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겨울 느낌 없는 조지 윈스턴의 겨울 콘서트
조지 윈스턴 겨울콘서트 팸플릿 스캔.
피아노 앞에 앉았다. 손가락은 피아노 건반 위를 아무 거리낌이 없이 뛰어논다. 음악을 모르긴 해도 제법 감동적인 연주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 그 넓은 무대를 혼자 쓰는 것만으로도 관객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조지 윈스턴의 여름밤 겨울 연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2008년 6월 24일 오후 7시 30분, 창원 성산아트홀 대극장. 그 넓은 객석이 꽉 찼다. 빈자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내 옆자리 두 개 빈 것과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 앞자리 몇몇 곳을 빼면 다 찬 것 같다. 객석 점유율이 못해도 90퍼센트는 되어 보인다.
공연이 시작될 즈음, 사람들의 묘한 심리를 발견한다. 조명이 서서히 사라지자 그렇게 떠들어대던 관객의 목소리도 함께 패이드아웃되어갔다.
음악은 보는 것인지 듣는 것인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넓은 무대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은 사실 별 볼 것 없다. 특별한 제스처가 있는 것도 아니요, 손가락의 움직임과 고개의 끄덕거림, 박자 맞추는 다리의 탭 말고는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다.
눈을 감는다. 그래서 음악에서 연상되는 그림이 머릿속에서 제 마음대로 노닐도록 내버려둔다. 때론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고 때론 무용수들이 이별의 아픔 앞에서 몸부림치기도 한다. 미국 서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황량한 들판에서 목동이 말을 모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하고 몽골의 초원에서 연인이 서로 어깨를 기대어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이 펼쳐지기도 한다.
눈을 뜨면 그런 그림도 곧 사라지고 만다. 조지 윈스턴이 저 멀리 어둠의 공간 가운데 앉아 조명을 받으며 열심히 건반을 두드리는 모습이 보일 뿐이다. 간혹 시기를 맞추지 못한 채 박수를 보내는 관객의 실수도 보인다.
궁금하다. 나 말고 다른 관객들은 어떻게 음악을 감상하고 있는 것인지. 옆에 앉은 딸은 나를 닮았나 보다. 눈을 감고 귓전에 맴도는 선율을 느끼는 듯하다. 반응은 나와 다르다. 딸은 고개를 숙였다가 일으키기를 반복하는 반면 나는 옆으로 고개를 까딱까딱하거나 발을 굴리거나, 꼰 다리 무릎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음악을 느낀다.
어두워서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잘 보이진 않지만 대개 무대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 미동도 않는다. 짧거나 길거나 하나씩 연주가 끝날 때마다 기계처럼 손뼉을 친다. 물론 환호를 지르며 머리 위로 손을 올려 손뼉을 치는 아이들도 있다. 감동을 한 것일까.
조지 윈스턴의 연주 중에서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가 있다. 피아노도 잘 치고 기타도 잘 치고 게다가 하모니카까지 잘 부니 부럽다. 피아노만으론 부족했던 분위기를 기타와 하모니카가 메워준 듯하다. 역시 기타 소리 하모니카 소리는 시원하다. 겨울의 시원함이 아니라 여름의 시원함이 묻었다. 한없이 넓은 초원을 연상케 했고 마음속에 있지만 알지 못하는 태초의 고향으로 이끄는 듯했다. 그리고 신나는 박자의 즐거움이 발굽을 그냥 두지 않았다.
피아노곡 중에선 재즈풍의 작품들이 그나마 객석에 앉은 보람을 안겨줬다. 박자에 맞춰 손뼉도 치고 싶으나 관객들의 너무나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 때문에 즐거움이 반감되긴 했지만 혼자 몸을 흔들며 그런대로 만족해했다.
아쉬운 것은 여름에 하는 겨울 콘서트라고 해서 곡이 겨울 맛이 날 줄 알았더니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고, 곡이 좀 그렇다면 실내 에어컨이라도 좀 더 틀어서 시원함을 간접적으로라도(이게 더 직접적인가?) 느끼게끔 했더라면 어땠을까. 또 너무 진지한 표정으로 보는 관객, 너무 유명한 피아니스트라서 연주 중에 손뼉이라도 치면 실례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무거운 분위기가 즐감을 반감시켰다.
음악에 무식한 내가 듣기에도 몇몇 곡은 절로 감동이 묻어나는 것도 있었다. 독특한 연주법이 감동을 자극하는 역할을 도맡아 하다시피 하긴 했지만 관람료 4만 원이라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2만 원쯤이면 1년에 한 번쯤 인생의 문화양식에 투자할 가치가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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