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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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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년이 지났습니다. 올해엔 할머니께서 투표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치매가 더욱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할머니께선 내가 지지하는 후보는 '무조건 투표'였는데 말입니다. 내가 찍은 그 후보는 아깝게도 한 표를 잃었습니다. 그이가 낙선하더라도 용기를 잃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기표소를 점령한 할머니.

아침식사를 마친 9시. 우리가족은 고민에 빠졌다. 85세인 할머니를 모시고 투표소에 가야하나, 아니면 그냥 집에 계시게 해야 하나 하는 문제였다. 이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지난 지방선거 때 투표용지가 무려 4개가 되자 혼란에 빠진 할머니가 기표소에서 무려 20분이나 서있었던 기억 때문이었다. 당시 할머니는 투표장에 가기 전에 누군가를 찍으려고 마음 결정을 이미 내렸는데 막상 기표소 안에 들어가서 붓두껍으로 찍자니 뭐가 뭔지 헛갈렸던 것이다.

“종이가 머그리 많더노? 찍을라 카는 그 사람은 이름도 안 보이데.” 시력도 좋지 않은 데다 가끔 치매 초기 증상도 보여 왔던 터라 ‘실전’에 대한 두려움이 겹쳐서인지 쉽게 찍지 못했다. 벌써 투표를 하고 출구에 서있던 우리 가족은 선관위 눈치도 있고 해서 할머니가 빨리 나오지 않는다고 다그치고 할머니는 다급한 마음에 “누구 찍어야 되노? 표가 많아서 못 찍겠다”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아무도 찍지 못하고 무효투표를 하고 만 것이다. 20분이나 기표소를 점령한 덕분에(?) 많은 사람을 난처하게 했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이번에는 집에 계시는 게 어떨까 말씀을 드렸다. 할머니는 “인자는 두 개만 찍으면 된다모? 가자”며 자신 있어 하여 모시고 가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는 기표소에서 15분을 또 ‘점령’하고 말았다. 그나마 선관위 관계자가 참관인이 보는 가운데 차근차근 설명을 했기에 무효표는 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면서 하시는 할머니 말씀에 우리가족은 또 ‘아이고 가슴이야’할 수밖에 없었다.“파란 거는 우(위)에서 ○번째 그거 찍었고, 하얀 거는 찍어라 카는 그 번호가 안보이서 두 번째 꺼 안 찍었나.” 연두색 투표용지엔 ○○번을 찍는데 아래에서 ○번째 있고 흰색 투표용지엔 위에서 ○번째를 찍으라고 했던 것을 헛갈렸던 모양이다. 그런데 후보를 찍는 흰색용지의 두 번째는 출마자가 없어 가위표가 있는 곳인데 거기다 찍었으니 하나는 또 무효표가 된 셈이다. 어머니는 “다음부터는 마 투표하지 마이소”하고 할머니를 나무랐고 아버지는 “그래도 할머니 덕분에 오늘 웃는다”며 웃음을 보였다.

이날로 두 번째 ‘기표소 곤욕’을 치른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인자 투표고 뭐고 아무것도 몬 하것다”하고는 거실에 주저앉았다. 3년 후 다시올 지방선거엔 또 투표용지 서너장을 함께 찍어야 하는데 오늘 사태의 재연을 막을 방법이 없을 것 같다. 투표소까지 따라다니며 증조할머니의 모습을 쭉 지켜본 아이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내가 투표하면 진짜 잘 할 것 같은데.” “빨리 커서 나도 투표해봤으면 좋겠다.” 선거축젯날, 온 가족의 투표소 나들이에서 ‘세월’을 보았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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