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텔링)신동대전(傳)(4)
(지난줄거리) 신동대가 세 살 때 어머니는 관군에게 쫓겨 영축산 기슭까지 왔습니다. 여기서 운암도사를 만난 신동대의 어머니는 아이만이라도 살리려는 마음으로 대뜸 맡기고 달아납니다. 그렇게 신동대는 운암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운암은 전국을 떠돌며 자신보다 무예와 도술이 뛰어난 사람을 찾아다녔는데 이 일로 양산에 정착하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신동대가 스무 살이 되던 해 운암은 신동대에게 하산하라고 합니다. 출세를 해서 행복하게 살라고 이릅니다. 양산 읍내에 첫발을 디딘 신동대에게 막손패거리가 시비를 걸지만 오히려 모두 신동대에게 혼이 납니다. 두목으로 모시겠다는 막손이패를 동생으로 거둬들인 신동대는 비무대회에 출전합니다.
그러나 비무대회에서 비리를 발견한 신동대는 이몽란에게 준결승에서 양보하고 근거지인 선행당으로 돌아옵니다. 관아 형방의 비리를 밝힐 궁리를 하던 차에 검계 용호칠웅 패거리들이 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영호칠웅의 두목 오지곤의 뒤를 밟던 중 그가 월향관에서 형방을 만나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신동대와 막손이 그들에게 나타나 비리행위를 질타하고 속히 모든 것을 정상으로 돌려놓으라고 합니다. 그러고 돌아오는 길에 용호칠웅의 나머지 여섯 명으로부터 공격을 받습니다. 신동대는 무예실력이 급격히 좋아진 막손과 함께 용호칠웅 패거리를 흠씬 두드려패서 쫓아 보냅니다. 이때 숲 속에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그림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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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는 신동대와 막손이 선행당으로 돌아올 때까지 멀리서 미행을 하였습니다. 이들이 선행당 문을 열고 들어설 때까지 지켜보다가 다시 용호칠웅이 달아난 방향을 향해 신형을 날렸습니다. 그림자는 부상당해 이동이 쉽지 않은 용호칠웅 패거리를 앞질러 달렸습니다. 용호칠웅은 그 그림자가 자신과 신동대를 감시하고 돌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그림자가 도착한 곳은 월향관이었습니다.
“마님, 다녀왔습니다.”
“들어오너라”
그림자가 어느 문 앞에서 심부름을 다녀왔다는 기척을 하자 방 안에서 중년의 여성 목소리가 담담하게 흘러나왔습니다. 그림자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방 한쪽으로 발이 처져 있고 그 발에는 큰 가채를 얹은 여인의 실루엣이 비쳤습니다.
“그래, 아이는 무사하더냐?”
“예, 마님께서 우려하지 않아도 될 만큼 도련님의 무예실력이 뛰어났습니다. 용호칠웅 녀석들이 오히려 크게 다쳐 도망을 칠 정도였습니다.”
“어디에 사는지는 확인했고?”
“읍내 시장 인근에 선행당이란 편액이 걸린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후훗. 발 건너편 여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습니다.
“덕수,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으니 늘 그 아이의 안전을 확인하고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목숨을 걸고 도와주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마님.”
여인은 바로 신동대의 어머니 박씨 부인이었습니다. 17년 전 품에 안은 아이를 알지 못하는 사내에게 맡기고 관군을 피해 달아났던 그 여인. 박씨 부인은 가까스로 관군의 추격을 따돌리고 오랫동안 신불산 깊은 산속에서 초근목피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목숨을 부지하며 살고 있던 박씨 부인에게 덕수가 나타난 것은 3개월이 지나서였습니다. 덕수는 역적 모함으로 목숨을 잃은 신동대의 아버지 신기철 대감의 호위무사였습니다. 덕수는 관군에 저항하다 마님과 도련님을 보호하라는 대감의 명령에 따라 탈출했지만 사라진 마님과 도련님을 찾지 못하다 그제야 겨우 마님만 찾게 된 것이었습니다.
관군의 추격이 끊이지 않은 데다 전국 방방곡곡에 현상금이 걸린 방이 나붙어 한곳에 정착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수년간 전국을 떠돌다시피 옮겨다니며 살다 장사를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다시 양산에 와서 신분을 속이고 박씨부인은 연화라는 이름으로 기방을 차린 것이었습니다.
박씨 부인이 양산 읍내에 기방을 차린 것은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감추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도 한때 좌상의 부인이 기생이 되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라도 양산으로 다시 온 것은 혹시 살아있을지 모를 아들 신동대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기방을 차린 지 1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양산을 비롯해 이웃 청도와 대구, 울주까지 덕수를 보내 다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통금시간에 형방과 오지곤이 만난 그 방을 감시하던 덕수가 그 방에서 나오는 두 젊은이를 발견하였습니다. 의외의 인물에 의아스럽게 생각하며 어둠 속 두 젊은이를 유심히 관찰하다 한 청년의 모습이 낯익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쪽 귀가 유난히 큰 젊은이, 그가 바로 그토록 찾아 헤매던 도련님, 신동대였던 것입니다.
‘도련님, 살아계셨군요.’ 덕수는 즉시 박씨 부인에게 그 사실을 알렸고 버선발로 대문을 나선 박씨 부인은 멀리서나마 아들의 뒷모습을 그렇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박씨 부인의 두 볼에는 연방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습니다. ‘신령님, 고맙습니다.’
한편, 부상당한 몸으로 한참 후에 월향관에 도착한 용호칠웅 여섯 사내는 오지곤과 형방으로부터 크게 야단을 얻어먹었습니다.
“너희들이 그러고도 칼을 차고 다니는 무사더냐? 무기도 하나 없는 시정잡배 같은 두 놈을 여섯 명이 당해내지 못하고 이런 머저리 같은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냐?”
형방은 노발대발하며 용호칠웅 사내들을 쥐어박고 걷어차고 하였습니다. 여전히 막힌 기혈을 풀지 못한 오지곤 역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분한 마음을 삭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히려 형방이 자신의 부하들을 막대하는 것이 더 기분 나빴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믿고 어떻게 일을 도모하겠느냐? 이번 일은 없던 일로 하겠다.”
“아니, 형방 나리….”
오지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형방은 방문을 박차고 나가버렸습니다. 형방이 나간 방에 남은 용호칠웅 무사(?)들은 수선을 떨었습니다. 오지곤의 막힌 혈을 푸는 방법을 몰라 아무렇게나 몸 이곳저곳을 찌르고 두드리고 하느라 자신들의 두목을 거의 초죽음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지곤은 부하들의 등에 업혀 월향관을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남들이 혹시라도 알아볼까 봐 소리없이 자신들의 본거지로 이동했습니다.
그 후 며칠이 지났습니다. 선행당에 온몸이 근육질로 틀이 잘 잡혀 있는 거구의 사내가 들어섰습니다.
“여기에 신동대란 놈이 있느냐?”
“누구신데 이러시오?”
막내가 달려나가 막아서자 거구의 사내는 손등으로 툭 쳤습니다. 그러자 막내는 다섯 걸음이나 뒤로 튕겨나가 구석에 처박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아우들이 우르르 몰려가 거구와 대치했습니다.
“너희들 조무래기들과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여기 신동대란 놈이 있느냐 말이다.”
“덩치만 컸지 전혀 못 배워먹은 놈이구만. 남의 귀한 함자에다 함부로 놈 자를 붙이다니 이런 무식한 놈이 무슨 일로 찾아왔나 그래.”
신동대는 아우들을 옆으로 물리고 거구의 사내 앞에 딱 버텨 섰습니다. 그렇게 큰 키도 아니고 힘이 셀 것 같지도 않은, 오히려 연약해 보이는 사내가 당돌하게 나오자 거구는 기가 찼습니다.
“헐. 네놈이 신동대냐?”
“어허, 이놈이 눈앞에 사람을 보고도 소갈머리 없는 말투하고는. 네놈은 이름이라도 있느냐?”
거구는 형방으로부터 들었던 정보, 그러니까 무사 일곱 명을 단숨에 해치운 자라는 이야기를 믿고 자신에게 대적할 만한 체구는 갖췄으리라 생각을 했던 것인데 막상 만나고 보니 너무 가소로워 보여 헛웃음만 나왔습니다. ‘아니, 이런 생기다 만 녀석에게 일곱 명이나 되는 무사들이 맥도 못 췄단 말인가?’ 거구는 거만스레 입을 열었습니다.
“내 성함은 알 것 없고! 살모사로 세상에 알려졌으니 모르진 않을 게다.”
“살모사? 어느 뒷골목에서 놀던 철부지 이름인지 모르겠고. 그래, 날 만나서 어쩌자는 게냐?”
“네놈이 신동대라면 오늘이 제삿날이라, 저승길에 사연은 알고 가야 할 테니 알려주마. 이 동네 형방이 벽천 대감에게 네놈을 처리해달라는 부탁을 했고 벽천 대감은 나에게 큰돈을 주면서 청부를 한 것이다. 이제 사연을 알았으니 죽어도 왜 죽게 되었는지 갑갑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살모사의 오른손이 신동대의 목을 향해 쏜살같이 뻗었습니다. 신동대는 마치 깃털처럼 밀리며 살모사의 손을 피했습니다. 그렇게 빨라 보이지 않는데 자신의 공격을 여유 있게 피하는 모습을 본 살모사는 당황했습니다.
“동작이 그렇게 굼뜨고서야 내 옷깃이라도 스칠 수 있겠느냐?”
신동대가 부채를 펴서 살짝 부치고는 뒷짐을 졌습니다. 그러자 살모사는 서서히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양손 주먹을 꽉 쥐고는 신동대를 향해 붕붕 휘둘렀습니다. 그때마다 신동대의 신형은 흐트러짐 없이 살짝살짝 피했습니다. 화가 난 살모사가 가구를 들어 공격하려 하자 신동대는 재빨리 선행당 밖으로 몸을 옮겼습니다.
따라나온 살모사는 등에서 칼을 뽑았습니다.
“몸에 칼집은 내지 않고 저승길로 보내주려 했건만 안 되겠구나. 미꾸라지처럼 잘도 피해다녔겠다. 이 화룡검도 어디 피해보거라.”
살모사는 신동대를 향해 검을 열십자로 휘둘렀습니다. 그때마다 신동대는 칼끝의 검기를 피해 부드럽게 피했습니다. 살모사는 공격이 하나도 먹혀들지 않자 쓸데없이 공력만 끌어올려 기를 낭비했습니다. 끝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살모사는 무리한 공격을 시도합니다.
“에잇! 이 칼을 받아랏!”
살모사는 검을 쥔 팔을 앞으로 쭉 뻗어 온몸을 신동대에게 던졌습니다. 신동대는 가볍게 몸을 날려 검을 밟고 올라서서 오른발로 살모사의 얼굴을 그대로 강타했습니다. 검과 함께 열 걸음 넘게 튕겨나가며 나동그라진 살모사는 겨우 비틀거리며 일어섰습니다.
“주먹만 한 놈이 제법이구나! 이번엔 정말 인정사정없다. 각오해!”
살모사는 신동대를 껴안으려고 달려들었습니다. 그의 두 팔에 감기면 뼈가 으스러질 것 같았습니다. 신동대는 살모사의 공격에 몸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신동대의 몸이 그대로 살모사의 두 팔에 감겼습니다.
“이제 넌 죽었다. 크하하하!”
펑! 살모사가 안고 있던 신동대는 간 곳이 없고 대신 작은 짚단이 그의 품에 안겨 있었습니다. 아하하하. 이를 구경하던 마을 사람들과 선행당 아우들이 배꼽을 잡고 웃어댔습니다. 신동대는 어느새 살모사의 등 뒤에 뽕하고 나타나 그의 엉덩이를 세게 걷어찼습니다.
천하를 두려움에 떨게 하던 그 명성이 웃음거리가 되자 살모사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넌 나를 죽이러 왔지만 난 너를 죽이진 않겠다. 다만, 이제 남의 목숨을 파리보다 가볍게 여기는 살수 노릇은 그만두거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겠다면 나에게 무례를 저지른 점은 용서하겠다.”
살모사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신동대에게 절을 하였습니다.
“저를 동생으로 거두어주십시오.”
“무슨 소리냐? 나이도 나보다 많은 것 같은데.”
“무인들 세계에 나이가 무슨 소용입니까? 절 받아주신다면 형님을 도와 착한 일을 하며 살겠습니다.”
그렇게 살모사는 신동대의 부하 겸 동생이 되었고 선행당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살모사는 신동대와 막손으로부터 벽천 대감의 비리에 대해 전해들었습니다. 벽천 대감은 양산관아 형방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각 고을의 각종 이권에 개입해 뇌물을 받고 있는 비리 관료라는 사실을 살모사는 이제야 알게 된 것입니다.
내일 저녁 벽천 대감이 전국에서 거둬들인 뇌물을 왕실에 상납한다는 정보가 있다. 관리들에게서 흘러나온 정보라 거짓은 아닐 것이다. 내일 우린 벽천 대감의 집을 털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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