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298)
돌이끼의 작은생각 (110)
돌이끼의 문화읽기 (476)
다문화·건강가족 얘기 (20)
경남민속·전통 (14)
경남전설텔링 (74)
미디어 웜홀 (142)
돌이끼의 영화관람 (21)
눈에 띄는 한마디 (8)
이책 읽어보세요 (76)
여기저기 다녀보니 (92)
직사각형 속 세상 (92)
지게차 도전기 (24)
지게차 취업 후기 (13)
헤르테 몽골 (35)
돌이끼의 육아일기 (57)
몽골줌마 한국생활 (15)
국궁(활쏘기)수련기 (16)
Total
Today
Yesterday
11-06 05:34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갈수록 적극성이나 에너지가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을 더 받는다. '의욕'이라는 배터리를 충전해야 쓰겄는디... 워째, 그런 여유가 이러코롬 없는지 몰겄다. 조금은 억지로 시작한 새 이야기 옆길로 새지 말로 플롯대로 가얄텐디... 삽화 부탁해서 그려놓고는... 밤새 플롯을 바꾸는 바람에 다시 청탁해야 했던 일은 한 번으로 족해야 한다.... 남들은 책 열 권짜리도 내고 하는데... 꼴랑 에이포 다섯장 짜리 글이 머시라꼬. 그려 힘내자. 


(전설텔링)효자 이평과 무량산 호랑이(1)

고성 대가면 유흥리 실존인물인 효자 이평에 얽힌 전설


우리나라엔 호랑이가 등장하는 전설이나 설화가 많이 있습니다. 한반도에 호랑이가 많이 살았다는 방증이기도 하겠지요. 특히 고성에는 효자 이평뿐만 아니라 마암면 석마라든지, 옥천사 산신각 등 호랑이가 등장하는 전설이 제법 나옵니다.


호랑이는 인간에게 그야말로 두려움의 대상이었지요. 지금에야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존재가 되었지만 불과 조선시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산에서 호랑이가 종종 나타났다고 그래요. 호랑이는 일제강점기 때 대거 포획되었는데 1921년 경북 경주시 대덕산에서 사살된 호랑이가 공식적으로 마지막이라네요. 지금 와서 보면 안타까운 일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옛날엔 호랑이가 마을에 내려와 가축들을 물고 가거나 해치는 일이 많아 이를 막기 위한 포수의 역할도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엔 예부터 마을제사를 전통적으로 지내오고 있는데, 이를 동제라고 합니다. 동신제, 산신제, 바닷가 마을에선 용신제 등을 지내지요. 이 동제라는 것이 한해가 시작하는 정초에 날을 잡아 주로 지내는데 마을마다 시기가 다릅니다.


이 동제는 제를 올리고 난 이후엔 꽹과리, , 장구, 징 등 사물로 풍물을 치며 지신밟기도 하고 노는데 대부분 포수가 등장합니다. 즉 호랑이의 공격으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포수의 역할이 컸다는 얘기지요. 이랬던 우리나라에 어느 한순간 호랑이가 자취를 감춰버렸으니 정말 호랑이 이야기는 이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전설에서 호랑이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산신령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그 두려운 존재를 친근하게 느끼려고 바보같이 그리기도 하고 인간을 돕는 친구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이번에 꾸미는 이야기가 바로 인간과 친구가 된 호랑이 이야기입니다.


이평이라는 사람은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입니다. 자료에 보니 1803년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임금으로 치면 순조 3년입니다. 그러니까 정조임금이 죽고 3년이 지난 시기네요. 천주교가 퍼지고 정약용 이런 사람이 활약을 하던 시기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 전설텔링의 특징 아시죠? 전설을 소재로 하되 전혀 다른 이야기로 꾸민다는 거. 고성미래신문 심상정 논설위원이 쓴 글에 따르면 실제로 이평 선생은 나이 마흔넷에 부친 이시봉 씨가 병석에 눕게 되자 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으며 효행을 실천했고 쉰둘에 부친이 돌아가시자 3년 시묘살이를 했다고 합니다. 66세가 되었을 때 모친이 별세해 27개월간 시묘살이를 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이 있지만 글의 재미를 위해서 주인공 이평의 나이를 십대 초반으로 확 당기겠습니다. 부친이 돌아가신 이후 모친이 별세하기까지 14년의 차이가 있지만 이것도 비슷한 시기로 바꾸어 이야기를 풀어나가겠습니다. , 슬슬 시작해볼까요.


…………………………………………………………………………………


아버지의 병세가 위독한 상황까지 오자 열네 살 이평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옆에서 바라보던 어머니도 눈물만 계속 흘리고 있습니다.


“얘야, 온갖 용하다는 의원도 더는 가망성이 없다는데 너도 이제 포기하거라.”


어머니 배씨는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훔치며 돌아앉았습니다.


“아버진 분명히 사실 수 있습니다. 제가 반드시 살려낼 거예요.”


이평은 아버지에게서 받은 대변을 들고 방에서 나왔습니다. 마당에 서당 친구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이평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아버진 좀 어떠시냐?”

“응, 그럭저럭.”


이평은 벌써 몇 달째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아버지 병구완을 하였기에 몹시 피로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친구들은 안쓰러웠습니다. 이평이 잘 다니던 서당을 그만두고 아버지 병수발을 한 지 벌써 석 달이 되었습니다. 친구들은 서당에 다니면서도 아버지 간호를 할 수 있지 않느냐며 설득을 했지만 어머니마저 그렇게 건강하지 않은 처지라 이평으로선 어쩔 수 없었습니다.


또한, 자신이 이렇게라도 아버지를 돌보지 않아, 만약에 아버지께서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 죄를 스스로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친구들은 그런 이평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는 뭐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멀뚱히 이평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평이 평소처럼 들고 있던 용기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더니 살짝 찍어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웩, ! 평아, 그거 아버지 똥 아냐? 그걸 어떻게 입에….”

“몸이 회복되면 똥맛도 좋아진다던데, 아버지 똥은 점점 더 쓰기만 하구나. 너희들은 어서 집으로 가거라. 난 또 들어가서 아버지 돌봐야 해.”


친구들은 이평의 행동에 놀랐습니다. 똥을 입에 넣고도 전혀 인상을 쓰지도 않을뿐더러 맛을 느끼며 아버지의 병세를 추측하고 있다는 것이 저희들 같이 어린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인지 도저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 그래…. 아버지 병구완 잘 하고….”


친구들은 그렇게 돌아갔습니다. 뒷간에 가서 아버지의 대변을 버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온 평은 아버지의 몸을 젖은 수건으로 닦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평이를 말리지 않았습니다. 이젠 익숙한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병 간호에 자신의 뒷바라지로 어머니마저 쓰러질까 두려웠던 이평은 서당공부를 접고 어머니 대신 아버지 병구완에 나섰던 것입니다.


“미음이라도 좀 쑤어오마.”


어머니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너한테 정말 미안하구나. … 됐다. 이제 너도 좀 쉬거라. 나보다 어머니를 보살펴드리도록 해라.”


이평의 아버지는 들릴듯말듯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평의 손을 잡았습니다. 이평이 아버지의 손을 다시 고쳐잡고 무슨 말씀이냐고 제발 기운 좀 차리시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변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변의 모습이 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 누는 새까맣고 작은 배내똥이었습니다. 이평은 한없는 슬픔에 눈물이 그칠 새가 없었습니다. 어머니 배씨도 말없이 눈물 고인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았습니다.


이평의 아버지는 오히려 얼굴에 미소를 지었습니다. 평안해 보였습니다.


“임자, 자네라도 몸 상하지 말고 평이랑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시게. 나 먼저 가네.”


이평의 아버지는 무량산 자락 마을 뒤편 봉화산 중턱에 묻혔습니다. 아버지의 유언이 오직 어머니를 잘 모시라는 것이었지만 이평은 하루도 빠짐없이 아버지 산소를 찾아 성묘를 했습니다.


아버지 병환으로 살림이 턱없이 줄어 논이며 밭도 남은 게 별로 없지만 이평은 열심히 성묘를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지극정성으로 모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도 아버지 별세 이후 극도로 쇠약해졌습니다.


이평은 열네 살 어린 나이지만 다른 집 농사를 돕기도 하고 나무를 해서 팔기도 하며 살림을 살았습니다. 그런 아들을 보는 어머니는 더욱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아들과 행복하게 잘 살라는 남편의 유언이 있었지만 자신 때문에 자식이 더 고생하는 모습을 보니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어머니, 어머니께서 얼른 쾌차하시어 건강한 모습을 되찾으셔야 제가 더 힘을 내서 기쁘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평의 어머니는 자신의 몸이 나아질 거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기침을 할 때마다 쏟아지는 각혈은 자신도 이제 머지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알면 더욱 낙망하여 슬퍼할까 봐 숨겨왔지만 언제까지 숨긴다고 될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평은 어머니가 각혈까지 하는지 몰랐지만 병세가 하루하루 깊어져만 가자 의원을 부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기 병은 자기가 더 잘 안다며 한사코 의원을 부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평아, 이 에미 때문에 고생이 말이 아니구나. 한창 공부해야 할 나이에 산에 누운 아버지 봉양에 방에 누운 이 에미 간호에, 살림까지 도맡아 하니 너에게 더 할 말이 없다.”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 제 걱정은 마세요. 그것보다 요즘 들어 기침을 더 심하게 하시던데 의원을 불러오겠습니다.”

“아서라. 없는 살림에 의원은 무슨. 좀 앓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괜히 돈 쓸 필요 없다.”


어머니의 고집에 이평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평은 아버지 산소에 다녀오겠다며 일어섰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이평을 불러세웠습니다.


“평아, 오늘은 나도 니 아버지한테 가고 싶구나. 같이 가 주겠니?”


이평은 어머니를 부축에 집을 나섰습니다.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니지만 아버지 산소가 있는 곳은 인적이 드문 곳이었습니다. 마을에서 산소로 오가는 길은 이평이 매일 성묘 다니며 낸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봉화산 뒤에는 무량산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작은 봉화산을 보호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평의 어머니는 자신이 아들을 공부도 시키고 보호해야 하는데 반대로 된 처지가 한심스러웠습니다.


남편의 무덤에 절을 두 번 한 배씨는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를 내며 입술을 움직였습니다.


‘아무래도 곧 당신을 따라가야겠소. 나 때문에 평이가 더 고생하는 것을 도저히 못 보겠소. 혼자면 능히 잘 살아갈 아이라는 거 이녁이 더 잘 알 거예요. 일찍 왔다고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그 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이평의 어머니 배씨는 몸져누운 채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신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어머니마저 잃게 된 이평은 그렇게 슬피 통곡을 하며 우는 것이었습니다. 산 중턱 부모님 묘소 앞에서 우는 소리가 온 마을에 다 들렸습니다.


이평은 자신의 효심이 너무 부족하여 그리된 것이라며 며칠째 곡기를 끊고 지냈습니다. 급기야 그 슬픔이 하늘에도 닿았는지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빗소리에도 이평의 곡소리가 마을까지 들릴 지경이었으니 얼마나 크게 울었을까요.


이러다 몸이 상한다고 마을 어르신들이 산소에까지 찾아와 말려도 이평은 자신의 효심이 부족해 부모님이 이렇게 된 것이라며 이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비가 갠 아침, 산에서 이평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자 마을 사람들은 덜컥 걱정이 되었습니다.


“여보게, 평이에게 무슨 일 있는 게 아닐까? 비가 와도 곡소리가 끊이지 않더니 오늘은 날이 갰는데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그러게. 지쳐 혼절한 게 틀림 없구만. 어서 가보세.”


이렇게 해서 마을사람들과 이평의 서당 친구들이 우르르 산으로 몰려 올라갔습니다. 산소에 도착하니 아니나다를까 이평은 부모님 묘소 앞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참, 딱도 하지. 서당까지 그만두고 지극정성으로 부친 병구완을 하더니 이리 연달아 어머니마저 저세상으로 보낼 줄 알았겠나. 자신의 효심이 부족해서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했다면서?”

“그렇다더군. 이런 효자는 세상에 다시 없을 거야.”


마을사람들은 이평을 둘러업고 내려오면서 그 처지를 안타까이 여기면서도 효성에 대해서만큼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평의 서당 친구들은 괜히 자신의 부모님에게서 이평과 비교되는 것 같아 불편해 하는 눈치였습니다.


의원의 치료를 받은 이평은 이틀 만에 간신히 몸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이웃집에서 번갈아가며 이평을 돌보았습니다. 이날은 바로 이웃에 사는 여항댁이 미음을 끓여와 이평에게 먹였습니다. 이평은 겨우 몇 숟가락 뜨고는 부모님 묘소에 갈 채비를 해야 한다며 일어섰습니다. 여항댁이 서둘러 미음 그릇을 옆으로 치우며 말렸습니다.


“평아, 니 마음은 알겠다만 아직 그렇게 움직이기엔 무리다. 좀 더 몸이 낫거든 그때 부모님을 찾아도 늦지 않다.”

“아닙니다. 저를 보살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이제 괜찮습니다.”

“무슨 소리냐? 의원이 말하기를 닷새는 안정을 취해야만 한다더구나. 시키는 대로 하거라. 고집하다가 또 쓰러지면 나를 비롯한 동네 아제들과 아주머니들이 더 고생을 하게 된다. 우릴 위해서라도 완쾌될 때까지 몸조리를 했으면 좋겠구나.”


여항댁의 똑 부러지는 말에 이평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웃의 보살핌을 받은 이평은 오래지 않아 기운을 차리고 스스로 밥을 해먹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서당에서 글공부를 마친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이평의 집으로 몰려왔습니다.


친구들은 서당에서 배운 것을 이평에게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집안 청소라든지 나무를 패는 일이라든지 하며 도와주기도 하였습니다.


“평아, 이제 서당에 다시 나와야지. 훈장님께서 널 많이 기다리신다.”

“나도 공부를 계속하고 싶긴 한데….”


이평은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부모님 생각이 왈칵 쏟아졌기 때문입니다.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아직 효도를 시작도 하지 못했는데 저렇게 돌아가셨으니, 자신이 큰 죄인이 된 것만 같았습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오늘부터 시묘살이를 준비해야겠어.”

“뭐? 시묘살이!”


친구들은 일제히 깜짝 놀라 입을 쩍 벌였습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