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장금이 걷던 산성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힘들지만 재미있는 창녕군 화왕산
나는 한국에 온 지 3년차 된 몽골 출신 주부입니다. 한국에선 나 같은 사람을 '결혼이민여성'이라고 부른다는군요. 따라하기 쉽지 않은 말입니다. 그렇지만 남편이 많이 도와주어 어지간한 한국말은 알아듣는답니다. 아이 낳고 주부로 산다는 게 바깥나들이를 하기 쉽지 않잖아요. 우리 동네에 있는 창원 천주산은 산책 삼아 한 번씩 갔었지만 화왕산처럼 이렇게 높은 산은 태어나고 처음입니다. 천주산과는 비교가 안 되더군요. 지난 주 일요일 아침을 챙겨 먹고 아이는 시어머니께 맡기고 남편과 창녕으로 떠났습니다. 가면서 음료수와 빵을 사서 가방에 넣었습니다.
◇"어머, 장금이가 나오는 곳이래요."
10시 20분. 화왕산 군립공원 안으로 들어가 차를 대면 주차비를 따로 2000원을 줘야 한 대서 우리는 창녕여중고등학교 앞 공터에 주차하였습니다. 구두쇠 남편은 한 사람에 1000원하는 입장료를 카드로 계산하려다가 직원이 안 된다니까 하는 수없이 다른 지갑에서 현금 2000원을 꺼내 주었습니다.
등산로가 그려진 입장권을 받아 돌아서는데 커다란 간판이 눈에 띄었습니다. 남편은 이 산 꼭대기에서 '허준'을 촬영했다는데 내 눈에는 장금이만 들어왔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 몽골 '티위(TV : 한국에선 티비라고 하던데 그 말이 잘 안 나와요)'에서 '대장금'을 했는데 정말 재미있게 보았거든요. 산에 올라가면 그 장금이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힘이 났습니다. '주몽'도 여기서 촬영을 했다니 많이 유명한 곳인가 봐요.
◇"몽골처럼 이곳에도 돌탑이 많아 반가웠어요."
11시. 한참 걸어서 올라가니 갈림길이 나왔습니다. 왼쪽은 도성암·정상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1·2등산로라고 글자가 붙어 있었습니다. 남편은 지도를 보더니 1등산로로 가자고 했습니다. 30분 넘게 걸어서인지 조금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길다란 의자에 앉았는데 그 옆에 '어워(돌탑)'가 있었습니다. 몽골에선 이런 어워를 보면 시계 방향으로 세 바퀴를 돌면서 주문을 외운답니다. "어워니 이흐 텐다 어르츠니 이흐 멘다." 그런데 이 어워는 주변을 돌만큼 크지 않았습니다. 잠시 쉬고 올라가는데 길가에 좀 전에 봤던 어워보다 작은 어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무마다 앞에는 토끼그림도 있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창녕군의 상징 동물이 토끼라고 말해줬습니다. 또 무슨무슨 산악회라는 이름으로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띠를 보고 몽골의 '하닥'이 생각났습니다. 몽골에도 나무에 푸른 천을 많이 걸어 놓거든요.
◇"바위길 너무 무섭고 힘들어요."
11시 20분. 자하곡 삼림욕장을 지나 또 1·2탐방로로 나뉘는데 우리는 전망대로 향하는 1탐방로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길이 점점 오르기 힘들게 되더니 숲 저쪽으로 파란 하늘이 보였습니다. 이곳에선 다른 산도 보이고 우리가 입장권을 샀던 곳도 보였습니다. 남편은 이곳을 '능선'이라고 했습니다.
이제부턴 산에 올라가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조금 가다가 쉬고 또 조금 가다가 쉬었는데도 움직일 때마다 숨이 찼습니다. 정말 천주산은 여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몸무게 85킬로그램이나 되는 남편이 주저앉더니 일어나지 못합니다. "그냥 돌아갈까?" 했더니 남편이 "그럴까?"하고 한참 망설이더니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산성은 보고 가야지" 하면서 일어섭니다.
그런데 이 산길이 정말 장난이 아닙니다. 전망대에서 잠시 경치와 바람에 피로가 풀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 하는 길이 너무나도 위험하고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어머니 생각이 자꾸 났습니다."
12시. 전망대 위 1.4킬로미터 지점을 지났습니다. 집에서 출발할 때 남편이 천주산이나 별 차이 없다고 해서 평소 때 신고 다니는 운동화를 신었는데 바위길에서 자꾸 미끄러져 겁이 났습니다.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어머니는 몽골에서 '등산 선수'로 TV에도 많이 나오고 대통령하고도 악수할 정도로 유명했습니다. 아마 어머니였다면 이런 산은 쉽게 오를 수 있었을 겁니다. 아, '대초원의 나라 몽골'을 기억하시는 분은 잘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몽골의 산은 대부분 언덕처럼 생겼으니까요. 몽골에도 바위산이 많이 있답니다. 나는 이렇게 힘이 드는데 어머니는 힘들 때마다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남편이 좀 쉬었다 가자고 하곤 주저앉습니다. 우리 발아래 펼쳐진 세상이 예쁩니다. 꼭 우리가 비행기를 탄 듯한 느낌입니다.
◇"저 바위는 밀키핫드 닮았는데…."
1시 45분. 거북이처럼 너무 느리게 가다 보니 우리를 지나서 바위산으로 올라간 사람이 네 사람이나 되었습니다. 그래도 부지런히 오르다 보니 마침내 바위산 꼭대기에 다다랐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제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바로 또 오르막길이 나왔습니다. "뭐야!"하고 불평을 했는데 산꼭대기에 펼쳐진 넓은 초원이 보이는 것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바위산 이렇게 높은 곳에 이렇게 넓은 초원이 있다니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더 깜짝 놀란 것은 몽골의 밀키핫드(거북바위)를 닮은 바위가 있는 것입니다. 남편은 그것이 배바위라고 했습니다. 그 바위를 등지고 앉아 있는 바위는 또 '심바(라이온킹에 나오는 아기사자)'를 닮아 신기했습니다.
◇"이곳이 장금이가 걸어갔다는 산성길."
2시 20분. 산성의 돌이 많이 무너진 것인지 사람들이 포클레인으로 다시 돌을 반듯하게 올려 쌓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사람들이 장금이처럼 돌담 위로 걸어다니다 보니 조금 무너지기도 해서 새로 튼튼하게 돌담을 쌓는 모양입니다. '성벽 보호 산책로 이용'이라는 피켓이 꽂혀 있어서 우리는 장금이처럼 성벽 위를 걸어보지 못했습니다. 대신 장금이를 생각하며 이곳 남문에서 많이 쉬었습니다. 남문 앞에는 물이 흘러내렸는데 물이 빠지는 곳에선 물소리도 들렸습니다. 우리는 용지라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산꼭대기에 이런 연못이 있다니 신기했습니다. 안내판에는 창녕 조씨의 조상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설명되어 있답니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하다."
3시 50분. 정상을 600미터 남겨놓은 지점에 3탐방로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습니다. 남편도 너무 힘들어하고 나 역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그냥 내려가자!"하고 말을 했습니다. 남편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그냥 내려가?"하며 먼저 정상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듯 올라갔습니다. 산성을 타고 올라가는 길이어서인지 그렇게 많이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드디어 산꼭대기에 왔습니다. 맨들맨들한 바위에 '화왕산 756.6m'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산에 오르는 중에 본 경치도 좋았지만 산 정상에서 보는 경치는 마음이 기뻐서 그런지 몰라도 더 아름다웠습니다. 갑자기 한국에 처음 와서 남편과 천주산을 오르며 배웠던 한국말이 생각났습니다. '돌' '나무' '아름답다', 그리고 '난 널 사랑해'. 3탐방로로 내려가는 길은 금방이었습니다.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너무 빨리 내려와 아쉽기도 했지만 기분이 좋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어머니가 올랐을 산들을 떠올리며 고향생각에 잠겼습니다. /후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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