고 짐작한 것을 사실처럼 밀어붙인 거였습니다. 그게 먹혀들지 않자 시묘살이 현장을 함께 확인하러 가자고 말해버린 것인데 평이가 시묘살이를 하고 있을 게 뻔하여서 괜히 말했나 후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 내뱉은 말이어서 주워 담을 수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이평이 시묘살이를 하고 있는 산으로 향했습니다. 한편, 이평과 호랑이는 무량산 계곡에서 반듯한 돌을 고르느라 여기저기 헤매듯 다녔습니다. ‘심봤다!’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물론 이 소리는 이평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겐 ‘어흥!’ 하는 소리로 들렸을 겁니다. 이평은 호랑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야, 멋진 돌이네!”

“아직 감탄하긴 일러. 이보다 더 멋진 돌들을 계속 찾아낼 테니까!”


이평은 돌을 큰 주머니에 넣어 호랑이 등에 걸쳤습니다. 이평도 괜찮은 돌 몇 개를 주워 지게에 얹었습니다. 어느 정도 모양 있게 석축을 쌓으려면 하루에 몇 번을 왔다 갔다 해야 하기 때문에 이평과 호랑이는 서둘러 시묘 움막으로 향했습니다. 호랑이가 한참 앞서 걸어갔습니다. 이때 아이들은 움막에 다다랐습니다.


“평아, 우리 왔다!”


이평과 가장 친한 친구인 시형이가 큰소리로 불렀습니다. 아이들이 움막 가까이 다가갔는 데도 이평의 인기척은 나지 않았습니다. 시형은 이상하다 생각하고 움막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평의 부모님 산소 뒤 석축만 쌓다 만 채로 있어 썰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봐라, 내가 뭐랬어! 3년 시묘살이? ! 아마 3일 시묘살이하고 어디로 내뺐을 거야, 분명히!”


갑현이가 시형이와 아이들에게 거드름피우듯 턱을 까딱까딱하며 큰소리를 쳤습니다.


“혹시 무서운 산짐승에게 물려간 것은 아닐까?”


시형은 덜컥 걱정이 되었습니다. 시형이는 묘소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며 이평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이평의 모습이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시형과 아이들이 이평에게 잘못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걱정을 하며 여기저기 찾아다니고 있는 사이에 갑현은 자신을 따르는 아이들과 함께 움막에 불을 질렀습니다. 시형이 ‘불?’ 하는 불길한 느낌이 들자마자 움막 쪽을 반사적으로 돌아보았습니다.


“갑현이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주인도 없는 움막, 놔두면 뭐할 건데?”

“너, 정말 천벌을 받는다!”


시형과 친구들은 급한 대로 주변의 흙을 긁어모아 움막에 뿌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움막은 대부분 짚과 대나무로 되어 있어서 활활 급속히 타올랐습니다. 뿌연 연기가 온 산에 퍼졌습니다. 이평을 앞서가던 호랑이가 능선에서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움막 쪽에서 뭔가 타는 냄새가 났기 때문입니다.


“움막이 타는 것 같은데?”

“설마, 움막이 저 혼자 저절로 탈 리가 없잖아.”

“이 냄새는 분명히 네 움막 쪽에서 나는 거야. 무슨 일이 생긴 것 같군. 일단 내가 어서 가서 불을 꺼야겠어.”


호랑이는 그렇게 말하고 빠른 속도로 뛰었습니다. 호랑이 등에서 돌주머니가 벗겨져 계곡 아래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호랑이는 더욱 빠른 속도로 달렸습니다. 움막이 불에 타는 것을 본 시형은 얼른 되돌아와 불을 끄려했지만 물도 없고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너희들 정말 너무하는구나. 평이가 이곳에 안 보이면 여기저기 찾아볼 생각은 않고 걔가 사는 집을 불태워버리다니. 너희들이 그러고도 사람이냐?”

“뭐야? 이 놈이! 똑똑히 봐. 네놈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이평이 여기에 없다는 것을! 하하하! 거짓효자, 맞지? 그 녀석 분명히 산짐승이 무서워 어디선가 숨어 지내는 게 틀림없어! 하하하!”


크르르렁. 그때 산소 위쪽에서 커다란 호랑이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이들은 갑현이 등 뒤로 호랑이가 서서히 걸어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와들와들 떨었습니다. 그러나 갑현이는 움막이 불에 타는 소리와 자신이 큰소리로 떠드는 소리 때문에 등 뒤의 인기척은 전혀 알지 못하고 그저 아이들이 자신의 말에 주눅이 들어 공포에 질린 모습을 하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갑현은 더욱 큰소리로 거드름을 피웠습니다.


“앞으로 말이야, 내 말이라면 콩을 팥이라고 해도 믿어야 해. ! 알겠지?”


갑현이 계속 말을 하려는데 아이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살금살금 뒷걸음을 쳐서 산 아래쪽으로 내려가더니 몸을 홱 돌려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뛰어 내려갔습니다. 갑현은 그제야 얘들이 왜 저래 하는 얼굴을 하고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크르르렁! 갑현의 눈과 호랑이의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갑현은 그 자리에서 벗어버린 옷처럼 바닥에 널브러져버렸습니다.


한참 후에 갑현이 눈을 떴습니다. 이평이 맞은편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이평은 이미 그 호랑이 밥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정신이 좀 들어?”

“여기가 저승 맞지? , 호랑이에게 언제 물려 죽은 거냐?”

“하하하하!”


이평은 갑현의 엉뚱한 소리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무슨 소리야? 넌 살아있어. 나도 살아있고. 세게 꼬집어줄까?”


이평은 갑현의 뺨을 살짝 꼬집었습니다.


“아얏!”


갑현은 한참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호랑이를 바로 코앞에서 만났는데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뿐더러 호랑이가 있던 곳인데 이평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자신을 간호하고 있으니 말예요.


“호, 호랑이는?”

“무슨 호랑이 말이냐? ~! 덩치 큰 백두산 호랑이 말이지? 니 뒤에 있는 저거 말야?”


무슨 농담이냐 싶으면서도 갑현의 고개는 자연스레 뒤로 돌아갔습니다. 으악! 갑현은 그 자리에서 다시 혼절하고 말았습니다. 용감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이렇게 간이 적은 애였나 하며 이평은 갑현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갑현이 겨우 다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앞에는 호랑이와 이평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갑현은 호랑이가 계속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어서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습니다.


“야, 손갑현! 내 움막 니가 저리 만들었으니 니가 다시 지어줄 거지? 이 호랑이 친구가 널 계속 지켜보겠다는데?”

“무, 무울론이야. 내가 태웠으니 내가 지어야지. 근데, 저 호랑이 사람 잡아먹지 않니?”

“사람 안 잡아먹는 호랑이 본 적 있니? 너는 덩치도 크고 맛있게 생겼다는데…. (그러면서 호랑이를 쳐다보며) 그렇지, 호랑아?”


이평의 말에 맞장구를 치듯 호랑이는 ‘어흥’ 소리를 한 번 내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제발 용서해줘. 두 번 다신 널 미워하지 않을게. 저 호랑이에게 난 정말 맛이 없다고 말해줘. 제발 부탁이야, 평아!”


갑현은 정말 호랑이에게 물려 자기가 죽는다고 여겼는지 눈물을 펑펑 쏟아냈습니다. 이평은 속으로 한참 웃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갑현은 이평과 함께 움막을 새로 지었습니다. 갑현은 이평이 자신을 용서해준 걸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둘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갑현은 종종 음식을 어머니께 차려달라고 해서 이평에게 갖다주었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이평이 시묘살이 하는 곳을 종종 찾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두 호랑이와도 친구가 되었습니다.


묘소 주변 석축을 쌓는 일에는 호랑이를 비롯한 이평의 모든 친구들이 힘을 모았습니다. 모두 힘을 합치니 이평 부모님 묘소 석축은 추운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완성되었고 이평은 3년 시묘살이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시묘살이가 끝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평은 과거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밤늦도록 공부를 하고서야 늦게 잠이 들었는데, 꿈자리가 편안하지 못했습니다. 얼마전 백두산 가기 전에 통영엘 다녀오겠다는 호랑이가 꿈에 나타난 것입니다.





“아흐헝! 평아, 날 좀 구해줘. 함정에 빠졌는데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네. 조금 있으면 사냥꾼들이 몰려올 텐데, 큰일이야! 어서 서둘러줘!”


이평은 잠을 깨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꿈이라기엔 너무나 생생하였습니다. 꼭 옆에서 호랑이가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인시도 되지 않은 시각이었지만 이평은 역참 관리원이 된 시형을 찾아갔습니다. 그 역참에는 서른 마리가 넘는 역마를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이평의 이야기를 들은 시형은 자신이 관리하는 말 중에서 가장 빠르고 튼튼한 말을 마구간에서 데리고 나왔습니다. 잘생긴 백마입니다.


“고마워.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친구의 부탁을 거절 않고 들어줘서.”

“무슨 말인가? 친구 사이에.”


이평은 삼년상을 하는 동안 혼자 글공부만 하였기에 말을 탈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시형은 역참 관리가 된 후 온갖 말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느 역졸들보다 기마법도 뛰어났습니다. 시형이 먼저 말 등에 올라타고 이평은 그의 뒤에 올라탔습니다.


“이럇!”


따그닥따그닥. 말발굽소리가 경쾌합니다. 반시진도 못되어 호랑이가 함정에 빠진 통영 관문에 도착하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횃불을 켜고 몰려있습니다. 이평은 순간적으로 호랑이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여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시형아, 저기야. 서둘러!”


시형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을 급히 말을 달렸습니다.


“잠깐 멈추시오!”


도착하자마자 말에서 뛰어내린 이평이 사람들에게 달려가면서 말했습니다. 포수들은 금방 총을 쏘려던 자세를 풀고 이평을 향해 돌아보았습니다. 함정 속에는 무량산 호랑이가 불안한 표정으로 밖을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이평은 호랑이에게 안심하라는 듯 신호를 하고 포수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그 총 내려놓으시오. 그 호랑이는 사람을 해치는 짐승이 아니오. 내 오랜 친구요.”


사람이 호랑이와 친구라니? 포수들은 갑자기 나타난 젊은이가 하는 소리를 믿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저 함정 속으로 뛰어 들어가면 내 말을 믿어주겠소?”

“젊은이, 괜히 만용을 부려 생목숨 버릴 생각이오?”

“아니오, 저 호랑이는 내가 3년 부모님 묘소 시묘살이 하는 동안 줄곧 나와 함께 있었던 오랜 지기라오.”

“그러면 들어가 보시오. 만약 그게 확인되면 호랑이를 살려주겠소.”


이평은 함정 속으로 뛰어내렸습니다. 포수들은 젊은이와 호랑이가 끌어안고 반가워하는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정말이군. 감동이오. 호랑이가 당신과 함께 시묘살이를 했다하니 이는 보통 영물이 아닌 듯하오. 여기 통나무를 내려드릴 테니 호랑이와 함께 빠져나오도록 하시오.”


통나무를 내려준 포수들은 돌아갔습니다. 이평과 호랑이가 밖으로 나오자 시형도 반가워하였습니다. 이평과 호랑이는 다시 깊은 포옹을 하였습니다.


“잘되었네. 잘되었어!”


시형은 말에 올랐습니다. 이평은 호랑이의 등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는 통영을 벗어나 고성 바닷가를 힘차게 달렸습니다. 멀리 수평선 위로 아침해가 발갛게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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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효자 이평과 무량산 호랑이(1)

(전설텔링)효자 이평과 무량산 호랑이(2)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전설텔링)효자 이평과 무량산 호랑이(2)

고성 대가면 유흥리 실존인물인 효자 이평에 얽힌 전설


(전편 줄거리)어린 이평은 어머니께서 건강하지 않자 아버지 병구완을 도맡다시피 하면서도 전혀 불평이 없고 오히려 보통 사람은 하기 어려운, 대변의 맛을 보면서까지 부친의 건강 상태를 확인합니다. 얼마나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면 그런 행동까지 서슴없이 할까요?


하지만, 이평의 그런 노력에도 아랑곳없이 아버지는 병환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슬픔에 잠긴 이평은 매일같이 아버지 산소를 찾아 정성스레 성묘를 합니다. 설상가상이라고 했던가요? 아버지의 별세에 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마저 세상과 하직을 하게 됩니다.


졸지에 양친 부모 모두를 잃은 이평은 묘소 앞에서 며칠째 음식도 먹지 않고 곡을 합니다. 이평은 부모님의 돌아가신 것이 제대로 효를 다하지 않은 자신 탓이라고 여깁니다. 마을 사람들은 산에서 들려오는 이평의 그치지 않는 곡소리에 안타까워 합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에도 이평의 곡은 끊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또 며칠. 비가 그치고 산으로 달려간 마을 사람들의 이평이 지쳐 쓰러진 모습을 발견합니다. 마음씨 좋은 이웃들은 이평을 데리고 내려와 극진히 간호합니다.


이웃의 보살핌으로 기운을 차린 이평은 다시 공부를 시작하라는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3년 시묘살이를 하겠다고 말을 합니다. 시묘살이라는 게 묘소 옆에 움막을 짓고 산소를 보살피는 생활을 일컫는 말입니다.


…………………………………………………………………………………………


어린 이평이 부모님 무덤가에서 3년간 시묘살이를 하겠다고 완강하게 나오자 마을 사람들도 더는 말리지 않았습니다. 벌써 그러한 고집을 확인했던 터라 그렇게 말린다고 포기할 이평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평이 부모님 묘소 옆에 움막을 짓는 일에는 마을 아저씨들이 도와주었습니다. 친구들도 볏짚을 날라주었습니다. 시형이라는 서당 친구가 새끼를 꼬는 이평에게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다가왔습니다.


“평아, 얼마 있지 않으면 추운 겨울이 올 것인데, 게다가 한밤중엔 호랑이가 나온다고 하니 니가 자칫 잘못될까 봐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내 걱정은 하지마. 너무 힘이 들면 마을로 내려갈게.”

“그래, 꼭 그렇게 해야 해.”


이평과 시형은 손가락을 걸었습니다. 어느덧 움막이 완성되었습니다. 이어 마을 아저씨들은 움막 바로 옆에 음식을 할 수 있도록 야외화덕도 만들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시묘에 필요한 모든 시설을 다 지었지만 이평은 첫날을 마을에 내려가 보냈습니다.


한동안 얼굴 보기 어려울 것 같아 친구들이 이평의 집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평과 친구들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밤을 보냈습니다. 이튿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이평이 옷가지와 서책을 몇 권 챙겨 집을 나섰습니다. 친구들이 환송해주었습니다.


서당에서는 이평을 두고 서당 동무들 간에 실랑이가 일기도 했습니다. 이평을 잘 아는 친구들은 어지간해선 이평이 3년 시묘살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고 다른 동무들은 산에는 범도 많고 무시무시한 다른 짐승들도 많아 한 달도 못 견뎌 집으로 내려올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런 친구들의 실랑이를 알 리 없는 이평은 지극정성으로 밥을 지어 부모님의 산소에 아침, 점심, 저녁 공양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습니다. 쌀이 떨어져 이평이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평의 건강한 모습을 보고 안심했습니다.


“평아, 절대 끼니를 걸러서는 안 된다. 니가 건강해야 시묘살이도 잘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밭일을 하던 덕만 아저씨가 맨 처음 산에서 내려오는 이평을 보고 말했습니다.


“네, 저도 이제 제가 건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평이 마을로 내려온 것을 본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반가운 표정으로 맞이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린 아이가 혼자 시묘살이하는 것을 대견해하였습니다. 이평과 한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평을 대단한 아이로 칭찬하고 친구들도 그런 이평을 자랑스러워 하는데 다른 마을에 사는 서당 동무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평이 잠시 마을로 내려왔다는 소문을 들은 이웃마을 서당동무들은 이평을 시기질투하였습니다. 그들의 생각대로라면, 이평이 산속 짐승 소리가 무서워 벌써 마을로 내려왔어야 정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웃으며 내려와서는 다시 시묘살이 준비를 하는 모습에 심통이 부풀어올랐습니다.


이평은 이웃마을에서도 어른들로부터 ‘효자’라는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그러한 어른들의 칭찬이 자기 아이들에게 오히려 이평을 시샘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희한한 일입니다. 이평이 사는 마을의 친구들도 그들의 부모님으로부터 효자 이평 이야기를 듣기는 매한가지입니다만 이웃마을 아이들과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이평을 자랑스러워했으니까요.


이평이 시묘살이 용품들을 챙겨 다시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이웃마을 아이들은 이평을 골려줄 요량으로 마을 공터에 모여 작당 모의를 하였습니다. 귀신처럼 하얀 천을 덮어쓰고 놀라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평이 겁을 먹고 두 번 다시 시묘살이한답시고 산에 올라가지 않을 것이란 계산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만면에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렇게 이평이 산에서 내려오면 겁쟁이라고 놀리면서 이쪽 서당 아이들 모두 같은 겁쟁이로 싸잡아 놀려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때? 우리 작전이 완벽하지? 자 이제 산으로 가자고!”


갑현이라는 아이가 심술궂은 말투로 다른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움찔하면서도 그의 뒤를 따라 초승달 그림자를 밟으며 산길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길가에 서 있는 키 큰 미루나무 그림자는 간혹 으스스 소리를 내면서 아이들의 그림자를 지우곤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들의 그림자 위로 흔들리는 미루나무 그림자를 두려운 표정으로 보았습니다. 도깨비인 듯 삼각형 얼굴에 하얀 눈이 감았다가 떴다가 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산길 입구에 다다랐습니다.


“크륵크륵.”


숲 속에서 걸걸한 짐승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앞장서서 걷던 갑현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도저히 더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간이 콩알만 해지고 심장이 얼음 위에 놓인 듯 와들와들 떨렸습니다. 갑현이는 은근히 바로 뒤따라오던 아이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을 했습니다.


“너, 밤눈 밝지? 앞장서! , 내가 어두운 데선 앞을 분간 못 해.”

“에이, 난 겁나는데!”

“겁쟁이, 이게 뭐가 겁난다고 그래? 바로 뒤따라 갈 테니까 앞장 서라구!”


갑현의 으름장에 마지못해 앞서 걷던 아이가 바람 때문에 바스락거린 나뭇잎소리에 놀라 뒤돌아 냅다 뛰었습니다. 그러자 갑현이도 지레 겁을 먹고 뒤따라 뛰고 그 뒤를 따라 영문도 모른 채 다른 아이들도 마을길로 부리나케 뛰었습니다.


“컹! , !”


덕만 아저씨 집의 백구가 잠결에 무슨 일인가 싶어 퍼뜩 일어나더니 초승달을 향해 마구 짖어댔습니다.


그 시각 이평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촛불을 켜고 서책을 읽고 있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움막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날씨가 이제 제법 쌀쌀해졌습니다. 서쪽 하늘에 초승달이 걸렸습니다. 별들도 까만 하늘에 보석을 박아놓은 것 같이 반짝였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아버지 어머니 무덤 가에 돌담을 쌓아야겠다. 겨울이 닥치면 얼마나 추우실까.”


이평은 주변의 돌들을 그러모아 무덤 주변으로 하나씩 돌을 얹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어색하던 손놀림이 이젠 제법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그 손을 보름달이 훤하게 비추었습니다. 이평은 이마에 흐른 땀을 손등으로 닦았습니다. 두어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평의 얼굴엔 제법 어른스러운 티가 났습니다.


무덤 주변엔 이제 돌담에 얹을 돌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죄다 끌어다 쌓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멀리서 돌을 옮겨야 하는데, 어린 이평으로선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게도 없이 무거운 돌을 들고 옮기려니 금세 몸이 피로해졌습니다. 내일 마을에 내려가 지게를 가져와서 돌을 날라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평은 부모님 산소를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춥더라도 조금만 참으세요. 내일은 바지게를 가져와 바람막이 돌담을 튼튼하게 쌓아드릴게요.”


너무 피곤했던 탓인지 이평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겨울 찬바람이 산소를 휘돌아 이평의 몸을 얼려놓고 지나갔습니다. 이평의 체온이 점점 내려갔습니다. 한식경이 지날 쯤엔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습니다. 그러면서 얼굴이며 머리카락이며 하얀 성애가 생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이평은 얼어 죽는가 봅니다. 지금까지 잘 버텨왔는데, 돌담을 쌓느라 너무 무리했나 봅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이평은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습니다. 몸이 따뜻했습니다. 눈을 뜨니 온산에 꽃향기가 가득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산소 주변에도 예쁜 꽃들이 즐비했습니다.


산소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다시 살아나신 거예요?”

“그래, 우리 아들 보고 싶어서 옥황상제께 부탁했더니 이렇게 세상으로 보내주셨구나.”

“정말 잘되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젠 저를 두고 가지 마세요.”

“그럴 수는 없단다. 잠시만 너를 보고 돌아가겠다고 상제님께 약속을 했단다. 이렇게 너를 다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구나.”

“안돼요, 가지 마세요. 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어머니!”





이평이 신음소리를 내자 호랑이는 이평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간신히 눈을 뜬 이평은 자신이 호랑이 품속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몸을 빼고 물러나 앉았습니다. 호랑이는 온화한 표정으로 이평을 보았습니다. 이평은 호랑이가 당장 자신을 잡아먹진 않을 것임을 눈치챘습니다.


“그런 몸으로 이 추운 겨울에 시묘살이한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정녕 모르고 하는 행동이냐?”


호랑이가 말을 하였습니다. 이평은 이것도 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꿈이 아니고서야 어찌 호랑이가 말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희한하게도 꿈이라고 여겨서 그런지 몰라도 호랑이가 별로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꿈이 아니라면 언제 호랑이와 말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싶어 이평도 호랑이에게 말을 붙였습니다.


“호랑아, 나 죽은 거 맞지? 내 영혼이 너와 이야기하는 거지?”

“아니, 넌 살아있어. 내가 다른 사람에겐 말을 못해도 너와는 얘기할 수 있지.”

“그것 참 이상하구나. 그러면 내가 호랑이 말을 하는 거니? 니가 사람 말을 하는 거니?”

“하하하! 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구나. 넌 사람이니 사람 말을 하고 난 호랑이니 호랑이 말을 하지.”


이평은 이 겨울 산속에서 호랑이가 자신을 잡아먹지 않은 것이 이상했습니다. 아무리 꿈이지만 그것도 난생 처음 보는 호랑이가 체온으로 얼어죽을 뻔한 자신을 살려낸 것이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꿈이겠거니 하고 볼을 살짝 꼬집었습니다.


“아얏!”


분명히 꿈은 아닐 텐데 어떻게 내가 이 무시무시한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도 않고 호랑이와 대화까지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꿈에서도 꼬집으면 아픔을 느낄 수 있는 모양이다 생각한 이평은 계속 호랑이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둘의 시각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호랑이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이평의 모습을 볼까요. 이평이 인간의 말을 호랑이에게 건네면 호랑이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어흥, 크르렁, 어흥, 어흥”하고 대답을 합니다. 그 말을 이평은 사람의 말로 알아들었던 것입니다.


“나를 잡아먹지 않고 왜 살려주는 거야?”

“피골이 상접한 널 잡아먹으면, 배나 부르겠어?”


호랑이는 농담을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이평에게 어린 나이에 이렇게 깊은 산속에서 부모님 묘소를 지킨다는 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칭찬하였습니다.


“그런 널 어떻게 잡아먹겠니? 너같은 효자를 잡아먹었다면 옥황상제님께서 그 벌로 다음 생에는 고양이로 태어나게 할지도 모르는데. 헤헤.”


호랑이와 이평은 큰소리로 웃었습니다. 보름달이 훤히 비친 무량산 자락에서 시작된 호랑이와 사람의 웃음소리가 겨울바람을 타고 마을로 퍼져나갔습니다.(다음주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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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효자 이평과 무량산 호랑이(1)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