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텔링)우니머니 으르으렁(2)
(전편 줄거리) 창원 동읍 자여마을 정병산 자락에 효심이 지극한 구씨 청년이 살았습니다. 이 청년은 몸이 기력을 잃고 불편한 어머니를 위해 늘 나무를 해다 봉양을 하고 어머니가 장에 가고 싶다고 하면 지게에 지고 마실을 다녀오기도 하였지요.
하루는 어머니께 고기를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토끼를 사냥해서 요리해 올립니다. 그러다가 고라니도 잡아 어머니께 드리고 싶은데 고라니는 좀체 눈에 띄지도 않을뿐더러 잡기도 어렵습니다. 사냥 준비를 해서 아침 일찍 산에 들어가 이산 저산을 헤맸으나 고라니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해가 질 무렵 고라니를 발견하지만 인기척을 느낀 고라니가 도망을 갑니다. 구씨 청년이 뒤쫓아 달려가 보지만 역부족입니다. 결국, 고라니를 놓치고 몸만 다친 청년이 해거름에 돌아오면서 정병산 중턱 바위굴에서 산신령께 소원을 빕니다.
산신령이 구씨 청년의 효심을 알고 있는지라 나타나서는 주문을 읊으면 호랑이로 변하는 책을 줍니다. 그 책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청년은 산신령의 말대로 주문을 외니 호랑이로 변하게 됩니다. 호랑이로 변한 청년은 먼저 산신령의 주문대로 나쁜 호랑이를 제거하기 위해 찾아나섭니다.
비음산에서 나쁜 호랑이를 만난 호랑이 청년은 밤새 결전을 벌입니다. 호랑이 싸우는 소리가 온 동네 울려 퍼지고 닭들과 개들의 소리가 섞여 시끄러운 밤이 어느덧 조영해집니다. 동녘에 희끄무레 날이 밝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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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호랑이 모습을 한 호성이의 온몸에 상처가 나 있습니다. 지칠 대로 지쳤지만 사람을 해치는 나쁜 호랑이를 처치했다는 생각에 기분은 좋았습니다. 어머니께서 깨실까,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어느새 날이 밝았는지 방으로 들어가도 그렇게 어둡지 않았습니다.
“우니머니 머니우니, 머니머니 우니우니, 으르으르 으르으렁!”
주문을 몇 번 되풀이해서 읊어내려가자 손이 서서히 사람의 것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호성은 그 손으로 살며시 얼굴에 갖다 대었습니다. 얼굴도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음산 호랑이와 싸우면서 생긴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은 채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 있었습니다. 물론 보통 때와는 달리 상처의 회복 속도는 엄청 빨랏습니다. 호성은 너무 피곤하여 잠시 잠을 청했습니다.
“호성아,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게야?”
잠결에 얼핏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잠에서 화들짝 깨어난 호성은 얼른 부엌으로 달려갔습니다. 어머니의 아침상을 차려드려야 하는데 자느라 때를 놓친 것입니다. 호성은 가마솥에 아주 적은 양이지만 보리를 안치고 불을 때웠습니다. 보리밥이 익는 동안 나물을 무쳐 반찬을 만들었습니다.
밥상을 차려 어머니 방으로 들어갔을 때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과 손등에 난 상처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게 무슨 상처냐? 혹시 산에서 사나운 짐승들에게 봉변을 당한 것이 아니냐?”
“아닙니다. 어머니. 괘념치 마세요. 비탈에서 나무하다 잘못하여 넘어져 다친 상처입니다. 금방 나을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머니께 아침상을 차려드리고 호성이 자신도 몇 숟갈을 뜬 다음 나무하러 간다며 집을 나섰습니다. 어머니는 집을 나서는 호성에게 부디 조심조심하여 몸을 다치지 않도록 하라는 당부를 연거푸 하였습니다.
지게를 지고 산에 오른 호성은 의외로 몸이 가뿐한 것을 느꼈습니다. 밤새도록 비음산 호랑이와 싸웠으면 온몸이 쑤시고 상처 난 곳이 아리기도 할 텐데 전혀 통증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몸 상태가 좋았습니다.
나무도 예전보다 훨씬 많이 하였습니다. 몇몇 단골집에 장작을 팔고 남은 것은 시장으로 가져갔습니다. 때마침 장날이라 사람들이 북적거렸습니다. 겨울 추운 날씨여서 양손을 소매에 넣고 쪼그려앉아 나무 사러 오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자네 어젯밤에 호랑이 소리 듣지 못했나?”
“글쎄, 그게 호랑이 소리였나? 우리 집 닭들과 개가 하도 시끄럽게 굴어서 얼핏 잠이 깨어 듣긴 했다만…, 그러고 보니 그게 호랑이 싸우는 소리였구먼!”
“오전에 관아 이방 나리가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나졸들을 비음산으로 보냈다는군.”
“그 비음산에 사는 호랑이가 벌써 사람을 수십 명도 더 해쳤다지?”
“그 호랑이가 얼마나 크고 사나운지 나졸들이 잡을 엄두도 못 내고 있다지 않던가?”
“으흐흐흐. 그 호랑이 얘길 들으니 내 등골이 오싹해지네! 그려. 그런데 그 호랑이 어찌 됐을까?”
호성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흐뭇했습니다. 자신이 호랑이를 죽였다는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을 괴롭히고 해치는 나쁜 호랑이의 목숨을 자신이 거뒀다는 것에 은근히 우쭐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습니다. 호성은 여전히 나무를 해서 장에 내다 팔고 있었습니다. 시장 공터 게시판으로 나졸 서너 명이 걸어가더니 방을 붙였습니다. 사람들이 게시판으로 몰려들었습니다. 호성도 무슨 내용인가 궁금해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방을 보았습니다.
“지난번 밤새 호랑이 소리가 울리던 날 비음산에서 큰 호랑이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이 호랑이를 누가 죽였는지 아무리 수소문하여도 알 수가 없다. 호랑이를 해치운 자가 이 방을 보게 되면 즉시 관아로 와서 사례금을 받도록 하라. 또한, 최근 안민 고개에 호랑이가 나타나 행인 다섯 명을 해쳤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이 호랑이를 사살하는 자에게도 큰 상을 내릴 것이다.”
호성은 게시판에 붙은 방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최근에 창원과 진해를 넘나드는 안민고개에서 호랑이가 출몰했다면 분명히 아직 그 어디쯤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했습니다. 그날 밤 호성은 산신령이 준 책을 꺼내어 주문을 읊었습니다.
“우니머니 머니우니, 머니머니 우니우니, 으르으르 으르으렁!”
호성은 한달음에 정병산 꼭대기까지 올라가 능선을 타고 불모산을 넘어 안민고개로 내달렸습니다. 안민고개에 도착한 호성은 호랑이의 발자국 흔적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고개 인근에는 아직 호랑이에게 습격을 당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호성은 산의 형태로 보아 호랑이가 갔을 만한 곳을 찾아봤습니다. 숲이 우거진 장복산 방향으로 호랑이 냄새를 맡으며 발자국 흔적을 찾으며 한참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뭔가 스산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본능적으로 몸을 바짝 움츠렸습니다.
“크앙~!”
안민고개 호랑이가 등 뒤에서 기습공격을 해왔습니다. 몸을 피하면서 되돌아봤을 때 호성은 상대가 자신보다도 몸집이 한 배 반은 더 크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정면 승부를 펼치면 백전백패라는 계산이 섰습니다. 호성은 숲 속으로 달렸습니다.
안민고개 호랑이는 첫 공격이 실패하자 아쉬운 듯 멈칫하더니 다시 호성이 달아난 숲 속으로 추격을 시작했습니다. 호성은 바위절벽 쪽으로 달렸습니다. 바위절벽에 다다르자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습니다.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던 호성은 아찔함을 느꼈습니다.
‘상대의 힘을 이용해 절벽 아래로 떨어트리는 수밖에 없겠어’. 호성은 잠시지만 머릿속으로 온갖 작전을 꾸몄습니다. 맞붙어 싸우게 되면 필시 자신이 물려 죽거나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렇다면, 달려오는 상대의 중심을 잃게 해서 절벽으로 떨어지게 해야 한다’. 호성은 절벽 바위 끝에 서서 안민고개 호랑이를 기다렸습니다.
사납게 크렁거리는 안민고개 호랑이가 어두운 숲에서 나왔습니다. 호성이의 숨결이 차분한 반면 안민고개 호랑이는 아주 거칠었습니다. 두 호랑이는 한동안 두 눈을 마주 보며 서로 견제하였습니다. 그러다 안민고개 호랑이가 힘차게 달려왔습니다. 호성이도 일순 바짝 긴장이 되었습니다.
‘지금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호성은 마주 달려가는 척하다가 잽싸게 몸을 비틀면서 드러누워 안민고개 호랑이의 배를 걷어찼습니다. 호성의 작전이 성공했습니다. 안민고개 호랑이의 표정이 갑자기 일그러졌습니다. 달려오던 속도에 같은 방향으로 호성에게 걷어차였으니 절벽 아래로 떨어지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크앙~!”
안민고개 호랑이가 순간적으로 바위 끝을 앞발톱으로 꽉 잡았습니다. 바위 끝에서 몸이 대롱대롱 매달린 형국이 되었습니다. 안민고개 호랑이는 바위를 타고 오르려고 사력을 다했습니다. 이겼다는 생각에 잠시 방심하던 호성이가 재빨리 안민고개 호랑이가 매달린 바위 끝으로 달려갔습니다. 호랑이를 내려다봤습니다. 안민고개 호랑이는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듯했습니다.
“크르르르~. 크앙!”
호성의 목에서 나온 소리는 호랑이 소리였지만 호성은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해친 죄는 죽음으로 치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호성은 발톱을 날카롭게 세워 안민고개 호랑이의 발등을 찍었습니다. 발버둥치던 안민고개 호랑이는 결국 절벽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절벽 위에서 안민고개 호랑이의 죽음을 확인한 호성이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습니다.
“바스락.”
그때 숲 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호성은 또 다른 호랑이가 있나 싶어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조심스레 소리가 들린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큰 나무 뒤쪽에 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선 그것의 정체를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피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등을 보였다가 잘못하면 상대의 공격을 받게 되니 이 싸움은 피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빠르게 몸을 움직여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크아앙!”
호성은 큰 나무를 향해 몸을 날렸습니다.
다음 주에 3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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