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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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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찾아서]“내가 영감 찾아 토영까지 왔소”

13일 한산대첩 축제 기간 세병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탈춤제 ‘통영오광대’


통영한산대첩제가 한참이던 813일 통영 세병관 마루에서 “얼쑤~!” 흥겨운 소리가 울려 퍼진다. 9회 대한민국 탈춤제가 16일까지 일정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13일은 개막하는 날이었고 통영오광대는 개막공연으로 연희를 펼쳤다. 원래 통영오광대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가 있어서 정월대보름 하루 앞날 시연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가산오광대나 수영야류와 달리 벽사의 성격보다 오락의 성격을 많이 반영함으로써 연희를 하는 날도 3월 보름과 4월 초 봄놀이 때, 그리고 9월 단풍놀이 때 연희로 놀게 되었고 최근 들어서는 4월 정기공연과 탈춤페스티벌이나 특별한 탈춤행사에 초청되어 공연을 하거나 한산대첩 기념행사로도 연희되고 있다.



통영오광대 깃발.


오광대라는 것이 산대도감에서 비롯된 것인바 산대도감이 해체되고 경기도 쪽으로 별산대가 조성되고 남쪽 경상남도로 오면서 오광대가 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부산 쪽으로 넘어가면서는 동래야류나 수영야류처럼 야류(들놀음)가 되었다는 것도.


오광대란 명칭이 붙은 데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오방신장무 과장에 등장하는 다섯광대가 상징하는 오행설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대개 다섯 과장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진주오광대의 문둥이 광대도 다섯 명이 등장한다.


오방신장무가 제의적 성격이 강한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통영오광대는 오락적 성격이 강화됐기 때문에 오방신장무는 빠진다.


오광대 중에서 오방신장무가 있는 곳은 가산(사천)과 진주, 마산과 창원오광대 정도다. 통영오광대는 문둥이탈춤부터 시작한다. 문둥이 한 명이 등장한다.


1과장 : 문둥(법고)탈춤



애환 어린 탈춤 추는 문둥이탈.


악사들이 굿거리장단으로 북·장구를 친다. 떵더꿍 덩더꿍. 흐느적거리는 춤사위가 보기만 해도 애틋하다.


“아이고 여보소. 이네 한 말 들어보소. 삼대 할아버지 삼대 조모님 그 지체 쓸쓸한 울 아버지 울옴마 인간의 죄를 얼마나 지었건대 몹쓸 병이 자손에게 미쳐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을까.”


한참을 신세 한탄을 하고는 기어이 북채를 잡고 소고춤을 춘다. 춤사위는 점점 갈수록 경쾌해진다. 구성은 다른 오광대와 유사하다.


2과장 : 풍자탈놀이



풍자탈놀이 과장에서 양반들이 무대를 빙글빙글 돌면서 덧배기춤을 추고 있다.


통영오광대의 풍자탈놀이는 다른 오광대의 양반과장과 같은 과장이다. 오광대의 대표적 아이콘 말뚝이가 양반들을 골려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굿거리장단에 양반들이 무대로 등장한다. 말뚝이가 맨 뒤에 따라 등장한다.


원양반을 비롯해 차양반, 홍백양반, 검정양반(먹탈), 곰보양반(손님탈), 비틀양반(비뚜라미), 조리중이 무대를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다가 쉬~ 하고 멈춘다.


“오늘 심심하니 말뚝이 이놈이나 불러다가 농담이나 해볼까요?” 원양반의 제의에 다른 양반들이 그러자고 호응을 한다. 말뚝이가 함께 등장해서인지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다가 겨우 나타나는 가산오광대의 말뚝이와는 달리 통영의 말뚝이는 바로 대답을 한다.



원양반이 양반 자랑을 하니 말뚝이가 되받아서 바로 면박을 준다.


“내가 너이 고을에 살로 온 지가 수십 년이라 어이들 근본을 모를쏘냐? 내가 일러 줄 터이니 자사히 들어라. 첫째 양반 널로 두고 말하면 니 집안에 기생이 여덟이고 비자가 일곱이라 부정한 계집이 열다섯이니 니가 양반이라 자랑하며, 둘째 양반 널로 두고 말하면 니 에미가 주주모라….”


이렇게 말뚝이는 근본 자랑하는 양반들을 하나하나 그 근본을 들춰내며 기를 죽인다. 양반 중심사회에서 양반에게 불만이 많았던 당시 서민들에게 통쾌함을 주기에 충분한 풍자였다.


이날 통영오광대의 풍자탈놀이는 별 대사 없이 한바탕 덧배기춤으로 놀고 퇴장했다.


3과장 : 영노탈놀이



영노탈놀이과장에서 비비양반이 영노를 보고 놀라 뒤로 나자빠지고 있다.


영노는 다른 말로 비비라고도 한다. 버드나무 피리를 비비하고 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비비라는 이름은 고성오광대에서 쓴다.


통영오광대의 영노는 다른 지역 탈과 달리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얼굴이 용처럼 생겼고 입은 긴 부리처럼 생겨 말을 할 때마다 부리가 움직인다. 비비란 이름은 양반에게 가서 붙었다.


비비양반이 무대를 한 바퀴 돌고 있는데 갑자기 등에서 영노가 비비 소리를 내고 놀래킨다.


“아이고 놀래라. 니가 뭣고?” 하니 “나는 구령에 사는 영노다”하고 받는다. 양반이 “구령에 사는 영노사면 구령에 있지 뭣하러 여기 왔노?”하니 영노는 양반놈들 행사가 나빠서 양반 잡아묵으로 왔다고 한다. 아흔아홉을 잡아먹었고 이제 하나만 먹으면 백을 채우고 하늘로 간다고 한다.


그러자 비비양반은 자신은 양반이 아니라고 발뺌을 하고 영노가 도포를 보니 양반이라고 하니 도포를 벗으려고 한다. 도포를 벗어도 너는 양반이라는 말에 옥신각신하다가 대결을 벌이고 결국 비비양반은 영노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영노과장의 결말은 오광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가산오광대의 경우 영노가 오방신장을 다 잡아먹고 포수에게 총을 맞아 죽지만 고성오광대에서는 양반이 재치있게 “니 고조 할애비다.”하고는 위기를 모면한다.


4과장 : 농창탈놀이



농창탈과장에서 등장하는 할미탈.


다른 오광대의 영감할미과장과 같다. 통영오광대에선 영감과 작은어미가 먼저 등장해 알콩달콩 재미있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또 나이 많은 영감과 함께 사는 것이 재미가 없는지 영감이 장에 간 틈을 타서 동네 남정네들을 불러 모아 아리랑을 부르고 춤을 추며 논다.


이윽고 할미가 등장하여 충청도에서 예까지 영감을 찾으러 왔다고 한다. 등장인물 중에서 유일하게 경상도 사투리를 쓰지 않는 캐릭터다. 할미는 몸단장을 하고 굿을 하여 영감 찾기를 염원하고 결국은 만나게 된다.



그런데 영감은 이미 작은어미를 두고 있다. 게다가 작은어미는 출산을 앞두고 있다. 영감은 봉사를 불러 경을 읊게 한다. 이 장면은 가산오광대에서도 등장한다. 북을 치고 경을 읊을 때 빙글빙글 돌아가는 갓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작은어미가 아기를 순산하고 아기를 두고 할미와 작은어미가 승강이를 벌인다. 그 와중에 할미는 작은어미에게 채여 넘어져 죽는다. 통영오광대 대본에는 없지만 작은어미가 쓰러진 할미를 밟아 일종의 ‘확인사살’하는 애드리브는 창원오광대 등에도 등장하는 장면이다. 마산오광대에선 영감이 할미를 몽둥이로 때려 숨지게 하고 김해오광대와 가산오광대에선 영감이 죽는다.


마지막으로 상여가 등장하는 장면은 여느 오광대와 차이가 없다. 상여가 무대를 한 바퀴 돌면 구경꾼들이 지폐를 들고 나가 새끼에 끼운다.





5과장 : 포수탈놀이



마지막 과장인 포수탈놀이 과장./문화재청


통영오광대의 포수탈놀이는 다른 오광대의 사자무 과장에 해당한다. 담보와 사자가 등장하고 서로 싸운다. 한바탕 춤으로 질펀하게 싸운 끝에 사자가 담보를 잡아먹자 포수가 창을 하며 나타난다.


“관사령 났네, 관사령 났네, 훈련도감에 관사령 났네…”


사자를 발견한 포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저격 기회를 잡는다. 때론 관객을 불러 함께 사냥을 하기도 한다. 담보를 먹고 다리가 여섯이 된 사자는 포수가 있는 줄도 모르고 춤을 추고 놀다 결국 포수의 총에 맞아 죽는다. 그렇게 통영오광대 연희는 끝이 난다.


이날 연희에서는 다음 순서 양주별산대 연희가 있어 시간 관계상 마지막 과장은 생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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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7일. 경향신문은 어제 있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24분간의 대국민 지시'라고 보도했다. 실제 담화 발표 모습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아주 적절한 비판이다. 그가 한 말은 하나같이 요청한다는 형식을 빌린 해야한다는 지시사항이었으니.


아직도 수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선거 때의 국정원 의혹은 차치하고라도 작금의 메르스 사태나 롯데가의 문제 등에 대한 언급이나 반성이 없었다는 점은 오로지 통치자로서 '내 할 말만 한다'는 그의 일방통행 화법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상대에게 공감을 얻으려면 솔직해야 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 줄 알아야 한다. 나만 그럴까? 담화발표를 보면서 또 유체이탈한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다는 느낌. 그래도 그 목소리, 때에 따라선 특정 대목에 방점을 찍어 강조하기도 하고 해서 비판 없이 들으면 다 옳은 말 같고 그렇게 들린다.


오늘 신문에서 경향신문을 읽고 경남도민일보를 읽었다. 경향은 내가 좋아하는 신문이고 경남도민일보는 내 일터다. 욕심 때문일 것이다. 경남도민일보를 읽고 실망을 느끼게 된 것은. 우리의 내공이 이렇게 부족한가 싶기도 하다.





경남도민일보는 '정권 후반기 핵심 과제 노동개혁'이라고 제목을 뽑았다. 부제 역시 '박 대통령 대국민담화서 4대 구조개혁 동참 호소' '임금피크제 도입 등 방안 제시... 새정치 "노동개악"'. 기사가 그렇게 쓰였으니 제목도 그에 맞게 뽑았으리라.


기사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려면 서술어를 보면 된다. 국정방안을 설명했다, 동참을 호소했다, (야당)평가절하했다, 방안을 제시했다, 어렵다고 강조했다,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개혁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행에 안주한 탓이라고 진단했다, 빠른 법안 통과를 촉구했다, (새정치민주연합)노동자만 희생하라는 노동개악이라고 일축했다.


경향신문의 것과 비교해볼까.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었다, 밝히겠다며 내놓은 담화였다, 24분간의 대국민담화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정다잡기에 난선 것이다, 추진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단을 내릴 때라고 말했다, 간곡히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정책이마로서의 입장은 내놓지 않았다, 재벌문제도 언급하지 않았다,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정부계획은 내놓지 않았다, 지시만 내린 셈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독백과 훈시로 끈나 참으로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한마디 사과말도 없어 아쉽다고 했다, (정부) 담화관련 후속조치에 착수했다.


신문 기사가 모든 독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하나의 사실을 보고서도 다른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하더라도 신문사의 성향에 따라, 또는 기자의 성향에 따라 대략 유사한 한두 가지 색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것을 바탕으로 표현이 이루어진다.


대통령의 담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런저런 시대적 상황을 바탕에 깔고 그 위에서 워딩 하나하나를 해석해 나갈 것인가 아니면 현실이고 뭐고 다 깡그리 무시하고 오로지 그가 지금 한 말 그대로, 액면 그대로 받아 이해하고 전파할 것인가?


말하는 사람들의 내공은 단 몇 마디로도 쉽게 드러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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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수 아래에서…“더위야, 너 누구니?”

연일 계속되는 찜통 더위 지리산 내원사계곡에서 12


7월 말과 8월 초는 많은 기업에서 집중적으로 휴가를 시행하는 기간이다. 그래서 휴가지도 이 기간에 가장 북적인다. 얼마 전 다녀온 지리산 내원사 자동차 야영장은 벌써 예약이 끝나 추첨에서 떨어졌거나 기간을 놓쳐 신청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겐 아쉬운 휴가지이기도 하다.


피서철 특정 휴가지에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데 국립공원 야영장 신청 시 가족 모두 회원가입하여 원하는 장소를 선택해 신청하는 것도 하나의 요령이다.


계곡 휴양지의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물이다. 계곡에 살짝 산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맑은 물이 쉼 없이 흐른다면 그보다 좋은 물놀이터가 없다. 지리산 내원사 자동차 야영장이 딱 그런 곳이다.



내원사자동차야영장 입구.


입구에서 바라본 주차시설.


안내간판.


이곳은 국립공원이라 그런지 이용객 편의시설이 잘되어 있다. 텐트를 칠 수 있는 데크가 나무 그늘 밑 곳곳에 있고 화장실, 샤워시설, 취사시설이 항상 청결하게 유지되는 곳이다. 게다가 각 데크 옆에는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 있어 압력밥솥으로 취사를 할 수도 있고 스마트폰이 방전되면 언제든 충전을 할 수 있다.


내원사 야영장에 또 하나 눈에 띄는 이용자 편의 도구가 있다. 바로 손수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예약한 데크까지 거리가 멀면 텐트와 아이스박스, 그리고 각종 음식료, 비품 등을 온 가족이 나눠 들고 땀을 흘려야 하는데 이 손수레 덕분에 편안하게 짐을 옮길 수 있다.



손수레로 짐나르기.


야영장 내 샤워시설.


화장실.


취사시설. 2곳이 있다.


각 야영지마다 하나씩 전기 시설이 있다.


텐트를 칠 수 있게 설치한 나무 데크는 해마다 개수가 늘어나 올해는 총 16개다. 데크가 설치되지 않은 일반 야영지는 42곳이며 카라반 겸용 시설도 5곳이 있다.


화장실은 야영지의 가운데 설치되어 있다. 국립공원 직원이 매 시간 관리를 하기 때문에 조금만 방치해도 더러워질 수밖에 없는 물 옆의 시설임에도 깨끗함이 유지된다. 쓰레기 역시 이용객도 분류배출하는 게 이제 습관화되어 재활용 쓰레기를 나눠 내놓지만 직원들이 지속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쓰레기가 쌓이거나 섞이는 일은 없는 듯하다.


취사장은 야영장 가운데와 DE구역 중간, 2군데 있다. 취사장 역시 음식 쓰레기가 배수구에 쌓이는 경우가 별로 없다. 늘 관리하기 때문이다.


데크시설은 텐트를 설치하기 좋게 장치가 되어 있다. 네 귀퉁이게 둥근 쇠고리가 있어 텐트를 튼튼하게 고정할 수 있게 해놓았다. 일반 야영지도 데크만큼은 아니지만 그렇게 불편하지 않게 땅고름이 되어 있다. 데크에 비해 예약 경쟁률이 떨어지므로 당첨될 확률이 높다.



계곡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 안전요원이 배치되어 있다.


큰 바위와 어우러진 계곡물.


계곡 옆에서 쏟아지는 폭포수.


얕은 곳에선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물허리 깊이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계곡의 맑은 물.


그야말로 콸콸 흐르는 계곡물.


야영장을 끼고 흐르는 계곡물은 차고 맑다. 산이 깊은 계곡의 물이 대개 그렇듯 어느 정도의 가뭄으로는 수위가 줄어들지 않는다. 특히 이곳은 소가 넓어 많은 이가 한꺼번에 들어가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조금만 올라가면 육중한 바위와 폭포수 등이 있어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폭포수의 안마를 받아보는 것도 좋다. 몸속에 남아있는 한 올의 더위까지 깨끗이 씻긴다.


물놀이를 하고서 준비한 음식을 먹고 내원사로 천천히 산책을 해보는 것도 좋다. 숲이 우거져 길은 그늘로 덮여있다. 왼쪽 계곡에선 물소리가 바람소리마냥 시원하다. 여기에 새들의 지저귐과 매미들의 소프라노도 보태어져 자연의 오케스트라를 연출한다.



내원사 경내.


내원사는 동쪽 장당골과 내원골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내원사로 가려면 다리를 하나 건넌다. 반야교다. 반야교에서 내원계곡으로 내려다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내원사는 보물 1021호 비로좌나불 좌상과 보물 1113호 삼층석탑을 빼면 사찰로 그리 이름이 높은 곳은 아니다. 애초에는 신라 태종 무열왕 때 세워졌으나 이후 화재로 소실되고 논밭이던 것을 1959년 쯤에 다시 세운 것이니.


내원사 경내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야영지로 돌아오면 대략 1시간 정도 걸린다. 이런 산책은 하룻밤 야영을 하고서 아침에 한다면 더욱 운치가 있겠다.



야영지 전경.


밤하늘 나무 사이로 별들이 반짝거린다.


야영지에는 가로등이 곳곳에 있어 운 좋게 가로등 가까운 곳에 텐트를 쳤다면 굳이 랜턴을 켜지 않아도 사물을 구분하는 데 불편하지 않다. 가로등은 대략 1030분까지 켜져 있다.


내원사 계곡 야영장에는 가족단위 피서객들이 많아 그런지 그렇게 시끄럽지 않고 대부분 이른 시각에 불을 끄는 집들이 많았다. 12시 정도가 되니 야영장 전체가 어둠에 파묻혔다. 오직 화장실만이 밤새 뜬눈으로 지새웠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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