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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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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여우와 사랑 나눈 명의 유이태

유의태 모델로 알려진 조선의 명의에 얽힌 거창 침대롱바위·이태사랑바위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20년 이상 산 사람이라면 허준을 모르는 이 없고 그의 스승으로 알려진 유의태를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 여기서 눈치 빠른 독자라면 제목 아니면 본문에 나타난 이름 두 개가 다름을 알아챘으리라.


1975년 이은성이 극본을 쓴 MBC 드라마 <집념>(허준 역 김무생, 유의태 역 이순재)이나 영화 <집념>(허준 역 이순재, 유의태 역 김인태), 그리고 1991MBC 월화드라마 <동의보감>(허준 역 서인석, 유의태 역 이순재)혹은 1999년과 2000년에 걸쳐 방송된 역시 MBC 드라마 <허준>(허준 역 전광열, 유의태 역 이순재)에 이어 또 역시 2013MBC 드라마 <구암 허준>(허준 역 김주혁, 유의태 역 백윤식)에 이르기까지 동의보감의 주인공 ‘허준’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는 계속 재생산되어왔다.


이은성은 드라마와 영화 <집념>의 성공을 계기로 이를 소설화(소설 동의보감)했고 다시 MBC는 소설을 바탕으로 드라마화 했다. 드라마로 재생산될 때마다 허준의 이야기는 공전의 히트를 쳤고 마침내 2013<구암 허준>에 이르러서는 1세대 허준이었던 고 김무생 배우의 아들인 김주혁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허준 역을 맡는 일화까지 생겼다.



명의 유이태가 어렸을 때 살았다는 집과 일부 주민들에게 침대롱바위로 알려진 바위.


어쨌든 이은성의 작품 영향으로 대한민국의 갑남을녀는 유의태가 허준의 스승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유의태는 가상의 인물이다. 지금 산청 동의보감촌에선 그 유의태를 실존했던 인물로 스토리텔링화하고 있지만 묘하게도 이름이 아주 유사한 유이태라는 인물이 실존했다는 사실이 작금 논란이 되고 있다.


허준(1539~1615)은 조선 13~15대 임금인 명종~광해군 때의 사람이고 유이태(1652~1715)는 조선 후기 19대 임금인 숙종의 어의를 지낸 인물이다. 그러니 살았던 시기는 서로 다른 세상이었다. 그것도 허준이 시대적으로 훨씬 앞선 인물이다. 그러니 유의태는 이름과 상황이 비슷한 유이태를 드라마 속으로 끌어들이면서 개명을 하고 가상의 인물로 그려졌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유이태의 후손 입장에서 보면 실존 인물 유이태가 가상 인물 유의태로 잘못 알려지는 처지라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겠다. 유이태의 후손들은 지난 5월 산청군에 ‘유의태’로 되어 있는 이름을 ‘유이태’로 변경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유이태는 거창군 위천면 위천중학교 인근 사마마을에서 태어났다. 유이태는 천연두와 홍역 등의 병에 깊은 연구를 하여 의학전문서인 <마진편(痲疹篇)>을 썼다.


어의로 숙종의 심각한 병을 고치어 신임을 받았고 나중에는 안산군수로 임명되었으나 부임을 고사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전념을 다했다고 한다. 유이태는 거창에서 태어났지만 외가인 산청에서 의술활동을 펼쳤다.


어의까지 지낸 인물이 벼슬을 마다하고 고향 시골로 돌아와 의술활동을 펼쳤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자연히 수많은 일화와 전설까지 얻지 않았나 싶다.


유이태는 어렸을 때부터 침을 가지고 노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유이태에 얽힌 수많은 전설 가운데 침대롱 바위가 있는데, 이는 유이태가 침대롱을 놓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침대롱이란 침을 넣어두는 대통이다. 지금에야 위생상 침대롱에다 침을 보관하는 한의사가 있기야 하겠나만 조선시대 당시만 하더라도 보관의 편리성을 위해 가느다란 대나무통, 즉 대롱에 침을 넣어두고 필요할 때 꺼내 사용하곤 했다.


이 침대롱바위는 유이태가 태어났다는 집에서 가깝다. 위천중학교 옆 사마마을 입구에 있다. 이 마을에서 전 부녀회장을 지냈다는 소순자(75) 씨를 만났다. 그의 증언을 들어보자.



위천중학교 옆 사마마을 입구. 원 안이 침대롱바위.



침대롱바위 가까이 다가가 아래서 위로 향해 본 모습.



침대롱바위 수평 앵글. 



위에 올라가 내려다 본 모습.


“저기 보이는 저 기와집이 옛날에 유이태가 살던 집이라 캐요. 기와집은 지금 사는 사람이 새로 지었지만도 저~서 살았다 캐. 그라고 그 앞에 있는 저 바구가 침대롱바위라 캐요. 그런데 전에 엠비씬가 방송국에서 와서는 요 삐알(비탈)에 있는 저 바구를 찍어가데.”


소 여사가 가리킨 쪽을 바라봤다. 묘하게 생긴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침대처럼 생겼다. 침대롱과 침대, 물론 유사한 발음이지만 전혀 다른 물건이다. 하지만 특이하게 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침대처럼 생긴 바위가 유이태 전설을 품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근처에 거창의 유명한 관광지인 수승대가 있다. 여름이면 국제연극제가 열리는 곳으로도 세계에 알려져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피서와 문화를 동시에 즐기기도 하는 곳이다.


이 인근에 유이태가 어렸을 적에 여우와 사랑에 빠졌다는 전설이 스민 바위가 있다. ‘이태사랑바위’다. 위천천이 ㄱ자로 꺾여 돌아가는 모서리에 있는 데다 바위가 꽤 높은 절벽을 이루고 있어 예부터 수많은 풍류객이 머물다 간 곳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곳을 다른 말로 ‘척수대’라고도 부른다.


유이태가 태어난 사마마을에서 수승대로 가다 보면 수승대 관광지 입구 바로 못 가서 왼쪽에 ‘이태사랑바위’가 있다. 들어서는 입구에 작은 안내판이 있다.


‘백여우와 사랑에 빠진 유이태의 전설, 척수대. 이태사랑바위’라고 제목이 적혀있다. ‘척수대’란 이름이 붙은 연유는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사신이 오가며 이곳에서 근심을 씻었다고 해서 붙여졌다. 암튼, 이 바위에 얽힌 전설은 스토리가 제법 재미있다.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본다.


조선 숙종 때에 유이태(劉以泰)라는 유명한 의원이 있었다. 그는 위천면 서마리(이후 갈전리 사마마을)에서 태어난 거창 사람으로 그가 지금 수승대 어귀에 있는 어나리 서당에서 글공부를 할 때의 일이다.



수승대 관광지 안으로 들어가 본 팻말과 이태사랑바위.



망원렌즈로 조금 당겨 본 모습.



250밀리 망원렌즈로 완전히 당겨 본 모습.



위천천 갈대와 어우러진 이태사랑바위.


유이태가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있으려면 밤마다 예쁜 아가씨가 나타나서 유혹하여 그럴 때마다 그는 마음을 굳게 해 독서에 더욱 전념하였는데, 어느 달 밝은 밤에 이상하게 마음이 허전하여 수승대에 올라 중천의 달을 보고 있는데 또 그 아가씨가 나타나 단 한 번만 입맞춤이라도 하여 달라고 애원하니 그는 그녀의 간절한 청을 거절할 수가 없어 단 한 번만 입맞춤하기로 하였다.


그녀와의 접촉에서 더할 수 없는 황홀감과 달콤함을 실감하고 신비로운 향기에 도취해 있는데 그녀의 혀끝에서 감미로운 구슬이 굴러들어와 형용하기 어려운 쾌감에 젖을 때면 구슬은 다시 그녀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고 이렇게 두 사람의 입으로 구슬이 오감을 거듭하는 동안 긴 애무 끝에 그녀는 작별을 고하고 사라졌다.


이 같은 일이 연일 계속되어 유이태는 밤이면 그녀를 그리워하게 되고, 이러한 밤이 수십일 계속 되는 동안 유이태의 안색은 점점 창백하지고 몸은 야위어 갔다. 이상하게 생각한 서당 훈장은 그에게 사연을 물으니 자신의 쇠약을 근심하던 그는 그 사유를 순순히 고했다. 고백을 들은 훈장은 심사숙고한 끝에 “그 구슬이 너의 입에 들어올 때 삼켜라.” 하고 일렀다.


그날 밤에도 예외 없이 두 남녀의 밀회는 계속 되고 있었다. 문득 스승의 말씀이 떠올라 몇 번인가 굴러들어온 구슬을 눈을 딱 감고 꿀꺽 삼켰더니 웬일인지 그렇게 아름다웠던 아가씨는 순식간에 비명을 지르면서 한 마리의 흰 여우가 되어 달아나는 것이었다.


훈장에게 그 사실을 알리니 다음 날 뒷간에서 그 구슬을 찾아와 소중히 간직하라고 하였다. 구슬을 얻은 날부터 아가씨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그의 몸도 완연히 회복되었다. 그런데 이상스러운 것은 유이태의 총명이 비상하게 늘었다는 것이다.


한 번 듣거나 본 것은 잊지 않고 기억하는 천재가 되었고 이때에 그는 의서를 열심히 공부하여 의술의 대가로서 전국에 이름을 떨치게 되어 마침내 국왕의 병환에 부름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태사랑바위로 들어가는 길.



이태사랑바위 끝자락.



발아래로 절벽이다.



멀리 금원산 능선에 운무가 덮여있다.


그러나 그의 보배인 구슬이 온데간데없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구슬을 잃고 난 뒤부터는 그도 평범한 재주밖에 없게 되었고 기억력도 줄어서 마침내는 건망증까지 걸렸다고 한다.


어느 날 그의 며느리가 감기몸살에 걸렸는데 콩나물을 달여 먹이려던 것이 콩나물을 잊어버리고 아무리 생각하여도 떠오르지 않아 ‘비녀나물 비녀나물’이라고 하다가 며느리를 놓치고 말았다고 한다.


이태사랑바위 안내판에는 “전설처럼 이태사랑바위에서 소원을 빌면 연인은 사랑이 이루어지고, 자식은 훌륭한 인재로 성장한다고 전해진다.”고 적혀있다.


이러한 여우구슬, 혹은 구미호의 보배구슬에 얽힌 설화와 전설이 얽혀 있는 사람은 유이태 말고도 여럿이다. 특히 산세가 험한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 경상도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경기도 양평의 이식 일화, 충북 영동 도선 일화, 경북 안동 이황의 제자 조목 일화, 전남 해남 윤선도 일화 등이 알려졌다. 전설의 유형은 유이태 전설과 대동소이하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전설텔링]구룡지엔 용 한 마리가 남았는데

아직도 양산 통도사 대웅전 옆 작은 연못엔 절 지킴이 용이 산다?


용이 전설의 주인공으로 단골 등장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 신비함 때문일 것이다. ‘전설텔링’ 이 코너에서 등장한 용들도 한두 마리가 아니다. , 용은 신의 반열에 있는 동물인데 ‘마리’라는 표현을 썼으니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다.


용이 언제 처음 태어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기원전 3~4세기에 쓰였다는 동아시아 고대 신화집인 ‘산해경’에도 실린 것을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용은 인간사에 관여해왔던 것 같다. 특히 용은 그렇게도 자주 또 많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건만 아무도 본 적이 없기에 더욱 신비 모드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아무도 용을 본 사람이 없는데 용에 대한 이미지가 대동소이한 걸 보면 희한하다. 민화를 보든, 사찰의 벽화를 보든, 건물의 용 조각을 보든 용의 모습은 대개 거기서 거기다. 산꼭대기 천지에 사는 용이나 강물에 사는 용이나 또한 바다에서 사는 용이나 그 모습은 한결같다.


통도사 대웅전 대방광전 방향 앞쪽에 있는 구룡지.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여기서 문자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중국 위나라 때(220~256) 만들어진 ‘광아(廣雅)’라는 책에 묘사된 뒤로는 이 용이 중국, 몽골, 한국, 일본으로 퍼져 나가며 수많은 세포분열을 거쳤음에도 거의 똑같은 유전자를 유지하고 있다.


‘광아’라는 책을 살짝 열어볼까. ‘용은 인충(鱗蟲) 중의 우두머리로서 그 모양은 다른 짐승들과 아홉 가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표현이다.


머리는 낙타와 비슷하고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주먹은 호랑이와 비슷하다.


그야말로 짬뽕동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고대 사람들은 신화 속의 동물은 이런 식으로 혼합하는 취미가 있었나 보다. 이집트의 스핑크스도 그렇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두사나 켄타우로스 같은 인간과 동물의 혼합체도 만들었으니.


어쨌든 흔한 동물의 혼합체임에도 용은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고귀한 존재로 추앙받기까지 하며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또한, 용은 산신과 어울려 다니는 호랑이와 달리 물속의 용왕과 어울려 다녔다. 그래서 산에는 호랑이신 물에는 용신이라는 대비로 존재감을 확실히 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구룡지 맑은 물에 강룡교 다리와 나무 그림자가 어울려 비치고 있다.


한반도에 살았던 용들은 마냥 신비하고 위엄이 있는 경외의 대상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양산 통도사 구룡지에 사는 용 이야기만 하더라도 다른 용들이 들으면 자존심 팍팍 구겨질 만한 캐릭터의 용들이 등장한다.


2008년 양산문화원에서 발간한 ‘양산고을 옛이야기’엔 통도사 대웅전 옆 자그마한 연못인 구룡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유래를 설명했다. 그 유래는 통도사를 창건한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와 얽힌 한 토막 전설로 전해지고 전해진 것이다. 내용의 일부를 따왔다. 다음과 같다.


통도사를 창건한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는 진골 출신인 소판 김무림의 아들로 속명은 선종랑이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물려받은 논밭과 집을 희사하여 원녕사(元寧寺)란 절을 세웠으며 홀로 깊은 산에 들어가 고골관(신체를 시체의 관점에서 보기, 즉 시체가 썩어서 백골이 되는 모습을 보고 덧없음을 깨닫는 수행법)을 닦았다.


그러던 차에 636(선덕여왕 5), 왕명으로 제자 10여 명과 함께 당나라로 들어가 청량산의 문수보살에게 기도 정진해 문수보살로부터 가사 한 벌과 진신사리 100, 불두골(佛頭骨)과 손가락뼈, 염주와 경전 등을 받았다.


그 후 종남산 운제사에서 3년 수행하고 643년 대장경 일부와 번당(幡幢), 화개(花蓋) 등을 가지고 7년 만에 귀국했다.


자장율사는 신라 최고 승직인 대국통에 임명되어 승니(비구와 비구니)의 규범을 통제하고 보름마다 계를 설했다.


삼성각 앞에서 바라본 구룡지 모습. 맞은 편에 대웅전인 대방광전이 있고 왼편엔 배롱나무가 서 있다.


자장율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문수보살에게서 받아온 석가모니의 가사와 사리를 모실 절을 세우기로 하고 선덕여왕과 함께 창사할 터를 찾기 시작했다. 며칠을 찾아다니던 어느 날, 축서산(鷲栖山)에 이르니 산의 형세가 석가모니가 설법하던 인도 영축산의 모습과도 너무나 흡사했다.


자장율사는 마음속으로 감탄하고 산 아래 큰 연못이 있는 곳에다 절을 짓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연못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다.


절을 지으려면 연못을 메워야 했기에 자장율사는 용들을 불러내 설득에 나섰다. 하지만, 용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장율사는 하는 수 없이 법력으로 연못을 펄펄 끓게 해 용들을 쫓아냈다. 아홉 마리의 용 중에서 다섯 마리는 남쪽을 향해 산 너머로 도망을 갔는데 그곳을 오룡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 용 세 마리는 동쪽으로 달아나다 솔밭 길 근처 야트막한 산의 커다란 바위에 부딪혀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때 용이 흘린 피가 바위에 낭자하게 흘렀는데 후세 사람들이 이 바위를 용피바위 또는 용혈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현재 산문 쪽에 있는 검붉은 색의 용혈암은 이 용들이 흘린 피가 묻어서 바위 색이 변한 것이라고 한다.


구룡지를 가로지른 돌다리인 강룡교.


마지막 한 마리는 순종하며 절을 지키겠다고 맹세해 자장율사가 자그마한 연못을 만들어 그곳에 살도록 했다. 그 못이 지금 통도사 대웅전 바로 옆에 있는 구룡지(九龍池)이다.


아무리 다양한 동물의 혼합체로서 신령스런 역할을 도맡아 왔다고 해도 불력을 앞세운 스님 앞에서는 한갓 미물에 지나지 않았나 보다. 끓는 연못을 스스로 식히지 못하고 도망을 갔으니. 게다가 세 마리는 도망가다가 바위에 부딪혀 피를 흘리고 죽었다 하니 용의 체면이 여간 구겨지는 게 아니다.


큰 연못을 메우고 남은 한 마리를 위해 작은 연못을 조성했다고 하니 한 마리 분량의 연못 크기 곱하기 9를 하면 원래의 연못 크기가 나오려나? 어쨌든 남은 한 마리를 위한 구룡지 크기는 아담할 정도다. 넓이가 15㎡에 지나지 않는다.


구룡지 북쪽으로는 금강계단이 있다. 시계방향으로 동쪽엔 대웅전, 남쪽엔 응진전, 그리고 서쪽엔 정면 세 칸짜리 건물 삼성각이 있다. 구룡지 곁에는 배롱나무가 혼자 남은 용의 친구가 되어 사시사철 표정을 달리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양산 통도사 위성지도./다음지도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전설텔링)전쟁의 신()(현장을 찾아서)

함안 군북면 방어산 마애삼존불과 진주 지수면 방어산 정상


이번 5회에 걸쳐 연재된 전쟁의 신() 전설텔링은 방어산(防禦山)이라는 산의 이름이 지어진 유래에 그치지 않고 더 역사적으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가야시대로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았습니다. 가야와 왜가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했던 사실, 또한 신라가 고구려에 원군을 요청했던 사실, 또 그 시점이 고구려 광개토대왕 때였다는 여러 가지 정황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꾸몄던 것이지요.


방어산이라는 이름은 함안군과 진주시에서 소개하는 전설에서 그 유래가 잘 나타납니다. 진주 지수면 내고장 유래에 보면, ‘방어산은 이름 그대로 병란과 왜구를 무찌르고 방어했다는 산’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산 정상에는 성을 쌓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여기에 묵신우 장군의 용맹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온다 하면서 방어산에 관한 전설이 소개됩니다.


“장군의 겨드랑이에는 날개가 달려 절벽과 골짜기를 날아다니면서 300근 짜리 활을 잡아당기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중에 병란이 일어나 적군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장군은 3000명의 군사와 중 혜성의 도움을 받아 방어산 봉우리에 성을 쌓고 적과 맞섰다. 적은 방어산 맞은 편 봉우리에 진을 치고 공격해왔으나 장군은 성문을 굳게 닫은 채 한 달을 버티다가 적이 지칠 무렵에 화전(불화살)으로 공격, 일시에 적을 무찔렀다. 장군의 이러한 지략을 본 적은 ‘이는 필시 신병(神兵)의 병술이다’며 도주하고 말았다.”


과연 방어산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습니다. 2편 연재하던 시기에 방어산을 올랐습니다. 방어산은 진주 지수에서 오르는 길도 있으나 이야기의 주인공인 무시우(묵신우) 장군이 안라국, 즉 아라가야 사람이므로 함안에서 오르기로 하였습니다.


방어산을 쉽게 오르는 길을 인터넷이나 위성지도를 통해 관찰해보니 함안 군북면 마애사에서 오르는 길이 가장 수월하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산에 오르면서 보물 제159호인 마애삼존불도 구경할 수 있고요.


마애사 주차장은 차량 100대 이상 댈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컸습니다. 주차장 한쪽에 마애쉼터가 있는데 그 옆에 방어산 등산 안내도가 세워져 있습니다. 방어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아주 보기 좋게 그려놓았습니다. 이 안내판엔 방어산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 소개하겠습니다.



“방어산은 괘방산(451m)과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어 두 산을 함께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웅산이라고도 불렸으며, 정상에 서면 아득히 지리산이 보이고, 동남쪽에는 여항산이 보인다. (…) 산의 7부 능선에는 보물 제159호로 지정된 높이 5미터의 거대한 방어산 마애불이 있으며, 산은 높지 않으나 군데군데 암반이 많고 능선이 제법 굴곡되어 있어 산행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산행은 방어산만 오르는 코스와 괘방산을 함께 오르는 코스가 있다. 방어산만 오르려면 하림리 낙동마을 뒤쪽에서 시작하여 마애사, 방어산 마애불을 거쳐 정상에 오른 후 군북면 박곡리 남강휴게소로 하산하면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다른 코스는 하림마을에서 마당바위를 거쳐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는데, 정상에서 괘방산까지 산행하려면 방어산 고개와 전망대, 괘방산을 거쳐 어석재로 하산하면 5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정상은 큰 바위로 되어 있어 장군대라고 부르기도 하며, 이곳에서 50미터 아래와 200미터 아래 지점에는 마당바위와 흔들바위가 각각 있다. 흔들바위는 높이 8미터, 6.5미터의 끄덕바위라고도 불리며 기울어진 쪽으로 부자가 난다는 전설이 있다.”


마애사 하나만으로도 사찰 안 여기저기 볼만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대웅전에 해당하는 극락보전 법당과 산령각, 종각, 포대화상이 조각된 약수, 그리고 쌀가마니를 지게에 지고 있는 청년 상이 있습니다. 다시 이곳으로 하산한다면 돌아오는 길에 봐도 되지만 아니라면 약간 시간을 내어 둘러보는 것도 좋겠네요.


마애사에서 방어산으로 오르는 산길에 돌탑이 특히 눈에 띄는데, 아주 정교하게 잘 만든 것들입니다. 그냥 지나가는 산인들이 하나씩 소원을 빌며 쌓아 올린 것과는 느낌이 확연히 다른 것이에요. 누군가 숙달된 기술이 있는 사람이 쌓은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마애사를 갓 벗어난 등산로는 걷기 편한 길입니다. 낙엽이 등산로 위를 포장해놓아 사박사박하니 걷기도 좋았습니다. 길가에나 바위 곳곳에 작은 돌탑을 쌓아 올린 정성들이 보입니다. 어떤 것은 아주 기울어진 바위 위에 중심을 잘 잡아 쌓아 올린 것도 있더군요. 하나하나 쌓을 때마다 공을 들인 마음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니 ‘보물 159호 마애 약사삼존불 성불하소서 200m’라고 적힌 나무말뚝이 보입니다. 200미터면 금방이겠다 생각하고 걸음을 옮깁니다. 유선형의 예쁜 돌탑을 또 만납니다. 신선 서넛이 앉아 바둑 두며 훈수도 뒀을 법한 평바위가 나타납니다. 잠시 신선처럼 앉아서 물을 한 잔 마십니다.





여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마애약사삼존불이 있습니다. 119조난위치 표지판이 현위치가 마애불임을 알려줍니다. 길따라 올려다보니 뭔가 호기심을 끄는 돌탑이 보입니다. 돌을 활용해 용을 만들어놓았군요. 용머리는 조각을 해서 달았습니다. 명판을 보니, ‘용탑’이라는 제목 아래에 ‘河己失音 官頭登可’(물 흐르듯 아무 소리 없이 열심히 하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 라는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박제연, 김세희 두 사람의 이름이 있는데 아마도 이 용탑을 만든 사람들이겠죠.


용탑에서 몇 걸음 안 올라가서 보물 159호 마애삼존불이 나타납니다. 큰 바위 벽에 음각으로 그려놓은 것인데 얼핏 보아서는 그림의 윤곽을 잘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안내문을 읽어봅니다.


“방어산 절벽의 바위를 다듬어 선으로 새긴 통일신라시대의 약사삼존불입상이다. 아매불로서는 아주 드물게 만들어진 연대(801)를 새겨, 통일신라 불상조각사를 연구하는데 아주 귀중한 자료이다.


가운데의 본존은 왼손에 들고 있는 약그릇으로 약사여래임을 알 수 있는데, 얼굴이 약간 길고 큰 몸에 비해 어깨가 좁으며 힘없이 표현된 몸은 긴장감이 없다. 100여 년 전 불상의 활력이 넘치던 이상적 표현이 현실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양쪽의 협시보살은 본존을 향해 자연스럽게 서 있는데, 왼쪽은 일광보살로 남성적인 강한 인상이고, 오른쪽은 월광보살로 눈썹 사이에 달무늬가 새겨져 여성적이다.”


삼존불 앞으로 쭉 가면 비로자나불이 나옵니다. 웅장한 바위 벽 앞에 금동으로 조성됐습니다. 바위들의 모습이 오묘하네요. 통천문 형태의 바위가 있는데 여기엔 사람이 살았던 흔적도 보입니다. 문도 있고 장판도 깔렸네요. 게다가 취사를 하였는지 가스통도 있습니다.





돌탑 위에 모신 비로자나불 앞에 제기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불공을 드리는 사람들이 여전히 활용하는 공간인 듯합니다. 방어산으로 가려면 다시 마애불로 돌아와야 합니다. 마애불 오른 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고개가 나옵니다. 이정표엔 방어산 1.25㎞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힘이 절로 납니다. 그런데 제법 많이 걸었다 싶은데, 마애사에서 겨우 550미터밖에 오지 않았군요. 이제부터 등산로엔 바위도 있고 돌부리가 많은 산길입니다.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산의 상층부라 경치도 좋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낮은 산들이 맥을 이루며 누워있습니다. 그 위엔 구름이 제법 두껍게 덮여 있군요.


등산로 첫째 헬기장을 만났습니다. 방어산 0.8, 어석재 5.1㎞라고 이정표에 적혀 있습니다. 마애불에서 340미터 올라온 거리입니다. 이제 능선따라 걷는 길입니다. 산행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기가 있는 등산코스여서 그런지 각종 산악회에서 왔다는 표시를 해놓았네요. 종종 이런 리본이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등산로가 분명하지 않을 때나 길이 헷갈릴 때 말이죠. 정상 400미터 남았다는 이정표를 만납니다. 점점 걸음에 힘이 들어갑니다.




두 번째 헬기장을 지나니 줄을 타고 바위를 오르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 힘들지는 않습니다. 여기를 올라서니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사방이 탁 틔어 속까지 후련해지는 듯합니다. 맞은 편 비탈만 오르면 바로 방어산 정상입니다.


방어산 정상은 멀리서 보면 큰 바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를 장군대라고 부르지요. 물론 정상에는 나무도 자라고 풀도 자랍니다. 지나가는 길 절벽 아래로 내려다보니 아찔합니다. 이 정상에도 방어산의 유래와 등산코스가 그려진 안내판이 있습니다. 해발 530m를 나타낸 방어산 표지석도 있고요.







청명한 날씨라면 멀리 지리산도 보일 법 하군요. 정상에 올라서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북쪽으로 남강이 흐릅니다. 저 강은 얼마 가지 않아 남지에서 낙동강과 만납니다. 강 상류 쪽, 지수 쪽으로 평야들이 많이 보입니다.


서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전설텔링 이야기에서 광개토군의 공격루트로 설정했던 관음사 코스 등산로도 발아래 보입니다. 관음사는 보이지 않고 바로 아래에 있는 소류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쪽 방향은 절벽이기 때문에 가까이 가서 내려다보기 겁이 납니다.




방어산 정상에 올라서니 이야기 속 안라국 병사들의 기개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지형이라면 서쪽의 적을 방어하기엔 천애의 요새란 생각도 듭니다.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는 길, 산성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등산로를 이탈해 찾으면 어딘가 있지 싶긴 한데 이번 글은 전설 현장을 확인하는 수준이라기보다 묵신우 장군 전설이 스민 방어산을 소개하는 수준에서 다녀온 이야기로 들려드렸습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전설텔링)전쟁의 신()(5)

함안 방어산 묵신우 장군에 얽힌 전설


(지난줄거리) 신라의 요청으로 아라가야인 안라국을 토벌하기 위해 남하한 광개토왕의 군사 5만 명은 안라국 서쪽 요새인 방어산을 눈앞에 두고 지수평야에 군진을 칩니다. 항복보다는 항거를 선택한 안라국왕은 아들인 무시우 대장군에게 방어의 책임을 맡기고 방어산 일대에 수비를 강화합니다.


광개토군의 첫 공격은 무시우의 장수 중에 가장 몸이 날랜 쾌수의 정탐에 의해 500명이나 되는 군사가 불화살에 맞아 전멸하게 되고 작전에 실패한 현무는 주군 광개토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광개토의 두 번째 작전은 백호를 안라국에 잠입시켜 국왕을 살해하고 내분을 일으키게 하여 정복하는 방법입니다.


같은 시각, 무시우 역시 쾌수를 시켜 고구려군으로 위장하여 내분을 조장, 고구려군의 전력을 무력화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래서 쾌수와 백호는 대가야 땅 시장에서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백호의 정체를 어렴풋이 눈치 챈 쾌수가 백호에게 시비를 걸어 안라국으로 가지 못하게 막습니다. 그러나 대가야 병사들이 현장에 출동하는 바람에 백호를 놓칩니다. 쾌수는 하는 수 없이 안라국으로 돌아와 무시우에게 상황을 보고합니다.


쾌수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하는 백호는 기회를 틈타 안라국왕의 궁궐로 잠입합니다. 국왕의 침실 앞에서 백호는 쾌수의 등장에 깜짝 놀라고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백호는 쾌수의 실력을 한 번 보았기 때문에 정식으로 무예를 겨뤄보고 싶어 도전장을 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실력을 겨우지만 백호의 참패로 끝납니다.


방어산 정상 높은 기둥에 묶인 백호의 모습을 본 광개토는 주작을 불러 구출작전을 세웁니다. 주작은 안라국으로 들어가 안라국 병사로 위장합니다. 마침내 산채가 있는 방어산 정상까지 잠입에 성공한 주작은 최종 방어선을 뚫고 백호를 묶은 밧줄을 끊습니다. 그러고는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는 주작, 그 뒤를 따라 뛰어 주작의 허리를 잡은 백호, 두 사람은 대형 보자기 낙하산에 의지해 본진으로 돌아옵니다.


광개토의 총공격 명령이 떨어집니다. 방어산 아래쪽은 물샐틈없는 밀도의 고구려 군사들이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습니다. 방어산 기지를 지키고 있는 안라국 군사들에게 비상이 걸렸습니다.


…………………………………………………


“서쪽 골짜기를 사수하라!”

“북쪽 능선이 허술하다. 수비를 강화하라!”


안라국 병사들은 저마다 소리를 지르며 전의를 불태웠습니다.


“자! 오늘은 삼천의 병사가 삼만 대군을 무찌르는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이다. 모두 죽음을 각오하고 적을 맞이하기 바란다.!”

“와아!”


무시우가 바위 위에서 고함을 치자 안라국 병사들은 더욱 큰 목소리로 전의를 다졌습니다.


“적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궁수들은 모두 불화살 발사 준비를 하라!”


궁수부대장 비화가 무시우 옆에서 소리쳤습니다. 비화는 고구려 군사들에게 가장 공격하기 좋은 지점까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동작 그만!”


광개토의 보병부대 사령관인 청룡이 명령하자 대군의 발소리가 뚝 멈췄습니다. 일시에 세상이 조용해졌습니다.


“방패 준비!”


청룡의 명이 떨어지자 고구려군은 모두 일제히 방패를 머리 위에 올렸습니다. 방어산 위에 있던 안라국 병사들은 이러한 고구려군의 카드섹션을 하는 듯 모습에 한편으론 놀라기도 하면서 불화살 공격이 효과적이지 못할 것 같아 걱정도 되었습니다.


안라국 병사들은 무시우 장군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무시우는 표정에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미 모두 알고 있다는 듯한 얼굴입니다. 무시우는 비화에게 신호를 하였습니다.


“모두 화살 끝에 기름주머니를 달아라!”


무시우와 비화는 고구려군이 방패를 이용해 불화살을 막을 것이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각종 식물에서 채취한 기름을 충격에 약한 주머니에 담아 준비했던 것입니다. 이 기름주머니는 화살이 목표물에 꽂히면 그 충격으로 터지게 되고 그와 함께 바로 불이 옮겨 붙어 더 큰 불로 번지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전진!”


청룡의 명령이 떨어지자 방패를 머리에 얹은 고구려 병사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 ! 발소리도 딱딱 맞아떨어졌습니다. 5만 대군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자 안라국 병사들은 공격을 기다리면서도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고구려 군사들 대단하군!”

“무슨 소리야! 우릴 침략하는 적군이야. 한 놈도 빠짐없이 이곳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막아야 우리가 사는 거라구!”

“아, 알았어. 그…래도 멋지지 않냐?”

“어허, 정말 이 친구.”


그때 비화의 손이 올랐습니다. 안라국 병사들은 일제히 화살 끝에 불을 붙여 고구려군을 향해 쏘았습니다. 방패 사이로 불화살이 날아오는 그 모습을 본 고구려 병사 중 담이 약한 자는 그냥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기도 하였습니다.


“불화살이 날아온다. 모두 방패를 빈틈없이 붙여라!”


고구려군의 방패들이 일제히 다닥다닥 붙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대형 융단이 끝없이 펼쳐진 모습이었습니다. 이 광경 역시 감탄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습도 잠시 후면 불지옥 속에서 이글거리는 한낱 장작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고구려 병사들은 방패 위로 떨어지는 화살의 촉감을 느꼈습니다. 광개토와 청룡은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완벽한 작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윽고 들리는 병사들의 비명. 광개토와 청룡의 눈이 더 커졌습니다.


“이럴 수가!”


광개토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습니다. 광개토는 급히 청룡에게 후퇴를 명령했습니다.


“후퇴하라!”


하지만, 전진하던 병사들이 갑자기 후퇴하기란 쉽지 않은 일. 곳곳에서 병사들이 넘어지고 아군의 발에 짓밟히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불화살에 기름을 달아 공격할 줄이야. 적장 무시우의 전술이 신묘하구나!”


광개토는 아군의 피해에 속이 쓰리긴 하지만 자신의 전술을 간파하고 그에 능가하는 전술을 펼치는 무시우의 병법에 경의를 표할 정도로 탄복했습니다.


1차 공격에 실패하고 물러난 광개토군은 두 시진이 지난 후에 다시 공격을 시도했습니다. 이번에는 궁수부대를 앞세워 역으로 화공을 펼친다는 계획입니다. 방어산 자락에 있는 모든 나무를 불태워 무시우군이 불과 그을음에 고통을 받게 하고 이와 더불어 공격선을 확보하려는 전술입니다.


방어산 정상 바위 위에서 고구려군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무시우는 광개토의 전술을 간파하고 곤혹스런 표정이 되었습니다. ‘이를 막을 방법이 마땅히 없다. 산 아래에서부터 불을 질러 타오르게 하면 방어산 기지는 그야말로 초토화가 된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른 무시우는 자신이 직접 나서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고구려 궁수부대가 점점 가까워 오자 무시우는 바위 끝에 우뚝 서서 큰 날개를 펼쳤습니다. 한 번 크게 날개를 펄럭이자 무시우의 몸이 하늘로 솟구쳤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고구려 병사들에게로 날아갔습니다. 무시우의 이런 모습을 본 고구려 병사들은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1(전설텔링)20150106전쟁의신5


“아니,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날아다닐 수가 있단 말인가?”

“안라국에 인간새가 있다더니 사실이었구만.”


광개토 역시 무시우의 이런 보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냉철하기로 누구보다 뒤지지 않는 광개토왕입니다. 이 순간이 무시우를 쓰러뜨릴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지요.


“궁수는 일제히 적장을 향해 화살을 퍼부어라!”


무시우는 어느새 고구려 궁수들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와 있었던 것입니다. 고구려 궁수들이 쏜 화살이 까맣게 밀려왔습니다. 무시우는 다시 날개를 힘차게 퍼덕여 몸을 뒤로 뺐습니다. 화살들이 다시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무시우는 좌우로 움직이면서 화살통에서 불이 붙은 화살 다섯 개를 꺼내 걸고 시위를 당겼습니다. 불화살은 그대로 고구려 궁수들을 쓰러트렸습니다. 무시우의 이런 모습을 본 고구려 궁수들은 기겁하여 화살을 쏠 엄두를 내지 못하였습니다.


“궁수는 총공격하라!”


청룡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그제야 고구려 궁수들은 다시 화살을 장전하고 무시우를 향했습니다. 무시우는 계속 불화살을 쏘았고 방어산에서도 안라국 궁수들이 고구려군을 향해 화살을 쏘았습니다. 고구려 궁수의 수가 너무 많다 보니 무시우가 아무리 쓰러트려도 화살공격은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이런 공방이 두 시진(4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이젠 무시우도 점점 지쳐갔습니다. 무시우의 손에 쓰러진 고구려군은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끝없이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느라 무시우도 이제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잠시 방심한 사이, 고구려군의 화살 하나가 날갯죽지에 박혔습니다.


그러나 무시우는 전혀 개의치 않고 고구려군에게 화살을 퍼부었습니다. 화살이 떨어지면 방어산으로 돌아가 화살을 챙겨 바로 날아와 공격을 이어갔습니다. 광개토는 무시우의 이런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다가 이 전쟁에서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후퇴한다.”

“존명!”


옆에 있던 청룡이 광개토의 명을 받아 전군 후퇴를 명했습니다. 그렇게 전쟁은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방어산 기지에선 환호가 이어졌습니다. 모두 서로 부둥켜안고 좋아했습니다. 몇몇 병사들은 울먹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광개토는 안라국 정벌을 포기하고 군사를 돌렸습니다. 5만 명이었던 고구려군은 4만 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광개토는 소수의 병력으로 자신의 대군에 맞선 무시우의 용맹과 지혜를 높이 샀습니다. 무시우 장군 같은 군인이 있는 안라국이 부럽기까지 하였습니다. 비록 전쟁에서 이기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고구려 대군이 물러났고 안라국은 다시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안라국 사람들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자녀들과 함께 방어산을 오르며 무시우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무시우 대장군은 말이야, 아주 적은 군사로 5만이 넘는 고구려 군사를 물리치고 우리 아라가야를 지킨 훌륭하신 분인데….” ()


[관련기사]


(전설텔링)전쟁의 신()(1)

(전설텔링)전쟁의 신()(2)

(전설텔링)전쟁의 신()(3)

(전설텔링)전쟁의 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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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전쟁의 신()(2)

함안 방어산 묵신우 장군에 얽힌 전설


(전편 줄거리) 한반도 남쪽, 가야의 여러 부족국가들과 신라, 백제가 서로 경계를 이루고 있던 서기 400년 경 신라의 잦은 침범으로 위협을 느끼던 안라국은 백제와 왜를 끌어들여 공동방어 정세를 이룹니다. 이에 신라는 삼국 연합군에 대항하려고 고구려를 끌어들입니다.


신라의 원군 요청을 받은 광개토는 즉시 출병을 합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신라의 요청에 따른 출병을 넘어 가야와 왜까지 고구려에 복속시키려는 계획이 들어있었습니다. 국내성에서 출발한 광개토의 군사들은 남하하는 곳곳에서 주둔군을 차출, 안라국 접경지역에 도착했을 때엔 그 군사의 수가 무려 5만에 이르렀습니다.


고구려 광개토가 공격해온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안라국 왕과 신하들은 고민에 빠집니다. 싸울 것이냐 항복할 것이냐. 겨우 3000의 군사에 불과한 안라국이 5만의 광개토 군을 상대한다는 것은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격이어서 일부 신하들은 왕에게 항복을 간합니다. 한참 논란 끝에 안라국왕이 결단을 내립니다. 항전하라.


안라국왕의 아들이자 대장군인 무시우가 3000의 군사를 이끌고 방어산에 진지를 구축합니다. 방어산은 안라국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입니다. 지수평야에 진지를 구축한 광개토와 일전을 앞둔 긴장감이 흐릅니다.


사위를 분간할 수 없는 깜깜한 밤. 방어산 요새 바위 위에 올라선 무시우는 너무 조용한 광개토 군의 동태가 수상하다 여겨 부하 장수 쾌수를 시켜 정찰하도록 합니다. 동작이 빠른 5명의 정찰대와 함께 산 아래로 내려간 쾌수는 광개토 군 선발대를 발견합니다. 적의 수는 500.


쾌수와 정찰대가 쏘아올린 불화살을 신호로 방어산 정상 무시우 장군의 화살부대는 일제히 불화살을 퍼붓습니다.


………………………………………………………………………………


“들켰다. 퇴각하라!”


광개토의 군사들은 일순 당황했고 허둥거렸습니다. 광개토의 부하장수 중 살수로 명성이 자자한 현무가 퇴각명령을 내렸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불화살은 빈틈없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날아오는 불화살을 멍하니 보고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졌습니다. 불화살을 가슴에 맞고 온몸을 비틀거리다 불에 타 목숨을 잃는 병사들도 부지기수였습니다.


현무는 이를 갈았습니다. 아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담덕(광개토의 본명) 형님을 모시고 수많은 전쟁을 거치는 동안 자신의 살수부대가 선발을 맡아 지금까지 한 번도 실패해 본 적이 없었고 이번 작전도 그야말로 어둠과 같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적에게 노출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장군, 어서 피하십시오. 불화살은 최대한 저희들이 막아보겠습니다. 어서요!”


현무는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습니다. 부하들이 방패로 날아오는 불화살을 막으면서 후퇴하였습니다. 어느 정도 불화살의 사정권에서 벗어나자 부하들은 모두 쓰러져 있었고 주변 숲은 불길에 휩싸여 더는 들어갈 수도 다시 나올 수도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500명의 부하들을 허무하게 잃은 현무는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자신의 계획에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돌이켜보았습니다. ‘지수평야에 진을 치고 안라국 무시우와 대척을 이룬지 사흘. 그동안 정적만 있었을 뿐 아무런 충돌도 없었다. 벌써 공격을 감행했을 수도 있고 더 공격을 미룰 수도 있었다. 적은 대규모 병력이 일시에 공격할 것이란 계산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뻔한 싸움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정세를 역이용해서 살수들로만 구성한 현무 군사들이 몰래 잠입해 적을 교란시켜 전쟁을 승리로 이끌 계획이 아니었던가.’ 현무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억지로 옮기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정면에서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습니다. 현무는 자연스레 고개를 돌려 방어산 정상을 쳐다보았습니다. 길게 띠를 이룬 횃불들이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역풍이 불어 소리는 약했지만 적의 환호성도 들리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그 횃불과 환호는 더욱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폐하! 살수부대의 작전이 실패한 것 같습니다.”


진지 끝에서 망을 보던 병사가 광개토의 본진으로 쫓아와 아뢰었습니다.


“살아남은 아군이 하나도 없느냐?”

“지금으로선….”

“현무 장군은?”


광개토는 자신의 오랜 벗이자 동생인 현무의 생사가 궁금했습니다. 적장 무시우의 전력과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현무의 작전계획을 윤허한 것이 못내 후회가 되었습니다. ‘좀 더 살펴본 뒤에 작전을 펼칠 걸 그랬어.’ 광개토는 주먹을 꽉 쥐었습니다. ‘무시우, 보통 놈은 아니구나.’


“폐하! 현무 장군이 살아 돌아왔습니다.”


다른 병사가 황급히 달려와 보고하였습니다. 현무가 살아있다는 말에 광개토는 병사의 추가 보고도 듣지 않고 천막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병사가 뒤따라 나왔습니다.


“현무 장군이 어디에 있느냐?”

“이제 막 군진에 들어와서 이리로 오고 있사옵니다.”

“그래. 현무 장군과 함께 살아 돌아온 병사가 몇이나 되더냐?”

“그게…, 현무 장군 혼자이옵니다.”


이윽고 현무가 광개토 앞에 다다랐습니다.


“폐하, 죽여주십시오. 이놈이 작전에 실패하고 군사들을 모두 잃었사옵니다.”


현무는 광개토 앞에 무릎을 꿇고 통곡을 하였습니다.


“일어서거라. 내 잘못도 크다.”

“제가 고집만 피우지 않았더라도….”

“이젠 지나간 일. 되씹어서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


광개토는 현무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부관, 주작, 청룡, 백호 장군에게 가서 작전회의가 있으니 속히 모이라고 이르라!”


한편, 방어산 정상 무시우의 군진에선 승리의 기쁨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안락국 군사들의 환호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쾌수 장군이 다섯 명의 정찰병과 함께 군진으로 돌아오자 더욱 환호성이 커졌습니다.


“수고했다, 쾌수. 이번 작전은 완벽하게 우리의 승리다. 이제 적들도 함부로 우리에게 달려들지 못할 것이다.”

“예, 이제 시작입니다. 우리의 화력을 똑똑히 보았을 테니 인해전술로 쳐들어오진 못하겠지요. 대신 다양한 전술로 공격을 시도할 것입니다.”

“그래, 광개토가 어떤 전술을 펼칠지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무시우는 쾌수의 어깨에 손을 얹고 군진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적의 선발대는 우리의 불화살에 전멸했다. 떨고 있는 적들을 보아라! 우리의 승리가 눈앞에 있다! 안라국 만세!”

“안라국 만세! 무시우 장군 만세!”


무시우는 병사들 앞에서 쾌수를 안았습니다. 환호성은 더 커졌습니다.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높이 치솟았습니다. 무시우는 그런 병사들에게 다시 긴장을 풀지 말고 경계할 것을 지시하고 군막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무시우를 따라 쾌수를 비롯한 마금, 비화, 혜목 장군이 들어왔습니다. 광개토에게 현무와 주작, 청룡과 백호가 있다면 무시우에겐 이 네 명이 있습니다. 쾌수가 발빠른 움직임이 장점이라면 마금은 다루지 못하는 쇠가 없을 정도로 무기제작에 뛰어나며 검이면 검, 창이면 창 무예 또한 출중해 맞붙어 그를 당해내는 자가 없을 정도입니다.


또한, 비화는 궁술에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는 장군입니다. 그가 쏜 불화살이 목표물에서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혜목은 무시우의 책사입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제갈량과 비견되는 인물입니다. 천리안을 가진 데다 통찰력 또한 뛰어나 작전을 펼침에 있어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혜목, 이번엔 광개토가 어떤 작전으로 공격할 것 같은가?”

“우선 첩자를 활용하여 우리의 전력을 탐색하려 할 것입니다. 연후 우리 군의 사기를 꺾으려 시도할 것이며 어쩌면 궁내 폐하를 시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과연 그러하다. 대비책은 있는가?”

“예, 장군.”


혜목의 이야기를 들은 무시우와 나머지 세 명의 장군은 감탄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무시우의 군막은 밤늦게서야 불이 꺼졌습니다. 이튿날 무시우의 군사들은 이리저리 바삐 움직였습니다. 새로운 작전에 맞춰 군진을 다시 짰기 때문입니다.


마금 이끄는 군사들은 백제와 대가야에서 안라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길목을 지켰으며 비화는 군사들을 길목은 물론 산으로 침투할 적에 대비해 위치를 폭넓게 잡아 배치하였습니다. 지난밤 정찰 업무를 완벽히 성공시킨 쾌수에겐 다시 특별한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바로 적진 속으로 들어가 광개토군의 정보를 캐오는 첩보작전이 떨어진 것입니다.


쾌수는 아침 일찍 민간인 복장을 하고 대가야 쪽으로 떠났습니다. 다라국의 민간인으로 위장해 광개토군에 지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괴나리 봇짐 하나를 달랑 메고 안라국 북쪽으로 흐르는 남강을 건넌 쾌수는 어젯밤 혜목이 신신당부한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여보게, 쾌수. 이번 전쟁의 승패는 자네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세. 적진으로 들어가면 우선 방어산에 전쟁의 신이 있다고 소문을 퍼뜨리게. 특히 그 소문이 거짓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돌도록 해야 하네. 그래야 우리 장군께서 모습을 드러낼 때 그들의 사기가 더 떨어질 테니까. 그 다음엔 광개토 휘하의 각 부대 장수들의 성향이 어떤지 파악하게. 그중에 혹시 이번 선봉대를 지휘한 장수가 있다면 그의 신임을 얻도록 하게. 적절한 때에 쓰임이 있을 것이야.”


한편, 광개토의 휘하 장수 중에서 말이 없고 무예가 특히 뛰어나서 신임을 두텁게 얻고 있는 백호 장군 역시 민간인 복장을 하고 군진을 나섰습니다. 그는 안라국 안으로 잠입해 방어산의 동태를 살피고 적당한 시기에 국왕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았습니다. 광개토는 그 틈을 이용해 공격을 펼칠 계획이었습니다.


방어산 인근이야 전쟁의 기운으로 숨이 막힐 정도의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다라국 쪽은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다라국 남부지역 시장은 평소대로 각국의 교역이 활발했습니다. 특히 다라국은 백제와 신라, 왜에까지 교류가 활발해 어느 때나 시장이 번성했습니다.


쾌수는 자신이 살고 있는 안라국도 외국의 위협을 받지 않고 이렇게 평화스러운 시절을 보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쾌수의 눈에 독특한 물건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옥으로 만들어진 목걸이였습니다. 아내에게 꼭 어울리는 장신구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거, 얼마나 하오?”

“두냥이오. 귀한 물건이라 없어서 못판다오. 딱 하나 남았으니 댁은 횡재한 거요.”


장사치가 너스레를 떨면서 쾌수 눈앞에다 옥목걸이를 들이밀었다.


“잘 보세요. 이 옥빛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지간한 미녀가 아니면 소화하지 못하는 고급품이라오.”

“두냥이면 너무 비싼데….”


쾌수가 망설이자 장사치는 더욱 곰살맞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비싼 데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근데, 보아하니 손님의 부인께서 미인이 아니신 모양이오. 이런 구하기도 어려운 옥목걸이를 두고 망설이는 것을 보면?”

“거참, 상술이 보통 아니구료. 알겠소. 내 아내가 미인이라서 사는 거요.”

“아이고, 대인이십니다. 통이 여느 사람과는 다른 분이군요. 예쁘게 포장해드리리까?”

“포장은 필요 없고! 옛소. 한냥!”

“뭐요? 한냥?”


장사치의 배실배실 웃던 표정이 일순 일그러지며 험상궂게 변하였습니다. 쾌수 역시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패악질을 벌일 기세로 으르렁거렸습니다.


“좋소. 그럼 한냥 반!”

“아니, 한냥 두푼!”


그렇게 실랑이를 하는 동안 쾌수 뒤쪽으로 온몸에서 무거운 기운이 서린 한 사내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하지 못할 쾌수가 아니었습니다. 백호 역시 방금 지나친 사내의 기운을 감지하였습니다. 자신과 맞먹는 강한 에너지를 느끼고는 이마에서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살짝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장신구 매점 앞에 서있던 사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다음 주에 계속 됩니다.)


[관련기사]


(전설텔링)전쟁의 신()(1)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3)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수지봉 월명총에 얽힌 전설


(전편 줄거리)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한 초겨울 역녀 월명은 다른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이후에도 공식 업무가 끝나는 유시반각까지 기다렸다가 퇴근할 무렵이었습니다. 그때 멀리서 말발굽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옵니다. 경주에서 출발해 나주로 가는 파발관원인데 업무 마감시각 안에 도착하려다 너무 지친 나머지 당도하자마자 말에서 떨어집니다.

월명은 말을 진정시키고 관원을 보았는데 여느때와는 다른 감정을 느낍니다. 파발관원이 식사대접을 청하자 처음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식사를 합니다. 첫눈에 반한 파발관리 수영은 다음날 나주로 떠났고 다시 만날 것이라고 전혀 생각도 않았는데 다음날 저녁 경주로 돌아가던 길에 다시 함양으로 옵니다.

좋아하는 마음은 있었어도 기대하지 않았던 만남이어서 더욱 반가웠지만 월명은 오히려 자신의 마음과 달리 수영에게 얄밉게 행동합니다. 수영이 처음엔 자신이 착각을 하고 무례하게 대했나 생각이 들어 죄송한 마음을 나타내는데 월명이 짓궂은 장난을 쳤다는 것이 드러남으로써 서로의 관심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날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월명의 집으로 간 수영은 월명의 아버지지로부터 집에서 자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월명의 아버지도 수영에게 관심이 간 것입니다. 밤늦도록 막걸리를 주거니받거니 하며 이야기를 나누더니 어느새 장인, 사위 하며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열흘 후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경주로 떠났던 수영은 약속대로 열흘 후 함양으로 아예 이사를 옵니다. 여기서 거주하며 장사를 시작한 수영은 파발꾼의 인맥을 살려 전국을 대상으로 한 행상을 시작합니다. 2년 만에 제법 많은 돈을 번 수영은 정식으로 월명에게 청혼하여 결혼을 하게 됩니다.

열흘 간의 신혼생활을 행복하게 보낸 마지막 날 수영의 고향 경주에서 편지가 옵니다. 편지를 본 수영의 얼굴에 어둠이 깔립니다.


……………………………………………………………………………………..


“아들 보거라. 멀리 있으니 자주 근황을 알 수도 알릴 수도 없어 마음이 편치 않구나. 각설하고, 어머니가 위독하시다. 열일을 제쳐놓고 속히 집으로 오길 바란다.”


아버지의 친필 편지였습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급하였는지 글씨도 거의 초서에 가까웠습니다. 편지에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멀리 함양 처가에서 사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속내가 들어 있어 수영은 죄송하면서도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주지 않는 아버지가 서운하기도 하였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월명이 수영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위독하시답니다. 급히 오라는 전갈이군요.”

“어떻게 위독하시던가요?”

“그것까진 서찰에 쓰여있지 않아요. 좀체 이런 편지를 쓰지 않으시는 아버지께서 짤막하게 글을 써서 보내신 걸 보면 어머니 건강이 몹시 안 좋은가 보오.”

“여기 걱정은 마시고 얼른 가서 어머니를 살펴드리세요.”


수영은 아내 월명을 꼭 안았습니다.


“어머니 건강이 좀 나아지면 바로 오겠소. 나 없는 동안 건강 잘 챙기고 아버님도 잘 보살펴드리세요.”


장인에게도 사정을 이야기한 수영은 마구간에서 말을 꺼내어 올라탔습니다. 편지를 전해줬던 친구 득수와 함께 떠났습니다.


남편이 떠난 자리가 휑한 것처럼 월명의 마음도 뻥 뚫린 듯하였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위독하다는 데도 너무 멀리 있다 보니 찾아뵙지 못하는 게 죄송하단 생각이 들었는지 월명은 장독간에 정한수를 떠 놓고 매일 밤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습니다. 아무리 치성을 드려도 시어머니에게 차도가 없는 건지 남편은 돌아오지도, 편지를 보내지도 않아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월명은 금세 올 것 같던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서서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병구완을 하다 남편마저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너무 궁금하고 답답해 경주로 나설까 하다가 또 행여나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라면 서로 길이 엇갈릴 수도 있는 일이므로 선뜻 나서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추운 겨울이 다 지나고 따뜻한 봄이 되었습니다. 산에 들에는 온갖 꽃들이 다시 생명을 얻어 피어나고 나비와 새들이 날아들었습니다. 새순이 돋는 나뭇가지에는 새들이 몰려와 아름다운 소리로 지저귀었습니다.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월명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그래, 이제 봄이 되었으니 어머니의 건강도 새생명을 얻은 것처럼 쾌차하실 테고 남편도 경쾌한 말발굽소리를 내며 돌아올 거야.’ 월명은 다시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얘야, 이 죽 조금이라도 먹거라. 속이 든든해야 기운도 차리지.”

“죄송해요, 아버지. 목이 따가워 음식을 삼킬 수가 없어요.”


월명은 정한수 앞에서 치성을 드리다 한 번 쓰러진 뒤론 건강이 급격히 악화해 몸져누운 지 한 달이 다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날 시어머니의 건강을 기원하며 치성을 드린 지 한 달 보름만의 일이었습니다.


남편 수영에게선 두달 반이 지나도록 전혀 연락이 없습니다. 월명은 이제 날도 따뜻해졌기 때문에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직접 찾아가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아버지, 근 석 달이 되었는데도 그이의 소식이 없으니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역장 나리께 사정을 하여 말을 타고 경주엘 다녀오겠습니다.”

“그 몸으로 어딜 간다는 거냐? 그리고 역마를 사사로이 이용하고자 청을 넣는다는 것은 역장님을 난처하게 만드는 것이니 옳지 않은 일이다. 내가 경주로 가는 행상을 통해 서찰을 보낼 터이니 넌 딴 데 신경 쓰지 말고 몸조리나 잘 하거라.”


아버지 말씀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월명은 너무 갑갑한 나머지 자신이 직접 가지 않으면 불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 하신 말씀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마음이 불안해서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이러다 더 병이 날 것 같아요.”


딸의 마음병이 더 심해질 거라는 말에 아버지도 더는 만류하지 못하였습니다.


“알겠다. 그렇다면 채비를 할 테니 국밥집 둘금이와 둘금이 오래비랑 셋이 함께 다녀오너라.”

“예, 고맙습니다. 아버지.”


월명은 곧 남편 수영을 만날 수 있다는 기분에 몸이 훨씬 나아진 듯하였습니다. 월명은 바로 둘금 어머니가 운영하는 국밥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둘금이네는 월명네와 친척보다 더 가까이 지내는 이웃입니다. 월명은 기운도 없고 숨도 가빴지만 기쁜 마음에 아픈줄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아주머니, 아버지께서 한석이 오라버니랑 둘금이랑 함께 경주 가는 것을 허락하셨어요. 아주머니께서도 허락을 해주세요.”

“그리 좋으냐? 그 먼 길을. 지금 니 몸 상태로선 쉽지 않은 여행이 될 텐데….”

“괜찮습니다. 이제 기운이 솟는 것 같아요.”


국밥집 둘금 어머니의 반 허락을 받은 월명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넉넉잡아 닷새 후면 남편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것 같았습니다. 어찌 기운이 났던지 월명은 둘금 어머니에게 국밥을 한 그릇 달라고 했습니다.


“죽도 제대로 못 먹는 니가 이 국밥을 삼킬 수 있겠냐? 최대한 부드러운 고기로 국밥을 떠줄 테니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거라.”

“네, 고맙습니다. 어머니.”

“하하하. 녀석. 늘 아지매 아지매 하더니 웬, 갑자기 어머니야? 하하하.”


월명은 둘금 어머니로부터 국밥을 건네 받고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월명의 속이 이상해졌습니다. 먹은 것도 없는데 뭔가가 식도를 타고 거꾸로 치솟아 올라오는 듯하였습니다.


“우웩!”


분명히 속에서 굵직한 뭔가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 듯했는데 그러나 아무것도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웩, 우웩!”


연거푸 토가 올라오자 월명은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둘금이 어머니가 따라와서 등을 두드려주었습니다.


“얘가, 왜 이러냐? 먹은 것도 없다 하더니? 가만!”


둘금모는 뭔가 생각난 듯이 손가락을 짚었습니다.


“월명아, 달거리 끝난 게 언제냐? 혹시 임신한 거 아니냐? 아이구, 맞구만. 맞아!”


선뜻 대답을 못하고 멍하니 있는 월명을 바라보며 둘금모는 경사가 난 듯 좋아라 하였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평상으로 다시 돌아가더니 손님들에게 큰소리고 말했습니다.


“손님들, 오늘은 내가 너무 기쁜 날이라 밥 더 드시고 싶은 분은 말씀하세요. 얼마든지 공짜로 더 드리리다. 내 딸이나 진배없는 월명이 임신을 했어요. 아이를 가졌단 말이오. 하하하!”


월명은 살며시 자신의 배를 만져보았습니다. 아직 느낄 수는 없지만 이 속에 사랑하는 남편과 자신의 아이가 들어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아가, 이렇게 우리가 만나는구나. 너를 만나서 아주 행복하다.’ 월명의 입덧은 어느새 멎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다시 배가 고파졌습니다.


다시 자리로 돌아간 월명이 국밥 앞에 앉아 숟가락을 뜨려고 하자 속이 다시 울렁거렸습니다.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성스레 담은 국밥을 한 술도 뜨지 못하고 그대로 일어서려니 괜히 둘금 어머니에게 미안하였습니다.


“어머니, 죄송해요. 맛있게 국밥을 담아주셨는데 이렇게 먹지도 못하고….”

“괜찮아. 무슨 소리냐? 입덧을 하면 누구나 그런 것을. 혹시 따로 먹고 싶은 것은 없어? 이 아줌씨가 뭐든 다 해줄 테니 말해보거라.”

“아뇨. 없어요. 이제 집에 갈게요. 경주에 갈 채비도 해야 하고.”

“참, 그렇구나. 경주엘 간댔지? 임신 초기에 몸조리를 잘하지 못하면 애가 떨어지는 수가 있는데…. 조금 더 있다가 아기가 뱃속에서 자리를 잡고 나면 떠나는 게 어떻겠니?”


순간 월명의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아기가 생겨 그저 행복하였던 것은 장거리 여행을 가야 하는 상황을 연결지어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꺼번에 할 수 없는 두 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지자 월명은 갈등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의 소식이 너무나도 궁금해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데 뱃속 아기 때문에 장기간 여행을 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월명의 기분은 다시 우울해졌습니다. 남편을 보러 갈 기분에 날아갈 듯 기뻤는데 이제 그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고민 끝에 하는 수 없이 아버지 말씀대로 경주로 가는 행상을 통해 기별을 넣는 수밖에 없습니다.


기별을 넣은지 또 한 달이 지났습니다. 마당을 오락가락하며 모이를 쪼아 다니던 암탉들도 더위를 피해 마루 아래로 들어가 수시로 날개를 퍼덕거렸습니다. 월명은 매일같이 남편에게서 올 편지를 기다렸습니다. 마을 어귀까지 나가 기다리길 밥 먹듯 하였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물론이고 편지를 전해줄 법한 행상들의 모습도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월명은 다시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어쩌면 지난 한 달은 아이 때문에 버틸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밤마다 월명을 괴롭혔습니다. 뒷산 소쩍새가 울어 깊은 밤 적막을 몇 번이나 깰 때까지 잠들지 못하던 월명은 새벽녘 샛별이 떠오를 녘에서야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월명이 잠들었을 때 희한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안개 자욱한 길을 거닐고 있는데 갑자기 절벽이 나타나더니 남편의 몸이 절벽 아래로 쑥 빠져버리거나 또 다른 날에는 괴물이 나타나 남편을 덥석 잡아가는 그런 꿈이었습니다.


그런 남편의 손을 잡고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자신의 힘으론 역부족입니다. 꿈속에서 남편을 잃고 허우적거리다가 깨어 보면 벌써 햇볕이 창문을 열어라고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월명의 이마에는 땀이 흥건히 맺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뒤숭숭한 꿈 때문에 대청마루에 앉아 고개를 떨어뜨리고 멍하니 마당을 바라보고 있는데 커다란 그림자가 시선에 들어왔습니다. 월명은 서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행상차림을 한 남자가 태양을 등지고 월명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반쯤 뜬 눈으로 들어온 사내를 보고 월명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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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1)

(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2)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전설텔링)효자 이평과 무량산 호랑이(마지막편)

고성 대가면 유흥리 실존인물인 효자 이평에 얽힌 전설


(지난줄거리) 아버지의 병환이 심해지자 이평은 직접 대변을 확인하면서까지 극진히 부친간호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정성에도 아버지는 세상을 하직하고 이윽고 갑자기 몸이 쇠약해진 어머니마저 병환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납니다.


부친에 이어 모친까지 연이어 돌아가시자 이평은 자신의 효가 부족하여 그렇다며 슬피 웁니다. 며칠째 산소에서 울다 결국 쓰러진 이평을 마을사람들이 데려와 간호를 합니다. 기력을 어느 정도 되찾은 이평은 부모님 산소에서 시묘살이를 하겠다고 합니다. 워낙 고집이 완강한 터라 마을 어르신들도 더는 말리지 못하고 묘 옆에 움막을 짓는데 도와줍니다.


이평의 소문이 자자해지자 함께 공부하던 이웃마을 아이들이 시샘을 합니다. 갑현이를 비롯한 아이들은 밤에 몰래 귀신으로 변복해 이평을 놀래킬 요량으로 산으로 들어서지만 짐승의 소리와 바람소리에 되레 겁을 먹고 줄행랑을 칩니다.


이평은 조만간 겨울이 닥치면 지하에 계신 부모님께서 추워하실까 염려되어 산소 주변에 석축을 쌓기 시작합니다. 가까이 있는 돌부터 차곡차곡 쌓아나갔지만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그래서 먼곳까지 가서 돌을 운반하려다 보니 금세 지쳐버립니다. 그렇게 2개월이 지났습니다.


추위가 닥쳤습니다. 하루는 밤늦도록 산소를 몸으로 감싸며 쓰다듬다가 이평은 피로에 지쳐 잠이 들고 맙니다. 몸에 성에가 내렸는데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평의 꿈에 부모님이 나타납니다. 얼굴만 보고 돌아가는 부모님을 가지 말라고 부릅니다.


이평을 감싸고 있던 호랑이는 이평이 신음소리를 내자 흔들어 깨웁니다. 이평은 깜짝 놀라지만 호랑이가 자신을 잡아먹지 않은 데다 사람의 말까지 하자 이것 역시 꿈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꿈이라고 생각하니 호랑이가 그렇게 두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평은 호랑이와 농담도 주고받으며 하룻밤을 보냅니다.


………………………………………………………….


이평의 이야기를 쭉 들은 호랑이는 이평이 괜찮은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느 인간들은 배은망덕하고 욕심에 눈이 멀어 이웃을 해하고 부모형제마저 배신하기를 죽먹듯 한다는데 이평이라는 이 아이는 전혀 그런 사욕이 없으며 부모님을 극진히 모셨으며 돌아가신 후에도 이렇게 3년 동안이나 시묘살이를 하겠다니 이처럼 가상한 아이가 어디 있겠냐 싶었습니다. 이평도 호랑이의 사연을 듣고 싶었습니다.


“내가 태어난 곳은 백두산이야. 이땅에서 가장 높은 곳이지. 내 형제는 모두 여섯인데, 제일 맏형은 낭림산맥에 살고, 둘째는 함경산맥, 셋째는 마천령, 넷째인 나는 태백산맥, 다섯째는 소백산맥, 막내는 묘향산맥에 살아. 매년 첫 호랑이날에 우리가족은 백두산에 모여 함께 지내지.”

“그럼 섣달그믐께나 여길 떠나야겠구나. 여기 온지 얼마나 됐는데?”

“지난 가을에 무량산에 왔어. 온지 얼마 안 되어 너의 울음소리를 듣고 부모님이 돌아가셨구나 알게 되었지. 너 참 서럽게 울더라.”

“그랬구나.”

“백두산으로 돌아가기 전까진 네 부모님 산소 가에 석축을 쌓는 일 도와주고 싶은데, 같이 할까?”

“그렇게 해주면 나야 좋지!”


이평은 기분이 좋아 호랑이의 목을 끌어안았습니다. 털이 부드럽고 따뜻했습니다. 보름달이 서쪽 들판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서당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의 소리가 시끌벅적해졌습니다. 오늘은 훈장선생님이 이평의 이야기를 화두삼아 꺼낸 것이 논쟁으로까지 번졌습니다.


“갑현아, 넌 평이한테 무슨 감정이 있는 거니? 가서 확인해본 것도 아니면서 너무 심한 말을 한 거 아냐?”


시형은 수업시간 때 갑현이가 이평에 대해서 거짓효자라고 한 것에 대해 친구들 앞에 사과하라고 계속 주장했습니다. 갑현이의 친구들은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두둔하고 나서는 바람에 논쟁이 격해졌는데, 훈장이 그 논쟁을 중단시키지 않았다면 싸움까지 벌어졌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런 그들이었기에 수업이 끝나자 다시 말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우린 한 마을에 살기 때문에 평이가 어떤 아이인지 너희들보다 훨씬 더 잘 안다. 그런데, 너희들은 평이를 얼마나 알고 있기에 가짜 시묘살이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냐? 평이가 시묘살이하는 곳에 가보기나 하고 그런 말 하는 것이냐?”


시형이 갑현에게 쏘아붙였습니다.


“너희들은 평이 말만 믿고 객관적으로 현실을 볼 줄 모르는구나. 생각을 해봐라. 이 겨울에 산에 어떻게 혼자 지낼 수가 있으며, 산짐승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조그만 움막에서 혼자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참 어리석기는.”

“그래, 니 말대로 평이가 시묘살이를 하지 않는다고 치자. 벌써 두 달째 양식이 떨어졌을 때 말고는 마을에 내려온 적이 없는데, 그러면 평이가 어디서 잔다는 말이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어디 자는 데가 있겠지. 아니면 너희들 몰래 집에 와서 새벽에 다시 산으로 돌아가든가.”

“그걸 말이라고 하니? 평이가 그럴 이유가 없잖아. 하루 이틀 집에서 잔다고 해서 죄가 되는 것도 아닌데 몰래 숨어서 자고 갈 이유가 없는데 왜 그렇게 억지만 부려?”

“좋다. 그러면 지금 당장 평이가 시묘살이 하는 곳으로 함께 가보자.”


갑현이는 평이가 효자라고 온동네 소문난 것에 시샘이 나서 거짓효자라고 억지주장을 하고 짐작한 것을 사실처럼 밀어붙인 거였습니다. 그게 먹혀들지 않자 시묘살이 현장을 함께 확인하러 가자고 말해버린 것인데 평이가 시묘살이를 하고 있을 게 뻔하여서 괜히 말했나 후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 내뱉은 말이어서 주워 담을 수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이평이 시묘살이를 하고 있는 산으로 향했습니다. 한편, 이평과 호랑이는 무량산 계곡에서 반듯한 돌을 고르느라 여기저기 헤매듯 다녔습니다. ‘심봤다!’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물론 이 소리는 이평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겐 ‘어흥!’ 하는 소리로 들렸을 겁니다. 이평은 호랑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야, 멋진 돌이네!”

“아직 감탄하긴 일러. 이보다 더 멋진 돌들을 계속 찾아낼 테니까!”


이평은 돌을 큰 주머니에 넣어 호랑이 등에 걸쳤습니다. 이평도 괜찮은 돌 몇 개를 주워 지게에 얹었습니다. 어느 정도 모양 있게 석축을 쌓으려면 하루에 몇 번을 왔다 갔다 해야 하기 때문에 이평과 호랑이는 서둘러 시묘 움막으로 향했습니다. 호랑이가 한참 앞서 걸어갔습니다. 이때 아이들은 움막에 다다랐습니다.


“평아, 우리 왔다!”


이평과 가장 친한 친구인 시형이가 큰소리로 불렀습니다. 아이들이 움막 가까이 다가갔는 데도 이평의 인기척은 나지 않았습니다. 시형은 이상하다 생각하고 움막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평의 부모님 산소 뒤 석축만 쌓다 만 채로 있어 썰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봐라, 내가 뭐랬어! 3년 시묘살이? ! 아마 3일 시묘살이하고 어디로 내뺐을 거야, 분명히!”


갑현이가 시형이와 아이들에게 거드름피우듯 턱을 까딱까딱하며 큰소리를 쳤습니다.


“혹시 무서운 산짐승에게 물려간 것은 아닐까?”


시형은 덜컥 걱정이 되었습니다. 시형이는 묘소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며 이평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이평의 모습이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시형과 아이들이 이평에게 잘못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걱정을 하며 여기저기 찾아다니고 있는 사이에 갑현은 자신을 따르는 아이들과 함께 움막에 불을 질렀습니다. 시형이 ‘불?’ 하는 불길한 느낌이 들자마자 움막 쪽을 반사적으로 돌아보았습니다.


“갑현이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주인도 없는 움막, 놔두면 뭐할 건데?”

“너, 정말 천벌을 받는다!”


시형과 친구들은 급한 대로 주변의 흙을 긁어모아 움막에 뿌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움막은 대부분 짚과 대나무로 되어 있어서 활활 급속히 타올랐습니다. 뿌연 연기가 온 산에 퍼졌습니다. 이평을 앞서가던 호랑이가 능선에서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움막 쪽에서 뭔가 타는 냄새가 났기 때문입니다.


“움막이 타는 것 같은데?”

“설마, 움막이 저 혼자 저절로 탈 리가 없잖아.”

“이 냄새는 분명히 네 움막 쪽에서 나는 거야. 무슨 일이 생긴 것 같군. 일단 내가 어서 가서 불을 꺼야겠어.”


호랑이는 그렇게 말하고 빠른 속도로 뛰었습니다. 호랑이 등에서 돌주머니가 벗겨져 계곡 아래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호랑이는 더욱 빠른 속도로 달렸습니다. 움막이 불에 타는 것을 본 시형은 얼른 되돌아와 불을 끄려했지만 물도 없고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너희들 정말 너무하는구나. 평이가 이곳에 안 보이면 여기저기 찾아볼 생각은 않고 걔가 사는 집을 불태워버리다니. 너희들이 그러고도 사람이냐?”

“뭐야? 이 놈이! 똑똑히 봐. 네놈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이평이 여기에 없다는 것을! 하하하! 거짓효자, 맞지? 그 녀석 분명히 산짐승이 무서워 어디선가 숨어 지내는 게 틀림없어! 하하하!”


크르르렁. 그때 산소 위쪽에서 커다란 호랑이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이들은 갑현이 등 뒤로 호랑이가 서서히 걸어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와들와들 떨었습니다. 그러나 갑현이는 움막이 불에 타는 소리와 자신이 큰소리로 떠드는 소리 때문에 등 뒤의 인기척은 전혀 알지 못하고 그저 아이들이 자신의 말에 주눅이 들어 공포에 질린 모습을 하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갑현은 더욱 큰소리로 거드름을 피웠습니다.


“앞으로 말이야, 내 말이라면 콩을 팥이라고 해도 믿어야 해. ! 알겠지?”


갑현이 계속 말을 하려는데 아이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살금살금 뒷걸음을 쳐서 산 아래쪽으로 내려가더니 몸을 홱 돌려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뛰어 내려갔습니다. 갑현은 그제야 얘들이 왜 저래 하는 얼굴을 하고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크르르렁! 갑현의 눈과 호랑이의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갑현은 그 자리에서 벗어버린 옷처럼 바닥에 널브러져버렸습니다.


한참 후에 갑현이 눈을 떴습니다. 이평이 맞은편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이평은 이미 그 호랑이 밥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정신이 좀 들어?”

“여기가 저승 맞지? , 호랑이에게 언제 물려 죽은 거냐?”

“하하하하!”


이평은 갑현의 엉뚱한 소리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무슨 소리야? 넌 살아있어. 나도 살아있고. 세게 꼬집어줄까?”


이평은 갑현의 뺨을 살짝 꼬집었습니다.


“아얏!”


갑현은 한참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호랑이를 바로 코앞에서 만났는데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뿐더러 호랑이가 있던 곳인데 이평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자신을 간호하고 있으니 말예요.


“호, 호랑이는?”

“무슨 호랑이 말이냐? ~! 덩치 큰 백두산 호랑이 말이지? 니 뒤에 있는 저거 말야?”


무슨 농담이냐 싶으면서도 갑현의 고개는 자연스레 뒤로 돌아갔습니다. 으악! 갑현은 그 자리에서 다시 혼절하고 말았습니다. 용감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이렇게 간이 적은 애였나 하며 이평은 갑현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갑현이 겨우 다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앞에는 호랑이와 이평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갑현은 호랑이가 계속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어서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습니다.


“야, 손갑현! 내 움막 니가 저리 만들었으니 니가 다시 지어줄 거지? 이 호랑이 친구가 널 계속 지켜보겠다는데?”

“무, 무울론이야. 내가 태웠으니 내가 지어야지. 근데, 저 호랑이 사람 잡아먹지 않니?”

“사람 안 잡아먹는 호랑이 본 적 있니? 너는 덩치도 크고 맛있게 생겼다는데…. (그러면서 호랑이를 쳐다보며) 그렇지, 호랑아?”


이평의 말에 맞장구를 치듯 호랑이는 ‘어흥’ 소리를 한 번 내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제발 용서해줘. 두 번 다신 널 미워하지 않을게. 저 호랑이에게 난 정말 맛이 없다고 말해줘. 제발 부탁이야, 평아!”


갑현은 정말 호랑이에게 물려 자기가 죽는다고 여겼는지 눈물을 펑펑 쏟아냈습니다. 이평은 속으로 한참 웃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갑현은 이평과 함께 움막을 새로 지었습니다. 갑현은 이평이 자신을 용서해준 걸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둘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갑현은 종종 음식을 어머니께 차려달라고 해서 이평에게 갖다주었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이평이 시묘살이 하는 곳을 종종 찾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두 호랑이와도 친구가 되었습니다.


묘소 주변 석축을 쌓는 일에는 호랑이를 비롯한 이평의 모든 친구들이 힘을 모았습니다. 모두 힘을 합치니 이평 부모님 묘소 석축은 추운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완성되었고 이평은 3년 시묘살이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시묘살이가 끝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평은 과거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밤늦도록 공부를 하고서야 늦게 잠이 들었는데, 꿈자리가 편안하지 못했습니다. 얼마전 백두산 가기 전에 통영엘 다녀오겠다는 호랑이가 꿈에 나타난 것입니다.





“아흐헝! 평아, 날 좀 구해줘. 함정에 빠졌는데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네. 조금 있으면 사냥꾼들이 몰려올 텐데, 큰일이야! 어서 서둘러줘!”


이평은 잠을 깨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꿈이라기엔 너무나 생생하였습니다. 꼭 옆에서 호랑이가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인시도 되지 않은 시각이었지만 이평은 역참 관리원이 된 시형을 찾아갔습니다. 그 역참에는 서른 마리가 넘는 역마를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이평의 이야기를 들은 시형은 자신이 관리하는 말 중에서 가장 빠르고 튼튼한 말을 마구간에서 데리고 나왔습니다. 잘생긴 백마입니다.


“고마워.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친구의 부탁을 거절 않고 들어줘서.”

“무슨 말인가? 친구 사이에.”


이평은 삼년상을 하는 동안 혼자 글공부만 하였기에 말을 탈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시형은 역참 관리가 된 후 온갖 말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느 역졸들보다 기마법도 뛰어났습니다. 시형이 먼저 말 등에 올라타고 이평은 그의 뒤에 올라탔습니다.


“이럇!”


따그닥따그닥. 말발굽소리가 경쾌합니다. 반시진도 못되어 호랑이가 함정에 빠진 통영 관문에 도착하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횃불을 켜고 몰려있습니다. 이평은 순간적으로 호랑이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여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시형아, 저기야. 서둘러!”


시형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을 급히 말을 달렸습니다.


“잠깐 멈추시오!”


도착하자마자 말에서 뛰어내린 이평이 사람들에게 달려가면서 말했습니다. 포수들은 금방 총을 쏘려던 자세를 풀고 이평을 향해 돌아보았습니다. 함정 속에는 무량산 호랑이가 불안한 표정으로 밖을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이평은 호랑이에게 안심하라는 듯 신호를 하고 포수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그 총 내려놓으시오. 그 호랑이는 사람을 해치는 짐승이 아니오. 내 오랜 친구요.”


사람이 호랑이와 친구라니? 포수들은 갑자기 나타난 젊은이가 하는 소리를 믿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저 함정 속으로 뛰어 들어가면 내 말을 믿어주겠소?”

“젊은이, 괜히 만용을 부려 생목숨 버릴 생각이오?”

“아니오, 저 호랑이는 내가 3년 부모님 묘소 시묘살이 하는 동안 줄곧 나와 함께 있었던 오랜 지기라오.”

“그러면 들어가 보시오. 만약 그게 확인되면 호랑이를 살려주겠소.”


이평은 함정 속으로 뛰어내렸습니다. 포수들은 젊은이와 호랑이가 끌어안고 반가워하는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정말이군. 감동이오. 호랑이가 당신과 함께 시묘살이를 했다하니 이는 보통 영물이 아닌 듯하오. 여기 통나무를 내려드릴 테니 호랑이와 함께 빠져나오도록 하시오.”


통나무를 내려준 포수들은 돌아갔습니다. 이평과 호랑이가 밖으로 나오자 시형도 반가워하였습니다. 이평과 호랑이는 다시 깊은 포옹을 하였습니다.


“잘되었네. 잘되었어!”


시형은 말에 올랐습니다. 이평은 호랑이의 등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는 통영을 벗어나 고성 바닷가를 힘차게 달렸습니다. 멀리 수평선 위로 아침해가 발갛게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관련기사]


(전설텔링)효자 이평과 무량산 호랑이(1)

(전설텔링)효자 이평과 무량산 호랑이(2)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전설텔링)효자 이평과 무량산 호랑이(2)

고성 대가면 유흥리 실존인물인 효자 이평에 얽힌 전설


(전편 줄거리)어린 이평은 어머니께서 건강하지 않자 아버지 병구완을 도맡다시피 하면서도 전혀 불평이 없고 오히려 보통 사람은 하기 어려운, 대변의 맛을 보면서까지 부친의 건강 상태를 확인합니다. 얼마나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면 그런 행동까지 서슴없이 할까요?


하지만, 이평의 그런 노력에도 아랑곳없이 아버지는 병환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슬픔에 잠긴 이평은 매일같이 아버지 산소를 찾아 정성스레 성묘를 합니다. 설상가상이라고 했던가요? 아버지의 별세에 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마저 세상과 하직을 하게 됩니다.


졸지에 양친 부모 모두를 잃은 이평은 묘소 앞에서 며칠째 음식도 먹지 않고 곡을 합니다. 이평은 부모님의 돌아가신 것이 제대로 효를 다하지 않은 자신 탓이라고 여깁니다. 마을 사람들은 산에서 들려오는 이평의 그치지 않는 곡소리에 안타까워 합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에도 이평의 곡은 끊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또 며칠. 비가 그치고 산으로 달려간 마을 사람들의 이평이 지쳐 쓰러진 모습을 발견합니다. 마음씨 좋은 이웃들은 이평을 데리고 내려와 극진히 간호합니다.


이웃의 보살핌으로 기운을 차린 이평은 다시 공부를 시작하라는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3년 시묘살이를 하겠다고 말을 합니다. 시묘살이라는 게 묘소 옆에 움막을 짓고 산소를 보살피는 생활을 일컫는 말입니다.


…………………………………………………………………………………………


어린 이평이 부모님 무덤가에서 3년간 시묘살이를 하겠다고 완강하게 나오자 마을 사람들도 더는 말리지 않았습니다. 벌써 그러한 고집을 확인했던 터라 그렇게 말린다고 포기할 이평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평이 부모님 묘소 옆에 움막을 짓는 일에는 마을 아저씨들이 도와주었습니다. 친구들도 볏짚을 날라주었습니다. 시형이라는 서당 친구가 새끼를 꼬는 이평에게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다가왔습니다.


“평아, 얼마 있지 않으면 추운 겨울이 올 것인데, 게다가 한밤중엔 호랑이가 나온다고 하니 니가 자칫 잘못될까 봐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내 걱정은 하지마. 너무 힘이 들면 마을로 내려갈게.”

“그래, 꼭 그렇게 해야 해.”


이평과 시형은 손가락을 걸었습니다. 어느덧 움막이 완성되었습니다. 이어 마을 아저씨들은 움막 바로 옆에 음식을 할 수 있도록 야외화덕도 만들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시묘에 필요한 모든 시설을 다 지었지만 이평은 첫날을 마을에 내려가 보냈습니다.


한동안 얼굴 보기 어려울 것 같아 친구들이 이평의 집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평과 친구들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밤을 보냈습니다. 이튿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이평이 옷가지와 서책을 몇 권 챙겨 집을 나섰습니다. 친구들이 환송해주었습니다.


서당에서는 이평을 두고 서당 동무들 간에 실랑이가 일기도 했습니다. 이평을 잘 아는 친구들은 어지간해선 이평이 3년 시묘살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고 다른 동무들은 산에는 범도 많고 무시무시한 다른 짐승들도 많아 한 달도 못 견뎌 집으로 내려올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런 친구들의 실랑이를 알 리 없는 이평은 지극정성으로 밥을 지어 부모님의 산소에 아침, 점심, 저녁 공양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습니다. 쌀이 떨어져 이평이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평의 건강한 모습을 보고 안심했습니다.


“평아, 절대 끼니를 걸러서는 안 된다. 니가 건강해야 시묘살이도 잘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밭일을 하던 덕만 아저씨가 맨 처음 산에서 내려오는 이평을 보고 말했습니다.


“네, 저도 이제 제가 건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평이 마을로 내려온 것을 본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반가운 표정으로 맞이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린 아이가 혼자 시묘살이하는 것을 대견해하였습니다. 이평과 한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평을 대단한 아이로 칭찬하고 친구들도 그런 이평을 자랑스러워 하는데 다른 마을에 사는 서당 동무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평이 잠시 마을로 내려왔다는 소문을 들은 이웃마을 서당동무들은 이평을 시기질투하였습니다. 그들의 생각대로라면, 이평이 산속 짐승 소리가 무서워 벌써 마을로 내려왔어야 정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웃으며 내려와서는 다시 시묘살이 준비를 하는 모습에 심통이 부풀어올랐습니다.


이평은 이웃마을에서도 어른들로부터 ‘효자’라는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그러한 어른들의 칭찬이 자기 아이들에게 오히려 이평을 시샘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희한한 일입니다. 이평이 사는 마을의 친구들도 그들의 부모님으로부터 효자 이평 이야기를 듣기는 매한가지입니다만 이웃마을 아이들과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이평을 자랑스러워했으니까요.


이평이 시묘살이 용품들을 챙겨 다시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이웃마을 아이들은 이평을 골려줄 요량으로 마을 공터에 모여 작당 모의를 하였습니다. 귀신처럼 하얀 천을 덮어쓰고 놀라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평이 겁을 먹고 두 번 다시 시묘살이한답시고 산에 올라가지 않을 것이란 계산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만면에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렇게 이평이 산에서 내려오면 겁쟁이라고 놀리면서 이쪽 서당 아이들 모두 같은 겁쟁이로 싸잡아 놀려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때? 우리 작전이 완벽하지? 자 이제 산으로 가자고!”


갑현이라는 아이가 심술궂은 말투로 다른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움찔하면서도 그의 뒤를 따라 초승달 그림자를 밟으며 산길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길가에 서 있는 키 큰 미루나무 그림자는 간혹 으스스 소리를 내면서 아이들의 그림자를 지우곤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들의 그림자 위로 흔들리는 미루나무 그림자를 두려운 표정으로 보았습니다. 도깨비인 듯 삼각형 얼굴에 하얀 눈이 감았다가 떴다가 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산길 입구에 다다랐습니다.


“크륵크륵.”


숲 속에서 걸걸한 짐승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앞장서서 걷던 갑현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도저히 더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간이 콩알만 해지고 심장이 얼음 위에 놓인 듯 와들와들 떨렸습니다. 갑현이는 은근히 바로 뒤따라오던 아이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을 했습니다.


“너, 밤눈 밝지? 앞장서! , 내가 어두운 데선 앞을 분간 못 해.”

“에이, 난 겁나는데!”

“겁쟁이, 이게 뭐가 겁난다고 그래? 바로 뒤따라 갈 테니까 앞장 서라구!”


갑현의 으름장에 마지못해 앞서 걷던 아이가 바람 때문에 바스락거린 나뭇잎소리에 놀라 뒤돌아 냅다 뛰었습니다. 그러자 갑현이도 지레 겁을 먹고 뒤따라 뛰고 그 뒤를 따라 영문도 모른 채 다른 아이들도 마을길로 부리나케 뛰었습니다.


“컹! , !”


덕만 아저씨 집의 백구가 잠결에 무슨 일인가 싶어 퍼뜩 일어나더니 초승달을 향해 마구 짖어댔습니다.


그 시각 이평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촛불을 켜고 서책을 읽고 있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움막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날씨가 이제 제법 쌀쌀해졌습니다. 서쪽 하늘에 초승달이 걸렸습니다. 별들도 까만 하늘에 보석을 박아놓은 것 같이 반짝였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아버지 어머니 무덤 가에 돌담을 쌓아야겠다. 겨울이 닥치면 얼마나 추우실까.”


이평은 주변의 돌들을 그러모아 무덤 주변으로 하나씩 돌을 얹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어색하던 손놀림이 이젠 제법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그 손을 보름달이 훤하게 비추었습니다. 이평은 이마에 흐른 땀을 손등으로 닦았습니다. 두어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평의 얼굴엔 제법 어른스러운 티가 났습니다.


무덤 주변엔 이제 돌담에 얹을 돌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죄다 끌어다 쌓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멀리서 돌을 옮겨야 하는데, 어린 이평으로선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게도 없이 무거운 돌을 들고 옮기려니 금세 몸이 피로해졌습니다. 내일 마을에 내려가 지게를 가져와서 돌을 날라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평은 부모님 산소를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춥더라도 조금만 참으세요. 내일은 바지게를 가져와 바람막이 돌담을 튼튼하게 쌓아드릴게요.”


너무 피곤했던 탓인지 이평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겨울 찬바람이 산소를 휘돌아 이평의 몸을 얼려놓고 지나갔습니다. 이평의 체온이 점점 내려갔습니다. 한식경이 지날 쯤엔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습니다. 그러면서 얼굴이며 머리카락이며 하얀 성애가 생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이평은 얼어 죽는가 봅니다. 지금까지 잘 버텨왔는데, 돌담을 쌓느라 너무 무리했나 봅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이평은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습니다. 몸이 따뜻했습니다. 눈을 뜨니 온산에 꽃향기가 가득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산소 주변에도 예쁜 꽃들이 즐비했습니다.


산소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다시 살아나신 거예요?”

“그래, 우리 아들 보고 싶어서 옥황상제께 부탁했더니 이렇게 세상으로 보내주셨구나.”

“정말 잘되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젠 저를 두고 가지 마세요.”

“그럴 수는 없단다. 잠시만 너를 보고 돌아가겠다고 상제님께 약속을 했단다. 이렇게 너를 다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구나.”

“안돼요, 가지 마세요. 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어머니!”





이평이 신음소리를 내자 호랑이는 이평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간신히 눈을 뜬 이평은 자신이 호랑이 품속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몸을 빼고 물러나 앉았습니다. 호랑이는 온화한 표정으로 이평을 보았습니다. 이평은 호랑이가 당장 자신을 잡아먹진 않을 것임을 눈치챘습니다.


“그런 몸으로 이 추운 겨울에 시묘살이한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정녕 모르고 하는 행동이냐?”


호랑이가 말을 하였습니다. 이평은 이것도 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꿈이 아니고서야 어찌 호랑이가 말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희한하게도 꿈이라고 여겨서 그런지 몰라도 호랑이가 별로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꿈이 아니라면 언제 호랑이와 말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싶어 이평도 호랑이에게 말을 붙였습니다.


“호랑아, 나 죽은 거 맞지? 내 영혼이 너와 이야기하는 거지?”

“아니, 넌 살아있어. 내가 다른 사람에겐 말을 못해도 너와는 얘기할 수 있지.”

“그것 참 이상하구나. 그러면 내가 호랑이 말을 하는 거니? 니가 사람 말을 하는 거니?”

“하하하! 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구나. 넌 사람이니 사람 말을 하고 난 호랑이니 호랑이 말을 하지.”


이평은 이 겨울 산속에서 호랑이가 자신을 잡아먹지 않은 것이 이상했습니다. 아무리 꿈이지만 그것도 난생 처음 보는 호랑이가 체온으로 얼어죽을 뻔한 자신을 살려낸 것이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꿈이겠거니 하고 볼을 살짝 꼬집었습니다.


“아얏!”


분명히 꿈은 아닐 텐데 어떻게 내가 이 무시무시한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도 않고 호랑이와 대화까지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꿈에서도 꼬집으면 아픔을 느낄 수 있는 모양이다 생각한 이평은 계속 호랑이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둘의 시각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호랑이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이평의 모습을 볼까요. 이평이 인간의 말을 호랑이에게 건네면 호랑이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어흥, 크르렁, 어흥, 어흥”하고 대답을 합니다. 그 말을 이평은 사람의 말로 알아들었던 것입니다.


“나를 잡아먹지 않고 왜 살려주는 거야?”

“피골이 상접한 널 잡아먹으면, 배나 부르겠어?”


호랑이는 농담을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이평에게 어린 나이에 이렇게 깊은 산속에서 부모님 묘소를 지킨다는 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칭찬하였습니다.


“그런 널 어떻게 잡아먹겠니? 너같은 효자를 잡아먹었다면 옥황상제님께서 그 벌로 다음 생에는 고양이로 태어나게 할지도 모르는데. 헤헤.”


호랑이와 이평은 큰소리로 웃었습니다. 보름달이 훤히 비친 무량산 자락에서 시작된 호랑이와 사람의 웃음소리가 겨울바람을 타고 마을로 퍼져나갔습니다.(다음주에 계속 됩니다.)


[관련기사]


(전설텔링)효자 이평과 무량산 호랑이(1)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전설텔링)신동대전()(4)

양산 원동면 선리 영축산 중턱 신동대 굴에 얽힌 전설

 

(지난줄거리) 신동대가 세 살 때 어머니는 관군에게 쫓겨 영축산 기슭까지 왔습니다. 여기서 운암도사를 만난 신동대의 어머니는 아이만이라도 살리려는 마음으로 대뜸 맡기고 달아납니다. 그렇게 신동대는 운암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운암은 전국을 떠돌며 자신보다 무예와 도술이 뛰어난 사람을 찾아다녔는데 이 일로 양산에 정착하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신동대가 스무 살이 되던 해 운암은 신동대에게 하산하라고 합니다. 출세를 해서 행복하게 살라고 이릅니다. 양산 읍내에 첫발을 디딘 신동대에게 막손패거리가 시비를 걸지만 오히려 모두 신동대에게 혼이 납니다. 두목으로 모시겠다는 막손이패를 동생으로 거둬들인 신동대는 비무대회에 출전합니다.

 

그러나 비무대회에서 비리를 발견한 신동대는 이몽란에게 준결승에서 양보하고 근거지인 선행당으로 돌아옵니다. 관아 형방의 비리를 밝힐 궁리를 하던 차에 검계 용호칠웅 패거리들이 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영호칠웅의 두목 오지곤의 뒤를 밟던 중 그가 월향관에서 형방을 만나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신동대와 막손이 그들에게 나타나 비리행위를 질타하고 속히 모든 것을 정상으로 돌려놓으라고 합니다. 그러고 돌아오는 길에 용호칠웅의 나머지 여섯 명으로부터 공격을 받습니다. 신동대는 무예실력이 급격히 좋아진 막손과 함께 용호칠웅 패거리를 흠씬 두드려패서 쫓아 보냅니다. 이때 숲 속에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그림자가 있습니다.

 

……………………………………………………………………………………

 

그림자는 신동대와 막손이 선행당으로 돌아올 때까지 멀리서 미행을 하였습니다. 이들이 선행당 문을 열고 들어설 때까지 지켜보다가 다시 용호칠웅이 달아난 방향을 향해 신형을 날렸습니다. 그림자는 부상당해 이동이 쉽지 않은 용호칠웅 패거리를 앞질러 달렸습니다. 용호칠웅은 그 그림자가 자신과 신동대를 감시하고 돌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그림자가 도착한 곳은 월향관이었습니다.

 

마님, 다녀왔습니다.”

들어오너라

 

그림자가 어느 문 앞에서 심부름을 다녀왔다는 기척을 하자 방 안에서 중년의 여성 목소리가 담담하게 흘러나왔습니다. 그림자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방 한쪽으로 발이 처져 있고 그 발에는 큰 가채를 얹은 여인의 실루엣이 비쳤습니다.

 

그래, 아이는 무사하더냐?”

, 마님께서 우려하지 않아도 될 만큼 도련님의 무예실력이 뛰어났습니다. 용호칠웅 녀석들이 오히려 크게 다쳐 도망을 칠 정도였습니다.”

어디에 사는지는 확인했고?”

읍내 시장 인근에 선행당이란 편액이 걸린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후훗. 발 건너편 여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습니다.

 

덕수,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으니 늘 그 아이의 안전을 확인하고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목숨을 걸고 도와주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마님.”

 

여인은 바로 신동대의 어머니 박씨 부인이었습니다. 17년 전 품에 안은 아이를 알지 못하는 사내에게 맡기고 관군을 피해 달아났던 그 여인. 박씨 부인은 가까스로 관군의 추격을 따돌리고 오랫동안 신불산 깊은 산속에서 초근목피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목숨을 부지하며 살고 있던 박씨 부인에게 덕수가 나타난 것은 3개월이 지나서였습니다. 덕수는 역적 모함으로 목숨을 잃은 신동대의 아버지 신기철 대감의 호위무사였습니다. 덕수는 관군에 저항하다 마님과 도련님을 보호하라는 대감의 명령에 따라 탈출했지만 사라진 마님과 도련님을 찾지 못하다 그제야 겨우 마님만 찾게 된 것이었습니다.

 

관군의 추격이 끊이지 않은 데다 전국 방방곡곡에 현상금이 걸린 방이 나붙어 한곳에 정착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수년간 전국을 떠돌다시피 옮겨다니며 살다 장사를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다시 양산에 와서 신분을 속이고 박씨부인은 연화라는 이름으로 기방을 차린 것이었습니다.

 

박씨 부인이 양산 읍내에 기방을 차린 것은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감추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도 한때 좌상의 부인이 기생이 되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라도 양산으로 다시 온 것은 혹시 살아있을지 모를 아들 신동대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기방을 차린 지 1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양산을 비롯해 이웃 청도와 대구, 울주까지 덕수를 보내 다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통금시간에 형방과 오지곤이 만난 그 방을 감시하던 덕수가 그 방에서 나오는 두 젊은이를 발견하였습니다. 의외의 인물에 의아스럽게 생각하며 어둠 속 두 젊은이를 유심히 관찰하다 한 청년의 모습이 낯익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쪽 귀가 유난히 큰 젊은이, 그가 바로 그토록 찾아 헤매던 도련님, 신동대였던 것입니다.

 

도련님, 살아계셨군요.’ 덕수는 즉시 박씨 부인에게 그 사실을 알렸고 버선발로 대문을 나선 박씨 부인은 멀리서나마 아들의 뒷모습을 그렇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박씨 부인의 두 볼에는 연방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습니다. ‘신령님, 고맙습니다.’

 

한편, 부상당한 몸으로 한참 후에 월향관에 도착한 용호칠웅 여섯 사내는 오지곤과 형방으로부터 크게 야단을 얻어먹었습니다.

 

너희들이 그러고도 칼을 차고 다니는 무사더냐? 무기도 하나 없는 시정잡배 같은 두 놈을 여섯 명이 당해내지 못하고 이런 머저리 같은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냐?”

 

형방은 노발대발하며 용호칠웅 사내들을 쥐어박고 걷어차고 하였습니다. 여전히 막힌 기혈을 풀지 못한 오지곤 역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분한 마음을 삭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히려 형방이 자신의 부하들을 막대하는 것이 더 기분 나빴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믿고 어떻게 일을 도모하겠느냐? 이번 일은 없던 일로 하겠다.”

아니, 형방 나리.”

 

오지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형방은 방문을 박차고 나가버렸습니다. 형방이 나간 방에 남은 용호칠웅 무사(?)들은 수선을 떨었습니다. 오지곤의 막힌 혈을 푸는 방법을 몰라 아무렇게나 몸 이곳저곳을 찌르고 두드리고 하느라 자신들의 두목을 거의 초죽음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지곤은 부하들의 등에 업혀 월향관을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남들이 혹시라도 알아볼까 봐 소리없이 자신들의 본거지로 이동했습니다.

 

그 후 며칠이 지났습니다. 선행당에 온몸이 근육질로 틀이 잘 잡혀 있는 거구의 사내가 들어섰습니다.

 

여기에 신동대란 놈이 있느냐?”

누구신데 이러시오?”

 

막내가 달려나가 막아서자 거구의 사내는 손등으로 툭 쳤습니다. 그러자 막내는 다섯 걸음이나 뒤로 튕겨나가 구석에 처박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아우들이 우르르 몰려가 거구와 대치했습니다.

 

너희들 조무래기들과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여기 신동대란 놈이 있느냐 말이다.”

덩치만 컸지 전혀 못 배워먹은 놈이구만. 남의 귀한 함자에다 함부로 놈 자를 붙이다니 이런 무식한 놈이 무슨 일로 찾아왔나 그래.”

 

신동대는 아우들을 옆으로 물리고 거구의 사내 앞에 딱 버텨 섰습니다. 그렇게 큰 키도 아니고 힘이 셀 것 같지도 않은, 오히려 연약해 보이는 사내가 당돌하게 나오자 거구는 기가 찼습니다.

 

. 네놈이 신동대냐?”

어허, 이놈이 눈앞에 사람을 보고도 소갈머리 없는 말투하고는. 네놈은 이름이라도 있느냐?”

 

거구는 형방으로부터 들었던 정보, 그러니까 무사 일곱 명을 단숨에 해치운 자라는 이야기를 믿고 자신에게 대적할 만한 체구는 갖췄으리라 생각을 했던 것인데 막상 만나고 보니 너무 가소로워 보여 헛웃음만 나왔습니다. ‘아니, 이런 생기다 만 녀석에게 일곱 명이나 되는 무사들이 맥도 못 췄단 말인가?’ 거구는 거만스레 입을 열었습니다.

 

내 성함은 알 것 없고! 살모사로 세상에 알려졌으니 모르진 않을 게다.”

살모사? 어느 뒷골목에서 놀던 철부지 이름인지 모르겠고. 그래, 날 만나서 어쩌자는 게냐?”

네놈이 신동대라면 오늘이 제삿날이라, 저승길에 사연은 알고 가야 할 테니 알려주마. 이 동네 형방이 벽천 대감에게 네놈을 처리해달라는 부탁을 했고 벽천 대감은 나에게 큰돈을 주면서 청부를 한 것이다. 이제 사연을 알았으니 죽어도 왜 죽게 되었는지 갑갑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살모사의 오른손이 신동대의 목을 향해 쏜살같이 뻗었습니다. 신동대는 마치 깃털처럼 밀리며 살모사의 손을 피했습니다. 그렇게 빨라 보이지 않는데 자신의 공격을 여유 있게 피하는 모습을 본 살모사는 당황했습니다.

 

동작이 그렇게 굼뜨고서야 내 옷깃이라도 스칠 수 있겠느냐?”

 

신동대가 부채를 펴서 살짝 부치고는 뒷짐을 졌습니다. 그러자 살모사는 서서히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양손 주먹을 꽉 쥐고는 신동대를 향해 붕붕 휘둘렀습니다. 그때마다 신동대의 신형은 흐트러짐 없이 살짝살짝 피했습니다. 화가 난 살모사가 가구를 들어 공격하려 하자 신동대는 재빨리 선행당 밖으로 몸을 옮겼습니다.

 

따라나온 살모사는 등에서 칼을 뽑았습니다.




 

몸에 칼집은 내지 않고 저승길로 보내주려 했건만 안 되겠구나. 미꾸라지처럼 잘도 피해다녔겠다. 이 화룡검도 어디 피해보거라.”

 

살모사는 신동대를 향해 검을 열십자로 휘둘렀습니다. 그때마다 신동대는 칼끝의 검기를 피해 부드럽게 피했습니다. 살모사는 공격이 하나도 먹혀들지 않자 쓸데없이 공력만 끌어올려 기를 낭비했습니다. 끝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살모사는 무리한 공격을 시도합니다.

 

에잇! 이 칼을 받아랏!”

 

살모사는 검을 쥔 팔을 앞으로 쭉 뻗어 온몸을 신동대에게 던졌습니다. 신동대는 가볍게 몸을 날려 검을 밟고 올라서서 오른발로 살모사의 얼굴을 그대로 강타했습니다. 검과 함께 열 걸음 넘게 튕겨나가며 나동그라진 살모사는 겨우 비틀거리며 일어섰습니다.

 

주먹만 한 놈이 제법이구나! 이번엔 정말 인정사정없다. 각오해!”

 

살모사는 신동대를 껴안으려고 달려들었습니다. 그의 두 팔에 감기면 뼈가 으스러질 것 같았습니다. 신동대는 살모사의 공격에 몸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신동대의 몸이 그대로 살모사의 두 팔에 감겼습니다.

 

이제 넌 죽었다. 크하하하!”

 

! 살모사가 안고 있던 신동대는 간 곳이 없고 대신 작은 짚단이 그의 품에 안겨 있었습니다. 아하하하. 이를 구경하던 마을 사람들과 선행당 아우들이 배꼽을 잡고 웃어댔습니다. 신동대는 어느새 살모사의 등 뒤에 뽕하고 나타나 그의 엉덩이를 세게 걷어찼습니다.

 

천하를 두려움에 떨게 하던 그 명성이 웃음거리가 되자 살모사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넌 나를 죽이러 왔지만 난 너를 죽이진 않겠다. 다만, 이제 남의 목숨을 파리보다 가볍게 여기는 살수 노릇은 그만두거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겠다면 나에게 무례를 저지른 점은 용서하겠다.”

 

살모사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신동대에게 절을 하였습니다.

 

저를 동생으로 거두어주십시오.”

무슨 소리냐? 나이도 나보다 많은 것 같은데.”

무인들 세계에 나이가 무슨 소용입니까? 절 받아주신다면 형님을 도와 착한 일을 하며 살겠습니다.”

 

그렇게 살모사는 신동대의 부하 겸 동생이 되었고 선행당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살모사는 신동대와 막손으로부터 벽천 대감의 비리에 대해 전해들었습니다. 벽천 대감은 양산관아 형방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각 고을의 각종 이권에 개입해 뇌물을 받고 있는 비리 관료라는 사실을 살모사는 이제야 알게 된 것입니다.

 

내일 저녁 벽천 대감이 전국에서 거둬들인 뇌물을 왕실에 상납한다는 정보가 있다. 관리들에게서 흘러나온 정보라 거짓은 아닐 것이다. 내일 우린 벽천 대감의 집을 털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지난줄거리) 쇠약한 어머니의 기력을 되살리기 위해 사냥을 시작한 나무꾼 구씨 청년은 사냥꾼 기질이 없어 고라니는커녕 토끼도 한 마리 제대로 잡지 못합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바위굴 안에서 산신령을 만나 마법책을 얻게 됩니다. 책에 적힌 주문을 외면 호랑이로 변하는 책이지요. 구씨 청년 호성은 사냥을 하고 싶지만 먼저 사악한 호랑이 세 마리를 먼저 처치해야 합니다.


비음산과 안민고개에서 두 마리를 해치운 호성은 어머니의 기력이 급격히 쇠하자 더는 기다릴 수 없어 고라니 사냥을 시작합니다. 고라니는 호랑이와 격전을 벌이러 다니면서 서식지를 봐놨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사냥을 해 옵니다.


그러던 중 안민고개에서 해치운 호랑이를 자신이 잡았다는 진해장사가 나타납니다. 그는 사또에게 거짓으로 호랑이를 잡은 과정을 설명합니다. 호성은 이를 보고는 거짓으로 출세하려는 사람의 본성을 간파합니다.


사냥으로 살림살이가 많이 나아지자 호성은 중매를 통해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고민입니다. 아내와 함께 생활하게 되니 몰래 호랑이로 변신할 기회가 없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사냥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호성은 아내가 자는 틈을 타서 몰래 빠져나와 광에 들어가 주문을 외우고 호랑이로 변신합니다. 호랑이의 출현이 뜸해지자 산적들이 극성입니다. 호성은 굴현고개에서 산적을 혼내줍니다. 그런데 관아에선 산적을 혼내준 자신을 잡으라는 방이 붙습니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았다고 떠들던 진해장사는 사또의 부탁을 받자마자 병이 들었다며 엄살을 부립니다. 진해장사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떨어집니다. 그 사이 또 산적들이 마을을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호성은 호랑이로 변신, 산적들을 혼내주고 있는데 나졸들이 달려옵니다. 그런데 나졸들은 산적을 잡으려 않고 오히려 자신을 잡으려 합니다. 나졸들에게 겁을 주어 떨쳐내고 집으로 돌아온 호성은 아내로부터 집 근처에서 호랑이를 보았다는 얘길 듣습니다.


……………………………………………………………


호성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짐짓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 딴청을 피웁니다. 그러면서도 들키지 않게 좀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산적을 혼내주려다가 오히려 나졸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뒤로 호성은 한동안 호랑이로 변신하지 않았습니다. 아내 역시 호랑이를 본 이후로 더욱 예민해졌기 때문에 자다가 몰래라도 방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리하고자 재어놓았던 고라니가 다 떨어지게 되자 다시 사냥을 해야 했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고라니입니다. 산신령 말대로 고라니 열 마리만 고아 먹으면 어머니 병환이 깨끗이 낫는다고 했으니 딱 이제 단 한 번 사냥하고 나면 더는 호랑이로 변신할 이유도 없어집니다. 그때가 되면 아내에게 감추는 것 없이 떳떳하게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이야.’


자정이 넘어서 호성은 아내가 곤히 잠든 모습을 보면서 살며시 일어났습니다. 조심조심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호성은 광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니머니 머니우니, 머니머니 우니우니, 으르으르 으르으렁!”


그런데 이 모습을 아내가 방문을 살짝 열고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광으로 들어간 남편이 뭐라고 주문을 외더니 호랑이가 되어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너무 놀랐지만 호성의 아내는 대체 남편에게 어떤 병이 있기에 저런 무시무시한 짐승으로 변하는지 안타까웠습니다.


호성은 사냥하러 나가려다가 아내가 잠든 방을 뒤돌아보았습니다. 아내는 깜짝 놀라 문에서 떨어졌습니다. ‘여보, 이번이 마지막이오.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내일부턴 진정한 당신의 남편으로 돌아 가리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건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그런 남편의 마음을 알 리 만무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나간 후에 광으로 들어갔습니다. 광에는 남편이 주문을 외듯 읽었던 책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이 책이 남편을 그 사나운 짐승으로 만드는 것일 거야’ 하고 아내는 책을 들고 부엌으로 갔습니다. 부엌 아궁이에는 아직 장작들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호성의 아내는 책을 아궁이에 던져 넣으려다 몇 번 망설였습니다. ‘혹시 이 책과는 상관 없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 책에 적힌 주문을 외우고는 바로 호라이로 변했어.’ 아내는 책을 불사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책은 처음엔 불이 잘 붙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활활 잘 타올랐습니다. 금방 재로 변했습니다.


한편, 이러한 사실을 알 턱이 없는 호성은 고라니 사냥에 열심이었습니다. 여러 마리 중에서 가장 살찌고 먹음직스런 놈을 골라 사냥을 해서 집으로 오는 중이었습니다. 정병산 중턱쯤에 도착했을 때 저쪽 숲에서 바스락, 묵직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뭐지?’ 호성은 전혀 예상 밖의 기척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호성은 고라니를 옆에 던져놓고 몸을 잔뜩 웅크렸습니다. 놈은 숲에서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호랑이였습니다. 저놈이 천주산 호랑이구나. 덩치가 호성보다 더 컸습니다. 호성은 주변의 지형과 지물을 살폈습니다. 덩치가 큰 상대를 이기려면 나무와 바위 등을 잘 활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도 덩치가 작다고 바로 덤벼들지 않습니다. 비음산과 안민고개 호랑이를 해치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두 호랑이는 숲 속에서 서로 마주보며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먼저 공격하려다 자칫 도리어 역습을 당하는 수가 있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나 봅니다. 호성은 몇 번 견제 공격을 하다가 나무가 빽빽이 난 숲 쪽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사실은 덩치 큰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유인책입니다. 천주산 호랑이는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자신이 기싸움에서 이겼다고 여겼습니다. 상대가 도망을 가니 기고만장하여 뒤쫓습니다.


나무가 빽빽한 숲에서 천주산 호랑이는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호성은 재빠른 동작으로 천주산 호랑이의 정면에 나타났다가 뒤에 나타났다가 하면서 정신을 못 차리게 하면서 교란작전을 펼쳤습니다. 빈틈이 보일 때마다 공세를 펼쳤지만 상대가 워낙 교활한 놈이라 쉽게 당하진 않았습니다. 계속 공격을 받기만 하자 자신이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천주산 호랑이는 도망을 쳤습니다. 호성은 힘껏 뒤쫓았지만 놓치고 말았습니다.


호성은 고라니를 물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보았다던 호랑이는 자신이 아닌 그놈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입니다. 언제 또 나타날지 모르므로 앞으로 더욱 경계를 철저히 서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광으로 들어갔습니다. 어, 그런데 마법의 책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참 찾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났습니다. 순간 깜짝 놀라 문을 열고 내다보니 아내가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크렁….”


호성은 난처했습니다. 결국 아내가 알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번만 잘 넘겼으면 모든 게 아무 탈 없이 끝나는 것인데 싶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이왕 아내에게 들킨 것이니 사실대로 말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으르으르….”


책을 달라고 하려는데 사람의 말이 나오지 않고 호랑이의 말이 나왔습니다. 큰일입니다. 아내에게 의사를 전달할 방법이 없습니다.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아내가 이야기를 합니다.


“여보,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책 때문에 당신이 끔찍한 야수로 변하는 것 같아 그 책을 아궁이에 넣고 불살라버렸어요. 이제 사람의 몸으로 돌아오면 다신 호랑이로 변할 일 없을 거예요.”


‘아, 여보. 그게 아니에요. 그 책이 없으면 내가 사람으로 다시 돌아갈 수가 없단 말예요.’ 호성은 부엌으로 달려 들어갔습니다. 책은 글자 하나 남기지 않고 까맣게 재로 변해 있었습니다. 재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주문을 외웠습니다.


“우니머니 머니우니, 머니머니 우니우니, 으르으르 으르으렁!”


소용이 없었습니다. 몇 번을 외원도 자신의 모습이 사람으로 되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이제 어머니도 건강을 되찾으시고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일만 남았는데,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부엌에서 재를 움켜쥐고 으르렁거리던 호랑이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우는 모습을 본 순간 아내는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아, 이를 어쩌면 좋아요? 그 책이 있어야 당신이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었군요. 제가 어리석었어요. 미안해요, 죄송해요.”


호성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말을 해봐야 호랑이소리만 나오니 원망도 탄식도 용서마저도 말로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호성은 어머니께서 주무시는 방을 향해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러고는 곧장 산속으로 뛰어갔습니다. 아내는 숲속으로 사라진 남편을 보고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나무하러 간다고 인사를 하던 아들이 보이지 않자 며느리를 불렀습니다. 호성의 아내는 남편이 멀리 일이 있어 갔다고 둘러댔습니다. 이제 겨우 기력을 되찾았는데 다시 몸져누울까 걱정이 되어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고 며칠 후 아침밥을 지으려 방을 나서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집 마당에 사슴이며 멧돼지며 토끼 등이 쌓여 있었던 것입니다. 남편이 사냥을 해서 몰래 가져다 놓은 것입니다. 호성은 어머니와 아내가 다시 가난해지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이제 직접 사냥한 것을 장에 나가 팔수는 없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했습니다.


그날 이후 호성은 집 주변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천주산 호랑이로부터 어머니와 아내를 보호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몇 번 천주산 호랑이의 흔적을 발견했지만 마주치진 않았습니다. 호성은 처음 산신령을 만났던 바위굴에도 자주 찾아갔습니다. 산신령이라면 분명히 책이 아니라도 사람으로 되돌릴 방법을 알고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산신령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관아에서 고용한 포수들이 떼를 지어 산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진해장사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계속 아프다는 핑계를 댈 수 없었으니 마지못해 포수들과 함께 호랑이 사냥에 나선 것이 틀림없습니다.


호성이로서는 난처했습니다. 천주산 호랑이로부터 어머니와 아내를 지키려면 이곳을 떠날 수 없는데, 포수들의 포위망은 점점 좁혀 들어와 피하지 않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호성은 일단 겁을 주어 이들을 쫓아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는 진해장사가 포함된 일행에게 다가갔습니다.

“크아앙!”

아무리 담력이 강한 포수라도 무시무시한 호랑이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자 본능적으로 몸을 사렸습니다. 호성은 포수들이 총을 조준하기 전에 달려들었습니다. 포수는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그러고는 진해장사를 쳐다보았습니다. 도움을 구하려 했는데 진해장사는 나무 뒤에서 와들와들 떨고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포수는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포수가 떨어트렸던 총을 다시 주우려 할 때 호성이 다가가 총을 멀리 쳐냈습니다.


“탕!”


호성은 가슴에 뜨거운 것을 느꼈습니다.


“탕, 탕!”


등에도 뭔가 들어와 박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개를 돌리니 멀지 않은 곳에서 포수들이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어서 여길 벗어나야 합니다. 호성은 바위굴이 있는 곳으로 달렸습니다. 마지막 희망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죽기 전에라도 산신령을 만나 사람으로 다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여러 번 총에 맞은 탓인지 걸음이 예전만큼 빠르지 못했습니다. 포수들이 더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바위굴 앞에 포진했습니다. 호성은 더는 피할 곳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본래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사람을 해치는 호랑이는 따로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 바위에선 자신의 집과 마을이 보입니다. ‘산신령님, 제발 모습을 드러내 주세요.’ 호성은 간절히 바랐지만 끝내 산신령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포수들의 총소리가 또 들려왔습니다. 파편들이 바위에 튕겨나갔습니다. 그 순간, 호성은 포수들의 뒤쪽으로 천주산 호랑이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머니와 아내가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가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크앙!”


호성은 사력을 다해 바위에 올라갔다가 천주산 호랑이가 있는 쪽으로 훌쩍 뛰었습니다.


“타당! 탕! 탕!”


쇳덩어리들이 온몸에 박혔습니다.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 호성은 포수들의 머리 위로 날아갔습니다. 천주산 호랑이가 쳐다봅니다. ‘저놈을 여기서 죽이지 못하면 모든 게 허사야.’ 호성은 이를 악 물었습니다.


“타, 타, 타, 탕!”


총알이 연발로 몸속에 들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호성은 풀썩 땅바닥에 곤두박질쳤습니다.


“와!”


포수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호성은 눈을 감았습니다. 결국 천주산 호랑이를 막지 못하고 이렇게 되는 것이 후회스러웠습니다. 호성은 희미해지는 숨소리에 섞어 마지막으로 산신령을 불렀습니다. ‘산신령님!’ 끝.


아, 잠깐! 호성이 그렇게 애타게 찾던 산신령이 그제야 나타났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아마도 호성을 다시 사람으로 되돌릴 방법이 있었을 거예요. 산신령이잖아요. 그런데 너무 늦게 나타난 것이 탈이네요.


“누가 날 불렀나? 요즘 잠이 왜 이리 많아졌나, 몰라. 만사가 다 귀찮아.”


그때 산신령은 들것에 묶여 포수들에 의해 실려 내려가는 호랑이 한 마리를 봅니다.


“저놈 어디서 본 듯한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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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