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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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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학원에서 배운 춤을 춰보라고 했다. 아이는 머뭇거림 없이 바로 흘러나오는 음악에 춤을 춘다.


바깥에선 온몸이 그저 부끄러움 덩어리인 아이가 집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 학원에선 또 그렇게 부끄러움이 없는 모양이다. 춤에 자신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뭐든 자신있는 것을 하게 되면 부끄러움이 어느 정도 사라지는 게 당연지사겠지.


춤을 추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기도 하려니와 새로 산 로데 샷건 마이크를 테스트했다. 실내 테스트는 어느 정도 만족스럽다. 아래쪽에서 음악을 켰는데 원음 가까이 마이크에 수음되는 것 같다.




귀농귀촌도시농업박람회 때 열린 전원주택 세미나를 동영상 촬영했다. 주변 잡음들이 많은 데다 스피커의 성능이 좋지 않아 음질이 깨끗하게 나오지 않았다.

뭐 원음 불변의 법칙? 영상작업은 다음에 하기로 하고 다음.

야외 촬영 테스트. 창녕 김진숙 문화관광해설사의 도움을 얻어 창녕 석빙고 해설 장면을 동영상 촬영한 것이다. 이 마이크는 야외에서 더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다. 바람소리가 수음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데드캣을 하나 장만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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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희망의 역사 엿보다

[해설이 있는 경남](1)진주편 : 용호정원~청동기유적박물관~진주성


지난 3월 28일 진주시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용호정원을 비롯해 청동기문화박물관, 진주농민항쟁탑, 이충무공진배미유적지, 그리고 진주성으로 돌아오는 ‘진주투어’를 다녀왔다.


이번 기획은 경남 도내 여러 관광지를 다니면서도 정작 그곳이 어떤 곳인지, 어떤 역사적 의미가 담긴 곳인지 몰랐던 여행 관습에서 벗어나 해당 지역의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제대로 보고 배우는 가족여행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하게 되었다.


경남 도내 각 지역의 문화관광해설사는 경남도가 인력을 양성해 파견하는 형태로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문화관광해설사들은 해당 시군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경남도에서도 교육과 모집 등 일정 부분 지원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진주로 떠나기 닷새 전 진주시관광안내소(055-749-2485)로 전화를 했다. 이번 토요일(28) 진주 관광을 하려는데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싶다고. 그랬더니 마침 전화를 받으신 분이 당일 당번이어서 여행 안내를 해주겠단다.


그렇게 만난 문화관광해설사가 조서윤 씨다. 먼저 핸드폰 문자와 이메일을 통해 여행일정을 그와 논의했다. 역사 유적지 중심으로 관광하고 싶다고 하자 그가 먼저 청동기박물관과 농민항쟁기념탑, 진배미유적지, 그리고 진주성을 제의했다. 하지만, 너무 유적지 중심이라 진주에는 연못이 많은데 가볼 만한 연못을 추가하면 어떻겠냐 하여 용호정원이 들어간 일정이 도출됐다.


오전 10. 진주성 공북문 입구에서 전화와 이메일로 소식을 주고받았던 조서윤 문화관광해설사를 만났다. 주차장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자 그가 바로 알아차린 듯 걸어와 반긴다.


“바로 용호정원으로 가시죠!”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그를 차에 태우고 첫 여행지인 용호정원으로 출발했다. 진주성에서 산청으로 가는 방향으로 20분 정도 가니 잘 눈에 띄지 않는 위치에 용호정원이 있었다.


조서윤 진주시 문화관광해설사가 용호정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초봄이라 그런지 용호정원엔 마른 연꽃 가지들과 아직 잎을 피우지 못한 나뭇가지들로 말미암아 따스한 햇볕이 드는 겨울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연꽃이 피는 시기가 아닌 데다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곳이라 좀 황량해요.”


조서윤 해설사는 논둑길을 걸으며 운을 떼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마을 옛사람들을 기린 불망비들이 나란히 서 있었고 오른쪽으론 가운데 팔각정이 있는 연못이 보였다. 연못 가운데 서 있는 팔각정이라, 연꽃이 화사하게 피는 계절이라면 제법 운치가 있겠다 싶다.


“이 용호정원은 조선 세조 때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자결한 충정공 박심문이란 분의 후손이 조성한 곳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박심문이란 사람이 마을 사람들을 위해 땅과 돈을 주어 만들어졌어요. , 연못 가운데 있는 팔각정으로 드나드는 배가 있긴 한데 지금은 운영을 하지 않아요. 그리고 저쪽 뒤편에 커피숍이 있는데 건물이 꼭 관공서 같아서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지요.”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면서 연꽃이 만발할 시기에 다시 와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진주엔 이런 연못이 여러 군데 있으니 ‘연꽃투어’를 계획해보는 것도 좋겠다.


대평면에 있는 청동기문화박물관 앞 안내판을 보면서 설명하고 있는 조서윤 해설사.


우린 다음 코스로 대평면에 있는 ‘청동기문화박물관’으로 향했다. 청동기문화박물관은 1975년부터 1980년 사이 남강 다목적댐 개량사업 추진 과정에서 수몰예정지에 있던 매장문화재를 발굴해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이곳은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그대로 꾸며놓은 야외전시장과 청동시 시대를 거치면서 역사시대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된 박물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자 마침 학예사가 여러 관광객에게 해설을 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함께 갔던 해설사가 이곳의 해설은 학예사에게 직접 듣는 게 좋겠다고 한다. 천성주 학예사. 그를 따라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살았다는 움막으로 향했다.


천성주 청동기문화박물관 학예사가 고상창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저기 보이는 큰 움막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생활했던 곳인데 안에서 화덕을 피우고 했어요, 대신 이 앞에 보이는 작은 움막은 단순한 주거 용도입니다. 불을 피우거나 할 때엔 밖에 나와서 했지요.”


천 학예사는 움막 안으로 들어가 소개한 다음 밖으로 나와 고상창고에 대해 설명했다. 다른 말로 ‘다락창고’라고도 한다. 이 건물은 청동기 시대 마을의 식량을 저장한 곳으로 땅에서 발생하는 습기로부터 곡식이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옛사람들 지혜의 결정체라는 설명이다.


이어서 청동기 시대 무덤을 복원해놓은 곳으로 이동했다. 청동기 시대 유행했던 석관묘의 형태를 관찰하고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대평면 유적지 발굴 사진들을 보며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도 들었다.


야외전시장 설명을 모두 듣고 나서 우리는 다시 박물관 안으로 돌아왔다. 학예사는 우리 가족이 안에서 설명을 듣지 않았다는 점을 인식해 계속 안내를 해주었다.


“밖에 있는 유물들은 관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가짜들이고요, 여기에 있는 것은 대부분 진짜입니다.” 그렇게 천 학예사는 운을 떼고 선사시대부터 우리 조상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설명을 이어갔다.


청동기 시대 생활상을 디오라마로 구성해놓은 전시관을 보며 학예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관람객들.


설명이 이어지는 가운데 다른 가족도 합류하게 되었다. 학예사는 퀴즈도 내면서 안내를 했다. 학예사의 설명이 끝나고 함께 간 조서윤 문화관광해설사가 보충설명을 해주었다.


우리 일행은 박물관을 나와 수곡면 창촌리 농민항쟁기념탑을 찾았다. 이 탑은 2012624일 건립됐다. 이 탑은 1862년 조선 철종 13214일 진주에서 일어난 최초의 반봉건 농민항쟁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수곡면 창촌리에 있는 농민항쟁기념탑으로 향하고 있는 일행.


“탑 주위에는 당시 희생당한 분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요. 사노귀대, 사노명돌이란 이름들이 보이는데 사노란 노비 신분으로 성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명패를 새긴 거예요.”


다음 코스. 수곡면 원계리에 있는 이충무공 진배미 유지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16호다. 진배미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군사훈련을 하였다는 마을 앞 ‘진터’를 두고 이르는 말인데 이곳이 논배미여서 ‘진배미’란 이름이 붙여졌다. 군사들의 훈련장으로 활용되었던 곳이어서 그런지 비닐하우스만 없었다면 정말 군사들이 마음껏 훈련했을 광활한 장소다.


조서윤 해설사가 이충무공의 군사훈련지였던 진배미유적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군사훈련 장소였던 진배미 들판.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 받았던 손경례 고택으로 들어가는 일행.


이곳 마을에 ‘손경례의 집’이 있다. ‘손경례의 집’은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던 중 원균이 이끌던 조선 수군이 대패했다는 소식과 함께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금의 교서를 받았던 곳이다. 이순신 장군은 1597727일 이곳에 머물렀는데 83일 교서를 받은 것이다. 그동안 손경례는 이런 이순신을 깍듯이 대했다고 한다.


마을 앞길은 산청 남사예담촌까지 이어지는 백의종군로다. 손경례가()를 나온 일행은 진주성으로 향했다. 먼저 공북문으로 들어섰다.


“진주성의 정문은 어느 문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촉석루 앞에 있는 촉석문이 정문이라고 생각해요. 잘못 알고 있는 거죠. 공북문이 정문이에요.”


‘공북’이란 말은 충성을 맹세한 신하가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공손하게 예를 올린다는 뜻이다. 공북문은 조선 말 훼손되었는데, 2002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진주성은 그동안 열 차례도 넘게 온 곳이어서 별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아 무심코 걷고 있는데 조서윤 해설사가 딸의 손을 잡고 김시민 장군 동상 앞에 선다.


김시민 장군 동상 앞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해설사와 경청하고 있는 가족.


“지원아, 이분이 누군지 알겠어요?”

“이순신 장군요.”


아이는 지금까지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줄곧 들어와서 그런지 무심결에 오답을 내고 말았다. 한자를 알고 있었다면 그 동상 아래에 쓰인 글자를 보고 눈치껏 김시민 장군임을 알아차렸겠지만 좀 당황한 눈치다.


해설사는 김시민 장군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했다. 아이 혼자 듣게 하는 게 어색해서 곁으로 가서 함께 설명을 들었다. 아마 아이에게 진주성 하면 ‘김시민’이 등식으로 개념이 잡혔지 않았을까 싶다.


진주성 내 우물가에서 조서윤 해설사가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진주성 우물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해설사는 진주성 안에 우물이 여러 곳에 걸쳐 있었다고 했다. 수맥을 따라 곳곳에 우물이 있어 성내 군사들과 백성들이 유용하게 사용했다는 것이다.


일행은 촉석루를 구경하고 논개 영정이 모셔져 있는 의기사로 들어갔다. 논개야 널리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해설사는 아이에게 논개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우리에게 의기사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논개 영정은 누가 새로 그렸는지 등에 대해 설명했다.


논개 영정이 모셔져 있는 의기사 앞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가족.


해설사의 설명에 따라 의암 바위를 내려다 보고 있는 가족.


“이제 논개가 적장을 안고 물속으로 뛰어든 의암 바위로 가시죠. 오늘은 날이 좋아 개방을 하지만 비가 오거나 할 땐 위험해서 출입을 금하고 있어요. 다행이네요.”


우리는 바위 있는 곳까지 내려가지는 않았다. 예전엔 바위 위로 건너가는 것을 통제하지 않았지만 이젠 막는단다. 위험하기도 하고. 우린 출입구 앞에서 의암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서 하루 여행 일정을 마쳤다.


단체 관광이 아니라 가족 관광으로 일정을 짜면서 진주시의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여행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어쩌면 예사로 스쳐 지나갔을 유적지들, 해설사로부터 설명을 들으면서 다녀보니 그만큼 많이 알게 되고 인상도 깊게 각인되는 것 같다.


진주시 대평면 청동기문화박물관에서 천성주 학예사가 고대 무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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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토끼와 거북 전설이 깃든 사천 비토섬

별주부전으로 문학성까지 얻은 이야기…전설의 현장을 찾아서

 

사천시 서포면 비토리.

지금은 다리로 연결되어 섬이라 하기 그렇지만 위성지도로 내려다보면 고래 한 마리가 유유히 해안을 헤엄치는 모습을 한 작지 않은 섬입니다.

이 섬에는 누구나 아는 전설이 스며 있습니다바로 토끼와 거북 이야기입니다.


토끼와 거북이야기는 서로 상반되는 캐릭터여서 그런지 다양하게 전해 내려옵니다.

이솝우화에서처럼 토끼와 거북이 경주하는 이야기도 그렇고 이 섬에 서린 별주부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토끼와 거북은 따로 떼어놓고도 많은 이야기가 전합니다.


산중호걸 호랑이를 골탕먹이는 꾀많은 캐릭터로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 바로 토끼입니다.

거북 또한 느리지만 장수의 동물로 꼽히면서 자주 이야기에 등장하는 캐릭터입니다.

특히 김수로왕 설화에 담긴 구지가의 거북은 신비로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비토섬과 월등도를 항공촬영한 안내도

용궁을 배경으로 한 토끼와 거북의 이야기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먼저 고대 인도 설화집인 ‘판차탄트라’에 실린 이야기부터 꺼낼 수밖에 없겠네요.

이 설화집은 6세기 쯤 중세 페리시아어인 파흘라비어로 번역되었다는데원본은 없기 때문에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습니다


이 ‘판차탄트라’에서는 악어와 원숭이가 유사한 스토리로 등장합니다.

이것이 불전에 실리게 되는데 악어 대신 자라로 스토리 주인공이 변신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불교 경전이 우리나라로 전파되면서 원숭이 대신 토끼가 주연을 꿰차게 되고 별주부전의 원형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토끼와 거북으로 주연이 완전히 대체된 한국형 이야기는 ‘삼국사기’에 전합니다바로 ‘귀토설화’입니다.

귀토설화는 신라 선덕여왕 때 김춘추의 활동에서 비롯됩니다.

차기 무열왕이 되는 김춘추는 백제의 침입으로 신라가 힘겨워지자 고구려로 달려가 청병을 요청합니다.

 

비토교 입구

 

거북교를 건너 이어지는 토끼와 거북이길

그런데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김춘추에게 원래 고구려 땅이었던 한강 유역의 땅을 돌려달라고 합니다.

김춘추가 그것은 안 된다고 하자 연개소문은 그를 옥에 가두어버립니다.

이때 고구려의 한 신하가 김춘추에게 귀토지설즉 거북과 토끼 이야기를 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김춘추는 연개소문을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하여 자기는 일개 신하이기 때문에 바로 결정할 수는 없고 돌아가서 여왕 폐하께 간청하여 한강유역을 고구려에 주겠노라고 약속하고 신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합니다물론 토끼의 꾀를 응용한 것이지요.


김춘추가 고구려 신하로부터 들었다는 귀토설화가 사천시 서포면 비토섬 동쪽 끝 월등도에 고스란히 스며 있습니다.

이 설화는 월등도 주변의 거북섬과 토끼섬목섬으로 인해 전설이 되었고 지금은 이 지역 대표적인 스토리텔링이 되어 있습니다.


남해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곤양IC에서 남쪽으로 서포로를 따라 가면 20분도 안 되어 비토섬에 도착합니다.

검섬삼거리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면 비토교가 나옵니다.

여기서 반가운 안내판을 만나게 되는데사천시 관광안내도입니다.

안내도 왼쪽엔 ‘별주부전의 배경이 남해안 지방이라는 근거’가 있고 오른쪽엔 ‘사천 8경’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읽어보면, ‘토생전’에선 북해 용궁이라 하고 ‘불주부전’에는 동해 용궁, ‘토별가’와 ‘수궁가’ 등에선 남해 용궁으로 전해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해와 남해는 이해가 되는데, 북해는 어디일까 싶네요.


비토교를 건너 섬으로 들어가면 또 하나의 다리인 거북교를 건너게 됩니다.

여기서 얼마 못 가 비토섬휴게소를 만나는데 일단 우회전하기로 합니다.

고개를 넘으면 넓게 펼쳐진 바다를 보게 됩니다.

바다 건너 멀리 하동 금오산과 큰설산이 보입니다.

 

생굴회와 굴국밥 등을 판매하는 비닐하우스 식당

지난 325일 마침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섬들도 선명하게 보입니다.

바닷물도 더없이 깨끗해 보이고요.

곳곳에 비닐하우스로 생굴을 판매하는 곳이 있군요.

바로 생굴회와 굴국밥 등 식사를 해주기도 하네요.


해안도로를 따라 더 들어가면, 사천수협활어위판장을 만나게 되는데 오른쪽으로 난 부두 길을 따라 바다쪽으로 나가면 비토해양낚시공원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잡는 물고기들을 구경해도 시간가는 줄 모를 것 같네요.

 

낙지포마을 비토해양낚시공원

여기서 다시 가던 길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면 토끼와 거북 모형이 반깁니다.

월등도 입구입니다.

바로 토끼와 거북 전설이 있는 곳이지요.


토끼와 거북 모형 옆에는 원형 조형물에 ‘별주부전 전설’이란 제목으로 설명문이 있는데, 월등도와 토끼섬거북섬, 목섬에 얽힌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여기에 적힌 내용을 옮겨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토끼와 거북 설화와는 좀 다른 스토리가 있군요.

 

월등도 앞 토끼와 거북 조형물과 별주부전 내용을 담은 안내문

 

비토섬에서 월등도로 들어가는 갯벌, 물이 빠지면 길이 열린다.

 

맞은 편 섬이 월등도이고 오른쪽이 거북섬이다.

“서포면 비토, 선전리 선창과 자혜리 돌 끝을 생활터전으로 꾀 많은 토끼 부부가 행복하게 살아가던 중 남편 토끼가 용궁에서 온 별주부(거북)의 감언이설에 속아 용궁으로 가게 된다.

용궁에 도착하니용왕은 병들어 있고 오직 토끼의 생간이 신효하다는 의원의 처방에 따라 자신이 잡혀왔음을 알게 된 토끼는 꾀를 내어 ‘한달 중 달이 커지는 선보름이 되면 간을 꺼내어 말리는데, 지금이 음력 15일이라 월등도 산 중턱 계수나무에 걸어두고 왔다’고 거짓말을 한다이에 용왕은 토끼의 말을 믿고 다시 육지로 데려다 주라고 별주부에게 명한다.

월등도 앞바다에 당도한 토끼는 발빛에 반사된 육지를 보고 성급히 뛰어내리다 바닷물에 떨어져 죽고 말았으며그 자리에 토끼 모양의 섬이 생겨났다(현재의 토끼섬).

토끼를 놓치 별주부는 용왕으로부터 벌 받을 것을 걱정하여 용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거북 모양의 섬이 되었다(현재의 거북섬).

한편부인 토끼는 남편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다 바위 끝에서 떨어져 죽어 돌 끝 앞에 있는 섬(현재의 목섬)이 되었다.

현재 이곳 주민들은 월등도(月登島)를 돌당섬이라 부르고 있는데, 그 이유는 토끼가 용궁에 잡혀간 후 돌아와 처음 당도한 곳이라는 뜻에서 ‘돌아오다’ 그리고 ‘당도하다’의 첫머리 글자를 따서 돌당섬이라 부르고 있다.”


이곳은 기념촬영을 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초등학생 이하의 자녀가 있다면 아주 좋아할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여기서 아래쪽으로 비스듬히 난 길로 내려갑니다.

길 끝에 도착하면 바로 반가운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모세의 기적’이라는 키워드로 만나는 지형이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건너편에 월등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물이 차서 월등도로 건너갈 수가 없군요.

물이 빠지는 날에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몰려옵니다.

잠시 길을 걸으니 작은 고깃배가 모터소리를 내며 지나갑니다.

물이 빠지면 사람이 건너는 그쪽으로 물살을 일으키며 지나갑니다.

그 모습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꼭 공룡발자국을 발견할 것만 같은 풍경이 펼쳐집니다.

경치가 눈이 시리도록 좋습니다.

월등도로 건너가진 못하지만 여기에서 거북섬을 볼 수 있습니다.

볼록한 등에 소나무들이 꼭 우담바라처럼 자라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꺼번에 토끼섬을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토끼섬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검섬 검도항으로 향합니다.

검도항으로 가기 위해선 월등도로 들어가기 전에 보았던 별주부전 테마파크로 다시 나와야 합니다.

 

별주부전테마파크 안내판
테마파크 주차장 앞에 설치된 토끼아내 조형물, 남편 토끼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테마파크가 한산합니다. 테마파크에는 커다란 토끼상이 있습니다. 남편 토끼를 기다리던 아내 토끼입니다.

새끼토끼들도 주변에 많이 있네요. 살아있는 토끼를 기르는 토끼장이 있는데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서인지 토끼는 보이지 않습니다.

테마파크 주차장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면 별주부전 테마파크 이야기 공원이 나옵니다.

삽화와 함께 별주부전을 읽을 수 있는 공원입니다.

놀이터도 있어서 아이들이 좋아할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기념촬영을 하면 재미있는 장면이 많이 연출될 것 같군요.

 

앞쪽은 컬러로 된 삽화이며 뒤쪽은 해당 이야기가 적혀있다.

 

포토존 뒤편에 조성된 어린이 놀이터

테마파크 가운데엔 양쪽에 거북과 토끼를 대동하고 용왕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왔다면 여기서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고 다시 아래로 내려가 해변으로 난 목책 데크로드를 따라 걸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물레방아와 목재로 된 계단을 만납니다.

계단을 끝까지 오르면 중봉 정상에 전망대가 나타납니다.

사천대교뿐만 아니라 삼천포대교도 눈에 들어옵니다.

물론 가까이 월등도도 한눈에 들어오고요.

남쪽으로는 남해군의 여러 산들이 바다를 떡하니 가로막고 위용 있게 서 있습니다.

 

해안을 따라 조성된 목책 데크로드

이제 토끼섬과 목섬을 보러 검도항으로 갈 차례입니다.

검도항에 도착하니 월등도 일부에 가려 토끼섬이 일부만 보입니다.

게다가 목섬은 양식장에 가려 아예 보이질 않네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항구에서 따스한 햇볕과 조금 놀다가 나섭니다.

사천대교를 건너면 목섬을 볼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을 하면서 말이죠.


되돌아오는 길 검섬 고개를 넘다가 되돌아 보니 토끼섬이 잘 보이네요.

그 너머로 각산도 눈에 들어옵니다.

목섬 사진은 사천대교를 넘어 선전마을 쯤에서 찍을 수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토끼와 거북 전설의 현장을 모두 확인하였습니다.

 

오른쪽 월등도에 거의 붙어 있는 토끼섬
바다 건너 선전마을에서 본 목섬

별주부전 이야기 배경인 비토섬을 여행하면서 인근에 있는 삼천포 대교와 대방진굴항, 낙조 풍경으로 유명한 실안마을까지 모두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지역에 얽힌 전설도 되새기고 주변 유명 관광지도 둘러보는 알찬 여행이 되었습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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