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텔링)전쟁의 신(神)(현장을 찾아서)
함안 군북면 방어산 마애삼존불과 진주 지수면 방어산 정상
이번 5회에 걸쳐 연재된 전쟁의 신(神) 전설텔링은 방어산(防禦山)이라는 산의 이름이 지어진 유래에 그치지 않고 더 역사적으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가야시대로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았습니다. 가야와 왜가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했던 사실, 또한 신라가 고구려에 원군을 요청했던 사실, 또 그 시점이 고구려 광개토대왕 때였다는 여러 가지 정황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꾸몄던 것이지요.
방어산이라는 이름은 함안군과 진주시에서 소개하는 전설에서 그 유래가 잘 나타납니다. 진주 지수면 내고장 유래에 보면, ‘방어산은 이름 그대로 병란과 왜구를 무찌르고 방어했다는 산’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산 정상에는 성을 쌓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여기에 묵신우 장군의 용맹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온다 하면서 방어산에 관한 전설이 소개됩니다.
“장군의 겨드랑이에는 날개가 달려 절벽과 골짜기를 날아다니면서 300근 짜리 활을 잡아당기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중에 병란이 일어나 적군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장군은 3000명의 군사와 중 혜성의 도움을 받아 방어산 봉우리에 성을 쌓고 적과 맞섰다. 적은 방어산 맞은 편 봉우리에 진을 치고 공격해왔으나 장군은 성문을 굳게 닫은 채 한 달을 버티다가 적이 지칠 무렵에 화전(불화살)으로 공격, 일시에 적을 무찔렀다. 장군의 이러한 지략을 본 적은 ‘이는 필시 신병(神兵)의 병술이다’며 도주하고 말았다.”
과연 방어산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습니다. 2편 연재하던 시기에 방어산을 올랐습니다. 방어산은 진주 지수에서 오르는 길도 있으나 이야기의 주인공인 무시우(묵신우) 장군이 안라국, 즉 아라가야 사람이므로 함안에서 오르기로 하였습니다.
방어산을 쉽게 오르는 길을 인터넷이나 위성지도를 통해 관찰해보니 함안 군북면 마애사에서 오르는 길이 가장 수월하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산에 오르면서 보물 제159호인 마애삼존불도 구경할 수 있고요.
마애사 주차장은 차량 100대 이상 댈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컸습니다. 주차장 한쪽에 마애쉼터가 있는데 그 옆에 방어산 등산 안내도가 세워져 있습니다. 방어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아주 보기 좋게 그려놓았습니다. 이 안내판엔 방어산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 소개하겠습니다.
“방어산은 괘방산(451m)과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어 두 산을 함께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웅산이라고도 불렸으며, 정상에 서면 아득히 지리산이 보이고, 동남쪽에는 여항산이 보인다. (…) 산의 7부 능선에는 보물 제159호로 지정된 높이 5미터의 거대한 방어산 마애불이 있으며, 산은 높지 않으나 군데군데 암반이 많고 능선이 제법 굴곡되어 있어 산행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산행은 방어산만 오르는 코스와 괘방산을 함께 오르는 코스가 있다. 방어산만 오르려면 하림리 낙동마을 뒤쪽에서 시작하여 마애사, 방어산 마애불을 거쳐 정상에 오른 후 군북면 박곡리 남강휴게소로 하산하면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다른 코스는 하림마을에서 마당바위를 거쳐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는데, 정상에서 괘방산까지 산행하려면 방어산 고개와 전망대, 괘방산을 거쳐 어석재로 하산하면 5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정상은 큰 바위로 되어 있어 장군대라고 부르기도 하며, 이곳에서 50미터 아래와 200미터 아래 지점에는 마당바위와 흔들바위가 각각 있다. 흔들바위는 높이 8미터, 폭 6.5미터의 끄덕바위라고도 불리며 기울어진 쪽으로 부자가 난다는 전설이 있다.”
마애사 하나만으로도 사찰 안 여기저기 볼만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대웅전에 해당하는 극락보전 법당과 산령각, 종각, 포대화상이 조각된 약수, 그리고 쌀가마니를 지게에 지고 있는 청년 상이 있습니다. 다시 이곳으로 하산한다면 돌아오는 길에 봐도 되지만 아니라면 약간 시간을 내어 둘러보는 것도 좋겠네요.
마애사에서 방어산으로 오르는 산길에 돌탑이 특히 눈에 띄는데, 아주 정교하게 잘 만든 것들입니다. 그냥 지나가는 산인들이 하나씩 소원을 빌며 쌓아 올린 것과는 느낌이 확연히 다른 것이에요. 누군가 숙달된 기술이 있는 사람이 쌓은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마애사를 갓 벗어난 등산로는 걷기 편한 길입니다. 낙엽이 등산로 위를 포장해놓아 사박사박하니 걷기도 좋았습니다. 길가에나 바위 곳곳에 작은 돌탑을 쌓아 올린 정성들이 보입니다. 어떤 것은 아주 기울어진 바위 위에 중심을 잘 잡아 쌓아 올린 것도 있더군요. 하나하나 쌓을 때마다 공을 들인 마음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니 ‘보물 159호 마애 약사삼존불 성불하소서 200m’라고 적힌 나무말뚝이 보입니다. 200미터면 금방이겠다 생각하고 걸음을 옮깁니다. 유선형의 예쁜 돌탑을 또 만납니다. 신선 서넛이 앉아 바둑 두며 훈수도 뒀을 법한 평바위가 나타납니다. 잠시 신선처럼 앉아서 물을 한 잔 마십니다.
여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마애약사삼존불이 있습니다. 119조난위치 표지판이 현위치가 마애불임을 알려줍니다. 길따라 올려다보니 뭔가 호기심을 끄는 돌탑이 보입니다. 돌을 활용해 용을 만들어놓았군요. 용머리는 조각을 해서 달았습니다. 명판을 보니, ‘용탑’이라는 제목 아래에 ‘河己失音 官頭登可’(물 흐르듯 아무 소리 없이 열심히 하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 라는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박제연, 김세희 두 사람의 이름이 있는데 아마도 이 용탑을 만든 사람들이겠죠.
용탑에서 몇 걸음 안 올라가서 보물 159호 마애삼존불이 나타납니다. 큰 바위 벽에 음각으로 그려놓은 것인데 얼핏 보아서는 그림의 윤곽을 잘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안내문을 읽어봅니다.
“방어산 절벽의 바위를 다듬어 선으로 새긴 통일신라시대의 약사삼존불입상이다. 아매불로서는 아주 드물게 만들어진 연대(801년)를 새겨, 통일신라 불상조각사를 연구하는데 아주 귀중한 자료이다.
가운데의 본존은 왼손에 들고 있는 약그릇으로 약사여래임을 알 수 있는데, 얼굴이 약간 길고 큰 몸에 비해 어깨가 좁으며 힘없이 표현된 몸은 긴장감이 없다. 100여 년 전 불상의 활력이 넘치던 이상적 표현이 현실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양쪽의 협시보살은 본존을 향해 자연스럽게 서 있는데, 왼쪽은 일광보살로 남성적인 강한 인상이고, 오른쪽은 월광보살로 눈썹 사이에 달무늬가 새겨져 여성적이다.”
삼존불 앞으로 쭉 가면 비로자나불이 나옵니다. 웅장한 바위 벽 앞에 금동으로 조성됐습니다. 바위들의 모습이 오묘하네요. 통천문 형태의 바위가 있는데 여기엔 사람이 살았던 흔적도 보입니다. 문도 있고 장판도 깔렸네요. 게다가 취사를 하였는지 가스통도 있습니다.
돌탑 위에 모신 비로자나불 앞에 제기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불공을 드리는 사람들이 여전히 활용하는 공간인 듯합니다. 방어산으로 가려면 다시 마애불로 돌아와야 합니다. 마애불 오른 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고개가 나옵니다. 이정표엔 방어산 1.25㎞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힘이 절로 납니다. 그런데 제법 많이 걸었다 싶은데, 마애사에서 겨우 550미터밖에 오지 않았군요. 이제부터 등산로엔 바위도 있고 돌부리가 많은 산길입니다.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산의 상층부라 경치도 좋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낮은 산들이 맥을 이루며 누워있습니다. 그 위엔 구름이 제법 두껍게 덮여 있군요.
등산로 첫째 헬기장을 만났습니다. 방어산 0.8㎞, 어석재 5.1㎞라고 이정표에 적혀 있습니다. 마애불에서 340미터 올라온 거리입니다. 이제 능선따라 걷는 길입니다. 산행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기가 있는 등산코스여서 그런지 각종 산악회에서 왔다는 표시를 해놓았네요. 종종 이런 리본이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등산로가 분명하지 않을 때나 길이 헷갈릴 때 말이죠. 정상 400미터 남았다는 이정표를 만납니다. 점점 걸음에 힘이 들어갑니다.
두 번째 헬기장을 지나니 줄을 타고 바위를 오르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 힘들지는 않습니다. 여기를 올라서니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사방이 탁 틔어 속까지 후련해지는 듯합니다. 맞은 편 비탈만 오르면 바로 방어산 정상입니다.
방어산 정상은 멀리서 보면 큰 바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를 장군대라고 부르지요. 물론 정상에는 나무도 자라고 풀도 자랍니다. 지나가는 길 절벽 아래로 내려다보니 아찔합니다. 이 정상에도 방어산의 유래와 등산코스가 그려진 안내판이 있습니다. 해발 530m를 나타낸 방어산 표지석도 있고요.
청명한 날씨라면 멀리 지리산도 보일 법 하군요. 정상에 올라서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북쪽으로 남강이 흐릅니다. 저 강은 얼마 가지 않아 남지에서 낙동강과 만납니다. 강 상류 쪽, 지수 쪽으로 평야들이 많이 보입니다.
서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전설텔링 이야기에서 광개토군의 공격루트로 설정했던 관음사 코스 등산로도 발아래 보입니다. 관음사는 보이지 않고 바로 아래에 있는 소류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쪽 방향은 절벽이기 때문에 가까이 가서 내려다보기 겁이 납니다.
방어산 정상에 올라서니 이야기 속 안라국 병사들의 기개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지형이라면 서쪽의 적을 방어하기엔 천애의 요새란 생각도 듭니다.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는 길, 산성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등산로를 이탈해 찾으면 어딘가 있지 싶긴 한데 이번 글은 전설 현장을 확인하는 수준이라기보다 묵신우 장군 전설이 스민 방어산을 소개하는 수준에서 다녀온 이야기로 들려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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