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 민속행사 진동큰줄다리기를 보다
밸런타인데이이자, 안중근 의사의 사형집행일이자 올해는 정월대보름이었던 지난 14일, 진동 태봉천 동촌냇가에 다녀왔다. 취재를 위해서였지만 이런 큰줄다리기는 꼭 한번 보고싶었다. 매번 기사로만 보다 현장에서 보니 실감이 났다. 굵고 긴 줄을 보면서 이걸 어떻게 만들었을까 신기하기도 했다. 기사에도 언급했지만 단 30분 행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줄만들기에 매달렸을까.. 그 정성이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민속보존회서 만든 행사 팸플릿은 받았지만 어디에도 전화번호가 없어 궁금했던 것을 물어볼 수 없었지만... 내일이나 면사무소 전화해 물어보기로 하고 경남이야기에 기사를 써서 올렸던 것을 그대로 옮겨 싣는다.
“유세차 갑오정월…진동민속문화보존회장 이학봉 감소고우…원소절을 맞아 유서깊은 태봉천에서…어영차 큰 소리에 지축이 요동하니…승자는 축배요, 패자는 감으로 응답하니 원기가 탱천하여 달빛따라 멀리 멀리 울려퍼지게 하옵소서…상향.”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태봉천 동촌냇가 너른마당. 길이가 100미터나 되는 큰줄 앞에 고사상을 차려놓고 이학봉 진동민속문화본존회장이 축문을 읊었다. 분위기가 사뭇 경건하다.
고사가 끝나자 주변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고사상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고사떡 등 음식을 나눠먹기 위해서다. 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들어간 고사음식은 먹는 것 자체가 복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 우리 민속놀이의 특징이다. 행사를 하기 전에 고사를 지내고 고사가 끝나면 음식을 그 자리에서 바로 나눠먹는. 우리 전통 민속이 제의에서 비롯된 것이 많기 때문이다.
드디어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동부와 서부로 나뉘어 편을 갈랐다. 창원진해 쪽이면 동부요, 고성 통영 쪽이면 서부다. 그런데 기실 그것 따져서 줄을 잡지는 않는다. 스탠드에 서서 구경을 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내려온다. 계산을 하고 나뉘어 걸어간 것은 아닐진대, 희한하게도 양쪽 균형이 맞다.
첫 번째 줄다리기에서 동부가 이겼다. 사회자가 농을 한다.
“서부 쪽에 한 100명 쯤 모자라는 것 같아요. 아직 밖에 서계신분들 내려와서 줄을 잡으세요. 날씨도 쌀쌀한데 이럴 때 몸 한 번 푸세요.”
몇 명 더 추가되었을까. 참가인원은 모두 합해 한 250명 쯤 되어 보인다. 두 번째 시합에선 서부가 이겼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거들어 줄을 당겨도 가운데는 줄의 굵기가 두 아름이 넘으니 쉬 들리지는 않는다. 줄다리기라 해서 운동회 때 줄 당기듯이 큰줄을 잡고 당기는 것이라고 상상했다면 착각이다. 큰줄은 잡을 수가 없다. 굵기도 굵기려니와 그 줄을 보듬어 안고 당길 수 있는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 큰줄에 작은 줄을 여러 가닥으로 연결한 작은 줄을 잡고 당기는 것이다.
마지막 시합이 시작된다. 사회자가 하나, 둘하면 큰줄 가운데 서있던 징잡이가 크게 징을 울린다.
“영차, 영차!”
옆에선 진동부녀회 사람들이 꽹과리, 북, 장고를 두르리며 흥과 힘을 돋운다.
사진기자들이나 작가들, 일반 구경꾼들도 이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다.
스탠드 위 임시 식당에서 마련한 식탁에 앉아 구경하던 어르신들도 손뼉을 치면서 응원한다.
“와!”
함성이 터녀나온다. 다시 동부가 이겼다.
“만세!”
서부쪽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사회자가 서부도 잘했으니 만세를 하란다. 서로 만세를 부르고 손뼉을 치고 즐긴 큰줄다리기 행사가 이것으로 끝났다. 고사를 지내는 시간을 빼고 순전히 줄을 당기는 데 든 시간은 불과 10분도 안 된다.
이 10분의 행사를 위해 진동민속문화보존회 사람들은 8일 동안 준비를 해왔다. 지난 6일부터 행사 하루 앞날까지 공을 들여 이 큰줄을 만들었다.
진동의 큰줄다리기는 삼국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것으로 배의 닻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역사적 배경은 이렇다.
250명 가량의 주민이 편을 갈라 시합을 벌이는 진동큰줄다리기 멀리서 본 모습.
이 지역은 삼한이 멸망하고 나서 포상팔국이라 하는 부족국가들이 형성되었다. 각 포마다 우두머리가 있어 8개 포상국이 단합하여 그 힘이 막강해지자 인근 함안의 아라가야를 침공했다. 위기에 빠진 아라가야가 신라에 구원을 요청해 신라의 대군이 쳐들어왔는데 이로 말미암아 포상국들이 멸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포상국들은 바닷가 부족국가라는 점에서 서로 힘을 견제하면서도 일면 협동단결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차원에서 큰줄다리기가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다. 포상팔국이 아라가야를 침공한 때가 209년 7월이라고 하니 큰줄다리기의 역사는 족히 1800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진동큰줄다리기는 1965년 재현됐다. 이때 근대화 물결이 출렁이고 있었지만 진동 지역에선 아직 농경사회였다. 이때는 음력 섣달 보름부터 한달간 줄만들기 작업이 이어졌다. 현재의 삼진주유소에서 동촌다리까지 작업틀을 설치해 가는 줄을 만들었는데 다 만들고 나면 행사장으로 옮겨와 다시 큰줄로 만들었다고 한다.
행사 당일 양쪽의 줄을 마주보게 하고 가운데 양쪽의 줄을 끼우고 서로 당겨도 빠지지 않게 비녀쇠를 걸었다. 길이 200미터에 굵기가 2미터. 참여 인원도 많을 땐 1000명에 달할 때도 있었단다.
1992년 첫 행사를 연 이후 22회째를 맞은 이번 ‘진동큰줄다리기 및 달맞이 행사’에는 큰줄다리기 말고도 당산제, 비녀쇠 시가행진, 축하공연과 노래자랑, 달집태우기 등의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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