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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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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산책]조각품 감상하며 여유부리기

통영시민문화회관 앞 남망산조각공원 유명조각가들의 작품이 있는 산책길


무더운 여름 햇볕이 여름과 초가을 내내 기승을 부리더니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 가을비가 촉촉이 내린 뒤로 제법 쌀쌀한 기온이 새벽녘 안개처럼 세상에 번진 듯하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해서일까, 쌀쌀해진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따스한 햇볕이 그리워진다.


날씨가 차가워지면 질수록 볕이 잘 드는 따뜻한 곳을 찾기 마련인데, 통영 남망산조각공원이 딱 그런 곳이 아닐까 싶다. ‘남망산(南望山)’.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산이라고 해석되겠다. 실제로 남망산 조각공원은 남쪽 통영해안과 접해 있어 겨울에도 다른 곳에 비해 따뜻한 편이다.


남망산조각공원은 통영시민회관 인근에 조성되어 있다. 아름다운 통영의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세계 유명 작가들의 조각작품 15점이 전시되어 있다.




남망산조각공원에 들어서서 처음 만나는 것은 15점에 속하지 않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인권 명예를 위한 정의 비’다.


이 정의 비는 1930년대 초부터 2차 세계개전 기간 일본 제국주의와 그 군대에 의해 일본군의 성노예로 강요당한 수많은 어린 소녀와 여성들을 기리고자 201346일 경남도민과 통영시, 경상남도에 의해 세워졌다.


정의 비를 감상하고 나서면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남망산조각공원 산책로가 시작된다. 길은 경사진 비탈을 깎아 옛성벽처럼 낮은 벽을 만들어 길을 내고 길의 오른쪽은 또 성곽의 돌을 쌓듯 해서 만들어 놓았다.






낮시간 햇살이 고스란히 몸을 데워준다. 조금만 걸어가면 첫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햇살에 반짝이는 네 개의 스테인리스기둥이 보인다. 첫눈에 작품임을 알아차린다.


이 작품은 일본의 이토 다카미치란 조각가의 작품으로 ‘하늘과 바다와 대지, 그리고 인간과 인간들이 수직으로 만나는 지점을 상정한 움직이는(니케틱) 조각’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방문했을 때엔 움직이지 않았는데, 이 수직 스테인리스기둥이 수평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사계와 기후, 그리고 자연의 변화가 작품의 표면에 반영되면서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제목은 ‘4개의 움직이는 풍경’이다.


작품을 보면서 걷다 보면 햇빛에 보석처럼 빛나는 통영바다와 멀리 미륵산이 작품과 어울린다. 이 네 개의 스테인리스 기둥은 종종 나 자신을 비춰주기도 한다. ‘4개의 움직이는 풍경’을 지나친 후 뒤돌아 보면, 이 네 개의 기둥이 태양의 빛을 서로 반사하며 뭔가 황홀한 판타지를 연출하는 듯하다.





산책길에서 다음으로 만나는 작품은 좀 민망하다. 팻말에 적힌 제목을 보니 ‘허공의 중심’이라고 되어 있다. 김영원 작가의 작품으로 “삶과 죽음, 영혼과 육제, 정신과 물질, 의식과 무의식 등 이원론적 사고가 지배하는 이 세상의 대립과 분열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고귀한 염원을 나타낸 인체조각”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설명을 읽고 나니 뭔가 의미가 있을 듯한데, 작품을 한참 쳐다보고 있어도 퍼뜩 뭔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쉬 잡히지 않는다. 함께 간 아내가 핀잔을 준다. 민망한 작품 앞에서 너무 오래 서 있는 것 아니냐고.



통과가능한입방체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고는 발길을 옮긴다. 이번에 만나는 작품은 독특하다. 이런 것도 조각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베네수엘라의 헤수스 라파엘 소토라는 사람의 작품이다. 제목은 ‘통과 가능한 입방체’. 이 작품은 누구나 작품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안으로 들어가야 감상이 가능한 작품이다.


쭉쭉 늘어진 비닐 줄기 사이로 들어가면 장대비가 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갈대숲을 헤치며 걷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지나고 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는 비닐줄기들. 동반자와 함께라면 동심으로 돌아가 여기서 잡기놀이를 해도 재미있다.


작품 설명 팻말에는 “관락객들이 직접 통과할 수 있게끔 공간을 구성한 조각이다. 이 공간 속으로 걸어드어가 작품에 직접 가담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의 개녕을 체험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작품의 요소다.”라고 적혀 있다.



잃어버린조화-몰두


‘통과 가능한 입방체’를 통과하면 통나무가 기어다니는 듯한 작품을 만난다. 프랑스 작가 질 뚜야르의 ‘잃어버린 조화/몰두’라는 작품이다.


“연결된 여러 토막의 통나무가 모터의 동력에 의해 움직임을 보여주는 조각이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아무리 기다려도 움직일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속으로 ‘전원을 뽑아버렸군’하고 이어지는 설명을 읽는다.


“이 작품은 인체의 반복된 움직임이 생명력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주체가 상실된 수동적이고 무의미한 움직임을 수 있다는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순간 작품보다 작품 설명이 더 이해하기 어려운 때가 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스치고 지나간다.



나무데크와 전망대그리고 통영앞바다, 멀리 미륵산.



최고의 순간을 위해 멈춰서 있는기계.


나무데크가 아래쪽 전망대로 이어졌다. 햇살이 반짝이는 곳이다. 기온이 상당히 떨어진 날씨에도 이곳만은 따뜻한 기운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을 지나 만나는 작품은 선박에서 사용하는 닻과 검은색 철 구조물이다.


‘최고의 순간을 위해 멈춰 서 있는 기계’. 스웨덴의 에릭 디트망이란 작가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레디메이드’ 작품이다.


‘레디메이드’란 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이 작품은 철 구조물 위에 다양한 기성품들을 결합시킨 조각이다. 설명을 보면, 이 작품은 “하늘을 향한 동경의 세계를 상징하는 계단에서 미지의 세계를 지향하는 인간의 열정을 표현”하고 있다.



뒤집힌무덤과 강구안 풍경.


구석을 돌아 다시 나오면 넓고 비탈진 곳에 무슨 악기문양 같은 돌조각품이 보인다. 자박자박 그곳으로 가까이 걸어가면 상당히 큰 돌임을 깨닫는다. 제목을 보니 ‘뒤집힌 무덤’이라고 적혀있다.


거북모양의 중국 남방식 무덤을 거꾸로 엎어놓은 형상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황용핑 중국 작가의 작품이다. 죽음에 대한 이중부정을 통해 거대한 생명력을 암시한단다. 내용은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딱 양지바른 곳에 작품이 설치되어 있고 앞에 조화도 꽂혀 있으니 신식고인돌 무덤 같다는 생각은 든다.




출산.


여기서 되돌아 나오면 약간 넓은 공간을 만나고 이 곳을 지나 대나무 숲으로 향하면 그늘이 많은 숲길이다. 숲으로 들어서면 왼쪽에 눈이 썩 좋지 못한 사람이라면 무슨 벌레 조형인지 퍼뜩 알아차리기 어려운 동상이 있다.


가까이 가서 보고서야 역시 민망한 포즈의 조각품임을 깨닫는다. 도깨비방마이 같은 곳 위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이 쪼그려앉아 있는 모습이다. 작품 제목을 얼른 찾지 않을 수 없다.


‘출산’. 앤터리 곰리라는 영국 작가의 작품이다. “역동적이며 안정적인 두 개의 인체의 형상을 결합시킨 철주물 조각이다. 정확한 인체비례와 인체묘사를 기초로 한 이 작품은 인체라는 소우주를 통해 초자연적인 우주의 원리와 생명력, 그리고 영적인 활력을 표상하고 있으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장조와 탄생의 계기를 표현하고 있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은 또다시 두 번째로 보았던 ‘허공의 중심’처럼 설명을 보고 작품을 보고를 반복하게 만든다. 아내가 저만치 가서는 “빨리 안 오나!” 한다.



감시초소.


이제 제법 산길을 걷는 기분이 난다. 오르막도 있다. 길을 따라 어느 정도 걸으니 무슨 초소 같은 게 보인다. 이런 곳에 웬 초소지? 했는데, 작품이다.

제목 자체가 ‘감시초소’다. 미국의 토니 아워슬러란 작가의 작품이다. 설치조각으로 초소 안에는 TV가 설치되어 있다. 영상과 음향을 체험하진 못했지만 설명문을 읽으니 “이 작품은 미디어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와 인간의 영혼에 미친 영향을 진지하게 고찰할 뿐만 아니라 소외된 현대인들 사이의 다양한 심리적 관계를 분석”하고 있단다. 영상을 보진 못했지만 얼핏 이해가 되긴 한다.



출항지.



망산.


초정 신석정 시비를 지나 만난 작품은 심문섭의 ‘은유-출항지’란 작품이다. 배와 부두의 모양을 단순화했다는 느낌이 있다. 점점 추상적 조각품에 익숙해지는 느낌이다.


출항지 옆에는 ‘망산’이란 작품이 있다. 대니 카라반이라는 이스라엘 작가의 작품이다. 언뜻 보면 이게 무슨 작품일까 싶은 마음이 든다. 옆에 있는 무덤도 작품일 거라는 계산이 선다. 기하학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화강석들이 그렇게 추리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관계항-꿈꾸는언덕.


이제 조각공원 산책로를 4분의 3 정도 걸었나 보다. 지리적으로 보면 가장 높은 위치에 당도했다. 이곳에 평범해 보이는 바위 하나와 평평한 철판이 나란히 놓여 있다. 이우환 작 ‘관계항(꿈꾸는 언덕)’이란 작품이다.


도저히 설명을 읽어보지 않으면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추상작품이야 보는 사람 머리에 떠오르는 그림이 답이라고 하지만 왠지 이 작품은 딱 떠오르는 게 없다.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 사이의 관계를 통해 자연과의 명상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추상조각이다.” 설명문을 읽고서야 작품의 의도를 깨달았다.



물과 대지의 인연.


한참 걸어내려 가면 다시 통영시민회관을 만난다. 길 오른 쪽에 큰 철제 작품이 있다. 아주 익숙한 조각품이다. 경남도립미술관 입구에도 박종배 작가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이 작품은 ‘물과 대지의 인연’이란 작품으로 크게는 ‘순환’을 상징한다. 물도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순환하고 대지 역시 순환하고 있다. 작품을 빤히 쳐다보면 그런 순환의 철학적 의미를 담았다는 느낌이 든다.



반중력의 곡선.


시민문화회관 대공연장 바로 앞에 조각이 하나 설치되어 있다. 제목은 ‘반중력의 곡선’이다. 고도의 과학적 원리를 이용해 만든 조형물이다. 마놀리스 마리다키스라는 그리스 작가의 작품이다.



97꿈이야기.


그리고 주차장 가운데 설치되어 있는 분수(?)도 남망산조각공원의 작품이다. 마침 해가 떨어지는 시간이라 석양과 어울린 이 작품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꽃 97 Ⅲ 꿈이야기’란 도흥록의 작품이다. 그러고 보니 분수 물줄기처럼 뻗어나온 수많은 갈기들은 꽃의 수술을 나타낸 것이었군. 설명문을 보니 “주변의 자연이나 인공적인 환경과의 조화를 활기있게 연출함으로써 삶의 환희를 자극하고 인간의 건강한 유희본능을 충족시켜 준다”고 표현되어 있다. 야간에 각양각색의 조명을 비추면 더욱 아름답겠다는 추측을 해본다.


이렇게 한 바퀴 돌았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만 아주 여유 있는 걸음으로 주변의 것을 세세하게 관찰도 하면서 산책을 즐긴다면 의외로 느긋한 기쁨을 새롭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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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언론사 대표가 자신이 운영하는 언론사 홈페이지에 메인 팝업창을 이용해 자기 아들 결혼식 소식을 홍보했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일까? 아니면 언론인으로 부적절한 처신일까?


투데이에너지라는 인터넷신문에서 그렇게 홍보를 했고 미디어오늘에서 보도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5986


이 기사는 SNS를 통해 퍼뜨려졌다. 


난 댓글로 "얼척이 없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대동소이했다.


투데이에너지 대표이사는 낯이 굉장히 두꺼운 모양이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최소 6일 이전부터 팝업창이 띄워져 있었다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낯간지러울 텐데... 차라리 다른 언론에 부탁해서 홍보 좀 부탁을 하든지...


아무리 투데이에너지가 밝혔듯이 다른 사람들의 소식도 이렇게 팝업창에 소개한다지만...


그래도 그렇지. 공적인 일이었다면 이해하겠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다.


SNS 누군가처럼 실없는 웃음이 나는 이유다.


세상이 되바라져도 너무 되바라졌다는 생각이 되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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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가 쓰러지면 큰 도인이 나타난다는데…

통영 벽방산 안정사의 산내 암자 은봉암 성석(삼도사바위)에 얽힌 이야기


인터넷에서 사찰 사진을 검색하다 보면 커다란 칼처럼 생긴 바위가 암자 기와에 딱 붙어 있는 사진을 발견할 때가 있다. 독특한 모습이어서 워낙 잘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통영 벽방산 안정사 산내 암자 은봉암과 은봉성석 사진이다.


이 은봉성석이라는 바위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얽혀있다. 은봉암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장파화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는데 높이 7m의 이 은봉성석 덕에 이곳은 벽방산 안정팔경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은봉암은 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제목의 책을 쓴 성철 스님이 1951년 하안거를 한 곳이기도 하다.



통영시 광도면 덕포리를 지나는 길. 석가산의 기암이 오묘한 모습으로 방문객을 반긴다.


전국을 떠돌며 운수납자 생활을 한 성철 스님이 은봉암 성석에 얽힌 전설 때문에 일부러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하였겠나만 전설은 원래 이곳에 세 개의 바위가 나란히 서 있었는데, 바위가 하나씩 쓰러질 때마다 큰 도인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마지막 하나가 쓰러지면 그때 마지막 도인이 나타난다는 얘긴데, 그 때문에 이 바위들을 삼도사(三道士) 바위라고도 부른다.



안정사 주차장에 도착하면 벽방산 숲길 안내도를 만난다. 벽방산 650m, 고성 통영 거제에선 가장 높은 산이다. 주차장에서 은봉암까지 1㎞ 거리다. 시간도 30~40분 거리다.



벽방산의 유래를 써놓은 안내판이 있다. 벽방산을 불가에선 벽발산이라고 부른단다. 부처의 제자 가섭존자가 벽발(바리때)를 받쳐 들고 있는 모습이어서 그렇게 이름지어졌다고 한다. 벽방산의 정상은 상봉, 또는 칠성봉이라고 부른다.


600년 전 첫 번째 바위가 쓰러졌을 때 해월선사가 득도했으며 그리고 300년 뒤엔 종열선사가 득도했다. 이제 삼도사 바위는 마지막 한 분의 득도를 기다리며 하단부 금이 간 채 세월을 보내고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 삼도사 바위에는 두 가지 전설이 전한다. 통영시지에 그 내용이 실려있다.


먼저 두 번째 득도한 종열선사가 주인공으로 전하는 전설이다.


300년 전 한 부인이 어린 자식 하나를 데리고 살기 좋은 따뜻한 고장을 찾아 거제도에서 작은 나룻배에 몸을 싣고 건너편으로 바라보이는 고성땅 뭍으로 건너고 있었다.


나룻배가 바다 가운데쯤에 이르자 부인은 갑자기 산기가 있더니 사내아이를 낳게 되었다. 그 순간 넘실대던 파도가 멎어 해변이 마치 거울같이 반듯해지며 일순간 온 세상이 얼어붙은 듯 돛단배가 꼼짝 않고 그 자리에 붙박였다.



벽발산 안정사 일주문이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금단청에 지붕을 높이 올려 위엄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사찰 안으로 들어가려면 오른쪽으로 난 계단을 올라야 하기 때문에 일주문의 위치와 방향이 애매하게 되어 있다.



큰 바위 위에 자그마하게 여러개를 쌓아 올린 막돌탑. 여러 사람이 저마다 정성을 들여 소원을 빌었으리라.


놀란 사공이 “이는 분명히 이곳 바다의 용이 조화를 부린 것이 분명하다.”라면서 갓 태어난 아기를 용왕님께 바쳐야만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이 온전히 살아날 수가 있다고 하면서 아기를 바다에 던져 고사 지낼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부인은 절대로 아기를 버릴 수 없다며 대신 아기의 탯줄을 얼른 끊어 바다에 내던졌다.


그러자 놀랍게도 다시 물결이 일며 배 또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공은 열심히 노를 저어 무사히 해안에 다다르자, 부인에게 “이 아기는 예사로운 아기가 아닌 듯 싶으니 앞으로 훌륭히 키우시오.”라면서 뱃삯마저 사양했다. 이렇게 하여 지금의 광도면 황리 해안에 내린 부인은 어린 맏아들을 걸리고 갓 태어난 아기를 안은 채 면화산 기슭 갯가인 춘원포(春元浦)에 정착하게 되었다.


어느 듯 10년 세월이 지난 어느 날, 벽방산 은봉암의 노스님이 부인에게 찾아와서는 댁에 서기가 어린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큰 인물이 자라는 것으로 여겨지니 지난날 나룻배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을 부처님 곁에서 훌륭하게 키우는 것이 어떠하냐며 간곡히 부탁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종열선사(宗悅禪師)가 출가하게 되었다. 종열이 입산하여 장좌불와 수도를 한 지 10년 되는 어느 날이었다. 이곳 암자의 왼쪽에 높이 4m에 달하는 바위 하나가 갑자기 굉음을 내며 무너져내렸다.



안정사를 지나 은봉암으로 오르는 등산로. 10월 하순이라도 남쪽 따뜻한 지역이어서 그런지 단풍이 많이 들거나 낙엽이 수북이 쌓이진 않았다. 고즈넉히 걷는 운치가 있는 길이다.



이곳도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어서 그런지 도토리를 먹는 산짐승들이 별로 없나 보다. 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들이 제법 많이 깔려 있다.



드디어 다다랐나 보다. 숲길 밖으로 훤하더니 비석같은 바위가 먼저 반긴다. 특이해 보이는데 오랜 세월 이런 바위를 그대로 두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 순간 종열은 도를 깨치고 ‘게송’을 읊으며 마당으로 나서고 있었다. 이 광경을 바라본 노스님은 젊은 수좌가 과연 득도한 것을 언뜻 알아차리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종열선사는 축지법을 행하여 사흘 만에 금강산 유람을 마치고 돌아왔다는 등의 많은 일화를 남기고 있다. 이런 전설이 얽혀 있어 통영 사람들은 ‘낙하암이문(落下岩異聞)’이라 부르기도 한다. ‘무너지는 바위에 얽힌 기이한 이야기’란 뜻일 테다.


또 다른 전설로 주인공이 해월선사인 경우다.



그렇게 오래 걸었던 건 아니지만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생각하니 푹 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이 계단만 오르면 은봉암 성석을 볼 수 있다.



은봉암 대웅전 격인 극락보전과 은봉성석이 눈에 들어온다.



은봉암 기와 끝에 칼처럼 생긴 바위가 딱 붙어 있다. 은봉성석이다. 삼도사바위 중 마지막으로 남은 바위다.



은봉성석 하단부에 금이 가 있다. 밀치기만 해도 무너져버릴 것 같다. 성철 스님도 이곳에서 수도를 하였지만 잘 버텼던 바위가 어느 누가 득도를 하면 무너져내릴까?



은봉성석 뒤에서 본 모습이다. 왼편에 있는 바위도 삼도사 바위로 누워있는 형태다.



등산로를 좀 더 올라가 촬영한 삼도사바위. 나머지 바위 두 개는 무너졌다는 느낌은 들지 않고, 이야기를 꾸민다면 두 번째 전설처럼 헤올이 10년 수도를 마치자 쩍 갈라졌다는 표현이 맞겠다 싶다.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 어느 봄날. 그림처럼 아름다운 남해에 돛단배 한 척이 육지로 향해 들어오고 있었다. “여보, 우리가 마치 요람에 든 아기 같구려.” 외로운 섬 생활을 청산하고 육지로 이사하는 노부부는 더없이 흡족했다.


그들이 이처럼 즐거워하는 것은 배 안의 아늑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식이 없어 적적하던 이 부부에게 뒤늦게나마 경사가 생긴 것이다. “뱃속의 아기도 기분이 좋은가 봐요.” “, 그래요!” 노인은 미처 아기 생각을 못했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웃었다. 육지에 오르면 집을 마련하고 아기를 낳아 단란한 가정을 이룰 꿈에 부풀어 얼마쯤 왔을 때다.


“아니 배가 왜 꿈쩍을 안 할까?” 노인은 재빨리 노를 챙겨 저었다. 그러나 배는 조금도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뿐인가. 찰랑대던 물결도 굳은 듯했다. “여보, 제 뱃속의 아기도 꼼짝을 안 해요.” “아기도 놀지 않는다고?”


노인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모처럼 희망을 안겨준 태아마저 움직이지 않는다니 그저 눈앞이 캄캄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으앙!” 하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죽음처럼 고요한 바다의 침묵을 깼다. 예기치 못했던 순간적인 해산이었다.



은봉암에서 왼쪽으로 멀리 보이는 정상이 상봉 또는 칠성봉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은봉암 뒤편 바위 위에 오르면 단풍 든 사람주나무와 고로쇠나무, 당단풍이 섞여 어울려 있다.



은봉암 앞에는 여러 고로쇠나무가 나란히 서있다.



아래에서 삼도사바위를 올려다 본 모습. 앞에 있는 바위들이 무너져내린 것으로 상상했던 것일까.


“아들이다!” 정신을 차린 듯 노인은 엉겁결에 소리쳤다. 학수고대하던 아들을 얻고도 공포와 불안에 잠긴 노부부는 탯줄을 끊어 바다에 던졌다.


그 순간 또 이변이 생겼다. 탯줄이 바닷물에 닿자마자 배는 언제 멈췄느냐는 듯이 항해를 계속했고 바닷물도 정겹게 출렁거렸다. 아기의 건강한 울음소리는 경쾌하게 바다에 울려 퍼졌다.


신기하게 태어난 그 아기는 참으로 비범하게 자랐다. 노인은 바다마저 숨죽이게 하고 태어난 아들 이름을 헤올이라 했다. 커갈수록 재주가 뛰어났다. 책 읽기를 즐기던 헤올은 열 살 되던 해 입산의 뜻을 밝혔다. “, 입산출가를 하겠다고?” “, 부모님 슬하를 떠나 도를 닦을까 합니다. 허락하여 주십시오.” “네 나이 이제 겨우 열 살인데 도를 닦겠다니 알 수 없는 일이로구나.”


헤올의 부모는 펄쩍 뛰었다. 그러나 보통 자식이 아님을 깨달은 노인은 할멈을 달래 헤올의 출가를 허락했다. 헤올은 자신에게 영감이 계시하는 대로 발길을 옮겼다.


도착한 곳은 지금의 통영시 광도면 안정리 상촌마을 뒤 벽방산 은봉암. 그 암자엔 고매한 도승이 한 분 있었다. 스승을 만났으나 나름대로 신념을 지닌 헤올은 도승의 가르침에 따르려 하지 않았다. “스님께서 절 어리다고 하심은 마치 제 부모님께서 출가를 걱정하시던 자애로운 정과 같아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스님, 제가 암자 밖 저 큰 바위에서 10년 간 도를 닦게 해주십시오.”


꾸지람도 해보고 달래도 보았으나 헤올의 뜻은 돌처럼 굳었다. 기어코 헤올은 거대한 바위에 도의 자리를 정하고 앉았다. 계절이 바뀌어 살을 에는 듯한 겨울 한파가 몰려왔다.


“헤올아, 바람이 차다. 네 힘으론 이 추위를 이기지 못할 테니 어서 암자로 가자.” “아닙니다. 꼭 이겨내겠습니다.” 2, 3년 해가 거듭함에 따라 헤올은 청년으로 변해갔다.


“벌써 7년째다. 헤올아, 이러다간 입도하지도 못한 채 쓰러지겠다.” 도승은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었다. “괜찮습니다. 조금만 더 저를 지켜봐 주십시오.”



안정사 대웅전. 안정사는 위 은봉암보다는 좀 늦은 신라 무열왕 때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통일신라 시대엔 14개의 방을 갖춘 굴지의 사찰이었다는데 그에 비하면 지금은 상당히 규모가 줄었다. 안정사의 동종은 보물 제169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렇게 10년이 되던 날 도승은 더 이상 볼 수만은 없어 잣죽을 끓여서 헤올에게 갔다. “그 자리에 앉은 지 벌써 10. 네 힘으로 어지간한 것을 이제 알겠으니 이 잣죽이나 먹고 깨달음을 기다려라.”


헤올은 아무 응답이 없었다. “아니, 얘가?” 도승은 헤올이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직감했다. 노스님이 섬짓 놀라는 순간 갑자기 뇌성벽력이 천지를 진동하면서 헤올이 앚은 거대한 바위가 두 갈래로 갈라졌다.


그제야 잠자코 있었던 헤올이 몸을 털고 일어났다. “스님, 너무 오랫동안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스럽습니다.” “과연 크게 깨쳤구나.” 노스님은 헤올이 신통했다.


그 후 종열이란 젊은이가 이 바위에서 10년 정진 후 깨달음을 얻었다. 마을 사람들은 노스님과 헤올, 그리고 종렬 등 세 명의 도사가 깨달음을 얻은 이 바위를 삼도사 바위라 불렀다.


600년 전 혜월선사의 이야기와 300년 전 종열선사의 전설이 유사한 점으로 미루어 따로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을 달리하며 가미된 듯하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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