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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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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 경로잔치 기로연, 옛날엔 어땠을까?

거창향교 행사를 통해 본 우리네 덕목 경로효친 사상

 

기로연.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서 배웠을 수도 있겠으나 젊은 사람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단어다. 기로연은 조선시대에 들어 태조 이성계가 환갑이 되던 해 정2품 이상의 문신 중에 70세가 넘은 신료들에게 장수를 축하하기 위해 기영회에 직접 들어가 잔치를 베풀었던 데서 시작된다. 기로연이란 표현은 7대 임금인 세조 때 처음 등장한다.

 

기로연은 왕이 베풀었던 잔치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통틀어서 기로소에 들어간 임금은 태조, 숙종, 영조, 고종, 이 네 분만이라고 한다. 다른 신료와 달리 임금은 나이 제한을 60, 환갑으로 낮췄음에도 워낙 임금들의 수명이 짧다 보니 기로소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숙종은 59세에 들어갔다. 1대 태조 임금 이후 18대 임금을 거치면서 기로소 들어가는 임금이 없다 보니 59세라도 오래 산 것이라며 신하들이 간청을 해서 들어갔다는 것이다. 숙종은 그럴 수 없다고 한사코 사양했으나 신하들의 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잔치상을 받았는데, 그 과정이 어땠을지 상상이 간다.

 

거창향교 전경.

거창향교 충효회관 전경.

 

지난 10일 거창향교는 70세 이상 지역 어르신들을 모시고 기로연을 열었다. 기로연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향교에서 무슨 기로연?’ 하겠다. 향교는 말 그대로 임금이 사는 중앙이 아니라 지역의 교육기관이잖은가? 향교에서 기로연을 열었다면 임금이 지방 향교로 왔다는 것인가?

 

기로연의 의미는 조선 후기에 들어 크게 변하게 된다. 나라에서 경로효친 사상을 널리 알리고 고취시키기 위해 민간에서도 잔치를 베풀도록 장려했는데, 서원과 향교 단위로 지역의 70세 이상 어르신들을 위해 잔치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로 들어서면서 일절 기로연이 금지되었다가 광복 후에도 한참 지난 1070년대 들어서 유림을 중심으로 다시 개최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향교 중심으로 매년 음력 33(삼짇날)99(중양절)에 열린다.

 

하지만, 각 지역 향교의 사정에 따라 날짜는 정해져 있지 않고 나름대로 특정 날을 정해 기로연을 개최하고 있다. 참고로 지난 10일 거창향교가 기로연을 열었던 날은 음력 10월 그믐이었다.

 

거창향교 신석봉 전교가 축하인사를 하고 있다.

 

거창향교의 기로연은 향교 서예전시회를 겸해서 충효회관 2층에서 열렸다. 기로연 행사는 신석봉 현임 전교와 김광수 원임 전교, 최종길 성균관 유도회 거창지부장, 이성복 군의회 의장이 환영사와 축사를 통해 기로연의 의미를 되새겼고 인근 강남어린이집 아이들의 부채춤 공연, 이어서 이성복 의장의 축하노래 무대 등으로 진행됐다.

 

기록에 따르면 옛 기로연은 오전부터 기로연이 개최되었는데 이 잔치는 해가 지고 날이 어둑해서야 마쳤다고 한다. 참석 규모로 보면 지금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평균 수명이 길지 않았던 탓에 기로소 신료는 기껏해야 10명 안쪽이었고 게다가 당시 70세 이상이면 기력이 요즘 같지는 않았을 터, 그래도 80세 이상의 문신들에게만 가족들이 함께 참석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하니 노신들의 정신력을 시험한 잔치인가 싶기도 하다.

 

참고로 기로연의 ()’는 나이 70일 가리키고 로()는 나이 80을 가리킨다. 당시 사료를 보면 기로연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기영연(耆英宴)도 있었고 중구연(重九宴)도 있었다. 또 조선시대 이전에도 유사한 경로잔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기로연 행사장 벽에는 12회째를 맞은 거창향교 서예전 작품이 걸려있다.

 

중국의 당송시대서부터 있었던 기로 모임은 우리나라에선 고려시대 신종과 희종 때 문하시랑을 지낸 최당 등이 치사(致仕·벼슬을 마다함)한 뒤 유유자적을 목적으로 기영회를 조직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사한 경로잔치는 훨씬 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태조가 친히 참석하여 자격을 강화한 조선시대 형 기영회는 태종 때에 와서 폐단이 나타나 전함재추소(前銜宰樞所)를 따로 설치해 이들을 귀속시켰는데 세조 때에 명칭에 불만이 많아 이름을 기로재추소(耆老宰樞所)’로 바꾸면서 이를 줄여 기로소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현재는 대부분 향교에서 유림 출신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여는 경로잔치를 기로연이라고 일컫지만 차츰 유림이 아니더라도 초청받는 사례가 느는 추세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여성 어르신도 기로연에 초청받아 참석할 날도 있지 않을까 싶다.

 

지난 2009년과 2010년 서울 경복궁 수정전 앞에서 기로연 재현 행사가 정기적으로 열렸는데, 이때 진행했던 기로연 행사를 자료를 통해 살펴보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향교 인근 강남어린이집 원생들의 부채춤 축하무대가 펼쳐지고 있다.

 

1719년 숙종 때의 기로연이다. 먼저 수정전 월대에 연회석이 마련된다. 이윽고 임금의 거동을 알리는 엄고수가 북을 두드려 초음을 알린다. 제일 먼저 임금을 호위하는 내금위의 사금이 월대에 올라 경계태세를 갖추고 그다음, 임금의 권위를 상장하는 의장기 등이 등장한다.

 

호위 사금의 입장에 이어 휘()를 든 음악관리(협률랑)가 악공을 이끌고 등장해 전해진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러면 의식을 담당하는 집사관이 입장하고 뒤이어 임금이 여(가마)를 타고 연회장에 나타난다.

 

임금이 어좌에 앉으면 세자(경종)가 입장하고 잇따라 70세 이상의 노신들이 들어온다. 비로소 기로연이 시작된다.

 

집사들이 모인 노신들에게 잔치상을 차려주고 임금에게 술을 따르며 만수무강을 기원하면 궁중의 무희들이 나와서 춤을 추며 공연을 펼친다.

 

정악에 맞춰 초무(간단한 춤), 아박무(박을 치면서 추는 춤), 처용무, 그리고 북을 가운데 두고 4명이 돌아가며 추는 무고 등이 공연되고 나면 도승지가 임금의 교지를 대독하고 임금의 퇴장과 함께 기로연은 막을 내린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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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산책]제멋대로 기운 소나무 사잇길 ‘매력’

흐린 날, 밀양시 삼문동 체육공원 송림에서 거북 걸음으로 여유를 부리다


며칠이 지났다. 잔뜩 흐린 날씨에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어깻죽지에 툭툭 떨어질 것만 같았던 하늘이었다. 이런 날은 괜스레 울적해서 슬픈 영화라도 볼 양이면 금세 눈물이라도 뚝뚝 떨어뜨리고야 말, 그런 분위기여서 혼자 한적한 길을 걷는다는 것은 감정조절을 감당 못할 위험도가 높아 오감을 어느 정도 제어할 필요가 있다.


두꺼운 외투에 장갑, 모자를 쓰고 극단 밀양의 연극 공연을 보러 밀양청소년수련관에 가는 김에 조금 일찍 나서서 인근에 있는 삼문동 체육공원 송림 속을 거닐었다. 공연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서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이곳 송림은 두 군데로 나뉘어 있었다. 강둑 안쪽과 바깥쪽. 밀양시자원봉사센터 앞 주차장에 차를 대고 송림의 끝인 밀양축협 쪽에서부터 걸어나왔다.


숲길은 육각형의 정자에서부터 시작된다. 대개 정자를 이야기할 때 팔각정이 입에 익은데 육각정이라니. 그러고 보니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도 육각정을 두고 팔각정이라고 말들을 한다. 세어보면 분명히 육각인데…. 지붕은 모임지붕 형태다. 육각뿔 형태로 중앙 꼭짓점에서 6개의 추녀마루가 흘러내려 각을 이룬다.



실제로 우리나라 정자의 건축형태는 사각이 많다고 한다. 그다음이 육각, 사실 팔각은 그렇게 많지는 않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정자 하면 ‘팔각’을 연상할까?


옛 건축 양식은 불교식을 많이 따랐는데 8이란 숫자는 ‘팔정도’에서 알 수 있듯이 ‘깨달음’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옛 불교에선 팔관회 행사도 치렀으며 이런 과정에서 우리 민족의 인식에 ‘팔’이라는 숫자가 깊이 새겨진 듯하다.


오죽하면 전혀 다른 글자를 ‘팔’로 바꿔버린 일도 있으니, 바로 팔룡동의 원래 이름이 ‘반룡산’에서 비롯되었음을 보면 알 수 있다. ‘반룡’에는 동쪽의 용이란 뜻도 있고 승천하지 못한 용이란 뜻도 있다.


게다가 주역에서도 ‘팔괘’로 삼라만상을 말하고 있고 토정비결에서 ‘팔자’로 사람들의 운명을 점치고 있으니 오죽하랴. 그러하니 육각정도 팔각정으로 인식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이 육각정엔 아직 현판이 붙어 있지 않다. 건물에서 아직 니스 냄새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다. 내부도 깔끔하다. 겨울에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량인지 방풍시설을 잘해놓았다. 창문이 모두 달렸을 뿐만 아니라 드나드는 입구는 이중 문으로 되어 있다. 인근에 솔밭경로당이 있다.



이 송림은 왼쪽으로 문화체육회관과 청소년수련관을 두고 있고 오른쪽으론 삼문동 공설운동장을 끼고 있다. 그리고 좀 더 가서 둑을 넘으면 왼쪽으로는 밀양강 오른쪽으론 유성청구타운아파트와 밀양대우아파트를 끼고 있다.


이 삼문동 솔밭은 들어서는 순간 맨 처음으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길게 뻗은 소나무들이 이리 기울고 저리 기울어 막 혼란스럽게 자랐나 하는 것이다. 대개 산에서 자란 쭉쭉 벋은 나무들을 보면 기울기가 일정한데 비하면 분명히 뭔가 사연이 있는 형태이긴 하다.


그 이유를 머지않아 발견하게 된다. 둑 안쪽 솔밭은 길이 사방팔방으로 나 있다. 숲속에서 마구 다니지 못하도록 보도블록으로 길을 내어놓았다. 곳곳에 조명도 설치해놓은 것으로 보아 야간에도 괜찮은 분위기를 연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식수용으로는 보이지 않는 수도 시설이 보인다. ‘통일의 샘’이란 이름이 붙여져 있다. 1994년 민주통일자문회의 밀양시협의회에서 조성해 그런 이름을 가졌나 보다. 주변으로 학교를 마친 초등학생들이 뛰어놀고 있다.


여러 갈래로 난 길을 이리로도 가보고 저리로도 가본다. 구경하는 맛보다 걷는 운치가 더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니 길 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있는 나무도 있다. 그래 어디 나무가 길을 가로막고 버티고 섰겠나, 길을 만든 사람들이 울타리를 치다가 둘러가기 귀찮아서 그대로 길을 냈으니 그리된 것일 테지.



그런데 이런 나무가 왠지 밉지 않다. 걷다가 나무 기둥에 손을 얹고는 한 바퀴 돌아본다. 들어가지 못하게 울타리를 쳐놓은 안쪽의 소나무는 보기만 하는 관상용이지만 이 길 가운데 나무는 촉감을 허용하는 ‘감상용’이기 때문일 것이다.


팻말이 하나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니 ‘구절초(九節草)’란 글자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설명을 읽어보니 구일초, 선모초, 고뽕이라고도 하는데 가을에 피는 대표적인 야생화란다. 하긴 구절초란 이름 익숙하게 들어온 상태다. 간혹 개망초 또는 쑥부쟁이와 헷갈리긴 하지만.


지나고 나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이 동네 구절초 군락이 음력 9, 양력으로 10월이면 장난 아니게 장관이다. 표지판에 있는 것을 더 읽어 내려가면 5월 단오에는 줄기가 다섯 마디, 99일이면 아홉 마디가 되어 꽃이 핀다고 해서 구절초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참 신기하다. 이 구절초가 음력 달을 안다는 얘긴가?



꽃은 다 졌지만 구절초 군락을 벗어나 둑으로 올랐다. 그런데 밀양강의 멋진 경치보다 먼저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착시 아트’. 착시를 이용한 입체미술 작품이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녀서인지 그림은 많이 닳아 흐릿했다.


바위가 많은 연못에서 오리가족이 이리저리 헤엄을 치며 노는 모습이다. 안내 간판을 보니 한쪽 발로 딛고 서서 위태위태하게 물을 건너려는 모습의 사진이 있고 또, 오리가 지나가는 양쪽 바위에 양발을 걸터서서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린 모습의 사진도 있다. 또 아이와 함께 바위에 올라서서 오리를 보는 모습도 있다. 괜히 한 장 찍어보고팠다. 사람들은 별로 다니지 않고…. 그냥 갈까 머뭇거리던 중에 멀리서 빨간 점퍼차림의 할머니가 걸어온다.


“할머니, 재미있는 그림이네예. 한 장 찍어드릴까예?” 할머니는 귀찮을 법도 하건만 객의 요청에 이리저리 포즈를 지어가며 촬영에 응해준다.


둑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또 솔밭이다. 왼쪽으로는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철봉도 있고 사각정 쉼터도 있고 농구장도 보인다. 더 멀리 쳐다보면 영남루가 눈에 들어온다. 대략 현 위치에 대한 지리적 정보가 머릿속에서 가늠이 된다.



영남루 바로 아래 아랑각이 보이고 거기서 오른 쪽 위로 무봉사가 보인다. 성벽을 따라 쭉 올라가면 아동산 정상에 선 무봉대가 보인다. 저곳은 지난 3월 전설텔링 ‘태극나비, 훨훨’ 전설의 현장을 소개하면서 취재했던 곳이라 반가움마저 든다.



여기서 고개를 더 오른쪽으로 돌리면 “빠앙~!” 철로 위를 달리는 열차가 나타난다. 이곳에선 오랫동안 열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교통량이 많은 경부선이서 그런지 여객열차뿐만 아니라 화물열차도 종종 기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그 때문에 이곳 솔밭을 걷는 분위기가 더 있다.


솔밭으로 들어설 때 안내판을 발견했다. “이 소나무는 2000916일 제14호 사오마이 태풍(초속 29m) 내습에 의하여 가지가 부러지고 직경 42㎝의 주간이 뒤틀려 갈라진 것으로 자연의 가공할 힘을 가늠해 볼 수 있는 현장입니다.”



태풍에 의해 나무가 기울었다는 얘기다. 그제야 이 송림의 희한한 현상이 이해되었다. 많이 기울어진 나무는 지지대를 받쳐놓았다. 그런 나무가 곳곳에 보인다. 기울어진 나무와 바로 선 나무, 자세히 보면 밑동이 잘록하거나 베인 듯한 나무도 있다. 모두 어울려 사는 그들의 세계를 발견한다. 하긴 인간의 세상임에야.


잠시 숲을 빠져나와 탁 트인 강변을 걷는다. 청둥오리들이 한가로이 놀고 있다. 저 갈대숲 너머엔 해오라기도 큰 날갯짓으로 날아올라 제 짝 옆으로 가서 앉는다. 다시 그 너머로 새마을호 열차가 ‘더그덩 더그덩’ 소리를 내며 다리 위를 지나간다.



도래재. “언양 땅 넘어가면/석남고개//밀양 땅 넘어오면/도래재고개//일흔일곱 굽이굽이/소쩍새 울어//실안개 피는 자락/눈물 맺힌다//돌아서서 가신 님/돌아오는 고개”


이 솔밭의 끝에는 이재금 시인의 시 ‘도래재’ 시비가 있다. 밀양에선 잘 알려진 시인인가보다. 밀양문학회에서 이 정도의 시비까지 만들어 줄 정도면. 덕분에 몰랐던 시인과 그의 시 한 수를 익히게 되었다.


이 시비 앞은 여름에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밀양강 노천수영장. 무료로 운영되는 데다 시원한 송림이 바로 옆에 조성되어 있어서 하루 피서지로 최적격인 곳이기 때문이다. 다녀간 때엔 가뭄이 오래되어서인지 물이 없었다.


다시 솔밭 사이로 돌아오는 길. 하늘에서 빗방울이 콧잔등에 내려앉는다. 예감이 좋지 않다. 곧 빗방울이 굵어질 것만 같다. 느릿했던 걸음의 리듬은 급기야 총총총 빠른 템포로 바뀐다. 다시 둑을 넘어 내려오다 되돌아본 솔밭과 밀양강, 다시 찾을 만큼의 매력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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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삼문동 수변공원이다. 잡초가 듬성듬성 끈질긴 생명력으로 초록을 자랑하고 있지만 대부분 잔디가 깔려있어 걷기에도 폭신하니 좋다.


마침 간 날 수변 산책로는 공사 중이라 사용이 금지되어 있었다. 골프장(박세리가 치는 골프와는 다른)에서 모형차 경주장을 오가면서 느끼는 분위기는 광활하다는 것이다. 가족 단위로 놀러 온다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다. 


골프장은 연 6만 원, 하루 3000원 회원제로 운영하고 있었는데... 재미있어 보였다. 


다음에 아내와 함께 오게 되면 한 번 쳐볼까? 아, 골프채를 사야 하는 건가? 흠..


겨울 평일인데다 공사중이어서 사람들이 별로 없다. 주말이면 사람들이 제법 다닐 것 같다. 산책로는 공사중이지만 대신 잔디밭을 걸어다닐 수 있으니까. 폭신폭신 밟히는 잔디여서 걷는 재미가 있다.  

 


장미정원.

모형자동차 경주장.

도로변 데크 산책로.

육각정 쉽터 앞에 걸린 공사중 펼침막.

왼쪽 출입금지 펜스와 잔디밭으로 난 사람들이 다닌 흔적.

누런 잔디와 초록의 잡초(?) 군락.

겨울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가로수와 아파트의 조화.

골프치는 사람들.

골프장.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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