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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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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경남지역 연극


그전 통영 지역에서는 1965년 한국연극협회 '충무29지부'가 인준되고 허창언을 주축으로 하여 '춘추극회'가 생겨났다. 하지만 허창언의 타계로 5년 만에 문을 닫고 실질적으로 통영연극은 긴 공백기를 거친다.


그 와중에 1975년에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강수성 씨의 희곡 <소리>가 당선되었다. 197912월에는 청년들의 소인문학 서클인 '충무독서회(물푸레문학동인회 전신)'가 '향토문학회관' 건립기금 조성을 위하여 봉래극장에서 유치진 작, 최성찬 연출의 <통곡>을 공연하였으며, 198012월에 강수성 작·연출의 <소리>를 공연하기도 했다.


한국연극협회 충무지부의 2(7911~801231) 지부장으로 김우성이 임명되고 장현은 사무국장을 맡았다한동안 공백을 보이던 통영연극계는 1981년 장현을 주축으로 장영석, 김윤일, 김철규, 박연주, 허동진, 지태건 등이 뜻을 모아 극단 '벅수골'을 창단해 <토끼와 포수>를 시작으로 하여 통영지역 연극의 맥을 잇는다.


1970년 진주지역에선 동호회 모임이었던 텔스타가 극단으로 재정비하고 <종점을 달리는 사람들>(손정수 작)을 이희대 연출, 이상훈, 김진희 출연으로 '로타리 다방'에서 공연되었다. 1973년에는 극단 '청년들'이 창단되었는데, 김재호 연출로 <종점을 달리는 사람들>이 무대에 올랐다. 1974년에는 경상대학교에서 극예술연구회가 조직되었고 김희창 작 방성진 연출로 <비석>을, 윤대성 작 <출발>, 김지현 작 <상방> 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또 방송연맹 진주시지부 주최로 이항구 작 이희대 연출로 반공극 <산하는 다시 푸르러지리>를 손창극 기획으로 공연되기도 했다. 이 해에 이희대, 조희래, 모왕갑, 손정수, 김용구, 황금, 서영수 등 17명의 동인이 모여 극단 '현장'을 창단했다.


극단 처용랑은 새마을운동 위안공연으로 김일환 작 <닭이 울 때>를 무대에 올렸고 제25회 개천예술제에는 경상대극회가 김지현 작 <상방>으로 참여하는 등 다수 극단이 참가했다.


1976년에는 극협진주지부가 10년 만에 임원진을 전면 개편하고 새집행부를 출범시켰다. 지부장 이희대, 부지부장 이창식, 감사 이길성, 손창근, 사무장에 박우희로 구성됐다.


이 시기 밀양에서는 사실상 해체됐던 극단 메들리가 긴 공백기를 끝내고 다시 맥을 잇게 된다. 1971년 김용식 연출 <용감한 사형수>를 계기로 강민수, 최전, 권길한, 신말선, 조인숙, 안명애, 김종웅, 이용주 등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76년 10월에는 지금의 한국연극제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새마을연극경연대회에 경남 대표로 선정돼 윤조병 작 김용식 연출 <꽃 보라>를 국립극장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1978년에는 메들리의 창립멤버였던 손경문이 돌아와 이근삼 작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를 연출하고 이후 손경문은 <이수일과 심순애> <산국>을 비롯한 많은 작품을 지도하고 연출해 밀양 연극을 활성화했다.


1970년대 마산 연극


1971년부터 마산연극계는 대학극이 활성화되었으며, 당시 마산대학(현 경남대학교)의 영문과 교수였던 한기환과 연출가인 한하균이 호흡을 경남연극의 지층형성과 발전맞춰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80년대부터 활발하게 경남연극을 이상용, 이종일최태황, 현태영 등이 이들의 영향 아래 있었다. 이 때 이들이 자주 드나들던 '전봇대 살롱'(현 경남맨션 뒤)은 한기환이 제자들과 함께 극을 논했던 토론장의 역할을 했다. 특히 1972년에 지어진 경남대학교의 완월강당1980년대까지 주 공연장 역할을 하면서 연극발전에 한몫을 했다.


한편 1972'재경 마산학우회'는 이상용 등이 중심이 되어 제2회 공연작품인 <허수아비>라는 단막극을 준비하고 있었다. 19723월부터 한기환은 원어연극을 시도했다. 이로 인해 대학극이 활성화되었으며, 한기환의 지도로 <안경>(포우 작, 한하균 연출, 19725, 19743), <우리시대>(이종일 연출, 197810) 등을 공연하였다. 또한 한기환의 제자인 이상용이 주축이 된 경남대 연극반은 19735월에 <부부>(유치진 작)를 이상용 연출로 공연하고 19746월에 <울타리>(한노단 작)를 공연하기도 했다.


19752월에는 마산카톨릭문화원 지하 백락다방에서 이상용, 유영원, 최덕선, 최정임 등이 주축이 되어 동인극회인 '마산데아트르'를 만들었다. 이들은 <공모살인>(김용락 작)을 이상용 연출로 공연하였으나 같은 해 6월 이상용의 군입대로 1회 공연을 끝으로 해체되고 말았다.


1976년에는 마산 출신으로 서울과 부산 등지의 타지 방에 가서 공부를 하던 신용수, 하영화, 신현숙, 강상훈, 김진식 등의 대학생들이 '마산학생연극회'(이하 '마학연')를 조직하여 <엘리베이트>(이재현 작)를 신용수 연출로 창립공연을 올렸다. 같은 해 5월에는 마산간호전문대학 연극부(이하 마간연)가 <재치를 뽐내는 아가씨들>(몰리에르 작)을 이종일 연출로, 같은 해 7월에는 경남대 연극부가 <강제결혼>(몰리에르 작)을 이종일 연출로, 같은 해 11월에는 <하멸태자>(셰익스피어 작, 안민수 번안)를 이종일 연출로 공연함으로써 당시 마산연극계를 대학극이 주도했다


19772월에는 마학연의 제2회 작품인 <보이체크>(뷔히너 작, 신용수 연출), 현태영 등 경남대의 학생들까지 합세하여 공연하였다. 갇은 해 5월에는 '경남대 극예술연구회'(초대회징 이윤도, 이하 경극연)가 출범하여 창립 공연인 <코르작과 그의 고아들>(엘빈 실바누스 작)을 이윤도 연출로 무대에 올렸다. 경극연의 이윤도를 비롯한 정석수, 장해근, 현태영, 최태황 등의 창립멤버들은 고춘호, 김윤희, 김윤자, 박유진, 송창호, 최현규김태성, 이옥희, 문종근, 김경선 등과 함께 마산연극계의 맥을 이어갔다.


19773월에는 정해완, 최덕수, 문성환 등 '마산MBC문화방송' 직원들이 주축이 된 '소극장77 연극동우회'가 창립되어 <토끼와 포수>(박초열을 끝으로 해체되고 말았다. 이들 중에서 정해완은 서울 '청포도극회' 출신으로 '불씨극회' 창립에 큰 역할을 했으며 성지여고에서 <논개>(이재현 작)를 연출한 바 있다. 같은 해 5월에는 마간연의 <나는 방관자가 아니다>(박현숙 작, 강인중 연출), 8월에는 마학연의 <태풍정보>(윌리암 작, 하영화 연출)가 공연되었다.



같은 해 9월에는 불씨극회가 창단되어 11월에 창립 공연으로 <철부지들>(톰 존슨 작, 신용수 연출)을 무대에 올렸다. 창립 당시 불씨극회(회장 신용수)의 주요 멤버들은 신용수, 조수잔나, 김경숙, 천석주 등이었으며 당시 마산 MBC문화방송 국장이었던 정해완과 경극연의 정석수, 현태영, 장해근 등이 창립을 도왔다.


불씨극회가 탄생함으로써 당시 마산연극계는 불씨극회와 경극연, 즉 기성극과 대학극이 양립하는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97711월에는 경극연의 <일요일의 불청객>(이근삼 작, 이윤도 연출), 12월에는 불씨극회의 <우리 읍내>(손톤 와일더 작 신용수 연출)가 각각 무대에 올랐다.






1979년 3월에는 경극연의 <향기>(윤조병 작 정효영 연출)와 불씨극회의 <단 한 번 거짓말 속의 영원한 사랑>(엘빈 실바누스 작, 신용수 연출)가, 5월에는 마간연의 <결혼>(이강백 작, 황정희 연출)과 경극연의 <만리장성>(막스프리쉬 작, 정효영 연출)이, 9월에는 불씨극회의 <결혼>(이강백 작, 김경수 연출)과 마학연의 <관객모독>(피터 한트케 작, 이윤도 연출)이 각각 공연되기도 했다.



<자료제공 : 문종근 객석과 무대 연출가>


그러나 아쉽게도 마학연은 <관객모독>을 끝으로 해체되고 말았다. 그해 12월에는 경극연과 불씨극회의 합동공연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작, 김동운 신용수 공동 연출)이 공연되었다 또한 동년 5월에는 이용우, 박낙원 등이 주축이 되어 극단 '세림기획'을 창단하여 전용소극장까지 두고 <서울 말뚝이> 등의 초청극과 <결혼>(이강백 작 이용우 연출), <고백>(김숙인 작, 강주리애 연출) 등의 작품을 '토요무대'란 이름으로 올리기도 했다.


이후 1982년 2월 이성국, 천영훈(천영형) 등이 침체국면을 맞은 극단을 부활시키려 세림상가 지하에 소극장을 만들어 재건하려 했지만 결국 <결혼> 공연을 끝으로 말았다. 


1980년 3월에는 경극연이 <우정>(필립뽀 작, 김동준 연출)을 마학연이 <산국>(황석영 작, 이윤도 연출)을 12월에 경극연은 <무덤없는 주검>(싸르트르 작, 현태영 연출)을, 불씨극회는 <철부지들>(톰 존스 작, 신용수 연출)을 각각 공연했다.

<경남연극 인물사1(경남연극협회 간) 자료 발췌>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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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예비부모교육은 3~4년 전부터 경남건강가정지원센터가 관심을 갖고 추진하는 사업이다. 이 교육은 어릴 때부터 올바른 부모상을 알게 함으로써 건강가정의 확산에 기여한다는 큰 틀의 목적이 있는 사업이다. 2년 전이었던가 운영위원회가 열렸을 때 이 사업 내용을 보고받고 정말 잘한 사업이라고 강조한 적이 있었다.


경남에는 가부장적 성향을 가진 남자들이 많은데, 하물며 여성도 가부장적 성향을 많이 보인다. 특히 시어머니가 되고서부터. 이미 어른이 되어서 일가를 이룬 상태에서 가부장적 가정의 분위기를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아버지 교육을 몇 번 받아봤지만 그 약발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체화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가정에서의 평등 의식을 제대로 익혀 건강한 가정을 꾸리려면 청소년 시기에 제대로 된 인식을 몸에 배게 하는 게 상책. 


그런 차원에서 오늘 경남도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온 소식은 반갑기 그지없다. 보도자료를 인용한다. 




경상남도와 경상남도건강가정지원센터(센터장 홍성호)는 지난 8일 경남 도내 청소년들의 건강한 부모역할 인식 및 가족 친화적 경상남도를 조성하기 위해 김해제일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예비부모교육의 첫 시작을 열었다고 밝혔다.


최근 사회의 여러 변화와 함께 부모역할에 대한 책임의식이 약화되면서 계획되지 않은 임신·출산, 아동학대 등의 사회문제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아정체성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의 청소년들에게 바람직한 부모역할 인식을 위해 예비부모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에 발맞추어 경상남도(여성가족정책관실)와 경상남도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는 「경상남도 청소년 대상 예비부모교육」사업을 통해 도내의 중·고등학교 및 청소년복지시설을 방문하여 청소년들에게 부모됨의 의미, 배우자 선택과 결혼, 부모역할 연습 등의 주제로 올해 11월까지 예비부모교육을 진행하게 된다.


특히, 경상남도교육청과의 연계로 도내 청소년들에게 예비부모교육이 보다 많이 확산될 수 있도록 발판을 함께 마련하였다.


이날 예비부모교육에 참가한 청소년들은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어떤 아빠가 되어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경상남도 청소년 대상 예비부모교육과 관련한 문의나 신청은 경상남도건강가정지원센터(055-716-2354)로 연락하면 된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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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극단마산 이상용 전 대표가 운영하던 마산연극관 화재로 많은 연극 자료들이 소실됨.


76년 들어서 서울서 학교 다니던 마산 학생들이 돌아와 극단을 만듬.


불씨극단.


1977년 9월 불씨극회 창단공연. 철부지들(톤 존스작 신용수 연출)


79년 3월 17~23일. 5회 공연 <단 한 번 거짓말 속의 영원한 사랑> 가톨릭여성회관서 공연. 신용수 연출. MBC 기자로 들어가기 전까진 신용수 연출 지속.

당시 공연비용은 티켓 판매, 스폰서 받아. 스폰을 얻지 못하면 팸플릿 만들지도 못해. 배우들 개런티가 없었던 시절.

스태프. 강경윤 연출 김경수 등 불씨 2세대. 지금도 그렇지만 배우 스태프 구분이 별로 없다. 지역극단에선. 이 작품의 경우 팸플릿도 만들고 리플릿도 만들어. 




극단 불씨촌.경남대학 협동 공연. 1979년 12월 20일 3.15회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김동준 각색 신용수 김동준 연출. 뮤지컬 형태로 공연. 김동준 작곡. 주 관객층은 수출자유지역 노동자, 창원공단 노동자, 그리고 대학생들. 장기공연이 특징. 보통 한달. 약 2000명 관객이 들어.


불씨촌 9회 공연 1980년 10월 27일 3.15회관. 앙상블 뮤지컬. <철부지들>. 신용수 연출 신현수 작곡.





불씨촌 10회 정기공연 1981년 5월 10~11일. 코리스탈호텔 2층 연회장. <제임스 다이크> 정치적 작품. 저항. 해거름 찬조. 79년부터 해거름 있었을 것. 박경숙 연출. 


불씨촌 12회 정기공연 1981년 12월 18~20일 소극장 맷돌사랑. <시즈위 벤지는 죽었다> 나성호 연출. 흑인의 인권 문제를 다룬 연극. 이 작품도 자주 무대에 오른 주요 레퍼터리.


경남대극예술연구회


제9회 정기공연 <30일간의 야유회> 1981년 5월 16, 17, 20일 경남대완월대강당.  이근삼 작, 김동준 연출. 완월강당은 90년 초까지 대극장 공연을 소화한 유일한 극장.


10회 <느릅나무 밑의 욕정> 1981년 11월 27~29일. 완월대강당. 현태영 연출. 경남대극회 창립기수. 정석수. 이윤도.등. 배우들 좋았다고. 세트는 2층 구조물. 새벽 막걸리 먹고 있다가. 공사장 배회. 세트 위치이동 추억.


77년 1회... 연보 확인.


불씨촌 창작마당극 <이렇게 이렇게 우리 한 판> 이윤도 연출. 1982년 5월 8~10일. 소극장 맷돌사랑.

불씨촌 14회  <정복되지 않는 사람들>


송판호 극단 사랑방 창립멤버. 




극단 아롬. 이지훈 교수가 창단. 2회 공연 1982년 2월 26일~3월 16일 소극장 맷돌 사랑. <방> 83년도에 극단 무대도 창단. 이지훈 교수는 부조리 연극 전공. 사무엘 베케트 작품. 


마산연극협회에서 제작한 작품도 있어. 제4회 마산예총제 출품 <눈면 동생> 마산 여러 극단 참여. 조광래 연출 서울 예대출신. 극단 어릿광대 창단한 박낙원과 함께 서울예대 출신. 이때 마산연극협회 지부장은 한하균 선생.

송판호, 박영주 등. 객석 엄수 사항... 당시의 문화를 보여줌.




마산대학 극예술연구회 3회 정기공연 <삼중인격> 이용찬 작 우정진 연출.마산대 연주실. 


불씨촌 창립 6주년 공연. <슬픈 오렌지의 땅> 83년. <참새와 기관차> 12우러 4~5일. 


극단 무대 2회 공연 1983년 9월 10~11일. 예림카페. <유리동물원> 이지훈 연출. 2년 동안 극단 2개를 운영. 배우 현태영, 한철수 등.


경남대 <화가 이중섭>


경남대 14회 <할멈들의 발톱> 1983년 11월 26~27일. 완월강당. 성봉경 연출. 완월강당에 일주일 전 디오니소스 신에게 제사. 무대 동전 찾기(집중력 기르기) 선배들이 시켜. 못찾았다고 기수 밧따. 신입단원들 공포감에 싸여. 스태프와 치면 40명이 되는데 찜통에 라면을 끓여. 삼층익힘의 절묘한 라면을 먹게 돼.


제5회 마창예총제. 1983년 11월 4일부터.


국립극단 초청공연 <나래섬> 오태석 작 허규 연출. 초기 국립극단 멤버. 경남학생과학관 공연. 무용이나 행사에 많이 대관.


마산연극협회 예총제 <환도리스> 아라발 작. 포스트 모더니즘 극. 정통연극은 무대와 객석이 분리된 형태. 신비주의. 이게 사실주의 극이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극은 먼저 희곡을 허문다.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 무대는 텅 비어있다. 무대지문은 그게 끝. 노벨문학상 받고 미국 교도소에서 공연. 섹시한 작품이 오길 기다렸는데.. 웬? 웅성웅성. 10분 지나면서 던지고 난동. 30분 지나면서 조용해져. 자신과 똑같은 현상. 부조리, 인간의 단절된 상황 표현. 기찻길 구조. 1장을 4장에 끼워넣어도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다.



경남연극제 1983년 개최.


제2회 경남연극제 1984년 4월 3~4일. 극단 소리(이지훈)도 참여.


경남대극회 <모닥불 아침이슬> 1985년

극단 마산 <시즈위밴지는 죽었다> 제3회 정기공연.  보람의 집(합성동 시외버스 주차장 옆)서.

1985년 말 극단마산 멤버들 다시 모여 어디 정신과 강당에서 연습. 이 작품을 마치고 중부서 앞 세림상가 3층에 소극장 만들면서 왕성한 활동 시작. 김태성. 이 작품을 계기로 이상용 선생이 대표로 위촉.

<시즤위 밴즈...>는 85년 말쯤 추송웅 연극인 사망 추모작품으로 올려.


86년부터 극단마산, 불씨촌, 터전이 본격적 활동. 


불씨촌 25회 공연 <오해> 알베르트 카뮈. 우정진 연출. 이때 가톨릭 여성회관 지하에서 오동동으로 학문외과 건너편 2층에 소극장 불씨촌 둥지.



극단 터 24차 공연. 1986년 


창원전문대 극예술연구회 13회 공연 <전화>


극단 마산 <삼각파도> 경남연극제 처음으로 대상을 받은 작품. 경남연극제 나갈ㅈ때는 비구상 무대. 벌통세트가 허물어지는 장면 연출. 전국연극제 나가면서 정석수 "가포가니까 배가 있더라. 배 가져오면 어떠냐?" 뻘에 쳐박혀있는 배를 톱으로 세등분해 5톤 트럭에 싣고 대구로 고고. 덧마루 위에 얹으니 덧마루에 칠을 했으면... 이종일 "칠해라!" 공연 끝나고 지워주겠다. 하고 공연. 배는 또 어떻게 해? 일단 배우 마산 가라. 배를 야밤에 버리고 와. 얼마나 무식했나. ㅋㅋㅋ


소개한 작품 중에 <문밖에서>도 ㅋㅋㅋ 나도 없는 자료인데... 배우로 출연했던 작품이라... 괜한 눈쏠림. 부끄.


극단 마산 <위기의 여자> 김소정 주연작.

<메야 마이다> <사람의 아들> 

1989년 경남소극장축제 시작.

1993년부터 전극소극장축제로 발전.

경남 최초로 전국연극제에서 대통령상 수상작 <그것은 목탁구멍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문종근 연출.



다음 시간엔 <벚꽃동산> 작품분석으로. 와, 재밌겠다. *^^*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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