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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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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2일 저녁 도내 여러 곳에서 대보름을 맞아 액막이 달집을 태우고 줄다리기 행사 등 다양한 전통 민속놀이를 진행한다. 작은 동네 단위로도 여러 행사들이 진행되겠지만 큰 행사 중심으로 몇몇 일정을 소개한다. 가까이 계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날 밤,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다.




△함안


○ 장소 : 가야읍 검암천
○ 내용 : 달집사르기 민속행사
○ 행사주최 : 함안군
○ 연락처 : 055-580-2303


△고성


○ 장소 : 고성읍 고성천 외 7개소
○ 내용 : 달집태우기,사물놀이,민속놀이,강강술래 등
○ 행사주최 : 고성청실회 외 7개 단체
○ 연락처 : 055-670-2203


△하동


○ 장소 : 횡천강변 둔치
○ 내용 : 지신밟기, 윷놀이, 연날리기 기원문 달기, 풍년기원제 달집태우기
○ 행사주최 : 횡천면 청년회
○ 연락처 : 880-6143


○ 장소 : 양보면 생활체육공원
○ 내용 : 지신밟기, 풍년기원제 기원문달기, 달집태우기
○ 행사주최 : 양보면 이장협의회
○ 연락처 : 880-6302


○ 장소 : 하동송림공원 백사장
○ 내용 : 연 만들기 체험 및 날리기 민속놀이, 보름음식 나눠먹기 달집태우기
○ 행사주최 : 하동문화원 /하동읍사무소
○ 연락처 : 880-6002


△창원


○ 장소 : 마금산온천관광단지내(공영주차장)
○ 내용 : 달집태우기, 면민화합한마당행사,민속놀이, 기원제 등
○ 행사주최 : 마금산온천 청년회
○ 연락처 : 010-9006-6696


○ 장소 : 석전동 삼호천내
○ 내용 : 풍물,널뛰기,떡메치기,윷놀이,투호놀이,윷놀이,달집태우기
○ 행사주최 : 봉화민속축제위원회
○ 연락처 : 055-230-5372


△통영


○ 장소 : 통영시 도남동 트라이애슬론광장
○ 내용 : 통영 메구패놀이 공연, 제33회 시장기타기 통영 전통연날리기 대회 등
○ 행사주최 : 통영문화원
○ 연락처 : 055-646-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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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산책]옛창원의 중심 남산 봄볕에 취하다

창원시 의창구 팔룡동·서상동·중동에 둘러싸인 남산공원


날이 많이 풀렸습니다. 해가 다니는 하늘길도 훨씬 길어졌어요. 퇴근 시각 해를 못 본지 불과 며칠 전인 것 같은데 어느새 해는 서산 너머 머문 채 직장인들의 퇴근을 기다려주네요. 그렇게 봄은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왔어요. 며칠 지나지 않으면 우수, 경칩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이런 계절 주말을 이용해 도심 작은 공원에라도 나가 봄볕을 즐기면 또 얼마나 행복하랴 싶어요.


창원시 의창구 팔룡동·서상동·중동에 둘러싸인 나지막한 산이 있는데요, 해발 100미터, 산의 높이나 모양새, 규모 뭐 이런 걸로 치자면 정말 볼품없는 산이에요. 이름도 그 흔하디 흔한 ‘남산’이죠. 그런데 이 볼품없는 동네 야산이 오랜 역사를 거쳐오면서 창원의 중심으로 위상을 지켜온 듯합니다.


며칠 전 산책을 하면서 그걸 느꼈어요. 그 느낌은 차차 걸어가면서 풀어내기로 하고요, 읽으면서 함께 걸어간다 생각해주세요. 지도에서 보듯 우린 남산공원의 입구인 일주문으로 들어가서 한 바퀴 돌고 동쪽 끝 중동 쪽으로 나올 거예요.



남산공원 위성지도. 하얀 선이 오늘 이동경로.



남산공원 표지석.



'숭의문'이라는 현판을 달아놓은 일주문.


버스로 이곳을 찾는다면 ‘창원여중’ 정류소에서 내리면 되고요, 차로 온다면 목장원 위 ‘남산공원’ 표지석 오른편으로 20면 정도 규모의 주차장이 있으니 이용하면 됩니다.


, 이제 출발해봅시다. 이번 산책길에서 맨 먼저 만나는 게 ‘남산공원’이라는 독특한 서체의 글씨가 새겨진 바위입니다. 2004년 서상지구 택지 공사 중에 채취한 거라 해요. 글씨는 서체로 보아 허재 윤판기 선생의 것이네요.


왼쪽에 ‘도심속 거님길 안내도’가 있습니다. 이곳이 사파동까지 이어지는 도심 거님길의 시작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옆에는 남산공원 안내도가 있습니다. 항공사진으로 조감도를 만들었네요. 주변 마을에서 남산공원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우리 위치는 북쪽 ‘현재위치’이고 우리는 일주문을 지나 서쪽으로 갔다가 다시 동쪽 끝으로 갈 거예요.


일주문을 만나 카메라를 들이댔어요. 아침이라 역광에 일주문이 선명하게 망막에 비치지 않는군요. 가까이 가봅시다. 한자로 崇義門(숭의문)이라고 적혀 있네요. 정의를 숭상한단 뜻이겠죠. 중간에 있는 ‘義’자가 해독하기 좀 어렵네요.



속리산 정이품송 2세 소나무.



창원대도호부연혁비.



상봉암.


일주문을 지나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틉니다. 산책로가 저쪽 언덕 위로 이어져 있어요. 몇 걸음 걷다가 왼쪽에 무슨 팻말이 보이네요. 무슨 기념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소나무들만 듬성듬성 심어져 있는데…, 무슨 내용일까, 무척 궁금해졌어요. “정이품송 후계목 : 1464년 세조가 법주사로 행차하는 중 소나무 가지가 처져 있어 걸리게 되는 것을 나무가 저절로 들어서 지나가게 했었다고 한다. 후에 세조가 나무에 정이품 벼슬을 내렸다고 해서 정이품송이라 불린다. 이곳의 정이품송은 충북 보은군에 있는 천연기념물 103호 정이품송의 꽃가루를 가루받이하여 키운 묘목을 2001년 현 장소로 옮겨 심은 것이다.”


아하! 그러니까 이게 그 유명한 속리산 소나무의 자손이군요. 나무 나이 열다섯 살이라 그런지 아직은 모양새가 엉성하기도 하고 앳된 모습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바로 옆에 있는, 제법 위용을 자랑할 만한 비석이 눈에 들어오네요. ‘昌原大都護府沿革碑(창원대도호부연혁비)’. 비석 뒤편에 창원의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아래에는 창원의 옛 지도가 그려져 있고요. 한자가 많아서 읽기 쉽지 않은데, 천천히 읽어내려가면 몰랐던 창원의 위상을 알게 되네요.


하나만 소개하면, 창원부 서쪽에 조창(마산 창동)을 두었는데, 이게 서울서 가장 먼 곳이었고 주변 김해·웅천·칠원·함안·의령·진해·고성·거제까지 관장하였다고 하네요. 예부터 창원이 이 지역 중심지였다는 방증입니다.


, 중심지라는 말이 나와서 덧붙이는 말인데요, 이 산 이름이 ‘남산’인 이유 아시나요? 남산의 북쪽인 지금의 의안동 일대가 옛날 창원의 중심지여서 그래요. 옛날엔 이곳에 성곽이 있었다 해요. 또 중심지라는 증거로 옛날 국립학교였던 창원향교가 이곳에 있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지요. 그래서 이곳을 중심으로 북쪽은 북면, 동쪽엔 동읍이 있고 남쪽에 해당하는 명곡, 명서가 남면, 그리고 서쪽엔 지금의 마산인데, 내서가 서면에 포함되었어요. 서면 소재지 안쪽이어서 내서라는 이름이 붙었고 외서는 지금의 회원동 일대라고 해요.


연혁비 옆에 희한하게 생긴 바위가 있네요. ‘相逢岩(상봉암)’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습니다. 아마도 해마다 추석 때 열리는 만날제를 기념해서 설치했겠죠. 이제 슬~ 서쪽 언덕으로 걸어가 볼까요? 평일 오전인데도 산책을 즐기는 시민이 종종 보입니다.



남산 정상에 있는 환호.



환호 옆 서상대와 산신단.



망루 유적. 네 개의 기둥을 꽂아 현장을 보전했다.


산책로 옆 자드락에 고동색 나무 벤치가 여러 개 놓여 있습니다. 모두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네요. 각기 다를 사람들의 취향을 고려한 배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덕 아래에 간판이 세 개 있습니다. 남산유적을 설명해놓은 안내판이군요.


“남산유적 : 경남도기념물 201(19971231일 지정). 면적 5081. 유적건조물, 유물산포지, 유적산포지,유물분포지, 유적분포지. 창원시 서상동 남산 내. 남산유적은 1996~1997년 유적발굴조사에 의해 국내 최대 규모의 청동기시대 환호 유구와 각종 취락 시설이 드러나 발굴지역을 보존하게 되었다. 청동기 시대와 삼한시대의 방어시설인 환호와 집터, 저장시설, 노개부지와 폐기구덩이 등에서 붉은간토기(紅陶) 등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와 삼한시대의 각종 토기, 간돌검(마제석검), 반달돌칼(반월형석도) 등의 석기류, 골각기류 등 총 339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청동기 시대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답니다. 온 마을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는 집이라면, 아무래도 사회적 계급이 높았던 사람이겠죠? 언덕 위에는 유성 떨어진 크레이터처럼 움푹 팬 구덩이가 있습니다. 환호라고 하는 겁니다. 이 환호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시설인데 이 속에서도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해요. 환호의 규모는 깊이 2~4미터, 너비 4.5~10미터, 길이 200미터 이상의 대규모로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발굴조사된 환호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합니다.


언덕 위에서 환호 주위를 따라 돌다가 오른쪽 아래에 화강암 비석이 몇 개 보입니다. 잔디를 밟으며 내려가 보죠. ‘서상대’ 그리고 ‘산신단’. 이곳이 행정구역상 서상동이라서 서상대라고 붙였을 테고 산신단은 이곳에서 산신께 제를 올리는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와 단의 모양새가 썩 전통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옆에 있는 석등도 그렇고요. 석등 안에 초가 켜져 있는 것을 보면 제단이 지속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네요.


다시 언덕, 사실 남산에서 가장 높은 곳이니 이곳이 산마루죠. 이 산마루 환호 옆에는 네 개의 나무 기둥이 박혀 있는데, 망루지 유적입니다. 물론 망루의 역할은 적의 침입을 조망하는 것이죠. 망루는 네 개의 기둥을 가졌는데 기둥의 위치로 보아 거의 정방형을 띠고 있네요. “370×350㎝로 방형이며 기둥구멍의 크기는 직경 80㎝”라는 설명이 안내판에 적혀 있습니다.



황시헌충절각병자호란 때 순국한 황시헌을 기리는 충절각.



고향의봄도서관 쪽에서 바라본 산마루, 그리고 일광욕 벤치.


산책로는 산마루에서 빙 둘러서 다시 창원대도호부연혁비가 있는 쪽으로 이어집니다. 하늘이 참 맑습니다. 천주산에서 시작된 산등성이는 시계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정병산, 대암산, 비음산, 불모산, 안민고개를 지나 장복산으로 이어집니다. 환호 주변을 따라 돌다 보면 맞은 편, 남쪽으로 ‘고향의봄도서관’ 가는 길이 나옵니다. 저 길은 거님길 1코스이기도 합니다. 저쪽으로 내려가면 병자호란이 있었던 조선 인조 시절 충신 황시헌 공을 기리는 충절각이 있지요. 예전에 찍은 사진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 창원의 대표적인 전통문화콘텐츠 중에 ‘문창제놀이’란 게 있는데, 이 놀이가 황시헌과 관련이 있답니다. 황시헌이 순국하던 상황을 극으로 꾸민 문창제놀이를 보신 분은 쉽게 이해가 되겠는데, 당시 청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도피했고 항복을 강요받았지요. 그때 창원대도호부사 백선남이 황시헌과 함께 경기도 파주로 군사를 이끌고 갔는데 잠복해있던 청나라 군대에 전멸당하고 말았지요.


부사가 죽으면서 부하인 황시헌에게 관인을 맡겼는데, 청나라군은 그 관인을 뺏기 위해 황시헌의 오른팔을 자르고, 황시헌이 다시 왼손에 관인을 움켜쥐자 왼팔을 자르고, 다시 관인을 입에 물자 목까지 잘랐다고 하지요. 그런 황시헌이었기에 청나라 군사들도 황시헌의 충절에 혀를 내두를 법도 합니다. 황시헌은 훗날 현종 때 공조수부정랑 벼슬을 추서받고 이곳 충절각에 모셔지고 있답니다. 원래 읍성 서문밖에 있던 것을 2007년 이곳으로 왔다고 합니다.


오늘은 충절각까지 내려가지 않고 산책로를 따라 더 걸어봅니다. 참 언덕 주변을 돌다 보면 이 산꼭대기에 일광욕을 위한 누운 벤치가 있다는 걸 눈치 챘을 겁니다. 주변 풍광과 어울려 멋진 장면을 연출합니다. 가서 한 번 누워볼까 하다 왠지 좀 쑥스러운 느낌이 드네요. 그냥 산책로를 따라 내려갑니다.


남산공원의 산책로는 정비가 잘 되어 있습니다. 양옆에 나란히 서 있는 나무들의 운치도 좋고요. 여름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기도 해요. 곳곳에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밤에도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아요. 가운데 있는 운동장 가장자리엔 빙 둘러서 체육시설이 있는데, 찾는 사람이 많다 보니 이 시설을 이용하는 시민도 많네요.



통일염원탑과 통일서원비.



창원 캐릭터가 있는 분수대.



창원군민헌장비.


길을 따라 계속 가면 오른쪽으로 테니스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이 주변은 편백숲으로 이루어졌어요. 2011년 창원시가 1000만 그루 나무심기 사업을 펼치면서 이곳에 편백을 심었다고 하네요. 더 가면 창원의 캐릭터 창이와 원이가 있는 분수대가 나옵니다. 아직 겨울이라 운영하진 않군요. 지난 추석 이튿날 만날제 행사 때 가동되는 것을 봤는데, 조명의 색깔이 다양하게 변화하는데 참 멋진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 앞에 씩씩하게 생긴 탑이 하나 있는데, ‘통일염원탑’이라고 적혀있네요.


탑 옆에 ‘통일서원’이란 제목의 비석이 있는데 내용을 한 번 읽어볼까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조국강산/겨레도 나라도 하나이기에/피와 사랑으로 한덩이 되어/우리 손으로 통일을 이루오리라.” 통일 염원을 가슴에 새깁니다. 이 통일서원 비석 뒤에는 북한지도를 그리고 이북 5도 사람들의 이름과 모임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동쪽으로 큰 망루가 보입니다. 이쪽으로 가는 길은 세 갈래입니다. 가운뎃길로 걸어갑니다. 제법 숲 속을 걷는 기분이 납니다. 이 숲을 벗어날 즈음에 또 비석 하나를 만납니다. ‘창원군민헌장비’. 아마도 예전 창원군이었을 때 세워진 비석인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창원도 역사적으로 다양한 이름으로 변천했습니다.


고대엔 경남 해안에 할거했던 포상8국 중 하나인 골포국이 옛 마산 일대에 있었는데 아마도 이곳까지 포함했을 것 같아요. 신라 문무왕 때엔 굴자군 안에 골포현이 있었다고 그래요. 그러니 이곳은 굴자군에 속했겠지요. 그러다 신라 경덕왕에 이르러 의안군으로 개칭이 되고 고려 후기 합포현(골포현)이 회원현으로 개칭되면서 의안군에서 독립됩니다.


조선 태종 때에 이르러 회원현과 창원지역의 의창현이 통합하면서 처음으로 창원도호부가 생기게 되지요. 하지만, 창원부도 다시 여러 번 이름이 바뀝니다. 창원군으로 되었다가 다시 창원부, 창원군, 창원부로 거듭되다가 1910년엔 마산부를 거쳐 1914년 마산부와 창원군으로 또 나뉘지요. 창원군은 또 한동안 의창군이었다가 창원시로 이름이 바뀌었지요. 지금은 마산과 진해를 통합해 창원시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고요, 언제 또 이름이 바뀔지는 두고 봐야 알겠죠.


지명의 변천, 좀 복잡하긴 해도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지역의 역사를 꿰뚫어보는 듯해서 재미있어요. 창원군민헌장비를 보면서 머리가 좀 복잡해졌는데, 이제 그런 것 없이 쭉 걸어봅시다.



남산루를 떠받치고 있는 돌기둥.



남산루 정면.



남산루에서 바라본 서쪽 풍경.


여기서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서상동 마을로 향해요. 야간에도 사람들의 통행이 많으니 길가에 키 작은 조명등들이 띄엄띄엄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네요. ‘남산루’. 너른 광장 건너편에 있는 큰 누각이 남산루예요. 대단한 위용을 뽐내고 있네요. 특히 누각을 받치고 있는 돌기둥들이 멋져 보입니다. 아이랑, 아니면 연인이랑 같이 오게 되면 숨바꼭질 한 번 해보세요. 아주 재미있어요.


누각엔 순서대로 자축인묘…, 열두 띠를 나타낸 지신상이 그려져 있어요. 자기 띠를 찾아 보는 것도 재미겠죠. ‘남산루’란 현판은 반대쪽에 걸려 있어요. 계단이 좀 색다르죠? 계단참 아래쪽은 돌로 되어 있고 위쪽은 나무로 되어 있어요. 누각의 아랫부분은 돌기둥, 윗부분은 나무로 지어진 것과 어울리게 설계하였네요.


남산루는 촉석루나 영남루 이런 곳과는 달리 신을 벗지 않고 올라가도 됩니다. 누각이라 해서 멀리 멋진 경치를 감상하기엔 가로막힌 숲으로 한계가 있네요. 대신 서쪽, 환호가 있는 방향은 푸른 하늘과 어울린 경치가 만족할 만합니다.



동쪽 중동으로 향하는 산책로.



산책로 끝에서 만나는 39사 터.


남산루에서 내려와 동쪽 하신길로 향합니다. 이 산책로는 비포장입니다. 그래서 능선을 타는 느낌이 듭니다. 마을로 둘러싸인 나지막한 산이어서 그런지 오래된 무덤이 많네요. 굳이 공동묘지로 지정된 건 아니지만 전통적으로 마을 인근 야산에 무덤을 썼던 옛 장례풍습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더는 이곳에 무덤을 쓸 일 없으니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무덤도 사라지겠지요. 창원은 역사 변천만큼이나 변화가 심한 곳이니까요. 호주의 캔버라를 모방해 인위적으로 개발되다 보니 옛 모습을 간직한 곳이 거의 없어졌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에요.


산책로 끝에 다다랐어요. 오른쪽에 옛 39사 터가 보여요. 군대가 빠져나간 자리엔 듬성듬성 건물이 남아있긴 하지만 썰렁해요. 공사 중인 곳도 보이군요. 이곳은 곧 아파트 단지와 공원으로 바뀌겠죠.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데크 계단이 나와요. 비로소 산책로를 완전히 벗어나게 됩니다. 서상동과 중동이 갈라지는 골목을 빠져나오면 버스가 다니는 큰길을 만나게 됩니다. 함께 걷는 동안 봄이 오는 소리 듣지 못하셨나요? 짧은 거리 긴 여행을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잘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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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산책]시가 있는 여유, ‘마산산호공원’

주택가로 둘러싸인 용마산 중턱 시의거리와 주변 산책로를 걷다


위성지도를 보면, 창원 한 가운데 한일()자를 굵은 붓으로 짧게 그은 듯한 모양의 산이 있다. 용마산. 주변엔 용마고등학교와 합포중학교, 합포초등학교가 보이고 나머지는 거의 일반 주택으로 둘러싸여 있다. 근처엔 높은 건물도 없다.


이곳은 오래전 형성된 마을이기 때문이다. 용마산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삼호천, 바다와 만나는 곳이다. 옛날엔 아마 이곳이 해안이었을 게다. 바다를 매립해 마산자유무역지역을 만드는 바람에 삼각지공원 쯤에서 끝났던 삼호천이 이곳까지 이어진 것이다.


옛 기록에 이곳 용마산은 왜성이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조선을 쳐들어온 일본군이 용마산에 성을 쌓고 군자기지로 삼았다는 것이다. 왜군은 주로 바닷가에 성을 쌓았는데 이 용마산성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이곳을 기지로 삼고 서편 해안도로 어디 쯤에 항구가 있어 배를 정박하였다는 내용도 보인다.



용마산 산호공원 안내도.



산중턱에 조성된 운동시설.


산호공원은 인근 주민이 아니더라도 방문하기 편리한 곳이다. 해발 83.5미터밖에 안 되는 산이지만 중턱까지 또 찻길이 나있어 충혼탑 인근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한 바퀴 둘러보아도 좋은 그런 곳이다.


마산도서관 옆길로 올라가면, 시의 거리를 지나 급히 우회전해서 조금만 더 가면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지역의 호국 영령을 모신 봉안각 뒷모습이다.


언뜻 보아 일본의 나고야성처럼 돌을 쌓은 축대 위에 건물을 지은 그런 모습이다. 아마도 일본 왜성을 쌓았던 곳이라 그런 흔적이 남은 것이라 짐작된다. 축대 옆길을 따라 충혼탑으로 향했다. 응달진 곳이라 그런지 축대에 이끼가 많이 슬었다.



호국영령들의 위패를 모신 봉안각 뒷모습.



충혼탑.


길 끄트머리에 오래된 비석이 하나 있다. ‘대마산항도제선언문’. 19661119일에 세웠다고 되어 있다. 문학과 예술의 도시 마산의 전통을 이어가자는 취지에서 개최한 축제였던 ‘마산항도제’ 1회가 열리던 시기에 세워진 비석이라고 한다.


마산항도제는 1956년 마산문화협의회에서 ‘마산종합문화제’를 창설한 이후 1960년 마산항도제, 1966년 대마산항도제로 이어 오다 1971년 중단되었다가 1974년 마산예총제로 부활했으나 지속하지 못하고 1980년 다시 부활, 1992년 마산예술제로 개칭된 이후 지금에 이른다.



목발 김형윤 불망비.



김세익 시인의 ‘석류’ 시비.



창동허새비 이선관 시인의 시비.



이석 시인의 ‘봉선화’ 시비.



산호공원의 역사를 방증하는 듯한 밀로의 비너스 석상.


충혼탑을 보고 다시 돌아 나왔다. 주차장 인근에 눈에 익은 이름의 비석이 보인다. ‘김공형윤불망비(金公亨潤不忘碑)’. 김형윤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을 괴롭히던 일본 헌병의 눈을 뽑았다고 해서 붙여진 별호 ‘목발(目拔)’로도 알려진 언론인이다.


불망비를 조금 지나면 국민교육헌장비가 있고 좀 더 걸어가면 현촌 김세익 시비가 나온다. 현촌 김세익은 1960년 마산문협 초대 사무국장을 지냈던 시인으로 이화여대 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3·15의거와 관련해 ‘진혼가’를 지었는데 그 시는 국립3·15민주묘지에 기념시비로 세워져 있다. 이곳에 세워진 시비는 ‘석류’라는 시다.


체육시설을 사이에 두고 김세익 시비 반대편엔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깔끔한 시비가 또 하나 있다. 창동허새비로 불리는 이선관 시인의 시비다. 지난해 2월 세워졌다. 시비에 새겨진 시는 이선관 시인의 대표적인 시 ‘마산, 그 창동 허새비’다. 시비에는 이선관 시인의 얼굴 캐리커처도 새겨져 있다.


, 산호공원 시의 거리를 무심코 거닐다가도 유난히 눈에 띄는 조각품 두 개가 있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과 밀로의 ‘비너스’다. 요즘에야 이런 조각상을 만들어 공원에 세우는 사례가 있으랴만 불과 30~40년 전엔 이것도 하나의 유행이었다. 이 조각품들은 산호공원이 제법 오래된 공원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약간 비탈진 길을 내려가면 이석 시인의 시비가 있다. “봉선화/그 푸른 잎새 속에/층층이 밝은/초롱을 걸었다/한 알의 꽃씨 속에 잠자던/여인의 피가/이 여름 봉선화로 피어…” 함안 출신인 이석 시인은 마산에서 20년을 살았다고 한다. 마산고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김춘수, 김남조, 김세익 등의 시인과 어울렸고 논팔아 친구들과 술을 마실 정도로 애주가였으며 호탕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합포의 얼 기념비.



이원수 시인의 ‘고향의 봄’ 노래비.



이광석 시인의 통일염원비.



김태홍 시인의 ‘관해정에서’ 시비.



시의 거리 입구 타일벽화 위에 늘어선 시비들.


이밖에 산호공원 시의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시비들은 이은상의 ‘가고파’, 이원수의 ‘고향의 봄’, 이광석의 ‘가자! 아름다운 통일의 나라로’, 이일래 ‘산토끼’, 김태홍 ‘관해정에서’, 김용호 ‘오월이 오면’, 정진업 ‘갈대’, 박재호 ‘간이역’, 천상병 ‘귀천’, 권환 ‘고향’ 등이다.


권환의 ‘고향’부터 이은상의 ‘가고파’까지는 도로변 타일벽화 축대 위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모두 마산이 낳은 걸출한 시인들이다. 위쪽에 있는 다른 시비들과 달리 시선이 잘 가지 않는 위치라 아쉽다.


시의 거리에서 용마산 산정 쪽으로 산책로가 나있다. 얼마 안 되는 높이라 쉬 올라갈 수 있지만 연세 드신 분들을 위한 배려로 나무 데크를 설치해 더욱 편안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물론 데크 통행로 주변엔 돌계단도 있고 그 옆으로 흙을 밟으며 오르는 길도 열려 있다.



시의거리에서 용마산 산정으로 오르는 길.



전망대 인근, 주말이라 나들이객들의 모습이 제법 있다.



방송중계기를 지나 내려가는 산책로.


방송중계소가 있는 꼭대기에는 전망대가 있다. 이곳은 나무 데크로 넓게 설치되어 있었다. 오른쪽으로 무학산과 정면으로 마창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마산시가지가 발아래 펼쳐져 있다. 세상을 내려다보는 기분이 이런 것일 게다.


내친김에 마산만 가운데 최치원 전설이 흐르는 돝섬을 찾아봤다. 서광아침의빛 아파트에 가렸다. 아쉬움을 한숨으로 날려버리고 고개를 돌렸다. 올망졸망한 주택들의 지붕이 귀엽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서쪽으로는 자유무역지역의 공장건물들이 펼쳐져 있는데 푸른 지붕들이 유난히 많다. 그 왼편으로는 팔용산이 고개고개 능선을 이었다.


용마산 중턱 언덕배기에 선 충혼탑 너머로 산성산이 위용있게 선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다시 내려오는 길 전망대 옆에 있는 바위에 올라섰다. 낭떠러지다. 둘 셋 정도 햇볕을 받으며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수천 간 이 형태였을 텐데, 이 땅을 살다 간 수많은 사람이 이 바위에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았으리라.


주말을 맞아 산호공원에서 산책과 운동을 즐기는 시민이 제법 있다. 이런 도심 공원은 인근 주민들에게 건강을 제공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조금 일찍 마치는 날, 어스름 초저녁에 나와봐도 좋겠다. 마산의 야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으니 이 또한 기분 좋은 일일 것이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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