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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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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이어 장자늪 전설 3편이 완성됐다. 이번 전설텔링의 완결판이다. 다음 주엔 장자늪 전설의 배경인 창녕 영산면 장척호를 찾아간다. 물론 취재는 미리 다 해뒀다. 그 다음주 이야기가 문제다. 이번에 작업을 하면서 아들이나 나나 애를 먹었다. 일에 집중하는 주말 동안 지리산 계곡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흘 밤낮을 친구와 함께 술을 벗하고 아들은 동생들과 함께 물을 벗했다.

 

핸드폰도 꺼놓고 있었다. 어쩌다 켜보긴 했지만... 주말을 이렇게 사바세계와 연을 끊고 지내보기 참 오랜만이다. 일도 놓고 근심도 놓았으니 얼마나 행복했겠으랴. 근디... 휴가가 끝나고 월요일 출근하면서 밀린 일들이 더 큰 걱정의 쓰나미로 몰려온다. 아, 카세라세라.

 

http://news.gsnd.net/?p=33078

 

 

 

(지난 줄거리)옛날 토지가 비옥한 마을에 장자라는 아주 큰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장자는 재산이 많이 있음에도 더 많은 재산을 모으려고 아등바등 살았고 욕심꾸러기인 데다 심술마저 있어서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마을에 노승이 찾아옵니다. 노승은 장자에게 얼마 있지 않아 마을에 큰 변고가 생기니 재산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대피하라고 합니다. 장자는 노승의 시주 바랑에 소똥을 퍼붓고 쫓아버립니다.

 

이 모습을 본 며느리가 노승에게 시아버지 대신 사과하고 쌀을 시주합니다. 며느리는 노승에게서 마을에 변고가 생길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처음엔 반신반의했으나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자 마을 사람을 대피시킵니다. 그러나 장자와 남편은 끝까지 버티다가 닷새째 되는 날 마을이 물에 잠기자 재산을 껴안고 죽게 됩니다.

 

장자의 며느리는 그때 물난리를 피해 노승이 일러준 대로 동북쪽 고개를 오르며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고 했으나 고갯마루에 올라서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뒤돌아보게 됩니다. 며느리의 눈에는 거대한 황룡이 포효하는 모습이 보이고 시아버지와 남편의 영혼이 하늘로 오르다 황룡에 의해 다시 물속으로 처박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때 며느리의 몸은 서서히 바위 속으로 들어가 부처가 되지요.

 

한편, 물속에선 장자와 아들이 자신들의 죽은 육신을 보게 되는데 커다란 구렁이가 다가옵니다. 장자의 몸을 칭칭 감고 잡아먹으려고 하는 찰나 장자의 영혼이 구렁이에게 들어갑니다. 장자의 아들도 다른 구렁이가 자신의 육신을 해치려 하자 구렁이의 몸속으로 들어가지만 부작용이 생겨 그만 죽게 됩니다.

 

장자 구렁이는 더욱 세상을 향해 원한을 품게 되고 복수심에 이를 갑니다. 여섯째 날이 되자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창하게 개었지만 물이 원래대로 빠지지 않자 마을 사람들은 늪가에 집을 짓고 살려고 합니다. 이런 와중에 동네 사람 둘이 장자의 재산을 탐내어 물속으로 들어갑니다. 날이 밝아 햇빛이 물속 깊은 곳까지 비추어 두 사람은 장자의 집을 쉽게 찾아내고 더 깊이 잠수해 들어가는데 뒷사람이 등에 차가운 기운을 느낍니다.

 

◇ ◇ ◇

 

크악!”

그가 뒤돌아보았을 때 그는 심장이 멎는 것처럼 몸이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징그럽고도 무시무시하게 생긴 구렁이의 섬뜩한 눈이 바로 코앞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렁이의 몸으로 들어간 장자의 눈에 들어온 이는 지난 겨울부터 수시로 소작료를 올려달라며 찾아온 박서방이었습니다. ‘앞서 잠수해 들어가고 있는 저 놈은 필시 박서방과 가장 친한 김서방이렸다.’ 이렇게 생각한 장자는 한동안 얼굴을 살피고는 박서방의 주위를 천천히 한 바퀴 돌면서 몸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큰 입을 쩌억 벌렸습니다. 그 순간 박서방의 몸에서 맥이 쭉 빠져나갔습니다. 박서방은 혼절해버린 것입니다.

 

장자구렁이는 그를 물고 큰 몸을 스르르 움직여 물속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동굴은 제법 큰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박서방의 시체를 넣고 다시 서서히 몸을 갈지자로 헤엄을 치며 김서방이 잠수해 들어간 자신의 안채로 향했습니다.

 

한편, 앞서 잠수를 하던 김서방은 장자의 안채를 확인하고 수면으로 향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숨을 참았기 때문에 호흡이 필요해서였습니다. 물 위로 고개를 내민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함께 잠수를 했던 친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상하다고 여겼지만 장자의 안채를 발견하고 그곳에 있던 보석함들도 확인한 이상 더는 기다릴 수가 없어 다시 잠수했습니다.

 

이번엔 쉽게 장자의 안채에 도달했습니다. 지붕이나 벽은 박살이 나 있었지만 그런대로 집안의 형태를 알아볼 수는 있었습니다. 햇빛이 겨우 닿았기 때문에 자세하게 분간은 할 수 없었지만 장자의 안채에는 제법 많은 보석함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김서방은 보석함 쪽으로 헤엄을 쳤습니다.

 

보석함이 손에 닿았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려는 순간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소리가 났다 싶은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방의 구석 쪽에 앉아있는 사람 형체가 보였습니다. 그는 덜컥 겁이 났지만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1미터쯤 가까이 다가간 그는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거기엔 장자가 보석함을 꼭 끌어안고 눈을 뜬 채 죽어있었습니다. 김서방은 겁이 덜컥 났습니다. 괜히 장자의 물건에 손을 댔다간 천벌을 받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급히 헤엄을 쳐서 물 위로 향했습니다. 뗏목의 그림자가 머리 위에 비쳤습니다.

 

그때 뭔가 다리를 잡아끄는 것을 느꼈습니다. 바로 손만 뻗으면 뗏목에 닿을 순간에 몸이 아래로 끌려 내려갔습니다. 참았던 숨을 내뱄는 순간 목구멍으로 물이 발칵 들어왔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쳐다보니 자신의 몸 열 배는 될법한 구렁이가 다리를 물고 있었습니다.

 

김서방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두려움이 온몸을 감쌌습니다. 구렁이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갑자기 몸이 수면으로 솟구쳤습니다. 장자구렁이가 김서방을 집어던진 것입니다. 뗏목 옆에 떨어져 뗏목 위에 배를 걸치고 다리를 올리는 순간 김서방은 자신의 다리 하나가 잘려나간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또 다른 다리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습니다. 김서방은 끌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뗏목을 필사적으로 잡았으나 더 버텨낼 수가 없었습니다. 몸에서 힘이 쫙 빠져나갔습니다. 김서방의 눈에 아침 햇빛이 어지럽게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오후가 되자 김서방의 아내는 두 살 늦둥이를 업은 채 점심 채비를 하면서 투덜거렸습니다.

이 인간이 새벽 댓바람에 어딜 간다 말도 않고 집을 나가더니 아직도 감감무소식이야.”

아니, 늦둥이 아부지도 새벽에 나가서 아직 소식이 없는 거유? 우리 개똥이 애비도 새벽에 나가서 아직 안 왔는데.”

옆집 사는 박서방의 아내가 물을 길어 돌아오면서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개똥이가 늪가 쪽에서 엄마! 엄마!” 하면서 달려왔습니다.

얘가 왜 이리 호들갑이야! 좀 얌전히 다니지 못하고서.”

엄마, 늪가에 뗏목이 있던데 거기에 이게 있었어. 이거 아빠 옷 아냐?”

무명 저고리 겨드랑이가 한 뼘 터져있는 것을 보니 개똥아범의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개똥어멈은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불안감이 밀려왔습니다.

아빠 옷만 있는 게 아니고 다른 바지저고리도 있던데.”

그 말을 들은 김서방의 아내도 불안해졌습니다.

개똥아, 거기가 어디냐? 같이 가보자.”

 

늪가에 밀려온 뗏목에는 김서방의 것으로 보이는 바지저고리가 어지럽게 흩어져있었습니다. 박서방의 바지도 함께 있었는데 뗏목 한쪽에 핏자국이 보였습니다. 길게 여덟 줄이 나있었습니다. 피가 엉어리져 있는 손톱도 두어 개 눈에 띄었습니다. 김서방과 박서방의 아내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래? 분명히 무슨 변고가 있는 것이야. 이 일을 어째?”

아이고, 개똥이 아부지.” 박서방의 아내는 늪가를 수십 번이나 왔다갔다하면서 박서방을 목이 터져라 불렀습니다. 늪은 잠잠했습니다.

 

이 일이 관아에 알려지고 오후 늦게 나졸이 찾아왔습니다. 나졸은 김서방과 박서방의 아내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 뗏목을 살펴보았습니다. 나졸은 예삿일이 아님을 직감했습니다. 그는 관아로 돌아가 이방에게 자신이 들은 대로 본 대로 설명했습니다. 나졸의 보고를 받은 이방도 이는 분명히 살인사건이라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이방은 현감에게 사건의 정황을 보고하고 수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요청했습니다.

 

사또, 얼마 전 큰 비로 늪이 되어버린 마을에 장정 두 사람이 실종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나졸을 보내 살펴본바 누군가에게 피살되어 시체가 유기된 것 같사옵니다. 본격적으로 수사를 해야 할 듯하옵니다.”

그래요? 형방과 함께 사건의 내막을 잘 파헤쳐 범인을 꼭 잡도록 하시오.”

그렇게 해서 다음날 장자늪 실종사건의 수사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나졸 몇 명은 배를 타고 늪을 살펴보았습니다. 장대로 늪의 바닥을 감지하면서 이동했습니다. 범인이 시체를 수장시켰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였습니다. 배가 파도 같은 것에 일렁이듯 흔들렸습니다.

여보게, 방금 배 아래로 뭔가 이상한 것이 지나가는 것 보지 못했나?”

글쎄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기분 나쁜 느낌인걸.”

저기, 저것 보게. 구렁이야. 저렇게 큰 건 처음 봐. 저런 게 어떻게 이곳에 있지? 빨리 나가세. 잘못하다간 큰일 나겠어.”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배가 물에서 높이 솟구치더니 내동댕이쳐졌습니다.

!”

 

늪 쪽에서 비명이 들리자 나졸들이 늪가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들은 큰 구렁이가 배를 뒤집고 나졸들을 헤치는 모습을 보고서 기겁을 하였습니다. 물에 빠진 나졸들이 아무리 방망이로 때려도 구렁이는 아파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대형 구렁이는 한 나졸을 입에 물고 늪가로 집어던졌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나졸이 늪가 바닥에 떨어져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숨을 거두자 이를 지켜본 나졸들은 풍비박산이 되었습니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이방과 호방도 겁에 질리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늪 가운데서 나졸 셋을 해치운 구렁이가 늪가에 있는 이방과 형방, 남아있는 나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리고는 서서히 물결을 일렁이며 미끄러지듯 다가왔습니다.

모두 창을 들고 방어태세를 갖춰라!”

이방의 명이 떨어지자 나졸들은 나란히 서서 창을 겨눴습니다. 늪가 뭍으로 올라온 장자구렁이는 나졸들이 창을 들고 자신을 헤치려 하자 더욱 화가 났습니다.

크악!”

이곳은 내 땅이다. 썩 물러가거라하고 고함을 질렀으나 사람들에겐 뱀의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위협을 가하자 나졸들은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물러서지 마라! 창으로 목을 찔러라!”

이방이 뒤에서 고함을 치지만 나졸들은 너무 두려웠기 때문에 공격도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자꾸 뒷걸음질만 쳤습니다. 장자구렁이는 목을 길게 뽑으며 이빨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졸들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습니다. 이방과 형방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공격을 하라고 소리쳤지만 자신들도 두려워 뒷걸음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뒷걸음치다 넘어진 몇몇은 구렁이에게 감기고 물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와아!”

수십 명은 될법한 장정들의 함성이 들려왔습니다. 장자구렁이가 고개를 들어 소리나는 쪽을 보니 나졸들이 칼과 창을 들고 몰려왔습니다. 장자구렁이는 더욱 더 크게 소리를 지르고 마주 기어갔습니다.

카악!”

창과 칼을 휘두르며 달려오던 나졸들이 멈칫하며 뒤로 물러섰습니다. 구렁이의 입에서 끈적끈적한 진액이 나와 발 앞에 떨어지자 뱀의 독이라고 생각해 더는 공격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자구렁이는 더욱 난폭하게 나졸들을 공격했습니다.

 

나졸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때 하늘에서 뭔가가 하고 날아왔습니다. 투명한 듯 희미한 그 물체는 공중에 떠서 대형 구렁이에게 맞섰습니다. 그 희미한 물체는 부처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몸을 감싼 부드러운 천은 하늘거렸으며 머리 위에는 불꽃은 이글거렸습니다.

 

부처님께서 나투셨다!”

누군가 소리쳤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구렁이 앞에 나타난 그 부처의 모습을 보고 합장을 했습니다. 부처가 구렁이 앞에 버티고 있자 장자구렁이도 멈칫했습니다.

누구냐?’ 장자구렁이는 갑자기 나타난 상대가 기분 나쁘다는 듯이 한마디 내뱉었습니다.

아버님, 접니다. 아버님의 며느립니다.’

아니, 니가 왜? 너도 그날 목숨을 잃었단 말이냐?’

, 스님의 당부를 잊고 아버님과 서방님이 걱정되어 뒤돌아보았다가 돌부처가 되었지요.’

그 요망한 땡추가 우리 가족을 몰살시켰구나!’

아닙니다. 다 우리의 욕심 때문이어요. 아버님.’

듣기 싫다. 우리의 재산을 노리는 사악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

그래도 애꿎은 살상은 멈추세요. 아버님. 아버님께서 더 많은 죄를 짓지 않게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듣기 싫대도. 비키지 않으면 너도 가만두지 않겠다.’

 

장자는 머리를 휘둘러 며느리를 밀어내고 다시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장자구렁이는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카악!”

사람들은 부처와 구렁이가 한동안 대치상태를 이루다가 구렁이가 고개를 휘저으며 공격을 하고 부처는 머리 위에 있는 불꽃 하나를 구렁이의 눈으로 던지며 공격하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구렁이는 멈칫하다가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 와중에 겨우 완성한 초가집 몇 채가 다시 부서졌습니다. 나졸들이 이때다 싶어 구렁이의 가슴과 목을 창으로 찔렀습니다. 구렁이는 다시 큰 소리로 포효하고 늪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나졸들이 창을 던지며 쫓았지만 너무 빨라 놓치고 말았습니다.

 

늪의 물속에까지 따라온 며느리부처가 말했습니다.

아버님, 다시는 사람들을 해치지 마세요. 황룡이 이러한 일이 있을 줄 알고 저를 부처가 되게 해 아버님을 지키라고 했지요.’

장자구렁이는 자신의 뜻대로 사람들을 응징하지 못하게 되자 분통이 터졌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해코지하려고 뭍으로 나가면 며느리부처가 불꽃을 눈에 던져넣을 것이 분명하므로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재산을 탐내고 물속으로 들어오는 사람만 하나씩 잡아다가 물속 동굴에 넣었습니다.

늪에 들어간 사람마다 목숨을 잃게 되자 사람들은 늪 가까이 가기를 꺼리게 되었고 늪에 대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 들어봤니? 장자늪에 집채 만한 구렁이가 산다는 얘기. 옛날옛적에 욕심꾸러기이자 심술꾸러기인 장자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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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덥잖은 글의 첫 독자는 누가 뭐래도 문학소녀로 자처하는 큰딸이다. 그렇다고 큰딸이 매주 토요일이나 일요일 아빠의 글이 완성되나 관심을 기울이진 않는다. "아빠 글 한 번 읽어볼래?" 하고서 방문을 열고 한마디 하면 그제서야 "예."하고 프린트된 종이 몇 장을 받을 뿐이다.

 

어쨌든 딸은 다 읽고서 반응을 보여준다. 어떤게 아쉽고 어떤건 재미있고 어떤건 어떻게 보충하면 좋을 듯하다면서...

 

이번 장자늪 구렁이의 저주 2편을 보여줬더니 부처바위로 변한 며느리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없단다. 장자에 대항하는 가장 큰 존재라면 사람들 사이에서 며느리 얘기가 좀 더 구체화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렇다. 그런데 추가 안 했다. 바빴고 시간도 촉박해서다. 그래서 다음 3편, 마지막 편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고민이다. 어쨌든 고민 좀 더 하다보면 길이 보이겠지...

 

이 글을 보시는 분은 영화에서 CG로 탄생한 멋진 황룡은 아니지만 삽화가 들어있는 원문을 읽어주시라.

 


 

 

(전편 줄거리)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 창녕군 영산면 기름진 땅에 장자라는 큰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아주 욕심이 많고 심술꾸러기인지라 사람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지요. 어느 날 노승이 이 마을을 지나가다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해결방책을 알려주려 장자를 찾았으나 장자는 노승의 시주바랑에다 소똥을 퍼붓는 심술을 부립니다.


이를 본 장자의 며느리가 노승에게 시아버지 대신 사죄를 하고 바랑을 깨끗이 씻고 쌀을 넣어 시주를 하지요. 노승이 착한 며느리에게 앞으로 닷새 후면 마을에 큰 변고가 생기니 대피하라고 이릅니다. 특히 시아버지와 남편은 꼭 대피시켜야 한다고 합니다.


노승의 이야기를 남편과 시아버지에게 하지만 아무도 제대로 듣지 않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날은 점점 노승이 예견한 대로 심각하게 변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며느리가 전하는 말을 듣고 산으로 대피하지만 장자와 아들은 마지막 닷새가 되어도 요지부동입니다. 그 이유는 이런 혼란을 틈타 누군가 자신의 재산을 훔쳐갈까 두려워해서입니다.


며느리는 노승이 시키는 대로 동북방향 고개로 오릅니다. 절대 뒤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당부도 잊지 않고 말이죠. 그러나 고개를 오르는 동안 시아버지와 남편이 자신을 원망하는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래도 스님이 일러준 대로 참고 고갯마루에까지 올랐으나 마지막 순간 엄청난 뇌성에 그만 되돌아보고 맙니다.


◇                      ◇                       


며느리는 짙게 깔린 먹구름 속에서 황룡이 꿈틀거리며 나와서 자신을 쳐다보며 질타하듯 ‘꽈르르르’ 고함을 치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 고함에 비바람이 며느리를 향해 더욱 세차게 몰아쳤습니다. 며느리는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온몸이 떨렸습니다. 정신마저 아뜩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며느리는 고갯마루에 있는 큰 바위에 몸을 기댔습니다.


황룡은 잠시 후 물이 잠긴 마을 위로 몸을 돌렸습니다. 그때 물속에서 시아버지와 남편의 영혼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습니다. 생전의 모습과 달리 몸이 투명하였습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와 남편이 물속에서 사망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동네 사람들의 원성을 사고 자신에게 살갑게 대해주지 않은 사람들이었어도 시아버지이고 남편이어서인지 며느리 눈에는 눈물부터 흘렀습니다.


‘아, 죄송해요. 아버님. 미안해요. 서방님. 제가 끝까지 남아서 구해드려야 했었는데….’


두 영혼이 빗줄기 사이로 승천하고 있는데 황룡이 갑자기 두 영혼을 앞발로 콱 틀어쥐었습니다. 다시 한 번 커다란 번개와 함께 우레가 울려 퍼졌습니다. 황룡은 앞발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습니다. 시아버지와 남편의 영혼은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며느리는 차마 그 모습을 더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며느리는 자신의 모습이 서서히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몸이 딱딱해짐과 동시에 서서히 바위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며느리는 갑자기 두려워졌습니다. 하늘이 시아버지와 남편을 구하지 못한 자신을 벌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꽈르르르.”


(삽화)


다시 천둥이 온 세상을 흔들었습니다. 며느리의 시선이 다시 물에 잠긴 마을로 향했을 때 황룡은 시아버지와 남편의 영혼을 물속으로 집어던졌습니다. 황룡은 그곳에서 몇 바퀴를 돌더니 고개를 며느리 쪽으로 돌렸습니다. 서서히 다가왔습니다. 며느리는 이미 굳어가고 있는 몸이지만 두려웠습니다. 황룡이 자신에게도 벌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넌 밤낮으로 여기에 서서 장자가 죽은 늪에서 사악한 기운이 퍼져 나가지 못하게 지켜 내거라.’


황룡이 말을 하는 듯했습니다. 며느리는 황룡의 눈 속에서 부처로 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황룡은 몸을 돌려 빠른 속도로 날아가 먹구름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며느리의 눈에선 여전히 눈물이 흘렀습니다. 몸은 이제 완전히 바위가 되었습니다. 모든 신체가 바위 속으로 들어가 돌로 변했지만 희한하게도 세상을 볼 수도 있었고 들을 수도 있었습니다.


한편, 황룡에 의해 물속으로 처박힌 장자와 아들의 영혼은 물속을 떠돌게 되었습니다. 죽어서 하늘에 오르지도 못하는 영혼이 되니 세상에 대한 원망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장자는 물에 잠긴 자신의 집으로 가보았습니다. 안방에서 보석함을 꼭 끌어안고 죽어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얼굴은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행복해 보이는 듯도 했습니다.


장자의 아들 역시 쌀이 가득 찬 곳간에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꼭 걸어 잠근 모습으로 죽어있었습니다. 장자의 아들은 아버지만큼 그렇게 욕심이 많거나 심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만 살다 보니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사람들로부터 욕을 얻어먹으며 살았습니다. 아들에겐 그게 더 억울했습니다.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인데 동네 사람들은 등 뒤에서 손가락질을 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아들에게도 동네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자와 아들이 지붕 위에서 자신의 모습을 처량한 듯 바라보고 있는데 구렁이 두 마리가 서서히 이쪽으로 헤엄을 쳐 오고 있습니다. 생긴 모습이 징그럽기도 하고 무시무시하기도 했습니다. 입을 벌렸을 때엔 크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금방이라도 온몸을 관통시킬 정도로 섬뜩하였습니다. 장자와 아들은 잎이 무성한 미루나무 가지 사이로 헤엄을 쳐 몸을 숨겼습니다.


어미 구렁이인 듯 큰 놈이 장자가 숨져 있는 안방으로 긴 몸을 흔들며 들어가고 있었고 작은 구렁이는 곳간으로 향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장자와 아들은 덜컥 겁이 났습니다. 구렁이에게 자신의 육신이 잡아먹혀 버리면 나중에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영원히 이 늪 속에서 떠돌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자와 아들은 각각 구렁이를 뒤따라 헤엄쳐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구렁이가 장자의 몸을 칭칭 감더니 입을 쩍 벌렸습니다. ‘, 이대로 구렁이의 밥이 되는구나!’ 장자는 순식간에 구렁이를 향해 돌진했습니다. 구렁이가 장자의 영혼을 감지하고 고개를 돌리는 찰나였습니다. 장자의 영혼이 구렁이 몸속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구렁이는 아주 고통스러운 듯 온몸을 비틀었습니다. 그 때문에 벽이며 지붕이며 모두 부서져 물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장자의 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작은 구렁이가 자신의 몸을 먹으려 할 때 구렁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장자 구렁이와 다르게 아들 구렁이는 바로 정신을 잃고 바닥에 가라앉았습니다. 아들의 영혼이 모질지 못했거나 구렁이와 영혼의 궁합이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들 영혼이 구렁이와 함께 죽게 되자 장자 구렁이는 온 늪이 출렁이도록 몸부림을 쳤습니다.


장자가 재산 다음으로 가장 사랑했던 게 아들이었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물려받아 지켜낼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하물며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에게까지도 광의 열쇠를 맡기지 않았지요. 그런 아들이 자기와 함께 죽게 되고 또 영혼마저도 구렁이와 함께 사라지게 되었으니 가슴을 칠 노릇이지요.


장자 구렁이는 독하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구렁이의 영혼을 지배하고 구렁이의 수명만큼 살게 된 이상 자신을 이렇게 만든 세상에 대해 해코지하고 복수할 일념에 사로잡혔습니다. 장자 구렁이는 아들의 시체와 아들 구렁이의 시체를 마을 우물이었던 곳에 넣고 돌로 메웠습니다.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창했습니다. 마을을 잠기게 했던 물은 조금 빠지다가 멈춰 늪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물이 완전히 빠져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비가 그치고 며칠이 지나도록 물은 여전히 수위를 유지했습니다.


몇 날 며칠이 지나서야 마을 사람들은 장자와 장자의 아들, 그리고 그 집 며느리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며느리가 그날 대피했다는 것을 아는 돌쇠는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찾아보았으나 매일 허탕을 쳤습니다. 늪가에 다시 집을 짓던 마을 사람들이 모여 소곤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열흘이 지나도록 이렇게 나타나지 않은 걸 보면 장자의 가족이 이번 물난리에 변을 당한 모양일세.”

“에그…, 쯧쯧! 그 많던 재산 전혀 쓸 줄 모르고 모으기에만 애면글면하더니 결국 저렇게 되어버렸어.”

“여보게, 우리 물속에 잠긴 장자의 재산, 조금씩 건져내 쓰면 어떨까? 금은보화가 곳간에 가득 들어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말야. 우린 고생하지 않고 여생을 편안히 살 수 있지 않겠나?”

“하기야 주인도 없어진 마당에 장자의 재산은 먼저 차지하는 놈이 임자렸다!”


이렇게 작당을 한 두 사람은 다음날 날이 밝는 대로 뗏목을 만들어 늪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림짐작으로 장자의 집이 있던 곳까지 노를 저어가서는 옷을 벗고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밝은 아침 햇살이 늪의 제법 깊은 곳까지 비추어 두 사람은 장자의 집을 쉽게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저기로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수신호를 하고 함께 헤엄쳐 내려갔습니다. 장자의 집에 다다를 쯤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섬뜩하고 이상한 기운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뒤따라 헤엄을 치며 내려가던 사람이 등에서 뭔가 차가운 촉감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3편이 이어집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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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 세 번째 이야기는 창녕 장척호에 얽힌 전설입니다. 장척호에 가보니 상상을 그리 해서 그런지 몰라도 아나콘다 이상의 구렁이가 살고 있을 법한 분위기더군요. 이웃 번개늪은 더하고... 장자늪 이야기는 전국 곳곳에 있는 데다 많이 알려진 전설이라 사실 전설이라기보다 설화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옛날 할머니들이 손자들 데려다 놓고 "옛날에 말이야 우리 동네 늪이 어떤 욕심쟁이 부자가 살았던 동네였는데..."하면서 장자늪 이야기를 갖다붙인게 전설이 된 셈이죠. 이 이야기는 경남이야기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창녕 영산면 장척호(장자늪)에 얽힌 전설

 

창녕군 영산면 봉암리와 신제리를 끼고 있는 곳에 넓이가 0.5㎢ 가량 되는 늪이 있습니다. 저수지 기능도 하고 있는 이 늪의 이름은 장척호입니다. 장척호의 물은 동쪽 종암산에서 발원하여 내려온 것입니다. 이 늪에는 기이한 전설이 있습니다. 바로 장자라는 심술궂고 욕심 많은 부자 이야기입니다.

 

이 장자라는 인물은 아주 유명했던 모양입니다. 장자가 남긴 전설이 비단 창녕 장척호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함안 대산에도 있고 충북엔 청주시 신촌동, 충주시 가금면에도 있으며 경기 구리시 토평동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장자늪 전설은 다른 전설과 달리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늪이나 호수가 있으면 끌어다 붙이는 형태로 전승된 듯합니다. 국내 여러 장자늪 전설 중에서 창녕 장척호를 배경으로 전해져 오는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물론 지금부터 전해드리는 이야기는 기존의 이야기에 뼈를 더하고 살을 붙여서 픽션의 맛을 가미한 것입니다.

 

◇ ◇ ◇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에 아주 욕심이 많고 심술궂은 놀부 같은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부자는 동네 사람들로부터 장자로 불렸습니다. 그에게는 아주 많은 논과 밭이 있었는데 그 넓이가 사방 10(4)나 되었습니다. 장자가 이렇게 부자가 된 것은 그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돈이 생기면 논이나 밭을 사고 그 논밭을 다른 사람에게 소작하게 하여 높은 소작료를 받고 또 그렇게 생긴 돈으로 땅을 사모았기 때문입니다. 간혹 빚이 있는 농부에게는 빚을 탕감하게 해주는 대신 그의 논을 샀는데 그가 자기 땅이었던 곳에서 소작하게도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장자 집안의 논밭은 대를 이어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고 장자에 이르러 소작하는 농가가 100가구를 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워낙 고리의 소작료를 챙겼기 때문에 농민들의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불만이 많아도 농부들은 이 땅을 떠날 수 없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뼈가 부서지도록 일을 하고 또 했습니다.


그 이유가 원래 자기 땅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을의 농토가 워낙 비옥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사방이 삼림이 울창한 큰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장자의 평야는 메마르지 않았습니다. 매년 풍년이 들다 보니 소작을 하는 농부들도 8할이라는 엄청난 소작료를 장자에게 내어주고도 굶주리지 않고 살 수 있었답니다.


장자에게 소작을 하는 농부들은 재산을 모아서 자신이 농사를 짓는 땅을 사서 원 없이 살아보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원래 자기 땅이었던 농부들도 같은 꿈을 꾸며 살았기에 이들이 모이기만 하면 장자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이번에 소식 들었는가? 장자가 웃골 박씨네 논이랑 밭을 헐값에 사들였다는군.”


“올가을에 딸 혼사를 치른다는 그 집 말인가?”


“맞아! 딸을 제법 부잣집으로 시집을 보내나 봐. 혼수를 마련하느라 장자에게 그 땅을 팔았다지. 박씨네 밭이 양지바른 곳이라 소출이 좋았다던데 아깝기도 하겠어.”


“장자가 그 밭에 눈독을 들인 지 오래라지. 여하튼 좋은 땅을 제 수중에 넣는 데는 귀신이야.”


“그나저나 우리도 고생해서 장자 좋은 일만 시켜줄 게 아니라 논밭을 다시 사들여서 맘 편하게 살아야지 않겠나?”


“지금 같이 소작료를 내어서는 재산 모으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데 어떻게 이 논밭을 되산단 말인가?”


“장자에게 소작료를 낮춰달라고 요구해봐야지.”


“요구한다고 들어줄 양반인가? 어림도 없는 소리 말게.”


“애원이라도 해야지. 그래도 들어주지 않으면 그 집 곳간을 털면 되지 않겠나?”


“에끼 이 사람! 농이라도 그런 끔찍한 소리 말게.”

농부들은 모이기만 하면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장자를 힐난하고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어쩌다 장자에게 소작료를 낮춰달라는 요구를 했다가 한 번만 더 그런 소리 했다가는 지금 부쳐 먹는 땅마저 다 빼앗길 줄 알아라란 장자의 퇴박에 쫓겨나다시피 대문을 나서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노승이 찾아왔습니다. 노승은 장자의 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그때 지나가던 한 농부가 스님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스님, 이 집에서 아무리 염불을 읊어봐야 소용없습니다. 다른 집으로 가시는 게 시간을 절약하는 겁니다.”


스님은 농부의 말을 듣고도 짐짓 모른 체하며 계속 염불을 외웠습니다. 목탁소리가 점점 커지자 머슴이 대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스님, 이 집 주인 양반 나오기 전에 얼른 딴 곳으로 가십시오. 이러고 계시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릅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그러던 사이 집 안쪽에서 장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슨 일이냐? 돌쇠야. 스님께서 뭐라도 좀 얻어먹어야 가시겠다고 하느냐?”



장자가 대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심술궂은 얼굴에 점이 하나 박혀 있었는데 노승이 보기에 머지않아 멸문지화를 당하는 관상이었습니다. 스님은 더욱 걱정이 되어 더 큰소리로 염불을 외웠습니다.


“아이고 어쩌나 나무 관세음보살!”


“아니, 이 영감탱이가 날 보면 부리나케 떠날 것이지. 아직도 버티고 있네!”


“소승이 이곳을 지나다 마을에 큰 재난이 닥칠 운을 보았는데 처사께서 마을 사람들에게 재산을 나눠주고 함께 산으로 피신해 있으면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지금처럼 다시 영화를 누릴 수 있을 거외다.”


스님의 이 말을 들은 장자는 갑자기 혈압이 오른 듯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뭐? 이놈의 영감탱이가 뭘 잘못 먹고 환장을 했나? 대낮부터 무슨 흰소리야?”


장자는 버럭 성을 내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엉큼한 목소리로 스님에게 말했습니다.


“스님께서 이렇게 저를 염려해주시니 제가 시주를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슈!”


장자는 스님에게 골탕을 먹일 생각이었습니다. 장자가 집안으로 들어갔다가 들고 나온 것은 거름에 쓰려고 모아두었던 소똥이었습니다.


“자, 스님 뒤돌아서시오. 바랑에다 귀한 것 넣어드리리다.”


스님은 그것이 소똥인 줄 알면서도 돌아섰습니다. 소똥을 스님의 바랑에다 넣는 장자의 표정에는 심술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마침 이때에 동네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던 장자의 며느리가 이 모습을 보았습니다. 스님은 별로 기분 나쁜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염불만 되풀이할 뿐이었습니다. 스님이 장자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돌아서자 장자는 돌쇠에게 대문에 소금을 뿌리라고 하고는 투덜거리며 들어갔습니다.


스님이 몇 걸음 옮겼을 때 며느리가 머리에 이고 있던 물동이를 내려놓고 뛰어갔습니다.


“스님, 잠깐만 기다리세요.”


노승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자 며느리는 허리숙여 합장을 하였습니다.


“스님, 죄송합니다. 제 시아버지께서 스님께 한 행동을 보았습니다. 대신 제가 용서를 빕니다.”


“괜찮습니다. 보살님. 괘념치 마십시오.”


“아닙니다. 이렇게 스님을 보내드려선 안 되지요. 바랑을 제게 주시고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며느리는 노승의 바랑을 건네받고 집으로 들어갔다가 한참 후에 다시 나왔습니다. 바랑은 깨끗하게 씻어져 있었고 그 안에는 쌀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노승은 다시 한 번 죄송하다며 절을 하고 돌아서는 장자의 며느리를 불렀습니다.


“보살님, 소승의 말을 믿지 않으시겠지만…”


노승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습니다.


“이 마을은 앞으로 닷새가 지나면 큰 변을 당할 것입니다. 그 안에 마을 사람을 모두 산으로 피신시키십시오. 특히 보살님의 시아버지와 남편은 반드시 마을을 떠나야 합니다. 만약 시아버지와 남편이 떠나지 않겠다고 한다면 보살님이라도 혼자 동북쪽에 있는 산으로 피신하세요. 그리고 고개를 넘기 전에는 절대 뒤돌아보아서는 안 됩니다. 만약 뒤돌아보게 되면 보살님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 생기니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노승은 장자의 며느리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며느리는 노승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큰 변고라는 것이 무엇인지, 왜 마을 사람 모두를 산으로 피신시키라고 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며느리는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노승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무래도 스님의 말씀이 지나가는 농담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혹시 불이나 물난리가 나는 것은 아닐까요?”


“부인도 참 걱정이 팔자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지내온 우리 마을에 갑자기 재난이 생긴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겠소? 그 땡추가 아버지의 심술에 그저 분풀이할 요량으로 한 소리일 거요.”


장자의 며느리는 남편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00여 년을 아무 탈 없이 태평스레 지내온 마을 아닌가. 마을에 아무런 징조도 없는데 앞으로 5일만 지나면 마을 사람 모두 대피해야 할 정도로 변을 당한다니 믿을 수 없는 예언이라 생각했습니다.



하루가 지났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우르르’ 하고 마른 천둥이 몇 번 쳤습니다. 며느리는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구름만 조금 있을 뿐 그렇게 흐린 날도 아닌데 우레가 이렇게 친다는 것은 범상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며느리는 남편에게 또 이야기했습니다.


“여보, 아무래도 어제 그 스님의 말씀이 마음에 걸립니다. 특히 당신과 아버님을 반드시 피신시켜야 한다고 했는데….”


남편은 또 아내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며 퉁을 주었습니다.


“아버지께 말씀을 들었는데 그 중이 우리 재산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했다더군. 그들에게 시주를 많이 받으려고 술수를 쓰고 있는지도 모르잖소.”



이틀이 지나자 사방에서 먹구름이 몰려왔습니다. 며느리는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시아버지에게 스님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 같아 걱정된다면서 어서 피신하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장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며느리가 요사스런 중의 꾐에 빠져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며 야단을 쳤습니다.


점점 마음이 불안해진 며느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스님의 이야기를 전하고 어서 피신할 준비를 하라고 일렀습니다. 마을 사람도 대부분 며느리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흘이 지나면서 먹구름 사이로 번개가 쳤습니다. 며느리는 더욱 마음이 불안해져 남편과 시아버지에게 하늘을 가리키며 어서 피신할 것을 간청했습니다. 시아버지와 남편은 여전히 콧방귀만 뀌었습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하늘에서 지금까지 없던 징조들이 자꾸 나타나니까 노승의 예언을 조금씩 믿기 시작했습니다.


나흘이 지났습니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며느리는 다시 한 번 남편과 시아버지에게 가서 어서 피신하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남편은 은근히 걱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을 보니 심상찮았으니까요.


그런데 시아버지인 장자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장자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재산을 마을 사람들에게 단 한 푼이라도 나눌 수 없다는 생각만으로 가득했습니다.



닷새가 지난날 아침.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중요한 재산을 챙겨 산으로 대피했습니다. 날이 점점 심각해져 가는 데다 나중에 아무 일 없으면 그대로 산에서 내려오면 되므로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며느리는 이날도 남편과 시아버지께 함께 피신하자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여전히 무시당했습니다. 오히려 며느리가 쓸데없는 말에 현혹되어 미쳐버렸다고 여기고 기둥에 묶어버렸습니다.


‘남편과 시아버지가 도저히 설득되지 않으면 혼자서라도 대피하셔야 합니다’라고 한 스님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스님이 일러준 시각이 다되었습니다. 날은 점점 깜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장자는 며느리를 그대로 묶어두고 아들에게 곳간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혹시라도 이런 흉흉한 분위기를 틈타 마을 사람들이 쳐들어와 창고를 박살 내고 곡식을 훔쳐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였습니다.


“아버님, 이것 좀 풀어주세요!”


며느리가 아무리 애원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장자와 아들이 곳간으로 가자 돌쇠가 다가와서 묶었던 줄을 풀었습니다. 며느리는 돌쇠에게도 빨리 살길을 찾아 떠나라고 이르고 자신도 스님이 일러준 동북쪽 산으로 향했습니다.

오르는 동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빗줄기는 거세어졌고 바람도 세차게 불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많은 비가 내리기는 며느리도 태어나고 처음 겪는 것이었습니다. 고개 중턱쯤 오르자 곳곳에 낙뢰가 떨어져 나무가 쓰러졌습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와 남편이 걱정되었습니다. 마을이 낮은 지대여서 물에 잠겼을 텐데 제때 피신을 하였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며느리는 스님이 일러준 당부를 잊지 않았습니다. ‘절대 뒤를 돌아보시면 안 됩니다.’ 며느리는 아무리 궁금했어도 참았습니다. 하지만 등뒤에서 들리는 소리 때문에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며느리 니가 이렇게 배신할 줄 몰랐다. 우릴 두고 혼자 도망을 치다니. 괘씸하구나!”


“부인, 정말 너무하오. 아버님과 나를 물에 빠져 죽게 하고 혼자 편히 살 수 있을 것 같소?”


며느리는 이렇게 소리치는 시아버지와 남편이 한편으론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함께 피신하자고 부탁을 해도 콧방귀만 뀌던 양반들이 이제야 나 때문에 죽게 되었다고 하니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하늘은 더욱 노했습니다. 짙게 깔리는 먹구름에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물줄기, 벼락과 우레가 뒤섞여 걸음을 더 옮기기도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거의 고개에 다다랐을 때였습니다. ‘콰르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시아버지와 남편의 단말마 비명이 등에 꽂혔습니다. 며느리는 자신도 모르게 뒤돌아섰습니다.


며느리는 자신의 두 눈에 들어온 그 모습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 주 2편에 계속됩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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