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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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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배경이 되는 지역이나 관련 유적을 찾아가는 일은 재미있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실물이 존재한다는 것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이지만 그 현장을 보면서 이야기의 속내를 더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전설의 현장을 찾아가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도 다반사입니다. 이번 ‘꽃처럼 바람처럼’의 소재가 된 ‘시락암굴’ 역시 현장을 찾기 쉽지 않았던 사례 중의 하나입니다. ‘전설텔링’ 시리즈의 첫 이야기였던 ‘도롱이 도깨비와 효자 박 선비 이야기’에 등장했던 ‘우곡각자’의 경우 네 번에 걸친 탐사 끝에 현장을 찾아냈으니까요.


그뿐만 아니라 ‘용의 눈물’에 등장한 ‘장군바위’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산 중턱에 있다는데 마침 때가 숲이 우거진 한여름이라 탐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만 사례도 있지요.


현장을 찾아내기 어려운 만큼 그 현장을 찾아냈을 때의 보람은 더 큽니다. 이번 시락암굴은 그런 차원에서 하나의 보람이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을 했을 때 이야기는 수도 없이 검색되어 나왔어도 그 현장 사진은 전혀 찾을 수 없었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마산합포구 진동에서 고성방향 삼진의거대로를 따라 가다 ‘암아교차로’에서 좌회전해 길따라 쭉 들어가면 7㎞ 지점에 시락마을이 있습니다. 아주 평화로운 시골마을입니다.











그래도 50여 가구가 사는 동네라 그런지 버스도 다니더군요. 마을회관에 들러 ‘시락암굴’을 아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할머니 여러분이 계셨는데 처음엔 아무도 ‘시락암굴’을 모른다 하였습니다. 그러다 ‘바닷가 굴’이라고 하니 그제야 ‘아, 그거’하면서 알은 체를 하였습니다. ‘아랫속개’에 가서 물어보면 알 것이라고 하였지요.


마을회관을 나와 동네 사진촬영을 위해 좀 걸어 나오는데 출타했다가 돌아오는 마을 이장님을 만났습니다. 시락암굴에 대해 물어보았지요. 이장님 역시 시락암굴이라는 표현에 대해선 잘 몰랐습니다 ‘바닷가 동굴’이라고 하니 “아~, 그 이순신굴?”이라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어렸을 적, 거기에 헤엄쳐서 가보기도 했는데…, 그래 거기에 무슨 이야기가 얽혀 있다더만. 우린 자세히는 모르겠고.”


어디쯤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거는 배타고 가야 할 낀데. 그냥 걸어서 들어갈라 카문 힘들끼라.”


이장님과 함께 있던 어르신이 이장의 대답에 말을 보탰습니다.


“갈라 카모 갈 수야 있지. 헌데 찾기가 쉽지 않을 끼라.”


어르신의 이 이야기에 현장답사에 대한 희망이 반 토막 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고생을 해야 하나. 어르신으로부터 경로를 자세히 안내받고 차량을 이용해 목적지로 출발했습니다. 가던 중 마을회관에 있던 할머니들의 말이 생각나 아랫속개에 있는 횟집에 들렀습니다.


“이 근처에 시락암굴이 있다 카던데 아시능교?”


횟감을 손질하던 중년 아주머니의 대답에 실망을 하고 말았습니다. 시락마을에선 이쪽에서 물어보면 알 거라고 했는데 아주머니의 대답은,


“그런 거 여기에 없어예.”


아주머니는 잘 모르고 있구나 생각하고 돌아나서려는데,


“창포고개 넘어가면 산에 동굴이 하나 있긴 한데…”


하는 것입니다. ‘설마, 산에 있는 동굴을 전설에서 바닷가 동굴이라고 표현했을까. 만조가 되어 물이 차면 동굴 입구까지 수위가 높아진다고까지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차를 몰아 창포고개를 넘어 시락마을 어르신이 일러준 모 횟집으로 들어가서 또 물어보았습니다. 역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군요.








창포리에서 동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 가다 보면 그 어르신이 이른 대로 길이 있겠지 싶어 일단 걷기 시작했습니다. 40분을 걸어갔다가 나왔는데도 바닷가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다시 이곳을 빠져나와 동진교 인근 바닷가 카페가 있는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바닷가 암굴이라면 혹시 이곳에서 관찰이 가능하지 않을까 여겼던 것입니다.


육안으로 잘 확인이 되지 않아 카메라에 망원렌즈를 달고 바닷가 오른쪽 끝에서부터 왼쪽 내만 쪽으로 사진을 여러 컷 찍었습니다. 카메라 LCD 패널을 통해 확대하여 관찰해보니 이야기 속의 암굴과 비슷한 곳이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아닐지 모른다 싶어도 일단 가서 확인을 해봐야겠다는 의지가 일었습니다.








다시 창포 고개를 넘어 좀 전에 갔던 곳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카메라를 통해 확인했던 위치에서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마른 가지가 무성한 숲을 헤치고 가파른 경사를 따라 내려갔습니다. 웬 가시나무가 그렇게도 많던지. 100미터 남짓한 거리인데 1시간이나 걸려 내려왔습니다. 코를 찌르는 갯내가 어찌 그리도 반가웠던지.


멀리 사진 촬영을 하면서 위치를 확인했던 곳을 가늠하여 방향을 잡고 걸었습니다. 절벽이 바다와 맞닿은 곳이 있어서 그런지 물이 깊어 보이는 곳도 있었습니다. 두려운 마음이 절로 일었습니다. 조심조심 바위를 타고 건너갔지요. 그렇게 10분을 걸었을까 ‘뭔가 있다’는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해안으로 내려와 암굴을 찾아 가는 길입니다.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고 마침 그곳에 도착했을 때 이야기에 나오는 그 암굴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동굴 안을 관찰하면서 약간은 실망했습니다. 암굴이 그리 넓지 않다는 것입니다. ‘시락암굴’ 전설을 소개하며 설명한 자료에는 어른 7~8명이 들어갈 수 있다고 했는데 기껏해야 3명 들어갈까 말까 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더 자료에 대해 실망한 것은 시락마을에서 이곳의 위치가 동쪽으로 2㎞라고 했는데 위성지도로 보면 직선거리로 3㎞는 족히 되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현장확인 없이 남의 글을 그대로 베껴 쓰다 보니 이런 일이 생겼겠지요.








이번 전설텔링 시리즈 3편에서 천동석의 손에 오빠를 잃은 강화선과 남편 최해원이 왜군의 눈을 피해 이곳 암굴로 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해안가 길을 따라가면 위성지도로 계측해보니 4.7㎞가 나오는군요.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밤새 묻어주고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이곳까지 걸어오는 장면이 있는데 섬세하게 묘사하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전설이 만들어진 곳이 시락마을이고 창포리의 절벽 아래 바닷가 암굴을 이야기하다 보니 ‘시락암굴’이 된 사정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거리상으로 마을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이라 과연 실제였다면, 젊은 부부가 왜군의 습격을 피해 이곳까지 왔을까 의심스럽기는 합니다. 산속에 숨을 곳이 어디 한두 곳이겠습니까.


그럼에도, 바닷가 절벽 아래에 있는 바위동굴과 시락마을을 관련지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 지혜는 배울 만하겠습니다. 시락암굴, 그 현장을 탐사하면서 1592년 임진왜란 때의 그 비극을 더욱 실감 나게 상상해봅니다.





[관련기사]


(전설텔링)꽃처럼 바람처럼(1)

(전설텔링)꽃처럼 바람처럼(2)

(전설텔링)꽃처럼 바람처럼(3)

(전설텔링)꽃처럼 바람처럼(4·마지막회)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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