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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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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2.17 (전설텔링)태극나비, 훨훨(3)
  2. 2015.02.13 (전설텔링)태극나비, 훨훨(2)
  3. 2015.02.05 (전설텔링)태극나비, 훨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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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태극나비, 훨훨(3)

신라 말기 밀양 무봉사에 나타났다는 태극나비에 얽힌 전설


(지난 줄거리) 신라의 국운이 다하던 어느 날 밀양 영남사 인근에 놀러 갔던 겸이와 하연은 때아닌 시기에 태극나비 떼가 아동산을 휘돌아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놀랍니다. 좋은 징조일까 나쁜 징조일까. 하연의 아버지는 좋은 징조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나빠질 게 없는 서민의 살림살이였기 때문입니다.


하연의 동네도 그렇고 겸이의 동네도 마찬가지로 악질 호족들이 서민의 고혈을 짜서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세를 키워나갔습니다. 망해가는 신라는 지역의 이런 상황에 관여할 만큼 정세가 녹록지 않습니다. 중앙 정부의 간섭에서 자유로워지자 지역의 호족이나 관리들은 제멋대로 자기들이 왕이나 된 것처럼 행동하고 다녔습니다.


하연의 아버지는 이런 폭정에 못 이겨 마을을 떠날 계획을 세웠는데, 성주가 사람을 보내 폭력을 행사합니다. 하연의 아버지는 만신창이가 되고 하연은 머리채를 잡혀 끌려갑니다. 성주의 집사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마을 사람들에게까지 폭력을 휘둘러 마을을 떠나지 못하게 겁박합니다.


사정은 겸이의 마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급관리였던 아개는 스스로 장군이라 칭하며 마을을 폭력으로 지배해나갑니다. 또한, 자기 마음대로 마을사람들을 데려다 군인으로 내세워 이웃마을과 전쟁을 벌입니다.


전쟁터에 끌려나오다시피한 두 마을 주민들은 공격명령에도 싸울 생각을 않고 무기로 들고 나왔던 농기구 등을 내팽개치고 집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서로 대립각을 세우며 전쟁을 일으켰던 양쪽마을 성주와 장군이 황당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그냥 되돌아갑니다.


이들의 폭정이 계속되자 겸이 아버지는 하연의 아버지를 찾아갑니다. 두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쳐 성주와 아개장군을 마을에서 몰아내자는 논의를 합니다. 하연의 아버지도 이에 동조합니다.


……………………………………………….


다음 날, 겸이 마을엔 아침 일찍 아개의 병사들은 장터 한쪽에 방을 붙였습니다.


“오늘부터 아개장군이 보호하는 이 마을 주민들은 모두 매달 쌀 한 섬씩의 세금을 내어야 한다. 세금을 낼 수 없는 자는 군역으로 대신할 수 있다. – 아개장군백”


방을 본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웅성거렸습니다.


“무슨 소리야? 갑자기 세금이라니!”

“갑자기 사람들을 전쟁터로 끌고 가더니 이젠 쌀 한 섬이나 되는 양을 세금으로 내라니? 그것도 매달 말이야! 이게 말이 돼?”

“아개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손에 권력 조금 쥐었다고 백성을 노예 부리듯 하는구만.”


아개는 사람들이 세금으로 낼 쌀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개의 생각은 백성들이 세금을 내지 못하면 군역으로 대신해야 하니 그들을 데리고 군사훈련을 시켜 이웃지역을 점령해나가려는 생각이었습니다. 아개는 철원을 중심으로 태봉을 일으킨 궁예나 광주에서 세력을 키운 견훤의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기에 자긴들 못할 게 뭐냐는 야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아개가 오늘부터 마을 사람들에게 세금으로 쌀 한 섬씩 걷겠다며 방을 붙였습니다.”


겸이는 장터에서 보고 들은 대로 주민들의 반응까지 상세히 아버지께 보고하였습니다. 겸이의 아버지는 마루를 탕 치고 일어섰습니다.


“가자. 해도 해도 너무하는구나. 백성이 얼마나 준엄한 존재인지 보여줘야 할 것 같다.”


겸이의 아버지는 빠른 걸음으로 장터에 갔습니다. 장터에는 아직 마을 주민들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겸이 아버지가 장터에 도착하자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로 왔습니다.


“겸이 아버지, 도저히 이대로는 우리 땅에서 살 수가 없어요. 일어섭시다, 우리.”


한 사람이 흥분해서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의 말이 메아리가 된듯 다른 사람들도 동조하며 ‘일어섭시다, 일어섭시다’하고 연호하였습니다. 겸이 아버지는 앞으로 나갔습니다.


“맞아요, 우린 참을 만큼 참았어요. 이런 폭정을 당하면서도 가만히있는다면 우린 자식들에게 볼 낯이 없을 겁니다. 마침 아랫마을 양 접장도 우리와 힘을 합치기로 하였으니 모두 모여 아랫마을로 갑시다. 그곳 성주를 무너뜨리고 아개를 물리칩시다.”


마을 사람들은 겸이 아버지의 말에 따라 아랫마을로 갔습니다. 겸이 아버지를 중심으로 봉기하였다는 소문이 급속히 번지면서 집에 있던 부인들도 대열에 합류하였습니다. 군중은 삽시에 70여 명이나 되었습니다.


아랫마을에서도 벌써 소식을 들었는지 윗마을 군중이 도착하기도 전에 50여 명이나 모여들었습니다. 하연이 아버지는 아픈 몸을 이끌고 집회장소로 나갔습니다. 하연이 아버지가 바로 양민우 접장입니다. 접장은 따로 벼슬이 아닌 마을 주민대표를 맡은 사람입니다.


“백성이 바로 하늘임을 이번에 단단히 보여줍시다.”


하연이 아버지는 아픈 몸이면서도 결기 있는 목소리로 군중 앞에서 소리쳤습니다.


“와! !”


군중은 성주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하연이 아버지와 겸이 아버지가 맨 앞장을 섰습니다. 백성들의 함성이 점점 커지자 집무실에서 낮잠을 자던 성주는 뭔 소린가 하며 깼습니다. 그때 집사가 문을 발칵 열고 들어왔습니다.


“성주님, 큰일 났습니다. 어서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백여 명이나 되는 주민들이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어서요.”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 제 살기만 급급해하는 무지렁이 백성들이 그럴 리가 없지 않으냐??”

“대문이 부서지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어서 뒷문으로 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병사들은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이냐?”

“초적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겨우 열 명도 되지 않는 병사로 그들을 어찌 당해내겠습니까? 어서 피하십시오.”


성주는 이 순간이 믿기지 않는지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집사에게 끌려가다시피 하여 뒷문으로 향했습니다.


“와당탕!”


대문이 부서지고 군중이 성주의 집으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뒷문으로 도망친다. 잡아라!”


성주의 병사들은 물밀듯 들어오는 군중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그들은 무기를 버린 지 오래되었고 군중과 맞설 용기를 잃은 상태였습니다.


겸이는 성주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하연이를 부르며 갇혀 있을 만한 곳을 찾았습니다. 겸이는 사람들의 흐름에서 벗어나 뒤째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여기야!”


작은 창고에서 하연이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창고를 지키던 병사는 이미 달아났기 때문에 마찰 없이 하연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고생이 많았지?”


겸이는 하연의 손목에 묶인 밧줄을 풀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응, 너희 동네와 우리 동네 주민들이 민란을 일으켰어. 결국, 터질 게 터진 거지.”

“우리 아버진?”

“응. 아버진 많이 좋아지신 것 같아. 우리 아버지와 이번 민란에서 앞장을 서셨는 걸.”

“성주는?”

“뒷문으로 도망치는 것을 마을사람들이 잡으러 갔어. 곧 잡힐 거야. 성주를 잡고 나면 바로 우리 동네로 진격할 거래. 아개도 이제 끝이야.”

“나도 함께 갈래.”


겸이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갑자기 휩쓸어 대비를 못한 성주와 달리 아개는 무장한 병사들로 방비를 갖췄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두 함께하는 거사인데 사사로운 감정으로 대처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자고 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사람들을 따라 밖으로 나갔습니다. 성주는 이미 말을 타고 멀리 달아난 뒤였습니다. 군중은 윗마을로 향했습니다. 함성은 밀물처럼 아개의 집으로 향했고 머지않아 아개의 집을 포위했습니다.


아개의 병사들이 쏜 화살에 몇 사람이 크게 다쳤습니다. 주민들은 돌을 주워 던졌습니다. 처음엔 제각기 돌을 던지다가 별로 효과가 없자 겸이 아버지와 하연의 아버지 지시에 따라 모두 일시에 돌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아개의 병사들은 공격을 하지 못하고 주춤거렸습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마을 사람들은 두 번째 돌을 던지며 아개의 집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아개의 병사들은 위협을 느끼고 모두 달아났습니다. 먼저 담을 넘은 사람이 대문을 열었습니다. 사람들은 함성을 지르며 집안으로 달려 들어갔습니다.


아개는 미리 준비한 말에 올라타고 뒷문으로 빠져나갔습니다. 아개는 아동산 쪽으로 말을 달렸습니다. 마을사람들 역시 아개를 쫓아 아동산으로 향했습니다. 겸이와 하연은 사람들 속에 섞여 함께 달려가면서 같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달려가는 모습이 얼마 전에 보았던 태극나비 떼가 산을 휘감으며 날아 올라가던 모습과 똑같아.’


마을 사람들은 아개를 더 이상 쫓지 않았습니다. 백성의 적인 성주와 아개가 마을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만족해했습니다. 한동안 마을엔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왕건이라는 사람이 고려라는 나라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겸이와 하연은 아동산 자락에 있는 무봉암에서 만났습니다. 머지않아 두 사람은 결혼할 것입니다. 함께 절에서 부처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때 법당 안에 한 쌍의 태극나비가 날개를 팔랑거리며 들어왔습니다.


태극나비 한 쌍은 법당 안을 빙빙 돌며 춤을 추었습니다. 겸이와 하연은 한참 동안 나비들의 춤을 감상했습니다. 나비들은 그러다 법당 밖으로 나갔습니다. 겸이와 하연도 나비를 따라 밖으로 나왔습니다.


나비들은 서로 손을 마주 잡고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었습니다. 나비의 태극문양이 햇살에 반사되어 빛이 났습니다. 나비들은 하늘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점이 되어 더는 보이지 않을 때까지 겸이와 하연은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하늘의 푸른 빛이 두 사람의 눈에 가득 들어왔습니다. ()


[관련기사]


(전설텔링)태극나비, 훨훨(1)

(전설텔링)태극나비, 훨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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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태극나비, 훨훨(2)

신라 말기 밀양 무봉사에 나타났다는 태극나비에 얽힌 전설


(전편 줄거리) 신라 말, 밀양지역은 서울인 경주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혼란의 공간입니다. 지방에서 세력을 키운 호족들이 권력을 마구 휘두르는 시기입니다. 어느 이른 봄날. 겸이와 하연이 무봉암이 있는 아동산 기슭으로 놀러 갔을 때 한 무리의 태극나비 떼가 산을 휘돌아 올라가는 모습을 봅니다.


이내 따라가지만 태극나비 떼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연이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이르자 좋은 일이 생길 징조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신라정부의 관리가 허술해지고 영향권에서 벗어나자 지방의 호족들은 자기 마음대로 백성을 부리고 세금을 걷으며 횡포를 부립니다.


견디다 못한 하연의 아버지가 동네 사람들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려 하자 성주는 집사를 시켜 폭력을 행사합니다. 이를 말리는 동네 사람에게도 집사는 부하들을 시켜 몽둥이를 휘두릅니다.


이웃동네인 겸이의 마을도 마찬가지입니다. 겸이의 마을엔 아개라는 사람이 스스로 장군이라 일컬으며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주민들의 생활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지자 어느 날 밤, 동네 사람들은 겸이의 집으로 모여듭니다.


이런 모습으로 보아 겸이의 아버지는 농민이면서도 동네 사람들의 신망을 받는 사람인 모양입니다. 주민들은 아개가 더는 횡포를 부리지 못하도록 본때를 보여주자고 합니다. 그런 비밀스러운 모의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립니다. 겸이 아버지가 방문을 살짝 열어보다 깜짝 놀라 뒤로 나자빠집니다.


……………………………………………


문앞의 그림자도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문앞의 그림자는 바로 겸이었던 것입니다. 겸이는 하연과 하연의 가족이 봉변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 된 것인가 염려가 되어 이웃동네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아이쿠! 이놈아! 너라는 걸 알 수 있게 소리라도 좀 내지 그랬냐?”


겸이 아버지 못지않게 깜짝 놀란 유씨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습니다. 겸이는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앉으며 이웃마을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하연이가 여전히 성주에게 붙잡혀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진정되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차분히 가라앉히고 입을 열었습니다.


“아버지, 아랫마을에 다녀왔는데 그곳에서도 아저씨들이 성주의 등쌀에 못 견디겠다며 불만이 여간 아니었습니다. 하연이 아버지를 만나뵈었는데, 얼마나 폭행을 당했는지 얼굴마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겸이의 말에 모인 사람들도 주먹을 쥐고 방바닥을 쿵쿵 내리쳤습니다.


“에잇, 몹쓸 놈들!”

“형님, 우리도 가만히 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요. 우리 힘으로 안 되면 아랫동네 사람들과 힘을 합쳐 호족놈들 쳐부숩시다!”


마을에서 가장 덩치가 큰 돌석이가 흥분을 하며 소리쳤습니다.


“쉿! 조용하게. 누가 듣겠어.”


유씨가 급히 돌석을 쳐다보며 입에 손가락을 댔습니다. 한참 생각에 빠져 있던 겸이 아버지가 천천히 말문을 열었습니다.


“자, 이렇게 합시다. 우리끼리만 들고 일어선다면 바위에 계란치기일 테니 아랫마을과 함께 힘을 합치는 게 좋겠습니다. 아랫마을엔 내가 가서 의향을 물어보겠습니다.”


겸이 아버지는 결연한 어조로 여러 사람을 둘러보며 말하였습니다. 겸이 역시 아버지의 판단에 동의했습니다. 겸이는 어서 봉기하여 아랫마을 성주의 집에 들이닥쳐 하연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흥분이 되었습니다.


다음날 점심녘에나 되었을 때입니다. 겸이의 집에 아개의 집사와 병사들이 들이닥쳤습니다. 뒷마당에서 나무막대로 훈련을 하고 있던 겸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벌써 들켜버린 것인가?’ 가족들 모두 모이라는 집사의 호통에 앞마당으로 나갔습니다. 그곳엔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와있었습니다. 겸이가 아버지 곁에 가서 서자 집사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오호라. 이 집엔 두 사람 모두 장정이구만. 하하하. 쓸만해!”

“무슨…, 말씀이신지?”


겸이의 아버지가 집사에게 물었습니다.


“축하하네. 자네 이름이 이건이라고 했나? 자네와 자네 아들은 지금부터 바로 아개장군님의 훌륭한 병사가 되는 걸세. 녹봉도 톡톡히 받을 것이야.”


겸이 아버지와 겸이는 영문도 모른 채 아개의 병사가 되었습니다. 집사는 마을을 휘젓고 다니면서 신체가 건강한 남자는 모두 그렇게 선발해 아개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마을 주민 서른 명이 모였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자네 뭐 아는 게 있나?”

“아니. 나도 아개 장군의 병사가 되었다는 말만 듣고 끌려오다시피 해서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네.”


사람들은 웅성거렸습니다. 그때 집사가 허리춤만큼이나 높은 기단 위로 올라가더니 모여있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모두 조용히!”


웅성거리던 경내가 일시에 조용해졌습니다.


“아개 장군님께서 납신다. 모두 예를 올려라!”


아개는 화려한 옷을 입고 팔자걸음으로 걸어왔습니다. 기단으로 오르려면 계단 다섯 개를 올라야 하는데 옷일 밟힐까 봐 옆에서 따르던 시녀가 옷을 잡아주었습니다. 아개는 주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계속 으흠으흠을 반복하였습니다. 기단 위에 올라서서는 거만한 표정으로 마을 사람들을 쭉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더니 희미한 미소를 띠었습니다.


“아개장군께서 너희들을 모은 것은 이 나라를 위해 큰일을 도모코자 함이니라. 알다시피 이미 신라는 국운이 다하여 다시 일어설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너희들이 이 아개장군을 모시고 충성을 다한다면 새로운 나라를 일으키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집사의 이 말은 사실 마을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기 어려운 말이었습니다. 아개라는 사람은 신라에서 이 작은 마을에 관리로 파견된 하급관리에 불과한데 그가 어찌 나라를 일으킨단 말인가. 돈이 좀 있고 데리고 있는 병사가 몇 명 있다고 해서 왕이 된다면 이 나라 신라에 왕이 안 될 사람이 또 누가 있단 말인가? 모인 사람들이 다시 웅성거리자 집사가 소리쳤습니다.


“왜 이리 시끄러운가? 허락을 받지 않고 쑥덕거리는 자는 이 자리에서 바로 참수를 면치 못할 것이다!”


집사의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둘러싸고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칼집에서 칼을 빼어 들었습니다. 겸이는 아개와 집사, 그리고 그들의 병사들을 둘러보면서 뭔가 일이 이상하게 꼬여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개의 집에 끌려오다시피한 마을 사람들은 그날 아개의 집에서 늦게까지 군사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군복이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무기도 병장기 대신 농기구들이 들렸습니다. 시키는 대로 군사훈련을 하긴 하지만 왜 이러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못된 성주가 지배하는 이웃마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연의 아버지는 그날 성주의 집사로부터 폭행을 당해 몸져누워있던 터라 끌려오지 않았지만 신체 건장한 남자는 대부분 성주의 집에 모여 군사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다음날. 겸이는 새벽같이 일어나야 했습니다. 병사들이 꽹과리를 치면서 깨웠기 때문입니다.


“전쟁이다! 모두 일어나!”


겸이는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아버지, 전쟁이라뇨? 후백제가 다시 쳐들어온다는 얘길까요?”

“후백제를 세운 견훤 장군이 신라를 공격한다면 합천을 거쳐 경주로 가겠지. 이쪽으로 쳐들어올 이유가 없는데….”


마을 사람들이 주어진 농기구를 각자 하나씩 들고 집합장소로 가니 아개는 군복을 입은 채 말 위에 앉아 있고 역시 군복을 입은 집사가 앞에 나서서 소리쳤습니다.


“아랫마을 성주는 자신의 본분을 잊은 채 우리 마을을 제 손아귀에 넣으려 하고 있다. 제 주제를 모르고 설치는 그자의 수급을 거두는 자에게 큰 상이 내릴 것이다.”


전쟁이란 다름 아닌 이웃마을과 벌이는 동네전쟁이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농기구를 들고 나왔던 사람들이 사실을 알고는 ‘뭐 이런 게 있어?’ 하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출정이다!”


집사의 말에, 또 뒤에서 밀어내는 병사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모두 떠밀려 전쟁터에 나서긴 했지만 모두 떨떠름했습니다. 상황은 맞은 편 이웃마을 성주가 데리고 나온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두 이웃끼리 무슨 전쟁이냐는 표정이었습니다.


“공격하라!”


양쪽 모두 뒤에서 집사들이 소리쳤고 병사들은 ‘와!’ 하며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양쪽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앞으로 뛰쳐나가지 않았습니다.





“뭣하는 거야? 공격하라는데. 모두 항명하는 거냐?”


집사가 흥분하며 날뛰었습니다. 아개 역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씩씩거렸습니다. ! 하고 기세를 올리던 병사들도 찬물 끼얹은 듯한 분위기에 그만 숙지근해졌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이쪽이나 저쪽이나 들고 있던 농기구를 내팽개치고 각각 자기 마을로 돌아가버렸습니다.


몇몇 되지 않은 병사들을 앞세우고 마주 선 성주와 아개는 서로 얼쯤해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싸움도 되지 않자 한동안 서로 경계만 하다가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날 오후 성주와 아개는 자기 마을 사람들을 다시 불러모아 몽둥이로 때리기도 하고 협박도 하면서 밤늦게까지 괴롭혔습니다. 이들은 아무리 화가 난다 해도 함부로 인명을 해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은 말을 듣지 않아도 언젠가는 자신의 병사가 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밤. 겸이의 아버지는 밤이 이슥할 즈음에 아랫마을로 향했습니다. 겸이도 아버지와 함께했습니다. 마을 입구와 곳곳에 성주의 병사들이 보초를 서 있었습니다. 그들과 마주친다고 해도 친구 집에 쌀을 꾸러 간다 하면 그만이지만 괜한 트집 당할까 봐 그들의 경계를 피해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겸이의 안내로 겸이 아버지는 하연이 집에 도착했습니다.


“안에 계시오? 건넛마을 이건이라 하오.”


방문이 열렸습니다. 하연의 어머니가 쪽마루로 나왔습니다.


“어서오세요. 안으로 드시지요.”

“네, 아주머니. 따님 일로 걱정이 크시겠습니다.”


겸이 아버지는 하연이 어머니의 안내를 받고 방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겸이는 집 주변을 돌면서 망을 보았습니다. 하연의 아버지 곁에 앉은 겸이 아버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꺼냈습니다.


“좀 어떠시오? , 악랄한 놈들. 우리 같은 백성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드나 그래.”

“괜찮소. 이 정도야.”

“어서 기운을 차리셔야지요.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은 들으셨소이까?”

“예, 참 통쾌하더이다.”

“그 일로 그들이 우리에게 또 어떤 해코지를 할지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자기들 뜻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회유책으로 나올 가능성도 있을 겁니다.”


겸이 아버지는 하연의 아버지 이야기를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오히려 잘 된 것 같군요. 적절한 시기를 보아 우리가 일어섭시다.”


한 시진이 지나서야 겸이 아버지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버지의 기척을 알아채고 멀리서 망을 보던 겸이 달려갔습니다.


“이야기가 잘 되었습니까?”

“그래.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게다.”


겸이는 아버지의 표정을 읽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다음 주 계속됩니다.)


[관련기사]


(전설텔링)태극나비, 훨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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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태극나비, 훨훨(1)

신라 말기 밀양 무봉사에 나타났다는 태극나비에 얽힌 전설


밀양에는 ‘3대 신비’라는 게 있습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표충비와 두드리면 종소리가 난다는 만어사의 경석, 그리고 여름엔 얼음이 얼고 겨울엔 김이 나는 얼음골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를 더해 밀양의 4대 신비라고 이르는 게 있습니다. 바로 무봉사에서 전해오는 태극나비 전설입니다. 전설을 소개합니다.


“고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기 전 어느 날이었다. 나비가 나올 춘삼월도 아닌데 갑자기 나비가 떼를 지어 날아와 온산을 뒤덮었다.


며칠 동안 영남루가 서 있는 뒷산을 덮으며 날아다니던 나비는 죽은 흔적도 없이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나비의 날개에 태극 묘시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이상하게 여겼다.


나라가 혼란에 휩싸여 있었던 때라, 어떤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과연 사람들의 말처럼 얼마 아니 되어서 고려가 건국되고 사회혼란이 가라앉아 태평성대를 맞게 되었다. 그 후에도 가끔 이 태극나비가 나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라에 경사가 있었다.


그래서 고려 정부는 이 나비를 보호하라는 명을 내렸고 국성접(國成蝶)이라 부르게 하였다. 그런데 이 나비는 조선 500년과 일제강점기 동안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가 1945815일 오후 3시쯤 한쪽 날개는 감청색깔 또 한쪽 날개는 주홍색깔의 태극무늬를 한 손바닥만큼 큰 태극 나비가 무봉사 법당에 날아 들어와서 사흘 만에 죽었다. 이를 곱게 표본으로 만들어 서울 박물관에 보냈다.


또 그해 819일과 1025일에도 태극나비가 나타났는데 그 중 한 마리는 이승만 대통령께 보내고 또 다른 한 마리는 무봉사에 보관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 태극나비는 표충비와 상반된 의미를 지니고 있군요. 이 태극나비 전설을 소재로 이야기를 꾸며보겠습니다. 왕건이 고려를 건국할 시점이면 918, 신라 54대 왕인 경명왕 시대군요. 역사적으로 밀양은 신라의 영향력에서 거의 벗어나 호족 세력이 지역을 휘어잡고 있을 시기입니다.


이미 이때 신라는 후백제와의 전쟁으로 백성들의 생활은 피폐해진 데다 경주의 관리권에서 벗어난 호족들이 제각각 세력을 키우면서 농민을 대상으로 수탈을 일삼고 서로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고 하네요.


호족들의 등쌀에 떨쳐 일어난 농민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을 초적이라고 부릅니다. 초망의 적이란 말로 도적, 토적 등의 말과 함께 쓰입니다. 이번 이야기의 배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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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향기를 실은 봄바람이 강변을 따라 흘러갑니다. 파란 하늘엔 조각구름이 둥실둥실 떠서 꼬리를 흔들며 바람을 탑니다. 하하하 호호호 남녀의 웃음소리에 깜짝 놀란 조각구름이 다시 조각나기도 합니다.


“겸아, 이리로 와바. 벌써 개구리들이 나왔네.”

“응? 그러네. 그러고 보니 벌써 경칩이 지났구나.”

“여긴 정말 따뜻해. 잠시 쉬었다가 산에 오르자.”

“그런데 말야. 너네집 이사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참말이야?”


겸이의 말에 하연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우리 동네 성주의 횡포가 여간 심해야지. 지난 겨울에 무슨 논에서 먹을 게 나온다고 세금을 내라고 하지 않나, 툭하면 자기 집에 아버지를 불러다가 일을 시키지 않나. 성주에 대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냐. 아버지가 마을 사람들에게 함께 다른 지역으로 떠나자고 했다 하네.”

“그랬구나. 그 소문이 우리 마을에까지 퍼졌는데, 우리 마을도 예사 분위기가 아냐.”

“그럼 너희도 이사하는 거니?”

“아직은 모르겠어. 울 아버지도 아개 장군 등쌀에 많이 힘들어하셔. 마을 사람들도 불만이 많고.”

“우리 같은 곳으로 이사를 했으면 좋겠다. 그럼 더 자주 만날 수 있잖아.”

“그래. 너희 어디로 가는지 정해지면 말해줘. 울 아버지한테 이야기해서 너희 간 곳으로 가게.”


겸은 하연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둘은 유유히 흐르는 밀양강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투다다닥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는 계속 이어졌으며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저기 봐!”


하연이 소리를 쳤습니다. 하연이 손으로 가리킨 곳에서 뭔가 알 수 없는 것이 떼를 지어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저게 뭐지?”


그것들은 강 옆 산기슭을 타고 겸이와 하연이 있는 곳으로 점점 가까이 날아왔습니다.


“태극나비야!”


이번에는 겸이 소리쳤습니다. 태극나비는 길게 무리지어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날아갔습니다. 나비들이 날개를 팔락일 때마다 태극무늬는 마치 사나운 맹수가 눈을 깜박이는 듯하기도 하고 멀리서 보면 용이 산기슭을 타고 하늘로 향하는 듯하기도 했습니다. 태극나비 떼는 아동산 휘감듯 하며 날아갔습니다.





“야, 정말 신기하네. 어떻게 나비가 한꺼번에 무리지어 날 수가 있지?”

“그러게. 무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겸아, 우리 나비를 따라 가볼까?”

“그래.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네.”


두 사람은 아동산 정상을 향해 달렸습니다. 산이 높지 않아 금세 올랐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나비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하연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겸아, 이상하지 않니? 아직 꽃이 필 시기가 아닌데 어떻게 저 많은 나비들이 나타난 걸까?”


하연은 겸이와 헤어지고 집으로 와서는 아버지에게 조금 전에 보았던 태극나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거참, 이상한 일이구나!”

“무슨 잘못된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요?”

“그건 아닐 게다. 나라든 우리든 여기서 잘못돼봐야 얼마나 더 잘못되겠니? 그건 좋은 징조일 거야.”


그런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하연 가족은 이삿짐을 싸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웃들도 서너 집 짐을 쌌습니다. 함께 강 건넛마을로 이사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하연이 애비 있는가?”


빼빼 마른 체구에 가는 수염이 난 마을 성주의 집사가 하연의 집 사립문을 들어서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하연의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또 무슨 일인 게요?”


하연의 아버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부엌에서 나왔습니다.


“올해 소출에 대해선 세금을 받지 않으시겠다는 성주님의 명이시네. 그대로 성주님의 논에서 농사를 지어도 된다는 말이네. 기쁘지 않은가?”

“흥! 기쁘긴 뭐가 기뻐. 내가 그 속을 모를 줄 알고? 그리고 명은, 얼어 죽을! 이제 됐으니 다른 사람 불러와 농사를 짓든, 성주님이 직접 짓든 알아서 하쇼! 우린 더 이상 빼앗기면서 살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오!”


집사는 하연의 아버지를 보면서 능글능글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후회할 텐데.”


하연의 아버지는 집사를 한 번 흘겨보고는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집사는 손을 치켜들었습니다.


“애들아!”


그때 사립문에서 좀 떨어진 곳에 몰려있던 장정들이 몽둥이를 바닥에 질질 끌면서 하연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여러 몽둥이가 바닥을 끓자 험악한 소리와 함께 먼지가 풀풀 일었습니다.


“악!”


하연의 자지러지는 비명이 온 마을에 울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하연의 집으로 몰려갔습니다. 장정들은 벌써 하연의 아버지를 몽둥이를 휘둘러 초주검 상태로 만들었고 하연의 머리채를 잡고 사립문을 나서고 있었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이오?”

“오라. 박 서방 자네도 하연이 애비처럼 되고 싶단 말이지?”


박 서방과 마을 사람들은 주춤했습니다. 박 서방은 다시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습니다.


“하연이 애비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러는 것이오? 그 이유나 말해주시오.”

“이유는 알 것 없고. 자네도 이 마을을 뜨네 어쩌네 하는 말이 들리면 어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테니 알아서 하게.”

“그렇다면, 우리가 이사하는 것 때문에 그러는 것이오?”

“당연하지. 너희는 우리 성주님의 것이야. 너희 마음대로 떠나고 들어오고 할 수 없는 물건들이다 이말이지. 이제 알아듣겠나?”

“무슨 말도 안 되는 억지란 말이오? 우린 자유인이오. 어딜 가든 우리 마음이지…….”


박 서방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사의 오른손이 또 치켜들어졌습니다. 그러자 와! 하고 몽둥이를 든 장정들이 박 서방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을 두들겨패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성주는 하인과 가병들을 시켜 툭하면 마을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겸이가 살고 있는 마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을 호족인 아개는 스스로 자신을 장군이라 칭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부르게 하였습니다. 그는 서라벌에서 파견된 관리였는데 이 마을에 와서는 사람들을 착취해 부를 쌓고 또한 세력을 키워 호족행세를 하고 있었습니다.


신라가 여러 차례 후백제 견훤의 공격을 받아 세력이 위축되고 지방관리에 대한 통제가 느슨해지자 그 틈을 이용해 자기 마음대로 병사들을 조직하고 마을을 지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개는 자신에게 ‘장군님’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채찍으로 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아개가 집 밖으로 나갈 때엔 스무 명이 넘는 병사들이 그를 호위하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지나가면 멀리서라도 고개를 숙여야 했습니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입니다. 겸이 집에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달빛이 초가지붕 용마루에서 미끄럼을 타고 처마끝으로 떨어집니다. 황토로 이루어진 집의 두꺼운 벽에는 봉창이 깊이 나 있습니다. 안에서 두런두런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보게, 건이. 이렇게 살 순 없지 않은가? 딴 곳으로 이사를 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겸이 아버지보다 나이가 네 살 위인 유씨가 약간 흥분한 어조로 말을 꺼냈습니다.


“그래. 건넛마을 성주는 자기 마을 사람들이 이사를 하려 하자 장병들에게 시켜 몰매를 주었다는구먼. 그리고 그 집 딸이 성주에게 붙잡혀 가서 온갖 수모를 다 당하고 있다 하더군.”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 없지. 건넛마을 사람들하고 힘을 합쳐서 우릴 괴롭히는 아개와 성주에게 본때를 보여주자구.”


다른 사람들도 한마디씩 거들었습니다. 겸이 아버지는 여전히 팔짱을 끼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웃마을 성주보다 더 흉포한 아개인지라 섣불리 그러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끼익!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립문이 열리는 소리 같기도 했습니다.


“쉿!”


방안은 순간 긴장감에 휩싸였습니다. 겸이 아버지는 방문을 살짝 열고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겸이 아버지 눈앞에 커다란 그림자가 떡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겸이 아버지는 뒤로 쿵하고 자빠졌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 됩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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