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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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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상정한 테러방지법 제정안이 2일 원안대로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를 막고자 야당 의원들이 임시국회에서 무제한 토론을 하며 국회 회기가 끝날 때까지 버티려나 싶었는데, 일찍(?) 한계를 드러내며 여당에 손을 들고 말았다. 물론 몇 가지 명분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끝까지 항거하는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경향신문은 테러방지법 통과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내면서도 은근히 국민의 심판을 기대했다.


2016년 3월 3일. 경향신문은 사설을 통해 테러방지법 통과가 집권세력이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 내용을 옮겨 적는다.


테러방지법 제정안이 결국 국회를 통과했다. 새누리당이 선거구 획정을 볼모 삼아 버티기로 일관하자, 야당도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192시간 만에 중단했다. 테러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점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정부가 그동안 테러에 대응할 제도와 기구를 갖추고 있었던 것도 그런 당위성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를 통과한 법으로는 테러 대응이란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특히 국가정보원에 국민을 상시 감시할 수 있는 무제한 권한을 부여한 게 잘못이다. 국정원이 어떤 곳인가. 2012년 대선 당시 댓글 공작을 벌인 게 확인됐다. 중국지방정부의 공문서까지 위조하면서 서울시 공무원을 간첩으로 조작하기도 했다. 인권의식도 희박한 개혁 대상이 바로 국정원이다. 그런곳에 광범위한 국민 사찰·감시 권한까지 주겠다니 오·남용을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법 내용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위헌적 요소가 다분하다. 테러 위험인물을 '테러 예비·음모·선전·선동을 하였거나 하였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로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국정원이 영장도 없이 이들의 금융정보나 개인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했다. e메일·문자메시지도 언제든 들여다볼 수 있다. 통제장치라곤 대통령령으로 임명하는 인권보호관 한 명을 두는 데 그쳤다. 결국 국정원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개인이나, 집권세력에 저항하는 정치 세력을 사찰할 수 있는 것이다.


국정원의 국민감시 일상화를 초래한 1차적 책임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에 있다. 야당은 9일간 38명이 필리버스터를 이어가며 법 통과를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박근혜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그 어떤 대화와 타협도 거부했다. 새누리당은 독소조항 수정 요구에 "일점일획도 고칠 수 없다"고 벼텼다. 제1야당으로서 법안 통과를 저지하지 못한 더불어민주당도 능력부족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합법적, 민주적 절차인 필리버스터를 이념전으로 깎아내린 발언은 지지자들을 실망시켰다. 당 지도부와 의원들이 '질서있는 퇴각'을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국민들은 이제 두 눈 크게 뜨고 국정원과 여권의 행태를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정치적 일탈이나 기본권 침해가 발생한다면 관련자들의 분명한 정치적 책임을 묻게 될 것이다.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지지하던 시민들에게는 투표권이란 무기가 있다. 그런 점에서 집권 세력이 테러방지법 통과를 마냥 반길 일은 아니다. 언제든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올 수 있다.


테러방지법이 지금 여당에게 부메랑이 될 것이란 예측, 받아들이긴 하겠으나 국민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란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런 표현은 나를 불안하게 한다. 마지막날 박영선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할때 구차하게 국민에게 매달리는 듯한 그 '오버'가 연상됐기 때문이다.


지금 야당이 할 일은 국민의 도움에 호소하지 말고 어쨌든 '옳은 길'로 무소처럼 가야하는 것뿐이다. 진인사대천명. 그래야만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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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동공원은 몇 번이고 가본 곳이다. 나무가 새옷을 갈아입고 꽃들이 삼삼오오 모여 즐겁게 노래할 때쯤 다시 가서 봄기운을 느껴봐야겠다. 3월 1일. 아직은 이르단 느낌이지만 따스한 햇살에 눈비비고 일어나는 공원을 한 바퀴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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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장안리 산 31. 조선 16대 임금 인조를 모신 '인조대왕각'이 있는 성전암 주소다.


이 성전암에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등극에 성공한 인조반정의 주인공 '능양군'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인조가 백일기도를 했다는 성전암 대웅전은 안타깝게도 2010년 5월 어느 정신 나간 30대(당시 나이)에 의해 불타 없어지고 지금은 '무량수전'이란 이름으로 새로 지은 건물이 단청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화재 당시 목조여래좌상(문화재)은 스님에 의해 구출되었지만 문화재급 건물이라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히 인조가 반정에 성공하고 즉위한 뒤 지었다는 '인조대왕각'은 대웅전에서 좀 위쪽으로 떨어져 있어 화마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


인조대왕각이라는 편액이 건물 가운데 걸렸고 왼쪽엔 산신각 편액이 걸렸다. 안에 들어가면 가운데 인조대왕신위가 모셔져 있고 오른쪽에 산신탱화, 왼쪽에 용왕탱화가 걸려있다. 


인조가 능양군이던 시절 광해군에게 쫒겨 이곳에 왔었다. 광해군 7년, 1615년 수안군수 신경희가 반란을 꾀하면서 능양군의 동생인 당시 17세 능창군을 추대했다는 이유로 유배 보낸 뒤 사약을 내려 죽인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신경희의 옥사 사건인데, 이를 계기로 능양군의 아버지가 홧병으로 죽고 능양군은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광해군 15년, 1623년 김류와 이괄, 이귀, 최명길 등을 중심으로 한 서인들이 능양군과 뭉쳐 반정을 일으킨 게 인조반정이다. 능양군이 반정을 일으키기 직전에 백일기도를 올린 곳이 이곳 성전암인 것이다.


종교시설인 사찰이 부처와 보살, 미륵, 나한 등 불교 존자와 함께 국왕의 신위를 모시는 것이 이치에 맞나 싶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런 인연을 보전했기에 성전암이 그만한 명성을 얻을 수 있었겠다 싶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인조가 반정을 일으켜 왕권을 쥐었지만 광해군을 몰아낸 명분이 약했고 그러다 보니 국정보다는 반대세력에 대한 견제에 더 신경을 썼다. 정치가 잘될 턱이 없었다. 불안한 정국이 계속되면서 인조반정의 공신 이괄이 역적으로 모함받게 되자 반란을 일으켰고, 정세를 제대로 파악 못하고 배금정책을 유지하다가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된다.


게다가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소현세자가 돌아오자 청나라를 좋게 여긴다는 이유로 독살해버린다. 그런 역사적 사실이 있는 인물이가 아무리 산신과 용왕을 함께 모신 전각 안에 신위가 모셔져 있다해도 고개 숙여 절할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어느 네티즌 말마따나 이 전각에 이왕이면 '용왕각' 편액 하나 더 붙인다면 이가 하나 빠진 듯한 느낌은 메워지리라 생각한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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