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덤바위 전설을 재창조한 '용의 눈물'을 쓰면서
이 이야기는 합천 초계면 정곡지 상류 선덤바위에 얽힌 전설을 토대로 한 소설이다. 일종의 그동네 스토리텔링이랄 수 있다. 소재가 재미있어 선덤바위를, 일명 장군바위를 선택했지만 사실 그냥 이야기로 끝날 뿐이지 그 지역적 환경을 생각한다면 이것이 시너지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번 용의 눈물은, 제목을 정할 때 대하역사드라마 <용의 눈물>을 떠올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 핵심 주제가 주인공 용의 눈물 때문에 전설이 생긴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이번 스토리는 준비를 하면서 역사적 상황과 인물, 그리고 시대적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다.
어쨌든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에 맞춰 역사공부도 되고 이야기 재미도 느낄 수 있게 꾸몄는데... 일부 사람 이름이 많이 등장하고 고사성어가 많아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람도 있었다. 다시 쉽게 풀어쓸까 하다 관뒀다. 한번 쯤 이런 장난(?)을 치는 것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전편 줄거리) 부산포 등 남해안 지역에서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들이 한때 삼포왜란 이후 잠잠해졌는가 싶더니 삼포 개항 이후 다시 조선 땅에 들어와 노략질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에 선조대왕은 중신들을 모아 대책을 논의하는데, 조정의 중신들은 왜구의 난동에 대해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는 쪽과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뉘어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 앞으로 이야기의 주인공인 ‘류용’의 아버지가 참석해 있었지요. 용의 아버지 류보여는 끝없는 논쟁에 한숨만 내쉴 뿐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류보여는 대대로 문관을 배출한 자신의 집안에서 어찌하면 무관이 나와 나라에 충성을 할까 고민했습니다. 이때 관정사 스님이 조상의 묘를 당도산 장군설로 옮기면 무관이 태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잘못하면 성장하기도 전에 모함을 받아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도 말해줍니다. 이에 류보여는 아내의 만류에도 조상의 묘를 옮기고, 얼마 후 부인이 태몽을 꿉니다. 용이 승천하는 꿈이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고 산파가 사내아이라는 것을 알려주자 류보여는 뛸 듯이 기뻐합니다. 방으로 들어가 아이를 들어보는 순간 류보여는 깜짝 놀랍니다.
◇ ◇ ◇ ◇
“여보! 이, 이런 이상한 일이 다 있소. 아기의 겨드랑이를 보시오.”
남편의 놀라는 표정에 부인도 덜컥 겁부터 났지만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성씨 부인은 눈을 아이의 겨드랑이 쪽으로 돌렸습니다.
“아이구머니나!”
“허어~. 옛날 이야기에나 있을 법한 아기장수가 우리집에 태어났구려. 아기장수는 역적의 운명을 태어났다고 하던데 이일을 어찌하면 좋을꼬?”
류보여는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스님 말에 임금을 잘못 만나면 역적이 될 수도 있다고 하였지만 선조의 성품이나 주변의 여러 신하들이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겨 지금까지 별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아들의 겨드랑이에서 비운의 아기장수와 같은 작은 날개를 발견하고서는 불안해지는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감, 아무리 아기장수 이야기가 걸리긴 해도 누가 사람의 겨드랑이를 보는 것도 아니고 숨기고 키웁시다. 나라를 위해 전장에서 공을 세우면 그때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다는 것이 알려져도 사람들은 개의치 않을 거예요.”
“흠. 당신 말이 맞소.”
류보여와 아내 성씨 부인은 아이의 이름을 ‘용’이라고 짓고 정성껏 키웠습니다. 용이 아홉 살 나던 해 인근 초계 향교로 공부를 하러 다녔습니다. 집에서 향교까지 거리가 십리(4㎞)나 되었지만 용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공부하러 다녔습니다.
용은 다른 동무들에 비해 덩지가 아주 큰 편이었습니다. 게다가 붙임성도 좋아 아이들과 잘 어울렸습니다. 더욱이 똑똑하기까지 하여서 훈장선생님으로부터 늘 칭찬을 들었습니다.
향교 수업이 끝나면 용은 친구들과 함께 전쟁놀이를 하였습니다. 향교 동무들을 두 패로 나누어 진지를 지키고 공격하는 놀이를 하였습니다. 처음엔 함께 공부하는 형이 대장을 하였으나 용의 작전에 따라 항상 승리를 거두게 되자 나이 많은 형이 대장 자리를 양보해주었습니다. 그 바람에 용이 대장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용은 무술 실력도 동무들에 비해 뛰어났습니다. 여러 명이 맞붙어 무술을 겨룰 때면 용이 혼자 10명을 해치우는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때엔 순간적이 힘을 발휘해 동무들의 키를 훌쩍 뛰어넘기도 해 동무들이 탄성을 지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용이 등교할 때 어머니와 함께 아침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어머니께서 아버지 병환에 쓸 약초를 직접 캐러 가는 길이라 가는 길까지라도 배웅해드리고자 함이었습니다. 날이 좋지 않으니 다음에 가시라고 말렸는 데도 어머니는 한사코 가야한다고 하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께선 점심 전에 돌아오겠다고 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갈림길에서 헤어졌습니다. 어머니와 헤어진 용이는 향교로 왔지만 무거운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날따라 검은 구름이 낮게 깔리고 바람도 심상찮아서 어머니께서 산길에 다치시지나 않을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눈치 챈 훈장이 말했습니다.
“용아,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민을 하느냐?”
“어머니께서 무월산과 국사봉으로 약초를 캐러 가셨는데 하늘을 보니 심한 태풍과 폭우가 쏟아질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음, 날이 심상치는 않구나. 그러나 걱정을 말거라. 비가 크게 내리면 인근 절에 가셔서 머무시겠지.”
“네….”
용이는 훈장님의 말씀에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여전히 눈이 자꾸만 산으로 향하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한시진도 지나지 않아 뇌성 번개가 치면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용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산을 쳐다보았습니다. 먹구름이 산을 에워싸고 있었고 그 속에 번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번쩍이고 있었습니다. 관정사 옆으로 시내에서 흐르는 빗물이 콸콸 소리를 내는 것이 들리는 듯도 하였습니다.
“스승님, 아무래도 어머니가 걱정되어 제가 국사봉으로 가봐야겠습니다.”
“아서라. 어머니께선 비가 그칠 때까지 인근 절에서 기다리면 되지만 니가 산을 타고 올라가다가 행여 이 비에 다칠까 걱정이구나.”
“저는 괜찮습니다. 어머니께서 오전 나절에 집으로 돌아오신다고 하셨기 때문에 아마 지금쯤 산을 내려오고 계실지 모를 일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어머니 마중을 나가야겠습니다.”
“아직 너의 나이 열 살도 안 되었는데 어찌 어머니를 모시고 산을 탄다는 말이냐? 괜히 어머니께서 너를 보호하시려다 변이나 당하지 않으실까 걱정이다.”
“훈장선생님, 염려 놓으십시오. 제가 어리긴 해도 거뜬히 어머니를 모시고 산을 내려올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용은 쏜살같이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한달음에 산의 초입까지 달려간 용은 사정없이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에도 개의치 않고 속도를 더 내어 달렸습니다.
정곡마을 뒤쪽 불메골에 다다랐을 때 용은 멈췄습니다. 계곡을 따라 황톳물이 콸콸 넘쳐 흘렀기 때문입니다. 용은 그러나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주변 버드나무 잎을 쭉 훑어서 황톳물 위로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버드나무 잎이 구름다리처럼 개울 건너편까지 펼쳐졌습니다. 버드나무 잎이 공중에 떠있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용은 몸을 날려 잎을 밟으며 개울을 건넜습니다.
콸콸 넘치는 개울을 건넌 용은 다시 축지법을 이용해 산을 탔습니다. 두 고개를 넘고 국사봉 계곡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내를 건너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자칫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는 날이면 급물살에 휩쓸려 목숨을 잃을 게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어머니! 잠깐 계셔요.”
아들의 목소리를 들은 성씨 부인은 주춤하며 고개를 들었습니다. 냇물 건너편에서 용이가 뛰어오고 있었습니다.
“용아, 위험하다. 그냥 거기 서 있거라!”
그 순간 성씨 부인이 발을 헛디뎌 급류에 휩쓸리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용이는 경공법을 이용해 순식간에 넓은 개울을 건너뛰어 어머니를 부축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산에서 위험에 처해있던 어머니를 무사히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초계면 전체에 번지면서 용은 어르신들의 칭찬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합천 초계에 효성이 지극하고 무예가 뛰어난 소년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몇 년 지나지 않아 전국에 퍼졌습니다. 충청도에 사는 김 대감은 정승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 그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어졌습니다.
김 대감에겐 비슷한 또래의 여식이 있었는데 사위를 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합천 초계로 딸과 함께 갔습니다. 김 대감은 그런 속내가 있었지만 딸에겐 모른 체 하고 딸과 함께 합천으로 향했습니다.
김 대감은 은근히 딸이 그 소년이 마음에 들길 바랐습니다. 김 대감 일행이 초계에 도착했을 때 용은 정곡지 상류 쪽 장사발자국바위 위에서 무술을 연마하고 있었습니다. 딸과 함께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 대감의 입가엔 미소가 스몄습니다. 김 대감 역시 무예에 조예가 깊었기 때문에 소년의 검법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을 금세 눈치챘습니다.
‘흠. 과연 소문대로군.’
딸과 함께 한동안 땀에 젖은 상태에서도 연마를 게을리 하지 않는 소년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김 대감의 낯빛이 갑자기 어두워졌습니다.
“이런!”
김 대감은 용이 땀에 절은 저고리를 벗는 순간 겨드랑이에 난 작은 날개를 보고말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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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로운 페이지를 만들어 3편을 옮기는 것보다는 그냥 이어서 하는 게 낫겠다 싶다. 지난 주 게을러 내 블로그에 옮기지 않았던 탓도 있다. 그래서 지난 줄거리는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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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범상치 않은 아이임이 틀림없다. 장차 나라에 큰 공을 세우거나 아니면 역적의 수괴가 될 터. 좀 더 지켜봐야겠다.’ 김 대감은 멀리서 한참 소년을 관찰하다가 딸을 데리고 충청도로 돌아갔습니다.
용의 무술 실력은 일취월장(日就月將)하였습니다. 용이 14살 되던 해가 임진(壬辰)년이었는데 이때 일본에서 대규모 군사들이 쳐들어와 난리가 났습니다. 이를 임진왜란이라고 하지요. 예전 대마도를 본거지로 한 왜구들이 부산 등지에서 설쳐대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부산포로 쳐들어온 왜군들은 파죽지세로 부산진성까지 쳐들어갔습니다. 부산진첨절제사 정발 장군도 갑작스런 왜군의 침입에 성을 사수하고자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중과부적이었습니다. 부산진성을 함락한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는 날이 밝자 바로 동래성으로 진격했습니다. 오전 나절 동래성에 도착한 왜군은 성을 에워쌌습니다.
동래성 망루에서 자꾸 물밀듯 몰리는 왜군의 병력을 파악하던 부사 송상현은 최대한 오래 버티는 전략 말고는 다른 수가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요청했던 지원군마저 동래성의 정황을 보자마자 승산 없는 싸움이라 여기고 되돌아간 뒤이기도 했습니다.
송상현은 망루에서 적장 고니시 유키나가를 내려다봤습니다. 유키나가는 말에 오른 채 몇 걸음 앞으로 나와 기고만장한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동래부사는 들으라. 너희가 이길 수 없는 전투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터. 싸우겠다면 싸워줄 것이로되 만약 싸우지 않으려거든 길을 열어라.” 유키나가는 말을 끝내고 바로 말고삐를 당겨 말이 앞발을 들게 했습니다.
“히~ 힝힝힝~.” 말이 내지르는 소리가 조선군을 비웃는 듯 들렸지만 송상현은 유키나가보다 더 목소리를 높여 맞받아쳤습니다.
“싸우다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비키기는 어렵구나. 노략질이나 일삼는 도적들의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어디 보자꾸나!” 송상현은 바로 지휘봉을 들어 공격신호를 보냈습니다.
“궁수 앞으로! 발사!” 옆에 서 있던 부장이 부사의 신호를 받아 공격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동래성곽에서 일제히 수천 개의 화살이 왜적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동래성 가까이 서 있던 왜군들은 허둥거리며 뒤로 물러났습니다.
일본군은 한동안 조선군과 대치하다 성곽이 낮은 동문으로 향했습니다. 왜군은 가슴에 화살을 받으면서도 계속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조선군 역시 왜군의 조총 공격에 겹겹이 쓰러졌습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왜군의 공격을 더는 막기 어려워졌습니다. 성벽을 넘어온 왜군이 안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조선군은 일당 백으로 막아섰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동래성은 함락된 거나 다름없어졌습니다. 송상현은 성내 우물 쪽으로 밀리며 끝까지 항거했습니다. 송상현과 여섯 명의 병사가 남았습니다. 이들을 중심으로 수백 명의 왜군이 둘러쌌습니다. 송상현은 장검 손잡이를 꼭 움켜쥔 채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졌습니다. 그때 왜군들 사이가 벌어지더니 유키나가가 걸어나왔습니다.
“당신이 부사인가?”
“그렇다. 어서 덤비거라!”
“이건 끝이 난 싸움이다. 항복하라.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어림도 없는 소리 말라. 내가 목숨을 구걸하고자 왜놈들의 개가 될 성싶으냐?”
“개가 되든 소가 되든 살아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좋지 않은가? 주군을 바꾸어 섬기기만 하면 죽는 날까지 평생을 호의호식하면서 살 수 있게 해주겠다.”
“당치않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너희와 같을 거라고 여기지 마라.”
“오냐. 소원대로 죽여주마! 죽여서 너의 머리를 조선의 왕에게 선물로 바쳐야겠구나. 쳐라!”
이때 송상현은 우물 위로 뛰어올랐습니다.
“네놈들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송상현은 장검을 거꾸로 쥐고 자신의 가슴에 찔러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우물 아래로 몸을 던졌습니다.
“이런! 지독한 놈.”
“장군 우리도 따라가겠습니다.”
송상현 부사의 부하들도 따라서 우물 속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거의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라 왜군은 멍하니 쳐다만 볼 뿐이었습니다.
동래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조정에 전달되었습니다. 선조대왕은 손톱을 깨어물고 근정전 안을 왔다갔다하였습니다. 지금 이대로라면 전 국토가 왜적에 의해 도륙 날 것이 틀림없다. 그때야 선조대왕은 9년 전 이율곡이 국방강화를 주창했을 때 귀담아들었으면 이번 왜란을 겪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후회했습니다.
“전하 왜적들이 합천 대야성까지 진격해 오고 있다 하옵니다. 이 정도의 속도라면 사흘 안에 이곳 한양까지 쳐들어올 가능성이 농후하옵니다. 명나라로 피신해 옥체를 보존하옵소서.”
내관이 다급한 목소리로 선조에게 아뢰었습니다. 그러자 선조는 갈등에 휩싸였습니다.
‘왜적의 목표는 내 목일 것이다. 종묘사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가 살아야 한다. 그러나 왜군이 백성을 짓밟고 있는데 나 혼자 살자고 도망을 간다면 백성의 어버이로서 그것도 못 할 짓이다. 아, 어쩌면 좋을꼬?’
그러나 선조가 고민의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신하들은 평양성으로 피신할 준비를 다 마쳤습니다.
“전하 지금 나서지 않으면 옥체를 보존키 어렵사옵니다.” 내관들은 망설이는 선조의 등을 떠다밀 듯이 하면서 연(임금의 가마)에 태웠습니다. 그날따라 비가 장대같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합천에선 정인홍이 의병을 불러모으고 있었습니다. 14살 건장하게 자란 용이 의병모집 소식을 듣고는 아버지께 자신도 이번 난에 의병으로 참전해 백성과 나라를 구하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네 비록 아직 어린 나이지만 장한 생각이구나. 정인홍 의병장께 전할 서찰을 써 줄 테니 찾아가거라.”
류보여는 아들의 모습에 흐뭇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아들이 전쟁터에서 성과를 올려 무관으로서 나라의 기둥이 되길 은근히 바랐습니다.
정인홍을 찾아간 용이 서찰을 전하자 의병장 정인홍은 찬찬히 읽으며 입에 미소를 띠었습니다.
“흠, 네가 그 아이로구나. 너의 생각이 기특하다. 이틀 후 왜군이 포진해 있는 상주를 칠 것이다. 너에게 서른 명을 줄 것이니 선봉에 서서 적의 방어망을 뚫어보거라.”
용은 이틀 후 의병 서른 명과 함께 적진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을 입구 숲 속에서 관찰하니 조선 백성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왜군들만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용은 점심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왜군들이 밥을 먹느라 방어태세가 잠시 흐트러지는 때를 노려 일격을 가한다는 계획입니다.
때가 되었습니다. 용은 의병 서른 명에게 각기 3명씩 조를 짜서 쥐도 새도 모르게 적을 하나씩 제거해나가는 전술을 지시하고 작전을 펼쳤습니다. 용의 조가 마을 골목에 들어섰을 때 왜군들이 용을 발견했습니다.
“누구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용의 칼날은 순식간에 8명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뒤따르던 의병들은 용의 전광석화 같은 무술 실력에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용의 작전은 유효했습니다. 적이 방심한 틈을 타서 소리없는 바람같이 처치하는 전술은 왜군 200명을 순식간에 제거하는 효과를 보았던 것입니다. 아군은 어느 누구도 손끝 하나 다치지 않았습니다. 완벽한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서른 명의 의병과 함께 본진으로 돌아온 용은 정인홍 의병장에게 전과를 보고했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좀 나이가 든 의병이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대장님, 이 도련님 무술 실력이 장난 아닙니다요. 눈 깜짝할 사이에 왜군들이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는데, 우린 거의 구경만 했습죠. 대장님께서 직접 보셨어야 했는데. 헤헤.”
용은 정인홍이 이끄는 전쟁마다 참전해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정인홍의 의병은 왜군에게 두려운 존재로 각인되었습니다. 왜군들은 산 속에서 정인홍의 의병부대를 만나게 되면 도망갈 궁리부터 하였습니다. 정인홍의 신임을 얻은 용은 늘 선봉장에 서서 왜적을 물리쳤습니다.
용의 무공은 날로 높아져 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용의 지도력도 여느 의병장 못지않았습니다. 나이는 비록 어리지만 용을 따르는 아저씨와 형님들이 많았습니다. 어느새 용은 다른 의병들로부터 장군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우리 용이 장군 만세!”
용맹하고도 뛰어난 지략을 지닌 용의 의병 활동은 조선의 의병과 관군에게는 용기를 주었고 반면 왜군에게는 공포로 다가가 전쟁을 전반적으로 유리하게 이끄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마침 남해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이 백전백승을 거두는 바람에 육지에서 그렇게도 설쳐대던 왜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무기와 식량의 보급로를 차단당한 왜군의 전력은 급격히 무디어졌습니다.
전쟁은 벌써 4년째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용의 나이 벌써 열여덟, 장성한 어른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처음 왜란이 시작되었을 때 의주까지 피신했던 선조가 다시 한양으로 돌아온 것은 조선의 수군과 의병들의 활약 덕분이기도 했습니다. 선조는 전선에서 올라오는 장궤를 보면서 일희일비하였습니다.
여전히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지만 왜군도 이제 지쳐서 처음처럼 강력하게 휩쓸고 지나가는 동력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전쟁 중이긴 하지만 짧게는 며칠, 길게는 서너 달까지 전쟁이 없는 날도 있었습니다.
이런 때에 정인홍은 조정에 나가 선조대왕을 알현했습니다. 정인홍은 임금에게 내금위장으로 자신의 휘하에 있는 용을 기용하면 어떻겠냐며 천거했습니다. 선조 역시 용의 무공이나 애국심을 그동안 각종 보고서를 통해 확인한 사항이므로 좋다고 하였습니다.
며칠 후 조정에서는 어전회의가 다시 열렸습니다. 선조가 신료들에게 용을 내금위장으로 임명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몇몇 신료들이 반대를 하였습니다.
“전하, 류용이란 자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종2품 내금위장을 맡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옵니다. 통촉하여 주옵소서.”
“내 듣기로 류용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그 애국충절의 마음을 의심할 바 없고 무공 또한 뛰어나니 짐을 보필하는 데 조금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오. 괜한 반대로 짐의 심기를 불편케 말라!”
선조는 몇몇 신하의 반대를 단호하게 뿌리치고 발표한 대로 이른 시일에 임명식을 거행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용은 더 큰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임용식이 있기 하루 전, 용은 한양으로 갈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각 조정에서 신하가 올린 장궤를 본 선조대왕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습니다.
‘얼마 전 이몽학이라는 자가 충청도 홍산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매 권율 장군이 토벌군을 보내어 진압했습니다. 반란군 중에 생포한 자가 있사온대 반란을 도모한 역적들의 이름을 실토받은바 다음과 같습니다. 최담년, 곽재우, 고언백, 류용, 홍계남, 김덕령’.
그 명단에 바로 내일이면 왕실을 지키는 내금위대장으로 임명할 류용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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