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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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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찾아서]메들리로 감상하는 전래민요놀이

거제시민속놀이보존회 제6회 정기공연…강강술래·고사리끊자·청어엮기 등


50대 이상의 여성이라면 어렸을 때 누구나 해봤음 직한 놀이들. 강강술래, 고사리끊자, 청어엮기와 청어풀기, 그리고 기와밟기, 대문열기 등등. 동네 공터에서 친구들과 손을 맞잡고, 그것도 보름달이 뜬 훤한 달밤에 빙글빙글 돌면서 노래하고 놀았던 유년의 추억이 하나씩은 있을 터이다.


지난 6일 앞서 소개한 거제팔랑개어장놀이(http://news.gsnd.net/?p=84375)에 이어 펼쳐진 거제시민속놀이보존회(회장 김숙희·이하 보존회)의 제6회 정기공연 ‘전래민요놀이’가 그런 추억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던 공연이었다. 이 민요놀이는 총 11개의 놀이로 짜여 있다.


첫째판 조개부르기


놀이할 동무들을 불러 모으는 과정이다. “~ 황댕개 조개야, 우리 산달섬으로 다 오이라” 하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동무들을 부른다.


5명은 노래를 부르고 모인 24명은 놀이를 맡아 공연을 펼쳤다. 이 전통민요놀이는 보존회가 창립된 2010년 처음으로 재현 공연이 되었고 이후 각종 행사에서 공연을 펼쳤고 매년 정기공연을 개최해왔다.


둘째판 강강술래




♬달뜨온다 달뜨온다 우리 마을에 달뜨온다/강강술래/공상야월 일만봉에 달뜨오는 것 보기 좋다/강강술래/오동추야 달 밝아 온데 고향 생각 절로 난다/강강술래/우리 문전 사랑 앞에 임 노는 것 보기 좋다…♬


노래는 중모리로 느릿하다. 자연히 크게 원을 그린 아낙들의 움직임도 느릿하다. 다만, 노래의 흐름에 따라 앞뒤 사람의 간격이 늘었다 줄었다 하면서 원에 변화를 주었다.


♬노루장화 꺾어들고/강강술래/청풍명월로 구경가자/강강술래/노자노자 생전에 놀자/강강술래/죽고 나면 못 노나니/강강술래/공상낙모 제일등에/강강술래/인토백이 젓을 담아/강강술래/깊이 파고 묻었더니/강강술래/움도 싹도 아니 난다…♬


자진모리다. 빠른 가락만큼 아낙들의 동작도 빠르다. 원을 그리다가 태극도 그리고 다양한 모양으로 움직이다가 다시 원을 형성한다. 강강술래가 끝나자 바로 다음 놀이로 연결이 된다.


셋째판 고사리끊자




강강술래의 막판 자진모리 가락은 고사리끊자 놀이에도 계속 이어져 노랫말을 자세히 듣지 않으면 언제 놀이가 바뀌었는지 대번에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둥근 원이 어느 순간엔가 일렬로 변형되더니 맨 앞의 아낙이 줄지은 몇 사람 뒤로 가더니 사이로 빠져 나간다. 그렇게 빙글빙글 돌면서 여러 번 반복하여 끄트머리까지 간다.


앞선이가 고사리 끊듯 줄지은 사이를 빠져 나가면 그 뒤쪽은 줄줄이 앉아야 한다. 그러면 앞선이가 서 있는 줄 사이로 빠져나가 결국엔 모두 안게 되는 놀이다. 이어서 바로 앉은 고사리꺽기 놀이가 시작된다. 앞선이는 안은 이들 사이 연결된 손 위로 건너 가고 건너가면 안아 있던 이들이 따라 가려면 서야 하므로 결국엔 모두 서서 다시 원을 만들어 빙글빙글 돌게 된다.


자진모리로 놀이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은 노랫말이 선창과 후렴 모두 짧기 때문이다. ♬뚝뚝 끊어라/수양산 고사리 껑차/한바꾸미 꺾어서/수양산 고사리 껑차/어느 대문 들어설꼬/수양산 고사리 껑차/남대문을 들어설까/수양산 고사리 껑차/이 다리는 왼 다린데/수양산 고사리 껑차/혼자서만 끄떡하고…♬


넷째판 청어엮기




청어 엮기. 날씨가 좋아야 한다. 그런데 이날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원래대로 대사를 치자면, “동무들아, 오늘 날씨도 좋은데…”하고 설을 풀어야 한다. 여러 공연을 접하면서 알게 된 것 중에 하나가 우리의 전통 민속 공연은 애드립에 강하다는 점이다. 오광대 마당놀이도 그렇고. “동무들아, 청어를 엮을라 카모 날씨가 좋아야 하는데, 오늘 비가 이리 오이 어짜것노? 날씨가 좋다 치고 놀이하자이.”


♬오늘 마산포 청어 한 번 엮어보세!!/마산포 청어야/한두릅 두두릅 엮어라/동래 울상 청어야/두릅두릅이 엮어라/마산포 청어야/해뜩바뜩 청어 엮자/이리로 들어온나/해뜩바뜩 청어 엮자…♬


청어를 엮었으면 풀어야 한다. 푸는 놀이가 엮음이 끝나는 대로 이어진다. ♬마산포 청애야/두릅두릅이 풀어라/동래울산 청애야/두릅두릅이 풀어라…♬ 그렇게 청어엮고 풀기 놀이가 끝나면 노랫가락은 중모리로 바뀐다.


여섯째 판 지애(기와) 밟기




기와를 밟는 중에 자진모리 가락이 나올 수가 없다. 퍼뜩퍼뜩 움직이다가는 떨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지애밟기는 맨 뒤의 아낙이 두 사람의 보조를 받으며 앞선이들이 줄지어 허리를 굽힌 위를 기와밟듯이 밟고 걸어가는 놀이다. 맨 앞사람까지 오면 놀이는 끝난다.


♬이 지애가 누지앤고/경상도 놋지앤데/살금살금 밟아보소(매김소리)/어디미 기완고/경상도 놋기와/뭐하러 왔는고/미역캐러 왔다네/몇단이나 캐었는고/쉰닷단 캐었다네/날 한 단 주로모/(모두) 이접 저접 다나가고 작아서 못 주겄네…♬


일곱째 판 대문열기




이 놀이는 요즘 초등학교에서도 간간이 체육 시간에 행해지는 놀이인 모양이다. 낯 익다. ♬어느 대문 들어 설꼬/서울 남대문 들어설까/어느 대문 들어 갈꼬/서울 남대문 쇠 채웠네/그러나 저러나 열어주소/서울 남대문 문 열었소/들어 올만 들어오소/서울 남대문 내 들어간다…♬ 이 노랫가락이 반복되면서 놀이가 진행된다.


맨 먼저 앞선이가 문을 만들고 그 다음 사람이 문을 통과하면 바로 그들 자신이 또 대문이 되고 그 행위가 반복되면서 결국엔 마지막 사람이 빠져 나올떼까지 모두 대문이 되어야 하는 놀이다. 한 사이클을 돌았는데도 노랫가락이 계속 흘러나오면 대문이었던 이가 다시 문으로 들어가 맨끝을 통과하면 다시 대문이 되는 식으로 계속 반복해 놀 수 있다.


여덟째 판 달구새끼 떼어보세




달구새끼 떼기 놀이는 요즘도 레크리에이션에서 종종 등장하는 꼬리잡기 놀이와 유사하다. 다른 점은 떼어야 하는 사람은 자신이 허리춤을 잡고 있는 바로 앞사람이다. 그 앞사람은 또 그의 앞사람을 놏치면 안되므로 허리춤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게 된다. 결국 힘이 없는 사람이 앞사람을 놓치게 되는데 이 사람은 다시 누군가의 허리춤을 잡기 위해 여기저기 줄의 맨 뒷사람을 쫓아가며 기회를 노려야 한다.


놀이는 긴 줄이 떨어졌다 붙었다를 반목하면서 결국 맨 나중에는 모두 이어져 큰 원을 그리게 된다. 이윽고 다음 놀이가 자연스레 이어진다.


아홉째 판 덕석몰기




덕석몰기?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가 있겠다. 덕석이나 멍석이나 도긴개긴이다. 호남 사투리로는 방송에도 등장하는 표현 ‘도찐개찐’이다. 그거나 이거나 하는 뜻이다. 덕석은 기온이 내려갈 때 소 등에 씌워 추위를 막아주기도 하고 말려야 할 곡식이 있으면 길이나 공터에 덕석을 펼쳐놓고 습기찬 곡식을 말리는 역할도 있다.


때론 잘못한 사람을 잡아다가 덕석말이, 멍석말이를 시키기도 한다. 멍석말이란 죄인을 멍석으로 둘둘 말아 몽둥이 찜질을 하는 체벌이다. 어쨌든 곡식을 말리는 데 가장 많이 활용된다.


♬덕석 몰자 해몰자/똘똘똘…♬ 날씨가 좋지 않아 덕석을 말았으면 다시 날씨가 풀리면 덕석도 풀어야 할 것이다. 자연히 푸는 놀이가 장단의 변화 없이 이어진다.


열번째 판 덕석풀기




“건너방에 장서방 오늘 날씨도 좋은 데 덕석을 또 풀어야 안 되겄나~” 하고 매김소리에 이어 덕석몰자와 반대로 ‘몰자’로 ‘풀자’로 바꾸면 된다.…♬덕석풀자 덕석풀자/똘똘똘똘…♬


열한 번째 판 강강술래


마지막 판이다. 처음에 놀았던 강강수월래로 마무리한다. 이런 기법을 문학에서 수미상관법이라고 한다. 시에서 많이 적용되고 있다. 간혹 연극에서도 이런 기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자진모리 장단이 계속 이어진다. ♬강강술래/노루장화 꺾어들고 청풍명월로 구경가자/강강술술/노자노자 생전에 청풍명월로 구경가자…♬


11개의 스토리 라인이 드러났다. 각 놀이 간에도 연결고리를 잘 꿰어 맞춰야 극의 전개가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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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찾아서]거제 팔랑개 어장놀이

만선의 꿈 싣고 떠나는 과정 놀이로 풀어…용신제도 포함해 어민 안녕 기원


96일 오전 1130.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리 거제조선해양문화관 앞마당에서 팔랑개어장놀이가 펼쳐졌다. 팔랑개어장놀이는 예부터 옥포동 파랑포마을에서 마을 공동으로 행해온 민속놀이인데 특정한 날에 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이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간 뒤 부녀자들이 주로 했던 놀이다.


그래서 놀이에는 풍어와 안전을 비는 염원이 담겼는데 배신굿과 풍신제 형태를 띠기도 한다.


놀이의 구성은 총 다섯 마당으로 이루어지는데 첫째 마당은 질굿 마당으로 출어일에 마을 사람들이 고기잡이 장비를 가지고 선창으로 나와 풍물을 치고 노는 과장이다.


꽹과리와 북, 장구, 징을 든 풍물패가 흥겨운 가락에 풍물을 치며 앞서 행렬을 지으면 어구들을 각기 하나씩 손에 쥔 아낙들이 뒤따라 오며 즐겁게 춤을 춘다. 태평소도 흥을 돋운다.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아낙들의 손엔 주로 대광주리가 들렸고 남자들처럼 아래위 옷을 흰색으로 맞춰 입은 아낙들의 손엔 도리깨가 들렸다. 바지개를 짊어진 남정네도 있고 술동이를 머리에 인 아낙도 있다.


팔랑개어장놀이1과장


1과장인 들머리 풍물은 여느 민속의 지신밟기와 유사하다. 양반도 등장하고 부인도 등장한다. 다만, 1과장에서 다른 풍물과 다른 점은 나주에 용왕제를 지낼 무당들이 미리 풍물에 함께 한다는 점이다.


시연되는 풍물의 동선은 다양하게 펼쳐진다. 풍물패와 어민들이 함께 어울리기도 하고 따로 그룹을 형성하면서 놀기도 한다. 풍물 중에 이상한 가면도 등장해 보는 재미를 더했다.


팔랑개어장놀이2과장


둘째 마당은 도리깨 마당이다. 그물을 도리깨로 털고 손질하여 배에 싣는 과정을 그린 과장이다.


픙물패는 한쪽으로 비켜 나와 여전히 풍물을 울린다. 어민들은 풍물 장단에 맞춰 배 앞에 있던 그물을 부채꼴로 펼친다. 어민들은 그물을 바닥에 펼쳐놓고 각기 적당한 자리를 잡고 앉아 구멍 난 그물을 꿰는 등 손질을 한다.


이윽고 작은 그물을 가운데로 가져와서 도리깨질을 한다. 도리깨질을 하는 이유는 그물에 남아있는 이물질을 깨끗이 털어내기 위함이다.


어구를 손질하는 것도 노동. 노동에 술이 빠질 리 없다. 노동으로 말미암은 갈증을 풀어주는 데는 막걸리 만한 음식도 없다. 구수한 맛에 짜릿한 게 피로를 싹 풀어주고 힘이 솟게 한다. 아낙은 일꾼들에게 플라스틱 바가지로 막걸리를 떠서 나눠준다. 풍물이 더 신나고 즐거운 시간이다.


팔랑개어장놀이3과장


셋째 마당은 용왕제 마당. 배가 떠나기 전에 배 앞에 제사상을 차리고 무당이 굿을 시작한다. 바다에 풍랑이 일지 않게 하고 어부들이 무사귀환하도록 하고 또한 고기를 많이 잡게 해달라는 기원일 터이다.


여기저기서 무당이 오늘 굿을 너무 잘한다며 칭찬을 늘어놓는다. 그 칭찬에 힘을 더 얻었는지 무당의 목청은 더욱 들떠 어장에 모인 사람들의 모든 기운을 쫙 끌어 모으는 듯하다. 용왕제에 참석한 사람들이 제사상에 얹힌 돼지머리 입에다 돈을 꽂고는 손을 모아 소원을 빈다.


용왕제가 끝나고 배는 만선의 꿈을 싣고 바다로 출항한다. 배를 떠나보낸 마을 사람들은 다시 한바탕 질펀한 풍물에 맞춰 흥겹게 노래하고 춤을 추며 논다.


팔랑개어장놀이4과장


넷째 마당은 어부들이 고기를 잡으며 흥겨운 가락에 맞춰 만선의 기쁨을 노래하는 과장이다. 그물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과장이라 그물소리라고도 한다. 배에 가득한 고기, 그리고 어민들에게 무사귀환만큼 기쁜 일이 어디 있으랴.


그물에 잡힌 생선을 터는 과정이 고된 노동일지라도 즐겁다. 그물에 걸린 생선을 털 때엔 함께 작업하는 어민들 간의 호흡이 중요하다. 손발이 착착 맞아야 한다. 풍물에 맞춰 손발이 딱딱 맞다.


부채꼴로 펼쳐졌던 그물은 고기를 터는 과정에서 점점 배가 있는 쪽으로 모인다. 그물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생선들도 한곳으로 모인다. 잡은 물고기를 다 저장고에 넣게 되면 다시 한바탕 풍물이 펼쳐진다.


팔랑개어장놀이5과장


다섯째 마당은 그래서 대동제가 된다. 가래마당 만선놀이다. 만선기를 꽂고 돌아오는 어부들을 마을 주민들이 환영하는 과장이다.


첫째 마당처럼 풍물과 어민들이 어울려 신나게 놀고 공연을 마친다. 첫째 마당과 다른 점은 배 위에서도 어부들이 만선기를 흔들며 대동놀이 분위기를 띄운다는 점이다.


팔랑개 어장놀이는 지난 199210월 제24회 경남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으며 장려상을 받았다. 그리고 2년 뒤인 1994년 이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고 거제의 중요민속놀이로 자리를 굳히고 각종 행사에 초대되기도 했다.


이날 팔랑개어장놀이보존회의 정기공연은 전래민요놀이보존회와 거제농악보존회 등과 함께 열렸다. 아쉽게도 공연 중 비가 내려 구경하러 온 관람객들은 대부분 멀리 떨어진 해양문화관 처마 아래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보존회 회원들은 강우에 아랑곳하지 않고 신명나는 공연을 펼쳤다.


<동영상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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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최치원과 황금돼지

마산합포구 월영동 작은 섬, 돝섬에 얽힌 전설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과 성산구 두산중공업 사이에 작은 섬이 하나 있다. 지역인이면 모를 사람이 없을 유명한 ‘돝섬’이다. 지금은 마산서항지구 매립이 진행 중이니 조만간 육지에서 훨씬 더 가까워지겠지만 돝섬 유람선 선착장에서 한 10분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가는 뱃길 또한 관광에 재미를 더해준다.


돝섬은 1982년 처음 개장한 해상유원지다. 처음엔 동물원도 있었고 놀이시설도 있었다. 1995년엔 돝섬비엔날레를 열기도 했고 잘 나갔다. 그러다가 2003년 태풍 매미로 쑥대밭이 되었는데 재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한동안 방치된 섬으로 남기도 했다.



돝섬 해상유원지 선착장에 닿기 직전 유람선에서 바라본 풍경.


2011년 돝섬개발 공모를 통해 돝섬유원지 종합계발 계획이 차차 진행되었고 그해 4월 재개장을 했다. 2012년엔 다시 창원조각비엔날레를 이곳에서 개최해 제2전성기를 꿈꾸는 섬이 됐다. 아직도 이때 출품된 비엔날레 조각품 20점이 전시되어 있다.


2013년 돝섬은 친환경유원지로 1차 정비를 마쳤다. 바다장미원 4000㎡에는 40종의 장미 6000그루와 관목류 78500그루의 나무가 조성됐다.


돝섬에 둘레길이 만들어지고 시멘트 길도 데크로드로 변했다. 또 돝섬의 탄생설화가 담긴 이야기벽천 인공폭포도 조성됐다. 이 벽천에서 쏟아지는 물 안쪽에 타일로 만들어진 6개의 벽화장식에 돝섬이란 이름이 붙게 된 전설이 담겨 있다.



돝섬 내 황금돼지상과 벽천 폭포가 있는 광장./창원시


여기에 소개한 이야기는 마산시사에 실린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2011년에 제작된 ‘마산시사’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가락국 서기 42~532. 옛날 김해 가락왕의 총애를 받던 미희가 있었는데 어느 날 밤에 홀연히 그 흔적이 없어졌다. 왕은 낙담 고심한 끝에 사람을 사방에 파견하여 상금을 걸고 수색을 벌였는데, 우연히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가 골포(마산) 앞바다의 조그마한 섬에서 세상에 둘도 없는 절색 미녀를 봤다는 보고를 접하게 된다.


이 이야기를 들은 왕은 급히 특사를 파견해 그 섬에서 배회하고 있는 미희에게 환궁하기를 재촉하였으나 미희는 홀연히 돼지로 변하더니 큰 울음을 내고 두척산(무학산) 상봉의 큰 바위틈으로 사라져버렸다.


특사는 급히 왕에게 그 경위를 보고하였고 이 이야기를 들은 왕은 의심이 덜컥 났다. 당시 백성 가운데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일이 자주 일어났으며 밤마다 금돼지가 나타나서 사람을 잡아가되 어린 계집아이나 젊은 부녀자를 특히 좋아한다는 풍설이 퍼지고 있던 터였다.


왕은 느낀 바가 있어 군병을 동원하여 두척산 바위를 포위토록 하였다. 군병들은 일제히 창과 활을 꺼내 들고 산이 진동하는 고함을 지르며 포위망을 압축해 가자 금돼지는 날카로운 이빨로 군병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군병들은 활과 창, , 돌로써 금돼지를 내리쳤다. 군병들에 의해 죽은 금돼지는 미희의 모습으로 다시 변하더니 한줄기 요운이 아지랑이 같이 골포 앞바다 돝섬으로 뻗어 사라지고 말았다.


그 후 그 섬 근방에는 밤마다 돼지 우는 소리와 함께 괴이한 광채가 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라 거유(이름난 유학자) 고운 최치원 선생이 골포의 산수를 즐기려고 월영대에 들러 향학을 설치하고 풍류를 즐기고 있을 무렵이었는데, 어느 초승달이 뜬 밤에 이 괴이한 현상을 보고 그 섬을 향해 활을 쏘았더니 괴이한 광채는 별안간 두 갈래 길로 갈라져 사라지고 말았다.


이튿날 고운 선생이 그 섬에 건너가 화살이 꽂힌 곳에 제를 올린 뒤로는 이러한 현상이 없어졌다 한다. 고운이 제를 올린 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영험이 있다 하여 후세에도 오랫동안 그 풍습이 이어졌다. (마산시사, 2011, 마산시사편찬위원회)


돝섬에 대한 기록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여지도서’에는 저도(猪島)가 월영대(月影臺) 남쪽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창원), ‘영남지도’(창원) 등의 조선 후기 고지도의 월영대 앞바다에 저도가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조선지형도’에는 마산 남서쪽 바다에 저도가 표시되어 있다. 월영동(月影洞) 월영대 앞에 있다고 하여 월영도(月影島)라고도 불린다.



마창대교에서 바라본 돝섬.



마산 무학로 산복도로 신월동서 바라본 돝섬.



정부경남지방합동청사에서 바라본 돝섬.



천주산에서 내려다 본 돝섬.


회원현성지에서 바라본 돝섬. 아파트에 가려 섬 전체가 조망되지 않는다.


같은 돝섬에 대한 전설인데 일본인 諏方武骨이 쓴 ‘경남사적명승담총(慶南史蹟名勝談叢)’이란 책에서는 약간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손진태라는 사람이 1935110일 동아일보 칼럼 ‘난타나에설전 기야이지야도’라는 코너에 번역해 쓴 것을 옮겨 본다.


전설에 나타난 도야지 이야기-마산의 돝섬과 금도야지


지금 마산만 가운데 조그마한 섬이 있어 옛날부터 돝섬이라 하고 근자에 와서는 월영도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 섬은 그 형상이 돝과 방불하게 생겼을 뿐 아니라 신라 때로부터 내려오는 금돝 전설이 있어 더욱 유명하다.


신라 때에 최윤덕이란 사람이 있어 위인이 온후하고 청렴하여 조정에서 명성이 자자하더니 하루는 궁중의 잔치에 가서 조 아무개라는 라는 기생의 아름다운 자색에 한 번 미친 뒤로는 마음이 일변하여 밤낮으로 술과 계집에 방종하는 지라 임금은 그를 구실군의 태수로 하여 시골로 내려보냈다. 이 구실군이라는 것은 지금 마산과 창원을 합친 고을이었다.


그는 사랑하는 기생과 함께 마산으로 와서는 더 한층 방종한 생활을 하고 ○○(영인본에 보이지 않는 글자이나 ‘정사’라고 대입하면 무리가 없을 듯)에는 마음을 쓰지 아니하였다. 그러더니 하루는 홀연히 그 기생이 없어지고 말았을 뿐 아니라 그날부터 금빛이 찬란한 금도야지 한 마리가 밤마다 나타나서 사람을 잡아가므로 온 고을이 큰 소동을 하고 최 군수는 사람을 모아 이 도야지를 잡으러 떠났다.


그들이 봉암산(팔용산) 중허리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큰 바위 위에 선 절세의 미인을 보았다. 이것이 곧 군수의 사랑하던 기생이었다. 군수가 반가워 손을 잡고자 할 때 기생은 얼굴을 찌푸리면서 “요새 밤마다 사람을 잡아먹는 도야지는 다른 것이 아니라 나입니다. 나는 원래 궁중의 도야지러니 이 세상을 온통 도야지 세상으로 만들고자 하였으나 최 도선의 술법 까닭에 뜻을 얻지 못하고 그 원수를 갚고자 미인으로 화하여 기생이 되어 도선의 일가인 그대를 사로잡았던 것이나 그것에도 만족을 얻을 수 없어 또다시 도야지로 화하여 온갖 사람을 잡아먹고자 한 것이나 지금은 후회가 되고 지금 내 목숨을 그대에게 바칠 터이니 나를 죽이어 천하에 사하고 그대도 마음을 고치어 어진 사람이 돼라.”고 하였다.


그래서 군수는 뭇사람으로부터 도야지를 죽이고 마음을 회개하여 깊이 불법에 귀의하였다고 하는데 그 금돝이 화살에 맞아 죽을 때 요기가 공중에 나타나 세 번 금돝을 돌고 남쪽으로 바다에 들어가 지금 돝섬에 이르러 사라졌으므로 이 섬을 돝섬이라 하는 것이다.


그 뒤 최치원 선생이 마산에 와서 월영서원에 계실 때 밤마다 돝섬에서 괴이한 불이 일어나고 그중에 한 미인이 나타나며 때로는 도야지 우는 소리까지 거기서 일어나 뱃사람들이 무서워 밤이 되며 그곳을 지나지 못한다 하므로 선생은 술법을 행하여 이 요물을 물리치었었다고 한다. (諏方武骨 저, 경남사적명승담총에서 초역)


손진태는 서울대 사학과 교수 출신으로 문교부 차관까지 지낸 민속학자다. 그는 이 돝섬 전설에 대해 “우리의 고유한 금돝 전설을 골자로 하여 거기에다 불교의 사상으로 윤색을 더한 것이다. 세상의 탐욕과 색욕을 도야지에 의하여 표현하고 이것은 필경 불법에 의하여 구제될 것이라는 사상을 이렇게 전설의 형식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마산시사에 나타난 돝섬 전설과 달리 조선 세종 때의 장군이자 정승인 최윤덕 이름이 나온다. 의도였든 아니든 일부 왜곡된 것으로 보인다.



돝섬 입구에 있는 황금돼지상.



최치원 초상화.


그런데 돝섬처럼 금돼지가 최치원과 짝을 이룬 이야기는 전북 군산시 옥도면에 있는 섬들, 고군산군도에 전한다. 여기서는 최치원이 금돼지의 아들로 나온다. 군산문화원에서 펴낸 ‘우리 군산의 옛날 이야기’ 속 ‘내초도 금돈시굴(金豚始窟)’ 편에 실렸다.


, 최치원이 금돼지의 아들이라는 설정은 단군신화에 나오는 웅녀와 박혁거세신화에 나오는 백마의 알 차원의 표현일 것이다.


금돈시굴 전설에 전하는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최치원의 아버지 최충이 지금의 군산인 문창 수령으로 발령을 받아 갔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내초도란 섬으로 사냥을 갔다가 누런 돼지한테 붙들려 바위 밑 토굴에 갇혀 몇 달을 살게 되었다.


그러자 이 누런 돼지에게 태기가 있어 열 달 후 아기를 낳았다. 아들이 점점 자라 다섯 살이 되자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육지로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누런 돼지의 감시가 심해 그럴 수가 없었다.


하루는 이 돼지가 이웃 섬으로 사냥을 간 사이 최충은 모든 사실을 아들 치원에게 털어놓았다. 최치원은 어미돼지가 해다 놓은 나무토막으로 뗏목을 만들어 이곳을 탈출하자고 했고 어느 날 어미돼지가 산에 나무를 하러 간 사이 이들은 섬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이들이 육지에 닿기 전에 어미돼지에게 발각되었다. 어미돼지는 바다를 빠른 속도로 헤엄쳐 뗏목에 다다랐다. 최치원은 미리 실어놓은 나무토막을 바다에 던졌다. 욕심이 많은 돼지는 나무가 버려지는 것이 아까워 그것을 주워다 섬에 갖다 놓고 다시 뗏목으로 헤엄쳐 왔다. 최치원 부자는 계속 나무토막을 바다에 던져 결국은 돼지가 기진맥진해 죽고 말았다.


구사일생으로 부자는 살아서 육지에 올랐고 머리가 총명했던 최치원은 열심히 공부해 당나라에 유학도 가고 벼슬도 하고 나중엔 대 문장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는 얘기다.


금돈시굴 전설과 유사한 얘기로 조선 중기에 만들어진 군담소설인 ‘최고운전’에서도 전한다. 여기서는 최치원의 어머니가 아이를 밴 상황에서 금돼지에게 납치당해 갔는데 최충이 미리 명주실로 조치를 취해놓았기 때문에 금돼지의 소굴을 찾을 수 있었다.


최충이 금돼지를 죽이고 구해오지만 그 후 부인이 최치원을 낳았는데 최충은 아이가 금돼지의 아이일지 모른다 하여 내다버린다. 버려진 아이에게 신기한 현상이 일어나자 다시 데려다 키우게 되고 훌륭하게 자란다는 얘기다.


마산만의 돝섬 전설이 언제 생겼는지 알 수 없으나 군산의 황돼지 전설, 조선 중기 소설인 ‘최고운전’과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겠다. 최치원을 따라다니던 누런 돼지 전설이 마산에 와서 돝섬에 얽히게 된 것이리라.


돝섬을 한 바퀴 돌면서 섬에 얽힌 전설과 관련된 다른 전설도 떠올린다면 더욱 의미가 있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돝섬 위성사진./다음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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