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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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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에서 오는 보도자료는 담당자가 없거나 딱히 기사로 실을 거 아니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인데 건강가정지원센터의 보도자료는 왠지 내 블로그를 통해서라도 알려야 하는 어떤 의무감 같은 게 있다. 7년간의 인연 때문이겠지.


이런 단체의 활동가 보수교육은 중요한 프로그램 중의 하나다. 활동 지식도 지식이려니와 대민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교육이 없다면 3년 버틸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이들의 활동이 편안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경을 써야할 게 너무 많고 자신의 마음을 비워야 할 일도 무수히 많기 때문에 늘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슆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런 활동을 하늘이 내려준 사명이라고 여기며 몸을 맡기는 활동가도 많다마는...


아... 보도자료. 그대로 옮긴다.


경상남도건강가정지원센터(센터장 홍성호)는 이번 5월 17~18일(총 16시간) 통영 하나로마트 죽림점과 양산 문화예술회관, 두 곳에서 경남도내 아이돌보미 약 200여 명을 대상으로 ‘2018년 5월 경상남도 아이돌보미 보수교육’을 한다.


아이돌보미 보수교육은 기본과정 8시간, 특화과정 8시간 총16시간에 걸쳐 아이돌보미의 역할, 가정에서의 응급처치, 영·유아놀이지도 등 아이돌보미로 활동하는데 유익한 이론 및 실습으로 이루어진다.


이번 경상남도 아이돌보미 보수교육에서는 경남도내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총 200여명의 아이돌보미가 전문성 및 역량강화를 위한 보수교육을 수료할 예정이다.


한편, 아이돌봄 지원사업은 여성가족부 · 경상남도 지원으로 부모의 맞벌이 등의 사유로 양육공백이 발생한 가정의 만 12세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아이돌보미가 찾아가는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여 부모의 양육부담을 경감하고 시설보육의 사각지대를 보완한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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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은 서울에선 일 년에 두세 극단에서 공연할 정도로 인기 있는 작품.


1943년에 초고를 써서 1년가 수정. 44년 모스크바예술극장 배우들에게 헌납. 스타니슬라브스키가 초연. 두 사람은 문학, 예술적으로 20년간 함께 모스크바예술극장을 이끌어.


제정러시아시대. 당시의 사랑과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등장인물들.



시놉시스.


광활하고 아름다운 벚꽃 동산의 여지주 라네프스카야는 5년간의 파리 생활을 청산하고 백야가 눈부신 5월에 벚꽃동산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농노해방과 지주의 몰락으로 벚꽃동산은 빚더미에 올라 이자를 갚지 못하면 경매 처분될 위기에 놓인다.


상냥하고 너그러운 라네프스카야의 인품에 과거 농노시절 위로를 받았던 신흥재벌 로파힌은 빚더미에 오른 라네스프카야를 위해 벚꽃동산을 별장지로 임대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라네프스카야와 그녀의 오빠 가예프는 과거의 행복했던 추억이 담긴 벚꽃동산이 훼손되는 것을 원치 않아 로파힌의 제안을 거절하고 결국 벚꽃동산은 경매에 붙여지게 되는데..


한편 베쨔와 아냐는 서로 사랑에 빠지고, 라네프스카야의 수양딸인 바랴와 로파힌이 낙찰받게 되고 라네프스카야의 가족들은 모두 흩어지게 되는데 마지막 날까지 바랴는 로파힌의 청혼을 받지 못한다.


모두가 흩어져 떠나고 남게된 늙은 하인, 피르스만이 어디로 향하지 못하고 집에 남아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



1막 감상. 연출가는 장면 하나하나에 숨어있는 의미들을 찾아 만들었다. 아주 사실적 표현.



템포가 빠른 다른 작품. 2000년 제작. 영상은 시간 내서 유튜브 통해 검색해봐야겠다.


이 작품은 앞에 본 것보다 확실히 속도감이 있다. 연출에 따라 표현방법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벚꽃동산>은 총 4막의 희극이다.


"벚꽃동산을 통해 러시아 귀족 사회가 몰락하던 혼돈의 시절, 기존 가치들이 붕괴하는 가운데 불안한 삶을 지속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도도한 세월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인간 군상의 이야기로 안톤 체호프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발견되는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면. 건물이 무너지는 상황 묘사.


영상은 2000년 중후반에 제작한 작품. 러시아에서 작품을 했던 연출이 한국에 강의왔을 때 받은 영상. 아, 그러면 유튜브에 없을 수도 있겠군.




극작가는 소설과 달리 인물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지 않는다. 30~40퍼센트 준다. 인물에 대한 분석은 연출가에게나 배우에게 매우 중요하다. 논리적으로 분석해서 무대화해야 한다.


배우가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는 무대 위에서 배역의 행동을 정확하게 옮기는가에 있다.


스타니슬라브스키는 그래서 연기술을 연구했다. 


체호프 작품을 보면 .... 대사와 대사 사이 뜸을 들이는 장면이 많다. 이런 잠깐의 정적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었다는 얘기.




애기방 공간에서 소품들을 논리적으로 갖춰야 동선을 설정할 수 있다. 장롱, 세면대 거울, 탁자, 의자 등등. 


애기방의 요건은 어떤 게 있을까. 조용해야 한다. 환기가 잘 돼야 한다. 창문이 여러개 있어야 하고 커튼이 있어야 한다. 창문이 많다는 것은 밖을 볼 수 있다는 것. 애기방을 만들 때는 건축학 상의 특성을 고려해 무대를 꾸며야 한다.


첫 장면의 연습은 이런 상황을 갖추고 시작해야 한다.


왜 로빠힌과 두나샤는 이 방에 들어오는가? 


두나샤 : 두 시쯤 됐어여. (촛불을 끈다) 벌써 날이 밝았네요.


이걸 어떻게 날이 밝다는 것을 표현할 것인가. 촛불을 끄는 것만으로? 창문의 커튼을 제쳐 날이 밝았음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다면 왜 로빠힌이 두나샤를 애기방으로 데리고 왔는가? 창문이 있고 2층인 애기방에서 멀리 기차역을 보기 위해서.


두 사람이 같이 등장한다. 이전에 이 두사람은 같은 장소에 있었나, 다른 장소에 있었나?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부족하다. 두 사람이 손에 든 소품을 보면 알 수 있다.


로빠힌은 책을, 두나샤는 촛불을. 서재에 있던 로빠힌이 두나샤를 찾아서 데리고 애기방으로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로빠힌은 현재 시각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은 그동안 자고 있었다는 것이 설명됨.


이 장면에서 두나샤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로빠힌은 기차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나? "지금 몇 시야?" 기차는 12시 도착해야 하는데 기적소리는 두 시간이 지나 들렸다. 이 집은 기차역과 가까운 거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적소리에 이집 식구들을 다 깨웠다. 그 소리에 놀라서 로빠힌은 두나샤를 찾아 헐레벌떡 뛰어왔다.


12시에 도착할 마님을 마중나가기 위해 가족들은 모두 역으로 이미 갔고 로빠힌은 자고 있었다. 로빠힌은 11시 이전에 이집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다.


마님이 로빠힌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로빠힌의 대사를 통해 알 수 있다. 로빠힌은 아주 바쁜 사람이다.


로빠힌이 입고 있는 옷과 신발은 마님을 만나기 위해 갈아입은 것. 아버지가 이집의 농노였기 때문에 하녀 두나샤를 이미 알고 있는 사이다. 지금은 신흥재벌로 신분 상승을 이루었지만 그런 관계를 통한 상황 설정이 필요하다.


신분 상승을 이뤘지만 태생을 감출 수 없기 때문에 콤플렉스를 느껴 서재에서 책을 꺼내 보지만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고 재미가 없다. 하루 일과가 아주 바쁜 자신. 그리고 책을 보자 잠이 들어. 이것도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는 부분.


두나샤는 방에 들어와서 무엇을 하는가? 로빠힌이 과거 이야기를 하며 화려한 대사를 하게 되는데, 이 상황에서 두나샤는 무엇을 하고 있나? 치장을 한다. 자신의 의무를 다 마쳤기 때문에 일을 할 필요는 없다. 두나샤는 자기 방 아니면 아냐 방에서 하루종일 이옷 입었다 저옷 입었다 하며 5년만에 오는 마님을 어떻게 맞이할까 흥분한 상태에서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이 방에서 절대 하녀로서의 일을 하지 않는다.



로빠힌이 장문의 독백을 하고 있을 때에는 두나샤도 내면의 독백을 하고 있어야 한다.


두나샤는 무슨 소리를 들었기에 "어머 벌써들 오시나봐요"라고 했을까. 그런데 로빠힌은 또 무슨 소리를 듣고 아니라고 부정했을까.


로빠힌이 잠을 자버린 것에 대해 자책하고 있으며 괜히 두나샤를 질책하고 있다. 


무슨 소리? 개 짖는 소리. 그래서 오나 보다 생각했다. 두 사람이 똑 같이 개 짖는 소리를 들었는데 왜 각각 반응이 달랐을까? 두나샤는 개 소리를 듣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두 사람의 심리적 상황을 놓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두나샤는 손이 떨려요, 어지러워요, 개들도 밤새 잠을 자지 않았어요. 이런 대사를 보면 감정이 아주 들떠있는 상태. 그래서 개짖는 소리에 온다고 생각했다.


로빠힌은 역에 가서 맞이하지 못한 것을 자책한 상황. 차분하게 자신을 생각한다. 로빠힌은 개소리와 역의 상황을 봐서 30분 정도 지체하였는데 벌써 도착했을 리가 없다.


로빠힌은 왜 회상에 빠지게 되었는가? 로빠힌 입장에선 무엇이 절실했기에 이렇든 장문의 독백을 했을까? 로빠힌이 보는 카메라 앵글을 보면 된다. 클로즈업. 5년동안 살면서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과거를 회상하며 부인의 현재 모습을 그려보려고 시도한다고 해석. 5년 지난 지금의 부인 모습이 떠오르지 않아 장문의 대사를 하고 있다고 해석.


이 작품은 몇 개월씩 연습해야 가능한 작품. 인물 분석, 장면 분석 하나하나 세밀하게 들어가야 제대로 된 작품이 무대에 올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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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경남지역 연극


그전 통영 지역에서는 1965년 한국연극협회 '충무29지부'가 인준되고 허창언을 주축으로 하여 '춘추극회'가 생겨났다. 하지만 허창언의 타계로 5년 만에 문을 닫고 실질적으로 통영연극은 긴 공백기를 거친다.


그 와중에 1975년에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강수성 씨의 희곡 <소리>가 당선되었다. 197912월에는 청년들의 소인문학 서클인 '충무독서회(물푸레문학동인회 전신)'가 '향토문학회관' 건립기금 조성을 위하여 봉래극장에서 유치진 작, 최성찬 연출의 <통곡>을 공연하였으며, 198012월에 강수성 작·연출의 <소리>를 공연하기도 했다.


한국연극협회 충무지부의 2(7911~801231) 지부장으로 김우성이 임명되고 장현은 사무국장을 맡았다한동안 공백을 보이던 통영연극계는 1981년 장현을 주축으로 장영석, 김윤일, 김철규, 박연주, 허동진, 지태건 등이 뜻을 모아 극단 '벅수골'을 창단해 <토끼와 포수>를 시작으로 하여 통영지역 연극의 맥을 잇는다.


1970년 진주지역에선 동호회 모임이었던 텔스타가 극단으로 재정비하고 <종점을 달리는 사람들>(손정수 작)을 이희대 연출, 이상훈, 김진희 출연으로 '로타리 다방'에서 공연되었다. 1973년에는 극단 '청년들'이 창단되었는데, 김재호 연출로 <종점을 달리는 사람들>이 무대에 올랐다. 1974년에는 경상대학교에서 극예술연구회가 조직되었고 김희창 작 방성진 연출로 <비석>을, 윤대성 작 <출발>, 김지현 작 <상방> 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또 방송연맹 진주시지부 주최로 이항구 작 이희대 연출로 반공극 <산하는 다시 푸르러지리>를 손창극 기획으로 공연되기도 했다. 이 해에 이희대, 조희래, 모왕갑, 손정수, 김용구, 황금, 서영수 등 17명의 동인이 모여 극단 '현장'을 창단했다.


극단 처용랑은 새마을운동 위안공연으로 김일환 작 <닭이 울 때>를 무대에 올렸고 제25회 개천예술제에는 경상대극회가 김지현 작 <상방>으로 참여하는 등 다수 극단이 참가했다.


1976년에는 극협진주지부가 10년 만에 임원진을 전면 개편하고 새집행부를 출범시켰다. 지부장 이희대, 부지부장 이창식, 감사 이길성, 손창근, 사무장에 박우희로 구성됐다.


이 시기 밀양에서는 사실상 해체됐던 극단 메들리가 긴 공백기를 끝내고 다시 맥을 잇게 된다. 1971년 김용식 연출 <용감한 사형수>를 계기로 강민수, 최전, 권길한, 신말선, 조인숙, 안명애, 김종웅, 이용주 등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76년 10월에는 지금의 한국연극제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새마을연극경연대회에 경남 대표로 선정돼 윤조병 작 김용식 연출 <꽃 보라>를 국립극장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1978년에는 메들리의 창립멤버였던 손경문이 돌아와 이근삼 작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를 연출하고 이후 손경문은 <이수일과 심순애> <산국>을 비롯한 많은 작품을 지도하고 연출해 밀양 연극을 활성화했다.


1970년대 마산 연극


1971년부터 마산연극계는 대학극이 활성화되었으며, 당시 마산대학(현 경남대학교)의 영문과 교수였던 한기환과 연출가인 한하균이 호흡을 경남연극의 지층형성과 발전맞춰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80년대부터 활발하게 경남연극을 이상용, 이종일최태황, 현태영 등이 이들의 영향 아래 있었다. 이 때 이들이 자주 드나들던 '전봇대 살롱'(현 경남맨션 뒤)은 한기환이 제자들과 함께 극을 논했던 토론장의 역할을 했다. 특히 1972년에 지어진 경남대학교의 완월강당1980년대까지 주 공연장 역할을 하면서 연극발전에 한몫을 했다.


한편 1972'재경 마산학우회'는 이상용 등이 중심이 되어 제2회 공연작품인 <허수아비>라는 단막극을 준비하고 있었다. 19723월부터 한기환은 원어연극을 시도했다. 이로 인해 대학극이 활성화되었으며, 한기환의 지도로 <안경>(포우 작, 한하균 연출, 19725, 19743), <우리시대>(이종일 연출, 197810) 등을 공연하였다. 또한 한기환의 제자인 이상용이 주축이 된 경남대 연극반은 19735월에 <부부>(유치진 작)를 이상용 연출로 공연하고 19746월에 <울타리>(한노단 작)를 공연하기도 했다.


19752월에는 마산카톨릭문화원 지하 백락다방에서 이상용, 유영원, 최덕선, 최정임 등이 주축이 되어 동인극회인 '마산데아트르'를 만들었다. 이들은 <공모살인>(김용락 작)을 이상용 연출로 공연하였으나 같은 해 6월 이상용의 군입대로 1회 공연을 끝으로 해체되고 말았다.


1976년에는 마산 출신으로 서울과 부산 등지의 타지 방에 가서 공부를 하던 신용수, 하영화, 신현숙, 강상훈, 김진식 등의 대학생들이 '마산학생연극회'(이하 '마학연')를 조직하여 <엘리베이트>(이재현 작)를 신용수 연출로 창립공연을 올렸다. 같은 해 5월에는 마산간호전문대학 연극부(이하 마간연)가 <재치를 뽐내는 아가씨들>(몰리에르 작)을 이종일 연출로, 같은 해 7월에는 경남대 연극부가 <강제결혼>(몰리에르 작)을 이종일 연출로, 같은 해 11월에는 <하멸태자>(셰익스피어 작, 안민수 번안)를 이종일 연출로 공연함으로써 당시 마산연극계를 대학극이 주도했다


19772월에는 마학연의 제2회 작품인 <보이체크>(뷔히너 작, 신용수 연출), 현태영 등 경남대의 학생들까지 합세하여 공연하였다. 갇은 해 5월에는 '경남대 극예술연구회'(초대회징 이윤도, 이하 경극연)가 출범하여 창립 공연인 <코르작과 그의 고아들>(엘빈 실바누스 작)을 이윤도 연출로 무대에 올렸다. 경극연의 이윤도를 비롯한 정석수, 장해근, 현태영, 최태황 등의 창립멤버들은 고춘호, 김윤희, 김윤자, 박유진, 송창호, 최현규김태성, 이옥희, 문종근, 김경선 등과 함께 마산연극계의 맥을 이어갔다.


19773월에는 정해완, 최덕수, 문성환 등 '마산MBC문화방송' 직원들이 주축이 된 '소극장77 연극동우회'가 창립되어 <토끼와 포수>(박초열을 끝으로 해체되고 말았다. 이들 중에서 정해완은 서울 '청포도극회' 출신으로 '불씨극회' 창립에 큰 역할을 했으며 성지여고에서 <논개>(이재현 작)를 연출한 바 있다. 같은 해 5월에는 마간연의 <나는 방관자가 아니다>(박현숙 작, 강인중 연출), 8월에는 마학연의 <태풍정보>(윌리암 작, 하영화 연출)가 공연되었다.



같은 해 9월에는 불씨극회가 창단되어 11월에 창립 공연으로 <철부지들>(톰 존슨 작, 신용수 연출)을 무대에 올렸다. 창립 당시 불씨극회(회장 신용수)의 주요 멤버들은 신용수, 조수잔나, 김경숙, 천석주 등이었으며 당시 마산 MBC문화방송 국장이었던 정해완과 경극연의 정석수, 현태영, 장해근 등이 창립을 도왔다.


불씨극회가 탄생함으로써 당시 마산연극계는 불씨극회와 경극연, 즉 기성극과 대학극이 양립하는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97711월에는 경극연의 <일요일의 불청객>(이근삼 작, 이윤도 연출), 12월에는 불씨극회의 <우리 읍내>(손톤 와일더 작 신용수 연출)가 각각 무대에 올랐다.






1979년 3월에는 경극연의 <향기>(윤조병 작 정효영 연출)와 불씨극회의 <단 한 번 거짓말 속의 영원한 사랑>(엘빈 실바누스 작, 신용수 연출)가, 5월에는 마간연의 <결혼>(이강백 작, 황정희 연출)과 경극연의 <만리장성>(막스프리쉬 작, 정효영 연출)이, 9월에는 불씨극회의 <결혼>(이강백 작, 김경수 연출)과 마학연의 <관객모독>(피터 한트케 작, 이윤도 연출)이 각각 공연되기도 했다.



<자료제공 : 문종근 객석과 무대 연출가>


그러나 아쉽게도 마학연은 <관객모독>을 끝으로 해체되고 말았다. 그해 12월에는 경극연과 불씨극회의 합동공연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작, 김동운 신용수 공동 연출)이 공연되었다 또한 동년 5월에는 이용우, 박낙원 등이 주축이 되어 극단 '세림기획'을 창단하여 전용소극장까지 두고 <서울 말뚝이> 등의 초청극과 <결혼>(이강백 작 이용우 연출), <고백>(김숙인 작, 강주리애 연출) 등의 작품을 '토요무대'란 이름으로 올리기도 했다.


이후 1982년 2월 이성국, 천영훈(천영형) 등이 침체국면을 맞은 극단을 부활시키려 세림상가 지하에 소극장을 만들어 재건하려 했지만 결국 <결혼> 공연을 끝으로 말았다. 


1980년 3월에는 경극연이 <우정>(필립뽀 작, 김동준 연출)을 마학연이 <산국>(황석영 작, 이윤도 연출)을 12월에 경극연은 <무덤없는 주검>(싸르트르 작, 현태영 연출)을, 불씨극회는 <철부지들>(톰 존스 작, 신용수 연출)을 각각 공연했다.

<경남연극 인물사1(경남연극협회 간) 자료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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