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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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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이무기와 처녀 제물(1)
하동군 북천면과 진교면 사이 이명산에 얽힌 전설

 

 

1990년 하동군에서 발행한 <내 고장의 맥>이란 책에 보면 북천면과 진교면 경계를 이루는 산 중에 이명산에 얽힌 이야기 하나가 전해집니다. 이 이명산은 이맹산이라고도 불리며 옛날에는 동경산이라고도 불리었습니다. 북천면 직전리 이명마을 이름도 이에 연유가 된 것이겠지요.

 

이 이명산 꼭대기에는 움푹 들어간 곳이 있는데, 아주 옛날 이곳에 못이 있었다고 해요. 이 못에는 커다란 이무기가 살고 있었는데 성질이 사납고 심술이 고약해서 툭하면 마을을 향해 독을 뿜어서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무기의 횡포에 치를 떨었지만 조상 대대로 이어 살아온 터전을 버리고 떠날 수도 없어서 제발 자기 마을 쪽으로 독을 뿜지 말기만을 바라며 제사를 지냈다고 하네요. 또 자기 마을 쪽으로 독을 뿜더라도 자신이 시력을 잃지 않기만을 바랐지요.

 

이야기는 마을 사람들이 무당의 점괘에 따라 처녀를 이무기에게 바쳐야 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어떤 스님의 도움을 받아 불에 달군 돌을 못에 던져 넣음으로써 이무기를 쫓아낸다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번 전설텔링은 이 전설에 몇 가지 의문과 재미요소를 가미해 새롭게 풀어낸 것입니다. 이무기가 아무리 강한 존재라 하더라도 혼자서는 횡포를 부릴 수 없을 것이라는 점과 처녀가 제물로 바쳐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궁금증, 마을 사람들이 불돌을 던질 때 이무기의 반응은 어땠을까 하는 호기심이 엮여 이야기는 새롭게 꾸며집니다.

 

……………………………………………………………………………………..

“아버지, 너무 무서워요. 이무기에게 먹혀 죽느니 그냥 사람들에게 뭇매를 맞아 죽는 게 나아요. 아버지, 제발 사람들을 말려주세요.”
초가집 방문 밖으로 울음 섞인 처녀의 목소리와 등잔불 불빛이 흔들리며 새어나왔습니다. 사립문 앞에는 초저녁부터 슬피 짖어대던 삽사리도 이제 지친 듯 ‘꾸우~ 꾸우~’하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휘이~”
방문 밝은 창호지에 겨울바람이 한차례 세차게 들이닥쳤습니다. 방안에선 역시 한숨 섞인 50대 남자의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 나오다가 바람 소리에 파묻힙니다.

등잔불이 한 번 더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연지곤지를 찍고 머리에는 족두리를 한 설희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하염없이 신부복 소매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습니다.


“설희야, 이 애비가 죄인이다. 제비뽑기만 잘했어도 니가 이렇게 허무하게 사지로 가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정말 할 말이 없구나. 그렇다고 다들 합의해서 내린 결정을 따르지 않을 수도 없고. 이 애비가 너 대신 가마를 탈 수만 있다면…….”
이 서방의 눈에서도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 부녀의 가슴은 등잔불 심지처럼 타들어갔습니다. 찬바람이 밤새 등잔불을 밝힌 초가집을 맴돌며 울다가 기울어가는 반달을 따라 산 너머로 달려갑니다. 멀리서 닭우는 소리에 깜박 졸던 삽사리가 벌떡 일어나 멍멍 짖습니다.

 

희끄무레 동이 터오자 마을 사람들이 가마를 메고 이 서방 집으로 몰려왔습니다.
“이 서방, 준비는 됐는가?”
“…….”
“어쩌겠는가? 처녀를 제물로 바치지 않으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이무기에게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판인데…. 마을 사람 모두를 위해 자네가 희생한다 생각하게.”
촌장은 밤새 괴로워했을 이 서방과 설희의 심경을 헤아려 조심스레 말을 꺼냈습니다.

 

이윽고 방문이 열리며 밤새 타들어간 등잔불 냄새와 함께 이 서방과 설희가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두 사람의 눈은 얼마나 울었던지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서두르세. 성질 급하고 심술궂은 이무기가 조금 늦는다는 이유로 또 패악질을 부릴지 모르니까.”
가마에 오르기 전 설희는 아버지 품에 안겨 소리내어 엉엉 울었습니다. 나이 열여섯. 한창 꽃다운 나이에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산꼭대기 괴물의 제물로 바쳐질 운명이라니. 설희는 자신의 이 기구한 운명이 너무 한스럽고 세상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이 서방은 설희가 탄 가마가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굳은 듯이 서 있었습니다.

 

설희가 탄 가마는 동네 사람들에 의해 들려져 동경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동경산은 한동안 완만한 경사로 올라가다 산 중턱에 이르러서는 급경사로 접어드는데 가마를 메고 가던 마을 사람들은 이제 힘에 부쳐 오르지 못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아저씨, 가마를 내려주세요. 지금부터 걸어가겠습니다. 이런 숲 속에 있으니 이무기인들 제가 가마를 타고 왔는지 걸어왔는지 알지 못할 거예요.”
설희는 가마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좁은 숲길로 마을 사람들 사이에 섞여 걸어 올라갔습니다. 신부 복장이 걷기에 너무 불편했지만 설희는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이까짓 불편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드디어 동경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멀리 큰 못이 보입니다. 아저씨들이 다시 가마를 내려 설희에게 타게 하였습니다. 설희의 마음도 이젠 모두 체념을 해서인지 오히려 담담해졌습니다. 무시무시한 이무기에게 잡아먹혀도, 그래서 마을에 평화가 찾아올 수만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마를 든 마을 사람들이 호숫가에 도착하자 이무기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촌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이무기를 향해 두 손을 모아 계속 절을 하였습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이무기님께 비나이다. 원하신 대로 오늘 아리따운 처녀를 제물로 바치오니 부디 노여움을 푸시고 우리 마을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이 어리석은 사람들아! 내가 꼭 너희를 혼내고 나서야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겠느냐? 내가 이 산으로 옮겨온 이후 지금까지 조용히 지내려 했다만 신령스런 나의 존재에 대해 조금이라도 불경스런 태도를 보인다면 그땐 온 마을이 재앙을 받으리라. 명심하거라!”

 

이무기의 쩌렁쩌렁한 불호령이 끝나자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조아리고 연거푸 손을 비비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네, 이무기님. 저희가 너무 어리석어 이무기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미처 몰랐사옵니다. 부디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만은 용서하겠다. 앞으로 나에 대한 공경심을 어떻게 나타내야 하는지는 마을 무당에게 이를 테니 그 무당의 말을 따르도록 하라.”
그렇게 말하고 이무기는 가마를 입으로 덥석 물고 물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가마 속에 있던 설희는 갑자기 가마가 공중에 붕 떠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윽고 가마가 떨어지는 것 같더니 물속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순간적인 충격에 의해 설희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설희는 구름 위에 떠 있습니다. 아래로 내려다보았습니다. 구름 사이로 자신이 살았던 마을이 보였습니다. 그러다 어지럼증이 밀려와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구름 아래로 떨어질 뻔하였습니다.


설희는 자신이 이무기에게 먹혀 죽고 영혼이 하늘나라에 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먼저 저 아래 땅에 홀로 남아 아내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딸마저 먼저 보낸 죄책감에 슬퍼하고 계실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절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구름 저쪽에서 뭔가 꿈틀대더니 푸른 비늘로 덮인 용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설희는 온몸이 떨렸습니다. 내가 어차피 죽은 몸인데 왜 이렇게 떨리는 거지? 설희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룡이 설희에게 서서히 다가왔습니다. 자세히 보니 청룡의 모습을 한 이무기였습니다. 머리에 뿔이 없고 수염도 없었습니다. 설희는 이 이무기가 나를 잡아먹은 놈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이무기는 설희의 주변을 꿈틀거리며 몇 바퀴 돌더니 서서히 몸을 휘감았습니다. 설희는 숨이 막혀왔습니다. 뼈가 바스러지는 듯 고통스러웠습니다.


벗어나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발버둥을 칠수록 몸은 더욱 조여왔습니다. 이무기는 혀를 낼름거리며 설희의 온몸에 독을 발랐습니다. 그 독은 몸을 타들어가게 하였습니다. 피부가 따갑게 느껴지자 설희는 자신의 몸을 보았습니다. 이무기처럼 비늘이 생기고 있었습니다.

 

“안돼~!”
잠에서 깬 설희의 눈앞엔 화려하게 장식한 방안의 모습과 하얀 천으로 꾸며진 침대가 있었습니다.
‘어찌 된 거지? 정말 천국이란 게 있었던 건가?’
설희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아무리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려 해도 어찌 된 영문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정신이 들었소?”
설희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다음 주에 2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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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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