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정년퇴직을 앞두고 후배가 써준 나에 대한 인상
돌이끼의 작은생각 / 2023. 12. 30.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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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정년퇴직을 맞아 지난 18일 회사 사원총회 때 나와 김훤주 기자 정년퇴임식을 했는데, 신문사 생활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승환 기자가 글을 썼다. 네이버 블로그에는 퇴임식 하고 바로 올렸지만 티스토리에도 한해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기록해두려 한다.
<겸손과 뚝심의 본보기... 인생 2막을 응원합니다>
(정보에 오류가 있는 부분은 수정한다. 기억을 바탕으로, 또 이런 저런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하다 보니 살짝 틀린 부분이 있긴 하다.)
'새 직장(경남매일)에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최근 정현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뜬 내용이다. 이승환처럼 닥친 현상을 깊게 고민하는 대부분 기자는 '정년을 앞두고 페이스북에 공개하는 이력을 연대 순으로 정리하는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서후처럼 신중하지 못한 일부 기자들은 '퇴직 전 이직'인가 싶어 화들짝 놀랐나 보다. 워워~
1990년 <경남매일> 기자로 입사했다. 지금 <경남매일>과 아무 관계 없다. 당시 담당 업무는 취재·교열·편집·조사로 돼 있다. 경남도민일보 역사로 치면 '기원전' 이야기에 해당한다. <경남매일> 폐간 이후 <경남도민일보> 창간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고려 말 조선 초' 개국공신(?)이다.
◇경남도민일보가 좋더라 = 경남도민일보 홈페이지에서 정현수 이름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기사는 3734건(2023년 12월 17일 현재)이다. 경력에 견줘 출고 기사가 적은 편인데, 비출고 부서 근무가 많았고 데스크 근무 기간이 길어서 그렇다. 대부분 기사는 문화체육부 소속일 때 생산됐다.
1999년 편집부로 시작해 (시작은 조사부 업무는 계속하고 전산미디어팀장이었다. 그러다 새천년 들기 직전 허리 부상으로 4개월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고는 조사 업무만 맡았다. 이어서) 2001년 교열자료부 업무를 맡았다. 취재 밀도나 기사 내용과 상관없이 글 자체를 상당히 깐깐하게 보는 편인데 <경남매일>에서 <경남도민일보>로 이어지는 교열 경력 영향으로 보인다.
2003년 3월부터 2007년 3월까지 여론팀을 맡는다. 데스크에게 잘하기로 유명한 이승환과 데스크가 잘해줘야 하기로 유명한 표세호가 이 시기 여론팀을 거쳤다. 후배들에게 방임에 가까울 정도로 간섭을 하지 않는 편이다. 어떤 시도를 하더라도 시작과 결말에 개입하지 않고 응원하는 데스크 유형이다. 다만 자신이 정한 기준과 원칙에 어긋나는 어떤 선을 넘어서면 완강하게 물러서지 않는 면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웬만해서는 이 지점까지 대화를 잘 몰고 가지 않는 편이다.
2007년 3월 편집부, 2008년 4월 문화체육부 업무를 맡았으나 2008년 9월 퇴사한다. 당시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2035년 12월까지 엠바고가 걸려 있어서 밝힐 수 없다. 다만 언론사 경력과는 완전히 단절된 일을 했다는 것 정도만 언급하겠다.
2010년 7월 재입사한다. 2013년 3월부터 2년 동안 (2년이 아니고 4년이다) 경남도청으로 출퇴근하면서 경남도와 계약한 홈페이지 관리 대행 업무를 하기도 했다. 2017년 편집부로 다시 복귀했고 2018년 7월 논설여론부, 2019년 문화체육부로 발령받아 지금까지 이어졌다.
여기까지 이력을 보면 확실히 출고 업무 자체가 상당히 적은 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력에서 보이는 더 큰 의미는 '퇴사 후 복직하고 나서 정년을 채운 첫 사례'라는 점에 있다. 후배들에게 '돌고 돌아 결국 경남도민일보', '경남도민일보가 제일 좋더라'라는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저널리스트'라는 배역 = 타고난 목청이 크다. 성량이 큰데다 발음 하나하나에 상당히 신경 쓰는 편이라 대사 전달력이 좋다. 그냥 좋은 게 아니라 지나치게 좋다. 아들 이름이 정승환인데 후배 이승환은 정현수가 전화 통화하면서 부른 아들 이름에 몇 번이나 대답한 적 있다. 이후 이승환은 자기 이름을 불렀는데도 모른 척하는 방법으로 소심하게 복수했다고 한다.
스스로 기자로서 늘 부족하다고 여기는 편이었다. 대신 그런 면이 경남도민일보 조직에 폐가 되지 않도록 무척 애썼다고 한다. 최근 긴급 입수한 제보 내용을 보면 "기사 안 쓰니까 좋다, 다른 거 쓸 거 많더라"며 환호를 질렀다고 한다. '저널리스트'라는 만만찮은 배역을 꽤 오랜 기간 상당히 무겁게 받아들였던 듯하다.
저널리즘 영역만 벗어난다면 오히려 글쓰기를 좋아하는 쪽이다. 2020년 <경남문학> 희곡공모에서 <월하의 공동묘지>로 신인상을 받으며 다른 업계(?)로 진출했다. 여기서 '이달의 기사상'보다 문학계 신인상을 먼저 받은 게 아니냐, 기사상보다 문학 관련 상이 많지 않으냐 같은 시답잖은 취재 따위는 그냥 접자. 그럴까 봐 2023년 2월 이달의 기사상 기사를 일부 발췌했다.
장진석 위원은 "누구나 가지는 부적(각자의 부적이 다를 뿐) 하나에 희망이 싹트길 바란다. 현대인의 마음을 녹여낸 기사라 여겨진다"며 "43회까지 이어온 의미 있는 작업이다. 그 뚝심이 엿보이며 내용 또한 재미있게 잘 풀어 더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무려 김다솜·백솔빈 연합과 최환석, 박정연마저 무너뜨린 기사다. '전통의 향기' 43회째 연재 '부적'으로 받은 '이달의 기사상'으로 정현수는 기사 한 꼭지 덜렁 쓰고 이달의 기사상을 받으면서 별로 기뻐하지 않는 후배 기자들 태도에 경종을 울렸다.
◇비유가 아닌 인생 2막 = 젊었을 때 외모가 출중하다. 그냥 잘생긴 게 아니라 아주 잘 생겼다. 젊었을 때 얼굴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같은 부서일 때 자기 사진을 보여줘서 알았다. 젊었을 때 사진을 들고 다니면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준다? 본인 외모가 대단했다는 것을 스스로 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얼굴 잘생기고 못생기고는 난 별 관심 없다. 대신 100킬로에 육박하는 현재의 내 모습과 다른, 그야말로 같은 키에 절반의 몸무게였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픈, 아닌 증명하고픈 궁여지책이었음을 털어놓는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세 글자로 '재섭써'라고 한다.
정현수가 정리한 페이스북 '중요 이벤트'를 보면 2017년 '극단 상상창꼬' 활동이 시작된다. 2022년부터 '창원예술극단'에서 작가 겸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올린 게시물을 보면 연극-연극-풍경-연극-연극-풍경-연극-먹는 거-연극 이런 흐름이다. 오히려 대외 활동은 취재 때보다 더 왕성한 듯하다.
페이스북 사진 속 한결 여유가 생긴 표정에 혹해서 "술 한 잔 하입시다"라고 말하고 싶은 구성원들에게 고급 정보(?) 하나 전한다. 아무 표정 변화없이 정말 오래 마신다. 일출 보는 게 기본값이며, 한결 높아진 목청으로 화제는 술 마시기 전보다 훨씬 풍성해진다. 당신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니 참고하시라.
정년퇴직을 앞둔 이들에게 '인생 2막'은 아주 상투적인 비유다.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억지로 축하할 때나 쓸 말이다. 하지만 정현수에게 인생 2막은 비유가 아니다. 무대를 기다리는 그는 한층 더 즐겁고 분주해 보인다. 오랜 동료로서, 관객으로서 응원한다.
/이승환 기자 hwan@idomin.com
회사 퇴임식에 이어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남원 광한루로 해서 용인 에버랜드, 서울 동대문 몽골타운, 천안 독립기념관. 가족과 함께한 퇴임 여행 역시 오랫 동안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다시 집으로.
그리고 지면평가위원장 출신 몇몇 분과 이일균 국장이 따로 퇴임을 축하해줬다.
이 모임은 제법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는데, 우리는 스스로 '철지난사람들'이라고 부른다. 내 정년퇴임에 맞춰 서혜정 쌤이 명명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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