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텔링)이무기와 처녀 제물(3)
(지난 줄거리)하동군 북천면 지금은 이명산으로 이름이 바뀐 동경산 아래 한 마을에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눈이 멀어진다거나 귀가 멀어진다거나 이러저러한 질병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무당은 이것이 동경산 꼭대기에 사는 이무기의 소행으로 처녀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이릅니다. 사람들은 하는 수없이 제비뽑기로 제물이 될 처녀를 정하는데 이 서방네 딸 설희가 걸립니다.
촌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설희를 가마에 태우고 동경산 꼭대기에 올라갑니다. 이무기는 앞으로 자신을 잘 공경하라 이르고 설희가 탄 가마를 물고 물속으로 들어갑니다. 설희는 구름 위에서 이무기가 자신의 몸을 휘감는 이상한 꿈을 꾸고는 깨어납니다. 궁전 같은 침실, 설희 앞에 얼굴의 반을 흰 머리카락으로 가린 이무기가 인간의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이무기는 설희에게 자신의 아이를 낳아달라고 합니다. 그 말에 설희는 몸서리를 칩니다. 설희는 이곳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설희는 또 이무기가 자신의 몸을 칭칭 감는 꿈을 꾸다가 깨어납니다. 그런데 옆에 이무기가 자고 있었습니다. 돌아누웠을 때 이무기의 가려진 반쪽 얼굴이 아주 잘생긴 청년의 모습임을 발견합니다. 그 얼굴의 이무기가 설희에게 탈출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
설희는 다시 돌아눕는 이무기를 피해 반대쪽으로 가서 자리에 누웠습니다. 설희의 머릿속에는 이무기의 내면에 있는 다른 존재가 일러준 탈출방법으로 가득했습니다. 지하동굴 끝이라?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경계가 삼엄한데 어떻게 지하 신전까지 접근하느냐입니다. 지금으로선 이 침실을 벗어나기조차 쉽지 않으니 말입니다.
설희는 내일 아침부터 이무기와 뱀 병사들이 언제 임무를 교대하고 얼마 동안 자리를 비우는지 등의 동태를 관찰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설희는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설희는 이번에 더욱 이상한 꿈을 꿉니다. 구름 위 정원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배가 불러옵니다. 그렇게 먹은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배가 불러오지 하고 이상하단 생각을 하는데 옆에 나타난 이무기가 “이런 경사요, 경사” 하면서 웃는 것입니다.
‘뭐가 경사라는 것이야?’ 설희는 자꾸 배가 커지고 있어서 더욱 심한 고통을 느낍니다. 이러다가 배가 터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불안해집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지경으로 고통을 참고 있는데 이무기는 더 큰소리로 웃습니다. 설희는 불끈 화가 솟았습니다.
“이 나쁜 놈!”
설희는 자신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옆에 있었던 이무기는 어느새 나가고 없었습니다. 기분 나쁜 꿈 때문에 설희는 더욱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이무기의 인간 얼굴이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보름달이 뜬 밤에 지하 동굴 끝에 있는 이무기의 신전으로 가시오. 그 성전 그 가운데 탑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푸른 구슬이 있소. 구슬을 들어 올리면 이 마법 성의 결계가 풀리면서 밖으로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보름은 이제 사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한시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처지입니다. 설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정원 곳곳에 뱀 병사들이 창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이곳을 탈출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 식사시간이 되자 이무기가 나타났습니다. 설희는 이무기를 따라 식당으로 걸어갔습니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동굴로 들어가는 문을 발견했습니다. ‘저곳이 지하신전 입구구나.’ 침실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문 열쇠만 손에 넣는다면 들키지 않고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들었습니다.
설희는 식당에서 이무기와 마주앉아 식사를 했습니다. 음식은 진수성찬이었습니다. 이런 음식이 다 어디서 생겼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혹시 이무기가 마법으로 만든 음식인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몇 번이고 그런 의심을 하면서 먹었지만 진짜 음식이 틀림없었습니다.
설희는 이런 산꼭대기에 농사를 짓는 곳도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음식을 조달하는지 궁금해서 이무기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저,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이 음식들은 다 어디서 나죠?”
이무기는 설희가 먼저 말을 걸어주는 것이 의외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이제 마음을 여는 것인가 싶어 반가웠습니다.“이 산 아래 여러 마을에서 나를 모시며 바친 것들이오.”
이무기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음식과 물건을 바친다는 점을 자랑하고 싶어 한 말이지만 설희는 속으로 탈출의 의지를 더 다지게 되었습니다. 설희가 입가에 약간 미소를 얹어 말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숭배하겠네요?”
그 말에 이무기는 우쭐해졌습니다.
“당연하지요. 당신에게서 나의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는 용이 될 거요. 용이 된 그 아이는 이 나라를 다스리게 될 것이오. 그리되면 이 천하가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이지. 하하하.”
설희의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애써 아닌 척했지만 먹은 음식은 전혀 소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부하 한 명이 급히 식당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폐하! 서쪽 십리 산 아랫마을 사람들이 빈손으로 와서는 앞으로 절대 공물을 바치지 않겠다며 결계 밖에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어찌 하올까요?”
이무기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음식을 하나 더 먹으면서 말했습니다.
“아무 힘도 없는 인간 주제에 겁을 상실했구나. 모조리 척살하고 그 마을에 있는 열 살 아래인 아이들에겐 지독한 병에 걸리게 하라.”
“존명!”
침실로 돌아온 설희는 이무기의 터무니없는 야망과 잔인무도한 모습에 치가 떨렸습니다. 처음 이무기로부터 천하를 손아귀에 넣는다는 말은 허풍이라고 보았지만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처럼 온 나라에 질병을 퍼트리고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해서 복종하도록 만들어 나가면 언젠가 그의 말대로 온 천하가 그의 수중에 들어가게 될지도 몰랐습니다.
밤이 되자 이무기가 또 몰래 설희의 침실로 들어왔습니다. 지금까지 이상한 향기에 정신없이 잠이 들었지만 이제 이 향기에도 면역이 생겨 참는 만큼 잠이 쏟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설희는 자는 척하다가 이무기가 곤히 잠들기를 기다렸습니다. 자신이 탈출하는데 인간 모습의 이무기가 뭔가를 알려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무기가 잠이 들자 설희는 이무기를 살짝 돌려 뉘어서 머리카락을 뒤로 처지게 하여 인간의 모습이 나오도록 하였습니다.
“저기요, 눈을 좀 떠보세요.”
“무슨 일이오?”
“동굴신전으로 들어가는 문 열쇠는 어디에 두나요?”
“내 발목에 있소.”
“신전 중앙 구슬을 들어 올리면 결계가 열린다고 했는데 어디로 해서 나가야 하나요?”
“제단 가운데 문이 있어요. 그쪽으로 탈출하면 살아나갈 수 있을 거예요. 잡히지만 않는다면.
다음날부터 설희는 이무기를 안심시키려고 시키는 대로 잘 따랐습니다. 식사를 할 때에도 이무기를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옆의 뱀 병사들에게도 공치사를 하면서 기분 좋게 해주었습니다. 자기 부하들에게 대하는 설희의 모습을 보면서 이무기는 설희가 이제 자신의 아내로 마음을 굳혔다고 생각했습니다.
보름 밤이 되었습니다. 설희는 자고 있는 이무기의 발목에서 열쇠를 빼내었습니다. 열쇠를 손에 꼭 쥔 설희는 살며시 침대에서 내려와 창밖을 보았습니다. 지하신전 입구에는 두 명의 병사가 창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설희는 속으로 많이 떨렸지만 주먹을 꼭 쥐었습니다.
밖으로 나갔습니다. 침실을 지키는 병사가 설희를 가로막으며 물었습니다.
“마마, 어디 가시려고요?”
“달빛이 너무 좋아 잠이 오지 않아요. 정원을 한 바퀴 돌고 오겠어요.”
“네. 빨리 다녀오십시오.”
뱀 병사들은 며칠 설희가 자기들에게 잘해주기도 했고 이무기로부터 마마가 마음 상하지 않게 잘 모시라는 명령이 있어 의심의 여지가 없이 보내주었습니다. 설희는 지하신전 문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신전을 지키던 병사들이 고개를 숙입니다.
“마마, 어찌 나오셨습니까?”
“정원을 거닐다 저쪽 끝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확인하고 폐하께 보고하세요.”
“네? 며칠 전에도 마을사람들이 소동을 피우더니 이젠 이런 야밤에까지….”
두 병사는 설희가 가리키는 쪽으로 창을 들고 걸어갔습니다.
병사들이 떠나자 설희는 얼른 열쇠를 넣어 돌렸습니다. 문이 스스르 열립니다. 설희는 시간이 별로 없다고 생각을 하여 신전 안쪽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이무기의 인간모습이 이야기한 그 푸른 구슬이 있었습니다. 구슬은 신비스러웠습니다. 구슬의 빛은 신전 안의 벽과 천장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이무기의 신전에 용과 이무기가 양쪽으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무기가 온 세상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이 신전에 표현했구나’하고 설희는 여겼습니다. 설희는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 임금에게 이무기의 야욕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신전 문이 발칵 열리면서 좀 전에 문앞을 지키던 두 병사가 뛰어들었습니다.
“마마, 지금 뭘 하시는 겁니까?”
“보면 몰라요? 구슬놀이 하자는 거지요.”
설희는 구슬을 두 손으로 힘껏 들어 병사들 사이로 던졌습니다. 구슬은 정확하게 문밖으로 굴러갔습니다.
병사들은 허둥지둥하였습니다. 구슬에 탈이 생기면 안 된다고 여겨서인지 둘 다 구슬이 굴러간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때 신단이 있는 신전 앞쪽 벽이 양옆으로 밀리며 열렸습니다. 그쪽으로 달려나가니 숲이 나타났습니다. 결계가 풀린 것입니다. 설희는 산 아래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내려갔습니다. 뒤에서 우레와 같은 엄청난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무기가 병사들의 보고를 받았나 봅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습니다. 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폭우가 되었습니다. 설희는 폭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달렸습니다.
한편, 마을 사람들은 보름달이 환하게 떠있던 하늘에서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니 어리둥절했습니다. 설희의 아버지 이 서방도 굵은 빗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장독간이며 볏짚창고가 비 피해를 보지 않도록 손을 보았습니다.
“아버지!”
이 서방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분명히 설희의 목소리였는데, 하지만 이 서방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무기에게 잡혀먹힌 아이가 살아서 돌아올 리가 없지 않은가. 나이가 드니 이제 환청이 들리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아버지, 저예요. 설희.”
사립문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곳에 죽었을 설희가 서 있었습니다. 이 서방은 너무 놀라 뒤로 나자빠졌습니다.
“니, 니가 정말 설희냐?”
(다음 주에 4편이 이어집니다.)
[관련기사]
'경남전설텔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설텔링)이무기와 처녀 제물(마지막편) (0) | 2014.02.03 |
---|---|
(전설텔링)이무기와 처녀 제물(4) (0) | 2014.01.23 |
(전설텔링)이무기와 처녀 제물(2) (0) | 2014.01.07 |
(전설텔링)이무기와 처녀 제물(1) (0) | 2014.01.02 |
(전설텔링)용다리 연가(戀歌)(마지막편) (0) | 2013.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