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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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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케빈에 대하여> 여성 감독은 몇 편 만들진 않았지만 상당히 수준 높은 작품을 제작했다. 


줄거리.


세계를 자유롭게 여행하며 삶을 즐기던 여행 프로젝터 '에바'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결혼하게 되고 아들 '케빈'을 나으면서 그녀는 이전과 전혀 다른 구속의 삶을 살게 된다. 에바는 일과 양육을 동시에 해내려고 애쓰지만 아들 케빈의 의도적인 배변실수 등 이유를 알 수 없는 반항적인 행동으로 지쳐만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바는 가족 중 유독 엄마인 자신에게만 마음을 열지 않는 케빈과 가까워지기 위해 시간을 내어 돌봐주고 놀아주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케빈은 더욱 교묘하고 치밀하게 에바를 괴롭힌다. 에바의 삶은 점점 피폐해지고, 의도치 않게 아들 케빈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고등학생이 된 케빈은 집과 학교에서 엄마 에바가 평생 고통의 수렁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는 대학살을 저지르는데... 


이후 2년 동안 에바는 철저하게 혼자 아들 케빈을 포함하여 남편, 그리고 사랑하는 딸 실리아와 함께 살았던 16년 간의 과거를 복기한다. 이 영화는 바로 대참사 이후 2년간 혼자 살아가는 에바의 삶과 대참사 이전 케빈과 함께 살아왔던 16년간의 과거를 교차적으로 편집했다.



케빈이 16살 되는 해 대참사. 케빈이 어떻게 사이코패스로 변해가는가 관점을 가지고 영화 감상.


영화는 토마토축제 장면에서 시작한다. 에바는 사람들로부터 높이 치켜들어지며 인기를 얻나 싶은데 바닥으로 내려졌을 때 마구 짓밟히는 고통을 당한다. 복선.



싸이코패스에 관한 영화다. 


영화를 보면서 케빈은 유독 엄마 에바에게만 알수 없는 반항을 보이는데, 그런데 그 반항의 원인을 알 수 없다. 케빈이 16세 생일을 앞두고 학교 강당 문을 걸어잠근채 학생들을 향해 무차별 화살을 쏘아댄 것이 무엇 때문인지 물어보는 장면이 있다.


교도소에 있는 아들 케빈에게 에바가 말하길 "너에게 직접 왜 그랬는지 묻고 싶다." 그랬더니 대답하기를 "아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모르겠어."


영화 초반에 에바는 원치 않는 출산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낳고 나서는 나름 정성을 다해 키움에도 케빈은 키우기 쉽지 않다. 




케빈은 태어나면서부터 키우기 까다롭다. 지나치게 센스티브하다. 우유를 먹지 않고 놀지도 않고. 센스티브한 아이는 우유의 온도가 맞지 않으면 못 먹는다. 엄마의 적절한 사랑이 만족스럽지 않다. 엄마의 사랑을 독점하고 싶어하는 아이다.


여동생의 실명. 엄마는 케빈이 유도한 짓이라고 에바는 생각한다. 여동생이 좋아하는 햄스터를 갈아서 싱크대 버린 행위도 케빈의 예민한 성격에서 기인한 것일 테다.


왜 에바는 이 동네를 떠나지 않을까... 이것도 미스터리다. 다들 엄마가 제대로 아이를 키우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라고 여긴다. 그렇다면 모성이 여성의 본질일까. 본질은 아닐 것이다. 모성이 본질인 것처럼 비칠 뿐이다. 


케빈은 원치 않은 임신이었지만 둘째 실리아는 케빈 때문에 힘들었던 경험 때문에 임신해 낳은 아이다.



'케빈'이란 이름의 뜻은 '좋은 탄생'이란다. 원치 않았던 자식임에도 그런 이름을 붙였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에바는 자신의 삶의 프로그램에 존재하지 않았던 케빈을 여성의 본능으로 간주되는 무조건적인 모성이 아닌, 자신의 몸에서 나온 생명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책임감으로 양육할 수밖에 없다.


'모성'이라는 단어가 내 사유의 발목을 잡는다. 불편하다. 무조건적이어야 하는데... '부성' 역시 마찬가지. 언젠가 이런 말 들은 적이 있다. 내가 너무 교과서적인지는 몰라도. "니가 안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안 그런 줄 알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에바처럼 '모성'이 아닌 책임감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나중에 보면 그 책임감이 '모성'을 일깨우는 것 같기도 하다.


사이코패스는 선천적인 것일까. 


김경옥 교수는 케빈이 센스티브하다고 했다. 교수가 나눠준 페이퍼에는 케빈이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 잘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사이코패스로 여겨지는 사람에 대해 일단 어린시절 지속적인 신체학대 또는 정서적으로 유기 방임된 환경에서 성장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보낸다. 영화 속 케빈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너무 사악하여 도저히 평범한 인간의 행동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도대체 누가 케빈을 그 지졍으로 만들었는지 따져서 그에게 책임을 돌리고 싶어진다. 


그렇다면 케빈의 사악함에 대한 책임은 주 양육자인 엄마 에바에게 전적으로 돌려진다. 물론 에바는 아들 케빈에 대해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전혀 준비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출산 후 어마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그렇다면 양육자로서의 의무적인 역할 이상의 조건 없는 모성적 요소가 빠져있어서 그런 문제가 발생한 것일까. 고등학생이 된 케빈이 엄마에게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어떤 것에 단지 익숙해졌다고 해서 그걸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잖아. 엄만 나에게 익숙해졌을 뿐이지."


케빈의 사악함은 어디에서 기인했을까. "닉 태어나기 전이 훨씬 행복했어!"라고 말한 에바에게 있을까. 그렇진 않다. 케빈과 일곱 살 차이나는 실리아는 케빈과 달리 사랑스럽고 관대한 아이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으로 센스티브한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서 싸이코 패스가 되느냐 그런 건 아니다. 입센 로랑도 센스티브하지만 싸이코는 아니다. 오히려 예술가적 기질을 살려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연쇄살인마도 그 기질이 발생하는 시기가 있다. 케빈처럼 사춘기에 발현되기도 한다. 김경옥 교수도 그렇게 얘기했지만, "케빈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동물적 본능으로 엄마가 자신을 결코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그 순간부터 부노와 증오심을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결국에는 사이코패스가 되었을까?" 하는 조심스런 분석에 동의한다. 케빈은 에바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불안했고 그것이 결국 16세 되는 해 끔찍한 학살극을 벌이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본다.



왜 에바는 이 동네를 떠나지 않을까.... 만약 떠났다 치면, 마음이 편해질까. 떠난다고 해서 레테의 강을 건널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동네 사람들로부터 질시를 받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명성을 갖고 있는 에바이지만 케빈을 낳고 서서히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동네사람들이 뿌린 붉은 페인트는 에바가 2년 동안 조금씩 지워나간다. 속죄의 의미가 담겼다. 2년은 케빈의 형량이기도 하다.



현실을 받아들이자. 오히려 큰 사건을 통해 자신이 갈구했던 사랑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포옹의 의미는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되었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잠깐 수업 시작하기 전에 오늘의 강의 영화 <천국의 아이들> 줄거리를 볼작시면.


알리와 자라, 두 남매는 가정현편이 너무 어려워 알리는 운동화 하나, 자라는 구두 하나가 전부다. 게다가 너무 낡았다. 알리는 자라의 구두를 수선하러 갔다가 그마저도 잃어버린다. 자라는 당장 학교에 신고 갈 신발이 없다.

알리가 궁여지책 끝에 자신은 오후반이므로 오전반인 동생과 자신의 운동화를 나누어 신기로 한다. 오전에는 자라가, 오후에는 자신이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가지만 이것도 여의치 않다.


자라는 오빠의 크고 낡은 운동화 때문에 친구들이 볼까 부끄럽다. 산수 시험치는 날에도 대충 답을 적고 제일 먼저 제출하고 사력을 다해 뛰어 보지만 운동화를 기다리는 알리는 번번히 발을 동동 구른다. 알리는 자라로부터 바톤터치된 운동화를 신고 학교로 내달리지만 여러번 지각으로 학교에서 내쫓길 뻔한다. 한편 이들은 잃어버린 구도를 수소문하지만 과연 구두를 찾을 수 있을까? 이들은 운동화 하나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이란 영화다.

페르시아 문화는 영적이고 신비주의 적인 문화를 추구한다. 오늘날 신비적 경향의 문화는 페르시아가 근원인 경우가 많다. 페르시아는 시의 나라였다. 이란이 그런 나라다. 이란에서 코란 다음으로 읽히는 시가 하페즈의 시다. 뉴스를 시작하기 전에 시를 먼저 읽고 하기도 한다.


이란의 문화 무시할 수 없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1940~2016)

1997년 <체리향기>로 칸영화제에서 대상 수상.

2010년 <사랑을 카피하다> 칸에서 여우주연상




자파르 파나히 1960~

이란의 3세대 감독

2000년 <서클>로 황금사자상.

2015년 <택시>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대상. 택시 운전을 하면서 촬영. 


마지드 마지디(1959~)

1992년 영화 <바둑>으로 칸영화제 초청받아 주목. 

1999년 <천국의 아이들>로 바르샤바 영화제 관객상

2008년 <참새들의 합창>


<천국의 아이들>은 첫 장면부터 롱테이크로 시작한다. 



마지막 장면, 아버지가 자라의 빨간 구두를 사서 집으로 오는 장면.

알리와 자라의 감성선과 연결될 것.


이 두 아이는 이 영화로 더이상 영화에 출연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이렇게 연기를 잘 했음에도 배우로 성장하지 않는다. 


전문배우 없이 일반인 대상으로 촬영했는데도 참 잘 만든 영화다.

해상도 높지 않지만 화상이 멋지다. 너무 잘찍은 것도 문제.

있는 그대로의 색감을 잘 살렸다.


이들은 행복해 보였나?

행복하냐고 물어보면 아무도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인간의 존재는 어쩌다 보니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왜 이 집에 태어나게 되었는지 모른다.


하이데거의 말. 인간은 불안하다. 반드시 죽는다. 이 두가지 말고는 없다.

행복해지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면, 이 아이들은 행복한가? 


이 영화에서 감동받은 점. 우리 아이들과 다른 것은 무엇인가?

내 자식한테 마구 퍼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자식들은 마구 받아야 한다고 여겨.


자녀들에게 물어보니, 부모가 언제 죽었으면 좋겠나 질문에 68세. 부모 재산을 내가 쓰고 싶다. 지금은 그런 사회.


이 작품 속 아이들은 부모를 이해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여기는 삶을 살고 있다. 


우리가 지금 퍼주기만 하고 받지 않는다? 그게 옳은가 생각하게 된다.



알리와 자라의 대화에서 얼마나 가족을 생각하는가를 알 수 있다. 아버지의 모습에서 진실성을 보여줘. 설탕 문제. 남의 것이면 설탕 한조각이라도 탐을 내어선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줘. 자전거 사고에서 아버지만 다치게 된 모습에서도 진성성 있는 아버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못 사는 집에서 수프를 끓여서 옆집에 나눠먹는 모습. 그리고 알리의 마라톤에서 3등의 의미. 1등은 알리에게 의미가 없어. 3등을 해야만 운동화를 받을 수 있는데 그게 안 되어 우울해하는 모습. 알리의 순수한 모습을 보여준다.


못 산다고 해서 불행한 건 아닌데... 행불행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끔 하는 영화다. 너무 많이 가지는 것이 행복한 게 아니라 가장 필요한 만큼만 얻을 수 있다면 그게 행복 아닌가.


욕망은 다가갈 수록 멀어지는 것.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욕망이다. 행복을 추구한다는 자체가 이미 맞는 말이 아니다. 3등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 행복 아닐까.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김경옥 창원대 교수. 영화광이란다. 초6년부터 좋아했다고. 철학 등 여러 과목의 교수들과 인문학 강좌를 하다 보니 영화를 가지고 강의하게 됐다. MBC에도 출연하고... 원래 영화를 보는 사람인데... 이제 공부하게 되었다.


영화를 다 보여주고 이야기를 나누면 좋지만 시간이 12시까지라 50분 정도만 가지고 하겠다. 다음 시간엔 80분짜리. 12시 반까지 하겠다.



어벤저스 이런 영화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엄청난 인문학적 영화이기도 하다. 인문학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영화들이 많이 있다. 우리나라 영화제가 100개 이상된다. 아주 세분화되어 있기도 하다.


인간의 삶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 안에 인문학이 스며있다. 


영화는 뭐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삶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가. 트뤼포 왈 "영화란 한 명의 희생자 즉, 절대적으로 불공정하고 섬뜩한 운명 앞에 놓인 한 인간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 다른 한편 이같은 상황을 낳은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일본인들은 "일본 죽어라" 하고 우리는 "헬조선" 그런 반응을 보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


연쇄 살인마를 예를 들자면 영화는 그 인간이 왜 그 매카니즘에 휘말릴 수 없나를 세세하게 보여준다.


요즘 국내 영화의 경우 강력범죄에 대한 끔찍한 인 스릴러 장르릐 상업적 영화는 수없이 쏟아져 나오지만 왜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은 관과되고 있다.


우리는 영화 속의 인물들에 자신을 투사함으로써 자신의 내밀한 자아를 들여다보게 된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 왜 일찍 상영관에서 내려지는가.. 그런 영화다. 하지만 인문학적으로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면 대한민국 사람은 안 본다는 거다. 내가 이런 영화보려고 영화관에 왔나 이런 생각을 들게 하기도 한다.


"당신은 왜 그것밖에 못해?"라고 누군가 내게 지적질을 하면 사생결단을 하고 달려들게 하는데, 영화 속의 어떤 인물은 나를 대변하고 있어서 그 주인공을 통해 나를 통찰하게 된다.


<버킷 리스트> 잭 니컬슨, 모건 프리먼 주연. 랍 라이너 감독. 아버지도 유명 연예인. 칼 라이너. 코미디언, 시나리오 작가, TV드라마, 영화연출가, 영화배우... 아들 롭 라이너도 시나리오 작가에, 연출가에 영화배우에 할 거 다하는 인간이구만.


롭 라이너는 처음에 연극 배우가 되려고 했다. 애미상 연기상도 받았다고. 


<디스 이즈 스파이널 탑> 영국 락밴드가 미국에 가서 실패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상업주의 음악, 영화 비판.




<스탠 바이 미> 1986. 영화배우 리버 피닉스. 디카프리오 세대 아이들 네 명. 24살에 요절. 이 영화 끝나고 정신병원에 갈 정도로 연기에 몰입했다고.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1989. 맥 라이언 로맨틱 코미디. 이 영화로 맥 라이언 한국에서 인기 구가. 


<미저리> 1990. 케시 베이츠 . 원래 조연 배우. 그런데 이 영화를 통해 주연배우로 등극. 여우주연상 받음. 스릴러물로 지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영화다. 유명 소설 작가와 극성 팬의 이야기.


<매직 오브 넬 아일> 2012. 모건 프리먼 주연.




<버킷 리스트> 


잭 니컬슨. 1937년생. 1973년 마지막 지령. 1975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 간 새>

머건 프리먼 1937년생.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소 생크 탈출> <루시> 최민식 출연 영화. <벤허> 2016. 

저렇게 나이 들어서도 활동적인 사람. 

모건 프리먼 얼굴 점. 어렸을 때부터 있었을 것이라고. 유명해지고 돈을 벌어도 저걸 빼지도 않는 것 보면 대단하다 생각이 들기도.


'kick the bucket' 양동이를 차다. 죽음을 뜻하는 말. 여기서 버킷만 떼어와서 리스트를 붙인 용어.


카터는 원래 역사학과 교수가 꿈이었던 사람. 그러나 가족 부양을 위해 자동차 정비사로 평생을 일해. 그러던 어느날 말기 암을 선고받는다.


에드워드는 16살 때부터 막일로 자수성가. 재벌이 되었지만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 에드워드도 말기 암에 걸렸다.


두 사람은 삶의 가치관도 다른 데 병원에서 두 사람이 만난다. 에드워드의 병원. 에드워드의 철칙. 병실은 혼자 들어가는 경우 없게 규칙을 정해. 카터와 한 병실 쓰게 됨.


아무리 항암 치료를 해도 1년 시한부 선고. 카터가 적은 버킷리스트를 보고 에드워드가 돈 걱정하지 말라, 당신이 평생 해보지 못한 것을 해볼수 있는 기회다. 도와주겠다고. 


카터의 부인이 하는 말 "암과 싸워야지!" 그런데 암이라는 게 싸워야 할 대상인가? 버티는 것 아닌가. 죽으면 암과 싸워서 졌다는 것인가.



이 영화는 오래 전에 봤다. 중반부부터 감상하는데 강렬한 인상을 받은 작품이라 그런지 장면 장면이 기억에서도 제법 또렷하게 재생된다. 사실 내가 연극을 다시 시작하게 된 배경엔 이 영화가 자리잡고 있다. 나이 더 들기 전에 연극을 해봐야겠다고 다짐한 게 버킷 리스트 때문이었으니까.


영화를 보면서 새롭게 느끼는 게 있는데.. 거참.. 두 영감쟁이 살날 1년도 안 남았다면서 스카이다이빙에, 스포츠카 드라이빙... 열정이 20대야. 전혀 아파보이지도 않아. 병실에선 그렇게 빌빌거리더니. 그런데 난 그 현상... 이해하지.


영화감상이 끝나는 시각 정각 12시. 야, 김 교수 시간 하나는 정확하게 맞췄네. 했는데... 이제부터 토론을 시작하잔다. 엥?! 


김 교수는 수강생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카터는 왜 버킷리스트를 떠났을까?" 아무도 대답을 못하자, 버지니아의 전화가 왔을 때 뭐라고 했는지 떠올려보라고 했다. 아! 아.... 뭐라고 했는데... 뭐였지.... 하필 그 부분만 생각이 안나다니... ㅋㅋ. 


카터는 이렇게 말했다. "뭔지 모르지만 아주 중요한 걸 잃어버린 것 같다."

카터는 평생을 가족을 위해 살았다. 자신은 역사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가족 부양을 위해 자동차 정비업을 선택했다.

자식들은 잘 키웠다. 일찍 부양의 족쇄에서 풀려나나 싶었지만 늦둥이를 낳는 바람에 다 키우고 나니 나이 60. 

어!? 나도 막내 다 키웠다 싶으면 60이 넘겠는데... 내 나이 56에 막내 겨우 13살이니.

뭐 그래도 내 버킷 리스트에 '늦둥이 키우기' 포함하면 되는 것. 


카터의 첫 번째 버킷 리스트는 장엄한 광경 보기다. 그래서 이집트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가 광활한 지평선을 바라보지만 그 광경을 원한 게 아니었나 보다. 


카터는 에드워드에게 이 꼭대기에서 질문을 하나 한다. "고대 이집트인은 죽음에 대해 멋진 믿음이 있었다는 거 아나? 영혼이 하늘에 가면 말야, 신이 두 가지 질문을 하는데, 대답에 따라 천국행이 결정되었다는군.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했는가?"


에드워드는 예스라고 대답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딸 때문이다. 딸이 결혼할 즈음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 반대했고, 딸이 남편에게 맞는다는 얘길 들었을 때 '해결사'를 고용해 혼을 내주고 이혼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딸은 오히려 화를 내며 의절해버렸다. 그 이야길 카터에게 했으니...


"어떻게 내려가지?" 에드워드의 말. 이 장면은 작품의 모티브일 수 있다. 카터가 원하는 더 장엄한 광경은 히말라야다.


김경옥 교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게 버킷리스트에 들어간다고 했다. 음.. 나는... 뉴질랜드 동해안 절벽에 서 보는 것이다. 지금은 구글 지도를 통해 가끔 들여다 보지만 언젠가 정말로 가서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볼 것이다.


카터는 왜 히말라야를 원했을까? 그 '완숙'한 나이에 쉽지 않은 도전이겠지만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면서 접하는 광활하고 웅장한 광경은 허전하고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 뭐라도 거기에 꽂히면 다른 아무리 좋은 거라도 만족스럽지 않을 테니까.


히말라야 턱밑에까지 갔다가 악천후에 의해 물러선다. 다음 기회로 넘기고 홍콩으로 떠난다. 홍콩에서 안젤리카라는 여성을 만난다. 그는 히말라야 8000까지 가봤다고 한다. 카터가 어떻더냐고 물으니 하늘이 까맣더란다. 그리고 밤이 되니 쏟아지는 별에 빨려들 것만 같다고 한다.


안젤리카의 말에 카터는 어떤 책을 읽었는데, 그 책에 산꼭대기에 오른 사람이 말하기를 거기선 아무 소리도 안들린다고 했다가 곧 산의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 산의 소리는 신의 소리였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피터 페터슨이 쓴 <신의 산>에 나오는 이야기다.


안젤리카가 카터에게 "진부한 표현 같지만, 방으로 갈래요?"라고 유혹한다. 카터가 거절하자 안젤리카는 돌아가고 카터는 아내가 있는 집으로 가고싶어졌다.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두 사람은 아메리카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온 카터는 얼마 있지 않아 숨진다. 가장 첫 번째 버킷 리스트 히말라야를 실현하지 못한채.


하지만 카터가 이루지 못한 소원은 에드워드에 의해 실현되고 에드워드 역시 비서에게 시켜 히말라야 높은 곳에 '불법'으로 묻힌 커피깡통 속의 카터 옆에 나란히 묻힌다. 10여 년 전에 봤을 때도 이 장면만큼 감동적인 것이 없었는데.. 오늘 봐도 역시 감동적이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1986년. 복학하고서 처음 대학연극에 발을 들인 해다. 자연히 이런 저런 연극을 보기도 하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나아가서는 희곡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국문과 안에 각 장르별 창작 그룹을 조직했었는데... 추동력이 모자라 얼마 하지 못하고 해산하고 말았다. 그게 지금도 두고두고 후회된다. 그러면서 나는 또 더 연극에 집중하게 되었던 것 같다. 어.... 괜한 썰을...


여튼 창원문화재단이 마련한 문화강좌 '화요명작예술감상회'를 통해 문종근 객석과무대 연출로부터 당시의 팸플릿 자료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다행한 일인가. 언제 창원대 극예술연구회 동아리방에 들어가 30여년 전의 자료가 잘 보존되어 있는지 확인해봐야겠다. 내가 한 작품 자료들도 그대로 남아 있는지... 음... 설레는군.



경남대 18회 정기공연. <모닥불 아침이슬>. 객석과무대 배우로 활동하다 2004년 돌아가신 김태성 선배의 연출 작품이군. 캐스트 중에선 현 객무 상임연출 문종근 감독과 이태환... 어.. 아는 사람이 이정도밖에 없네... 복학하기 전이어서 그런가 보다.



극단마산의 제3회 공연작 <시즈위밴지는 죽었다>. 현태영 연출. 마산 합성동 시외버스 주차장 옆 보람의 집에서 공연됐다고. '보람의 집'? 없어진 지 15년이 다 된 터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 위치가 아마도 지금의 마산의원이 있는 그 건물 아닐까 싶다. 90년대 중반 쯤에 음악 공연을 보러 딱 한 번 간 기억이 난다. 1986년도에 그곳에서 연극을 했다니 놀랍다.



공연을 축하한 극단을 보니 당시 마산에 터를 잡은 극단의 면면을 알 수 있다. 불씨촌(강경윤), 무대(이지훈), 사랑방(송판호), 어릿광대(박낙원). 의외로 거창 극단 입체가 함께 축하를 했다는 것이 이채롭다. 공연축하 광고를 고 추송웅 배우의 명복을 비는 내용으로 편집을 했다는 것도 특이하다. 명복을 빌면서 공연을 축하한다는 것이 어찌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고.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 배우 추송웅은 TV드라마 <달동네>에서 똑순이 아버지로 나와 큰 인기를 얻었더랬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다림질하면서 손과 고개를 교차시켜 "쉭! 쉭!"하던 모습. 그 추송웅 선생이 내 고등학교 선배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 또 얼마나 관심갖고 연기를 보게되었던지...





극단 불씨촌의 25회 공연. 알베르트 카뮈의 <오해>. 1986년 7월이면 가을 공연 앞두고 내가 한창 연극 연습을 하던 시기구만. 스태프나 등장인물에 아는 얼굴이 많다. 캐스트 중에 김소정 현 상상창꼬 상임연출, 기획 김미화, 연출 맡은 우정진은 이야기만 들었지 얼굴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구... 86년도 우정진은 몰라도 김경화 김소정은 창원대 학생있었는데... 불씨촌 공연을 했었구나.






경남대 극회 20회 정기공연. 11월 28일. 완월강당. 이 공연은 내가 봤다. 창원대 극회 학생들이 단체로 가서 본 작품이다. 당시 보면서 학생극치고는 정말 투자를 많이 한 무대라고 생각했다. 물론 작품의 수준도 당시 내가 출연했던 <문밖에서>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 많은 등장인물을 소화할 정도의 동아리 학생이 있다는 게 부럽기도 했고... 보고나서 우린 언제 저런 작품 하나 올려보나 그런 생각을 했으니.









창원대 극회의 11회 정기공연 <문밖에서>. 전대명 연출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연출자는 전영도다. 왜 다른 이름을 썼는지 지금 기억을 더듬어봐도 이유를 모르겠다. 뭔 이유가 있었겠지. 내가 맡은 연대장 역은 대사가 그리 많지 않다. 리허설 때 러닝타임 2시간 남짓. 그 시간 동안 내 대사는 총 11마디. 그런데... 첫 무대라 얼마나 떨었던지... 몇 안 되는 그 대사마저 까먹어버리고 온갖 사투리로 애드립을 쳐댔으니... 아, 지금 생각해도 낯이 후끈거린다.


문종근 연출의 강의에서 이 팸플릿을 소개하면서 괜히 나를 언급하는 바람에 수강생들의 시선이 죄다 내쪽으로.. 흐.. 게다가 문 감독이 박수까지 유도를... 어찌 낯을 들고 다니라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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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의거를 무대화 작업. 3.15의거 12열사 중에서 오성원에 초점.


부산일보 기사를 보고 힌트를 얻음. 


2008년 말 이 소재를 가지고 이윤택을 찾아감. 


2009년에 <삼월이 오면>이라는 제목의 대본이 나옴. 서울서 오디션 봄. 3억 5000만 원 들여 뮤지컬로 제작.



<삼월이 오면> 2010년 3월 15일 3.15아트센터 대극장 공연.


`21내년엔 만날고개 콘텐츠를 대형 뮤지컬로 준비중.


창작 초연을 한다는 것은 10편 중에 1편 성공... 귀하고도 힘든 작업이란 의미.





<너의 역사>(이해제 작 문종근 연출) 2018년 3월 21~24일 3.15아트센터 소극장. 


영상 감상.



너의 역사는 이승만 부정선거에 대한 3.15의거를 배경으로 열사 중 한 사람인 구두닦이 오성원에 관한 이야기.







시골버스 여 차장의 대사는 노래로. 뮤지컬 요소도 적절히 활용.


구두닦이 오성원, 신문팔이오 겸했군. 구두닦고 신문팔고 돈을 많이 받자 '좋은데이'라고. ㅋㅋ


아가씨가 남자들한테 희롱을 당하자 오성원이 구해주는데.. 이 여성이 나중에 오성원 무덤에 찾아온 17세 여성이라고.


집에 닦을 구두가 많다 하니 잘사는 갑다... 그게 아이고예. 식모라예... ㅋㅋ 등장인물 캐릭터 잘 만들었다.


반공예술인단. 이승만 정권 홍보. 이승만 전위대.


'살아남은 자의 눈물'


이 작품은 3.15의거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 시간대를 오가며 플롯을 구성했다.


삼성물산 등 대기업을 대상으로 선거자금을 모집하는 과정을 전통 형식으로 풀어내. 



대기업 재벌들이 얼마얼마를 기부했다는 대사를 읊을 때 무대 오른쪽 위에 자막으로 나타내어 이해를 도움.



이승만도 등장하는군. 내무부장관이 부정선거 지시하는 과정을 움직임으로 표현.


'너를 찾아서'


이승만정권은 시민들을 잡아다가 툭하면 빨갱이 혐의를 덧씌워 고문을 자행했다. 그 장면 하나를 묘사. 아가씨를 구금한 경찰이 고문에 성폭력까지. 물고문. 호수 형상화. 스크린 활용. 


김주열 어머니가 3.15 이후 자식을 찾아다니는 과정 묘사. 철도저수지에 매장했다는 소문에 물을 다 빼고... 김주열 철도고등학교 또 떨어져 마산상고로 진학.


마산역 건물. 세림상가 앞에 있던. 3.15의거 기념탑 앞 철교를 형상화한 기본 시설에 영상을 활용한 무대 변화가 괜찮다. 이런 형태의 무대 구성은 연극을 시나리오처럼 다양한 씬을 만들 수 있겠다 싶다.


'미궁'


철도저수지에서 아들을 찾고 있는 김주열 어머니. 철도저수지가 마산경찰서 인근에 있었다고... 


3.15일 투표 과정 무지컬로 형상화. 


아침 7시 사이렌 소리 오늘은 3월 15일 선거하는 날 어서어서 일어나 투표하러 가세. 자유당 무리지어 사람들에게 투표하는 법 알려준다며 부정선거. 민주당원이 항의하면 폭행. 민주당사 앞에서 선거 무효 선언. 시민들 결집. 시위에 경찰 발포. 





파이널 뮤직으로 '너의 역사'. 노래는 3.15뿐만 아니라 광주민주화운동도 포함, 그리고 촛불혁명까지 아우르고 있다.


살아있는 김주열 어머니와 죽은 김주열 등 열사들과의 대화를 통해 비장한 느낌.


역사는 기억해야 할 것. 잊지 않기 위해 보존해야 하는 것. 작품을 하면서 역사에 대한 가치를 깨달았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이 자료들은 극단 객석과 무대 문종근 연출이 창원문화재단이 진행하는 '화요명작예술감상회' 강의 때 제공한 것으로 지난주 70년대 자료에 이어 80년대 당시 극단들과 대학극예술연구회의 팸플릿 자료들이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은 서울에선 일 년에 두세 극단에서 공연할 정도로 인기 있는 작품.


1943년에 초고를 써서 1년가 수정. 44년 모스크바예술극장 배우들에게 헌납. 스타니슬라브스키가 초연. 두 사람은 문학, 예술적으로 20년간 함께 모스크바예술극장을 이끌어.


제정러시아시대. 당시의 사랑과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등장인물들.



시놉시스.


광활하고 아름다운 벚꽃 동산의 여지주 라네프스카야는 5년간의 파리 생활을 청산하고 백야가 눈부신 5월에 벚꽃동산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농노해방과 지주의 몰락으로 벚꽃동산은 빚더미에 올라 이자를 갚지 못하면 경매 처분될 위기에 놓인다.


상냥하고 너그러운 라네프스카야의 인품에 과거 농노시절 위로를 받았던 신흥재벌 로파힌은 빚더미에 오른 라네스프카야를 위해 벚꽃동산을 별장지로 임대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라네프스카야와 그녀의 오빠 가예프는 과거의 행복했던 추억이 담긴 벚꽃동산이 훼손되는 것을 원치 않아 로파힌의 제안을 거절하고 결국 벚꽃동산은 경매에 붙여지게 되는데..


한편 베쨔와 아냐는 서로 사랑에 빠지고, 라네프스카야의 수양딸인 바랴와 로파힌이 낙찰받게 되고 라네프스카야의 가족들은 모두 흩어지게 되는데 마지막 날까지 바랴는 로파힌의 청혼을 받지 못한다.


모두가 흩어져 떠나고 남게된 늙은 하인, 피르스만이 어디로 향하지 못하고 집에 남아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



1막 감상. 연출가는 장면 하나하나에 숨어있는 의미들을 찾아 만들었다. 아주 사실적 표현.



템포가 빠른 다른 작품. 2000년 제작. 영상은 시간 내서 유튜브 통해 검색해봐야겠다.


이 작품은 앞에 본 것보다 확실히 속도감이 있다. 연출에 따라 표현방법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벚꽃동산>은 총 4막의 희극이다.


"벚꽃동산을 통해 러시아 귀족 사회가 몰락하던 혼돈의 시절, 기존 가치들이 붕괴하는 가운데 불안한 삶을 지속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도도한 세월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인간 군상의 이야기로 안톤 체호프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발견되는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면. 건물이 무너지는 상황 묘사.


영상은 2000년 중후반에 제작한 작품. 러시아에서 작품을 했던 연출이 한국에 강의왔을 때 받은 영상. 아, 그러면 유튜브에 없을 수도 있겠군.




극작가는 소설과 달리 인물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지 않는다. 30~40퍼센트 준다. 인물에 대한 분석은 연출가에게나 배우에게 매우 중요하다. 논리적으로 분석해서 무대화해야 한다.


배우가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는 무대 위에서 배역의 행동을 정확하게 옮기는가에 있다.


스타니슬라브스키는 그래서 연기술을 연구했다. 


체호프 작품을 보면 .... 대사와 대사 사이 뜸을 들이는 장면이 많다. 이런 잠깐의 정적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었다는 얘기.




애기방 공간에서 소품들을 논리적으로 갖춰야 동선을 설정할 수 있다. 장롱, 세면대 거울, 탁자, 의자 등등. 


애기방의 요건은 어떤 게 있을까. 조용해야 한다. 환기가 잘 돼야 한다. 창문이 여러개 있어야 하고 커튼이 있어야 한다. 창문이 많다는 것은 밖을 볼 수 있다는 것. 애기방을 만들 때는 건축학 상의 특성을 고려해 무대를 꾸며야 한다.


첫 장면의 연습은 이런 상황을 갖추고 시작해야 한다.


왜 로빠힌과 두나샤는 이 방에 들어오는가? 


두나샤 : 두 시쯤 됐어여. (촛불을 끈다) 벌써 날이 밝았네요.


이걸 어떻게 날이 밝다는 것을 표현할 것인가. 촛불을 끄는 것만으로? 창문의 커튼을 제쳐 날이 밝았음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다면 왜 로빠힌이 두나샤를 애기방으로 데리고 왔는가? 창문이 있고 2층인 애기방에서 멀리 기차역을 보기 위해서.


두 사람이 같이 등장한다. 이전에 이 두사람은 같은 장소에 있었나, 다른 장소에 있었나?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부족하다. 두 사람이 손에 든 소품을 보면 알 수 있다.


로빠힌은 책을, 두나샤는 촛불을. 서재에 있던 로빠힌이 두나샤를 찾아서 데리고 애기방으로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로빠힌은 현재 시각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은 그동안 자고 있었다는 것이 설명됨.


이 장면에서 두나샤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로빠힌은 기차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나? "지금 몇 시야?" 기차는 12시 도착해야 하는데 기적소리는 두 시간이 지나 들렸다. 이 집은 기차역과 가까운 거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적소리에 이집 식구들을 다 깨웠다. 그 소리에 놀라서 로빠힌은 두나샤를 찾아 헐레벌떡 뛰어왔다.


12시에 도착할 마님을 마중나가기 위해 가족들은 모두 역으로 이미 갔고 로빠힌은 자고 있었다. 로빠힌은 11시 이전에 이집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다.


마님이 로빠힌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로빠힌의 대사를 통해 알 수 있다. 로빠힌은 아주 바쁜 사람이다.


로빠힌이 입고 있는 옷과 신발은 마님을 만나기 위해 갈아입은 것. 아버지가 이집의 농노였기 때문에 하녀 두나샤를 이미 알고 있는 사이다. 지금은 신흥재벌로 신분 상승을 이루었지만 그런 관계를 통한 상황 설정이 필요하다.


신분 상승을 이뤘지만 태생을 감출 수 없기 때문에 콤플렉스를 느껴 서재에서 책을 꺼내 보지만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고 재미가 없다. 하루 일과가 아주 바쁜 자신. 그리고 책을 보자 잠이 들어. 이것도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는 부분.


두나샤는 방에 들어와서 무엇을 하는가? 로빠힌이 과거 이야기를 하며 화려한 대사를 하게 되는데, 이 상황에서 두나샤는 무엇을 하고 있나? 치장을 한다. 자신의 의무를 다 마쳤기 때문에 일을 할 필요는 없다. 두나샤는 자기 방 아니면 아냐 방에서 하루종일 이옷 입었다 저옷 입었다 하며 5년만에 오는 마님을 어떻게 맞이할까 흥분한 상태에서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이 방에서 절대 하녀로서의 일을 하지 않는다.



로빠힌이 장문의 독백을 하고 있을 때에는 두나샤도 내면의 독백을 하고 있어야 한다.


두나샤는 무슨 소리를 들었기에 "어머 벌써들 오시나봐요"라고 했을까. 그런데 로빠힌은 또 무슨 소리를 듣고 아니라고 부정했을까.


로빠힌이 잠을 자버린 것에 대해 자책하고 있으며 괜히 두나샤를 질책하고 있다. 


무슨 소리? 개 짖는 소리. 그래서 오나 보다 생각했다. 두 사람이 똑 같이 개 짖는 소리를 들었는데 왜 각각 반응이 달랐을까? 두나샤는 개 소리를 듣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두 사람의 심리적 상황을 놓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두나샤는 손이 떨려요, 어지러워요, 개들도 밤새 잠을 자지 않았어요. 이런 대사를 보면 감정이 아주 들떠있는 상태. 그래서 개짖는 소리에 온다고 생각했다.


로빠힌은 역에 가서 맞이하지 못한 것을 자책한 상황. 차분하게 자신을 생각한다. 로빠힌은 개소리와 역의 상황을 봐서 30분 정도 지체하였는데 벌써 도착했을 리가 없다.


로빠힌은 왜 회상에 빠지게 되었는가? 로빠힌 입장에선 무엇이 절실했기에 이렇든 장문의 독백을 했을까? 로빠힌이 보는 카메라 앵글을 보면 된다. 클로즈업. 5년동안 살면서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과거를 회상하며 부인의 현재 모습을 그려보려고 시도한다고 해석. 5년 지난 지금의 부인 모습이 떠오르지 않아 장문의 대사를 하고 있다고 해석.


이 작품은 몇 개월씩 연습해야 가능한 작품. 인물 분석, 장면 분석 하나하나 세밀하게 들어가야 제대로 된 작품이 무대에 올려진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1970년대 경남지역 연극


그전 통영 지역에서는 1965년 한국연극협회 '충무29지부'가 인준되고 허창언을 주축으로 하여 '춘추극회'가 생겨났다. 하지만 허창언의 타계로 5년 만에 문을 닫고 실질적으로 통영연극은 긴 공백기를 거친다.


그 와중에 1975년에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강수성 씨의 희곡 <소리>가 당선되었다. 197912월에는 청년들의 소인문학 서클인 '충무독서회(물푸레문학동인회 전신)'가 '향토문학회관' 건립기금 조성을 위하여 봉래극장에서 유치진 작, 최성찬 연출의 <통곡>을 공연하였으며, 198012월에 강수성 작·연출의 <소리>를 공연하기도 했다.


한국연극협회 충무지부의 2(7911~801231) 지부장으로 김우성이 임명되고 장현은 사무국장을 맡았다한동안 공백을 보이던 통영연극계는 1981년 장현을 주축으로 장영석, 김윤일, 김철규, 박연주, 허동진, 지태건 등이 뜻을 모아 극단 '벅수골'을 창단해 <토끼와 포수>를 시작으로 하여 통영지역 연극의 맥을 잇는다.


1970년 진주지역에선 동호회 모임이었던 텔스타가 극단으로 재정비하고 <종점을 달리는 사람들>(손정수 작)을 이희대 연출, 이상훈, 김진희 출연으로 '로타리 다방'에서 공연되었다. 1973년에는 극단 '청년들'이 창단되었는데, 김재호 연출로 <종점을 달리는 사람들>이 무대에 올랐다. 1974년에는 경상대학교에서 극예술연구회가 조직되었고 김희창 작 방성진 연출로 <비석>을, 윤대성 작 <출발>, 김지현 작 <상방> 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또 방송연맹 진주시지부 주최로 이항구 작 이희대 연출로 반공극 <산하는 다시 푸르러지리>를 손창극 기획으로 공연되기도 했다. 이 해에 이희대, 조희래, 모왕갑, 손정수, 김용구, 황금, 서영수 등 17명의 동인이 모여 극단 '현장'을 창단했다.


극단 처용랑은 새마을운동 위안공연으로 김일환 작 <닭이 울 때>를 무대에 올렸고 제25회 개천예술제에는 경상대극회가 김지현 작 <상방>으로 참여하는 등 다수 극단이 참가했다.


1976년에는 극협진주지부가 10년 만에 임원진을 전면 개편하고 새집행부를 출범시켰다. 지부장 이희대, 부지부장 이창식, 감사 이길성, 손창근, 사무장에 박우희로 구성됐다.


이 시기 밀양에서는 사실상 해체됐던 극단 메들리가 긴 공백기를 끝내고 다시 맥을 잇게 된다. 1971년 김용식 연출 <용감한 사형수>를 계기로 강민수, 최전, 권길한, 신말선, 조인숙, 안명애, 김종웅, 이용주 등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76년 10월에는 지금의 한국연극제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새마을연극경연대회에 경남 대표로 선정돼 윤조병 작 김용식 연출 <꽃 보라>를 국립극장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1978년에는 메들리의 창립멤버였던 손경문이 돌아와 이근삼 작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를 연출하고 이후 손경문은 <이수일과 심순애> <산국>을 비롯한 많은 작품을 지도하고 연출해 밀양 연극을 활성화했다.


1970년대 마산 연극


1971년부터 마산연극계는 대학극이 활성화되었으며, 당시 마산대학(현 경남대학교)의 영문과 교수였던 한기환과 연출가인 한하균이 호흡을 경남연극의 지층형성과 발전맞춰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80년대부터 활발하게 경남연극을 이상용, 이종일최태황, 현태영 등이 이들의 영향 아래 있었다. 이 때 이들이 자주 드나들던 '전봇대 살롱'(현 경남맨션 뒤)은 한기환이 제자들과 함께 극을 논했던 토론장의 역할을 했다. 특히 1972년에 지어진 경남대학교의 완월강당1980년대까지 주 공연장 역할을 하면서 연극발전에 한몫을 했다.


한편 1972'재경 마산학우회'는 이상용 등이 중심이 되어 제2회 공연작품인 <허수아비>라는 단막극을 준비하고 있었다. 19723월부터 한기환은 원어연극을 시도했다. 이로 인해 대학극이 활성화되었으며, 한기환의 지도로 <안경>(포우 작, 한하균 연출, 19725, 19743), <우리시대>(이종일 연출, 197810) 등을 공연하였다. 또한 한기환의 제자인 이상용이 주축이 된 경남대 연극반은 19735월에 <부부>(유치진 작)를 이상용 연출로 공연하고 19746월에 <울타리>(한노단 작)를 공연하기도 했다.


19752월에는 마산카톨릭문화원 지하 백락다방에서 이상용, 유영원, 최덕선, 최정임 등이 주축이 되어 동인극회인 '마산데아트르'를 만들었다. 이들은 <공모살인>(김용락 작)을 이상용 연출로 공연하였으나 같은 해 6월 이상용의 군입대로 1회 공연을 끝으로 해체되고 말았다.


1976년에는 마산 출신으로 서울과 부산 등지의 타지 방에 가서 공부를 하던 신용수, 하영화, 신현숙, 강상훈, 김진식 등의 대학생들이 '마산학생연극회'(이하 '마학연')를 조직하여 <엘리베이트>(이재현 작)를 신용수 연출로 창립공연을 올렸다. 같은 해 5월에는 마산간호전문대학 연극부(이하 마간연)가 <재치를 뽐내는 아가씨들>(몰리에르 작)을 이종일 연출로, 같은 해 7월에는 경남대 연극부가 <강제결혼>(몰리에르 작)을 이종일 연출로, 같은 해 11월에는 <하멸태자>(셰익스피어 작, 안민수 번안)를 이종일 연출로 공연함으로써 당시 마산연극계를 대학극이 주도했다


19772월에는 마학연의 제2회 작품인 <보이체크>(뷔히너 작, 신용수 연출), 현태영 등 경남대의 학생들까지 합세하여 공연하였다. 갇은 해 5월에는 '경남대 극예술연구회'(초대회징 이윤도, 이하 경극연)가 출범하여 창립 공연인 <코르작과 그의 고아들>(엘빈 실바누스 작)을 이윤도 연출로 무대에 올렸다. 경극연의 이윤도를 비롯한 정석수, 장해근, 현태영, 최태황 등의 창립멤버들은 고춘호, 김윤희, 김윤자, 박유진, 송창호, 최현규김태성, 이옥희, 문종근, 김경선 등과 함께 마산연극계의 맥을 이어갔다.


19773월에는 정해완, 최덕수, 문성환 등 '마산MBC문화방송' 직원들이 주축이 된 '소극장77 연극동우회'가 창립되어 <토끼와 포수>(박초열을 끝으로 해체되고 말았다. 이들 중에서 정해완은 서울 '청포도극회' 출신으로 '불씨극회' 창립에 큰 역할을 했으며 성지여고에서 <논개>(이재현 작)를 연출한 바 있다. 같은 해 5월에는 마간연의 <나는 방관자가 아니다>(박현숙 작, 강인중 연출), 8월에는 마학연의 <태풍정보>(윌리암 작, 하영화 연출)가 공연되었다.



같은 해 9월에는 불씨극회가 창단되어 11월에 창립 공연으로 <철부지들>(톰 존슨 작, 신용수 연출)을 무대에 올렸다. 창립 당시 불씨극회(회장 신용수)의 주요 멤버들은 신용수, 조수잔나, 김경숙, 천석주 등이었으며 당시 마산 MBC문화방송 국장이었던 정해완과 경극연의 정석수, 현태영, 장해근 등이 창립을 도왔다.


불씨극회가 탄생함으로써 당시 마산연극계는 불씨극회와 경극연, 즉 기성극과 대학극이 양립하는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97711월에는 경극연의 <일요일의 불청객>(이근삼 작, 이윤도 연출), 12월에는 불씨극회의 <우리 읍내>(손톤 와일더 작 신용수 연출)가 각각 무대에 올랐다.






1979년 3월에는 경극연의 <향기>(윤조병 작 정효영 연출)와 불씨극회의 <단 한 번 거짓말 속의 영원한 사랑>(엘빈 실바누스 작, 신용수 연출)가, 5월에는 마간연의 <결혼>(이강백 작, 황정희 연출)과 경극연의 <만리장성>(막스프리쉬 작, 정효영 연출)이, 9월에는 불씨극회의 <결혼>(이강백 작, 김경수 연출)과 마학연의 <관객모독>(피터 한트케 작, 이윤도 연출)이 각각 공연되기도 했다.



<자료제공 : 문종근 객석과 무대 연출가>


그러나 아쉽게도 마학연은 <관객모독>을 끝으로 해체되고 말았다. 그해 12월에는 경극연과 불씨극회의 합동공연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작, 김동운 신용수 공동 연출)이 공연되었다 또한 동년 5월에는 이용우, 박낙원 등이 주축이 되어 극단 '세림기획'을 창단하여 전용소극장까지 두고 <서울 말뚝이> 등의 초청극과 <결혼>(이강백 작 이용우 연출), <고백>(김숙인 작, 강주리애 연출) 등의 작품을 '토요무대'란 이름으로 올리기도 했다.


이후 1982년 2월 이성국, 천영훈(천영형) 등이 침체국면을 맞은 극단을 부활시키려 세림상가 지하에 소극장을 만들어 재건하려 했지만 결국 <결혼> 공연을 끝으로 말았다. 


1980년 3월에는 경극연이 <우정>(필립뽀 작, 김동준 연출)을 마학연이 <산국>(황석영 작, 이윤도 연출)을 12월에 경극연은 <무덤없는 주검>(싸르트르 작, 현태영 연출)을, 불씨극회는 <철부지들>(톰 존스 작, 신용수 연출)을 각각 공연했다.

<경남연극 인물사1(경남연극협회 간) 자료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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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침에 노유정 씨 왈 "바래다 준다 할 때 따라나서라"하는 바람에 후다닥 챙겨 나섰더니... 노트북을 깜빡 잊었네. 그것도 수영장을 나서서 3·15아트센터 가는 버스를 탔을 때야 생각이 났으니... 돌아갈 수도 없고... 하는 수 없이 원시적 받아쓰기를 하자 심정으로 강의실에 들어갔다.


습관이란 게 참 무서워. 이면지에 받아쓰기를 하는데 노트북으로 바로 받아쓰기할 때보다 집중이 안 돼. 유튜브 링크도 제때 찾아서 붙이고 캡처하고 그렇게 정리해야 뭔가 제대로 되는 기분인데... 강의 내용을 볼펜으로 재생하는 데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지금 보니 이게 뭔 글자인지 알아묵기 어려운 것도 있고.



동서대 오세준 교수가, 그 자신 뮤지컬 배우이기도 하다, 이번 4월 한 달 동안 '뮤지컬의 이해'라는 제목으로 4번을 강의했는데 워낙 열정적이라 마지막 단원인 한국의 뮤지컬을 다루지 못한 게 아쉽긴 하다. 하긴 강의를 진행하면서 조금씩 언급하긴 했다.


오늘 강의 내용은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브로드웨이와 영국의 뮤지컬이다. 프랑스 뮤지컬도 히트친 게 있긴 하다만... 


원래 뮤지컬의 본고장 영국이 주춤하는 사이 미국은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공연했다. 그러던 것이 80년대 접어들면서 영국은 대작들을 내놓게 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작품들이 이때 제작된다.


캣츠, 오페라 유령, 레미제라블, 미스사이공. 우리나라에서만 이 네 개의 뮤지컬을 4대 뮤지컬이니 뭐니 이상한 이름을 붙여 규정짓는데, 외국에선 이런 짓거리 안 한다고.



캣츠나 오페라 유령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작품이다. 한 사람이 이런 대작들을 연속해서 만들어낸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단 말밖엔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더 대단한 건 카메룬 매킨토시라는 사람이다. 위 네 개의 작품을 모두 제작한 사람이다. 뮤지컬 예술을 보는 눈이 얼마나 탁월했으면 투자해 만드는 작품마다 대 히트를 치느냐는 거지.


요새 기사를 읽다 보면 댄스컬이니 살롱뮤지컬이니 국적 불명의 단어들이 많이 사용되는데 이것들 모두 언론사 작명력에 의한 신조어라는 점 명심. 외국에선 이런 표현 안 쓴다고.


기존의 뮤지컬이 대사하고 노래하고 뭐 그런 형태였다면 앤드루 로이드 웨버에 의해 송 쓰루 뮤지컬이 등장했단다. 대사도 모두 노래로 표현되는 작품이지. 



레미제라블 감상. 

오페라의 유령 감상.


오페라의 유령을 보면서 연극 작업도 좀 수준 높은 영상 촬영을 해야겠단 생각. 오페라의 유령 공연 비밀을 이야기해주는데... 공개해도 될는지... 립싱크 부분이 많다고. 거울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나 크리스틴의 고음 부분.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로 해놓고 다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ㅋㅋㅋ



여튼 1980년대 이후의 뮤지컬은 무대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공연은 첨단화되기 시작했다고.


<싱 인 더 레인>이라는 작품. 진 캘리 주연으로 유명한 영화다. '사랑은 비를 타고' 주제곡은 아직도 그의 목소리를 타고 라디오에서 종종 흘러나온다. 그런 명성에 힘입어 뮤지컬화 되었다. 그것도 무대에서 비를 뿌리는 혁신적인 무대장치와 함께. 그런데 쫄딱 망했단다. 아무리 잘하는 배우가 무대에서 첨단시설의 혜택을 입고 연기를 해도 진 캘리의 정서를 그대로, 또는 능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완전히 다르게 했다면 몰라도.


비 내리는 무대 궁금하겠다. 영화도 아니고 외부도 아니고 극장 안 무대에서 진짜 비가 내린다고? 오 교수는 이 부분 이야기를 하다가 한 마디 덧붙였다. 이 작품에 대한 리뷰가 여러군데서 실렸는데, 딱 한마디, '진짜 무대에서 비가 내린다'만 핵심 키워드였다고. 배우들 연기가 어떠니, 작품이 어떠니 별 언급이 없었단다.


80년대에는 기존의 영화를 뮤지컬로 리메이크한 작품이 많았다고. 뮤지컬 <페임>도 그중에 하나. 이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진 지 10년 만에 뮤지컬로 만들어졌는데, 영화의 한 장면, PA예술학교 애들이 도로 위 자동차 위에서 굴리며 페임 노래와 춤을 하던 장면, 그게 아주 인상적인데 실제 무대 위에선 그 장면을 어떻게 연출할 수가 없으니... 결국 영화만큼 성공하지 못했다는 얘기.


오페라의 유령을 보자. 미국 브로드웨이에 가면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이 여러 수십 개의 버전이 있단다. 수많은 극단에서 소설을 각색해 무대에 올리니 모르는 사람이 가서 본다면 엉뚱한 작품을 감상하게 될 수도 있다고. 잘 골라야 실망하지 않는다는.


<노트르담 드 파리>라는 작품 역시 많은 버전이 있단다. 다 소설만큼의 감동을 무대에 실을 수가 없다 보니 많이 실패하는데, 디즈니에서 만든 것조차 실패. 그런데 딱 하나 프랑스에서 만든 것, 그거 하나 히트를 쳤단다. 음악을 제대로 만들어서.



<미스 사이공>은 어쩌면 첨단 무대 테크놀로지의 결정체다. 이 작품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병사와 베트남 아가씨에 대한 이야기다. 노래 중에 '아메리칸 드림'이란 게 있다. 미국에선 대머리도 자랑하는 곳 등등 아메리칸 드림은 왜곡된 환상이라는 등. 미국도 베트남도 껄끄러운 이 작품은 다름 아닌 영국에서 만들었다. 처음엔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으나 지금 브로드웨이 히트작품이라고.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히트를 쳤던 작품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참, 첨단 무대기술! 무대에 헬리콥터가 등장한다고. 그냥 무대장치로 서 있는 게 아니라 착륙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대체 어떻게? 크레인을 활용해 헬기 앞부분을 매달고 헬기의 기울기는 컴퓨터로 제어해서 움직이게 했다고. 와! 세상에. 아시바에 합판 붙여 색칠하고 밀어서 공연하던 때와는 완전 격세지감이다. 그러면... 돈없는 극단 우짜라꼬?!


영국이 이렇게 뮤지컬로 히트를 치자 미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월트 디즈니가 <미녀와 야수>로 출사표를 딱 꺼내 든 것이렷다. 애니메이션으로 성공을 거뒀던 작품이라 아이들에게 얼마든지 호감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인데다 이 뮤지컬 작품이 공연무대인지 애니메이션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완벽히 애니메이션과 동일한 싱크로율을 보였단 얘기. 게다가 공연을 애가 좋아한다고 애만 보나? 하다못해 엄마나 아빠가 따라가 볼 것이고, 애가 하나면 모르겠는데 둘 셋 되어봐. 한 번 공연 보는데 최소한 80만 원. 그러니 제작사 대박 터뜨린 거지.



그런데 90년대 뮤지컬 대부분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애니메이션 콘텐츠로 대박을 이룬 디즈니가 성인뮤지컬 <아이다>, 작곡가 베르디의 '아이다'로 유명한 이 작품을 호기롭게 제작했는데 실패! 이유가 지금의 우리로선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데, 남녀 주인공이 키스하는 것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장면이라고. 왜? 남자는 백인이고 여자는 흑인이거든. 당시 미국의 정서가 그랬다는군.


'아이다' 이 작품 우리나라에선 옥주현이 선탠하고 흑인 연기를 했는데 이젠 이런 식의 설정은 먹히지 않는 시대라는 게 오 교수의 말. 누굴 예로 들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예를 들자면, 블랑카가 "사장님, 나빠요!" 하는데 한국 사람이 동남아 사람처럼 흉내 내지 말고 동남아 사람이 와서 직접 연기를 해야 먹힌다는 것이다. 일리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요새는 무대도 자막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외국어 못 알아듣는 거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음.... 고민해야 할 부분이 생겼는걸.


뮤지컬 계도 최근으로 오면서 작품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다고. 1996년 <렌트>라는 작품은 에이즈로 죽어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당시 크게 히트를 쳤지만 지금은 한물간 작품으로 리메이크도 하지 않는다고. 대신 <사운드 오브 뮤직> 이런 작품들은 그렇게 오래되어도 계속 공연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클래식의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 클래식은 인간의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문제를 다룬 것. 그런 작품이 오래 산다고. 하긴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오늘날에도 계속 재생산되는 것을 보면...


뮤지컬의 기원이 여러 쇼를 무대에 올려 스토리를 꾸민 것이라고 한 것처럼 음악을 묶어서 스토리를 만들고 제작된 작품이 있다. <맘마미아>, 아바의 노래를 엮어서 뮤지컬 작품을 만들었다. 노래의 대부분 가족과 사랑이어서 스토리를 꾸미기도 쉽다. 그래서 성공한 케이스다.


그룹 퀸의 노래도 이처럼 뮤지컬로 제작된 게 있는 데 실패. 이뿐만 아니라 대부분 노래를 가지고 스토리를 엮어 뮤지컬을 만든 작품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2000년대 뮤지컬은 단연 첨단 테크놀로지 무대가 핵심으로 여겨질 정도다. 음향이든 무대든 조명이든 또는 여러 기술적인 요소든 첨단기술에 의한 화려한, 깜짝 놀랄 정도의 작품이 아니면 관객은 심드렁해질 뿐이다. 그런데 기술은 어마어마하게 발전했는데 소재의 고갈로 뭐 재미있는 작품이 없다는 것이 오늘날 뮤지컬 계의 딜레마다.


그래서 지금은 창의적 문화콘텐츠가 핵심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콘텐츠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부각한 것이다. 조앤 롤링의 작품 <해리포터> 시리즈 '저주받은 아이'가 무대화됐다. 강력한 스토리에 화려한 마법이 무대에서 펼쳐지니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공연이 뭐? 총 5시간짜리라고. 한 번 보려면 80만 원 기본인데... 그래도 영국에선 표를 구하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있단다. 세상 참. 이런 작품 하나 만들어보면 소원이 없겠다.


끝으로 디즈니의 <라이온 킹>을 감상했다. 화면을 보고서 깜짝 놀랐다. 배우들이 어떻게 동물을 묘사하는지 보고선 어떻게 저런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수 있었을까 했는데... 일본의 분라꾸(文樂)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라이언킹 영상을 집에서 다시 찾아봤다. 선명한 영상으로 가까이서 보니 실감이 더 난다. 캡처한 화면 추가





아무리 일본의 문락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고 하지만 정말 아이디어 응용력이 대단하다. 앞으로 작업할 연극에도 충분히 아이디어 자극제로 참고할 영상이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오세준 교수 첫 마디. 지난 주 영암 다녀와 백제 영웅 왕인박사 뮤지컬 공연해. 요즘 지역 스토리텔링을 뮤지컬, 연극으로 만드는 일이 많다. 지역의 스토리를 후손에 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방송에 뮤지컬 배우 뽑는 오디션 보고 뮤지컬이 이만큼 인기가 있구나 싶어 흐뭇.


지난 시간, 예전의 잡탕 쇼가 어떻게 뮤지컬로 모양새를 갖춰 가는가를 봤다.



쇼보트. 지난 시간 세계의 뮤지컬은 이 쇼보트를 전후로 나뉜다고 이야기했다.


이 시기 핵심 인물이 지그펠드다. 


지그펠드 폴리스  - 이것 저것 있던 쇼에 스토리를 집어 넣어 스토리가 있는 쇼를 만들어 놓은 작품. 스토리를 먼저 만들고 쇼를 배치. 드라마 진행을 위해 일정 쇼를 포기할 수도 있다.


쇼보트에서부터 뮤지컬에 대본이 생겼다. '북 뮤지컬'.


완성시켜나간 사람은 조지 거쉬윈. <포기와 베스> https://www.youtube.com/watch?v=O7-Qa92Rzbk

이 작품은 초기 작품임에도 뮤지컬 형태를 잘 갖춘 뮤지컬. 이 작품, 오페라단이 많이 공연한다고. 재즈 오페라. 뿐만 아니라 뮤지컬 컴퍼니에서도 많이 다뤄. 1935년 작품.




현재의 뮤지컬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작품. <오즈의 마법사> https://www.youtube.com/watch?v=EHgDzBWJp_s

주디 갈랜드의 노래  'Over The Rainbow' 컬러로 만든 영화인데 왜 흑백 영상일까? 오즈로 가기 전은 흑백, 오즈에선 컬러. 또 돌아오면 흑백.


영화가 먼저고 한참 뒤에 뮤지컬 버전이 많다. 브로드웨이 42번가. 42년 영화인데 80년대 넘어 뮤지컬로 제작. 


영화 이후 뮤지컬이 굉장히 빨리 발전해. 왜 그럴까? 영화를 보러갔더니 배우가 노래를 해. 흑인광대 역할을 했던 짐크라운. 토킹픽처. 유성영화. 이후 유성영화의 대부분은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라 할 만큼 쾌속 발전했다.


40, 50년 시기 미국의 성장. 더 큰 힘이 필요. 힘을 합치면 악당을 물리칠 수 있다며 여러나라에 홍보. 미키마우스도 그렇다. 작은 쥐들이 힘을 합쳐 큰 개를 물리치는... 톰과 제리도 마찬가지. 이런 작품들이 미소 냉전체제에서 만들어진 상징성을 나타낸 작품들.


로저스 앤 해머스타인이 만든 작품. <왕과 나>(1951) <사운드 오브 뮤직>(1959) 등. 


에델바이스는 오스트리아 민요가 아니라 R&H가 만든 노래다.


<왕과 나>, <사운드 오브 뮤직>만 두고 이야기하자면. 

왕과 나, 태국. 열강의 식민지화 시대. 태국이 끝끝내 버틴 나라. 서구 지식을 자식에게 가르쳐야겠다 해서 영국 가정교사를 초청. 교육 중에 눈이 온다는 것을 가르치자 왕과 티격태격. 태국에 무슨 눈이냐며. 사사건건 부딪히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게 되고 화합한다는 내용.


<사운드 오브 뮤직>. 나치의 오스트리아 점령. 장교와 가정교사 사사건건 부딪혀 그러다 둘은 결혼. 자유를 향해 탈출. 이런 게 미국에서 필요했던 가치.


작년에 공연했던 <사운드 오브 뮤직>을 이렇게 배우니 감회가 새롭다.


오클라호마 https://www.youtube.com/watch?v=NfKPncOoj9g



1962년 한국에 개봉. R&H의 대표작품.


<왕과 나>의 메인 OST. 샬위 댄스. 데보라 카와 율 브리너가 춤을 추는 명장면.

https://www.youtube.com/watch?v=walnPziAmD8


이 작품을 사랑으로 풀었으면 재미 없었을 수도 있었는데 우정으로 풀어 성공한 작품. 실제의 일을 영화화한 작품.


다음은 <사운드 오브 뮤직>.


폰트랩 대령은 뮤지컬 배우보다 탤런트를 많이 써. 키 크고 잘생긴. ㅎㅎ. 노래는 에델바이스밖에 안 부르니까. ㅋㅋ 그런데 작년 우리 공연은 성악가가 맡았는데. 폰트랩의 친구 


1957년 신데렐라는 언니들한테 당하는 그 신데렐라가 아니다.


12시. 신데렐라는 왕자에게 신을 벗어 전달한다. 그렇게 여성의 상이 바뀌었다. 그 시대적 변화를 표현했다. 그냥 단순한 옛 이야기를 변해가는 시대상에 맞춰 표현. 영상 찾아볼 것. 핸드폰 전원이 나가는 바람에 ㅠㅠ 배터리 충전해놓고 올걸. 리바이벌해서 만든 작품이라는데 무대 기술이 상당하다.


프랭크 로써와 에이브 버러우스. <아가씨와 건달들> 80, 90년대 한국서 돌풍. 빅 히트 뮤지컬. 김지숙, 윤석화 등이 출연한 작품. 오세준 교수도 출연했다고.


영상. 말론 브란도, 프랭크 시나트라 출연. 청교도 정신이 발동했을 때 도박꾼들 이야기를 다룬 작품. '행운의 여신' 말론 브란도가 부르는 노래. 말론 브란도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보니 어색하다. ㅎㅎ. "락 비어 레이디 투나잇"


아가씨와 건달들에 프랭크 시나트라가 출연했다는 것 오늘 알게 됐네. 




https://www.youtube.com/watch?v=9DpGDZjR5oc


레오나르도 번스타인.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지휘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만들어. 여기서 성공해 번 돈으로 줄리어드 스쿨을 만들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당시 상황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 화이트와 유색인종 패거리들 간의 싸움을 다룸. 


나탈리 우드 말 "제 손이 차요." 두 손을 잡는다는 표현이 많이 나와. <왕과 나>에서도 손 잡는다는 말이 많이 나와. 태국은 허리를 숙이는데 영국은 악수. 엇갈리는 장면 웃겨. '투나잇'이라는 노래 감상. 나탈리 우드 노래. 두 패거리 만나기 직전까지의 장면.


멜로디 하나에 많은 장면들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표현기법. 번스타인이 만들어. 


기성세대에 항변하는 내용.


마이 페어 레이디. 오드리 햅번. 귀족 언어학자가 천한 신분의 아이 귀족 부인으로 만드는 과정. 


40, 50년대를 뮤지컬의 골든 에이지라고 한다.


60, 70년대 엄청난 이벤트가 벌어진다. 베트남 전쟁. 포스트 모더니즘이 생긴다. 전과는 다른 음악. 락 음악이 나와. 비틀즈. 이게 무대 위로 올라온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