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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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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이 따스하다.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주말을 ‘방콕(방에 콕 처박혀 지내는 일)’한다면 너무 아까운 날들이다. 멀리 나가기 머뭇거려진다면 가까운 도심의 산책로라도 거닐어보면 어떨까? 주택으로 꽉 들어찬 도심이라도 주변에 한가로이 산책할 만한 곳이 곳곳에 있으니 마음만 먹는다면 못할 것 없음이니.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박물관 광장과 주변 산책로에는 2010년 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에 발표됐던 10개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이뿐만 아니라 몽고정 맷돌과 실물을 그대로 복사한 월영대, 그리고 13인의 시비 등 천천히 거닐며 감상할 만한 것들이 있어 주말 두어 시간 한가로이 보내기는 딱 좋은 산책 코스다.


추산야외조각미술관 안내 입석.

조각 미술품 위치도.

마산박물관 앞에 몽고정 맷돌이 있다. 몽고정이란 우물은 자산동 3·15의거 기념탑 옆에 있다.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가 일본 정벌을 위해 합포에 군사를 주둔시켰는데 군사들에게 물을 공급하고자 만든 우물이다. 원래 이름은 ‘고려정’이었다.


마산박물관 앞뜰에 전시해놓은 몽고정 맷돌.

몽고정 맷돌은 지름이 1.4m의 원형으로 된 돌이다. 원래 회원 성지에 있는 것을 박물관 앞으로 옮겨 놓았다. 생긴 모양으로 보아 전차의 수레바퀴라느니 대형 약연(약재를 가는 기구)이라느니 하지만 다량의 군량미를 가는 데 썼던 맷돌로 보는 게 정설이란다.

연자방아처럼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안내문에는 이 맷돌이 고려와 원나라의 일본정벌 전진기지로서의 흔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어 전시한다고 설명되어 있다.


월영대 모조 석물과 13인의 시비.

월영대와 13인의 시비. 몽고정 맷돌 옆에 있는 것으로 고운 최치원과 관련이 있는 석물들이다. 월영대는 마산 해운동에 있는 것으로 이곳에는 원래 모양 그대로 만들어 전시한 것이다. 최치원의 자가 ‘고운’ ‘해운’인데 해운동의 ‘해운’이나 부산 해운대의 ‘해운’도 최치원의 자에서 따온 이름이다.

월영대는 높이 210㎝, 폭 35㎝ 규모의 입석으로 ‘月影臺’라는 글자는 최치원 선생이 친필로 쓴 해서체 글이다. 주변에 둘러 있는 13인의 시비는 왼쪽에서부터 정지상, 김극기, 채홍철, 안축, 이첨, 정이오, 박원형, 서거정, 김극성, 정사룡, 이황, 신지제, 정문부 등 13의 것으로 한시가 비석에 새겨져 있다.

이들 시는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동문선’ 등 각종 문집에 있는 것으로 그 내용과 서체를 그대로 옮겨 새긴 것이라고 한다.

이 중에서 고려문신 정지상의 시를 소개하면, ‘푸른 물결 아득하고 돌이 우뚝한데/그 안에 봉래학사 노닐던 대가 있어/소나무 오래된 제단가에 풀이 우거졌고/구름 낀 하늘 끝에 돛배 오누나/백년 풍류에 시구(詩句)가 새롭고/만리 강산에 한 잔 술을 마시네/계림 쪽으로 고개 돌려도 사람은 보이지 않고/달빛만 부질없이 해문(海門)을 비추네.’ 최치원의 학문을 흠모하는 마음이 오롯이 들어 있는 시다.


세키네 노부오 작 ‘Phase of Nothingness’.

추산야외조각미술관. 미술관이라고 적혀 있으나 조각공원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세키네 노부오라는 일본 작가의 스테인리스와 자연석 작품인 ‘Phase of Nothingness’다. 사각의 스테인리스 스틸 기둥에 얹힌 거대한 바위는 마치 공중에 부유하는 듯한 착각이 든다고 설명해 놓았는데, 공중에 떠 있는 고인돌 같다는 느낌이다.


장뤽 빌무스 작 ‘빛이 있는 공간’.

그 다음 눈에 들어온 작품은 장뤽 빌무스의 ‘빛이 있는 공간’이다. 역시 스테일리스 스틸로 만들었으며 둥글게 배치한 가로등을 표현했다.


데니스 오펜하임 작 ‘폭포’.

데니스 오펜하임의 ‘폭포’는 강화플라스틱으로 만든 작품이다. 이 작가는 조각과 건축을 결합하는 쪽으로 주로 작업하는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모색하는 환경미술 분야의 주역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이 분수조각은 기존 원형 분수에 신소재를 이용해 빛과 물을 융합한 작품이라고 한다.


박종배 작 ‘못과 大地(대지)’.

다음 작품, 황동으로 된 큰 조형물 쪽으로 걸어가 보면, 박종배의 ‘못과 大地(대지)’란 작품을 만난다. 이 작품은 팽이 모양의 유선형 볼륨과 그 안에 박힌 사각형의 입방체가 결합된 구조물로 두 개의 다른 정서가 하나로 합쳐진 것을 나타냈다. 작품 설명을 보면, ‘두 개의 상반된 상황 안에 생존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성찰’이라고 한다.


피터버크 작 ‘Head Space’.

마산박물관 주변을 둘러보고 맞은편 계단을 내려가면, 사람 얼굴 모형을 한 스테인리스 구조물이 보인다. 피터버크의 ‘Head Space’란 작품이다. 컴퓨터 3D 프린팅 기법과 리이저 커팅 기술, 그리고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질감을 십분 활용한 것이란다. 야누스의 얼굴처럼 양면적인 모습을 띠면서 신비로운 공간체험을 할 수 있는 조형물이다.

여기서 계단으로 더 내려가면 한적한 산책로가 나온다. 계단을 밟고 몇 걸음 내려가다 보면 나무 위에 지은 판잣집이 눈에 띈다. 땅만 보고 걸으면 발견할 수 없으리라. 이게 뭘까? 새집 같기도 한데 그러기엔 너무 크다.


가와마타 타다시 작 ‘나무오두막’.

산책로 곳곳에 설치된 쉼터.

가와마타 타다시의 ‘나무오두막’이란 작품이다. 새처럼 이런 곳에서 하루쯤 보낸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오두막으로 오르는 줄이나 사다리가 있었다면 벌써 올라갔을 호기심을 자아내는 작품이다. 가와마타 타다시는 생선상자 나무로 조형물을 만드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계단을 어느 정도 내려오면 곳곳에 쉼터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잠시 쉬었다가 왼쪽 산책로를 따라가면 왕루엔의 ‘삼각자’를 만난다. 역삼각형으로 세워져 있다. 스테인리스 재질의 거대한 자다.


왕루엔 작 ‘삼각자’.


숲 속에 난 산책로.

여기 설치된 삼각자는 문명의 척도를 상징하지만 눈금의 숫자를 교묘하게 왜곡시킴으로써 규범화된 문명의 위상에 대한 풍자와 비판적 시각을 나타냈다고 안내문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다시 방향을 되돌려 걸어가면 산책로 가운데 놓인 돌다리를 만난다. 그런데 돌에 알아볼 수 없는 한자가 음각으로 적혀있다. 순간 알 수 없는 한자에 자신의 무식함을 한탄한다. ‘이런 한자가 있었나?’ 그렇게 돌다리를 밟으며 끝까지 걷는다.


쉬빙 작 ‘石-經’.

쉬빙 작품에 등장하는 한자 제자 원리.

돌다리 끝에 안내판이 있다. ‘石-經’. 중국 작가 쉬빙의 작품이다. 그의 작품 특징은 ‘뜻을 알 수 없는 한자를 개발하고 이를 형상화했다’고 적혀있다. 아하! 무슨 글자인지 알 수 없었던 게 당연한 거였다.


박석원 작 ‘積意-2010-바람’.

숲 속 산책길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올라오면 주차장 쪽에 큰 돌기둥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積意-2010-바람’이란 제목의 박석원 작품이다. 벽의 구조와 물성을 표현한 것으로 조합된 단위들이 상호의존적 관계를 통합해 하나의 단일성을 이루게 한 작품이란 설명이다. 화강석으로 만들었다.


로버트 모리스 작 ‘LABYRINTH’.

이 ‘돌벽’ 맞은 편으로 햇살에 번쩍거리는 삼각형 울타리가 있다. 처음엔 무슨 시설물인가 했는데 미술작품이다. 로버트 모리스의 ‘LABYRINTH’란 작품으로 안과 밖을 연계하는 공간과 장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유도한다는 게 작가의 의도란 설명이다. 미로를 따라 꼬불꼬불 걸어다니는 재미가 있다.

이렇게 이곳의 미술작품은 모두 둘러봤다. 여기서 멈추면 뭔가 허전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제대로 된 산책으로 종결지으려면 바로 뒷산에 있는 회원현성지를 둘러보아야 한다. 문신미술관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가파른 언덕길이 나온다. 마침 봄이라 쑥을 캐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사람들도 있다.


회원현 성지 산책로.


동백이 화사한 회원현 성지 산마루에 망루가 보인다.

이 언덕 꼭대기엔 회원현 성지 망루가 있다. 바로 아래에 동백이 햇볕바라기를 하고 있다. 신선한 바람이 옷깃을 세웠다 눕혔다 한다. 마산항과 멀리 마창대교, 도심의 주택들, 그리고 뒤편 무학산 줄기, 또 저 멀리 장복산 줄기.

마산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풍경이 가슴을 확 열어준다. 그 옛날 골포국 이래 신라와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끊임없이 창궐했던 왜구들이 들어왔던 길목이 그대로 드러난다.


망루에 올라서면 펼쳐지는 풍경.

망루에 올라 따사한 봄 햇볕과 부드러운 바람을 맞으며 모든 시름을 내려놓고 스스로 풍경이 되어 서 있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 했던가 산들거리는 봄바람도 계속 마주하다 보니 추위를 느낀다.

다시 내려오는 길. 가파른 길이라 내려다보며 걸을 수밖에 없지만 간간이 고개 들어 주위를 돌아보면, 아이들과 함께 산책 나온 사람들, 스트레칭을 하는 사람, 강아지와 장난을 치는 사람…. 주택으로 둘러싸인 도심에서 예술작품도 감상하고 이렇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또 하나의 즐거움 아닐까.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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