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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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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동예술촌 아트센터 상반기 기획전 '유리의 시간' 포스터를 보면, '냉정과 열정 사이'란 부제라 붙어있다. 이 부제를 보는 순간 "야, 참 멋지게도 달았다" 싶었다. 유리는 차디찬 오브제다. 유리를 따뜻하게 느끼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유리가 형태를 갖추기 위해서는 상상 이상의 고열이 필요하다. 그것을 열정이라고 표현했다. 열정과 결과물 냉정. 그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


'유리의 시간'은 지난 3일 전시되기 시작해 오는 22일까지 진행된다. 참여 작가는 김준용, 박선민, 오정선, 이규홍, 이영재, 정광민, 정정훈, 정혜경. 8명이 각각 2~3개의 작품을 내걸었다. '내걸었다'는 표현이 좀 어색하기는 하다. 그냥 말만 들으면 유리공예를 벽에다 회화작품처럼 내걸었다는 말이냐 하고 표현의 어눌함을 지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조형 작품을 전시한 것도 있고 회화처럼 벽에 건 작품도 있다.


유리가루를 활용해 회화를 그린 작품이 있어 그런 것이다. 수채화나 유화와 달리 유리가루를 뿌려 그림을 그린 작품은 독특한 느낌을 준다.


정광민 작가의 '수행하고 수행하는 대화'




오정선 작 '여행으로 물들다'


이영재 작 '외출'


전시실에는 작업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유리 작품을 두고 현대 예술의 부산물 정도로 여기는 사람이 없지 않다. 그런데 유리공예의 역사는 아주 오래됐다. 삼국시대 무덤에서 발견된 유리공예 작품들은 역사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것인지 '아하!'할 것이다. 서양에선 이미 로마 이전 오리엔트, 이집트에서 유리공예가 문화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전시된 작품을 다 촬영해 소개하면 좋겠지만 역시 이번에도 마냥 내 맘에 드는 몇 작품만 찍었다. 그래서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미리 말하고자 함이다.


맨 위 정광민 작가의 작품은 앞서 언급한 대로 독특한 분위기를 주는 평면예술이다. 엄밀히 따지면 평면은 아니다. 회화라는 생각이 들지만 입체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오정선 작가의 작품은 유리를 활용해 물방울을 표현했다. 언뜻 김창렬 화백의 물방울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입체적인 물방울 유리를 통해 빛이 통과하면서 일렁이는 듯한 투명 그림자를 형성해 신선한 감흥을 일으키게 한다.


이영재 작 외출은 작품을 통해 작가의 인식 또는 주장이 다른 작품에 비해 또렷한 것 같다. 집 안의 집, 서로 다른 방향, 엇갈린 문... 개미가 보는 세계가 다르고, 인간이 보는 세계가 다르듯 인식에 따라 세상이 다르고 방향도 다르다는 얘길까.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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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창동에서 여유있는 시간을 보낸다. 이게 다 나의 철두철미하지 못한 일정관리 때문임을... 오늘 점심 때는 지난주 공연한 작품 <변신>에 대한 토론으로 두어시간을 보냈고 또 두어 시간은 희곡 창작을 위한 토론으로 보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아내와 함께 연극 공연을 보러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내가 체크를 못했던 일정이 3시간 후 지금 앉아 있는 이 극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크엔젤의 도시>. 연습이 잡혀 있었다. 뒤늦게 알게됐지만 어쩔 수 없다. 여러 인원이 움직이는 연극 연습이 우선이니.. 아내에겐 '쏘리'를 날렸다. 


류시원 작 '노스텔지어'


현재호 작 '자화상'



물방울 작가로 유명한 김창렬 작품.


3시간. 늘 바쁘게 사는 내겐 아주 긴 호흡일 수 있다. 금강미술관. 종종 들르는 단골 장소다. 이곳은 우영준 컬렉션이 주 전시 종목이다. 이 미술관을 설립한 한국야나세 우영준 회장은 상당한 작품을 소장한 것 같다. 이번 전시회는 열한 번째 소장품 전시로 '한국현대미술의 주역들'이란 제목이 붙었다.


주로 한국현대미술의 1, 2세대 작가들로 미술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익숙한 이름의 작가들이 제법 보인다. 전시실에 걸려있는 설명문 일부를 발췌한다.


"한국에 서양미술이 유입된 1920년대 이래 90여 년간 발전을 거듭한 결과 지금의 한국미술이 세계현대미술사에 획을 그을 만한 거장들이 대거 배출되었다. 그 시초는 동경 여자미술전문학교를 졸업한 한국 최초의 여성화가인 나혜석과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고희동, 이마동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한국미술은 유럽의 예술가들이 아시아를 방문할 때 전초기지로 삼았던 일본을 통해서 유입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고장에서 태어난 이준, 이림, 문신, 전혁림, 이성자, 박생광, 김종영 등을 비롯하여 이중섭, 김관호, 김찬영, 이종우, 장발, 이병규, 공진형, 도상봉, 이인정, 오지호, 김환기, 유영국, 송해수, 박수근, 이봉상, 홍종명, 김흥수, 박영선, 장두건, 권옥연, 변종하, 박서보, 남관 등이 있고 동양화 분야에는 장우성, 박노수, 김기창, 이상범, 허백련, 김은호, 최우석, 노수현, 박승무 등이 한국현대미술의 1세대에 해당하는 거장들이다."


2층 전시실.


유 회장이 이러한 화백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긴 예전 소장품 전시 때 오늘 못 봤던 여러 작가의 작품을 본 기억이 있다. 모네 같은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작가의 작품까지.


오늘 전시된 작품 중에 이름이라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작가들을 체크해봤다. 현재호, 김영태, 류시원, 이두식, 천호림, 변상봉, 강대진, 김창렬, 전혁림... 전시된 작품 중에 아는 이는 3분의 1도 안 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계속 작품을 접하면 자연히 아는 작가들도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작품을 보는 안목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이 <안목>이란 책에서 조선 후기 추사체를 평한 박규수를 얘기하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것은 통찰력을 가지고 서체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쉬운 말로 치환하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게 안목의 핵심이다. 


작품 속의 스토리를 읽을 수 있는 안목을 지닐 수 있다면 미술관에서의 작품 감상 또한 더 즐거워지리라.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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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꽤 괜찮은 책을 손에 쥐었다. 유홍준의 <안목>. 내가 베짱이류는 아니지만 일하는 것만큼 예술 바닥에서 노는 것을 좋아해 연극, 영화, 음악 연주, 미술전람회 등등 가리지 않고 즐기는데 기본 소양이 부족해서 인지 예술을 보는 안목이 좁디좁은지라 우연히 어느 잡지에 소개된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보면서 읽는 쪽마다 무릎을 치다 보니... 안티프라민이 무슨 소용이랴.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논한 환재 박규수의 안목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눈길을 끈다. 박규수는 추사체를 보고 이렇게 적었다.


"추사의 글씨는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그 서법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어렸을 적에는 오직 동기창체에 뜻을 두었고, 젊어서 연경(북경)을 다녀온 후에는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옹방강을 좇아 노닐면서 열심히 그의 글씨를 본받았다. 그래서 이 무렵 추사의 글씨느 ㄴ너무 기름지고 획이 두껍고 골기가 적었다는 흠이 있었다.(…) 그러나 소식, 구양순 등 역대 명필들을 열심히 공부하고 익히면서 대가들의 신수를 체득하게 되었고, 만년에 제주도 귀양살이로 바다를 건너갔다 돌아온 다음부터는 마침내 남에게 구속받고 본뜨는 경향이 다시는 없고 여러 대가의 장점을 모아서 스스로 일법을 이루었으니, 신이 오는 듯, 기가 오는 듯, 바다의 조수가 밀려오는 듯하였다.(…) 그래서 내가 후생 소년들에게 함부로 추사체를 흉내 내지 말라고 한 것이다."



박규수는 추사체가 제주 귀양살이 후에 완성되었다고 본 것이다. 유홍준은 박규수의 이 글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쳤다는 것이다. 흔히 위대한 예술가를 논할 때 그의 천재성을 앞세우는데 박규수는 젊은 시절의 추사가 보인 결함까지 말하고 또한 추사를 배우려면 글씨를 모방하지 말고 그의 수련과 연찬을 배우라고 한 말에서 미를 보는 안목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안목은 사전에서 '사물이나 현상을 보고 분별하는 식견'이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역사를 보는 안목, 경제 동향을 읽어내는 안목, 정치의 방향을 제시하는 안목,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 등등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유홍준은 책에서 박규수의 안목에 대해 친구인 안병욱 교수와 논한 일화를 소개했다.


"안 교수, 박규수는 안목이 대단히 높았던 것 같아."

"아니야, 바규스의 안목은 깊었어."

때마침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을 만나 누가 옳으냐고 물었다.

"둘 다 틀렸어. 박규수의 안목은 넓었어."


그래서 유홍준은 안목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예술을 보는 안목은 높아야 하고

역사를 보는 안목은 깊어야 하고

현실정치 경제 사회를 보는 안목은 넓어야 하고

미래를 보는 안목은 멀어야 한다.


그러면 사람을 보는 안목은 어때야 할까.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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