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경진대회 소재는 글라이더·물로켓 밖에 없나
요즘 워낙 휘발유 가격이 올라 얼마 전부터 아이는 버스를 타고 다니게 했는데 오늘만큼은 오랜 만이기도 하고 ‘경진대회에 출품할’ 비행기도 있으니 자가용으로 바래다 줄 이유는 충분한 셈이다.
학교 들어가는 골목 초입에 내려줬는데 다른 학생들의 손에 들려진 과학경진대회 출품작들이 눈에 띄었다. 수십 명이 걸어오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비행기 아니면 물로켓이다.
보아하니 그 중에는 재활용품으로 만든 것은 하나도 없고 죄다 문방구에서 파는 5000원짜리 6000원짜리 제품들이다.
순간 ‘이런 걸 가지고 어떻게 과학 경진대회를 한다는 거지?’하는 의문이 생겼다. 비행기라면 멀리 날리기 시합을 하는 건가? 제품에 따라 성능이 다를 텐데 어떻게 시합을 하지?
아니면, 한 번 조립해보는 경험으로 만족하는 건가? 그렇다면 중학생 큰 애는 아마 다섯 번도 넘게 조립해봤는데…. 차라리 다른 게 좋을 듯하고….
창원 컨벤션센터 같은 곳에 과학 행사를 할 때 한 번씩 가보면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이 많다. 죄다 아이에게 만들기 시켜보고 싶은 것이다. 투명 플라스틱 통으로 스피커 만들기, 크기가 다른 두 주사기로 물의 압력 실험하기…. 물론 물로켓도 있다. 1.5리터 페트병으로 조립해 만드는 체험행사도 있다.
그런데 학교에서 하는 과학 경진대회가 시중에서 파는 글라이더나 물로켓으로 한정해 있으니 참 갑갑하다. 사실 아이들도 이젠 만든 것 또 만들기 지겹다. 학교에선, 혹은 교육청에선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만들기 내용이 다양한데 아이들이 비행기와 물로켓을 선택한다고. 그렇다면 이는 아이들이 별 관심이 없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하라고 하니 그냥 손쉬운 것 하나 사서 뚝딱 만들어 날리면 그만이라는 자세를 익히는 것으로 오히려 부정적이다.
권정호 교육감은 학교의 연례적인 행사를 타파한다고 했는데 이런 것엔 별 관심이 없는 걸까.
그리고 과학경진대회를 한답시고 학부모 지갑을 열게 할 생각하지 말고 재료를 학교에서 준비해 만들게 했으면 좋겠다.
재활용품 이용하면 예산도 크게 들지 않을 것이고 또 대량구입하면 예산도 훨씬 줄일 수 있으니 얼마나 효과적인가.
이런 말이 있다. 학교에서 이런 행사하면 문방구 좋은 일시키는 것이라고. 지금은 몰라도 예전엔 문방구에서 학교에다 돈까지 질러주고 했다.
아무튼, 학교에서 하는 이런 행사가 좀 다양해져야 한다. 그리고 돈이 안 드는 쪽으로 궁리하되 실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만들어 본 것 또 만들게 하지 말고. 규격화된 제품, 저마다 똑 같은 것 가지고 습관대로 만드는 것 말고.
학교에서 각종 재료를 쏟아내 그 중에서 자신만의 창조품을 만들도록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신경을 써야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라. 우리 아이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얼마나 똑똑했는지를. 육면체의 블록으로 희한한 모습의 로봇을 만들고 다리를 만들고 성을 쌓던 모습. 장난감으로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내던 창의력.
우리 아이들은 고학력으로 올라갈수록 창의력을 억누르는 교육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과학행사랍시고 한다는 게 고작 문방구에서 파는 조립품 하나 사서 날려보는 것으로 끝이지. 아이들이 만족할까. 아, 몇 년을 만들던 것 또 만들다보니 눈감고도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자신감이 생기긴 하겠다. 우리 교육의 의도가 혹시 그것인가.
점점 우리 아이들이 저마다 정체성을 잃고 프로그램 입력한 대로 움직이는 로봇이 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돌이끼의 작은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4년전 총선 때 기표소 점령한 할머니 에피소드 (0) | 2008.04.09 |
---|---|
오늘은 투표일, 또 짜는 소릴 한다 (0) | 2008.04.09 |
믿을 걸 믿어야지-'대운하' 논의 않고 추진하겠다는 얄팍한 속셈 (3) | 2008.04.08 |
난, 발명가가 되고 싶어요 (1) | 2008.04.01 |
혈세(血稅)에 대하여 (0) | 2008.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