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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
꽃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나비는 예부터 문학이나 그림,
건축 등 여러 부문에 두루 긍정적 의미의 소재로
쓰인 존재입니다.
장자의 ‘나비 꿈’
이야기는 유명하지요. 어느
날 장주(蔣周)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녔는데,
깨어보니 헷갈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신이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지금 자신으로 된 꿈을 꾸는 것인지.
무봉사
안내판에 새겨진 태극무늬 나비.
그리고 중국의 두보라는
시인도 그의 시 ‘곡강’에서 이렇게 노래했지요.
“꽃을 누비고 날아다니는 나비는 그 날갯짓이
아름다워 보이고/물
위에 꼬리를 담근 잠자리는 일이 끝나면 유유히
날아가네.”
또 우리 전통 미술
중에도 꽃과 나비를 그린 ‘화접도’가 무수히 많습니다.
게다가 집안에 두고 쓰는 장롱 따위의 생활물품에도
나비장식이 많이 부착되어 있는데,
이는 나비가 기쁨과 행복을 상징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즘 자주 쓰이는
시사용어로 브라질에서 팔랑거린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텍사스에서 돌풍이 될 수 있다는 ‘나비효과’처럼
과학이론에도 나비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나비가 그만큼
세계 어디를 불문하고 인간에게 친근한 곤충인 모양입니다.
그런 나비가 종종
이야깃거리의 소재가 되는 곳이 밀양이 아닐까 싶습니다.
2013년 하반기 TV드라마로
제작되어 관심을 끌었던 ‘아랑사또전’ 기억하는지요?
이는 밀양의 ‘아랑낭자’ 전설을 모티브로
만들어졌습니다.
아랑낭자 전설에서
신임사또가 아랑을 죽인 범인을 잡는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이었습니까? 죽은
아랑이 나비로 변해 범인의 머리 위에 날아가 범인을
색출하게 되지요. 물론
비과학적인 이야기 전개이지만 우리 조상들의 인식에
나비가 불행하고 억울한 것을 풀어주는 매개체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밀양다리에서
바라본 영남루와 아동산 전경.
이번 전설텔링에서
풀어낸 ‘태극나비, 훨훨’
역시 백성의 억울하고 힘든 삶을 풀어주는 상징으로
나비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밀양의 나비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태극나비 전설이 서린
곳도 아랑낭자 전설이 서린 곳과 비슷한 곳입니다.
바로 밀양 영남루 인근이지요.
아랑각은 영남루 바로 아래에 세워져 있고 태극나비
전설이 서린 무봉사는 영남루 위쪽에 있습니다.
태극나비 전설이 서린
무봉사와 아동산 기슭 비탈길,
그리고 밀양읍성이 있는 산 정상으로 둘러보겠습니다.
영남루 왼편 입구에는
세 갈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래쪽으로 아랑각으로 가는 길이고 그
옆으로 난 길은 무봉사로 향하는 길,
그리고 계단으로 올라가는 길은 사명대사 동상이
있는 곳인데, 여기서
더 올라가면 밀양읍성이 나오는 길입니다.
영남루
옆문에서 무봉사 뱡향 길로 접어들면 만나는 풍경.
두 번째 길을 택해
걸어가겠습니다. 약간
경사진 오르막 오른쪽 난간에는 무봉사에서 설치해놓은
여러 사진과 문구들이 있습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마라/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 서산대사의
오언절구입니다. 이런
글들과 사진을 보면서 서른 걸음쯤 오르면 무봉사의
일주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일주문을 지나 계단을
더 오르면 또 하나의 문이 있고 이 문을 지나 올라가면
비로소 대웅전을 만나게 됩니다.
대웅전 뜰에는 봄의 전령사라고 하는 매화가
향기를 뿌리고 있습니다.
하얀 매화와 빨간 매화가 서로 향기 뿜기 경쟁을
하는 듯합니다.
무봉사
뜰에 핀 홍매화.
대웅전
서편에 있는 승려들의 생활공간인 요사.
이 요사엔 ‘아동산무봉사’란 편액이 걸려 있다.
대웅전 앞에는 무봉사
태극나비 전설을 설명해놓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내용은 이번 이야기 1편에
소개한 대로입니다만, 끝
부분에 이런 구절이 있군요.
“그래서 무봉사를 참배하고 나면 경사스러운
일이 생긴다고 전해진다.”
참배를 하라는 얘기지요.
무봉사 대웅전 안에는
또 하나의 볼거리가 있습니다.
마침 스님의 설법이 이어지는 터라 촬영할 수는
없었지만, ‘무봉사
석조여래좌상’입니다. 이
석조여래좌상은 신라 36대
혜공왕 시대인 773년
법조 선사가 지은 영남사에 모셨던 불상이라고 합니다.
“네모난 얼굴에 가는
눈과 입, 넓적한 코,
짧은 목 등이 다소 평면적으로 표현되었으나,
전체적으로 단정한 인상이다.
둥글고 부드러운 어깨에 알맞은 가습이다.
목에는 세 줄의 삼도(三道)가
뚜렷하고 양 어깨에 걸친 법의(法衣)는
두텁게 표현되었다.” 불상을
설명한 글입니다. 이
불상은 광배의 꾸밈이 화려하고 복잡한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본답니다.
무봉사
동편으로 난 문.
무봉사를 한 바퀴
둘러보고 일주문 반대쪽으로 난 문으로 내려가면,
아동산 기슭길이 나옵니다.
오른쪽으로는 밀양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습니다.
강변은 야외공연장도 설치되어 있으며 수변공원으로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산기슭을 따라 오르다
보니 전설텔링 1편에
묘사된 것과 같이 태극나비 떼가 산을 휘감아 올라갈
때 그 뒤를 쫓아 올라가던 겸이와 하연의 뒷모습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무봉사
아랫길.
아동산
산기슭 둘레길.
아동산 동쪽에서 산
위로 오르는 길이 나 있습니다.
구불구불 산길을 걸어 올라가면 성루가 보입니다.
바로 무봉대입니다.
무봉대 아래에서는 산성 안쪽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습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암벽타기 하듯 해서
올라가기도 그렇습니다.
하는 수 없이 성의 외벽을 따라 걷습니다.
돌담길을 걷는 듯 호젓함이 느껴집니다.
성곽의 끝 부분에
다다르면 바로 무봉사 뒤편입니다.
무봉사에서 올라오는 길이 있는 모양입니다.
가파른 길이라 그런지 밧줄이 나무에 걸려 있습니다.
빙 둘러 걸어오면서 힘들었던 탓인지 그냥 이쪽으로
타고 올라올 걸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랬다면
아동산 비탈길을 걷는 기분을 느끼진 못했겠지요.
성곽 위로 올라갔습니다.
산 정상 쪽에 좀전에 보았던 무봉대가 서 있습니다.
성곽 위를 걸으면 역사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받습니다. 김해 분산성
성곽 위를 걸을 때와 마찬가지였습니다만 성곽 바깥에선
연거푸 외적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듯하고 이 성곽
위에선 아군이 온 힘을 다해 적을 막아내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밀양읍성
성곽.
아동산
정상에 있는 무봉대.
무봉대에서
내려다 본 밀양 시내 전경.
그런 상상을 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무봉대에 다다랐습니다.
밀양시내가 한눈에 보입니다.
밀양강을 낀 도심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성곽은 여기서 북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그쪽으로도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시
서쪽으로 걸어내려 왔습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던 멋있는 풍경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바로 송림의 아름다움입니다.
소나무들이 꼬불꼬불 줄기를 뻗어 자랐는데 규모는
비할 바 못 되긴 하지만 꼭 경주 남산 송림을 보는
듯합니다. 이런 소나무
숲으로 걷는 기분도 일품입니다.
제멋대로
자라 자연미를 한껏 뽐내고 있는 송림의 나무들.
송림에서 다시 하산길로
내려오면 사명대사 동상을 만납니다.
이곳에 특이한 나무가 있습니다.
바로 연리목입니다.
두 그루의 나무가 서로 딱 붙어서 자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나무를 부부나무라 부르기도
합니다. 연인들이
이곳에 와서 기념촬영을 하면서 서로 인연을 확인하기도
한답니다.
연리목 바로 앞에는
나비 떼가 기슭을 덮었습니다.
밀양아리랑 콘텐츠사업단에서 아랑나비와 태극나비를
알리기 위해 수백 개의 나비 목각을 세워놓았기
때문입니다. 전설에서
묘사되었듯이 수많은 나비들이 떼를 지어 산기슭을
타고 올라오는 듯한 모습입니다.
아랑나비,
태극나비 모양을 한 나비목각들.
어린이들이 만들었을
법한 나비작품들을 감상하고 계단을 내려오면 원위치입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작곡가
박시춘의 생가가 있습니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오~만~은….”
‘애수의 소야곡’을 비롯해 ‘이별의 부산정거장’
‘굳세어라 금순아’ ‘신라의 달밤’ 등 수많은
히트곡을 쓴 작곡이지요.
보물 제147호인
밀양 영남루를 찾는 계기가 있다면 바로 인근에 있는
아랑각과 무봉사, 밀양읍성,
그리고 송림, 연리목과
나비 목각들을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