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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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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뭘볼까]수채화 ‘풍경’ 속으로 ‘풍덩’

경남도립미술관 124일까지 34, 5전시실서 ‘경남100100작’전


여러 미술 작품을 보러 다니다 보면 아무래도 우리 정서에 풍경화는 수채화에 담는 게 어울린다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잦다. 물론 유화에 담은 풍경도 나름대로 ‘맛’이 있긴 하다. 대신에 수채화는 살짝 물감이 번지면서 만들어 내는 묘한 몽롱함이 풍경을 더욱 운치 있게 표현하게 되는 것 같다.


미술관 입구 프로그램 안내판.


경남도립미술관이 오는 124일까지 미술관 34, 5전시실에서 신종식 작가의 ‘아름다운 경남 100100작전’을 열고 있다. 경남의 아름다운 풍경 100개를 선정해 화폭에 담았다는 얘기다.


경남의 100경이라. 신 작가는 경남의 어디 어디를 선정해 그림을 그렸을까? 그가 선택한 경남의 100경의 그림을 들여다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듯하다.


5전시실 입구.


4전시실 전시 풍경.


거제시와 양산시 풍경을 담은 수채화들.


창원의 경우, 저도연륙교와 주남저수지, 경화역 벚꽃, 천주산 진달래, 무학산 학봉, 진북면 편백나무숲, 창동예술촌을 꼽았다. 그리고 진주시의 풍경은 촉석루 가을, 문산 배꽃, 금호지 능수벚꽃, 경남수목원 가을, 남강유등축제, 남강습지공원 등이다.


통영시는 동피랑마을, 욕지도, 소매물도 등대섬, 사량도, 산양읍 야소마을, 한산면 추봉도, 사천시는 대방진굴항, 초양도의 봄, 산수도, 남일대코끼리바위, 선진리성 벚꽃, 김해시는 천문대, 주촌 이팝나무, 화포천, 분산성, 연지공원 등이며 밀양시의 풍경은 호박소, 만어사 경석, 위양지의 봄, 백운산 백호바위, 제약산 억새 평원 등이 선택됏다.


거제시는 공곶이의 수선화와 바다에서 바라보는 바람의 언덕, 신선대, 바다에서 바라보는 해금강, 대금산 진달래, 대소병대도, 양산시는 홍룡폭포의 가을, 원동매화마을, 배냇골 여름, 천성산의 여름, 통도사 홍매화 등이다.


의령군은 정암루 솥바위, 황산 철쭉, 성황리 소나무, 봉황대, 탑바위, 함안군은 무진정, 연꽃테마파크, 강주마을 해바라기, 법수면 뚝방길, 무기연당, 그리고 창녕군은 우포늪의 여름, 남지 유채밭, 화왕산 진달래, 대봉늪, 영산줄다리기 등이 꼽혔다.


산청군의 지리산 실비단 폭포.


밀양시의 백운산 백호바위. 숲속에서 흰호랑이가 걸어가는 모습이다.


합천군 남산제일봉과 해인사의 가을, 그리고 황매산 철쭉 풍경.


고성군은 상족암, 병풍바위, 촛대바위, 고성평야의 가을, 거류산에서 바라보는 당동만, 남해군 금산 보리암, 독일마을, 가천 다랭이마을, 두모마을 유채밭, 지족 갯벌, 지족 죽방렴, 하동군은 섬진강 재첩, 형제봉의 철쭉, 화개 십리벚꽃, 북천역 코스모스, 삼성궁 등.


그리고 산청군은 지리산 천왕봉 일출, 지리산 청왕봉 설경, 지리산 실비단 폭포, 경호강 래프팅, 남사예담촌 부부나무, 지리산 제석봉의 여름, 함양군은 상림숲의 가을, 지안재, 군자정, 서상면 대소로 마을, 월봉산 설경, 북동마을 다랭이논, 거창 금원산 이끼계곡, 수승대의 여름, 황산신씨 고택, 고견사 은행나무, 덕천서원 벚꽃, 월성계곡 수승대, 합천군은 가야산 만물상, 매화산 남산제일봉, 해인사의 가을, 황매산 철쭉, 백련암의 가을, 황강 등이 풍경화에 담겼다.


신 작가가 수채화에 담은 풍경은 대체로 유명한 곳이다. 그림을 보면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그림이 많은데 그는 어떻게 이런 앵글에서 풍경을 담을 수 있었을까?


경남도립미술관에 비치한 팸플릿에 보면 그의 작품에 대해 ‘새의 시선으로 풍경을 보다’라는 소제목으로 설명을 해놓은 것이 있다.


“예로부터 인간은 하늘을 나는 꿈을 꿔 왔다. 그것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것데 대한 동경이자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그래서 많은 예술작품에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 또는 날개가 등장하곤 한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새가 되지는 못했지만 새의 시선을 가질 수 있게 됐고, 날개는 없지만 카메라에 날개를 달 수 있게 됐다. 드론을 이용해 카메라를 높이 띄워 평면의 시선이 아닌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풍경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채화에 담긴 경남 도내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


그의 많은 작품이 드론을 이용한 새의 눈으로 그려졌다. 그냥 어느 때고 드론을 띄워 하늘에서 내려다본다고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낼 수는 없는 일이었을 터. 신 작가는 “그리고 싶은 곳이 가장 아름답게 표현될 계절과 시간을 찾는 것이 정말 중요했다.” 말한다.


“천왕봉의 새해 첫날 일출을 설경과 함께 담고 싶어서 12월 마지막 날에 산에 올랐어요.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새해 첫 일출을 다행히 카메라에 잘 담을 수 있었어요. 그땐 정말 뿌듯했죠.”


신 작가가 팸플릿에 소개한 소회다. 풍경이란 것이 상황과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어서 같은 장소에서도 몇 번이나 촬영을 반복해야 했던 적이 많았단다. 그의 말대로 풍경수채화란 것이 사진과 달라서 작가의 마음이 화폭에 스며드는 것이 중요할 터이다.


“자연을 단순히 똑같이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물의 번짐과 붓 터치를 이용해 나름대로 해석을 더합니다. 조금 더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따뜻한 색감을 추가하고, 조금 더 다채로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사진에 없는 색을 추가하기도 하면서 자연을 조절하는 거죠.”


이번 주말 경남의 100경 다채로운 모습을 신종식 작가의 풍경화를 통해 감상해보는 건 어떨까? 더불어 동시에 1,2,3전시실에서 전시되고 있는 ‘피카소와 세 개의 정원-거장들의 휴머니즘’전도 함께 관람한다면 더 풍부한 예술의 세계를 맛볼 수 있을 듯하다.


매주 월요일 휴관이며 성인 1000, 청소년 700, 어린이 500원의 관람료가 있다. 문의 : 055-254-4600.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주말에 뭘볼까]한여름밤 낭만의 플루트 선율

비플루티스트 앙상블 제4회 정기연주회 16일 성산아트홀 소극장서


플루트가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은 무엇일까? 우선 딱 떠오르는 음악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음 직한 비제 곡 ‘아를르의 여인’. 바이올린과 어울려 맑고 상큼한 소리로 낭만의 호수 속으로 밀어넣던 그 멜로디.


그런 플루트 특유의 청아한 음악을 한껏 들을 수 있는 연주회가 이번 주말 창원에서 열린다. 올해로 창단 4주년을 맞은 ‘경남 비플루티트스 앙상블’이 오는 16일 오후 730분 성산아트홀 소극장에서 정기연주회를 개최한다. 경상남도와 경남메세나협회 등에서 후원했다.




경남 비플루티스트 앙상블은 ‘Be + Fiutist’, 즉 ‘진정한 플루티스트가 되어라’는 의미로 만들어진 플루트 연주단이라고 한다. 구성원은 대부분 직장인과 주부 학생들로 이루어졌다.


이번에 비플루티스트와 함께 학생들로 이루어진 ‘앙상블 벨르’, 주부들 중심으로 구성된 ‘비아트 앙상블’도 무대에 올라가 플루트의 매력을 양껏 발산할 계획이다.


이번 공연은 플루티스트들의 무대인 만큼 플루트 연주가 메인이다. 여기에 협연으로 바이올린이 등장하고 피아노가 보조하는 연주이므로 준비된 다양한 곡들은 플루트를 중심으로 편곡됐다.


플루트가 어떤 악기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있겠느냐만 간단히 소개하자면 넓은 의미에선 리드 없이 관에 바람을 불어넣어 소리를 내는 관악기를 총칭하는데, 지금은 우리나라 대금처럼 옆으로 잡고 연주하는 ‘가로 플루트(traverse flute)’만을 이른다.


그렇다면, 여기서 퀴즈. 금속으로 만든 요즘의 플루트는 금관악기일까, 목관악기일까?정답은 목관악기다. 리코더, 클라리넷, 오보에, 바순 등도 목관악기 계열이다. 플루트가 금속으로 만들어졌어도 목관악기인 이유는 오랜 세월 목관악기로서 연주되어 온 전통 때문이라고 한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목관악기 플루트의 음색은 앞서 언급했듯이 맑고 청아한 게 특징인데 이러한 플루트로 연주되는 이번 공연의 곡목들에 대해 먼저 알아본다면 한층 유익하고 감동적인 음악 감상이 될 것이다.


경남 비플루티스트 앙상블의 연주 모습./경남 비플루티스트 앙상블 제공(이하 동일)


프로그램 팸플릿을 보면 첫 연주곡은 피아노 타이틀 모음곡이다. 캐논-가보트-트리치 트라치 폴카-크시코스 포스트. 여기서 캐논은 원래 앞선 멜로디를 따라 가며 연주하는 대위법의 연주법을 이르는 말이기도 한데 파헬벨의 캐논변주곡이 유명하다. 요즘은 25현 가야금으로도 많이 연주되고 있다.


이어지는 곡 가보트는 17세기 프랑스 가보 지역에서 생긴 보통빠르기의 춤곡인데 발레와 오페라 곡으로 소개되면서 유럽 전역에 전파된 음악이다. 또 트리치 트라치 폴카는 요한 슈트라우스 작곡으로 유명한 곡이다. 원래 보헤미아의 민속춤곡인데 리듬이 쾌활하고 템포가 빠르다.


그리고 크시코크 포스트는 독일 헤르만 네케의 곡이다. 역시 밝고 경쾌한 춤곡이며 ‘카우보이 우편마차’로 번역되기도 한다. 피아노 모음곡은 모두 류재현 편곡 작품이다. 팸플릿에서 ‘arr.’이라고 표기된 것은 편곡을 했다는 의미다. 이 모음곡은 전체합주곡으로 연주된다.



두 번째 연주곡은 프란츠 도플러의 곡으로 유명한 ‘샹송 다무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사랑의 노래’ 쯤 되겠다. 샹송으로 많이 불린 곡인데 플루트 솔로와 피아노 연주로 어떻게 소화될지 기대가 된다. 팸플릿에 적힌 ‘pf’란 글자는 ‘피아노 포르테’란 말인데 요즘은 그냥 줄여서 ‘피아노’라고 한다.


세 번째 곡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double violin concerto in d minor’란 곡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D단조’ 쯤 되겠다. 조용한 음악이다. 원래 바흐의 곡들이 헨델에 비해 조용하고 묵직한 곡들이 많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 연주엔 플루트와 바이올린, 피아노가 함께 연주된다. 이 세 악기는 아주 잘 어울리는 사이인데, 그 화음을 감상 포인트로 삼아도 되겠다.


네 번째 곡 ‘바로크 앤 블루’는 플루트 연주곡으로 많이 알려진 곡이다. 재즈와 함께 크로스 뮤직으로도 많이 연주되는, 들으면 누구나 ‘아, 이 음악!’할 그런 곡이다. 끌로드 볼링 작품으로 앙상블 벨레가 연주한다.


1부 마지막 곡은 ‘Londonderry Air’. 우리말로 번역하면 ‘런던데리의 노래’. 아일랜드 민요곡이다. 컨트리스타일의 음악인데 플루트 음색으로 어떻게 표현될지 역시 기대된다. 비아트 앙상블이 연주한다.




잠깐 휴식을 취한 뒤 2부 순서가 이어진다.


2부 첫 곡은 모네니크 치마로사 작곡 ‘콘체르토 G장조’란 곡이다. 두 개의 플루트가 화음을 이루는 곡인데 속삭이는 듯 재잘거리는 듯 플루트 음색의 특징을 한껏 살린 연주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연주곡은 영화 OST에서 선택했다. 먼저 1995년 개봉된 영화 ‘LOVE LETTER’, 러브레터는 일본 영화다. ‘오겡끼 데스까? 와따시와 오겡끼 데스’란 유행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던 순정드라마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연주되는 ‘Childhood day’는 주인공 이츠키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 삽입된 곡인데 음악을 직접 들으면 그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떠오를지 모르겠다. 뉴에이지 음악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이 곡은 레미디오스 작곡 류재현 편곡으로 바이올린 솔로로 연주된다.


그 다음 영화OST는 ‘Love Affair’란 영화의 동명 주제곡이다. 1994년 워렌비티와 아네트 베닝 주연의 연애담 영화다. 작곡자는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다.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등 70년대 서부 영화를 즐겼던 사람 중에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을 안 들어본 사람은 없으리라. ‘러브 어페어’OST는 피아노곡인데 플루트로 어떻게 소화될는지도 관람포인트겠다.


2부 네 번째 음악은 젊은 나이에 음악에 살다 간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란 곡이다. ‘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 혼자만의 오해였던가요…’. 잔잔하고도 슬픔이 밴 멜로디다. 이 곡 자체가 유재하의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 수록곡이어서 그런지 플루트 끝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더욱 애잔해질 것 같다.




마지막은 소풍어린이합창단이 디즈니 영화 주제곡들로 채운다. 라이언킹의 ‘서클 오브 라이프’, 미녀와 야수 ‘뷰티 앤 더 비스트’, 인어공주의 ‘언더 더 씨’, 그리고 포카혼타스의 ‘컬로 오브 더 윈드’.


음악감독을 맡은 서영선 경남 비플루티스트 앙상블 대표는 “이전 4회 정기 연주회는 ‘사랑’을 주제로 어린시절부터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사랑으로 인해 야기되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얘기해 보고자”했다며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무료. 문의 : 010-4575-9022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3)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수지봉 월명총에 얽힌 전설


(전편 줄거리)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한 초겨울 역녀 월명은 다른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이후에도 공식 업무가 끝나는 유시반각까지 기다렸다가 퇴근할 무렵이었습니다. 그때 멀리서 말발굽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옵니다. 경주에서 출발해 나주로 가는 파발관원인데 업무 마감시각 안에 도착하려다 너무 지친 나머지 당도하자마자 말에서 떨어집니다.

월명은 말을 진정시키고 관원을 보았는데 여느때와는 다른 감정을 느낍니다. 파발관원이 식사대접을 청하자 처음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식사를 합니다. 첫눈에 반한 파발관리 수영은 다음날 나주로 떠났고 다시 만날 것이라고 전혀 생각도 않았는데 다음날 저녁 경주로 돌아가던 길에 다시 함양으로 옵니다.

좋아하는 마음은 있었어도 기대하지 않았던 만남이어서 더욱 반가웠지만 월명은 오히려 자신의 마음과 달리 수영에게 얄밉게 행동합니다. 수영이 처음엔 자신이 착각을 하고 무례하게 대했나 생각이 들어 죄송한 마음을 나타내는데 월명이 짓궂은 장난을 쳤다는 것이 드러남으로써 서로의 관심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날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월명의 집으로 간 수영은 월명의 아버지지로부터 집에서 자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월명의 아버지도 수영에게 관심이 간 것입니다. 밤늦도록 막걸리를 주거니받거니 하며 이야기를 나누더니 어느새 장인, 사위 하며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열흘 후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경주로 떠났던 수영은 약속대로 열흘 후 함양으로 아예 이사를 옵니다. 여기서 거주하며 장사를 시작한 수영은 파발꾼의 인맥을 살려 전국을 대상으로 한 행상을 시작합니다. 2년 만에 제법 많은 돈을 번 수영은 정식으로 월명에게 청혼하여 결혼을 하게 됩니다.

열흘 간의 신혼생활을 행복하게 보낸 마지막 날 수영의 고향 경주에서 편지가 옵니다. 편지를 본 수영의 얼굴에 어둠이 깔립니다.


……………………………………………………………………………………..


“아들 보거라. 멀리 있으니 자주 근황을 알 수도 알릴 수도 없어 마음이 편치 않구나. 각설하고, 어머니가 위독하시다. 열일을 제쳐놓고 속히 집으로 오길 바란다.”


아버지의 친필 편지였습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급하였는지 글씨도 거의 초서에 가까웠습니다. 편지에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멀리 함양 처가에서 사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속내가 들어 있어 수영은 죄송하면서도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주지 않는 아버지가 서운하기도 하였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월명이 수영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위독하시답니다. 급히 오라는 전갈이군요.”

“어떻게 위독하시던가요?”

“그것까진 서찰에 쓰여있지 않아요. 좀체 이런 편지를 쓰지 않으시는 아버지께서 짤막하게 글을 써서 보내신 걸 보면 어머니 건강이 몹시 안 좋은가 보오.”

“여기 걱정은 마시고 얼른 가서 어머니를 살펴드리세요.”


수영은 아내 월명을 꼭 안았습니다.


“어머니 건강이 좀 나아지면 바로 오겠소. 나 없는 동안 건강 잘 챙기고 아버님도 잘 보살펴드리세요.”


장인에게도 사정을 이야기한 수영은 마구간에서 말을 꺼내어 올라탔습니다. 편지를 전해줬던 친구 득수와 함께 떠났습니다.


남편이 떠난 자리가 휑한 것처럼 월명의 마음도 뻥 뚫린 듯하였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위독하다는 데도 너무 멀리 있다 보니 찾아뵙지 못하는 게 죄송하단 생각이 들었는지 월명은 장독간에 정한수를 떠 놓고 매일 밤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습니다. 아무리 치성을 드려도 시어머니에게 차도가 없는 건지 남편은 돌아오지도, 편지를 보내지도 않아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월명은 금세 올 것 같던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서서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병구완을 하다 남편마저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너무 궁금하고 답답해 경주로 나설까 하다가 또 행여나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라면 서로 길이 엇갈릴 수도 있는 일이므로 선뜻 나서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추운 겨울이 다 지나고 따뜻한 봄이 되었습니다. 산에 들에는 온갖 꽃들이 다시 생명을 얻어 피어나고 나비와 새들이 날아들었습니다. 새순이 돋는 나뭇가지에는 새들이 몰려와 아름다운 소리로 지저귀었습니다.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월명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그래, 이제 봄이 되었으니 어머니의 건강도 새생명을 얻은 것처럼 쾌차하실 테고 남편도 경쾌한 말발굽소리를 내며 돌아올 거야.’ 월명은 다시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얘야, 이 죽 조금이라도 먹거라. 속이 든든해야 기운도 차리지.”

“죄송해요, 아버지. 목이 따가워 음식을 삼킬 수가 없어요.”


월명은 정한수 앞에서 치성을 드리다 한 번 쓰러진 뒤론 건강이 급격히 악화해 몸져누운 지 한 달이 다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날 시어머니의 건강을 기원하며 치성을 드린 지 한 달 보름만의 일이었습니다.


남편 수영에게선 두달 반이 지나도록 전혀 연락이 없습니다. 월명은 이제 날도 따뜻해졌기 때문에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직접 찾아가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아버지, 근 석 달이 되었는데도 그이의 소식이 없으니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역장 나리께 사정을 하여 말을 타고 경주엘 다녀오겠습니다.”

“그 몸으로 어딜 간다는 거냐? 그리고 역마를 사사로이 이용하고자 청을 넣는다는 것은 역장님을 난처하게 만드는 것이니 옳지 않은 일이다. 내가 경주로 가는 행상을 통해 서찰을 보낼 터이니 넌 딴 데 신경 쓰지 말고 몸조리나 잘 하거라.”


아버지 말씀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월명은 너무 갑갑한 나머지 자신이 직접 가지 않으면 불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 하신 말씀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마음이 불안해서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이러다 더 병이 날 것 같아요.”


딸의 마음병이 더 심해질 거라는 말에 아버지도 더는 만류하지 못하였습니다.


“알겠다. 그렇다면 채비를 할 테니 국밥집 둘금이와 둘금이 오래비랑 셋이 함께 다녀오너라.”

“예, 고맙습니다. 아버지.”


월명은 곧 남편 수영을 만날 수 있다는 기분에 몸이 훨씬 나아진 듯하였습니다. 월명은 바로 둘금 어머니가 운영하는 국밥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둘금이네는 월명네와 친척보다 더 가까이 지내는 이웃입니다. 월명은 기운도 없고 숨도 가빴지만 기쁜 마음에 아픈줄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아주머니, 아버지께서 한석이 오라버니랑 둘금이랑 함께 경주 가는 것을 허락하셨어요. 아주머니께서도 허락을 해주세요.”

“그리 좋으냐? 그 먼 길을. 지금 니 몸 상태로선 쉽지 않은 여행이 될 텐데….”

“괜찮습니다. 이제 기운이 솟는 것 같아요.”


국밥집 둘금 어머니의 반 허락을 받은 월명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넉넉잡아 닷새 후면 남편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것 같았습니다. 어찌 기운이 났던지 월명은 둘금 어머니에게 국밥을 한 그릇 달라고 했습니다.


“죽도 제대로 못 먹는 니가 이 국밥을 삼킬 수 있겠냐? 최대한 부드러운 고기로 국밥을 떠줄 테니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거라.”

“네, 고맙습니다. 어머니.”

“하하하. 녀석. 늘 아지매 아지매 하더니 웬, 갑자기 어머니야? 하하하.”


월명은 둘금 어머니로부터 국밥을 건네 받고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월명의 속이 이상해졌습니다. 먹은 것도 없는데 뭔가가 식도를 타고 거꾸로 치솟아 올라오는 듯하였습니다.


“우웩!”


분명히 속에서 굵직한 뭔가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 듯했는데 그러나 아무것도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웩, 우웩!”


연거푸 토가 올라오자 월명은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둘금이 어머니가 따라와서 등을 두드려주었습니다.


“얘가, 왜 이러냐? 먹은 것도 없다 하더니? 가만!”


둘금모는 뭔가 생각난 듯이 손가락을 짚었습니다.


“월명아, 달거리 끝난 게 언제냐? 혹시 임신한 거 아니냐? 아이구, 맞구만. 맞아!”


선뜻 대답을 못하고 멍하니 있는 월명을 바라보며 둘금모는 경사가 난 듯 좋아라 하였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평상으로 다시 돌아가더니 손님들에게 큰소리고 말했습니다.


“손님들, 오늘은 내가 너무 기쁜 날이라 밥 더 드시고 싶은 분은 말씀하세요. 얼마든지 공짜로 더 드리리다. 내 딸이나 진배없는 월명이 임신을 했어요. 아이를 가졌단 말이오. 하하하!”


월명은 살며시 자신의 배를 만져보았습니다. 아직 느낄 수는 없지만 이 속에 사랑하는 남편과 자신의 아이가 들어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아가, 이렇게 우리가 만나는구나. 너를 만나서 아주 행복하다.’ 월명의 입덧은 어느새 멎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다시 배가 고파졌습니다.


다시 자리로 돌아간 월명이 국밥 앞에 앉아 숟가락을 뜨려고 하자 속이 다시 울렁거렸습니다.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성스레 담은 국밥을 한 술도 뜨지 못하고 그대로 일어서려니 괜히 둘금 어머니에게 미안하였습니다.


“어머니, 죄송해요. 맛있게 국밥을 담아주셨는데 이렇게 먹지도 못하고….”

“괜찮아. 무슨 소리냐? 입덧을 하면 누구나 그런 것을. 혹시 따로 먹고 싶은 것은 없어? 이 아줌씨가 뭐든 다 해줄 테니 말해보거라.”

“아뇨. 없어요. 이제 집에 갈게요. 경주에 갈 채비도 해야 하고.”

“참, 그렇구나. 경주엘 간댔지? 임신 초기에 몸조리를 잘하지 못하면 애가 떨어지는 수가 있는데…. 조금 더 있다가 아기가 뱃속에서 자리를 잡고 나면 떠나는 게 어떻겠니?”


순간 월명의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아기가 생겨 그저 행복하였던 것은 장거리 여행을 가야 하는 상황을 연결지어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꺼번에 할 수 없는 두 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지자 월명은 갈등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의 소식이 너무나도 궁금해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데 뱃속 아기 때문에 장기간 여행을 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월명의 기분은 다시 우울해졌습니다. 남편을 보러 갈 기분에 날아갈 듯 기뻤는데 이제 그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고민 끝에 하는 수 없이 아버지 말씀대로 경주로 가는 행상을 통해 기별을 넣는 수밖에 없습니다.


기별을 넣은지 또 한 달이 지났습니다. 마당을 오락가락하며 모이를 쪼아 다니던 암탉들도 더위를 피해 마루 아래로 들어가 수시로 날개를 퍼덕거렸습니다. 월명은 매일같이 남편에게서 올 편지를 기다렸습니다. 마을 어귀까지 나가 기다리길 밥 먹듯 하였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물론이고 편지를 전해줄 법한 행상들의 모습도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월명은 다시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어쩌면 지난 한 달은 아이 때문에 버틸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밤마다 월명을 괴롭혔습니다. 뒷산 소쩍새가 울어 깊은 밤 적막을 몇 번이나 깰 때까지 잠들지 못하던 월명은 새벽녘 샛별이 떠오를 녘에서야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월명이 잠들었을 때 희한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안개 자욱한 길을 거닐고 있는데 갑자기 절벽이 나타나더니 남편의 몸이 절벽 아래로 쑥 빠져버리거나 또 다른 날에는 괴물이 나타나 남편을 덥석 잡아가는 그런 꿈이었습니다.


그런 남편의 손을 잡고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자신의 힘으론 역부족입니다. 꿈속에서 남편을 잃고 허우적거리다가 깨어 보면 벌써 햇볕이 창문을 열어라고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월명의 이마에는 땀이 흥건히 맺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뒤숭숭한 꿈 때문에 대청마루에 앉아 고개를 떨어뜨리고 멍하니 마당을 바라보고 있는데 커다란 그림자가 시선에 들어왔습니다. 월명은 서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행상차림을 한 남자가 태양을 등지고 월명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반쯤 뜬 눈으로 들어온 사내를 보고 월명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계속)


[관련기사]


(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1)

(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2)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2)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수지봉 월명총에 얽힌 전설


(전편 줄거리)월명은 사근역 역녀로 출퇴근을 하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씨가 착해 역을 오가는 관원들이 수작을 종종 걸지만 한 번도 그들과 식사를 같이하거나 마을을 안내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역문을 닫을 쯤에 급한 말발굽소리가 들립니다.


월명이 밖으로 나가가 파발마는 역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지친데다 흥분되어 몸을 일으켜 세우고 그 바람에 파발 관원이 땅에 떨어집니다. 그 순간 관원이 말발굽에 밟힐 위기에 처하자 월명이 소리를 쳐서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관원이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일어서면서 서로 눈이 마주치는데 월명의 가슴이 콩닥거립니다. 이런 일은 처음 느껴보는 것입니다. 월명은 말을 마방에 데리고 가면서도 진정이 되지 않습니다.


늦은 시각에 도착한 게 미안해서 관원은 저녁을 사겠다고 하고 식당으로 갑니다. 월명은 처음으로 파발관원이 산다는 식사에 응한 것입니다. 식사를 함께 하면서 관리의 이름이 수영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월명은 수영을 깨워 역으로 함께 갑니다. 월명은 김 역장에게 말해 중등마를 내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수영은 나주로 떠납니다. 수영을 보낸 월명은 가슴이 휑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수영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지 못한 것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다음날 역시 역참 문을 닫을 시각. 월명은 퇴청 준비를 하고 나서는데 수영이 나타납니다. 월명은 그에게 달려가 안기는 상상을 합니다. 그러자 수영이 그를 와락 껴안습니다.


………………………………………………………………..


월명은 자신도 모르게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처음으로 마음을 주었던 수영이지만 이렇게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무 얼떨결에 남자의 품에 안긴 터라 두 팔은 축 늘어뜨린 채로 서 있었습니다.


“월명, 보고 싶었소. 어제 헤어진 뒤 그대 생각만 하였소. …?”


월명은 자신도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러자 수영이 자기 혼자 반가워 무례를 범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아, 미안하오. 내가 너무 반가운 마음에…. 용서하시오.”


수영은 월명을 안았던 팔을 풀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습니다. 월명은 수영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수영은 더욱 당황하였습니다. 수영은 어쩔 줄 모르고 말을 더듬기 시작했습니다.


“그, 그게 그러니까…. 월명낭자가…, 내 마음이…. , 이런 어떻게 말해야 하나?”

“하하하하. 나리께선 참 순수하신 분이군요.”


월명은 가슴이 콩닥거려 어찌할 바를 몰라 멍하니 수영의 얼굴을 보았던 것뿐인데, 수영이 당황해 하며 말도 더듬거리자 그만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수영도 그런 월명을 한참 바라보다가 함께 웃었습니다.


두사람은 이틀 전에 갔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남강변을 걸었습니다. 파발마들이 다니는 곳이어서 강변을 따라 길게 길이 나 있었습니다. 길을 따라 또 물억새가 한 번씩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흰머리칼을 휘날리며 춤을 추었습니다.


“이 마을엔 좋은 사람들이 참 많아요.”


월명은 이번에 경주로 가면 언제 또 오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어쩐지 속내를 내보이는 것 같아 얼른 말을 돌린다는 게 마을 사람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더군요. 몇 분 만나보진 못했지만 다들 친절하시고….”

“국밥집 아주머니 있죠? 그분 딸이 제 친구랍니다. 둘금이라는 애인데 걔, 엄마와는 달리 아주 미인이랍니다.”

“그런가요? 아주머니도 예쁘게 생겼던데, 그보다 더하다면 절세미녀겠는데요. 하하.”

“…. 나리, 둘금이란 애 소개시켜 드릴까요?”

“…….”


월명은 속으로 후회가 되었습니다. 수영에게 왜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자신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는데 자꾸 딴 이야기만 늘어놓게 되는 것이 속상했습니다. 수영 역시 함께 경주로 가서 살고 싶다라든지 월명만 원한다면 이곳에서 살겠다든지 이런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을 꺼내지 못하는 자신이 갑갑했습니다.


점점 밤은 깊어갔습니다. 월명도 이제 집으로 들어가야 할 시각이 되었습니다. 수영 역시 월명과 오랫동안 함께 있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결혼도 안 한 남녀가 밤늦게까지 인적이 드문 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동네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일이니까요.


“너무 늦은 것 같은데 집까지 바래드리겠소.”


수영이 걸음을 멈추며 말했습니다. 월명 역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습니다.


“그래요. 너무 늦은 것 같네요.”


두 사람은 월명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앞에는 월명의 아버지가 나와 있었습니다. 해시정각(오후 9)이 다 되었는데도 과년한 딸이 집으로 들어오지 않자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평소엔 아무리 늦어도 술시반각(오후 8)을 넘긴 적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왜 이리 늦은 거냐?”


월명의 아버지는 딸의 옆에 웬 남자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속으로 적잖게 놀랐습니다. 한편으론 과년한 딸이 남자의 배웅을 받아 집까지 온다는 것은 반갑기도 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얼굴이라 걱정도 되었습니다. 역에서 일을 하다 보니 뜨내기 관리들이 월명에게 집적거리는 일이 많았던 데다, 물론 그럴 때마다 딸이 현명하게 대처하곤 했지만 자칫 마음을 주었다가 상처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옆에…, 누구냐?”

“아, 아녜요. 아버지. 그냥…, 나주서 경주로 돌아가던 파발 관원입니다. 마을 구경을 하고 싶대서….”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그런 적이 없던 니가 웬일이냐?”

“아, 안녕하십니까? 경주에 사는 이수영이라고 합니다.”


월명의 아버지는 재빨리 눈치를 챘습니다.


‘이 아이가 경주 총각을 좋아하는구나.’


월명 아버지는 총명하기로 함양에서도 소문난 딸이 남자를 집앞에까지 배웅받아 데려온 것은 그만큼 마음에 두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자네 술 마실 줄 아는가?”

“네, 조금씩은 마십니다.”

“주막에 가서 막걸리 두 병 사오게.”

“네? , 알겠습니다.”


수영은 너무 뜻밖의 일이라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속으로 연모하는 사람의 부친이 자신에게 술심부름을 시킨다는 것은 함께 술을 마시자는 얘기일 테고, 그렇다면 호감을 보인다는 얘기가 되므로 아주 기뻤습니다.


수영이 주막으로 가자 월명의 아버지는 딸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저 총각이 그렇게 마음에 드느냐?”

“지금까지 봐왔던 사람과는 달라 보였습니다.”

“알겠다. 애비가 저 총각의 마음이 어떤지 살펴보마.”


월명은 부엌으로 가서 술안주를 만들었습니다. 주안상을 마련해 나왔을 때 술 두 병을 사들고 돌아온 수영과 마주쳤습니다.


“이렇게 밤이 늦었는데 아주머니께서 술을 팔던 모양이죠?”

“네, 문을 닫았으니 딴 데 가보라는 걸 딴 데는 아는 곳이 없다며 한사코 졸랐지요. 하하.”

“그래서 늦었군요. , 들어가세요.”


월명의 아버지와 수영은 술상을 가운데에 놓고 마주앉아 막걸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정담을 나누었습니다. 월명은 이야기를 듣는 중에 수시로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두 사람의 정담이 툭하면 혼담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월명이 술 심부름을 몇 번이나 하였는지 모릅니다. 아버지는 수영에 대해 아주 큰 호감을 느끼게 되었고 수영 역시 아버지의 솔직한 태도와 말에 터놓고 얘기하며 즐거워하였습니다. 어느덧 자정을 넘기고 멀리서 밤부엉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장인 어른, 이제 일어나 보겠습니다.”

“어? 좋지 장인 어른. 이보게 사위. 오늘 잠은 여기서 자게나. 이 시각에 객점 문 두드려봤자 욕만 얻어먹고 쫓겨날 걸세.”


월명은 자기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여전히 아버지 방에서는 두 사람이 웃으며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립니다. 멀리서 다시 부엉이가 연방 목청을 뽑습니다.


얼마나 눈을 붙였을까. 월명은 닭울음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밖을 나오니 동쪽 산등성이 위로 동이 트고 있었습니다.


‘장인 어른, 따님과 혼인을 하고 싶습니다. 이번에 경주에 돌아가면 경주관헌 일을 정리하고 이곳으로 이사를 오겠습니다. 여기서 장사를 시작하여 돈을 벌겠습니다. 그래서 살림을 차릴 정도가 되면 정식으로 청혼을 올리겠습니다.’


월명은 어젯밤 수영이 아버지에게 한 말을 되새기면서 살포시 미소를 짓고는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월명 역시 아버지와 수영을 위해 아침을 짓다 보니 어느덧 자신이 수영의 아내가 된 듯하여 낯이 붉어졌습니다.


아침을 먹은 후 월명과 수영이 역참으로 향했습니다. 수영의 기분은 아주 좋았습니다. 월명의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고향에 돌아가 어머니 허락만 받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역참에 도착한 월명은 수영에게 말을 내어주었습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열흘쯤 걸릴 것 같소. 반드시 돌아올 테니 꼭 기다려 주시오.”


월병은 수영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딱 열흘 후.


수영은 약속대로 함양 수동마을에 나타났습니다. 경주에서 완전히 함양으로 이사를 온 것입니다. 수영은 월명의 집 옆에다 집을 지었습니다. 이미 월명과의 관계를 어찌 알았는지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함께 도왔습니다. 수영은 이곳에서 생활을 하며 행상을 시작하였습니다.


수영은 5~6년간 파발 업무를 맡아 일했기 때문에 전국 어느 곳에 무엇이 많이 나고 어디서 그런 물건이 비싸게 팔리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수영은 전국으로 다녔기 때문에 어느 때엔 열흘간 집을 비우는 때도 있었습니다. 함양으로 돌아왔을 때엔 늘 월명과 함께 했습니다.


전국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다 보니 계절과 지역의 특성을 잘 파악해 장사 물품을 정해야 했습니다. 수영에겐 그런 안목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나자 수영에겐 많은 돈이 모였습니다. 수영은 이제 월명에게 청혼을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월명도, 월명의 아버지도, 또한 마을 사람들도 공통으로 그렇게 느꼈는지 이젠 살림을 합치라는 얘기를 공공연히 하였습니다. 월명과 수영은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수영의 부모님은 너무 먼 거리여서 참석하지 못하였지만 함양으로 오는 도붓장수를 통해 축하한다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축하해주니 정말 행복하오.”

“우린 하늘이 맺어준 부부인가 봐요. 서로 좋아해도 반대하는 가족이나 가문의 어른들 때문에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요. 궁합이 맞지 않아 못하고, 예단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 결혼식을 앞두고 파혼하기도 하고.”

“서로 잘 사귀다가 싸움 한 번 한 걸 제대로 수습하지 못해서 헤어지기도 하지요.”

“그러고 보면 우린 천생연분이구료. 하하하하.”

“그래요. 하하하하.”


월명과 수영은 밤늦도록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신혼 첫날밤을 보냈습니다. 이들의 첫날밤을 밖에서 지켜보던 마을 아주머니들은 이제나저제나 신랑이 신부의 옷을 벗기는 모습을 보고자 기다렸는데 계속 이야기만 나누는 모습을 보곤 길게 하품을 하며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수영은 결혼 후엔 한동안 장인의 짚신을 짜고 가마니를 만드는 등 일을 도우며 월명과 함께 지냈습니다. 월명도 열흘간 역참일을 쉬었습니다. 하루하루 월명과 수영의 집에선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무뚝뚝했던 수영의 장인도 사위와 함께 일을 하면서 늘 즐거워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집앞을 지날 때마다 어허, 이 집에 깨가 한도 끝도 없이 쏟아지네그려 하면서 부러워했습니다.


그렇게 아흐레가 지났습니다. 내일이면 월명은 역참으로 출근을 하고 수영은 다시 전국을 다니며 행상을 떠날 것입니다. 아흐렛날 오후가 되자 두 사람은 서로 보면서 이러한 생활이 더 지속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나누었습니다.


“잠깐 잠깐 떨어져 살다 보면 우리의 사랑이 더 깊어질 수도 있을 거요. 너무 아쉬워 말아요.”

“그렇겠지요. 당신을 기다리는 것도 즐거움일 수 있을 거예요.”

“행상을 다녀올 때마다 당신에게 선물을 사오리다.”


서로 그렇게 말은 했지만 잠시라도 떨어져 산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았습니다. 짧게는 사흘 정도이지만 원행을 떠날 때엔 열흘이 넘게 걸리기도 하니까요. 수영은 월명의 손을 꼭 잡은 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조만간 행상을 접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보게, 수영이! 오랜만일세. 결혼했다면서? 늦게라도 축하하네.”


수영이 파발 관원 일을 할 때 알게 된 도붓장수 득수가 어스름녘에 찾아왔습니다.


“이런! 득수가 아닌가? 이게 몇 년 만이야? 함양엔 어쩐 일로?”

“경주에 갔다가 자네 집에 들렀지. 그런데 아버님이 자네에게 전해주라며 편지를 주더군. 마침 나도 거창에 일도 있고 해서 가는 길에 이렇게 온 거라네.”


수영은 편지를 건네받고 펼쳐보았습니다. 편지를 읽던 수영의 얼굴이 일순 잿빛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계속)


[관련기사]


(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1)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새롭게 전설텔링이 시작되었습니다. 1편을 쓴 뒤에 현장을 찾았는데... 기록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더군요. 이번에도 현장을 찾느라 좀 고생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첫 작품이었던 '우곡각자' 바위보다야 훨씬 고생이 덜했고, 신동대굴이나, 속씻개굴, 일명 이순신굴을 찾을 때보다도 조금 고생은 덜했지요. '우리서방님 못보셨나요' 전설텔링처럼 열녀의 이야기라 좀 재미가 덜하긴 한데... 몇 가지 장치를 넣어 약간 색다르게 꾸며보도록 하지요. ^^ 


(전설텔링)역녀(驛女) 월명(1)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수지봉 월명총에 얽힌 전설


월명총은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월명마을 뒷산에 있습니다. 그 산을 월명총이 있다 하여 월명산이라고도 하는데 다른 이름으론 수지봉이라고 부릅니다. 수지산이라고도 하고요. 이 산봉우리에 월명총이 있습니다.


월명이란 여인은 사근역참에서 일하는 역녀였는데 그 신분이 천민은 아니었습니다. 평민이면서도 천한 일을 하였던 거지요. 그래서 역노비와는 신분 상 차이가 있었답니다. 월명의 이웃에 경주 출신의 행상을 하는 총각이 있었는데, 이는 키가 크고 얼굴도 잘생겼고 마음씨도 좋아 동네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이 총각은 행상을 하며 살았습니다. 경주가 고향이긴 하지만 여기서 열심히 살다 보니 고향도 까맣게 잊은 채 생활했다는군요. 월명과 그렇게 이웃으로 살다 보니 자연히 눈도 자주 마주치고 스스럼없이 만나다 보니 자연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던 거지요.


둘은 서로를 잘 이해해주었습니다. 서로 위하는 마음이 너무나 간절했기에 이웃사람들의 권고로 혼례를 하고 신혼살림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깨가 쏟아지는 신혼생활을 이어가던 중 경주에서 경주인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게 됩니다.


경주로 함께 가려니 너무 먼 거리여서 경주인은 아내 월명을 남겨두고 곧 돌아오겠다고 하고 혼자 떠납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하지만 곧 돌아오겠다던 남편은 소식이 없습니다. 그러다 월명은 몸져눕게 되고 결국은 정신마저 이상해지면서 숨을 거두고 맙니다.


경주인은 아내가 죽은 지 까맣게 몰랐지요. 어서 어머니 병환이 완쾌되어 아내에게 달려가고 싶지만 차도가 없는 어머니의 병세에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머니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맙니다.


어머니의 사망은 경주인으로선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한편으론 아내에게 달려갈 수 있는 상황이 되기도 해 장사를 치르고 함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경주인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에 몇날 며칠을 월명의 무덤에서 슬퍼하다가 끝내 죽고 맙니다.


마을 사람들은 월명과 그의 남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월명과 나란히 무덤을 만들어주었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다 숨진 월명의 무덤을 월명총이라고 이름을 지어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가슴이 짠해지는 전설입니다. 사랑과 그리움, 기다림의 심리적 정서가 오롯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사랑하고 떠나고 그리워하고 기다리다 이승을 하직하는 안타까운 사연은 우리 전설에 흔히 등장하는 유형입니다.


근본 맥락은 어찌 바꿀 수는 없지만 여러 정황을 이야기 곳곳에 장치해 조금 새롭게 이야기를 꾸며보겠습니다. 월명의 남편, 경주인. 이름을 뭘로 지으면 좋을까요? 월명, 달이 밝으니 물이 품은 달그림자란 의미로 수영이라고 지으면 어떨까요? 시기는 조선 초기로 하지요.


……………………………………………………………………………………


동짓달로 접어들면서 밤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습니다. 이런 날이 며칠 계속 되자 역참을 찾는 이도 일찍 마방에 말을 맡기고 객점으로 향했습니다. 월명은 역리들이 실무를 보는 작청 앞에서 양 소매에 손을 파묻은 채 떨어지는 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거라. 더는 길손이 오지 않겠구나.”


월명은 고개를 돌렸습니다. 작청 사무실에서 김 역장이 문을 열고 나오며 추위에 떨고 있는 월명을 측은한 듯 보며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역장나리. 그래도 혹시 늦게 말을 몰아 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는데 유시 반각(오후 6)까지는 기다렸다가 퇴근하겠습니다요. 나머지 일은 제게 맡기시고 나리께선 먼저 퇴청하시지요.”

“원 녀석도. 그럼 밖에서 이러고 있지 말고 사무실에 들어가 있으려무나. 요즘은 유시 정각만 되어도 어두워지기 시작하던데 일없으면 일찍 퇴청하거라.”

“예, 나리.”


월명은 김 역장의 등에다 꾸벅 절을 하고 작청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정말 요즘은 유시 정각 이후 역무가 있는 날이 별로 없었습니다. 추위 때문에 문서를 나르는 관원들도 무리하지 않고 적당한 시간이 되면 역참에 말을 맡기고 주막에 가서 술로 몸을 녹이거나 일찌감치 객점에 들어가 따뜻한 봉놋방에서 몸을 녹이곤 하였습니다.


얼추 유시 반각이 되었지 싶은지 월명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사무실 문단속을 하고 마방으로 갔습니다. 행랑채로 들어가려던 역노 막득이가 아는 체를 하였습니다.


“아직 퇴청 안 하셨수? 요샌 해가 일찍 떨어지니까 유시도 안 돼 죄다 퇴청하던데.”

“응. 혹시나 싶어서요.”

“다른 사람들처럼 대충대충 일하슈. 알아주는 것도 아니구. 허허.”


막득은 월명보다 대여섯 살 많지만 천한 노비 신분이라 평민인 월명에게 함부로 말하진 않았습니다. 월명 역시 아무리 역노라지만 나이가 한참 위인 사내에게 말을 함부로 놓을 수 없다고 여겨 위해주었습니다.


“다다다다….”


월명이 역참문을 닫고 돌아서려는데 급한 말발굽소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습니다.


“히히히힝~!”


말은 월명이 서 있는 곳까지 다다르더니 앞발을 들고 몸을 세웠습니다. 그 순간 말에 타고 있던 관원이 땅바닥으로 쿵하고 떨어졌습니다.


“아얏!”

“이봐욧! 어서피해요!”





월명도 다급했습니다. 말이 너무 흥분했는지 날뛰면서 관원을 밟으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월명의 고함을 들은 관원은 재빨리 몸을 굴려 간발의 차이로 말의 발굽을 피했습니다.


“워~, . , 착하지.”


월명은 고삐를 잡고 말을 진정시켰습니다. 신기하게도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흥분된 말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를 정도였는데 월명의 목소리에 말은 금세 얌전해졌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관원이 놀란 듯 월명을 쳐다보았습니다.


“아가씨, 말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구료.”


관원이 모자를 벗어 흙 묻은 옷을 툭툭 털면서 말했습니다.


“어디 다치진 않으셨어요?”

“아, . 괜찮아요. 이 정돈 늘 겪는 일이라. 하하.”


관원은 겸연쩍게 웃었습니다. 그 순간 월명은 관원의 순수한 웃음이 무척 귀엽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 속에서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 뭐지? 이 느낌. 갑자기 얼굴도 확 달아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이 관원, 아주 잘 생겼다. 키도 헌칠하네. 말씨도 부드럽고 포근하다.’ 월명은 넋이 나간 듯하였습니다. 월명이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는데 관원이 밝은 표정으로 말을 꺼냈습니다.


“저기 아가씨, 역참 문 닫은 건 아니죠? 사근역 마치기 전에 도착하려고 100리를 숨도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봐주시죠. 헤헤.”


월명은 관원이 가까이 다가오자 얼른 몸을 돌려 역참 문을 열었습니다. 관원이 말고삐를 잡고 바로 등에 바짝 붙어 뒤따라오는 것 같았습니다. 월명은 빠른 걸음으로 마방을 향해 걸었습니다. ‘따그닥 따그닥.’ 뒤따르던 관원은 갑자기 앞의 아가씨가 빠른 걸음으로 걷자 서둘러 따라붙었습니다.


월명은 마방에 말을 넣고 콩과 겨, 여물을 섞어 쑤어 만든 말죽을 주었습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말은 게걸스레 먹었습니다. 월명은 말의 목등을 톡톡 두드려주고 관원과 함께 마방을 나왔습니다.


“아가씨, 퇴근길인데 이렇게 폐를 끼쳐 미안하오. 고맙소.”

“괜찮습니다.”

“말과 함께 100리를 달렸더니 나도 몹시 시장하구려. 근처에 국밥 잘하는 데 있으면 소개 부탁하오.”

“네, 바로 앞에 괜찮은 국밥집이 있어요. 따라오세요.”


국밥집 앞에서 관원이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습니다.


“저, 식사를 대접했으면 하는데 저녁 식사 전이면 함께 하시죠?”


월명은 말을 타고 온 수많은 외지 관원들이 툭하면 같이 밥을 먹자거나 함께 길을 걸으며 이 고을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거나 하는 일이 많아 이런 류의 발언에 어찌 대응할지 훤했지만 이 관원에 대해서만은 왠지 거부하기 싫었습니다.


“네.”


국밥집 안으로 들어서자 아주머니가 웬일이냐 하는 눈으로 월명에게 다가왔습니다.


“이 관원도 외지에서 말을 몰고 온 것 같은데 웬일리래? 천하에 고고한 월명이 관원과 함께 밥을 다 먹고? 호호호.”

“아주머니,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냥 오늘따라 너무 배가 고파서 따라왔어요.”


관원이 그제야 마주앉아 있는 아가씨의 이름이 월명이라는 것을 듣고는 아직 통성명도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가씨 이름이 월명이군요. 저는 수영이라고 해요. 이수영. 경주가 고향이에요. 경주부 관헌에서 말단 관원으로 일하고 있지요.”

“네. 전 오월명…. 역녀로 일한 지 3년이 되었네요.”


수영도 함께 국밥을 먹으면서 월명에 대해 호감을 느꼈습니다. 음식을 먹는 모습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수영은 숟가락을 뜨다 말고 멍하니 월명의 모습을 바라보기도 하였습니다. 월명이 무슨 일인가 하고 수영을 쳐다보면 얼른 밥숟가락을 움직였습니다. 두 사람은 그날 늦게까지 함께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이 객점에서 주무셔요.”

“네, 오늘 정말 고맙소.”

“내일 나주까지 가려면 아침 일찍 나서야 할 거예요. 출근하면서 깨우러 올게요. 편히 주무세요.”


월명은 수영이 객점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자리에 누웠어도 그의 얼굴이 눈앞을 어른거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입니다. 월명의 나이 열여덟. 전국에서 오가는 뭇 사내들과 대화를 나누고 연화산 아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슴 설레는 남정네가 없었는데 수영만은 달랐습니다. ‘사랑이란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다음날 아침 월명은 일찍 일어났습니다. 역참으로 가는 길에 객점에 들러 수영을 깨웠습니다. 함양에서 나주까지는 경주에서 함양까지 왔던 거리만큼 가야 하기 때문에 일찍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사근역에도 늘 500리를 반나절에 달릴 정도의 상등마가 서너 필 대기하고 있긴 하지만 하급관원에게 지급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중등마인데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역리가 판단하는 거여서 월명이 마음대로 수영에게 중등마를 내어줄 수가 없는 게 괜히 속상했습니다.


월명은 수영과 함께 역참으로 갔습니다. 김 역장이 일찍 출근해 있었습니다. 월명이 인사를 하고 수영을 소개하였습니다. 어제 늦게 당도한 경주부 관원이라고. 오늘 나주까지 가야하는데 중등마를 내어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을 했습니다. 말을 내어주는 일은 역리가 어느 정도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어서 월명이 말을 꺼냈던 것입니다.


김 역참은 한 번도 남에게 부탁 같은 것을 하지 않던 월명이라 좀 놀랐습니다. 경주부사의 편지를 나주목사에게 전하는 내용이라 크게 급하거나 중대한 사안이 아니지만 하등마를 타고 가면 나주에 도착하기 전에 모든 업무가 끝나는 유시 반각을 넘길 게 뻔했기에 김 역장은 월명의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잘 되었습니다. 중등마를 타고 가시면 시간 안에 도착할 거예요.”

“고맙소. 이 은혜를 잊지 않으리다.”


그렇게 수영은 아침 일찍 나주로 말을 몰고 떠났습니다. 월명의 가슴은 갑자기 휑해졌습니다. 애써 태연한 척하였지만 김 역장의 눈은 속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내를 마음에 품었느냐?”

“…. 몰라요.”


월명은 마방이 있는 쪽으로 달렸습니다.


“허허허. 그 녀석.”


월명은 며칠 사람들이 타지 않아 운동이 필요했던 하등마 하나를 꺼내 올라탔습니다. 그리고는 들판을 마구 달렸습니다. 하등마라도 월명이 조련을 하면 중등마 못지않았습니다. 찬바람이 얼굴을 세게 때렸습니다. 월명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남강변을 한참 달리다가는 고삐를 놓고 팔을 벌린 채 달리기도 하였습니다. ‘또 볼 수 있을까?’


그랬습니다. 수영에게 마음이 빼앗겼지만 다시 언제 그를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헤어지면서 머뭇머뭇 다시 보자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보내버렸던 것입니다. 그냥 운명에 맡긴다는 마음이었지만 한참 후에야 이걸로 마지막이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불같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오후 유시 반각 시각에 맞춰 퇴청을 준비하고 있는데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늦은 시각에 또 누가?’ 하고 밖으로 나가니 수영이 말에서 내리고 있었습니다. 월명은 너무 반가워 뛰어가서 그의 품에 안기는 상상을 했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잘 있었어요? 오늘 또 여기서 하루를 묵게 되네요. 너무 늦은 건 아니죠?”

“아녜요. 말고삐 이리 주세요.”


월명이 수영에게서 말고삐를 받으려는 순간 수영이 월명을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지난줄거리) 쇠약한 어머니의 기력을 되살리기 위해 사냥을 시작한 나무꾼 구씨 청년은 사냥꾼 기질이 없어 고라니는커녕 토끼도 한 마리 제대로 잡지 못합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바위굴 안에서 산신령을 만나 마법책을 얻게 됩니다. 책에 적힌 주문을 외면 호랑이로 변하는 책이지요. 구씨 청년 호성은 사냥을 하고 싶지만 먼저 사악한 호랑이 세 마리를 먼저 처치해야 합니다.


비음산과 안민고개에서 두 마리를 해치운 호성은 어머니의 기력이 급격히 쇠하자 더는 기다릴 수 없어 고라니 사냥을 시작합니다. 고라니는 호랑이와 격전을 벌이러 다니면서 서식지를 봐놨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사냥을 해 옵니다.


그러던 중 안민고개에서 해치운 호랑이를 자신이 잡았다는 진해장사가 나타납니다. 그는 사또에게 거짓으로 호랑이를 잡은 과정을 설명합니다. 호성은 이를 보고는 거짓으로 출세하려는 사람의 본성을 간파합니다.


사냥으로 살림살이가 많이 나아지자 호성은 중매를 통해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고민입니다. 아내와 함께 생활하게 되니 몰래 호랑이로 변신할 기회가 없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사냥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호성은 아내가 자는 틈을 타서 몰래 빠져나와 광에 들어가 주문을 외우고 호랑이로 변신합니다. 호랑이의 출현이 뜸해지자 산적들이 극성입니다. 호성은 굴현고개에서 산적을 혼내줍니다. 그런데 관아에선 산적을 혼내준 자신을 잡으라는 방이 붙습니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았다고 떠들던 진해장사는 사또의 부탁을 받자마자 병이 들었다며 엄살을 부립니다. 진해장사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떨어집니다. 그 사이 또 산적들이 마을을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호성은 호랑이로 변신, 산적들을 혼내주고 있는데 나졸들이 달려옵니다. 그런데 나졸들은 산적을 잡으려 않고 오히려 자신을 잡으려 합니다. 나졸들에게 겁을 주어 떨쳐내고 집으로 돌아온 호성은 아내로부터 집 근처에서 호랑이를 보았다는 얘길 듣습니다.


……………………………………………………………


호성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짐짓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 딴청을 피웁니다. 그러면서도 들키지 않게 좀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산적을 혼내주려다가 오히려 나졸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뒤로 호성은 한동안 호랑이로 변신하지 않았습니다. 아내 역시 호랑이를 본 이후로 더욱 예민해졌기 때문에 자다가 몰래라도 방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리하고자 재어놓았던 고라니가 다 떨어지게 되자 다시 사냥을 해야 했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고라니입니다. 산신령 말대로 고라니 열 마리만 고아 먹으면 어머니 병환이 깨끗이 낫는다고 했으니 딱 이제 단 한 번 사냥하고 나면 더는 호랑이로 변신할 이유도 없어집니다. 그때가 되면 아내에게 감추는 것 없이 떳떳하게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이야.’


자정이 넘어서 호성은 아내가 곤히 잠든 모습을 보면서 살며시 일어났습니다. 조심조심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호성은 광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니머니 머니우니, 머니머니 우니우니, 으르으르 으르으렁!”


그런데 이 모습을 아내가 방문을 살짝 열고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광으로 들어간 남편이 뭐라고 주문을 외더니 호랑이가 되어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너무 놀랐지만 호성의 아내는 대체 남편에게 어떤 병이 있기에 저런 무시무시한 짐승으로 변하는지 안타까웠습니다.


호성은 사냥하러 나가려다가 아내가 잠든 방을 뒤돌아보았습니다. 아내는 깜짝 놀라 문에서 떨어졌습니다. ‘여보, 이번이 마지막이오.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내일부턴 진정한 당신의 남편으로 돌아 가리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건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그런 남편의 마음을 알 리 만무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나간 후에 광으로 들어갔습니다. 광에는 남편이 주문을 외듯 읽었던 책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이 책이 남편을 그 사나운 짐승으로 만드는 것일 거야’ 하고 아내는 책을 들고 부엌으로 갔습니다. 부엌 아궁이에는 아직 장작들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호성의 아내는 책을 아궁이에 던져 넣으려다 몇 번 망설였습니다. ‘혹시 이 책과는 상관 없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 책에 적힌 주문을 외우고는 바로 호라이로 변했어.’ 아내는 책을 불사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책은 처음엔 불이 잘 붙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활활 잘 타올랐습니다. 금방 재로 변했습니다.


한편, 이러한 사실을 알 턱이 없는 호성은 고라니 사냥에 열심이었습니다. 여러 마리 중에서 가장 살찌고 먹음직스런 놈을 골라 사냥을 해서 집으로 오는 중이었습니다. 정병산 중턱쯤에 도착했을 때 저쪽 숲에서 바스락, 묵직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뭐지?’ 호성은 전혀 예상 밖의 기척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호성은 고라니를 옆에 던져놓고 몸을 잔뜩 웅크렸습니다. 놈은 숲에서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호랑이였습니다. 저놈이 천주산 호랑이구나. 덩치가 호성보다 더 컸습니다. 호성은 주변의 지형과 지물을 살폈습니다. 덩치가 큰 상대를 이기려면 나무와 바위 등을 잘 활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도 덩치가 작다고 바로 덤벼들지 않습니다. 비음산과 안민고개 호랑이를 해치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두 호랑이는 숲 속에서 서로 마주보며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먼저 공격하려다 자칫 도리어 역습을 당하는 수가 있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나 봅니다. 호성은 몇 번 견제 공격을 하다가 나무가 빽빽이 난 숲 쪽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사실은 덩치 큰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유인책입니다. 천주산 호랑이는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자신이 기싸움에서 이겼다고 여겼습니다. 상대가 도망을 가니 기고만장하여 뒤쫓습니다.


나무가 빽빽한 숲에서 천주산 호랑이는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호성은 재빠른 동작으로 천주산 호랑이의 정면에 나타났다가 뒤에 나타났다가 하면서 정신을 못 차리게 하면서 교란작전을 펼쳤습니다. 빈틈이 보일 때마다 공세를 펼쳤지만 상대가 워낙 교활한 놈이라 쉽게 당하진 않았습니다. 계속 공격을 받기만 하자 자신이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천주산 호랑이는 도망을 쳤습니다. 호성은 힘껏 뒤쫓았지만 놓치고 말았습니다.


호성은 고라니를 물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보았다던 호랑이는 자신이 아닌 그놈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입니다. 언제 또 나타날지 모르므로 앞으로 더욱 경계를 철저히 서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광으로 들어갔습니다. 어, 그런데 마법의 책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참 찾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났습니다. 순간 깜짝 놀라 문을 열고 내다보니 아내가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크렁….”


호성은 난처했습니다. 결국 아내가 알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번만 잘 넘겼으면 모든 게 아무 탈 없이 끝나는 것인데 싶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이왕 아내에게 들킨 것이니 사실대로 말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으르으르….”


책을 달라고 하려는데 사람의 말이 나오지 않고 호랑이의 말이 나왔습니다. 큰일입니다. 아내에게 의사를 전달할 방법이 없습니다.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아내가 이야기를 합니다.


“여보,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책 때문에 당신이 끔찍한 야수로 변하는 것 같아 그 책을 아궁이에 넣고 불살라버렸어요. 이제 사람의 몸으로 돌아오면 다신 호랑이로 변할 일 없을 거예요.”


‘아, 여보. 그게 아니에요. 그 책이 없으면 내가 사람으로 다시 돌아갈 수가 없단 말예요.’ 호성은 부엌으로 달려 들어갔습니다. 책은 글자 하나 남기지 않고 까맣게 재로 변해 있었습니다. 재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주문을 외웠습니다.


“우니머니 머니우니, 머니머니 우니우니, 으르으르 으르으렁!”


소용이 없었습니다. 몇 번을 외원도 자신의 모습이 사람으로 되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이제 어머니도 건강을 되찾으시고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일만 남았는데,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부엌에서 재를 움켜쥐고 으르렁거리던 호랑이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우는 모습을 본 순간 아내는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아, 이를 어쩌면 좋아요? 그 책이 있어야 당신이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었군요. 제가 어리석었어요. 미안해요, 죄송해요.”


호성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말을 해봐야 호랑이소리만 나오니 원망도 탄식도 용서마저도 말로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호성은 어머니께서 주무시는 방을 향해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러고는 곧장 산속으로 뛰어갔습니다. 아내는 숲속으로 사라진 남편을 보고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나무하러 간다고 인사를 하던 아들이 보이지 않자 며느리를 불렀습니다. 호성의 아내는 남편이 멀리 일이 있어 갔다고 둘러댔습니다. 이제 겨우 기력을 되찾았는데 다시 몸져누울까 걱정이 되어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고 며칠 후 아침밥을 지으려 방을 나서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집 마당에 사슴이며 멧돼지며 토끼 등이 쌓여 있었던 것입니다. 남편이 사냥을 해서 몰래 가져다 놓은 것입니다. 호성은 어머니와 아내가 다시 가난해지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이제 직접 사냥한 것을 장에 나가 팔수는 없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했습니다.


그날 이후 호성은 집 주변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천주산 호랑이로부터 어머니와 아내를 보호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몇 번 천주산 호랑이의 흔적을 발견했지만 마주치진 않았습니다. 호성은 처음 산신령을 만났던 바위굴에도 자주 찾아갔습니다. 산신령이라면 분명히 책이 아니라도 사람으로 되돌릴 방법을 알고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산신령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관아에서 고용한 포수들이 떼를 지어 산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진해장사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계속 아프다는 핑계를 댈 수 없었으니 마지못해 포수들과 함께 호랑이 사냥에 나선 것이 틀림없습니다.


호성이로서는 난처했습니다. 천주산 호랑이로부터 어머니와 아내를 지키려면 이곳을 떠날 수 없는데, 포수들의 포위망은 점점 좁혀 들어와 피하지 않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호성은 일단 겁을 주어 이들을 쫓아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는 진해장사가 포함된 일행에게 다가갔습니다.

“크아앙!”

아무리 담력이 강한 포수라도 무시무시한 호랑이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자 본능적으로 몸을 사렸습니다. 호성은 포수들이 총을 조준하기 전에 달려들었습니다. 포수는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그러고는 진해장사를 쳐다보았습니다. 도움을 구하려 했는데 진해장사는 나무 뒤에서 와들와들 떨고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포수는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포수가 떨어트렸던 총을 다시 주우려 할 때 호성이 다가가 총을 멀리 쳐냈습니다.


“탕!”


호성은 가슴에 뜨거운 것을 느꼈습니다.


“탕, 탕!”


등에도 뭔가 들어와 박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개를 돌리니 멀지 않은 곳에서 포수들이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어서 여길 벗어나야 합니다. 호성은 바위굴이 있는 곳으로 달렸습니다. 마지막 희망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죽기 전에라도 산신령을 만나 사람으로 다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여러 번 총에 맞은 탓인지 걸음이 예전만큼 빠르지 못했습니다. 포수들이 더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바위굴 앞에 포진했습니다. 호성은 더는 피할 곳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본래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사람을 해치는 호랑이는 따로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 바위에선 자신의 집과 마을이 보입니다. ‘산신령님, 제발 모습을 드러내 주세요.’ 호성은 간절히 바랐지만 끝내 산신령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포수들의 총소리가 또 들려왔습니다. 파편들이 바위에 튕겨나갔습니다. 그 순간, 호성은 포수들의 뒤쪽으로 천주산 호랑이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머니와 아내가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가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크앙!”


호성은 사력을 다해 바위에 올라갔다가 천주산 호랑이가 있는 쪽으로 훌쩍 뛰었습니다.


“타당! 탕! 탕!”


쇳덩어리들이 온몸에 박혔습니다.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 호성은 포수들의 머리 위로 날아갔습니다. 천주산 호랑이가 쳐다봅니다. ‘저놈을 여기서 죽이지 못하면 모든 게 허사야.’ 호성은 이를 악 물었습니다.


“타, 타, 타, 탕!”


총알이 연발로 몸속에 들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호성은 풀썩 땅바닥에 곤두박질쳤습니다.


“와!”


포수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호성은 눈을 감았습니다. 결국 천주산 호랑이를 막지 못하고 이렇게 되는 것이 후회스러웠습니다. 호성은 희미해지는 숨소리에 섞어 마지막으로 산신령을 불렀습니다. ‘산신령님!’ 끝.


아, 잠깐! 호성이 그렇게 애타게 찾던 산신령이 그제야 나타났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아마도 호성을 다시 사람으로 되돌릴 방법이 있었을 거예요. 산신령이잖아요. 그런데 너무 늦게 나타난 것이 탈이네요.


“누가 날 불렀나? 요즘 잠이 왜 이리 많아졌나, 몰라. 만사가 다 귀찮아.”


그때 산신령은 들것에 묶여 포수들에 의해 실려 내려가는 호랑이 한 마리를 봅니다.


“저놈 어디서 본 듯한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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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창원시 동읍 자여마을 뒷산에는 언제부턴가 호랑이가 된 구씨 사내의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가진 것이 없는 이 젊은 사내는 노모를 봉양하며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노모의 몸이 쇠잔해지자 어찌할 수 없어 여간 마음 아파하지 않았습니다.


노모의 기운을 차리게 하기 위해 뒷산 중턱 바위굴에 들어가 산신령께 빌기로 했지요. 아내에게 노모를 보살펴달라고 맡기고 말이죠. 바위굴 밖에선 늑대가 짖고 호랑이도 사납게 으르렁거려도 꾹 참고 몇 날 며칠을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마침 산신령이 나타나 책자를 하나 주면서 책을 보고 주문을 외우면 호랑이가 된다고 이르고 고라니를 잡아 어머니께 드리라고 합니다.


산신령은 사내에게 두 가지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사람을 괴롭히는 호랑이 세 마리를 죽여야 하고 그 후 고라니 열 마리를 잡아 어머니께 고아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내는 약속을 지킬 것을 맹세하고 그 책을 받아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날 밤 아내가 잠든 사이에 주문을 외우자 몸이 호랑이로 변하였습니다.


호랑이가 된 사내는 산으로 들어가서 나쁜 호랑이와 싸웁니다. 그리하여 두 마리를 죽이게 되나 마음이 급한 나머지 한 마리는 나중에 잡기로 하고 고라니를 매일 잡아서 어머니께 고아드립니다. 고라니 아홉 마리를 잡아 어머니께 요리해 드렸을 때 어머니의 기력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제 한 마리만 더 고아드리면 어머니는 완쾌될 것이라며 기쁜 마음으로 주문을 외우고 호랑이로 변해 산으로 들어갑니다.


이때 사내의 아내가 이 모습을 지켜보게 됩니다. 놀란 아내는 남편이 보고 외우던 책을 없애면 호랑이로 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아궁이에 넣어 태워버립니다. 돌아온 호랑이 남편은 사실을 알게 되고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수가 없게 되자 울면서 산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러고 며칠 후 산에서 포수의 총소리가 들리고 호랑이의 흔적은 사라지게 됩니다. 대신 그 부근에 호랑이 모양의 바위가 새로 솟아나 있고 그 바위는 자여마을 구씨 사내의 집을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전설, ‘호랑이가 된 사내’는 신이 등장하고 몇 가지 금기를 제시하는 전형적인 전설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설의 일반적인 결말인 비극으로 끝이 납니다. 이런 비극적 구조는 항상 교훈이라는 교육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요. 이번 전설텔링은 이 옛날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롭게 꾸며보겠습니다.


…………………………………………………………………………………………………………


“어머니, 산에 나무하러 다녀오겠습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니 산짐승들이 내려올지 모릅니다. 제가 다녀올 때까지 문단속 단단히 하고 기다리셔야 합니다.”


아들의 인사를 들은 노모는 방문을 열고 걱정스레 바라보았습니다.


“니가 이 에미 때문에 고생이 많구나. 장가 들 나이가 훨씬 지났는데 살림이 이렇다 보니 중매 들어오는 곳도 없고, 에휴~. 너도 조심해서 다녀오너라.”


사내의 이름은 구호성입니다. 구호성은 마을에서 소문이 자자한 효자입니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가 장에 가고 싶다고 하면 지게에 어머니를 얹히고 먼 거리임에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다녀오곤 하였지요. 호성의 그런 효심을 아는지라 마을 사람들은 호성이가 해온 나무를 일부러 사주기도 하곤 했지요.


하지만, 나무만 해다가 파는 것만으로는 노모를 봉양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겨우 끼니를 때울 정도의 보리쌀을 살 정도밖에 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성은 나무하러 산에 들어가서는 토끼를 잡는 등 사냥도 하였습니다.


호성은 사냥한 토끼를 맛있게 요리하여 어머니 밥상에 올렸습니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고기를 먹게 되어서인지 아주 맛나게 먹었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호성은 매일 토끼 사냥을 해서 어머니께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토끼사냥을 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토끼가 아예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발견한 토끼를 놓치기도 일쑤였습니다. 때로는 토끼를 잡으려다 비탈에서 굴러 다치는 바람에 해놓은 나무마저 가져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기력은 점점 쇠잔해갔습니다. 호성의 걱정도 점점 커져갔습니다. 호성은 산에서 나무를 하기보다는 사냥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매일 산을 헤매며 다녔지만 사냥이라는 것이 마음먹은 것처럼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토끼를 쫓다가 놓치기 일쑤였고 늑대나 멧돼지를 만나면 오히려 도망을 가야 했습니다. 정말 잡고 싶었던 고라니는 한 번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매번 빈털터리로 돌아오는 호성에게 어머니가 말씀했습니다.


“얘야, 이제 사냥은 그만두거라. 이러다 너마저 어찌 될까 두렵구나. 그냥 예전처럼 나무나 해다 팔고 넌 다시 글공부를 하는 게 좋겠다.”


어머니는 아들이 잘못될까 걱정이 되어 사냥을 그만두게 하려 했지만 호성은 그럴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나날이 기력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그대로 두고만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호성은 찬바람이 살을 에는 듯한 추운 날이지만 계곡에 내려가 얼음을 깨고 목욕을 하고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제발 오늘은 고라니 한 마리를 잡게 해달라고 말이죠.


목욕재계한 호성은 대밭에서 튼튼한 대나무 하나를 잘라 끝을 날카롭게 다듬었습니다. 고라니를 발견하면 대창을 던져 잡으려는 계산이었습니다. 산을 오르면서 적당한 크기의 돌도 보이는 대로 주워 어깨에 걸쳐 멘 보자기에 담았습니다.


오전 나절, 이산 저산 여러 산을 돌아다니며 고라니의 흔적을 찾아다녔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싸온 주먹밥으로 간단히 배를 채운 호성은 더욱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맞은 편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바짝 긴장한 호성은 몸을 숙였습니다.


눈 쌓인 나무들 사이로 고라니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고라니는 아직 호성이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눈밭을 헤치며 먹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호성이 살금살금 고라지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뽀드득!”


눈밟히는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렸는지, 호성이도 멈칫했습니다. 긴장하며 다시 몸을 숙이고 있는데 고라니가 뛰기 시작했습니다. 호성이도 따라서 뛰었습니다. 호성이가 사력을 다해 달렸지만 고라니의 뜀박질을 당할 재간이 없습니다. 호성이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대창을 힘껏 던졌습니다.


해가 어느새 뉘엿뉘엿 서산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호성은 패잔병처럼 힘겹게 걸음을 옮기며 마을 뒷산인 정병산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이렇게 빈손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울컥 눈물이 솟았습니다. 호성은 마음을 달래고자 산 중턱에 있는 바위굴로 들어갔습니다. 이곳은 어려서부터 자주 놀러 왔던 곳이었습니다.


“산신령님께서 계신다면 제 소원 하나를 들어주세요.”


호성은 중얼거리듯 산신령에게 소원을 빌었습니다. 배도 고프고 기력을 너무 소진한 탓에 눈앞이 가물가물해졌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눈앞이 훤해지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조화인가 생각하며 고개를 들어보니 이야기로만 듣던 산신령이 턱 하니 서 있는 것입니다.


“니가 나를 찾았느냐? 그래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산신령님, 제 소원은 어머니께 고라니 고기를 맛있게 요리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기력을 찾으실 때까지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저는 어찌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효성이 지극한 젊은이구나. 너의 소원을 들어주겠다.”


호성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산신령의 말에 한없이 기뻤습니다. 그래서 절을 몇 번 하고 있는데 눈앞에 책이 한 권 툭 던져졌습니다. 호성은 고개를 들어 산신령을 쳐다보았습니다.


“산신령님, 이것이 무슨 책입니까?”

“그 책에 쓰인 주문을 읊으면 너는 호랑이로 변신할 것이다. 호랑이로 변해서 고라니를 잡아 어머니께 요리해 드리거라. 고라니 열 마리를 고아 드시면 어머니의 기력은 완전히 회복될 것이다.”

“정말입니까? 어머니께서 기력을 되찾을 수 있단 말이죠? 정말 고맙습니다. 산신령님.”


호성은 몇 번이고 고개를 조아리며 산신령에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먼저 일러둘 말이 있다. 니가 호랑이로 변신해 고라니를 잡기 전에 사람들을 괴롭히는 호랑이 세 마리를 죽여야 한다. 그리고 그 책은 절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책을 보면서 주문을 외워야만 니가 호랑이로 되었다가 다시 사람으로 되돌아올 수가 있으니 명심하거라.”


그날 밤 호성은 어머니께서 잠이 드신 후에 등잔불을 켜고 산신령이 준 책을 펼쳤습니다. 거기에는 무슨 뜻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글자들이 쓰여 있었습니다. 호성은 한 자 한 자 정성껏 읽어내려 갔습니다.





“우니머니 머니우니, 머니머니 우니우니, 으르으르 으르으렁!”


호성은 깜짝 놀랐습니다. 책에 쓰인 주문 같은 글을 한참 읽어내려가고 있는데 책을 잡고 있던 손이 어느덧 호랑이 손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손이 갑자기 왜 이렇지?’ 호성은 얼굴을 만져보았습니다. 이미 얼굴도 호랑이로 변해 있었습니다. 산신령님이 주문을 외우면 호랑이로 변신한다고 하였지만, 막상 호랑이가 되고 보니 약간 두려운 마음도 생겼습니다. 호성은 살짝 소리를 내어보았습니다.


“크르르렁~.”


호랑이가 된 호성은 책을 책상 아래에 소중히 놓아두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어스름 달빛이 정병산을 흐릿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호성은 고라니를 잡기 전에 먼저 못된 호랑이 세 마리를 먼저 죽여야 한다는 산신령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평소 호랑이가 출몰한다는 소문이 있는 비음산으로 달려갔습니다.


비음산 능선에서 바위 사이로 어슬렁거리며 걸어나오고 있는 호랑이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저놈이 툭하면 마을로 내려가 사람들을 해친다는 비음산 호랑이구나! 저놈을 내가 죽여야 우리 어머니가 살 수 있다.’ 그러나 호성은 막상 달려나갈 용기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호랑이로 되었다고는 하지만 상대는 진짜 호랑이인데 잘못하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비음산 호랑이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호성은 두려움 반 갈등 반으로 온몸을 떨었습니다. ‘크렁 크렁…’ 비음산 호랑이가 코를 벌름거렸습니다. 이젠 고민할 여지도 없게 되었습니다. 호성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 바위 위로 솟구치며 비음산 호랑이에게 달려들었습니다.


“크아앙~!”


달빛도 잠자는 듯이 게슴츠레 비추는 오밤중, 비음산에서 싸우는 호랑이 소리가 천지를 울렸습니다. 두 호랑이의 싸움은 새벽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선잠 깬 동네 닭들이 동이 트기 한참 전인데도 꼬꼬댁꼬꼬댁 울어댔습니다. 그러자 동네 개들도 느닷없이 컹컹거리며 온 동네를 시끄럽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세상은 조용해지고 멀리 빠알간 얼굴을 한 해님이 바다 위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다음 주에 2편으로 이어집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전설의 배경이 되는 지역이나 관련 유적을 찾아가는 일은 재미있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실물이 존재한다는 것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이지만 그 현장을 보면서 이야기의 속내를 더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전설의 현장을 찾아가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도 다반사입니다. 이번 ‘꽃처럼 바람처럼’의 소재가 된 ‘시락암굴’ 역시 현장을 찾기 쉽지 않았던 사례 중의 하나입니다. ‘전설텔링’ 시리즈의 첫 이야기였던 ‘도롱이 도깨비와 효자 박 선비 이야기’에 등장했던 ‘우곡각자’의 경우 네 번에 걸친 탐사 끝에 현장을 찾아냈으니까요.


그뿐만 아니라 ‘용의 눈물’에 등장한 ‘장군바위’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산 중턱에 있다는데 마침 때가 숲이 우거진 한여름이라 탐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만 사례도 있지요.


현장을 찾아내기 어려운 만큼 그 현장을 찾아냈을 때의 보람은 더 큽니다. 이번 시락암굴은 그런 차원에서 하나의 보람이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을 했을 때 이야기는 수도 없이 검색되어 나왔어도 그 현장 사진은 전혀 찾을 수 없었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마산합포구 진동에서 고성방향 삼진의거대로를 따라 가다 ‘암아교차로’에서 좌회전해 길따라 쭉 들어가면 7㎞ 지점에 시락마을이 있습니다. 아주 평화로운 시골마을입니다.











그래도 50여 가구가 사는 동네라 그런지 버스도 다니더군요. 마을회관에 들러 ‘시락암굴’을 아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할머니 여러분이 계셨는데 처음엔 아무도 ‘시락암굴’을 모른다 하였습니다. 그러다 ‘바닷가 굴’이라고 하니 그제야 ‘아, 그거’하면서 알은 체를 하였습니다. ‘아랫속개’에 가서 물어보면 알 것이라고 하였지요.


마을회관을 나와 동네 사진촬영을 위해 좀 걸어 나오는데 출타했다가 돌아오는 마을 이장님을 만났습니다. 시락암굴에 대해 물어보았지요. 이장님 역시 시락암굴이라는 표현에 대해선 잘 몰랐습니다 ‘바닷가 동굴’이라고 하니 “아~, 그 이순신굴?”이라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어렸을 적, 거기에 헤엄쳐서 가보기도 했는데…, 그래 거기에 무슨 이야기가 얽혀 있다더만. 우린 자세히는 모르겠고.”


어디쯤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거는 배타고 가야 할 낀데. 그냥 걸어서 들어갈라 카문 힘들끼라.”


이장님과 함께 있던 어르신이 이장의 대답에 말을 보탰습니다.


“갈라 카모 갈 수야 있지. 헌데 찾기가 쉽지 않을 끼라.”


어르신의 이 이야기에 현장답사에 대한 희망이 반 토막 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고생을 해야 하나. 어르신으로부터 경로를 자세히 안내받고 차량을 이용해 목적지로 출발했습니다. 가던 중 마을회관에 있던 할머니들의 말이 생각나 아랫속개에 있는 횟집에 들렀습니다.


“이 근처에 시락암굴이 있다 카던데 아시능교?”


횟감을 손질하던 중년 아주머니의 대답에 실망을 하고 말았습니다. 시락마을에선 이쪽에서 물어보면 알 거라고 했는데 아주머니의 대답은,


“그런 거 여기에 없어예.”


아주머니는 잘 모르고 있구나 생각하고 돌아나서려는데,


“창포고개 넘어가면 산에 동굴이 하나 있긴 한데…”


하는 것입니다. ‘설마, 산에 있는 동굴을 전설에서 바닷가 동굴이라고 표현했을까. 만조가 되어 물이 차면 동굴 입구까지 수위가 높아진다고까지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차를 몰아 창포고개를 넘어 시락마을 어르신이 일러준 모 횟집으로 들어가서 또 물어보았습니다. 역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군요.








창포리에서 동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 가다 보면 그 어르신이 이른 대로 길이 있겠지 싶어 일단 걷기 시작했습니다. 40분을 걸어갔다가 나왔는데도 바닷가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다시 이곳을 빠져나와 동진교 인근 바닷가 카페가 있는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바닷가 암굴이라면 혹시 이곳에서 관찰이 가능하지 않을까 여겼던 것입니다.


육안으로 잘 확인이 되지 않아 카메라에 망원렌즈를 달고 바닷가 오른쪽 끝에서부터 왼쪽 내만 쪽으로 사진을 여러 컷 찍었습니다. 카메라 LCD 패널을 통해 확대하여 관찰해보니 이야기 속의 암굴과 비슷한 곳이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아닐지 모른다 싶어도 일단 가서 확인을 해봐야겠다는 의지가 일었습니다.








다시 창포 고개를 넘어 좀 전에 갔던 곳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카메라를 통해 확인했던 위치에서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마른 가지가 무성한 숲을 헤치고 가파른 경사를 따라 내려갔습니다. 웬 가시나무가 그렇게도 많던지. 100미터 남짓한 거리인데 1시간이나 걸려 내려왔습니다. 코를 찌르는 갯내가 어찌 그리도 반가웠던지.


멀리 사진 촬영을 하면서 위치를 확인했던 곳을 가늠하여 방향을 잡고 걸었습니다. 절벽이 바다와 맞닿은 곳이 있어서 그런지 물이 깊어 보이는 곳도 있었습니다. 두려운 마음이 절로 일었습니다. 조심조심 바위를 타고 건너갔지요. 그렇게 10분을 걸었을까 ‘뭔가 있다’는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해안으로 내려와 암굴을 찾아 가는 길입니다.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고 마침 그곳에 도착했을 때 이야기에 나오는 그 암굴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동굴 안을 관찰하면서 약간은 실망했습니다. 암굴이 그리 넓지 않다는 것입니다. ‘시락암굴’ 전설을 소개하며 설명한 자료에는 어른 7~8명이 들어갈 수 있다고 했는데 기껏해야 3명 들어갈까 말까 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더 자료에 대해 실망한 것은 시락마을에서 이곳의 위치가 동쪽으로 2㎞라고 했는데 위성지도로 보면 직선거리로 3㎞는 족히 되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현장확인 없이 남의 글을 그대로 베껴 쓰다 보니 이런 일이 생겼겠지요.








이번 전설텔링 시리즈 3편에서 천동석의 손에 오빠를 잃은 강화선과 남편 최해원이 왜군의 눈을 피해 이곳 암굴로 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해안가 길을 따라가면 위성지도로 계측해보니 4.7㎞가 나오는군요.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밤새 묻어주고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이곳까지 걸어오는 장면이 있는데 섬세하게 묘사하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전설이 만들어진 곳이 시락마을이고 창포리의 절벽 아래 바닷가 암굴을 이야기하다 보니 ‘시락암굴’이 된 사정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거리상으로 마을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이라 과연 실제였다면, 젊은 부부가 왜군의 습격을 피해 이곳까지 왔을까 의심스럽기는 합니다. 산속에 숨을 곳이 어디 한두 곳이겠습니까.


그럼에도, 바닷가 절벽 아래에 있는 바위동굴과 시락마을을 관련지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 지혜는 배울 만하겠습니다. 시락암굴, 그 현장을 탐사하면서 1592년 임진왜란 때의 그 비극을 더욱 실감 나게 상상해봅니다.





[관련기사]


(전설텔링)꽃처럼 바람처럼(1)

(전설텔링)꽃처럼 바람처럼(2)

(전설텔링)꽃처럼 바람처럼(3)

(전설텔링)꽃처럼 바람처럼(4·마지막회)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전설텔링)이무기와 처녀 제물(3)

하동군 북천면과 진교면 사이 이명산에 얽힌 전설



(지난 줄거리)하동군 북천면 지금은 이명산으로 이름이 바뀐 동경산 아래 한 마을에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눈이 멀어진다거나 귀가 멀어진다거나 이러저러한 질병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무당은 이것이 동경산 꼭대기에 사는 이무기의 소행으로 처녀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이릅니다. 사람들은 하는 수없이 제비뽑기로 제물이 될 처녀를 정하는데 이 서방네 딸 설희가 걸립니다.


촌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설희를 가마에 태우고 동경산 꼭대기에 올라갑니다. 이무기는 앞으로 자신을 잘 공경하라 이르고 설희가 탄 가마를 물고 물속으로 들어갑니다. 설희는 구름 위에서 이무기가 자신의 몸을 휘감는 이상한 꿈을 꾸고는 깨어납니다. 궁전 같은 침실, 설희 앞에 얼굴의 반을 흰 머리카락으로 가린 이무기가 인간의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이무기는 설희에게 자신의 아이를 낳아달라고 합니다. 그 말에 설희는 몸서리를 칩니다. 설희는 이곳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설희는 또 이무기가 자신의 몸을 칭칭 감는 꿈을 꾸다가 깨어납니다. 그런데 옆에 이무기가 자고 있었습니다. 돌아누웠을 때 이무기의 가려진 반쪽 얼굴이 아주 잘생긴 청년의 모습임을 발견합니다. 그 얼굴의 이무기가 설희에게 탈출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


설희는 다시 돌아눕는 이무기를 피해 반대쪽으로 가서 자리에 누웠습니다. 설희의 머릿속에는 이무기의 내면에 있는 다른 존재가 일러준 탈출방법으로 가득했습니다. 지하동굴 끝이라?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경계가 삼엄한데 어떻게 지하 신전까지 접근하느냐입니다. 지금으로선 이 침실을 벗어나기조차 쉽지 않으니 말입니다.


설희는 내일 아침부터 이무기와 뱀 병사들이 언제 임무를 교대하고 얼마 동안 자리를 비우는지 등의 동태를 관찰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설희는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설희는 이번에 더욱 이상한 꿈을 꿉니다. 구름 위 정원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배가 불러옵니다. 그렇게 먹은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배가 불러오지 하고 이상하단 생각을 하는데 옆에 나타난 이무기가 “이런 경사요, 경사” 하면서 웃는 것입니다.


‘뭐가 경사라는 것이야?’ 설희는 자꾸 배가 커지고 있어서 더욱 심한 고통을 느낍니다. 이러다가 배가 터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불안해집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지경으로 고통을 참고 있는데 이무기는 더 큰소리로 웃습니다. 설희는 불끈 화가 솟았습니다.


“이 나쁜 놈!”


설희는 자신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옆에 있었던 이무기는 어느새 나가고 없었습니다. 기분 나쁜 꿈 때문에 설희는 더욱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이무기의 인간 얼굴이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보름달이 뜬 밤에 지하 동굴 끝에 있는 이무기의 신전으로 가시오. 그 성전 그 가운데 탑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푸른 구슬이 있소. 구슬을 들어 올리면 이 마법 성의 결계가 풀리면서 밖으로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보름은 이제 사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한시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처지입니다. 설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정원 곳곳에 뱀 병사들이 창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이곳을 탈출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 식사시간이 되자 이무기가 나타났습니다. 설희는 이무기를 따라 식당으로 걸어갔습니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동굴로 들어가는 문을 발견했습니다. ‘저곳이 지하신전 입구구나.’ 침실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문 열쇠만 손에 넣는다면 들키지 않고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들었습니다.


설희는 식당에서 이무기와 마주앉아 식사를 했습니다. 음식은 진수성찬이었습니다. 이런 음식이 다 어디서 생겼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혹시 이무기가 마법으로 만든 음식인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몇 번이고 그런 의심을 하면서 먹었지만 진짜 음식이 틀림없었습니다.


설희는 이런 산꼭대기에 농사를 짓는 곳도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음식을 조달하는지 궁금해서 이무기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저,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이 음식들은 다 어디서 나죠?”

이무기는 설희가 먼저 말을 걸어주는 것이 의외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이제 마음을 여는 것인가 싶어 반가웠습니다.“이 산 아래 여러 마을에서 나를 모시며 바친 것들이오.”

이무기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음식과 물건을 바친다는 점을 자랑하고 싶어 한 말이지만 설희는 속으로 탈출의 의지를 더 다지게 되었습니다. 설희가 입가에 약간 미소를 얹어 말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숭배하겠네요?”


그 말에 이무기는 우쭐해졌습니다.

“당연하지요. 당신에게서 나의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는 용이 될 거요. 용이 된 그 아이는 이 나라를 다스리게 될 것이오. 그리되면 이 천하가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이지. 하하하.”

설희의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애써 아닌 척했지만 먹은 음식은 전혀 소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부하 한 명이 급히 식당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폐하! 서쪽 십리 산 아랫마을 사람들이 빈손으로 와서는 앞으로 절대 공물을 바치지 않겠다며 결계 밖에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어찌 하올까요?”

이무기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음식을 하나 더 먹으면서 말했습니다.

“아무 힘도 없는 인간 주제에 겁을 상실했구나. 모조리 척살하고 그 마을에 있는 열 살 아래인 아이들에겐 지독한 병에 걸리게 하라.”

“존명!”


침실로 돌아온 설희는 이무기의 터무니없는 야망과 잔인무도한 모습에 치가 떨렸습니다. 처음 이무기로부터 천하를 손아귀에 넣는다는 말은 허풍이라고 보았지만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처럼 온 나라에 질병을 퍼트리고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해서 복종하도록 만들어 나가면 언젠가 그의 말대로 온 천하가 그의 수중에 들어가게 될지도 몰랐습니다.


밤이 되자 이무기가 또 몰래 설희의 침실로 들어왔습니다. 지금까지 이상한 향기에 정신없이 잠이 들었지만 이제 이 향기에도 면역이 생겨 참는 만큼 잠이 쏟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설희는 자는 척하다가 이무기가 곤히 잠들기를 기다렸습니다. 자신이 탈출하는데 인간 모습의 이무기가 뭔가를 알려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무기가 잠이 들자 설희는 이무기를 살짝 돌려 뉘어서 머리카락을 뒤로 처지게 하여 인간의 모습이 나오도록 하였습니다.

“저기요, 눈을 좀 떠보세요.”

“무슨 일이오?”

“동굴신전으로 들어가는 문 열쇠는 어디에 두나요?”

“내 발목에 있소.”

“신전 중앙 구슬을 들어 올리면 결계가 열린다고 했는데 어디로 해서 나가야 하나요?”

“제단 가운데 문이 있어요. 그쪽으로 탈출하면 살아나갈 수 있을 거예요. 잡히지만 않는다면.


다음날부터 설희는 이무기를 안심시키려고 시키는 대로 잘 따랐습니다. 식사를 할 때에도 이무기를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옆의 뱀 병사들에게도 공치사를 하면서 기분 좋게 해주었습니다. 자기 부하들에게 대하는 설희의 모습을 보면서 이무기는 설희가 이제 자신의 아내로 마음을 굳혔다고 생각했습니다.


보름 밤이 되었습니다. 설희는 자고 있는 이무기의 발목에서 열쇠를 빼내었습니다. 열쇠를 손에 꼭 쥔 설희는 살며시 침대에서 내려와 창밖을 보았습니다. 지하신전 입구에는 두 명의 병사가 창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설희는 속으로 많이 떨렸지만 주먹을 꼭 쥐었습니다.


밖으로 나갔습니다. 침실을 지키는 병사가 설희를 가로막으며 물었습니다.

“마마, 어디 가시려고요?”

“달빛이 너무 좋아 잠이 오지 않아요. 정원을 한 바퀴 돌고 오겠어요.”

“네. 빨리 다녀오십시오.”


뱀 병사들은 며칠 설희가 자기들에게 잘해주기도 했고 이무기로부터 마마가 마음 상하지 않게 잘 모시라는 명령이 있어 의심의 여지가 없이 보내주었습니다. 설희는 지하신전 문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신전을 지키던 병사들이 고개를 숙입니다.


“마마, 어찌 나오셨습니까?”

“정원을 거닐다 저쪽 끝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확인하고 폐하께 보고하세요.”

“네? 며칠 전에도 마을사람들이 소동을 피우더니 이젠 이런 야밤에까지….”

두 병사는 설희가 가리키는 쪽으로 창을 들고 걸어갔습니다.


병사들이 떠나자 설희는 얼른 열쇠를 넣어 돌렸습니다. 문이 스스르 열립니다. 설희는 시간이 별로 없다고 생각을 하여 신전 안쪽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이무기의 인간모습이 이야기한 그 푸른 구슬이 있었습니다. 구슬은 신비스러웠습니다. 구슬의 빛은 신전 안의 벽과 천장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이무기의 신전에 용과 이무기가 양쪽으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무기가 온 세상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이 신전에 표현했구나’하고 설희는 여겼습니다. 설희는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 임금에게 이무기의 야욕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신전 문이 발칵 열리면서 좀 전에 문앞을 지키던 두 병사가 뛰어들었습니다.

“마마, 지금 뭘 하시는 겁니까?”

“보면 몰라요? 구슬놀이 하자는 거지요.”

설희는 구슬을 두 손으로 힘껏 들어 병사들 사이로 던졌습니다. 구슬은 정확하게 문밖으로 굴러갔습니다.

병사들은 허둥지둥하였습니다. 구슬에 탈이 생기면 안 된다고 여겨서인지 둘 다 구슬이 굴러간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때 신단이 있는 신전 앞쪽 벽이 양옆으로 밀리며 열렸습니다. 그쪽으로 달려나가니 숲이 나타났습니다. 결계가 풀린 것입니다. 설희는 산 아래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내려갔습니다. 뒤에서 우레와 같은 엄청난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무기가 병사들의 보고를 받았나 봅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습니다. 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폭우가 되었습니다. 설희는 폭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달렸습니다.


한편, 마을 사람들은 보름달이 환하게 떠있던 하늘에서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니 어리둥절했습니다. 설희의 아버지 이 서방도 굵은 빗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장독간이며 볏짚창고가 비 피해를 보지 않도록 손을 보았습니다.

“아버지!”

이 서방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분명히 설희의 목소리였는데, 하지만 이 서방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무기에게 잡혀먹힌 아이가 살아서 돌아올 리가 없지 않은가. 나이가 드니 이제 환청이 들리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아버지, 저예요. 설희.”

사립문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곳에 죽었을 설희가 서 있었습니다. 이 서방은 너무 놀라 뒤로 나자빠졌습니다.

“니, 니가 정말 설희냐?”


(다음 주에 4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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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시덥잖은 글의 첫 독자는 누가 뭐래도 문학소녀로 자처하는 큰딸이다. 그렇다고 큰딸이 매주 토요일이나 일요일 아빠의 글이 완성되나 관심을 기울이진 않는다. "아빠 글 한 번 읽어볼래?" 하고서 방문을 열고 한마디 하면 그제서야 "예."하고 프린트된 종이 몇 장을 받을 뿐이다.

 

어쨌든 딸은 다 읽고서 반응을 보여준다. 어떤게 아쉽고 어떤건 재미있고 어떤건 어떻게 보충하면 좋을 듯하다면서...

 

이번 장자늪 구렁이의 저주 2편을 보여줬더니 부처바위로 변한 며느리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없단다. 장자에 대항하는 가장 큰 존재라면 사람들 사이에서 며느리 얘기가 좀 더 구체화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렇다. 그런데 추가 안 했다. 바빴고 시간도 촉박해서다. 그래서 다음 3편, 마지막 편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고민이다. 어쨌든 고민 좀 더 하다보면 길이 보이겠지...

 

이 글을 보시는 분은 영화에서 CG로 탄생한 멋진 황룡은 아니지만 삽화가 들어있는 원문을 읽어주시라.

 


 

 

(전편 줄거리)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 창녕군 영산면 기름진 땅에 장자라는 큰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아주 욕심이 많고 심술꾸러기인지라 사람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지요. 어느 날 노승이 이 마을을 지나가다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해결방책을 알려주려 장자를 찾았으나 장자는 노승의 시주바랑에다 소똥을 퍼붓는 심술을 부립니다.


이를 본 장자의 며느리가 노승에게 시아버지 대신 사죄를 하고 바랑을 깨끗이 씻고 쌀을 넣어 시주를 하지요. 노승이 착한 며느리에게 앞으로 닷새 후면 마을에 큰 변고가 생기니 대피하라고 이릅니다. 특히 시아버지와 남편은 꼭 대피시켜야 한다고 합니다.


노승의 이야기를 남편과 시아버지에게 하지만 아무도 제대로 듣지 않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날은 점점 노승이 예견한 대로 심각하게 변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며느리가 전하는 말을 듣고 산으로 대피하지만 장자와 아들은 마지막 닷새가 되어도 요지부동입니다. 그 이유는 이런 혼란을 틈타 누군가 자신의 재산을 훔쳐갈까 두려워해서입니다.


며느리는 노승이 시키는 대로 동북방향 고개로 오릅니다. 절대 뒤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당부도 잊지 않고 말이죠. 그러나 고개를 오르는 동안 시아버지와 남편이 자신을 원망하는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래도 스님이 일러준 대로 참고 고갯마루에까지 올랐으나 마지막 순간 엄청난 뇌성에 그만 되돌아보고 맙니다.


◇                      ◇                       


며느리는 짙게 깔린 먹구름 속에서 황룡이 꿈틀거리며 나와서 자신을 쳐다보며 질타하듯 ‘꽈르르르’ 고함을 치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 고함에 비바람이 며느리를 향해 더욱 세차게 몰아쳤습니다. 며느리는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온몸이 떨렸습니다. 정신마저 아뜩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며느리는 고갯마루에 있는 큰 바위에 몸을 기댔습니다.


황룡은 잠시 후 물이 잠긴 마을 위로 몸을 돌렸습니다. 그때 물속에서 시아버지와 남편의 영혼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습니다. 생전의 모습과 달리 몸이 투명하였습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와 남편이 물속에서 사망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동네 사람들의 원성을 사고 자신에게 살갑게 대해주지 않은 사람들이었어도 시아버지이고 남편이어서인지 며느리 눈에는 눈물부터 흘렀습니다.


‘아, 죄송해요. 아버님. 미안해요. 서방님. 제가 끝까지 남아서 구해드려야 했었는데….’


두 영혼이 빗줄기 사이로 승천하고 있는데 황룡이 갑자기 두 영혼을 앞발로 콱 틀어쥐었습니다. 다시 한 번 커다란 번개와 함께 우레가 울려 퍼졌습니다. 황룡은 앞발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습니다. 시아버지와 남편의 영혼은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며느리는 차마 그 모습을 더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며느리는 자신의 모습이 서서히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몸이 딱딱해짐과 동시에 서서히 바위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며느리는 갑자기 두려워졌습니다. 하늘이 시아버지와 남편을 구하지 못한 자신을 벌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꽈르르르.”


(삽화)


다시 천둥이 온 세상을 흔들었습니다. 며느리의 시선이 다시 물에 잠긴 마을로 향했을 때 황룡은 시아버지와 남편의 영혼을 물속으로 집어던졌습니다. 황룡은 그곳에서 몇 바퀴를 돌더니 고개를 며느리 쪽으로 돌렸습니다. 서서히 다가왔습니다. 며느리는 이미 굳어가고 있는 몸이지만 두려웠습니다. 황룡이 자신에게도 벌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넌 밤낮으로 여기에 서서 장자가 죽은 늪에서 사악한 기운이 퍼져 나가지 못하게 지켜 내거라.’


황룡이 말을 하는 듯했습니다. 며느리는 황룡의 눈 속에서 부처로 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황룡은 몸을 돌려 빠른 속도로 날아가 먹구름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며느리의 눈에선 여전히 눈물이 흘렀습니다. 몸은 이제 완전히 바위가 되었습니다. 모든 신체가 바위 속으로 들어가 돌로 변했지만 희한하게도 세상을 볼 수도 있었고 들을 수도 있었습니다.


한편, 황룡에 의해 물속으로 처박힌 장자와 아들의 영혼은 물속을 떠돌게 되었습니다. 죽어서 하늘에 오르지도 못하는 영혼이 되니 세상에 대한 원망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장자는 물에 잠긴 자신의 집으로 가보았습니다. 안방에서 보석함을 꼭 끌어안고 죽어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얼굴은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행복해 보이는 듯도 했습니다.


장자의 아들 역시 쌀이 가득 찬 곳간에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꼭 걸어 잠근 모습으로 죽어있었습니다. 장자의 아들은 아버지만큼 그렇게 욕심이 많거나 심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만 살다 보니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사람들로부터 욕을 얻어먹으며 살았습니다. 아들에겐 그게 더 억울했습니다.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인데 동네 사람들은 등 뒤에서 손가락질을 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아들에게도 동네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자와 아들이 지붕 위에서 자신의 모습을 처량한 듯 바라보고 있는데 구렁이 두 마리가 서서히 이쪽으로 헤엄을 쳐 오고 있습니다. 생긴 모습이 징그럽기도 하고 무시무시하기도 했습니다. 입을 벌렸을 때엔 크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금방이라도 온몸을 관통시킬 정도로 섬뜩하였습니다. 장자와 아들은 잎이 무성한 미루나무 가지 사이로 헤엄을 쳐 몸을 숨겼습니다.


어미 구렁이인 듯 큰 놈이 장자가 숨져 있는 안방으로 긴 몸을 흔들며 들어가고 있었고 작은 구렁이는 곳간으로 향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장자와 아들은 덜컥 겁이 났습니다. 구렁이에게 자신의 육신이 잡아먹혀 버리면 나중에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영원히 이 늪 속에서 떠돌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자와 아들은 각각 구렁이를 뒤따라 헤엄쳐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구렁이가 장자의 몸을 칭칭 감더니 입을 쩍 벌렸습니다. ‘, 이대로 구렁이의 밥이 되는구나!’ 장자는 순식간에 구렁이를 향해 돌진했습니다. 구렁이가 장자의 영혼을 감지하고 고개를 돌리는 찰나였습니다. 장자의 영혼이 구렁이 몸속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구렁이는 아주 고통스러운 듯 온몸을 비틀었습니다. 그 때문에 벽이며 지붕이며 모두 부서져 물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장자의 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작은 구렁이가 자신의 몸을 먹으려 할 때 구렁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장자 구렁이와 다르게 아들 구렁이는 바로 정신을 잃고 바닥에 가라앉았습니다. 아들의 영혼이 모질지 못했거나 구렁이와 영혼의 궁합이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들 영혼이 구렁이와 함께 죽게 되자 장자 구렁이는 온 늪이 출렁이도록 몸부림을 쳤습니다.


장자가 재산 다음으로 가장 사랑했던 게 아들이었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물려받아 지켜낼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하물며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에게까지도 광의 열쇠를 맡기지 않았지요. 그런 아들이 자기와 함께 죽게 되고 또 영혼마저도 구렁이와 함께 사라지게 되었으니 가슴을 칠 노릇이지요.


장자 구렁이는 독하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구렁이의 영혼을 지배하고 구렁이의 수명만큼 살게 된 이상 자신을 이렇게 만든 세상에 대해 해코지하고 복수할 일념에 사로잡혔습니다. 장자 구렁이는 아들의 시체와 아들 구렁이의 시체를 마을 우물이었던 곳에 넣고 돌로 메웠습니다.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창했습니다. 마을을 잠기게 했던 물은 조금 빠지다가 멈춰 늪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물이 완전히 빠져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비가 그치고 며칠이 지나도록 물은 여전히 수위를 유지했습니다.


몇 날 며칠이 지나서야 마을 사람들은 장자와 장자의 아들, 그리고 그 집 며느리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며느리가 그날 대피했다는 것을 아는 돌쇠는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찾아보았으나 매일 허탕을 쳤습니다. 늪가에 다시 집을 짓던 마을 사람들이 모여 소곤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열흘이 지나도록 이렇게 나타나지 않은 걸 보면 장자의 가족이 이번 물난리에 변을 당한 모양일세.”

“에그…, 쯧쯧! 그 많던 재산 전혀 쓸 줄 모르고 모으기에만 애면글면하더니 결국 저렇게 되어버렸어.”

“여보게, 우리 물속에 잠긴 장자의 재산, 조금씩 건져내 쓰면 어떨까? 금은보화가 곳간에 가득 들어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말야. 우린 고생하지 않고 여생을 편안히 살 수 있지 않겠나?”

“하기야 주인도 없어진 마당에 장자의 재산은 먼저 차지하는 놈이 임자렸다!”


이렇게 작당을 한 두 사람은 다음날 날이 밝는 대로 뗏목을 만들어 늪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림짐작으로 장자의 집이 있던 곳까지 노를 저어가서는 옷을 벗고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밝은 아침 햇살이 늪의 제법 깊은 곳까지 비추어 두 사람은 장자의 집을 쉽게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저기로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수신호를 하고 함께 헤엄쳐 내려갔습니다. 장자의 집에 다다를 쯤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섬뜩하고 이상한 기운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뒤따라 헤엄을 치며 내려가던 사람이 등에서 뭔가 차가운 촉감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3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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