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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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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 수치다. 패스트트랙과 관련한 일련의 자유한국당 행태를 보아온 국민의 분노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건 자유한국당의 수치스런 수치다. 반대로 같은 시각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더불어민주당 정당해산 동의 수치는 21만 6388명이다. 7배나 차이가 나는 여론이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조작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믿고 싶은 거겠지. 뉴스를 접해보니 나 원내대표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투정에 불과하다는 걸 알겠다. 

 

국회선진화법을 자기들 손으로 만들어놓고 스스로 저버리는 배신의 정치. 국민을 몰랑하게 보는 거만의 정치가 언제까지 통할 꺼라 생각하는지. 할배들에게 카톡으로 페이크뉴스만 퍼트리면 다 된다고 여기는 착각은 언제까지 계속될는지... 하는 짓거리가 넘 불쌍해서 연민의 정까지 들 정도다. 

 

그런 비뚤어진 당내 궁중심리에 휩싸여 이러지도저리지도 못하는 의원들은 없으랴. 자유한국당이 정신을 차리려면 아직 멀었다 싶다. 사회정의는 둘째치고 자기 앞의 이득에 신속히 주판알을 튕기는 이번 패스트트랙 총돌 과정을 보면 정당의 행위가 당을 위한 것인지, 국민을 위한 것인지 분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유한국당은 국민청원에 올라온 수치를 가벼이 여기지 말라.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통계청이 밝힌 자료다. 한집에 월 평균 253만 8000원 쓴다고. 그런데 2017년보다 그것도 0.8% 줄었단다. 이 통계를 보면서 사람들 돈 참 많이 쓰구나. 싶다. 하긴 우리도 이래저래 합치면 그리 되겠다 싶기도 하구. 정년퇴직하고 받을 연금이 월 200만 원 안 될텐데... 뭐 살아야가겠지.

 

"식료품비주류음료(14.4%), 음식숙박(13.8%), 교통(13.7%), 주거수도광열(11.2%) 순으로 지출 비중이 높음. 전년대비 교육, 교통, 기타상품서비스 등은 감소, 오락문화, 보건, 가정용품서비스 등은 증가" 라는 분석도 우리 처지랑 별 차이없는 것 같다. 우리가 사는 표준이군.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사실 낼모레가 세계여성의 날이어서, 게다가 내가 경남도 양성평등위원회 위원인데다 엊그제 도청서 양성평등기본계획 민관토론회 '남녀평등 실질지원' 분야 토론까지 한 터이기도 해서 성평등으로 글을 쓰고자 맘을 잡았더랬다.


그렇게 주제를 잡고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았는데... 거참... 머릿 속에는 지난 3.1절 옆지기, 큰딸과 함께 본 <항거-유관순 이야기>가 자꾸 눈에 어른거려 손가락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참 무지하게도 오랫동안 형태만 달랐을 뿐 여전히 짓밟힌 채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각성이 일었다. 내가 일부러는 아니었음에도 수년간 애국가를 전혀 제창하지 않았던 것은 그런 반발DNA가 알게모르게 발동했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동족을 핍박했던 친일의 벼슬이 어째서 광복 세상에서도 여전히 벼슬이었는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부조리 현상. 그게 현실었었다니. 그런데 74년이 지난 지금도 친일이 자랑스레 버젓이 활개치는 모습이라니.


그게 슬픈 거다. 다들 포기하고 싶어 한다는 게 슬픈 거다. 자기 것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는 것이 슬픈 거다. 난 에키타이 안의 애국가는 살아 있는 동안에는 부르지 않을 것이다. 대신 독립군이 즐겨 부르던 창가에 실린 독립군가나 애국가사는 부를 것이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거창국제연극제 관련해 칼럼에 실었다. 내 기조는 딱 하나다. 거창국제연극제는 어떻게 해서든 정상적으로 개최되어야 하고 30년의 역사를 이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누가 행사의 집행을 맡고 조직을 구성하는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슬기를 모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번 군의회에서 거창국제연극제 개최 지원금으로 추경예산에 배정됐던 도비 2억 군비 3억, 합해서 5억이 공연 일주일을 앞두고 삭감되어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프랑스 아비뇽 축제를 비유할 정도로 피서지 연극축제로 거창군의 브랜드 상품이었는데, 결국 다시 파행을 겪게 됐다. 


잘잘못을 먼저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투명한 예산 집행 보장이 문제도 아니었다. 진흥회가 군과 의회 협의, 예산 승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추진했던 것도 사실상 크게 문제삼을 일도 아니었다. 그 이전의 과에 대해선 비판적 시각을 충분히 이해해도 이번에 파행을 겪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은 이미 90% 이상 개최준비가 끝난 상황에서 행사를 무산시킬 정도의 근거가 될만한 원인은 찾을 수 없다.


군과 군의회가 무책임했다고 생각한다. 벌써 2년이나 끌어왔던 사안이었다. 공연시기가 본격적인 피서철인 7월 말에서 8월중순까지라는 것을 군과 의회의원들이 몰랐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그동안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신문 칼럼에는 전혀 흥분을 끼워넣지 않았다. 칼럼이나 SNS에 한마디 올리는 게 무슨 차이가 있을까마는 그래도 칼럼에선 상황을 차분히 풀어서 썼다. 객관적 시각을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하는 신문의 공공성이 내겐 한계로 느껴지기도 하는 부분이다.




이종일 거창국제연극제육성진흥회장 처지에서는 시기적은 문제가 맞물려 군과 논의를 다 끝내고 의회의 예산 승인까지 기다려 사업을 추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얼마나 속이 탔을까, 한편 이해가 된다. 그것 때문에 행사일정도 원래 7월 27일 시작하려던 것을 1주일 늦췄지 않은가. 더는 늦추기 어려웠을 것이다. 원래 일정에 맞춰 공연준비를 해왔던 많은 극단들의 입장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군이나 의회에선 그까짓 몇 주 연기한다고 대수랴 생각할 지는 모른다. 정말 그렇다면 자격조차 없는 사람들이겠지만, 극단의 처지에서 보면 수많은 배우들이 나름대로의 일정을 가지고 조율해서 연습과 공연일정을 빼놓는다. 그게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어긋나게 되면 개인적으로 큰 손실을 입는다. 다른 행사에 출연해야 할 것도 양해를 얻어 포기해야 하고 또 그 행사 담당자는 급하게 다른 출연진을 섭외해야 한다.


공연계가 그렇다. 짧게는 한두 달, 길게는 6개월, 1년 전부터 일정을 잡아 움직인다. 나 역시 뮤지컬 공연 출연을 위해서는 6개월 전에 섭외를 받고 연습에 들어간다. 군이나 의회에서 자기는 그런 거 안해봐서 모른다 소리 않기를 바란다. 상식이니까. 그런데도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가. 정말 내가 우려한 대로 그저 이종일이 싫어서 예산 못 주겠다 한 건가. 아니었으면 한다. 성숙한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오랜 앙금이 남아있고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이 다를 수 있다는 건 안다. 그런 의지가 분명했다면 벌써 조율이 됐어야 했다. 작년말에 썸머페스티벌 예산 삭감되지 않았나. 정말 막말로 그동안 뭐하고 있다가 이제와서..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도 신임 군수가 거창국제연극제의 정상 개최를 공약한 사안 아닌가. 팔길이 원칙까지 언급했는데... 결과적으로 거창국제연극제 무산이나 다를 바 없는 결과가 되어버려 안타깝기 그지없다. 초청작 몇 개 불러 재능기부로 공연은 이루어질 것이다. 함께 진행되는 거창전국대학연극제는 제대로 될 것이다마는 외국팀과 경선팀, 초청팀들이 돌담극장, 축제극장, 무지개극장 등등에서 왁자지껄 수많은 국내외피서객이 모인 가운데 펼쳐지는 축제의 장만 하겠는가. 수승대로 피서를 떠나는 매력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 작년에도 칼럼을 통해 주장했지만, 제발 좀 멀리 보자.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어떻게 봐야 하나?" 제목을 이렇게 달았지만 솔직히 약간 비겁함이 배어있다. 왜냐면, 성소수자 문제를, 그들의 주장을 담은 문화축제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다는 평소의 인식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부러 서울광장까지 가야할 절박함이 내겐 없지만 그들의 주장, 그들의 축제를 반대할 그 어떤 명분도 나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14일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블로그, 뉴스를 통털어 서울퀴어축제에 대한 글이 무수히 쏟아진다. 그만큼 이 시대 키워드가 됐단 얘기다. 여러 보도를 읽다 보면 예전보다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상당히 잦아들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여러 상황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나는 우리나라 법에 '양성평등기본법'이 있다는 것을 실로 최근에 알았다. 솔직히 1년도 안 된다. 남녀평등은 그냥 인간생활의 기본이기 때문에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인지 몰라도 그런 법 자체가 있다는 게 얼마나 쪽팔리는 시추에이션인가 뭐 그런 인식이라서 처음 접하고는 정말 이 법은 하루빨리 없어져도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하잖겠나 생각했다. 


더 진짜 솔직히 내 생각을 드러낸다면, 마초들은 길길이 날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정치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해야 한다 주의다. 이건 페미니즘하곤 다르다. 비유 하나를 들자면 집안에서 여성이 경제권을 쥐었을 때와 남성이 경제권을 쥐었을 때 집안꼴 돌아가는 거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아, 약간 궤도에서 벗어난 얘기였다. 퀴어축제.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 피켓들고 얘들 꼴도 보기 싫다는 사람들도 많음을 안다. 물론 분위기 변화에 따라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뉴스 보도를 봐서 감 잡고 있구. 반대하는 사람들의 시각에는 나쁜 것들만 보일 것이다. 변태 같기도 하고... 하는 거 보면 역겹기도 하고 혹시라도 애들이 볼까 걱정되기도 하고.  그럴 수 있다. 나도 그들의 지나친 표현에 대해 옹호할 생각 없다.


이 사안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화두다. 성소수자, 즉 남자인데 여자 또는 여자인데 남자. 흔히 '유니섹스'란 표현을 적용할 수 있는 존재. '섹스'란 표현이 얼굴부터 붉히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다. 남성 여성 할 때 그 '성'이 섹스다. 뭐 중학교 1학년 영어시간에 안 졸았으면 모를 리 없는 단어겠다만. 이 이야기를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색소폰 악기를 이야기하는 데 그걸 오해해서 '섹스폰'으로 말하기도 하고 글로 표현하기도 하는 사람을 봐서다.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도덕적인 사람.




이런 사람에게 퀴어축제는 변태들의 난장판으로 보일 수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퀴어축제의 본질을 볼 줄 모르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일 것이다. 


예전에 현장기자로서 경찰서를 출입한 적이 있었다. 어느날 수사계에 한눈에 봐도 당시 인기 있던 여배우 '황신혜'임을 직감하게 되는 사람이 피의자가 되어 불려왔다. 황신혜가 지역 경찰서에 나타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출입기자들의 호기심은 그 '황신혜'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수사계 형사에게 연유를 물었음은 당연하다. 웬걸. 이 여성이 경찰서 불려온 이유가 '예비군법' 위반이랜다. 헐. 지금이야 여성군인들도 많다마는 30년 전에는 여성군인이 거의 없었던 시기이기도 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담당 형사의 더 듣고나서야 이해하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 '황신혜'는 방위 복무를 한 남성이었지만 소집해제 후 여성으로 밤무대에 출연해 돈벌이를 하며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자들만 가는 예비군훈련에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기소중지 먹고 있다가 체포되어 왔던 것이다.


직접 물어보았다. "아직 돈이 없어 성전환수술은 못했지만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예비군훈련에 갈 수 있겠어요?" 목소리가 영락없는 '황신혜'다. 얼굴도 빼다박은 듯했지만. 약간 거친 손만이 그가 남성일 수 있겠다는 근거, 아니면 핑계를 갖다붙일 수 있겠다 싶을 정도였다.


한참 이후에 연예인 하리수가 커밍아웃하는 것을 봤고 또 연예인 몇몇이 자신의 성적 정체를 커밍아웃하는 일들이 이어졌다. 당시 그들이 커밍아웃했을 때 사람들의 눈살이 어떻게 변했던가를 잘 알고 있다. 그런 분위기에서 커밍아웃한다는 게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던가 새삼 느낀다.


100년이 훨씬 넘는 예전엔 남성도 아니요, 여성도 아닌 아기가 태어났을 때 그 가문의 어른들은 살해라는 방법으로 전혀 죄책감 없이 인간을 '지워버렸다'. 음과 양, 그것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남자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한 존재는 재앙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곁에 있으면 안되는 그런 괴물이었던 것이다.


지금 그러한가? 허리 디스크? 안 아파 본 사람은 그 고통을 모른다. 불면증. 내가 최근 이 악마같은 것 때문에 시달리고 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내가 그렇게 말했다. "잠을 못잔다고? 와, 좋겠네. 잘라꼬 하지마라. 잠 안오면 얼마나 좋아. 덕분에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나는 누웠다 하면 바로 골아떨어져 옆에 폭탄이 터져도 모를 정돈데..." 내가 불면증에 걸리고 나서 보니 말하고 다르다는 것을 알겠더라고. 지금 벌써 두 시. 잠이 와서 죽겠다. 그런데 누우면 잠이 오지 않는다.다시 일어나 책을 본다. 이번엔 진짜 책 덮고 누우면 자게될 것 같다. 어라. 온 몸에 좀이 쑤시고 오징어처럼 팔다리를 비비꼬다가 일어나고 만다. 이쯤이면 나도 모르게 '자야 하는데'를 되뇌이게 된다.


비유가 이야기하고자 한 궤도에서 점핑한 기분이다만 성소수자의 현실을, 그들의 괴로움을 진정 안다면 '차라리 죽어라'는 둥의 댓글을 서스럼없이 달지는 못할 것이다.


인터넷 화면 갈무리.


퀴어문화축제를 그냥 싸잡아 '동성애축제'라고 규정해버리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런 호도에 편성해 성소수자를 변태성욕자로 치부해버리는 큰 실수를 하고만다. 내가 보기엔 이렇게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마초'일 것이다. 남자는 사내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성다워야 한다는 그런 고리타분한 생각.


최근 TV에 <미스터 선샤인>이라는 드라마가 시작됐다. 저격수로 나오는 등장인물 중에 귀한집 '아씨마님'이 나온다. 귀업고 예쁘고 아름답고.. 뭐 그런 귀하신 몸이 '나쁜놈'들을 물리치려고 기왓집 지붕 위를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마초들 눈엔 이 여성은 택도 아닌 존재가 될 것이다. 오데서 여자가 총들고 지랄이야? 뭐 그러지 않을까. 드라마니까 그러려니 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입장 바꿔 자기 아내가 딸이 성평등운동한다고 나선다면 어떨지...


쓰다 보니 길어졌다. 이 시대 대한민국 마초 근성의 남자들 인식 바꾸지 않으면, 아니 그들의 생각을 바꿔놓지 않으면 우리 미래가 결코 순탄하거나 밝지는 않을 것이다. 엄마가 여성이라는 사실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솔직히 나는 정치는 여자에게 더 어울리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내 집안 살림 돌아가는 걸 봐도 그렇다. 돈은 내가 좀 더 벌지만 아내가 집안을 통제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니까. 선천적으로 내가 돈 계산에 어두워서 그렇기도 하고.


정치는 호전적인 사람이 손대서는 절대 안된다. 또한 타인을 무시하는 사람이 해서도 안되는 분야다.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 봤을 때, 모계 중심의 원시공산부족사회에선 전쟁이란 게 없었다. 그저 함께 수렵을 하고 함께 나눠먹으며 살았다. 그런데 남자들이 힘으로 조직을 구성하고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많이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싸움이 일어났다. 와중에 권력을 쥔 자는 그 권력을 이용해 더 큰 부와 권력을 탐냈고 자연히 전쟁을 일으켰다. 자기의 재산과 권력을 남이 아닌 자신의 자식에게 물려주는 세습이라는 장치를 공고히 함으로써 지배와 피지배라는 계급이 정착된 것이다. 역사가 그랬다. 남자가 권력을 잡고 정치를 하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시도때도없이 전쟁을 일으켜왔고 그 전쟁의 중심에는 늘 남자가 있었다.


나는 이러한 인류사를 잊지 않는다. 조선시대 남자들만의 정치로 500년을 이어왔다. 성리학 정신으로 위민정치를 펼쳐왔고 정권은 안정되었으며 정당간에 합리적 논쟁으로 정사를 잘 이끌어왔던가? 사색당파, 툭하면 싸움질이요, 온갖 술수를 동원해 권력을 차지하는 것에만 치중하는 바람에 백성의 삶은 늘 피폐하지 않았던가.


칼럼을 쓰면서 그러한 감성이 온몸에 뜨겁게 흘렀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표현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경남이라는 이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만이라도 좀 더 많은 여성이 정치권에서 활동했으면 하는 바람만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논거했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 중 우리보다 여성정치인이 적은 곳 있으면 누가 알려줬음 좋겠다. 현재로선 남자들이 기득권을 놓지 않으면 여자에게 기회가 생길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기성정치인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어리석은 욕심 좀 내려놨으면 좋겠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창원문화재단이 만든 프로그램 '춤바람 무풍지대'에 관해서 평소 생각하는 춤에 대한 내 인식을 밝혔다. 너무 긍정적인 글이라 재미 없게 읽힐 수 있겠지만 독자에게 한 번 쯤 말하고 싶었던 내용이라 개인적이고 사소하다 느낄 지 모르지만 용기를 낸 것이다.


나는 '춤바람 무풍지대' 시민 무용단 1기다. 어떤 조직의 시작지점에 선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경남도민일보도 시작점에 있었고 내일 공연을 하는 하동 어울터 극단에도 시작점에 섰네. ^^ 


무풍지대는 1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포진된 시민무용단이다. 이런 구성을 나는 오래전부터 꿈꿨더랬다. 내가 조직할 능력은 안되지만 그런 게 생기면 적극 참여할 마음이었다. 그런 계기를 칼럼에서 풀어내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옛날처럼 어울어져 덩실덩실 춤추는 그런 분위기가 그리웠던 거지.


무풍지대는 지금까지 두 번의 공연을 했고 나는 두 번 모두 출연했다. 춤 연습 시간이 내 업무 시간과 겹쳐 상당한 안무를 동영상을 통해 익혀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어쨌든 열심히 배워 다른 구성원들의 수준을 따라잡고는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율동을 익혀서 남한테 보여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움직임을 몸에 익혀 건강한 문화생활을 영위하고자 함이다.


어쩌면 극단 상상창꼬에서 작업할 신체극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을 축제 때 적어도 무대 앞에 나가 마을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춤출 수도 있을 것이다. 가면 갈수록 개인화되는 세상의 각박함을 이런 참여와 어울림으로 적으나마 해소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해서 칼럼을 썼던 것이다.



칼럼링크


http://www.idomin.com/?mod=news&act=articleView&idxno=553310&sc_code=&page=&total=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날짜가 묘하다. 지난 여름 휴가 동안 피서를 마치고 회사에 복귀해 쓴 칼럼이 '피서지 집 없는 설움'인데 날짜가 8월 8일이었다. 그런데 이번 추석 긴 연휴를 마치고 쓴 칼럼 '경남연극관 설치 제안'은 10월 10일이다. 몽골에선 이렇게 숫자가 반복되는 것을 좋아한다. 차량 번호판에 이런 게 있으면 '쑤웁'하고 빨아당겨 먹는 시늉을 한다. 어쨌든...


이번 칼럼은 쓰기 전에 많은 고민을 했다. 쓸까말까 갈등부터 시작한 소재여서 표현에 어지간히 신경을 썼다. 마산연극관이 화재로 많은 자료를 잃은 뒤 폐관 위기에 놓인 걸 여론도 되살려야 한다는 분위기고 지역 연극인들도 재개관을 위해 힘을 쏟고 있는 와중에 경남연극관 설치를 제안한다는 것은 자칫 마산연극관을 포기하자는 주장이냐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산연극관이 개인 운영으로 관리에 한계가 있었던 만큼 앞으로는 관리 문제로 불상사가 있으면 안되겠다는 원칙이 분명히 서다 보니 이왕이면 경남의 연극사를 총망라한 공공 시설이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개화기 이후 시작된 근대 연극의 시작점을 '혁신단'의 <불효천벌>로 보는 게 정설이다. 이게 1911년의 일이다. 경남에선 1912년 진주사림광림학교에서 연극 공연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경남연극의 시초라고 공식화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당시엔 단막극인 소인극이 유행하였는데 진주를 비롯해 통영 마산, 밀양 등지에서 활성화했다. 이러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으려면 시군단위의 지역 연극관보다는 광역 단위의 경남연극관이 타당하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경남연극관이 만들어진다면 활용가치는 높을 것이다. 배우지망생들에게도 인기가 있을 것이며 지역 연극팬들에게도 친근한 공간으로 사랑받을 것임을 확신한다.


다만 칼럼에서 제시했던 각 지역 연극부스와 연극 상영관, 북카페 등이 갖춰져야 할 것이다. 지역 연극의 발전, 나아가 대한민국 연극 발전을 위해서라도 먼저 경남에서 광역 연극관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여 작은 단위의 연극관도 있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문학관의 경우를 보면, 경남문학관이 있는 반면 각 지역에 따라 김달진문학과, 이원수문학관, 박재삼문학관, 박경리문학관 등등의 사례가 그것이다. 유치진연극관이 있을 수 있고 한하운연극관, 이상용연극관, 이종일연극관 얼마든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그게 다른 이름 통영연극관, 마산연극관, 거창연극관이 되었든 간에.


오랜 연극사를 지니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연극관 하나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 꺼낸 제안이다. 너무 늦지 않게 많은 연극인들이 이에 공감하고 함께 힘을 합쳐 광역연극관 하나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남에서 유일한, 어쩌면 전국에서도 몇 안 될 연극 전문 시설이었던 마산연극관이 지난달 화재로 말미암아 많은 자료를 소실했다. 개인이 만든 시설이다 보니 모든 관리는 개인에 의존해야 했고 관리 한계로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았나 싶다. 폐관 위기에 처했지만 여론도 그렇고 많은 관계자가 재개관을 바라고 있다. 이왕이면 사람들이 찾는 시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마산연극관 화재사고로 많은 생각을 하게됐다. 사실 5년 전 개관할 때 지역의 여러 언론에서 비중 있게 다뤘다는 기억 말고는 그동안 잊고 있었다. 창동엔 소극장이 두 개나 있고 종종 공연이 열리기도 하지만 관객들 중 몇 퍼센트나 마산연극관을 방문했을까 싶기도 하고 시민들 중에선 또 얼마나 이곳을 찾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고민해봤다. 사람들이 찾는 연극관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하고. 고민의 끝에 나온 게 경남을 대표하는 '경남연극관'이다.


창원에는 많은 문학관이 있다. 진해에 경남문학관이 있고 김달진문학관이 있다. 창원에 이원수문학관, 마산에 마산문학관, 게다가 마산음악관까지. 범위를 넓혀 통영에는 윤이상음악관, 청마문학관, 사천에 박재삼문학관, 하동에 이병주문학관과 박경리문학관, 함양엔 지리산문학관. 이외에도 나열하지 않은 문학관들이 곳곳에 있다. 지역 출신의 저명한 문학가가 많이 배출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지역사회가 문학에 큰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그렇다면 연극은 어떤가? 연극 역시 경남 출신 저명인사들이 많다. 한국 연극사의 주역 유치진도 있고 경남 연극의 산실 역할을 했던 이광래, 김수돈, 정진업 등의 위인도 수두룩하다. 경남은 특히 대한민국 연극사와 궤를 같이하기에 그 사적 가치도 작지 않다. 그럼에도 공공시설로서의 연극관은 없었다. 해서, 마산·창원·진해뿐만 아니라 통영, 밀양, 진주, 사천, 거창, 김해, 거제, 양산 등의 연극사와 자료들이 총집합하게 되면 어떨까? 충분히 볼거리가 마련될 것이다. 적정한 규모의 시설에 접근성 좋은 곳에 위치한다면 사람들도 관심을 기울이며 찾을 것이다.


서울 국립극장에 있는 '공연예술박물관'이 괜찮은 본보기다. 산대놀이부터 근·현대 공연예술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공연 때 사용된 소품을 전시한 것도 관람객을 유인하는 매력 포인트다. 경남연극관이 그런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경남의 연극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하고 연극협회 경남지회 산하 각 지부 부스를 통해 지역 연극의 특성을 소개하며 영상화한 연극을 상시 상영한다면 충분한 유인 효과가 있을 것이다. 또한 연극 전문 북카페를 운영한다면 더더욱 활용가치가 높은 연극관이 될 것이다.


경남의 연극은 그 역사만큼이나 저력이 내재되어 있다. 전국연극제 수상 실적이 보여주듯 수준도 높다. 하지만 아직 도민들의 연극에 대한 관심은 기대에 못 미친다. 경남연극관은 지역민의 연극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충분히 할 것이다. 행정기관과 연극인, 전문가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보길 기대한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한때 집이 있었긴 하지만 지금은 없다. 아버지, 어머니 세대를 이어 내 세대에 걸쳐 우리집을 가져본 기간은 10년이 채 안된다.


어렸을 적엔 전세 인상 때문에 이집저집 이사를 다닌 게 손으로도 꼽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게 오죽 뇌리에 박였으면 국문과 다닐 때 발표한 시가 '이삿짐을 옮기면서'이겠나. 글을 쓰다 보니 기억이 나서 그 시를 옮겨본다.




이삿짐을 옮기면서



   

 

    셋집 앞마당 푸른 소나무

    할매의 사연은

    가지가지 솔잎마다

    한숨으로 휘감긴다.


    농촌에서 떠나온  지 二十년

    하나뿐인 당신의 아들

    직장 따라 옮긴 것이

    오늘로 열세 번째


    이 곳에서 저 하늘 아래로

    또 다른 타향으로

    ㄱ자 몸을 옮기시던

    할매는

    씨 뿌릴 땅이 없는 농부처럼

    먼 하늘 바라본다.


    나는 어데서 묻힐랑고

    할매 작은 가슴엔

    눈물의 파도가

    자꾸만 밀려온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

    또, 타관에서 머리를 눕혀야 하는

    할매 손마디가

    떨리고 있다.


    이삿짐을 옮기면서

    주소하나 늘어나는 주민등록등본처럼

    주름살 하나 더 늘어난

    할매의

    눈언저리 이슬 속에

    한 잎 떨어지는

    가을의 낙엽.


ㅋㅋ. 이러면서 옛시를 떠올려보기도 하고...

어쨌든 이런 기억 때문에 피서지에서 겪은 일은 더욱 내게 낭패감을 안겨줬고 어제 정정당담에 실린 장상환 교수의 8.2부동산 대책에 대한 글이 내게 공감을 일으키게 했나보다. 마침 칼럼 순서라 이렇게 반영할 수 있게 되었다. 



7일 자 정정당담 장상환 경상대 명예교수의 칼럼 '실수요자 보호 위한 주택정책은'을 읽으면서 엊그제 다녀온 피서지에서의 하루가 악몽처럼 되살아났다. 밀양 표충사 아래 무료 야영장. 여느 유료 야영장이 있는 계곡보다 괜찮은 곳이다. 한 10여 년 전 친구 가족들과 4번 연달아 오다가 이후론 다른 곳으로 갔는데, 올해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를 다녀오면서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피서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내도 아이들도 대찬성. 예전 이곳에서의 즐거웠던 기억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표충사 계곡은 4번 오는 동안 되풀이 훈련된 학습이 있다.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전날까지 캠핑에 필요한 모든 준비물을 챙겨서 새벽같이 출발했다. 아침 7시에 도착한 표충사 계곡 야영장. 주차장엔 총 70대 정도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우리가 도착했을 땐 4분의 1 정도 빈자리였다. 그렇게 일찍 집을 나서면서도 혹시 자리가 없을까 봐 걱정했던 것은 기우였다고 생각했다. 우린 1박만 할 것이어서 짐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온 가족이 짐을 하나씩만 들면 그만이었다. 짐이 그다지 무겁지는 않았지만 텐트를 칠 빈 공간을 찾느라 야영장을 세 바퀴 넘게 빙글빙글 돌아다니다 보니까 맥이 풀렸다.


주차된 차는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이 넓은 야영장엔 빈자리가 없다. 어쩌다 자투리 공간이라도 발견해 자리를 깔려고 하면 이웃 텐트에서 한마디 건네준다. "그 자리에 누가 있어요." 다시 다섯 식구가 짐을 들고 야영장 안을 빙빙 돌았다. 요즘 텐트들은 하나같이 대형으로 나오나 보다. 그 자리에 우리 텐트는 열 개도 더 치겠다 싶다. 게다가 아침 일찍 산책갔는지 어쨌는지 빈 텐트가 수두룩했다. 그제야 직감했다. 먼저 온 사람들이 자기가 아는 누군가를 위해 자리를 잡아놓은 것임을.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거나.


몇 바퀴를 돌아도 빈자리를 찾지 못해 텐트 설치를 포기했다. 그때 어떤 아저씨가 다가와서 우리 표정을 살피더니 묻는다. "혹시 아직 자리 못 잡으셨어요?" 그렇다고 하자 자기를 따라오란다. 큰 천막 아래 텐트가 3개 있고 그 옆에 빈터가 있다. 천막 아래다. 이곳을 사용하란다. 내일 오후에 사람들이 올 것이니 그때까지라도 마음 놓고 사용하란다. 마음 놓고? 주인 없는 무료 야영장에서 우리 식구는 남의 집 얹혀살듯 하루를 보냈다. 옆의 세 텐트는 밤새도록 빈집이었다. 새벽에 산책하러 간다고 야영장을 둘러보니 빈 텐트가 수두룩하다. 운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부지런했어도 맴돌다가 다른 계곡으로 갔을 수 있겠다. 우린 운 좋게도(?) 그 아저씨 눈에 띄었고 작은 공간이지만 그곳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오전에 텐트를 걷으니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가는 거냐고. 자리 주인이 따로 있다고 했더니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어제 우리처럼. 8·2부동산 대책이 나왔지만 장 교수의 지적처럼 전국으로 확대 적용됐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모든 가정이 집을 하나씩 갖고 있다면 부동산이 돈 버는 도구로 춤출 일도 없지 않겠나.


http://www.idomin.com/?mod=news&act=articleView&idxno=544718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데스크칼럼]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경남청소년연극제 예산 줄어 참가 제한

연습한 보람 갖게 공연 기회 확대해야

 


 

"~ ~ !" 옛날 성당이나 사찰의 종소리쯤으로 오해하게끔 표현된 거라면 정말 죄송하다. 이 소리는 공연장에서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음향효과다. 뭔가를 알리는 신호로 종소리가 사용된 것은 아주 오랜 전통이다.

 

지난 16일과 17일 이틀 동안 밀양 아리랑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진행되고 있던 제21회 경남청소년연극제 참가작 공연 두 편을 보았다. 공연 시작 10분 전 극장으로 들어가 팸플릿을 보면서 공연을 기다린다. 대충 모두 읽었다 싶을 때 예의 그 종소리가 울린다. 관객은 그 소리를 기점으로 기대를 하고 배우는 긴장을 한다. 이제 막 연극이 무엇인지 맛을 들이고 또 관객들 앞에 처음 나서는 어린 고등학생들에게야 그 긴장감과 초조함, 두려움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반대로 동시에 발생하는 설렘은 또 어떻고.

 

23개월 짬짬이 시간 내어 연극연습을 하면서 아이들은 새로운 세상을 알아나간다. 때론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삶을 고민하고 때론 타인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지혜를 배워나간다. 그래서 얻은 것들을 무대 위에서 풀어낸다. 청소년연극제는 전국대회를 앞두고 펼쳐지는 경연이다. 그래서 본선에 나갈 최우수팀을 뽑게 된다. 올해엔 합천의 원경고 연극반 친구들이 전국대회 참가 영광을 얻었다. 단체 최우수 수상팀이 발표될 때 학생들의 환호는 잔상이 오래갔다. 서로 얼싸안고 춤을 추며 즐거워하던 그 모습.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번 경남청소년연극제에 참가조차 하지 못한 연극반 학생들이 많았다. 예산부족 때문이었다. 지지난해 8개 팀, 지난해 9개 팀. 하지만 올해는 6개 팀만 참가했다. 지부별 1개 팀이 있는 곳이야 자동 진출이지만 2개 이상인 곳은 예선을 치르거나 다른 팀의 양보를 얻어내야 했다. 지난해 최우수상을 받아 전국대회 참가, 역시 최우수상을 받은 창원 태봉고가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3개월 동안 준비하며 연습한 것이 보람 없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담당 지도교사는 아이들의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사비를 보태서라도 시내 소극장을 빌려 공연하게 되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공연 마지막 날 이러한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자 한국연극협회 집행부 인사와 경남도와 경남도교육청 관계자들이 만나 예산상의 어려움에 대해 공감대를 이뤘다. 내년 행사는 기대를 할 수 있겠다. 경남청소년연극제 예산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이 펼쳐나갈 '' 역시 더욱 확대해 끼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데에도 견해를 같이했다.

 

지금은 교육시스템이 많이 달라졌다. ··국 중심의 공부에 매달리지 않고도 얼마든지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를 일찍 선택해 대학에 진학할 길이 열렸다. 연극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학생이 극단을 찾아 연출과 배우로부터 연기 지도를 받아 연극영화과 시험을 준비한다. 기회를 얻어 공연 경험을 해본 학생들은 아주 유리하다. 이번 경남청소년연극제를 보면서 아이들을 위한 공연장 종소리가 더욱 많이 울렸으면 하는 소망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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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소설이자 게리쿠퍼, 잉그리드 버그만이 나온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거창한 칼럼 제목 같아도 사실 제목을 이렇게 단 이유는 너무나 단순하다. 공연을 보면서도 별 생각 못했던 것이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공연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린 것이다. 첫 문장을 쓰고서 바로 제목을 달아버렸다. 쓰고 나서 종소리가 무슨 의미가 있을지 고민해봤다. ㅋㅋ. 그래 청소년기 활동과 종소리는 무관하지 않겠다 싶다. 어쨌거나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을 시작했고... 어쩌면 그때부터 계속 이 길을 걸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희곡도 쓰고 연출도 맡고... 아니라도 대학시절 네 번의 배우, 한 번의 연출 그 경험이라도 지속했더라면... 음... 기자는 안 됐겠지... 그 시절... 아니.. 잘 선택한 거야. 기자가 된 게 다행이야.


지금은 아이들에게 신경을 좀 더 써주면 되는 거구.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