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텔링)우니머니 으르으렁(5)
(지난줄거리) 쇠약한 어머니의 기력을 되살리기 위해 사냥을 시작한 나무꾼 구씨 청년은 사냥꾼 기질이 없어 고라니는커녕 토끼도 한 마리 제대로 잡지 못합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바위굴 안에서 산신령을 만나 마법책을 얻게 됩니다. 책에 적힌 주문을 외면 호랑이로 변하는 책이지요. 구씨 청년 호성은 사냥을 하고 싶지만 먼저 사악한 호랑이 세 마리를 먼저 처치해야 합니다.
비음산과 안민고개에서 두 마리를 해치운 호성은 어머니의 기력이 급격히 쇠하자 더는 기다릴 수 없어 고라니 사냥을 시작합니다. 고라니는 호랑이와 격전을 벌이러 다니면서 서식지를 봐놨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사냥을 해 옵니다.
그러던 중 안민고개에서 해치운 호랑이를 자신이 잡았다는 진해장사가 나타납니다. 그는 사또에게 거짓으로 호랑이를 잡은 과정을 설명합니다. 호성은 이를 보고는 거짓으로 출세하려는 사람의 본성을 간파합니다.
사냥으로 살림살이가 많이 나아지자 호성은 중매를 통해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고민입니다. 아내와 함께 생활하게 되니 몰래 호랑이로 변신할 기회가 없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사냥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호성은 아내가 자는 틈을 타서 몰래 빠져나와 광에 들어가 주문을 외우고 호랑이로 변신합니다. 호랑이의 출현이 뜸해지자 산적들이 극성입니다. 호성은 굴현고개에서 산적을 혼내줍니다. 그런데 관아에선 산적을 혼내준 자신을 잡으라는 방이 붙습니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았다고 떠들던 진해장사는 사또의 부탁을 받자마자 병이 들었다며 엄살을 부립니다. 진해장사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떨어집니다. 그 사이 또 산적들이 마을을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호성은 호랑이로 변신, 산적들을 혼내주고 있는데 나졸들이 달려옵니다. 그런데 나졸들은 산적을 잡으려 않고 오히려 자신을 잡으려 합니다. 나졸들에게 겁을 주어 떨쳐내고 집으로 돌아온 호성은 아내로부터 집 근처에서 호랑이를 보았다는 얘길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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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성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짐짓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 딴청을 피웁니다. 그러면서도 들키지 않게 좀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산적을 혼내주려다가 오히려 나졸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뒤로 호성은 한동안 호랑이로 변신하지 않았습니다. 아내 역시 호랑이를 본 이후로 더욱 예민해졌기 때문에 자다가 몰래라도 방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리하고자 재어놓았던 고라니가 다 떨어지게 되자 다시 사냥을 해야 했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고라니입니다. 산신령 말대로 고라니 열 마리만 고아 먹으면 어머니 병환이 깨끗이 낫는다고 했으니 딱 이제 단 한 번 사냥하고 나면 더는 호랑이로 변신할 이유도 없어집니다. 그때가 되면 아내에게 감추는 것 없이 떳떳하게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이야.’
자정이 넘어서 호성은 아내가 곤히 잠든 모습을 보면서 살며시 일어났습니다. 조심조심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호성은 광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니머니 머니우니, 머니머니 우니우니, 으르으르 으르으렁!”
그런데 이 모습을 아내가 방문을 살짝 열고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광으로 들어간 남편이 뭐라고 주문을 외더니 호랑이가 되어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너무 놀랐지만 호성의 아내는 대체 남편에게 어떤 병이 있기에 저런 무시무시한 짐승으로 변하는지 안타까웠습니다.
호성은 사냥하러 나가려다가 아내가 잠든 방을 뒤돌아보았습니다. 아내는 깜짝 놀라 문에서 떨어졌습니다. ‘여보, 이번이 마지막이오.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내일부턴 진정한 당신의 남편으로 돌아 가리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건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그런 남편의 마음을 알 리 만무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나간 후에 광으로 들어갔습니다. 광에는 남편이 주문을 외듯 읽었던 책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이 책이 남편을 그 사나운 짐승으로 만드는 것일 거야’ 하고 아내는 책을 들고 부엌으로 갔습니다. 부엌 아궁이에는 아직 장작들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호성의 아내는 책을 아궁이에 던져 넣으려다 몇 번 망설였습니다. ‘혹시 이 책과는 상관 없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 책에 적힌 주문을 외우고는 바로 호라이로 변했어.’ 아내는 책을 불사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책은 처음엔 불이 잘 붙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활활 잘 타올랐습니다. 금방 재로 변했습니다.
한편, 이러한 사실을 알 턱이 없는 호성은 고라니 사냥에 열심이었습니다. 여러 마리 중에서 가장 살찌고 먹음직스런 놈을 골라 사냥을 해서 집으로 오는 중이었습니다. 정병산 중턱쯤에 도착했을 때 저쪽 숲에서 바스락, 묵직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뭐지?’ 호성은 전혀 예상 밖의 기척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호성은 고라니를 옆에 던져놓고 몸을 잔뜩 웅크렸습니다. 놈은 숲에서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호랑이였습니다. 저놈이 천주산 호랑이구나. 덩치가 호성보다 더 컸습니다. 호성은 주변의 지형과 지물을 살폈습니다. 덩치가 큰 상대를 이기려면 나무와 바위 등을 잘 활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도 덩치가 작다고 바로 덤벼들지 않습니다. 비음산과 안민고개 호랑이를 해치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두 호랑이는 숲 속에서 서로 마주보며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먼저 공격하려다 자칫 도리어 역습을 당하는 수가 있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나 봅니다. 호성은 몇 번 견제 공격을 하다가 나무가 빽빽이 난 숲 쪽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사실은 덩치 큰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유인책입니다. 천주산 호랑이는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자신이 기싸움에서 이겼다고 여겼습니다. 상대가 도망을 가니 기고만장하여 뒤쫓습니다.
나무가 빽빽한 숲에서 천주산 호랑이는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호성은 재빠른 동작으로 천주산 호랑이의 정면에 나타났다가 뒤에 나타났다가 하면서 정신을 못 차리게 하면서 교란작전을 펼쳤습니다. 빈틈이 보일 때마다 공세를 펼쳤지만 상대가 워낙 교활한 놈이라 쉽게 당하진 않았습니다. 계속 공격을 받기만 하자 자신이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천주산 호랑이는 도망을 쳤습니다. 호성은 힘껏 뒤쫓았지만 놓치고 말았습니다.
호성은 고라니를 물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보았다던 호랑이는 자신이 아닌 그놈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입니다. 언제 또 나타날지 모르므로 앞으로 더욱 경계를 철저히 서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광으로 들어갔습니다. 어, 그런데 마법의 책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참 찾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났습니다. 순간 깜짝 놀라 문을 열고 내다보니 아내가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크렁….”
호성은 난처했습니다. 결국 아내가 알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번만 잘 넘겼으면 모든 게 아무 탈 없이 끝나는 것인데 싶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이왕 아내에게 들킨 것이니 사실대로 말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으르으르….”
책을 달라고 하려는데 사람의 말이 나오지 않고 호랑이의 말이 나왔습니다. 큰일입니다. 아내에게 의사를 전달할 방법이 없습니다.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아내가 이야기를 합니다.
“여보,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책 때문에 당신이 끔찍한 야수로 변하는 것 같아 그 책을 아궁이에 넣고 불살라버렸어요. 이제 사람의 몸으로 돌아오면 다신 호랑이로 변할 일 없을 거예요.”
‘아, 여보. 그게 아니에요. 그 책이 없으면 내가 사람으로 다시 돌아갈 수가 없단 말예요.’ 호성은 부엌으로 달려 들어갔습니다. 책은 글자 하나 남기지 않고 까맣게 재로 변해 있었습니다. 재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주문을 외웠습니다.
“우니머니 머니우니, 머니머니 우니우니, 으르으르 으르으렁!”
소용이 없었습니다. 몇 번을 외원도 자신의 모습이 사람으로 되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이제 어머니도 건강을 되찾으시고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일만 남았는데,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부엌에서 재를 움켜쥐고 으르렁거리던 호랑이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우는 모습을 본 순간 아내는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아, 이를 어쩌면 좋아요? 그 책이 있어야 당신이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었군요. 제가 어리석었어요. 미안해요, 죄송해요.”
호성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말을 해봐야 호랑이소리만 나오니 원망도 탄식도 용서마저도 말로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호성은 어머니께서 주무시는 방을 향해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러고는 곧장 산속으로 뛰어갔습니다. 아내는 숲속으로 사라진 남편을 보고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나무하러 간다고 인사를 하던 아들이 보이지 않자 며느리를 불렀습니다. 호성의 아내는 남편이 멀리 일이 있어 갔다고 둘러댔습니다. 이제 겨우 기력을 되찾았는데 다시 몸져누울까 걱정이 되어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고 며칠 후 아침밥을 지으려 방을 나서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집 마당에 사슴이며 멧돼지며 토끼 등이 쌓여 있었던 것입니다. 남편이 사냥을 해서 몰래 가져다 놓은 것입니다. 호성은 어머니와 아내가 다시 가난해지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이제 직접 사냥한 것을 장에 나가 팔수는 없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했습니다.
그날 이후 호성은 집 주변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천주산 호랑이로부터 어머니와 아내를 보호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몇 번 천주산 호랑이의 흔적을 발견했지만 마주치진 않았습니다. 호성은 처음 산신령을 만났던 바위굴에도 자주 찾아갔습니다. 산신령이라면 분명히 책이 아니라도 사람으로 되돌릴 방법을 알고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산신령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관아에서 고용한 포수들이 떼를 지어 산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진해장사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계속 아프다는 핑계를 댈 수 없었으니 마지못해 포수들과 함께 호랑이 사냥에 나선 것이 틀림없습니다.
호성이로서는 난처했습니다. 천주산 호랑이로부터 어머니와 아내를 지키려면 이곳을 떠날 수 없는데, 포수들의 포위망은 점점 좁혀 들어와 피하지 않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호성은 일단 겁을 주어 이들을 쫓아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는 진해장사가 포함된 일행에게 다가갔습니다.
“크아앙!”
아무리 담력이 강한 포수라도 무시무시한 호랑이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자 본능적으로 몸을 사렸습니다. 호성은 포수들이 총을 조준하기 전에 달려들었습니다. 포수는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그러고는 진해장사를 쳐다보았습니다. 도움을 구하려 했는데 진해장사는 나무 뒤에서 와들와들 떨고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포수는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포수가 떨어트렸던 총을 다시 주우려 할 때 호성이 다가가 총을 멀리 쳐냈습니다.
“탕!”
호성은 가슴에 뜨거운 것을 느꼈습니다.
“탕, 탕!”
등에도 뭔가 들어와 박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개를 돌리니 멀지 않은 곳에서 포수들이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어서 여길 벗어나야 합니다. 호성은 바위굴이 있는 곳으로 달렸습니다. 마지막 희망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죽기 전에라도 산신령을 만나 사람으로 다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여러 번 총에 맞은 탓인지 걸음이 예전만큼 빠르지 못했습니다. 포수들이 더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바위굴 앞에 포진했습니다. 호성은 더는 피할 곳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본래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사람을 해치는 호랑이는 따로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 바위에선 자신의 집과 마을이 보입니다. ‘산신령님, 제발 모습을 드러내 주세요.’ 호성은 간절히 바랐지만 끝내 산신령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포수들의 총소리가 또 들려왔습니다. 파편들이 바위에 튕겨나갔습니다. 그 순간, 호성은 포수들의 뒤쪽으로 천주산 호랑이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머니와 아내가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가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크앙!”
호성은 사력을 다해 바위에 올라갔다가 천주산 호랑이가 있는 쪽으로 훌쩍 뛰었습니다.
“타당! 탕! 탕!”
쇳덩어리들이 온몸에 박혔습니다.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 호성은 포수들의 머리 위로 날아갔습니다. 천주산 호랑이가 쳐다봅니다. ‘저놈을 여기서 죽이지 못하면 모든 게 허사야.’ 호성은 이를 악 물었습니다.
“타, 타, 타, 탕!”
총알이 연발로 몸속에 들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호성은 풀썩 땅바닥에 곤두박질쳤습니다.
“와!”
포수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호성은 눈을 감았습니다. 결국 천주산 호랑이를 막지 못하고 이렇게 되는 것이 후회스러웠습니다. 호성은 희미해지는 숨소리에 섞어 마지막으로 산신령을 불렀습니다. ‘산신령님!’ 끝.
아, 잠깐! 호성이 그렇게 애타게 찾던 산신령이 그제야 나타났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아마도 호성을 다시 사람으로 되돌릴 방법이 있었을 거예요. 산신령이잖아요. 그런데 너무 늦게 나타난 것이 탈이네요.
“누가 날 불렀나? 요즘 잠이 왜 이리 많아졌나, 몰라. 만사가 다 귀찮아.”
그때 산신령은 들것에 묶여 포수들에 의해 실려 내려가는 호랑이 한 마리를 봅니다.
“저놈 어디서 본 듯한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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