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텔링)효자 이평과 무량산 호랑이(마지막편)
(지난줄거리) 아버지의 병환이 심해지자 이평은 직접 대변을 확인하면서까지 극진히 부친간호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정성에도 아버지는 세상을 하직하고 이윽고 갑자기 몸이 쇠약해진 어머니마저 병환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납니다.
부친에 이어 모친까지 연이어 돌아가시자 이평은 자신의 효가 부족하여 그렇다며 슬피 웁니다. 며칠째 산소에서 울다 결국 쓰러진 이평을 마을사람들이 데려와 간호를 합니다. 기력을 어느 정도 되찾은 이평은 부모님 산소에서 시묘살이를 하겠다고 합니다. 워낙 고집이 완강한 터라 마을 어르신들도 더는 말리지 못하고 묘 옆에 움막을 짓는데 도와줍니다.
이평의 소문이 자자해지자 함께 공부하던 이웃마을 아이들이 시샘을 합니다. 갑현이를 비롯한 아이들은 밤에 몰래 귀신으로 변복해 이평을 놀래킬 요량으로 산으로 들어서지만 짐승의 소리와 바람소리에 되레 겁을 먹고 줄행랑을 칩니다.
이평은 조만간 겨울이 닥치면 지하에 계신 부모님께서 추워하실까 염려되어 산소 주변에 석축을 쌓기 시작합니다. 가까이 있는 돌부터 차곡차곡 쌓아나갔지만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그래서 먼곳까지 가서 돌을 운반하려다 보니 금세 지쳐버립니다. 그렇게 2개월이 지났습니다.
추위가 닥쳤습니다. 하루는 밤늦도록 산소를 몸으로 감싸며 쓰다듬다가 이평은 피로에 지쳐 잠이 들고 맙니다. 몸에 성에가 내렸는데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평의 꿈에 부모님이 나타납니다. 얼굴만 보고 돌아가는 부모님을 가지 말라고 부릅니다.
이평을 감싸고 있던 호랑이는 이평이 신음소리를 내자 흔들어 깨웁니다. 이평은 깜짝 놀라지만 호랑이가 자신을 잡아먹지 않은 데다 사람의 말까지 하자 이것 역시 꿈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꿈이라고 생각하니 호랑이가 그렇게 두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평은 호랑이와 농담도 주고받으며 하룻밤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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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평의 이야기를 쭉 들은 호랑이는 이평이 괜찮은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느 인간들은 배은망덕하고 욕심에 눈이 멀어 이웃을 해하고 부모형제마저 배신하기를 죽먹듯 한다는데 이평이라는 이 아이는 전혀 그런 사욕이 없으며 부모님을 극진히 모셨으며 돌아가신 후에도 이렇게 3년 동안이나 시묘살이를 하겠다니 이처럼 가상한 아이가 어디 있겠냐 싶었습니다. 이평도 호랑이의 사연을 듣고 싶었습니다.
“내가 태어난 곳은 백두산이야. 이땅에서 가장 높은 곳이지. 내 형제는 모두 여섯인데, 제일 맏형은 낭림산맥에 살고, 둘째는 함경산맥, 셋째는 마천령, 넷째인 나는 태백산맥, 다섯째는 소백산맥, 막내는 묘향산맥에 살아. 매년 첫 호랑이날에 우리가족은 백두산에 모여 함께 지내지.”
“그럼 섣달그믐께나 여길 떠나야겠구나. 여기 온지 얼마나 됐는데?”
“지난 가을에 무량산에 왔어. 온지 얼마 안 되어 너의 울음소리를 듣고 부모님이 돌아가셨구나 알게 되었지. 너 참 서럽게 울더라.”
“그랬구나.”
“백두산으로 돌아가기 전까진 네 부모님 산소 가에 석축을 쌓는 일 도와주고 싶은데, 같이 할까?”
“그렇게 해주면 나야 좋지!”
이평은 기분이 좋아 호랑이의 목을 끌어안았습니다. 털이 부드럽고 따뜻했습니다. 보름달이 서쪽 들판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서당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의 소리가 시끌벅적해졌습니다. 오늘은 훈장선생님이 이평의 이야기를 화두삼아 꺼낸 것이 논쟁으로까지 번졌습니다.
“갑현아, 넌 평이한테 무슨 감정이 있는 거니? 가서 확인해본 것도 아니면서 너무 심한 말을 한 거 아냐?”
시형은 수업시간 때 갑현이가 이평에 대해서 거짓효자라고 한 것에 대해 친구들 앞에 사과하라고 계속 주장했습니다. 갑현이의 친구들은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두둔하고 나서는 바람에 논쟁이 격해졌는데, 훈장이 그 논쟁을 중단시키지 않았다면 싸움까지 벌어졌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런 그들이었기에 수업이 끝나자 다시 말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우린 한 마을에 살기 때문에 평이가 어떤 아이인지 너희들보다 훨씬 더 잘 안다. 그런데, 너희들은 평이를 얼마나 알고 있기에 가짜 시묘살이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냐? 평이가 시묘살이하는 곳에 가보기나 하고 그런 말 하는 것이냐?”
시형이 갑현에게 쏘아붙였습니다.
“너희들은 평이 말만 믿고 객관적으로 현실을 볼 줄 모르는구나. 생각을 해봐라. 이 겨울에 산에 어떻게 혼자 지낼 수가 있으며, 산짐승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조그만 움막에서 혼자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참 어리석기는.”
“그래, 니 말대로 평이가 시묘살이를 하지 않는다고 치자. 벌써 두 달째 양식이 떨어졌을 때 말고는 마을에 내려온 적이 없는데, 그러면 평이가 어디서 잔다는 말이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어디 자는 데가 있겠지. 아니면 너희들 몰래 집에 와서 새벽에 다시 산으로 돌아가든가.”
“그걸 말이라고 하니? 평이가 그럴 이유가 없잖아. 하루 이틀 집에서 잔다고 해서 죄가 되는 것도 아닌데 몰래 숨어서 자고 갈 이유가 없는데 왜 그렇게 억지만 부려?”
“좋다. 그러면 지금 당장 평이가 시묘살이 하는 곳으로 함께 가보자.”
갑현이는 평이가 효자라고 온동네 소문난 것에 시샘이 나서 거짓효자라고 억지주장을 하고 짐작한 것을 사실처럼 밀어붙인 거였습니다. 그게 먹혀들지 않자 시묘살이 현장을 함께 확인하러 가자고 말해버린 것인데 평이가 시묘살이를 하고 있을 게 뻔하여서 괜히 말했나 후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 내뱉은 말이어서 주워 담을 수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이평이 시묘살이를 하고 있는 산으로 향했습니다. 한편, 이평과 호랑이는 무량산 계곡에서 반듯한 돌을 고르느라 여기저기 헤매듯 다녔습니다. ‘심봤다!’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물론 이 소리는 이평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겐 ‘어흥!’ 하는 소리로 들렸을 겁니다. 이평은 호랑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야, 멋진 돌이네!”
“아직 감탄하긴 일러. 이보다 더 멋진 돌들을 계속 찾아낼 테니까!”
이평은 돌을 큰 주머니에 넣어 호랑이 등에 걸쳤습니다. 이평도 괜찮은 돌 몇 개를 주워 지게에 얹었습니다. 어느 정도 모양 있게 석축을 쌓으려면 하루에 몇 번을 왔다 갔다 해야 하기 때문에 이평과 호랑이는 서둘러 시묘 움막으로 향했습니다. 호랑이가 한참 앞서 걸어갔습니다. 이때 아이들은 움막에 다다랐습니다.
“평아, 우리 왔다!”
이평과 가장 친한 친구인 시형이가 큰소리로 불렀습니다. 아이들이 움막 가까이 다가갔는 데도 이평의 인기척은 나지 않았습니다. 시형은 이상하다 생각하고 움막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평의 부모님 산소 뒤 석축만 쌓다 만 채로 있어 썰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봐라, 내가 뭐랬어! 3년 시묘살이? 흥! 아마 3일 시묘살이하고 어디로 내뺐을 거야, 분명히!”
갑현이가 시형이와 아이들에게 거드름피우듯 턱을 까딱까딱하며 큰소리를 쳤습니다.
“혹시 무서운 산짐승에게 물려간 것은 아닐까?”
시형은 덜컥 걱정이 되었습니다. 시형이는 묘소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며 이평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이평의 모습이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시형과 아이들이 이평에게 잘못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걱정을 하며 여기저기 찾아다니고 있는 사이에 갑현은 자신을 따르는 아이들과 함께 움막에 불을 질렀습니다. 시형이 ‘불?’ 하는 불길한 느낌이 들자마자 움막 쪽을 반사적으로 돌아보았습니다.
“갑현이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주인도 없는 움막, 놔두면 뭐할 건데?”
“너, 정말 천벌을 받는다!”
시형과 친구들은 급한 대로 주변의 흙을 긁어모아 움막에 뿌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움막은 대부분 짚과 대나무로 되어 있어서 활활 급속히 타올랐습니다. 뿌연 연기가 온 산에 퍼졌습니다. 이평을 앞서가던 호랑이가 능선에서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움막 쪽에서 뭔가 타는 냄새가 났기 때문입니다.
“움막이 타는 것 같은데?”
“설마, 움막이 저 혼자 저절로 탈 리가 없잖아.”
“이 냄새는 분명히 네 움막 쪽에서 나는 거야. 무슨 일이 생긴 것 같군. 일단 내가 어서 가서 불을 꺼야겠어.”
호랑이는 그렇게 말하고 빠른 속도로 뛰었습니다. 호랑이 등에서 돌주머니가 벗겨져 계곡 아래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호랑이는 더욱 빠른 속도로 달렸습니다. 움막이 불에 타는 것을 본 시형은 얼른 되돌아와 불을 끄려했지만 물도 없고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너희들 정말 너무하는구나. 평이가 이곳에 안 보이면 여기저기 찾아볼 생각은 않고 걔가 사는 집을 불태워버리다니. 너희들이 그러고도 사람이냐?”
“뭐야? 이 놈이! 똑똑히 봐. 네놈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이평이 여기에 없다는 것을! 하하하! 거짓효자, 맞지? 그 녀석 분명히 산짐승이 무서워 어디선가 숨어 지내는 게 틀림없어! 하하하!”
크르르렁. 그때 산소 위쪽에서 커다란 호랑이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이들은 갑현이 등 뒤로 호랑이가 서서히 걸어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와들와들 떨었습니다. 그러나 갑현이는 움막이 불에 타는 소리와 자신이 큰소리로 떠드는 소리 때문에 등 뒤의 인기척은 전혀 알지 못하고 그저 아이들이 자신의 말에 주눅이 들어 공포에 질린 모습을 하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갑현은 더욱 큰소리로 거드름을 피웠습니다.
“앞으로 말이야, 내 말이라면 콩을 팥이라고 해도 믿어야 해. 엉! 알겠지?”
갑현이 계속 말을 하려는데 아이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살금살금 뒷걸음을 쳐서 산 아래쪽으로 내려가더니 몸을 홱 돌려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뛰어 내려갔습니다. 갑현은 그제야 얘들이 왜 저래 하는 얼굴을 하고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크르르렁! 갑현의 눈과 호랑이의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갑현은 그 자리에서 벗어버린 옷처럼 바닥에 널브러져버렸습니다.
한참 후에 갑현이 눈을 떴습니다. 이평이 맞은편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이평은 이미 그 호랑이 밥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정신이 좀 들어?”
“여기가 저승 맞지? 넌, 호랑이에게 언제 물려 죽은 거냐?”
“하하하하!”
이평은 갑현의 엉뚱한 소리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무슨 소리야? 넌 살아있어. 나도 살아있고. 세게 꼬집어줄까?”
이평은 갑현의 뺨을 살짝 꼬집었습니다.
“아얏!”
갑현은 한참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호랑이를 바로 코앞에서 만났는데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뿐더러 호랑이가 있던 곳인데 이평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자신을 간호하고 있으니 말예요.
“호, 호랑이는?”
“무슨 호랑이 말이냐? 아~! 덩치 큰 백두산 호랑이 말이지? 니 뒤에 있는 저거 말야?”
무슨 농담이냐 싶으면서도 갑현의 고개는 자연스레 뒤로 돌아갔습니다. 으악! 갑현은 그 자리에서 다시 혼절하고 말았습니다. 용감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이렇게 간이 적은 애였나 하며 이평은 갑현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갑현이 겨우 다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앞에는 호랑이와 이평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갑현은 호랑이가 계속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어서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습니다.
“야, 손갑현! 내 움막 니가 저리 만들었으니 니가 다시 지어줄 거지? 이 호랑이 친구가 널 계속 지켜보겠다는데?”
“무, 무울론이야. 내가 태웠으니 내가 지어야지. 근데, 저 호랑이 사람 잡아먹지 않니?”
“사람 안 잡아먹는 호랑이 본 적 있니? 너는 덩치도 크고 맛있게 생겼다는데…. (그러면서 호랑이를 쳐다보며) 그렇지, 호랑아?”
이평의 말에 맞장구를 치듯 호랑이는 ‘어흥’ 소리를 한 번 내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제발 용서해줘. 두 번 다신 널 미워하지 않을게. 저 호랑이에게 난 정말 맛이 없다고 말해줘. 제발 부탁이야, 평아!”
갑현은 정말 호랑이에게 물려 자기가 죽는다고 여겼는지 눈물을 펑펑 쏟아냈습니다. 이평은 속으로 한참 웃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갑현은 이평과 함께 움막을 새로 지었습니다. 갑현은 이평이 자신을 용서해준 걸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둘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갑현은 종종 음식을 어머니께 차려달라고 해서 이평에게 갖다주었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이평이 시묘살이 하는 곳을 종종 찾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두 호랑이와도 친구가 되었습니다.
묘소 주변 석축을 쌓는 일에는 호랑이를 비롯한 이평의 모든 친구들이 힘을 모았습니다. 모두 힘을 합치니 이평 부모님 묘소 석축은 추운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완성되었고 이평은 3년 시묘살이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시묘살이가 끝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평은 과거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밤늦도록 공부를 하고서야 늦게 잠이 들었는데, 꿈자리가 편안하지 못했습니다. 얼마전 백두산 가기 전에 통영엘 다녀오겠다는 호랑이가 꿈에 나타난 것입니다.
“아흐헝! 평아, 날 좀 구해줘. 함정에 빠졌는데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네. 조금 있으면 사냥꾼들이 몰려올 텐데, 큰일이야! 어서 서둘러줘!”
이평은 잠을 깨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꿈이라기엔 너무나 생생하였습니다. 꼭 옆에서 호랑이가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인시도 되지 않은 시각이었지만 이평은 역참 관리원이 된 시형을 찾아갔습니다. 그 역참에는 서른 마리가 넘는 역마를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이평의 이야기를 들은 시형은 자신이 관리하는 말 중에서 가장 빠르고 튼튼한 말을 마구간에서 데리고 나왔습니다. 잘생긴 백마입니다.
“고마워.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친구의 부탁을 거절 않고 들어줘서.”
“무슨 말인가? 친구 사이에.”
이평은 삼년상을 하는 동안 혼자 글공부만 하였기에 말을 탈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시형은 역참 관리가 된 후 온갖 말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느 역졸들보다 기마법도 뛰어났습니다. 시형이 먼저 말 등에 올라타고 이평은 그의 뒤에 올라탔습니다.
“이럇!”
따그닥따그닥. 말발굽소리가 경쾌합니다. 반시진도 못되어 호랑이가 함정에 빠진 통영 관문에 도착하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횃불을 켜고 몰려있습니다. 이평은 순간적으로 호랑이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여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시형아, 저기야. 서둘러!”
시형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을 급히 말을 달렸습니다.
“잠깐 멈추시오!”
도착하자마자 말에서 뛰어내린 이평이 사람들에게 달려가면서 말했습니다. 포수들은 금방 총을 쏘려던 자세를 풀고 이평을 향해 돌아보았습니다. 함정 속에는 무량산 호랑이가 불안한 표정으로 밖을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이평은 호랑이에게 안심하라는 듯 신호를 하고 포수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그 총 내려놓으시오. 그 호랑이는 사람을 해치는 짐승이 아니오. 내 오랜 친구요.”
사람이 호랑이와 친구라니? 포수들은 갑자기 나타난 젊은이가 하는 소리를 믿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저 함정 속으로 뛰어 들어가면 내 말을 믿어주겠소?”
“젊은이, 괜히 만용을 부려 생목숨 버릴 생각이오?”
“아니오, 저 호랑이는 내가 3년 부모님 묘소 시묘살이 하는 동안 줄곧 나와 함께 있었던 오랜 지기라오.”
“그러면 들어가 보시오. 만약 그게 확인되면 호랑이를 살려주겠소.”
이평은 함정 속으로 뛰어내렸습니다. 포수들은 젊은이와 호랑이가 끌어안고 반가워하는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정말이군. 감동이오. 호랑이가 당신과 함께 시묘살이를 했다하니 이는 보통 영물이 아닌 듯하오. 여기 통나무를 내려드릴 테니 호랑이와 함께 빠져나오도록 하시오.”
통나무를 내려준 포수들은 돌아갔습니다. 이평과 호랑이가 밖으로 나오자 시형도 반가워하였습니다. 이평과 호랑이는 다시 깊은 포옹을 하였습니다.
“잘되었네. 잘되었어!”
시형은 말에 올랐습니다. 이평은 호랑이의 등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는 통영을 벗어나 고성 바닷가를 힘차게 달렸습니다. 멀리 수평선 위로 아침해가 발갛게 떠오르고 있었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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