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텔링)용의 눈물(1)
합천군 초계면 정고봉 선덤바위에 얽힌 전설
합천군 초계면과 적중면, 의령군 봉수면 가운데에 655m 높이의 천황산이 있습니다. 이 산줄기를 따라 동쪽으로 미타산(662m)이 있고 남서쪽으로 국사봉(688m)이 있지요. 국사봉과 천황산, 미타산 코스는 등산인들에게 잘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이 봉우리들 사이에 있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는 봉우리가 하나 있습니다. 지도에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 ‘정고봉’이라고, 천황산에 딸린 좀 낮은 봉우리입니다. 이곳에 이번 전설의 소재인 ‘선덤바위’가 있습니다.
이 선덤바위는 초계면 정곡마을에 약 450년 전부터 일가를 이루고 살아오고 있는 문화 류(柳)씨 가문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기록에는 이 바위의 높이가 10m 가량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20~30년 전 철탑을 세우는 공사를 할 때 가본 현지 주민(박씨·77세)의 말로는 사람 키의 두세 배 정도로 그리 높은 바위는 아니라고 합니다.
어쨌든 이 바위의 형상이 갑옷을 입은 장군의 모습이라서 ‘장군바위’라고도 하는데 정3품 당상관 벼슬을 한 류씨 집안에서 난 아들의 슬픈 사연이 서려 있다는군요. 이번에 풀어내는 전설텔링 역시 전해져 오는 전설을 바탕으로 다양한 상상력을 접목해 허구로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배경이 너무 현실적이라고 생각이 들어도 지어낸 것이니 그대로 믿지는 마세요.
◇ ◇ ◇ ◇ ◇
“이랴!”
전령은 말을 힘차게 달려 숲길을 벗어났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칼에 베인 듯한 상처가 나 있었고 검붉은 피가 맺혀 있었습니다. 전령이 관아에 도착해 말에서 내릴 때 땅바닥에 그대로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상황의 긴박함을 눈치챈 이방이 동래현감에게 전령이 왔음을 아뢰자 현감 역시 급히 관아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사또, 부산포 왜구들이 세력을 확장해 노략질을 일삼는 바람에 우리 백성 수백 명이 살상을 당했습니다. 어서 병력을 출동시켜 그들의 준동을 막아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괘씸한 왜놈들 같으니! 삼포왜란 이후 조선 땅엔 얼씬도 못하게 했던 것을 풀어주었더니 다시 본성을 드러내는구나. 여봐라! 당장 기마병력 200을 꾸려서 부산포로 출동하라.”
사또는 전령의 보고를 듣고는 바로 병력을 집결하여 부산포로 출동케 하였습니다.
부산과 울산, 진해 등지에서 왜구의 노략질이 다시 극심해지자 한양의 조정에서도 중대한 일로 다뤄졌습니다.
“삼포 단절 이후 잠시 잠잠해졌던 왜구들이 다시 교역을 허락하니 그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부산포뿐만 아니라 이 나라 해변 곳곳에서 난동을 부린다고 하니 이를 그냥 보고만 있을 일이 아니지 않겠소?”
조선의 14대 임금 선조는 어전회의에서 중신들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마마, 대마도를 본거지로 한 왜구들은 본시 해적질을 업으로 하는 것들이라 그 뿌리를 뽑지 않고서는 무고한 백성을 괴롭히는 노략질이 끊이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참에 세종조께서 하셨던 것처럼 수군을 대마도에 보내시어 왜구를 박멸하고 모두 추방하심이 마땅한 줄 아룁니다.”
합천에서 함께 한양으로 왔던 정인홍이 임금에게 강력히 주장하자 다른 신하가 반대를 하고 나섰습니다.
“아니되옵니다. 지금 부산포 등지를 통해 구리나 황, 은과 같은 일본의 각종 물품이 들어오는데 대마도를 섬멸하게 되면 이러한 물품이 끊어질 뿐만 아니라 일본 본토와의 심각한 외교문제로 비화해 결국엔 전쟁의 빌미를 주게 될 것이 뻔하옵니다. 따라서 지방 관아 차원에서 왜구들의 노략질을 진압하는 선에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현명할 줄로 아룁니다.”
이날 조정에서 문무 대신들이 왜구의 행패와 곳곳에서 준동하는 민란에 대해 오랜 시간 설왕설래를 하였습니다. 각기 다른 명분을 내세운 당파가 서로 대립해 한쪽이 옳다고 주장하면 다른 쪽에선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워 반대하고 그 반대에 대해 어불성설이라며 대척을 이루니 조정회의는 시간만 보낼 뿐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오랜 만에 회의에 참석해 맨 뒤 말단에 앉아 이를 지켜보던 류보여는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왜구의 칼에 날마다 백성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 상황에 니가 옳니 내가 옳니 논쟁만 벌이니 갑갑한 노릇이로고.’
고향인 합천 초계로 돌아온 후로도 류보여의 머릿속에는 조선 백성을 괴롭히는 왜구를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조상 대대로 문관을 지내며 국가의 녹을 먹어온 터라 집안에 무인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목엣가시처럼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가문에도 무인이 나와야 이 나라에 충성을 다할 수 있을 텐데….” 류보여는 천황산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습니다.
그때 의령을 다녀오던 관정사 스님이 류보여의 탄식을 듣고 연유를 물었습니다.
“대감께선 이 시각에 웬일로 이곳에까지 올라와서 산이 꺼져라 한숨을 쉬시오이까?”
“지금 부산포와 염포 제포, 전라도까지 왜구들의 노략질이 번져 백성들이 맘 놓고 생업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더이다. 우리 집안에 무예가 출중한 무인이 난다면 애국충정으로 나라에 충성을 다할 수 있을 텐데 대대로 책상물림이라 전장에 나갈 기회조차 얻지 못하니 그것이 안타깝습니다.”
스님은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러고는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류보여에게 말했습니다.
“대감,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옵니다만….”
스님의 말에 류보여는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스님, 그 방법이란 게 무엇입니까? 좀 가르쳐주세요.”
“그게….”
스님이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자 류보여는 애가 탔습니다.
“스님, 그렇게 뜸 들이지 말고 속 시원히 말을 좀 해 주시오. 우리 집안에 무인이 나와 나라에 충성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영광이 어디 있겠소이까.”
“그렇다면 말씀 드리지요.”
스님은 지팡이를 옆에 놓고 바위에 걸터앉으며 말했습니다.
“이곳 지리를 보시면 대감께서도 짐작하시겠지만 왼쪽은 경사가 완만하고 오른쪽은 가팔라 양쪽의 기운이 서로 다르게 나오고 있습니다. 대감께서 조상의 묘를 쓰고 계신 왼쪽은 대대로 학문을 하는 기운이 서려 있고 반대로 오른쪽은 거친 지형이 보여주듯 무관이 나오는 지형입니다. 그래서 대감께서 오른쪽 당도산의 장군설에 조상의 묘를 쓰시면 걸출한 자손을 보아 나라를 크게 이롭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임금을 잘못 만나면 온갖 모함에 얽히게 되어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초년에 목숨을 잃을 운명도 배제할 수가 없습니다.”묘를 옮기면 무술에 출중한 자식을 얻을 수 있으나 임금을 잘못 만나면 어려서 죽을 수 있다는 스님의 말에 류보여는 여간 고민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임금을 잘못 만나면’이라는 단서에 류보여는 약간의 희망을 걸었습니다. 얼마 전 어전회의에 참석했을 때 보여준 선조의 의중을 읽은 데다 조정 내에 진보적 성향의 사림파가 실권을 쥐고 있으므로 합천 사람인 정인홍이 있는 한 자식이 초년에 죽을 운명은 아님이 확실하다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류보여는 아내에게 지금 나라에는 문인보다 무인이 필요한 시기라며 스님이 전한 이야기를 하면서 조상의 묘를 옮겨 무예가 출중한 자식을 보아 나라에 충성을 하자고 말했습니다.
류보여의 아내는 창녕을 본가로 둔 성씨 부인입니다. 부인은 남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걱정이 앞서 눈앞을 가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참을 눈을 감고 생각했습니다. 그 역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남편 못지않았지만 조선의 여인으로서 가문을 잇지 못하게 된다면 조상을 뵐 면목이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보, 우리가 조상의 묘를 장군설에 옮겨 무예가 출중한 자식이 나와 나라에 공을 세우면 그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스님의 우려대로 만일 장성하지도 못하고 무과에 급제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모함을 받아 죄를 뒤집어쓰게 된다면 이 또한 얼마나 슬픈 일이겠습니까?”
성씨 부인은 남편에게 아주 완곡히 조상 대대로 그래왔듯이 후손들도 문인으로 살아가도록 묘를 옮기지 말 것을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류 대감의 마음은 이미 굳어진 상태라 성씨 부인의 어떠한 설득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류보여가 조상의 묘를 장군설로 옮기고 두어 달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성씨 부인이 남편의 관복에 자수를 놓다가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베개에 기대어 살포시 잠이 들었습니다.
마을 위 골짜기에 큰 연못이 하나 있는데 따뜻한 햇살이 작은 풀들을 간지럼 태우던 날 성씨 부인이 이곳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성씨 부인이 가만히 앉아 초록의 풀들을 쓰다듬어려는데 갑자기 푸른 용이 몸부림을 치면서 하늘로 치솟아 올랐습니다. 성씨 부인은 그 자리에서 나자빠져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룡은 뭔가에 잡힌 듯 꼬리가 연못에서 빠져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화가 난 듯, 슬픈 듯 소리만 질러댔습니다. 연못에는 날지 못하는 깡철이(이무기)가 청룡의 꼬리를 물고 놓아주질 않았습니다.
청룡이 깡철이들을 잡아먹을 듯 자세를 다시 낮춰 으르렁거려도 깡철이들은 청룡의 꼬리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용은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청룡과 깡철이들이 서로 몸을 감고 뒤엉켜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 싸움으로 연못의 물이 사방으로 튀었는데 성씨 부인은 물에 흠뻑 젖고 말았습니다.
잠시 연못이 잠잠해지더니 깡철이의 머리가 물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가싶더니 물속으로 다시 끌려들어갔다가 물이 크게 출렁이면서 청룡이 재빠르게 하늘로 솟아올랐습니다. 구름 사이로 순식간에 올라갔습니다. 성씨 부인이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는데 피투성이가 된 이무기가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험상궂은 얼굴이었습니다. 성씨 부인은 와들와들 떨면서 뒷걸음질쳤습니다. 그러다가 아차 발을 헛디뎌 몸이 꼬꾸라지면서 땅바닥에 머리를 찧고 말았습니다.
“쿵!”
베개에 기대어 자던 성씨 부인이 베개에서 미끌어져 그만 방바닥에 머리를 찧었던 것입니다. 성씨 부인은 급하게 자세를 고쳐잡았습니다. 안방에서야 누가 이 모습을 볼리 없겠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민망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점잖은 체면에.
출타하고 돌아온 남편이 안방으로 건너 왔을 때 성씨 부인은 낮에 꾸었던 꿈을 들려주었습니다. 부인도 그렇게 생각하였지만 남편 역시 그 꿈이 태몽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몸도 예전과 달리 쉬 피로해지고 나른하다는 것을 느껴왔던 터였습니다.
“흐읍!”
그후 8개월이 지난 초겨울이었습니다. 성씨 부인은 대들보에 묶은 삼줄을 꽉 잡았습니다. 이를 악물고 배에 온힘을 넣어도 아기는 5시간이 지나도 나올 생각을 않았습니다. 성씨 부인이 너무 오랫동안 고생을 하자 산파도 땀을 뻘뻘 흘리며 함께 괴로워했습니다.
그러기를 또 한 시진이 흘렀습니다.
“응애~!”
문밖으로 우렁찬 아기의 울음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옳지 분명 사내아이렷다.’
류보여의 입꼬리가 귀밑까지 당겨 올라갔습니다.
방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산파가 재빠르게 나와 마루에서 내려서자마자 류보여에게 고했다.
“대감마님, 고추입니다요. 헤헤.”
“어허, 이사람. 고추라니? 하하하.”
류보여는 뛸 듯이 마루에 올라섰습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간 류보여는 먼저 아내의 건강을 살폈습니다.
“여보, 고생 많았소!”
옆에 누워있는 아들이 눈에 들어오자 류보여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아기를 양손으로 받쳐 들었습니다.
“엥! 이게 뭐지?”
“왜 그러세요?”
생글생글 웃고 있는 아기를 쳐다본 두 사람의 얼굴은 갑자기 잿빛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다음주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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