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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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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객석과무대의 문종근 예술감독이 제공해준 팸플릿 자료만으로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려 공유를 해왔는데, 정리작업을 하다 보니 부족한 게 많다는 것을 느꼈다.


공연 정보를 드러난 것들을 중심으로 엑셀로 정리하는 작업도 병행했는데, 여전히 완벽하지 못한 정보들이 많아 정보 체계를 완성시키기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2010년대 자료를 정리하면서 2010년 1월부터 신문(경남도민일보)에 게재된 공연 소식을 훑어봤다. 빠진 자료를 어느 정도 보충할 수 있겠다 싶으나 시간이 꽤 많이 걸리는 작업이이라 선뜻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어차피 해야 할 작업인 것 같구. 꾸준히 정보의 빈 공간을 메워나가도 보면 언젠가 완성본이 나오겠지.


2010년대 마산의 연극은 객석과무대의 활발한 활동으로 빛을 발한 시기인 것 같다. 대신 극단 마산이 중심이 되어 진행해가던 마산국제연극제가 예산지원의 중단으로 정지된 일은 안타까운 일이다. 게다가 지난해 2017년 이상용 대표가 운영하던 '마산연극관'이 화재로 기능을 잃고 폐관하게 된 점도 마산연극사에서 안타까운 일로 기록될 것이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1996년 3월 27일 경남연극제가 마산서 열렸다. 연극제가 마산서 열렸고 당시 나는 편집부 기자였음에도 공연을 본 게 하나도 없다. 잊고 지낸 시기였다. 생활의 사이클은 직장 동료와 얽혀 있었고 또한 직장 내 컴퓨터 동아리 회장을 맡아 일을 보던 터라 딴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연극제는 마산종합운동장 내에 있는 올림픽국민생활관 공연장에서 4월 6일까지 진행됐다. 이때 출품작을 보니 창작 초연작이 제법 눈에 띈다. 통영 벅수골 박용구 작 장창석 연출의 <계단 위의 거울>, 창원현대극장 황숙경 작 천영형 연출의 <파라다이스 호텔>, 거창 입체 이상용 작 이종일 연출 <흔들리는 항구>. 이 세 편이다.


박용구 작가는 만나 본 적이 없어 모르겠고 황숙경 작가는 현재 극단 상상창꼬에 같은 단원으로 있고 이상용 작가는 극단 마산 대표였고 현재는 경남연극계 어른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다.


황숙경 기자, 나는 그를 처음 만난 게 4~5년 전 기자로 처음 만났다. 그는 경남신문 기자였고 나는 경남도민일보. 당시 3.15아트센터에서 어떤 공연을 보고서였을 것이다. 그가 벌써, 이미 14회 경남연극제에 희곡을 써서 출품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김소정 감독이 숙경 씨를 높게 치는 이유를 알겠다.




사진으로 보는 역대 경남연극제(1983년~1995년). 아마 14회 경남연극제 팸플릿에 수록한 것일 텐데 이런 기획이 참 괜찮다 싶다. 창원대 극회도 올해 40주년인데 그동안의 공연 내역을 화보로 만들어 공유하면 좋겠다. 요새야 전자책으로 만들면 비용 거의 들이지 않으니 좀 좋아.


1983년 첫 연극제에선 통영 박수골이 이강백 작 장현 연출 <알>이 대상을 받았군.

84년 2회 땐 거창 입체 오태석 작 이종일 연출 <태> 연달이 한 글자 제목 작품이 수상했네.

85년 3회 또 거창 입체 이상용 작 이종일 연출 <징소리>.

86년 4회 극단 마산 이상용 작 현태영 연출 <삼각파도>. 이상용 샘은 왕성한 극작활동을 하셨군.

87년 5회 다시 거창 입체가 이종일 작.연출로 올린 <밀항선>이 대상을 먹었다.



제6회 경남연극제가 열린 1988년 대상엔 극단 마산 윤대성 작 현태영 연출 <노비문서>.

89년 7회 또 극단 마산. 최현묵 작 현태영 연출 <네야마이다>.

90년 8회 거창 입체 이강백 작 이종일 연출 <칠산리>.

91년 9회 진주 현장 이상용 작 방성진 연출 <진주성>. 진주성 이 작품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이때 나는 벌써 문화부 기자를 거쳐 사회부 기자로 있을 때군. 세월 빠르다. 내가 83학번이라 83년도에 경남연극제가 시작했다는 것을 잊어먹지는 않겠다.

92년 10회 거창 입체 김상열 작 이종일 연출 <님의 침묵>


대상 수상작의 면면을 보면 역사적 사건을 다룬 작품이 많다. 



1993년 11회 통영 벅수골 이강백 작 장창석 연출 <봄날>.

1994년 12회 진주 현장 이상범 작 조구환 연출 <마술가게>

1995년 13회 창원예술극장 현태영 작 연출 <실향기>



1996년 14회 경남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은 극단 마산의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이만희 작 문종근 연출)이 그해 전국연극제 출품돼 최우수상인 대통령상을 받았다. <경남신문>에서 문화면 전면을 할애해 소식을 실었군. 



내가 있던 <경남매일> 역시 상당 분량으로 기사를 실었다. 신입단원 모집 광고까지... ㅎㅎ





1997년 3월 1일부터 9일까지 열린 제15회 경남연극제는 거제에서 열렸는데, 공연장이 대우종합직훈다목적홀이다. 거제에 그렇게 공연장이 없었나 싶기도 하다.



극단 마산이 어린이 뮤지컬 <미녀와 야수>를 가지고 대전 대덕과학문화센터까지 가서 공연을 한 적이 있었네. 출연진을 보니 최성봉, 김재한, 김동원... 김동원 감독도 이때 함께 작업을 했었군. 



극단 마산의 <배비장전> 일본 공연. 



1997년 극단 마산은 제2회 마산국제연극제, 9회전국소극장 연극축제를 묶어 '97전국연극축제'를 열었다. 공연장은 마산올림픽국민생활관 공연장과 극단 마산 전용소극장, 로얄호텔 공연장 등 세 곳에서 진행했다.일본에서 두 팀이 참가한 게 눈에 띈다. 당시 로얄호텔에 연극 공연을 올릴 만한 무대가 있었나 싶기도 하다.



99년 5월 마산국제연극제를 개최하면서 팸플릿에 회수를 11회로 표기했다. 이는 소극장축제의 맥을 잇는다는 의미인가? 



그런데 그해 11월 전국소극장연극축제를 개최하면서 회수를 11회로 표기했다. 국제연극제와 소극장축제를 묶을 것인가 분리할 것인가 고민이 있었던 거 아닐까 추측한다. 조만간 이 부분은 이상용 선생이나 문종근 감독에게 연락해 확인을 해봐야겠다.


이 시기 나로서는 정말 바쁜 나날을 보냈던 때다. 98년 10월 경남매일이 폐간하고 이듬해 5월 경남도민일보를 창간하면서 그 과정이 참 많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에 있는 국제연극제 팸플릿엔 경남매일이 없고 아래 소극장축제 팸플릿엔 후원으로 경남도민일보가 들어갔다.





1999년 10월 극단 마산의 킬링 콘텐츠 <에쿠우스>를 문종근 연출로 마산MBC홀에서 올렸다. 마산MBC홀은 3.15아트센터가 생기기 전까지 연극 무대로 종종 활용되었다. 물론 더 일찍 성산아트홀이 생기면서 유사한 과정을 거친 KBS창원홀처럼 지금도 어린이 뮤지컬이나 가수들의 공연장으로 이용되고 있구.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내가 90년도부터 기자생활을 시작했으니 지금부터 나오는 팸플릿은 조금씩 익숙함도 있으리라. 물론 당시 문화부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고 사회부도 1년 가까이 있었으니 낯선 작품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1989년 12월 4일부터 2주 동안 마산연극사에서 의미있는 행사가 열렸다. '제1회 경남소극장축제'다. 이 축제는 나중에 세계축제로 승화하면서 인기를 얻었으나 2014년 26회 행사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 축제는 극단 마산이 주최가 되어 이루어졌다.


팸플릿에 후원 단체로 '남도일보'가 나오는 데 이 신문사는 이듬에 '경남매일'로 이름을 바꾸어 1998년까지 운영되다가 IMF 상황에서 부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폐간한 신문사다. 이곳에서 일하던 30명의 기자들이 도민주주를 모집해 만든 신문사가 오늘날의 '경남도민일보'다.


참가 극단을 보니 울산에서 3개 팀이나 된다. 하긴 기억을 되살려보니 당시 그 시기 언저리에 울산까지 가서 공연을 봤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엔 울산이 광역시 되기 전 경남에 속했던 때였으니. 그리고 진주 현장 작품 <출발>을 방성진 선생이 연출을 맡았다는 점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극단 마산은 문종근 감독이 <히바쿠샤>로 작품을 올렸다.



1990년 4월에 올린 제8회 경남연극제는 진주에서 열렸다. 주최 주관을 경남연극협회가 맡았다. 지금은 해당 지부가 주관을 맡는 것과 비교하면 조금 다른 형태다.



마산지부에선 두 극단이 참가했다. 마산과 터전. 터전은 민족극연구회가 대본을 쓴 <늪>을 김관수 씨가 연출을 맡았다. 김관수, 낯이 익은 이름인데... 사진작가 그 김관수 씨...



창원에선 극단 미소가 <한스와 그레텔>이란 작품으로 참가했다. 낯익은 얼굴이 제법 보인다. 천영형, 장은호, 고대호, 송춘화. 지지난 달 도파니아트홀에서 올린 <할배요>를 보고 뒤풀이 자리에서 송춘화 씨를 만났다. 1992년도에 보고 처음 본 건데... 어찌 그때나 지금이나 별 달라진 게 없으니... 



맞네... 김관수 작가. 기자 초년생 시절 몇 번 만났더랬는데... 그때 사진작가로만 알았었는데... 연극도 했었구나.



<대역인간>. 극단 마산의 43회 정기공연이다. 벌써 43회... 정말 활동 활발하게 한다. 이 작품은 긴해, 창원, 밀양, 거제로 순회공연했다. 등장인물에 아는 사람들이 또...ㅋㅋ. 김태성, 전영도, 김소정. 헉. 그런데 문현숙.... 굉장히 낯이 익은데...




극단마산이 어린이 뮤지컬을 당시 했었군. 입장료 2000원. 지금으로 치환하면 2만 원짜리겠다.<개구장이 스머프> 당시 장이와 쟁이 구분하지 않았던가? 장이는 전문직, 쟁이는 개구쟁이, 말썽쟁이, 심술쟁이 등 그런 전문직이 아닌 단어에 쓰는 말인디... 김태성 제작에 문종근 구성.연출. 문 감독이 어린이 프로그램도 많이 만들었었군. 사실 어린이 극이 돈은 좀 되지.



극단 마산 청소년 극장 제6회 공연. <불타는 별들> 제목에서부터 청소년극임을 알 수 있겠는데, 등장인물 중에 최근 지역 영화계 주요인물인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바로 <안녕, 투이> <오장군의 발톱>을 만든 김재한 감독이다. 1992년 당시 고등학생이었을 것으로 추정. 이렇게 얼굴을 보게 되니 디게 반갑구만.



1992년 4회 전국소극장연극축제. 경남에서 전국으로 영역 확장을 이루었다. 광주, 충북, 인천, 대전, 경기, 전남에 일본 팀까지 가세했다.



극단 마산은 <에쿠우스>로 참가했다. 이 작품은 본 기억이 난다. 출연진도 기억나는 얼굴이 많다. 권기희, 윤상화, 최용호, 김소정(당연하구), 김태성, 문현숙, 김종갑(역시. 며칠 전에도 만났으니) 이정도.



마산 간호보건전문대 극회 작품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 출연 인물 중에... 진경호 현 연극협회 마산지부장이... 이 학교 출신이었군. 내가 다른 대학 연극동아리와 교류하던 때가 1987년 즈음이라 당시 만났던 인물 중에 지금도 만나는 사람은 김종갑 씨 뿐일 것이다. 창전 출신인 그는 당시 종종 창원대 극회에도 놀러왔었다.



종갑 씨가 말 역할을 했구나.. 그러고 보니 그로부터 그 얘길 들었던 기억이 난다. 



93년도 벌써 <마술가게>. 작품 나온지 제법 되었구나. 현재 극단 상상창꼬가 이 작품을 한 번씩 올리는데 꽤 인기 있는 콘텐츠.



극단 마산 54회 <실비명> 1990년 4학년 때 창대극회에서 무대화했던 작품이기도. 언론사 시험공부한다고 정신 없는 와중에 배우 기근으로 허덕이던 극회 사정을 매정하게 뿌리치지 못하고 '당국자'란 배역을 맡아 '열연'. ㅋㅋ. 참 그때나 지금이나 바쁘게 산다.









6회 전국소극장축제엔 일본 팀 포함 10개 팀이 참여했다.참가 팀이 늘고 있다는 것은 예산 지원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 번> 우디 알렌 작. 문 종근 감독이 1995년 연출을 맡았구만. 사실 이 <카사...>는 내게 미련이 남는 작품이다. 88년도였던가... 워크숍 연출을 맡으면서 맨 먼저 이 희곡을 선정했었다. 블랙코미디라는 점이 우선 맘에 들었고 무대를 재미있게 설정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끌렸던 작품이었다. 그런데... 그놈의 '배우기근' 현상 때문에 등장인물 3명의 유진오닐 작 <몽아>(드리미 차일드)를 올릴 수밖에 없었으니. 참 박복도 하여라.



김재한 감독이 이때엔 헨리 역을 맡았구만. 시간을 거꾸로 가게 할 수 없나. 뮤지컬 연극이라는 이 작품을 꼭 보고싶은데... 




마산국제연극제 팸플릿을 유심히 보면 한가지 특징이 있다. 1회부터 20회까지 탈의 형상이 기본 디자인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하회탈에서 말뚝이로. 그런데 2년 3년 디자인이 변경되지 않고 유지되는 모습을 보게되는데... 왜 그랬을까 싶기도 하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지면이 안 돼서 못 싣게 되었다더니... 어디 다른 기사 펑크난 게 있나... 다른 기사들과 함께 보냈던 극단 객석과무대의 <락시터> 기사가 실렸다. 


기사는 지난 달 25일쯤 소식을 듣고 26일 내 블로그에 올렸더랬다. 그런데 오늘 인터넷판 잡지를 보니 실려있는 게 아닌가... 어쨌든 기념이니 블로그에 포스팅을 한다.



이 작품은 참 재미있게 봤다. 첫날 공연 땐 객석에 있다가 무대로 끌려 올라가는 호사도 누렸다. 나는 저~ 건너편에서 낚시하는 사람이 되었다. 오범하와 가재복이 서로 화해하고 라면을 끓여먹는데... 나눠먹자며 나를 초청한 것이다. 페이스북엔 그 사연을 올린 적 있는데... 


어쨌든 나는 가재복이 내가 있는 객석라인으로 걸어나오는 것을 보고 나를 선택할 것 같은 직감이 느껴졌다. 어쨌든 눈이 마주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객석 뒤쪽을 바라보며 걸어 오길래 지나가나 했다.


그런데 인기척은 내 옆에서 멈추는 것 같았다. 살짝 고개를 돌려 올려다 보니 나를 저승사자처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룬... "가시죠." 경찰서 연행하는 형사마냥 나를 인도한다. 무대에 있는 오범하에게 인계되면서 인사를 나눴다. 


가급적이면 객석을 신경 안 쓰려고 했다. 약간은 어색한 척. 지난해 경남연극제에서 극단 예도의 <어쩌다 보니>에 출연하게 되었을 때 신나게 함께 놀았더니 이삼우 감독이 너무 잘해서 짜고 했다는 오해를 받았다는 농을 들은 터라... 


내가 그날 점심과 저녁을 건너뛴 상태였다는 것을 눈치챘나 보다. 라면... 무대 위에서 진짜 연극을 하는 중에 라면을 다 먹어보고...게다가 진짜 소주까지. 웬 횡재냐 싶어 소주 3분의 2를 마셔버렸다. 세상에 객석에선 내가 술 잘마신다고 박수까지 치다니...


주당인 내가 술마시고 박수받기는 또 처음일세. 그랬던... 내 사연이 스민 재미있는 연극 <락시터>, <한국연극>지에 실린 공연 소식이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간혹 그런 생각을 한다. 1990년 10월부터 기자생활을 시작했으니, 그때부터 문화부 기자만 줄곧하면서 지금까지 내가 본 모든 공연의 팸플릿을 다 간직하고 있다면, 그 양이 얼마나 될까? 사실 지금도 회사 책상 집 책상 책꽂이 곳곳에 널브러진 팸플릿들. 그나마 버려지지 않은 아직까지는 이것들이 소중하다. 내 기억의 한 단편이기도 하고 언젠가 내 기억을 도와줄 훌륭한 친구이기도 하기에. 그런데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오래지 않다. 다다음달 이사라도 가게 되면 팸플릿 뿐만 아니라 5년 전 버리고난 후에 다시 또 모이기 시작한 책들도 버림받을까 벌써 떨고 있다. 그렇게 안산다 안산다 해도 책꽂이를 더 사야할 만큼 불었다. 책이란 게 참...



삼각파도는 극단마산으로선 중요한 의미가 담긴 작품이다. 창작극이기도 하거니아 이걸로 전국연극제까지 출품했기 때문이다. 이에 얽힌 일화도 재미있다. 무대엔 뻘에 박힌 배가 한 척 등장하는데.. 이 소품을 어찌 형상화하나 고민하다가 마산 바닷가에 못쓰는 배가 한 척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걸 그대로 무대에 올렸다는 후문. 공연중에 바닷게도 기어나오고 했다는데... 이정도면 웃지못할 에피소드다. 전국연극제 사상 이처럼 무식한 무대는 전무후무하다고.


극단 마산의 8회 정기공연 작품이 <임금알>. 일종의 선입견 같은 게 내게 있었나 보다. 창원대 극회도 이 작품을 창립 초창기에 무대화한 적이 있다. 동아리방 사진첩에 꽂혀있는 모습을 보니 무대가 썰렁하고 배우들의 포즈도 썩 매력적이지 못했다. 그래서였나 보다. 워크숍 용으로 연습삼아 공연할만한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게. 그래서였다. 지난 경남연극제 때 심사위원을 맡은 오태영 선생을 만났을 때 막 그렇게 신비감이 들지 않았던 것은. 그런데 오 작가와 함께 저녁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에...참  식당 밖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그의 개인사 에피소드를 많이 들었다. 작가가 되려면 이런저런 경험을 많이 해야되는구나 싶기도 하고... 제발로 빵에 들어간 이야기까지... 여하튼 <임금알>이란 작품이 어두운 시대적 환경에서 갑갑한 심정을 풀어내보고자 쓴 풍자극이라 다시금 기회를 봐서 읽어봐야겠다.



극단 마산의 제1히 청소년극장 <방황하는 별들>/ 윤대성 작 현태영 연출. 학창시절 좋아했던 작가다. 윤대성과 이근삼, 이강백. 이 세 작자 뭔가 유사성이 있는 듯하면서도 나름 색깔이 독특한... 방황하는 별들... 이 작품을 본 듯한데... 기억이 거의 안 난다.



<위기의 여자> 이 공연 봤다. 당시 창대극회 공연 <들소>를 마치고 여유가 있을 때였는 갑다. 주인공으로 등장한 김소정 현 상상창꼬 상임연출은 <들소> 끝나고 바로 극단 마산의 이 작품에 투입됐나 보다. 극단 활동에 별 관심이 없던 터라... 사실은 당시 연극을 하면서도 늘 취업시험 공부에 매달려 있었으니... 돌이켜 생각하면 당시 극단 활동에 눈을 돌렸어도 좋았겠다 싶긴 하다.



극단 창원의 2회 공연 <어떤 사람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때 벌써 극단 창원이 생겼었군. 극단 마산서 연출로 활동하던 현태영 감독이 창원에서 극단을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했던 때가 87년이었네. 한참 후인 줄 알았더니. 맞아, 이 시기 창원에 극단이 집중적으로 생겼던 것 같다. 극단 미소도 그렇고 부족도 그렇고...



1987년 경남대 21회 정기공연. <히바쿠샤>. 원폭 피해자들 이야기. 대체로 이 당시 극단이나 학생극의 소재가 사회고발성이 많은 것 같다. 객무의 문종근 감독이 연출한 작품인데 이 작품은 이후 극단 마산에서도 공연된다.



경남대 극회 정기공연인데 극단 마산 전용소극장에서 공연했었군. 이 역시 경남대 극회가 잘나간 배경이기도 하겠지.



극단 마산의 <돈내지 맙시다>. 1988년 2월 마산경찰서 맞은편 세림상가 3층에 전용소극장에서 공연.



팸플릿을 보면, 경남연극제가 당시 6회였고, 도내 9개 극단이 출품했음을 알 수 있다. 불씨촌, 부족, 벅수골, 마산, 어릿광대, 입체, 현장, 메들리, 터. 마산, 창원, 통영, 거창, 진주, 밀양의 극단들이다. 그리고 당시 경남대 완월대강당이 연극 공연장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극단 부족의 <들소>는 내가 창원대 극회 작품으로 뛰었었다. 극단에 배우로 참여해달라는 박성근 연출의 제의를 받았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7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자 맘을 먹었던 터라... 이때는 1년 휴학계까지 내고 부산서 지냈기 때문에 연극판 돌아가는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 팸플릿들을 보니 대충 당시의 상황이 그림그려진다.


출연진을 보니 박명숙, 최규민 두 사람만 같은 배역을 가지고 경남연극제 참여했었군. 종갑씨가 내가 맡았던 뱀눈역을 소화했구나. 언제 한 번 그 이야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하구... ^^



6회 경남연극제에는 극단 창원에서 연출을 했던 현태영 감독이 극단 마산서 연출을 맡아 작품을 올렸다. <노비문서>. 윤대성 작가의 희곡. 등장인물에 아는 이가 많다. 고 김태성, 문종근, 오용규, 김종찬, 이태환, 김소정... ㅎㅎ.



천영형(천영훈) 현 극단 미소 대표는 당시 극단 어릿광대의 <망명정부주식회사>에 출연했었군. 88년, 이 해에 아마 미소가 창단했을 걸. 장은호 씨가 고수로 출연했구나.





극단 마산의 <노비문서> 24히 정기공연이다. 이 역시 윤대성 작가의 희곡. 문종근 감독, 강의 땐 사투리 때문에 무대에 별로 안 섰다더니 제법 많은 작품에 출연했구나.


경남대 23회 봄 정기공연 <아벨만의 재판> 이근삼 작. 



1988년 12월인데 극단 부족이 벌써 6회 정기공연을 올렸다. 상당히 활발한 공연활동을 했다는 방증이다. 조오튼 작 이순노 연출의 <미친 사람들>. 그래 당시 창원 중앙동에 주택가 지하에 전용소극장이 있었지. 몇 번 가봤더랬다. 다시금 생각하면 당시 아버지의 권유로 공무원 시험 준비만 하지 않았더라면 극단활동을 열심히 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왜냐면, 내가 안한다 안한다 해도 술로 유혹하면 바로 넘어가는 스타일이라. 첫 작품 <문밖에서>도 그랬고 두 번째 <들소> 역시 그렇게 말려들어 작품에 참여했었으니. <들소> 같은 경우 처음엔 대사가 별로 없는 붉은노을 역을 맡았다가 목소리가 안 맞다 해서 뱀눈으로 바꿨는데.. 으... 혼자 대사만 읊어도 40분짜리... 희한하게 그 긴 걸 어찌 다 외웠나 몰라.



연출은 맡은 이순노...선배는 음. 배우로도 뛰었구나. 당시 연출이 무대에 서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동아리 선배들인 오세갑, 김경화, 이미화 등은 스태프로 일을 맡았었군.






극단 마산의 34회 정기공연 <메야 마이다>. 진주서 활동하던 서용수 선배가 처음으로 마산서 활동하기 시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제7회 경남연극제 대상, 연출상과 전국연극제 무대미술상을 받았다.



극단 마산 <사람의 아들> 이문열 작 현태영 연출. 이 작품은 극단 마산 전용소극장에서 봤다. 대학 시설 친구들과 신의 존재에 대해 밤새 토론하기도 했던 터라 작품을 보면서 '신과 인간'이란 화두를 들고 아주 깊숙히 빠져들었던 기억이 있다. 민요섭이 문종근, 조동팔이 김종찬, 여인에 김소정...모두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내용 중심으로만 봐서 그런가... 그런데 형사를 맡은 김태성은 인상이 강렬해서였는지 그 모습, 목소리가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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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의거를 무대화 작업. 3.15의거 12열사 중에서 오성원에 초점.


부산일보 기사를 보고 힌트를 얻음. 


2008년 말 이 소재를 가지고 이윤택을 찾아감. 


2009년에 <삼월이 오면>이라는 제목의 대본이 나옴. 서울서 오디션 봄. 3억 5000만 원 들여 뮤지컬로 제작.



<삼월이 오면> 2010년 3월 15일 3.15아트센터 대극장 공연.


`21내년엔 만날고개 콘텐츠를 대형 뮤지컬로 준비중.


창작 초연을 한다는 것은 10편 중에 1편 성공... 귀하고도 힘든 작업이란 의미.





<너의 역사>(이해제 작 문종근 연출) 2018년 3월 21~24일 3.15아트센터 소극장. 


영상 감상.



너의 역사는 이승만 부정선거에 대한 3.15의거를 배경으로 열사 중 한 사람인 구두닦이 오성원에 관한 이야기.







시골버스 여 차장의 대사는 노래로. 뮤지컬 요소도 적절히 활용.


구두닦이 오성원, 신문팔이오 겸했군. 구두닦고 신문팔고 돈을 많이 받자 '좋은데이'라고. ㅋㅋ


아가씨가 남자들한테 희롱을 당하자 오성원이 구해주는데.. 이 여성이 나중에 오성원 무덤에 찾아온 17세 여성이라고.


집에 닦을 구두가 많다 하니 잘사는 갑다... 그게 아이고예. 식모라예... ㅋㅋ 등장인물 캐릭터 잘 만들었다.


반공예술인단. 이승만 정권 홍보. 이승만 전위대.


'살아남은 자의 눈물'


이 작품은 3.15의거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 시간대를 오가며 플롯을 구성했다.


삼성물산 등 대기업을 대상으로 선거자금을 모집하는 과정을 전통 형식으로 풀어내. 



대기업 재벌들이 얼마얼마를 기부했다는 대사를 읊을 때 무대 오른쪽 위에 자막으로 나타내어 이해를 도움.



이승만도 등장하는군. 내무부장관이 부정선거 지시하는 과정을 움직임으로 표현.


'너를 찾아서'


이승만정권은 시민들을 잡아다가 툭하면 빨갱이 혐의를 덧씌워 고문을 자행했다. 그 장면 하나를 묘사. 아가씨를 구금한 경찰이 고문에 성폭력까지. 물고문. 호수 형상화. 스크린 활용. 


김주열 어머니가 3.15 이후 자식을 찾아다니는 과정 묘사. 철도저수지에 매장했다는 소문에 물을 다 빼고... 김주열 철도고등학교 또 떨어져 마산상고로 진학.


마산역 건물. 세림상가 앞에 있던. 3.15의거 기념탑 앞 철교를 형상화한 기본 시설에 영상을 활용한 무대 변화가 괜찮다. 이런 형태의 무대 구성은 연극을 시나리오처럼 다양한 씬을 만들 수 있겠다 싶다.


'미궁'


철도저수지에서 아들을 찾고 있는 김주열 어머니. 철도저수지가 마산경찰서 인근에 있었다고... 


3.15일 투표 과정 무지컬로 형상화. 


아침 7시 사이렌 소리 오늘은 3월 15일 선거하는 날 어서어서 일어나 투표하러 가세. 자유당 무리지어 사람들에게 투표하는 법 알려준다며 부정선거. 민주당원이 항의하면 폭행. 민주당사 앞에서 선거 무효 선언. 시민들 결집. 시위에 경찰 발포. 





파이널 뮤직으로 '너의 역사'. 노래는 3.15뿐만 아니라 광주민주화운동도 포함, 그리고 촛불혁명까지 아우르고 있다.


살아있는 김주열 어머니와 죽은 김주열 등 열사들과의 대화를 통해 비장한 느낌.


역사는 기억해야 할 것. 잊지 않기 위해 보존해야 하는 것. 작품을 하면서 역사에 대한 가치를 깨달았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지난 포스트 1편에 이어)또한, 1986년 제4회 전국연극제(삼각파도, 이상용 희곡상) 1987년 개천예술제(극단 마산 사람의 아들, 현태영 연출 최우수상), 1989년 전국연극제(극단 마산, 메야마이다, 현태영 연출 장해근 무대미술, 무대미술상) 등 전국 및 지역 규모의 연극대회 및 축제들에 본격적으로 참가하기 시작하여 각 극단들의 창작능력가 작품성을 향상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전문연출가와 배우, 스태프들의 전문성 확보와 진출로를 확보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대회 참가와 수상을 통하여 마산 지역 연극인들의 예술겅과 우수성을 대외에 홍보하기 시작하였다.(자료출처 마산시사)


이제부터 개인적인 이야기로 팸플릿에서 느끼는 것을 풀어나가볼까 한다. 1983년이면 대학에 들어가던 해다. 한 해 늦게 들어가긴 했어도 대학이라는 게 나이대로 학년 지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여튼 당시에는 연극을 할 생각은 꿈에도 없던 때였다. 단지 고등학교 때 딱 한 번 교회에서 성극을 하면서 내가 대본 쓰고 연출을 맡았던 경험 때문에 관심이 영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당시 경남대나 창원대 창원전문대 마산간호전문대 연극동아리 학생들 중 아는 이가 하나도 없다. 단지 당시 활동한 선배들 중에서 이후 연극동아리 활동을 통해 만난 사람도 있고 내가 기자생활을 시작하면서 만난 사람도 있다. 




1983년 11월 경남대 완월강당에서 열린 <할멈들의 발톱>. 이 작품 출연진 중에는 김형사 역을 맡은 문종근 현 객석과 무대 연출만 아는 인물이다.





1983년 11월 제5회 마산예총제가 열렸음을 알 수 있다. 이때 5회였다면 1978년 마산예총제가 시작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겠다. 문학, 음악, 국악, 사진, 연예 각 분야 예술인들이 한데 모여 축제를 벌인 행사... 그런데 미술협회가 안 보인다. 연극협회는 <벼랑 밑의 파란 풍선>이란 작품을 공연했다. 미국 극작가 겸 소설가 윌리엄 사로이언의 작품을 정석수가 번안하고 운하가 연출했다. 공연 장소는 어린왕자 소극장이다. 팸플릿에 정석수 외에도 눈에 띄는 인물이 한 사람 있다. 연극협회마산지부장 이용웅 교수다. 이용웅 교수와는 1992년 즈음 제주 전국연극제 취재차 동행한 적이 있다.



1983년 당시 국립극단에서 경남대에 공연을 왔다는 게 신기하다. 마산MBC여서 초청이 가능했겠다 싶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당시 MBC에서 연극 활동을 한 인물이 적지 않았다. 정해완 선생도 그렇고 지금 창원문화재단 신용수 대표도 당시 연극에 몸담았던 인물이다. 그러고 보니 현 경남MBC 정대균 대표도 지난해까지 연극협회 진주지부장을 맡았지 않은가.


아, 어쨌든 MBC 초청극 국립극단의 <나래섬>엔 쟁쟁한 배우가 많이 보인다. 장민호, 손숙, 권성덕, 심양홍, 윤문식, 김진태, 김성녀... 장민호 단장 말고는 다들 젊은 모습들이라니...ㅎㅎ.



깜짝 놀랐다. 환도 역 성봉경이 내 대학시절 모습과 흡사해서다. 내 사진 쓴 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6회 마산예총제 연극 공연 팸플릿인데 캐스트에 특이한 출연자가 있다. 또조 역의 주선숙.. 사진이 강아지다. 사연이 궁금하다.




2회 경남연극제에 참가한 극단들과 작품소개를 담은 팸플릿이다. 참가 극단은 도내 5개로 마산 극단 무대, 진주 극단 현장, 거창 극단 입체, 밀양 메들리극회, 마산 극단 소리가 참가했다. 극단 무대엔 대표와 연출 모두 아는 사람이다. 대표인 이지훈 교수는 창원대 극회 지도교수를 했고 현태영 연출은 일찍 선후배 사이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경남대 극회 15회 정기공연작 <한강은 흐른다>에도 낯익은 얼굴이 두 사람 있다. 오용규, 문종근. 학창시절 연극 무대에서 그렇게 열정을 뿌렸어도 사회에 나오는 순간 생활전선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되었던 연극계 현실이 그들로하여금 무대를 떠나게 했다는 생각에 우울해진다. 하긴 나 역시 그런 과정을 밟은 1인이니까.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은 서울에선 일 년에 두세 극단에서 공연할 정도로 인기 있는 작품.


1943년에 초고를 써서 1년가 수정. 44년 모스크바예술극장 배우들에게 헌납. 스타니슬라브스키가 초연. 두 사람은 문학, 예술적으로 20년간 함께 모스크바예술극장을 이끌어.


제정러시아시대. 당시의 사랑과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등장인물들.



시놉시스.


광활하고 아름다운 벚꽃 동산의 여지주 라네프스카야는 5년간의 파리 생활을 청산하고 백야가 눈부신 5월에 벚꽃동산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농노해방과 지주의 몰락으로 벚꽃동산은 빚더미에 올라 이자를 갚지 못하면 경매 처분될 위기에 놓인다.


상냥하고 너그러운 라네프스카야의 인품에 과거 농노시절 위로를 받았던 신흥재벌 로파힌은 빚더미에 오른 라네스프카야를 위해 벚꽃동산을 별장지로 임대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라네프스카야와 그녀의 오빠 가예프는 과거의 행복했던 추억이 담긴 벚꽃동산이 훼손되는 것을 원치 않아 로파힌의 제안을 거절하고 결국 벚꽃동산은 경매에 붙여지게 되는데..


한편 베쨔와 아냐는 서로 사랑에 빠지고, 라네프스카야의 수양딸인 바랴와 로파힌이 낙찰받게 되고 라네프스카야의 가족들은 모두 흩어지게 되는데 마지막 날까지 바랴는 로파힌의 청혼을 받지 못한다.


모두가 흩어져 떠나고 남게된 늙은 하인, 피르스만이 어디로 향하지 못하고 집에 남아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



1막 감상. 연출가는 장면 하나하나에 숨어있는 의미들을 찾아 만들었다. 아주 사실적 표현.



템포가 빠른 다른 작품. 2000년 제작. 영상은 시간 내서 유튜브 통해 검색해봐야겠다.


이 작품은 앞에 본 것보다 확실히 속도감이 있다. 연출에 따라 표현방법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벚꽃동산>은 총 4막의 희극이다.


"벚꽃동산을 통해 러시아 귀족 사회가 몰락하던 혼돈의 시절, 기존 가치들이 붕괴하는 가운데 불안한 삶을 지속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도도한 세월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인간 군상의 이야기로 안톤 체호프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발견되는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면. 건물이 무너지는 상황 묘사.


영상은 2000년 중후반에 제작한 작품. 러시아에서 작품을 했던 연출이 한국에 강의왔을 때 받은 영상. 아, 그러면 유튜브에 없을 수도 있겠군.




극작가는 소설과 달리 인물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지 않는다. 30~40퍼센트 준다. 인물에 대한 분석은 연출가에게나 배우에게 매우 중요하다. 논리적으로 분석해서 무대화해야 한다.


배우가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는 무대 위에서 배역의 행동을 정확하게 옮기는가에 있다.


스타니슬라브스키는 그래서 연기술을 연구했다. 


체호프 작품을 보면 .... 대사와 대사 사이 뜸을 들이는 장면이 많다. 이런 잠깐의 정적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었다는 얘기.




애기방 공간에서 소품들을 논리적으로 갖춰야 동선을 설정할 수 있다. 장롱, 세면대 거울, 탁자, 의자 등등. 


애기방의 요건은 어떤 게 있을까. 조용해야 한다. 환기가 잘 돼야 한다. 창문이 여러개 있어야 하고 커튼이 있어야 한다. 창문이 많다는 것은 밖을 볼 수 있다는 것. 애기방을 만들 때는 건축학 상의 특성을 고려해 무대를 꾸며야 한다.


첫 장면의 연습은 이런 상황을 갖추고 시작해야 한다.


왜 로빠힌과 두나샤는 이 방에 들어오는가? 


두나샤 : 두 시쯤 됐어여. (촛불을 끈다) 벌써 날이 밝았네요.


이걸 어떻게 날이 밝다는 것을 표현할 것인가. 촛불을 끄는 것만으로? 창문의 커튼을 제쳐 날이 밝았음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다면 왜 로빠힌이 두나샤를 애기방으로 데리고 왔는가? 창문이 있고 2층인 애기방에서 멀리 기차역을 보기 위해서.


두 사람이 같이 등장한다. 이전에 이 두사람은 같은 장소에 있었나, 다른 장소에 있었나?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부족하다. 두 사람이 손에 든 소품을 보면 알 수 있다.


로빠힌은 책을, 두나샤는 촛불을. 서재에 있던 로빠힌이 두나샤를 찾아서 데리고 애기방으로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로빠힌은 현재 시각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은 그동안 자고 있었다는 것이 설명됨.


이 장면에서 두나샤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로빠힌은 기차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나? "지금 몇 시야?" 기차는 12시 도착해야 하는데 기적소리는 두 시간이 지나 들렸다. 이 집은 기차역과 가까운 거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적소리에 이집 식구들을 다 깨웠다. 그 소리에 놀라서 로빠힌은 두나샤를 찾아 헐레벌떡 뛰어왔다.


12시에 도착할 마님을 마중나가기 위해 가족들은 모두 역으로 이미 갔고 로빠힌은 자고 있었다. 로빠힌은 11시 이전에 이집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다.


마님이 로빠힌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로빠힌의 대사를 통해 알 수 있다. 로빠힌은 아주 바쁜 사람이다.


로빠힌이 입고 있는 옷과 신발은 마님을 만나기 위해 갈아입은 것. 아버지가 이집의 농노였기 때문에 하녀 두나샤를 이미 알고 있는 사이다. 지금은 신흥재벌로 신분 상승을 이루었지만 그런 관계를 통한 상황 설정이 필요하다.


신분 상승을 이뤘지만 태생을 감출 수 없기 때문에 콤플렉스를 느껴 서재에서 책을 꺼내 보지만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고 재미가 없다. 하루 일과가 아주 바쁜 자신. 그리고 책을 보자 잠이 들어. 이것도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는 부분.


두나샤는 방에 들어와서 무엇을 하는가? 로빠힌이 과거 이야기를 하며 화려한 대사를 하게 되는데, 이 상황에서 두나샤는 무엇을 하고 있나? 치장을 한다. 자신의 의무를 다 마쳤기 때문에 일을 할 필요는 없다. 두나샤는 자기 방 아니면 아냐 방에서 하루종일 이옷 입었다 저옷 입었다 하며 5년만에 오는 마님을 어떻게 맞이할까 흥분한 상태에서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이 방에서 절대 하녀로서의 일을 하지 않는다.



로빠힌이 장문의 독백을 하고 있을 때에는 두나샤도 내면의 독백을 하고 있어야 한다.


두나샤는 무슨 소리를 들었기에 "어머 벌써들 오시나봐요"라고 했을까. 그런데 로빠힌은 또 무슨 소리를 듣고 아니라고 부정했을까.


로빠힌이 잠을 자버린 것에 대해 자책하고 있으며 괜히 두나샤를 질책하고 있다. 


무슨 소리? 개 짖는 소리. 그래서 오나 보다 생각했다. 두 사람이 똑 같이 개 짖는 소리를 들었는데 왜 각각 반응이 달랐을까? 두나샤는 개 소리를 듣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두 사람의 심리적 상황을 놓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두나샤는 손이 떨려요, 어지러워요, 개들도 밤새 잠을 자지 않았어요. 이런 대사를 보면 감정이 아주 들떠있는 상태. 그래서 개짖는 소리에 온다고 생각했다.


로빠힌은 역에 가서 맞이하지 못한 것을 자책한 상황. 차분하게 자신을 생각한다. 로빠힌은 개소리와 역의 상황을 봐서 30분 정도 지체하였는데 벌써 도착했을 리가 없다.


로빠힌은 왜 회상에 빠지게 되었는가? 로빠힌 입장에선 무엇이 절실했기에 이렇든 장문의 독백을 했을까? 로빠힌이 보는 카메라 앵글을 보면 된다. 클로즈업. 5년동안 살면서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과거를 회상하며 부인의 현재 모습을 그려보려고 시도한다고 해석. 5년 지난 지금의 부인 모습이 떠오르지 않아 장문의 대사를 하고 있다고 해석.


이 작품은 몇 개월씩 연습해야 가능한 작품. 인물 분석, 장면 분석 하나하나 세밀하게 들어가야 제대로 된 작품이 무대에 올려진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1970년대 경남지역 연극


그전 통영 지역에서는 1965년 한국연극협회 '충무29지부'가 인준되고 허창언을 주축으로 하여 '춘추극회'가 생겨났다. 하지만 허창언의 타계로 5년 만에 문을 닫고 실질적으로 통영연극은 긴 공백기를 거친다.


그 와중에 1975년에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강수성 씨의 희곡 <소리>가 당선되었다. 197912월에는 청년들의 소인문학 서클인 '충무독서회(물푸레문학동인회 전신)'가 '향토문학회관' 건립기금 조성을 위하여 봉래극장에서 유치진 작, 최성찬 연출의 <통곡>을 공연하였으며, 198012월에 강수성 작·연출의 <소리>를 공연하기도 했다.


한국연극협회 충무지부의 2(7911~801231) 지부장으로 김우성이 임명되고 장현은 사무국장을 맡았다한동안 공백을 보이던 통영연극계는 1981년 장현을 주축으로 장영석, 김윤일, 김철규, 박연주, 허동진, 지태건 등이 뜻을 모아 극단 '벅수골'을 창단해 <토끼와 포수>를 시작으로 하여 통영지역 연극의 맥을 잇는다.


1970년 진주지역에선 동호회 모임이었던 텔스타가 극단으로 재정비하고 <종점을 달리는 사람들>(손정수 작)을 이희대 연출, 이상훈, 김진희 출연으로 '로타리 다방'에서 공연되었다. 1973년에는 극단 '청년들'이 창단되었는데, 김재호 연출로 <종점을 달리는 사람들>이 무대에 올랐다. 1974년에는 경상대학교에서 극예술연구회가 조직되었고 김희창 작 방성진 연출로 <비석>을, 윤대성 작 <출발>, 김지현 작 <상방> 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또 방송연맹 진주시지부 주최로 이항구 작 이희대 연출로 반공극 <산하는 다시 푸르러지리>를 손창극 기획으로 공연되기도 했다. 이 해에 이희대, 조희래, 모왕갑, 손정수, 김용구, 황금, 서영수 등 17명의 동인이 모여 극단 '현장'을 창단했다.


극단 처용랑은 새마을운동 위안공연으로 김일환 작 <닭이 울 때>를 무대에 올렸고 제25회 개천예술제에는 경상대극회가 김지현 작 <상방>으로 참여하는 등 다수 극단이 참가했다.


1976년에는 극협진주지부가 10년 만에 임원진을 전면 개편하고 새집행부를 출범시켰다. 지부장 이희대, 부지부장 이창식, 감사 이길성, 손창근, 사무장에 박우희로 구성됐다.


이 시기 밀양에서는 사실상 해체됐던 극단 메들리가 긴 공백기를 끝내고 다시 맥을 잇게 된다. 1971년 김용식 연출 <용감한 사형수>를 계기로 강민수, 최전, 권길한, 신말선, 조인숙, 안명애, 김종웅, 이용주 등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76년 10월에는 지금의 한국연극제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새마을연극경연대회에 경남 대표로 선정돼 윤조병 작 김용식 연출 <꽃 보라>를 국립극장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1978년에는 메들리의 창립멤버였던 손경문이 돌아와 이근삼 작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를 연출하고 이후 손경문은 <이수일과 심순애> <산국>을 비롯한 많은 작품을 지도하고 연출해 밀양 연극을 활성화했다.


1970년대 마산 연극


1971년부터 마산연극계는 대학극이 활성화되었으며, 당시 마산대학(현 경남대학교)의 영문과 교수였던 한기환과 연출가인 한하균이 호흡을 경남연극의 지층형성과 발전맞춰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80년대부터 활발하게 경남연극을 이상용, 이종일최태황, 현태영 등이 이들의 영향 아래 있었다. 이 때 이들이 자주 드나들던 '전봇대 살롱'(현 경남맨션 뒤)은 한기환이 제자들과 함께 극을 논했던 토론장의 역할을 했다. 특히 1972년에 지어진 경남대학교의 완월강당1980년대까지 주 공연장 역할을 하면서 연극발전에 한몫을 했다.


한편 1972'재경 마산학우회'는 이상용 등이 중심이 되어 제2회 공연작품인 <허수아비>라는 단막극을 준비하고 있었다. 19723월부터 한기환은 원어연극을 시도했다. 이로 인해 대학극이 활성화되었으며, 한기환의 지도로 <안경>(포우 작, 한하균 연출, 19725, 19743), <우리시대>(이종일 연출, 197810) 등을 공연하였다. 또한 한기환의 제자인 이상용이 주축이 된 경남대 연극반은 19735월에 <부부>(유치진 작)를 이상용 연출로 공연하고 19746월에 <울타리>(한노단 작)를 공연하기도 했다.


19752월에는 마산카톨릭문화원 지하 백락다방에서 이상용, 유영원, 최덕선, 최정임 등이 주축이 되어 동인극회인 '마산데아트르'를 만들었다. 이들은 <공모살인>(김용락 작)을 이상용 연출로 공연하였으나 같은 해 6월 이상용의 군입대로 1회 공연을 끝으로 해체되고 말았다.


1976년에는 마산 출신으로 서울과 부산 등지의 타지 방에 가서 공부를 하던 신용수, 하영화, 신현숙, 강상훈, 김진식 등의 대학생들이 '마산학생연극회'(이하 '마학연')를 조직하여 <엘리베이트>(이재현 작)를 신용수 연출로 창립공연을 올렸다. 같은 해 5월에는 마산간호전문대학 연극부(이하 마간연)가 <재치를 뽐내는 아가씨들>(몰리에르 작)을 이종일 연출로, 같은 해 7월에는 경남대 연극부가 <강제결혼>(몰리에르 작)을 이종일 연출로, 같은 해 11월에는 <하멸태자>(셰익스피어 작, 안민수 번안)를 이종일 연출로 공연함으로써 당시 마산연극계를 대학극이 주도했다


19772월에는 마학연의 제2회 작품인 <보이체크>(뷔히너 작, 신용수 연출), 현태영 등 경남대의 학생들까지 합세하여 공연하였다. 갇은 해 5월에는 '경남대 극예술연구회'(초대회징 이윤도, 이하 경극연)가 출범하여 창립 공연인 <코르작과 그의 고아들>(엘빈 실바누스 작)을 이윤도 연출로 무대에 올렸다. 경극연의 이윤도를 비롯한 정석수, 장해근, 현태영, 최태황 등의 창립멤버들은 고춘호, 김윤희, 김윤자, 박유진, 송창호, 최현규김태성, 이옥희, 문종근, 김경선 등과 함께 마산연극계의 맥을 이어갔다.


19773월에는 정해완, 최덕수, 문성환 등 '마산MBC문화방송' 직원들이 주축이 된 '소극장77 연극동우회'가 창립되어 <토끼와 포수>(박초열을 끝으로 해체되고 말았다. 이들 중에서 정해완은 서울 '청포도극회' 출신으로 '불씨극회' 창립에 큰 역할을 했으며 성지여고에서 <논개>(이재현 작)를 연출한 바 있다. 같은 해 5월에는 마간연의 <나는 방관자가 아니다>(박현숙 작, 강인중 연출), 8월에는 마학연의 <태풍정보>(윌리암 작, 하영화 연출)가 공연되었다.



같은 해 9월에는 불씨극회가 창단되어 11월에 창립 공연으로 <철부지들>(톰 존슨 작, 신용수 연출)을 무대에 올렸다. 창립 당시 불씨극회(회장 신용수)의 주요 멤버들은 신용수, 조수잔나, 김경숙, 천석주 등이었으며 당시 마산 MBC문화방송 국장이었던 정해완과 경극연의 정석수, 현태영, 장해근 등이 창립을 도왔다.


불씨극회가 탄생함으로써 당시 마산연극계는 불씨극회와 경극연, 즉 기성극과 대학극이 양립하는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97711월에는 경극연의 <일요일의 불청객>(이근삼 작, 이윤도 연출), 12월에는 불씨극회의 <우리 읍내>(손톤 와일더 작 신용수 연출)가 각각 무대에 올랐다.






1979년 3월에는 경극연의 <향기>(윤조병 작 정효영 연출)와 불씨극회의 <단 한 번 거짓말 속의 영원한 사랑>(엘빈 실바누스 작, 신용수 연출)가, 5월에는 마간연의 <결혼>(이강백 작, 황정희 연출)과 경극연의 <만리장성>(막스프리쉬 작, 정효영 연출)이, 9월에는 불씨극회의 <결혼>(이강백 작, 김경수 연출)과 마학연의 <관객모독>(피터 한트케 작, 이윤도 연출)이 각각 공연되기도 했다.



<자료제공 : 문종근 객석과 무대 연출가>


그러나 아쉽게도 마학연은 <관객모독>을 끝으로 해체되고 말았다. 그해 12월에는 경극연과 불씨극회의 합동공연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작, 김동운 신용수 공동 연출)이 공연되었다 또한 동년 5월에는 이용우, 박낙원 등이 주축이 되어 극단 '세림기획'을 창단하여 전용소극장까지 두고 <서울 말뚝이> 등의 초청극과 <결혼>(이강백 작 이용우 연출), <고백>(김숙인 작, 강주리애 연출) 등의 작품을 '토요무대'란 이름으로 올리기도 했다.


이후 1982년 2월 이성국, 천영훈(천영형) 등이 침체국면을 맞은 극단을 부활시키려 세림상가 지하에 소극장을 만들어 재건하려 했지만 결국 <결혼> 공연을 끝으로 말았다. 


1980년 3월에는 경극연이 <우정>(필립뽀 작, 김동준 연출)을 마학연이 <산국>(황석영 작, 이윤도 연출)을 12월에 경극연은 <무덤없는 주검>(싸르트르 작, 현태영 연출)을, 불씨극회는 <철부지들>(톰 존스 작, 신용수 연출)을 각각 공연했다.

<경남연극 인물사1(경남연극협회 간) 자료 발췌>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지난해 극단마산 이상용 전 대표가 운영하던 마산연극관 화재로 많은 연극 자료들이 소실됨.


76년 들어서 서울서 학교 다니던 마산 학생들이 돌아와 극단을 만듬.


불씨극단.


1977년 9월 불씨극회 창단공연. 철부지들(톤 존스작 신용수 연출)


79년 3월 17~23일. 5회 공연 <단 한 번 거짓말 속의 영원한 사랑> 가톨릭여성회관서 공연. 신용수 연출. MBC 기자로 들어가기 전까진 신용수 연출 지속.

당시 공연비용은 티켓 판매, 스폰서 받아. 스폰을 얻지 못하면 팸플릿 만들지도 못해. 배우들 개런티가 없었던 시절.

스태프. 강경윤 연출 김경수 등 불씨 2세대. 지금도 그렇지만 배우 스태프 구분이 별로 없다. 지역극단에선. 이 작품의 경우 팸플릿도 만들고 리플릿도 만들어. 




극단 불씨촌.경남대학 협동 공연. 1979년 12월 20일 3.15회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김동준 각색 신용수 김동준 연출. 뮤지컬 형태로 공연. 김동준 작곡. 주 관객층은 수출자유지역 노동자, 창원공단 노동자, 그리고 대학생들. 장기공연이 특징. 보통 한달. 약 2000명 관객이 들어.


불씨촌 9회 공연 1980년 10월 27일 3.15회관. 앙상블 뮤지컬. <철부지들>. 신용수 연출 신현수 작곡.





불씨촌 10회 정기공연 1981년 5월 10~11일. 코리스탈호텔 2층 연회장. <제임스 다이크> 정치적 작품. 저항. 해거름 찬조. 79년부터 해거름 있었을 것. 박경숙 연출. 


불씨촌 12회 정기공연 1981년 12월 18~20일 소극장 맷돌사랑. <시즈위 벤지는 죽었다> 나성호 연출. 흑인의 인권 문제를 다룬 연극. 이 작품도 자주 무대에 오른 주요 레퍼터리.


경남대극예술연구회


제9회 정기공연 <30일간의 야유회> 1981년 5월 16, 17, 20일 경남대완월대강당.  이근삼 작, 김동준 연출. 완월강당은 90년 초까지 대극장 공연을 소화한 유일한 극장.


10회 <느릅나무 밑의 욕정> 1981년 11월 27~29일. 완월대강당. 현태영 연출. 경남대극회 창립기수. 정석수. 이윤도.등. 배우들 좋았다고. 세트는 2층 구조물. 새벽 막걸리 먹고 있다가. 공사장 배회. 세트 위치이동 추억.


77년 1회... 연보 확인.


불씨촌 창작마당극 <이렇게 이렇게 우리 한 판> 이윤도 연출. 1982년 5월 8~10일. 소극장 맷돌사랑.

불씨촌 14회  <정복되지 않는 사람들>


송판호 극단 사랑방 창립멤버. 




극단 아롬. 이지훈 교수가 창단. 2회 공연 1982년 2월 26일~3월 16일 소극장 맷돌 사랑. <방> 83년도에 극단 무대도 창단. 이지훈 교수는 부조리 연극 전공. 사무엘 베케트 작품. 


마산연극협회에서 제작한 작품도 있어. 제4회 마산예총제 출품 <눈면 동생> 마산 여러 극단 참여. 조광래 연출 서울 예대출신. 극단 어릿광대 창단한 박낙원과 함께 서울예대 출신. 이때 마산연극협회 지부장은 한하균 선생.

송판호, 박영주 등. 객석 엄수 사항... 당시의 문화를 보여줌.




마산대학 극예술연구회 3회 정기공연 <삼중인격> 이용찬 작 우정진 연출.마산대 연주실. 


불씨촌 창립 6주년 공연. <슬픈 오렌지의 땅> 83년. <참새와 기관차> 12우러 4~5일. 


극단 무대 2회 공연 1983년 9월 10~11일. 예림카페. <유리동물원> 이지훈 연출. 2년 동안 극단 2개를 운영. 배우 현태영, 한철수 등.


경남대 <화가 이중섭>


경남대 14회 <할멈들의 발톱> 1983년 11월 26~27일. 완월강당. 성봉경 연출. 완월강당에 일주일 전 디오니소스 신에게 제사. 무대 동전 찾기(집중력 기르기) 선배들이 시켜. 못찾았다고 기수 밧따. 신입단원들 공포감에 싸여. 스태프와 치면 40명이 되는데 찜통에 라면을 끓여. 삼층익힘의 절묘한 라면을 먹게 돼.


제5회 마창예총제. 1983년 11월 4일부터.


국립극단 초청공연 <나래섬> 오태석 작 허규 연출. 초기 국립극단 멤버. 경남학생과학관 공연. 무용이나 행사에 많이 대관.


마산연극협회 예총제 <환도리스> 아라발 작. 포스트 모더니즘 극. 정통연극은 무대와 객석이 분리된 형태. 신비주의. 이게 사실주의 극이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극은 먼저 희곡을 허문다.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 무대는 텅 비어있다. 무대지문은 그게 끝. 노벨문학상 받고 미국 교도소에서 공연. 섹시한 작품이 오길 기다렸는데.. 웬? 웅성웅성. 10분 지나면서 던지고 난동. 30분 지나면서 조용해져. 자신과 똑같은 현상. 부조리, 인간의 단절된 상황 표현. 기찻길 구조. 1장을 4장에 끼워넣어도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다.



경남연극제 1983년 개최.


제2회 경남연극제 1984년 4월 3~4일. 극단 소리(이지훈)도 참여.


경남대극회 <모닥불 아침이슬> 1985년

극단 마산 <시즈위밴지는 죽었다> 제3회 정기공연.  보람의 집(합성동 시외버스 주차장 옆)서.

1985년 말 극단마산 멤버들 다시 모여 어디 정신과 강당에서 연습. 이 작품을 마치고 중부서 앞 세림상가 3층에 소극장 만들면서 왕성한 활동 시작. 김태성. 이 작품을 계기로 이상용 선생이 대표로 위촉.

<시즤위 밴즈...>는 85년 말쯤 추송웅 연극인 사망 추모작품으로 올려.


86년부터 극단마산, 불씨촌, 터전이 본격적 활동. 


불씨촌 25회 공연 <오해> 알베르트 카뮈. 우정진 연출. 이때 가톨릭 여성회관 지하에서 오동동으로 학문외과 건너편 2층에 소극장 불씨촌 둥지.



극단 터 24차 공연. 1986년 


창원전문대 극예술연구회 13회 공연 <전화>


극단 마산 <삼각파도> 경남연극제 처음으로 대상을 받은 작품. 경남연극제 나갈ㅈ때는 비구상 무대. 벌통세트가 허물어지는 장면 연출. 전국연극제 나가면서 정석수 "가포가니까 배가 있더라. 배 가져오면 어떠냐?" 뻘에 쳐박혀있는 배를 톱으로 세등분해 5톤 트럭에 싣고 대구로 고고. 덧마루 위에 얹으니 덧마루에 칠을 했으면... 이종일 "칠해라!" 공연 끝나고 지워주겠다. 하고 공연. 배는 또 어떻게 해? 일단 배우 마산 가라. 배를 야밤에 버리고 와. 얼마나 무식했나. ㅋㅋㅋ


소개한 작품 중에 <문밖에서>도 ㅋㅋㅋ 나도 없는 자료인데... 배우로 출연했던 작품이라... 괜한 눈쏠림. 부끄.


극단 마산 <위기의 여자> 김소정 주연작.

<메야 마이다> <사람의 아들> 

1989년 경남소극장축제 시작.

1993년부터 전극소극장축제로 발전.

경남 최초로 전국연극제에서 대통령상 수상작 <그것은 목탁구멍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문종근 연출.



다음 시간엔 <벚꽃동산> 작품분석으로. 와, 재밌겠다. *^^*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