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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산책]조각품
감상하며 여유부리기
통영시민문화회관 앞 남망산조각공원
유명조각가들의 작품이 있는 산책길
무더운 여름 햇볕이 여름과
초가을 내내 기승을 부리더니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
가을비가 촉촉이 내린 뒤로 제법 쌀쌀한 기온이 새벽녘
안개처럼 세상에 번진 듯하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해서일까,
쌀쌀해진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따스한 햇볕이
그리워진다.
날씨가 차가워지면 질수록 볕이
잘 드는 따뜻한 곳을 찾기 마련인데,
통영 남망산조각공원이 딱 그런 곳이 아닐까
싶다. ‘남망산(南望山)’.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산이라고 해석되겠다.
실제로 남망산 조각공원은 남쪽 통영해안과 접해
있어 겨울에도 다른 곳에 비해 따뜻한 편이다.
남망산조각공원은 통영시민회관
인근에 조성되어 있다.
아름다운 통영의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세계 유명 작가들의 조각작품 15점이
전시되어 있다.
남망산조각공원에 들어서서
처음 만나는 것은 15점에
속하지 않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인권 명예를 위한
정의 비’다.
이 정의 비는 1930년대
초부터 2차 세계개전
기간 일본 제국주의와 그 군대에 의해 일본군의 성노예로
강요당한 수많은 어린 소녀와 여성들을 기리고자
2013년 4월
6일 경남도민과 통영시,
경상남도에 의해 세워졌다.
정의 비를 감상하고 나서면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남망산조각공원 산책로가
시작된다. 길은 경사진
비탈을 깎아 옛성벽처럼 낮은 벽을 만들어 길을 내고
길의 오른쪽은 또 성곽의 돌을 쌓듯 해서 만들어 놓았다.
낮시간 햇살이 고스란히 몸을
데워준다. 조금만
걸어가면 첫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햇살에 반짝이는 네 개의 스테인리스기둥이
보인다. 첫눈에 작품임을
알아차린다.
이 작품은 일본의 이토 다카미치란
조각가의 작품으로 ‘하늘과 바다와 대지,
그리고 인간과 인간들이 수직으로 만나는 지점을
상정한 움직이는(니케틱)
조각’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방문했을 때엔 움직이지 않았는데,
이 수직 스테인리스기둥이 수평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사계와 기후, 그리고
자연의 변화가 작품의 표면에 반영되면서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제목은 ‘4개의
움직이는 풍경’이다.
작품을 보면서 걷다 보면 햇빛에
보석처럼 빛나는 통영바다와 멀리 미륵산이 작품과
어울린다. 이 네 개의
스테인리스 기둥은 종종 나 자신을 비춰주기도 한다.
‘4개의 움직이는 풍경’을 지나친 후 뒤돌아
보면, 이 네 개의 기둥이
태양의 빛을 서로 반사하며 뭔가 황홀한 판타지를
연출하는 듯하다.
산책길에서 다음으로 만나는
작품은 좀 민망하다. 팻말에
적힌 제목을 보니 ‘허공의 중심’이라고 되어 있다.
김영원 작가의 작품으로 “삶과 죽음,
영혼과 육제, 정신과
물질, 의식과 무의식
등 이원론적 사고가 지배하는 이 세상의 대립과 분열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고귀한 염원을 나타낸
인체조각”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설명을 읽고 나니 뭔가 의미가
있을 듯한데, 작품을
한참 쳐다보고 있어도 퍼뜩 뭔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쉬 잡히지 않는다. 함께
간 아내가 핀잔을 준다.
민망한 작품 앞에서 너무 오래 서 있는 것 아니냐고.
통과가능한입방체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고는 발길을
옮긴다. 이번에 만나는
작품은 독특하다. 이런
것도 조각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베네수엘라의 헤수스 라파엘 소토라는 사람의
작품이다. 제목은
‘통과 가능한 입방체’.
이 작품은 누구나 작품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안으로 들어가야 감상이 가능한 작품이다.
쭉쭉 늘어진 비닐 줄기 사이로
들어가면 장대비가 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갈대숲을 헤치며 걷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지나고 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는 비닐줄기들.
동반자와 함께라면 동심으로 돌아가 여기서
잡기놀이를 해도 재미있다.
작품 설명 팻말에는 “관락객들이
직접 통과할 수 있게끔 공간을 구성한 조각이다.
이 공간 속으로 걸어드어가 작품에 직접 가담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의 개녕을 체험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작품의 요소다.”라고
적혀 있다.
잃어버린조화-몰두
‘통과 가능한 입방체’를
통과하면 통나무가 기어다니는 듯한 작품을 만난다.
프랑스 작가 질 뚜야르의 ‘잃어버린 조화/몰두’라는
작품이다.
“연결된 여러 토막의 통나무가
모터의 동력에 의해 움직임을 보여주는 조각이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아무리
기다려도 움직일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속으로 ‘전원을 뽑아버렸군’하고 이어지는
설명을 읽는다.
“이 작품은 인체의 반복된
움직임이 생명력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주체가 상실된
수동적이고 무의미한 움직임을 수 있다는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순간
작품보다 작품 설명이 더 이해하기 어려운 때가 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스치고 지나간다.
나무데크와 전망대그리고 통영앞바다, 멀리 미륵산.
최고의 순간을 위해 멈춰서 있는기계.
나무데크가 아래쪽 전망대로
이어졌다. 햇살이
반짝이는 곳이다. 기온이
상당히 떨어진 날씨에도 이곳만은 따뜻한 기운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을
지나 만나는 작품은 선박에서 사용하는 닻과 검은색
철 구조물이다.
‘최고의 순간을 위해 멈춰 서
있는 기계’. 스웨덴의
에릭 디트망이란 작가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레디메이드’ 작품이다.
‘레디메이드’란 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이 작품은 철
구조물 위에 다양한 기성품들을 결합시킨 조각이다.
설명을 보면, 이
작품은 “하늘을 향한 동경의 세계를 상징하는 계단에서
미지의 세계를 지향하는 인간의 열정을 표현”하고
있다.
뒤집힌무덤과 강구안 풍경.
구석을 돌아 다시 나오면 넓고
비탈진 곳에 무슨 악기문양 같은 돌조각품이 보인다.
자박자박 그곳으로 가까이 걸어가면 상당히 큰
돌임을 깨닫는다. 제목을
보니 ‘뒤집힌 무덤’이라고 적혀있다.
거북모양의 중국 남방식 무덤을
거꾸로 엎어놓은 형상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황용핑 중국 작가의 작품이다.
죽음에 대한 이중부정을 통해 거대한 생명력을
암시한단다. 내용은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딱 양지바른 곳에 작품이 설치되어
있고 앞에 조화도 꽂혀 있으니 신식고인돌 무덤 같다는
생각은 든다.
출산.
여기서 되돌아 나오면 약간 넓은
공간을 만나고 이 곳을 지나 대나무 숲으로 향하면
그늘이 많은 숲길이다.
숲으로 들어서면 왼쪽에 눈이 썩 좋지 못한
사람이라면 무슨 벌레 조형인지 퍼뜩 알아차리기 어려운
동상이 있다.
가까이 가서 보고서야 역시
민망한 포즈의 조각품임을 깨닫는다.
도깨비방마이 같은 곳 위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이 쪼그려앉아 있는 모습이다.
작품 제목을 얼른 찾지 않을 수 없다.
‘출산’.
앤터리 곰리라는 영국 작가의 작품이다.
“역동적이며 안정적인 두 개의 인체의 형상을
결합시킨 철주물 조각이다.
정확한 인체비례와 인체묘사를 기초로 한 이
작품은 인체라는 소우주를 통해 초자연적인 우주의
원리와 생명력, 그리고
영적인 활력을 표상하고 있으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장조와 탄생의 계기를 표현하고 있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은
또다시 두 번째로 보았던 ‘허공의 중심’처럼 설명을
보고 작품을 보고를 반복하게 만든다.
아내가 저만치 가서는 “빨리 안 오나!”
한다.
감시초소.
이제 제법 산길을 걷는 기분이
난다. 오르막도 있다.
길을 따라 어느 정도 걸으니 무슨 초소 같은 게
보인다. 이런 곳에 웬
초소지? 했는데,
작품이다.
제목 자체가 ‘감시초소’다.
미국의 토니 아워슬러란 작가의 작품이다.
설치조각으로 초소 안에는 TV가
설치되어 있다. 영상과
음향을 체험하진 못했지만 설명문을 읽으니 “이 작품은
미디어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와 인간의 영혼에 미친
영향을 진지하게 고찰할 뿐만 아니라 소외된 현대인들
사이의 다양한 심리적 관계를 분석”하고 있단다.
영상을 보진 못했지만 얼핏 이해가 되긴 한다.
출항지.
망산.
초정 신석정 시비를 지나 만난
작품은 심문섭의 ‘은유-출항지’란
작품이다. 배와 부두의
모양을 단순화했다는 느낌이 있다.
점점 추상적 조각품에 익숙해지는 느낌이다.
출항지 옆에는 ‘망산’이란
작품이 있다. 대니
카라반이라는 이스라엘 작가의 작품이다.
언뜻 보면 이게 무슨 작품일까 싶은 마음이 든다.
옆에 있는 무덤도 작품일 거라는 계산이 선다.
기하학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화강석들이 그렇게
추리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관계항-꿈꾸는언덕.
이제 조각공원 산책로를 4분의
3 정도 걸었나 보다.
지리적으로 보면 가장 높은 위치에 당도했다.
이곳에 평범해 보이는 바위 하나와 평평한 철판이
나란히 놓여 있다. 이우환
작 ‘관계항(꿈꾸는
언덕)’이란 작품이다.
도저히 설명을 읽어보지 않으면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추상작품이야 보는 사람 머리에 떠오르는 그림이
답이라고 하지만 왠지 이 작품은 딱 떠오르는 게 없다.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
사이의 관계를 통해 자연과의 명상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추상조각이다.” 설명문을
읽고서야 작품의 의도를 깨달았다.
물과 대지의 인연.
한참 걸어내려 가면 다시
통영시민회관을 만난다.
길 오른 쪽에 큰 철제 작품이 있다.
아주 익숙한 조각품이다.
경남도립미술관 입구에도 박종배 작가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이 작품은 ‘물과 대지의 인연’이란
작품으로 크게는 ‘순환’을 상징한다.
물도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순환하고 대지 역시
순환하고 있다. 작품을
빤히 쳐다보면 그런 순환의 철학적 의미를 담았다는
느낌이 든다.
반중력의 곡선.
시민문화회관 대공연장 바로
앞에 조각이 하나 설치되어 있다.
제목은 ‘반중력의 곡선’이다.
고도의 과학적 원리를 이용해 만든 조형물이다.
마놀리스 마리다키스라는 그리스 작가의 작품이다.
꽃97꿈이야기.
그리고 주차장 가운데 설치되어
있는 분수(?)도
남망산조각공원의 작품이다.
마침 해가 떨어지는 시간이라 석양과 어울린 이
작품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꽃 97
Ⅲ 꿈이야기’란 도흥록의 작품이다.
그러고 보니 분수 물줄기처럼 뻗어나온 수많은
갈기들은 꽃의 수술을 나타낸 것이었군.
설명문을 보니 “주변의 자연이나 인공적인
환경과의 조화를 활기있게 연출함으로써 삶의 환희를
자극하고 인간의 건강한 유희본능을 충족시켜 준다”고
표현되어 있다. 야간에
각양각색의 조명을 비추면 더욱 아름답겠다는 추측을
해본다.
이렇게 한 바퀴 돌았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만 아주 여유 있는 걸음으로
주변의 것을 세세하게 관찰도 하면서 산책을 즐긴다면
의외로 느긋한 기쁨을 새롭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