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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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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망산도·유주암에 얽힌 옛이야기
창원 진해구 용원동 위치…김수로 부인 허황옥 도착한 곳


경남사람치고, 나아가 김해사람치고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옥을 모르는 이 드물 것이다. 김해 봉황동에 김수로왕의 무덤이 있고 구산동에 허황옥의 무덤이 있다. 허 황후는 김해 허씨의 시조모다. 김해 허씨는 허 황후의 자손이란 얘기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허 황후는 인도 사람이다. 아유타국이란 나라가 고향이다.

허 황후가 어떻게 가락국으로 건너왔는지 설이 분분한데 ‘보주태후’란 시호가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 사천성 보주에서 살았던 인도인으로 보는 견해가 크다. 그 증거로 학자들은 수로왕릉에 새겨진 쌍어문을 들고 있다. 쌍어문이란 물고기 두 마리가 그려진 문양인데, 이것이 인도 아유타국으로 알려진 아요디아(Ayodhya)에서도 발견되었으며 중국 보주에서도 발견되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연관성을 찾으려는 것이다.

진해 용원동 망산도 앞 유주정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여가를 즐기고 있다.

허 황후는 가락국으로 김수로왕에게 시집 오면서 혼수품으로 금과 은, 보석, 비단 등 온갖 물건을 가져왔는데 그중에서도 차(茶) 씨앗을 가져온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알려져 있다.

장군차. 우리나라의 여러 차 중에서 장군차 하면 김해를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해가 장군차의 시배지이기도 하다. 허 황후가 중국에서 배를 타고 건너오면서 배가 풍랑에 중심을 잡고 잘 견딜 수 있도록 무거운 돌을 함께 배에 실었는데, 이것이 유명한 파사석탑으로 수로왕비릉 파사각에 모셔져 있다.

그렇다면, 허황옥이 김수로와 결혼하기 위해 먼 바닷길을 왔는데 그가 도착한 곳은 어디일까? 진해 용원동과 부산 송정동 경계지점에 망산도라는 곳이 있다. 수로왕은 이 망산도에 가서 신부 허황옥을 맞았다고 한다. 망산도는 부산인데 망산도 동남쪽 오히려 부산 방향에 있는 유주암은 창원이다.(다음 지도 참고)

망산도.
망산도 끝에 세워진 비석.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는 망산도 유주암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부산광역시 강서구 송정동에 있는 가락국 수로왕과 혼인한 허 황후의 일행이 타고 온 배가 변한 바위.

삼국유사 가락국기,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문헌 기록에 의하면 수로왕이 왕이 된지 7년이 지나도록 왕비가 없어 신하들이 왕비를 맞이할 것을 청하였는데 수로왕은 왕비는 하늘이 정해 줄 것이라고 말하고 유천간(留天干)을 보내 기다리게 한 곳이 망산도이다. 어느 날 바다 서남쪽에서 붉은색의 돛과 깃발을 단 돌로 만든 배가 허 황후 일행을 태우고 나타나자 수로왕이 직접 나가 허 황후를 맞이하여 혼례를 올리고 150세가 넘도록 장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허 황후 일행이 타고 온 돌배가 바닷속에서 뒤집혔는데, 그곳이 바로 망산도에서 동북쪽으로 70m쯤 되는 곳에 있는 바위섬이 유주암이라고 한다.

유주암과 멀리 망산도, 그리고 실제 망산도라는 설이 있는 망산(왼쪽 산봉우리).
유주암.

그런데 지도 상엔 현 유주정 앞에 있는 작은 섬이 망산도라고 되어 있으나 안골왜성이 있는 안골동 뒷산인 동망산이 당시 지칭했을 망산도라는 주장도 있다.

진해웅천향토문화연구회에서 펴낸 ‘우리고장 문화유산’이란 책에 보면 관련 내용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 책에 설명된 내용을 가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수로왕이 즉위한 지 7년(서기 48년) 7월 27일에 구간들이 왕의 배필을 간택할 것을 아최니 왕은 ‘유천간’에게 명하여 작은 배와 말을 몰고 망산도에 가서 망보게 하고 ‘신귀간(神鬼干)’에게는 승점(乘岾)에 나아가 망보게 분부하셨다.

그때 무득 가락국 앞 서남쪽 해상에 붉은 깃발을 휘날리면서 북쪽을 보고 오는 배가 있었다. 망산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천간(留天干) 등이 먼저 횃불을 올리니 배를 마구 내달아 와 앞을 다투어 내리려 했다. 신귀간 등이 승점에서 이 모습을 보고 바로 대궐로 달려가 왕에게 아뢰었다.

공주는 산 밖의 별포(別浦) 나루에서 배를 대어 육지에 올라 높은 언덕에서 쉬고 있었다. 거기에서 공주는 비단바지를 벗어 산신령에게 바쳐 제사를 지내었다.

왕후가 비단바지를 바쳤던 그 산언덕을 ‘능현(綾峴)’,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들어온 바닷가를 ‘기출변(旗出邊)’이라 부르기로 하였다.

망산도로 들어가는 입구. 잠겨있다.

망산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가락국 앞 서남쪽 해상에 붉은 깃발을 휘날리면서 북쪽을 보고 오는 배를 지금 말하는 망산도(말무섬)에서는 볼 수가 없다. 말무섬에서는 안골동의 뒷산인 실제의 ‘바라메(望山)’가 가리워서 서남쪽에서 오는 배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망산도는 ‘바라메’를 ‘望山島’로 차자(借字) 표기한 이름이며 ‘바라메’는 안골동 뒷산 이름이고, 뒤에 안골포진 지도에는 ‘육망산(陸望山)과 ‘동망산(東望山)’ 이라는 이름으로 나오게 된다.

안골동 뒷산을 ‘망산도’라고 섬처럼 표기한 것은 당시는 수위가 높고 교통도 불편하여 멀리 뭍에서 보면 섬으로도 보였을 것이다. 따라서 횃불을 올리며 배를 맞이한 곳은 안골동 뒷산인 ‘바라메’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기록된 승점이라는 표현 역시 현재 망산도가 잘못됐음을 증명하고 있다.

말무섬에서 횃불을 올렸다면 신귀간이 기다리던 승점은 어딘지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안골동의 바라메에서 본다면 승점은 마천동에서 용숫골로 올라가는 사자목(용추폭포 동쪽 위에 있는 고개. 보통 ‘밤낮재’라고 함)이 바로 보이므로 거기를 비정해 볼 수 있다. 김해로 오가는 길목이었으니 비정할 만한 곳이다. 말무섬에서는 어디로 보나 승점으로 비정해 볼만한 곳은 찾을 수 없다.

이 책에선 유주암에 대해서도 전해지는 이야기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유주각.

쪽박섬이라는 돌섬을 ‘유주각’과 대응해서 ‘유주암’이라고 하면서 공주가 타고 온 돌배가 뒤집혀 있다고 하는 이가 있다. 가락국기에는 종자에게 선물을 주어서 돌배를 돌려보내었다고 하였으므로 허무맹랑할 뿐이다.

이러한 주장은 파사석탑 이야기에서 충분히 논거가 뒷받침된다. 결론적으로 후대에 허 황후 설화와 불교 설화가 결합해 지어진 이야기로 봄이 타당하다는 얘기다.

허황옥 공주가 타고 온 배가 돌배라고 하니 돌로 만든 배로 아는 이가 있다. 석주(石舟)를 그대로 국역하면 ‘돌배’가 되지만 돌로 만든 배가 아니라 실은 물건이 돌이어서 ‘돌배’라고 하였던 것이다. 나무를 실어나르는 ‘나무배’, 멸치를 실어나르는 ‘멸치배’라고 하듯이.

수로왕비릉 앞에 있는 파사각.
파사각 내에 안치된 파사석탑.

배에 실은 돌이란 것이 지금 김해시 수로왕비릉에 있는 파사석탑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파사석탑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최근에 각 부재를 검토하여 새로이 탑을 복원하였다고 하나 본래의 부재와 똑같은지는 세밀한 고증이 필요하다. 이 석탑에 관해서는 ‘삼국유사’ 권 제3 탑상편 제4 금관성파사석탑조(金官城婆娑石塔條)에 다음과 같이 보이고 있다.

“금관성 호계사(虎溪寺)의 파사석탑은 옛날 이 읍(邑)이 금관국으로 되어 있을 때, 세조 수로왕의 비(妃) 허황후(許皇后) 황옥(黃玉)이 동한(東漢) 건무(建武) 24년 갑신(甲申)에 서역의 아유타국(阿踰陁國)에서 싣고 온 것이다. 처음에 공주가 어버이의 명을 받들고 동쪽으로 오려고 하다가 파신(波神)의 노여움에 막혀서 할 수 없이 돌아가 부왕(父王)에게 아뢰니 부왕이 ‘이 탑을 싣고 가라.’ 하여 무사히 바다를 건너 남쪽 물가에 와서 닿았는데, 비범(緋帆 : 붉은색의 배)·천기(茜旗 : 붉은 색의 기)·주옥(珠玉)의 아름다움이 있었으므로 지금도 이곳을 주포(主浦)라 한다. …(중략)… 탑은 사면으로 모가 나고 5층인데, 그 조각이 매우 기이하며 돌에는 조금씩 붉은 반점이 있고 석질이 매우 부드럽고 특이하여 이 지방에서 구할 수 있는 돌이 아니다. ”

허황후릉.
음수대에 있는 쌍어 조각과 멀리 허황후릉, 파사각이 보인다.

이와 같은 내용에서 파사석탑의 존재를 알 수 있는데, 호계사(현재 연화사)에 있던 탑을 조선시대에 이르러 김해부사로 있던 정현석(鄭顯奭)이 “이 탑은 허 황후께서 아유타국에서 가져온 것이니 허황후릉에 두어야 한다.”고 하여 현재의 자리에 옮겨놓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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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사발이 예술품으로 대접받게 된 사연

[전통을 찾아서]진해웅천도요지 전시관과 복원 가마터에서 본 역사


창원시 진해구 두동 보배산 자락에 제법 규모도 있고 말끔하게 지어진 건물이 하나 있다. 웅천도요지전시관이다. 인근이 두동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데다 보배캠퍼스경제자유구역이라 앞으로 많은 변화가 예정된 지역이긴 하지만 아직 개발이 되기 전이라 유난히 눈에 띈다.


진해대로 의곡교차로에서 두동마을로 들어가면 길이 막혔을까 싶을 정도로 좁은 마을길을 만난다. 의구심을 떨치고 계속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금세 포장된 넓은 길을 만나게 되고 멀리 맞배지붕의 깔끔하게 단장한 여인 같은 웅천도요지전시관을 발견하게 된다.




‘웅천도요지전시관’이라고 적힌 입석을 지나 오르면 외진 곳에 비해 넓다 싶은 주차장을 만난다. 대형버스도 3대 주차할 수 있는 면이 있다. 주차 면으로 보아 이곳은 단체관광객이 종종 찾는 곳이라는 것을 추리해본다.


주차를 하고 전시관으로 올라가면 흰색과 검은색, 그리고 황토색이 조화를 이룬 전시관 건물과 건물에 이어붙여 조성한 국화무늬의 커다란 막사발 조형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보니 남성미와 여성미가 어울린 건물이란 느낌이다.


전시관 전경.


도자 형태의 대형 조형물.


전시관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 데스크에서 손님을 반긴다. 간단히 전시관과 체험시설, 도요지 등에 대해 소개받고 3D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주로 어린이 관람객들에게 보여주는데,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 하자 애니메이션을 틀어준다.


애니메이션은 현재의 도요전시관에 단체관람을 온 어린이 중 역사에 별 관심이 없는 주인공이 우연히 도굴꾼을 발견하고 도망을 치다가 임진왜란 시기로 떠났다가 겪는 이야기를 다뤘다. 옛 도공들이 어떻게 해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는지, 우리 도요에서 만든 그릇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일깨우는 과정이 담겼다.


3D 애니메이션.


3D 애니메이션을 감상하고 나와 왼쪽으로 돌아가면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과 기증받은 유물들이 전시된 전시실이다. ‘흙과 인간의 만남’.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글귀다. 상상해본다. 흙과 인간은 언제 만났을까? 빗살무늬토기 훨씬 이전에도 인간은 흙장난을 하면서 놀았으리라.


사기그릇은 조선시대 생활필수품이었으니 전국에 걸쳐 그릇을 굽던 가마가 수도 없이 많았으리라. 전시실에서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이 조선시대 주요 가마터를 소개한 안내도다. 분청사기 가마터인 공주학봉리, 고창 용산리, 광주 충효동, 그리고 백자 가마터인 충주 미륵리, 부여 정각리 갓점골, 순천 후곡리 등이다.


단실요 모형.


도지미.


분청사기 귀얄무늬사발.


이제 본격적으로 웅천자기가마에 대해 공부해볼까? 벌써 머리 아프다며 항의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전시실에 비치된 유물과 그것의 의미 등 깊이 다뤄보면 좋겠지만 원성이 따르는 만큼 꼭 알았으면 하는 내용과 재미있는 것 몇 가지만 짚어본다.


, 먼저. 전시실은 흙과 인간의 만남, 일본으로 전해진 조선의 도자문화, 웅천의 가마터아 도자, 웅천 도자문화의 맥을 잇는 후예들, 만져보자! 들어보자! 란 체험존 이렇게 5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갑발’이 뭘까? ‘도지미’는? 우리에게 생소한 이 말들은 도공에겐 필수 단어다. 갑발은 고급 그릇을 만들 때 사용하는 좀 큰 그릇이다. 갑발 안에 그릇을 넣고 구우면 먼지가 앉지 않고 질과 색이 잘 살아난다. 도지미는 한자로 도침(陶枕)이라 하며 가마 바닥에 깔린 모래가 그릇에 묻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릇 아래에 받치는 점토로 만든 용구다.


듣고 만질 수 있는 체험존.


웅천가마터와 자기존.


조선시대의 가마는 대략 3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물론 시대에 따라 점점 효율적으로 변천해왔다. 먼저 ‘단실요’. 단어에서 뜻을 알아차렸겠다. 방이 하나로 된 가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기(15~16세기)에 유행했다. 아궁이의 열이 경사진 통요를 따라 옆으로 흐르면서 그릇을 익힌 후에 굴뚝으로 빠져나가는 일종의 황영식 가마 주조다. 웅천도요가 이 방식의 가마다.


그리고 ‘분실요’(15세기 말~19세기). 여러 개의 불기둥을 설치한 위에 확실한 격벽시설을 갖추어 그릇을 넣는 번조실을 몇 개의 방으로 나눈 구조다. 세 번째 ‘연실요’(19세기)는 번조실의 매 칸을 독립적으로 운영하며 천장의 외관상 구조는 연속된 올록볼록한 궁륭형(반달처럼 굽은 형상)이며 가마 바닥을 계단식으로 조성한 연실 계단식 요도 만들어졌다.



포개구이.


웅천도요에선 그릇을 어떻게 구웠을까? 웅천도요에선 갑발을 그다지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도지미 위에 여러 그릇을 포개어 번조실에 넣고 구웠다. 이것을 포개구이라고 한다. 그래서 웅천의 그릇들은 투박하고 실용적이다.


이렇게 그릇을 포개놓고 구우면 유약들이 흘러 그릇이 달라붙었을 터인데 어떻게 한 것일까? 그릇과 그릇 사이에 모래가 섞인 내화토빚음 4덩이를 받쳤다. 그러면 그릇이 눌어붙지 않는다. 지혜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일본의 발전한 도예 기술이 우리나라 도공들에 의해 전파된 것임은 주지하고 있는 사실인데 일본에서 다완이라고 부르는 찻사발이 조선 땅에서 아무렇게나 쓰는 사발에서 비롯됐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 다완을 일본에서 고려다완이라고 부르는데 대부분 조선시대 만들어진 찻사발이다. 일본에서 와비차(侘茶)가 유행하던 시절 간소하고 절제된 다도가 강조되었는데 이런 정서에 딱 맞아떨어진 것이 조선의 사발인 고려다완이었다. 웅천도요에서도 이러한 고려다완이 발견되어 주목을 받았다.


전시관을 한 바퀴 둘러보고 뒤쪽 문으로 나가면 나무데크 계단이 보인다. 도요 체험장으로 가는 길이다. 길지 않은 계단을 올라서면 짚으로 지붕을 올린 여러 채의 집들이 보인다. 전통가마와 도자기 체험공방, 그리고 창고들이다.


전통가마 옆에는 포토존도 있다. 애니메이션에서 본 남녀 주인공들의 모습도 있어서 3D애니메이션을 관람한 아이들이라면 좋아하겠다 싶다.


이 전통가마는 발굴된 원래의 웅천도요의 형태인 단실요로 복원하려 했으나 가마의 입구에서 열이 빠져나가는 끝까지 온도차이가 없게 하려면 전문가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외형은 통가마 형태로 하되 내부는 분실요 구조로 변형제작된 것이다.


가마 옆에 장작이 수북이 쌓인 것으로 보아 관람객의 체험활동이 진행되면 이곳에서 실제로 그릇을 굽는 모습을 볼 수 있겠다.


도요전통가마.


체험공방 내부.


체험공방에 들어가 봤다. 담당자 두 분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평일 낮시간 대여서 도자체험을 하는 사람은 없다. 주말에 학생들을 중심으로 많이 찾는단다. 특히 창원시 시티투어를 통해 관람하러 온 사람도 많이 체험한단다. 체험비는 1만 원. 그릇을 만들면 밖의 전통가마에서 그릇을 구워 택배로 보내준단다.


체험공방을 나와 산으로 향하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경상남도기념물 제160호인 웅천도요지가 있다. 조선 전기에 분청사기를 주로 제작했던 가마터다. 2002년 분화재 발굴조사를 한 결과 6기의 가마 자리가 확인되었는데 1·2호 가마, 3·4호 가마, 5·6호 가마가 서로 중첩되어 있다.


하지만, 도굴과 교란으로 많이 훼손되어 그 구조를 명확히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지만 현재 보호각을 씌워 공개한 4호 가마는 바닥면의 잔존상태가 양호하여 당시 가마의 구조를 잘 살펴볼 수 있다.


가마는 가파른 자연경사면을 이용해 만든 오름가마인데 아궁이에 불을 땠을 때 불길이 가마 뒤쪽까지 쉽게 도달해 그릇을 익히기 쉽도록 경사면에 만들어진 것이다. 가마의 구조는 장작을 넣어 불을 때는 아궁이, 그릇을 쌓아놓고 굽는 번조실, 연기가 빠져나가는 굴뚝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복원된 4호 가마.


4호 가마를 둘러보고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 전시관 건물과 두동저수지, 그리고 마을과 건너편 마천일반산업단지, 그 뒤로 웅천 자매산이 마주보인다. 애니메이션에서 보았던 조선 도공의 의연한 기개가 중첩되는 풍경이다.


웅천도요지전시관은 무료관람이며 관람시간은 3~10월엔 오전 9~오후 6, 11~2월엔 오전 9~오후 5시다.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이면 그 다음날)11, 설날과 추석 당일이다.


문의 : 055-225-68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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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찾아서]메들리로 감상하는 전래민요놀이

거제시민속놀이보존회 제6회 정기공연…강강술래·고사리끊자·청어엮기 등


50대 이상의 여성이라면 어렸을 때 누구나 해봤음 직한 놀이들. 강강술래, 고사리끊자, 청어엮기와 청어풀기, 그리고 기와밟기, 대문열기 등등. 동네 공터에서 친구들과 손을 맞잡고, 그것도 보름달이 뜬 훤한 달밤에 빙글빙글 돌면서 노래하고 놀았던 유년의 추억이 하나씩은 있을 터이다.


지난 6일 앞서 소개한 거제팔랑개어장놀이(http://news.gsnd.net/?p=84375)에 이어 펼쳐진 거제시민속놀이보존회(회장 김숙희·이하 보존회)의 제6회 정기공연 ‘전래민요놀이’가 그런 추억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던 공연이었다. 이 민요놀이는 총 11개의 놀이로 짜여 있다.


첫째판 조개부르기


놀이할 동무들을 불러 모으는 과정이다. “~ 황댕개 조개야, 우리 산달섬으로 다 오이라” 하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동무들을 부른다.


5명은 노래를 부르고 모인 24명은 놀이를 맡아 공연을 펼쳤다. 이 전통민요놀이는 보존회가 창립된 2010년 처음으로 재현 공연이 되었고 이후 각종 행사에서 공연을 펼쳤고 매년 정기공연을 개최해왔다.


둘째판 강강술래




♬달뜨온다 달뜨온다 우리 마을에 달뜨온다/강강술래/공상야월 일만봉에 달뜨오는 것 보기 좋다/강강술래/오동추야 달 밝아 온데 고향 생각 절로 난다/강강술래/우리 문전 사랑 앞에 임 노는 것 보기 좋다…♬


노래는 중모리로 느릿하다. 자연히 크게 원을 그린 아낙들의 움직임도 느릿하다. 다만, 노래의 흐름에 따라 앞뒤 사람의 간격이 늘었다 줄었다 하면서 원에 변화를 주었다.


♬노루장화 꺾어들고/강강술래/청풍명월로 구경가자/강강술래/노자노자 생전에 놀자/강강술래/죽고 나면 못 노나니/강강술래/공상낙모 제일등에/강강술래/인토백이 젓을 담아/강강술래/깊이 파고 묻었더니/강강술래/움도 싹도 아니 난다…♬


자진모리다. 빠른 가락만큼 아낙들의 동작도 빠르다. 원을 그리다가 태극도 그리고 다양한 모양으로 움직이다가 다시 원을 형성한다. 강강술래가 끝나자 바로 다음 놀이로 연결이 된다.


셋째판 고사리끊자




강강술래의 막판 자진모리 가락은 고사리끊자 놀이에도 계속 이어져 노랫말을 자세히 듣지 않으면 언제 놀이가 바뀌었는지 대번에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둥근 원이 어느 순간엔가 일렬로 변형되더니 맨 앞의 아낙이 줄지은 몇 사람 뒤로 가더니 사이로 빠져 나간다. 그렇게 빙글빙글 돌면서 여러 번 반복하여 끄트머리까지 간다.


앞선이가 고사리 끊듯 줄지은 사이를 빠져 나가면 그 뒤쪽은 줄줄이 앉아야 한다. 그러면 앞선이가 서 있는 줄 사이로 빠져나가 결국엔 모두 안게 되는 놀이다. 이어서 바로 앉은 고사리꺽기 놀이가 시작된다. 앞선이는 안은 이들 사이 연결된 손 위로 건너 가고 건너가면 안아 있던 이들이 따라 가려면 서야 하므로 결국엔 모두 서서 다시 원을 만들어 빙글빙글 돌게 된다.


자진모리로 놀이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은 노랫말이 선창과 후렴 모두 짧기 때문이다. ♬뚝뚝 끊어라/수양산 고사리 껑차/한바꾸미 꺾어서/수양산 고사리 껑차/어느 대문 들어설꼬/수양산 고사리 껑차/남대문을 들어설까/수양산 고사리 껑차/이 다리는 왼 다린데/수양산 고사리 껑차/혼자서만 끄떡하고…♬


넷째판 청어엮기




청어 엮기. 날씨가 좋아야 한다. 그런데 이날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원래대로 대사를 치자면, “동무들아, 오늘 날씨도 좋은데…”하고 설을 풀어야 한다. 여러 공연을 접하면서 알게 된 것 중에 하나가 우리의 전통 민속 공연은 애드립에 강하다는 점이다. 오광대 마당놀이도 그렇고. “동무들아, 청어를 엮을라 카모 날씨가 좋아야 하는데, 오늘 비가 이리 오이 어짜것노? 날씨가 좋다 치고 놀이하자이.”


♬오늘 마산포 청어 한 번 엮어보세!!/마산포 청어야/한두릅 두두릅 엮어라/동래 울상 청어야/두릅두릅이 엮어라/마산포 청어야/해뜩바뜩 청어 엮자/이리로 들어온나/해뜩바뜩 청어 엮자…♬


청어를 엮었으면 풀어야 한다. 푸는 놀이가 엮음이 끝나는 대로 이어진다. ♬마산포 청애야/두릅두릅이 풀어라/동래울산 청애야/두릅두릅이 풀어라…♬ 그렇게 청어엮고 풀기 놀이가 끝나면 노랫가락은 중모리로 바뀐다.


여섯째 판 지애(기와) 밟기




기와를 밟는 중에 자진모리 가락이 나올 수가 없다. 퍼뜩퍼뜩 움직이다가는 떨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지애밟기는 맨 뒤의 아낙이 두 사람의 보조를 받으며 앞선이들이 줄지어 허리를 굽힌 위를 기와밟듯이 밟고 걸어가는 놀이다. 맨 앞사람까지 오면 놀이는 끝난다.


♬이 지애가 누지앤고/경상도 놋지앤데/살금살금 밟아보소(매김소리)/어디미 기완고/경상도 놋기와/뭐하러 왔는고/미역캐러 왔다네/몇단이나 캐었는고/쉰닷단 캐었다네/날 한 단 주로모/(모두) 이접 저접 다나가고 작아서 못 주겄네…♬


일곱째 판 대문열기




이 놀이는 요즘 초등학교에서도 간간이 체육 시간에 행해지는 놀이인 모양이다. 낯 익다. ♬어느 대문 들어 설꼬/서울 남대문 들어설까/어느 대문 들어 갈꼬/서울 남대문 쇠 채웠네/그러나 저러나 열어주소/서울 남대문 문 열었소/들어 올만 들어오소/서울 남대문 내 들어간다…♬ 이 노랫가락이 반복되면서 놀이가 진행된다.


맨 먼저 앞선이가 문을 만들고 그 다음 사람이 문을 통과하면 바로 그들 자신이 또 대문이 되고 그 행위가 반복되면서 결국엔 마지막 사람이 빠져 나올떼까지 모두 대문이 되어야 하는 놀이다. 한 사이클을 돌았는데도 노랫가락이 계속 흘러나오면 대문이었던 이가 다시 문으로 들어가 맨끝을 통과하면 다시 대문이 되는 식으로 계속 반복해 놀 수 있다.


여덟째 판 달구새끼 떼어보세




달구새끼 떼기 놀이는 요즘도 레크리에이션에서 종종 등장하는 꼬리잡기 놀이와 유사하다. 다른 점은 떼어야 하는 사람은 자신이 허리춤을 잡고 있는 바로 앞사람이다. 그 앞사람은 또 그의 앞사람을 놏치면 안되므로 허리춤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게 된다. 결국 힘이 없는 사람이 앞사람을 놓치게 되는데 이 사람은 다시 누군가의 허리춤을 잡기 위해 여기저기 줄의 맨 뒷사람을 쫓아가며 기회를 노려야 한다.


놀이는 긴 줄이 떨어졌다 붙었다를 반목하면서 결국 맨 나중에는 모두 이어져 큰 원을 그리게 된다. 이윽고 다음 놀이가 자연스레 이어진다.


아홉째 판 덕석몰기




덕석몰기?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가 있겠다. 덕석이나 멍석이나 도긴개긴이다. 호남 사투리로는 방송에도 등장하는 표현 ‘도찐개찐’이다. 그거나 이거나 하는 뜻이다. 덕석은 기온이 내려갈 때 소 등에 씌워 추위를 막아주기도 하고 말려야 할 곡식이 있으면 길이나 공터에 덕석을 펼쳐놓고 습기찬 곡식을 말리는 역할도 있다.


때론 잘못한 사람을 잡아다가 덕석말이, 멍석말이를 시키기도 한다. 멍석말이란 죄인을 멍석으로 둘둘 말아 몽둥이 찜질을 하는 체벌이다. 어쨌든 곡식을 말리는 데 가장 많이 활용된다.


♬덕석 몰자 해몰자/똘똘똘…♬ 날씨가 좋지 않아 덕석을 말았으면 다시 날씨가 풀리면 덕석도 풀어야 할 것이다. 자연히 푸는 놀이가 장단의 변화 없이 이어진다.


열번째 판 덕석풀기




“건너방에 장서방 오늘 날씨도 좋은 데 덕석을 또 풀어야 안 되겄나~” 하고 매김소리에 이어 덕석몰자와 반대로 ‘몰자’로 ‘풀자’로 바꾸면 된다.…♬덕석풀자 덕석풀자/똘똘똘똘…♬


열한 번째 판 강강술래


마지막 판이다. 처음에 놀았던 강강수월래로 마무리한다. 이런 기법을 문학에서 수미상관법이라고 한다. 시에서 많이 적용되고 있다. 간혹 연극에서도 이런 기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자진모리 장단이 계속 이어진다. ♬강강술래/노루장화 꺾어들고 청풍명월로 구경가자/강강술술/노자노자 생전에 청풍명월로 구경가자…♬


11개의 스토리 라인이 드러났다. 각 놀이 간에도 연결고리를 잘 꿰어 맞춰야 극의 전개가 자연스럽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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