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그렇게 눈물이 흐르더니 새벽 세시 반, 이제 말랐나보다.
아이들 혼자 두기 뭐해서 집으로 들어왔다. 빈소엔 어머니와 아내가 지키고 있다.
아내는 한국에 와서 근 6년 만에 처음 상을 당한다.
아내의 눈도 퉁퉁 부었다. 좀 전에 전화가 왔는데 아직 안 자나 보다. 아침부터는 매우 고될 것인데...
서인이는 막내가 자다 깨어 울까봐 옆에서 자다가 아빠가 들어오니 제 방으로 말 없이 건너간다.
중3, 이제 알 것 아는 나이여서 그런지 내가 들어올 때까지 제대로 잠 못자고 울었나보다.
초등학교 6학년인 승환이는 아직 상황파악이 안 된 모양이다. "할머니가 숨을 안 쉰대"했는데,
"무슨 말이예요? 무슨 말이예요?"하고 자꾸 반문하더니 할머니 빈소에 모시고 새벽에 돌아와보니 잘도 자고 있다.
막내는 벌써부터 잤는데 아직 한 번도 안 깬 모양이다. 엄마 아빠 없을 때 안 일어난 것만 해도 다행이다.
할머니는 올해 아흔 하나다. 기미년 다음해인 경신년에 태어나셨으니 만으로 치면 올해로 꼭 아흔이다.
어찌보면 호상이다. 물론 고혈압 때문에 수십년을 약을 놓진 않았지만 특별히 고통스런 지병이 없이 한평생 사셨으니.
요즘 평균 나이로 보면 기록될 만큼의 장수는 아니지만 증손주를 다섯이나 봤고, 평생을 남의 집 전세로 전전하다 말년엔 비록 촌이긴 하지만 손자이름으로 된 우리집도 구했고, 그토록 소원이었던 우리집에서 돌아가셨으니 불행한 삶은 아니었겠다.
할머니는 큰 손자인 나와 창원 소답동에서 둘이 살 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한다. 손자 뒷바라지 하느라 가장 많은 고생을 했던 시기였는데.... 직장 다녀오면 손자 피곤할 거라면서 발도 씻어주고.... 직장생활 힘 없으면 안 된다고 가물치도 소답장에서 사다가 고아주시고... 그랬는데, 그랬는데...
할머니 침대에서 누워 생활하신지 벌써 5개월은 넘었는데... 가까이서 살갑게 대해주지 못해 정말 미안해예.
할머니 속병 없어서 한 일년 더 사실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저승사자 따라 나서면 어짭니꺼.
북면 가서 뵐 때마다 "나는 안 갈란다. 나는 안 갈란다"하시더니 와, 말도 없이 가시는 겁니꺼.
........
할매, 하늘에 가시걸랑 꼭 할아버니 만나서 행복하게 사시이소. 전쟁토에 헤어져 언제 어디서 돌아가셨는지도 모르는 할아버지 구월구일마다 제사로 만나지만 이제부턴 절대로 헤어지지 말고 꼭 붙어서 사이소. 할매, 사랑해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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