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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과 동일한 제목으로 가려 하다가 꼭 그럴 필요 있나 싶어 그냥 단순 사실 전달 차원의 제목으로 뽑았습니다.
사실 쓰기 전 이야기가 이렇게 복잡하게 얽힐 거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단순하게 남자 주인공이 물에 빠진 여자주인공을 구하고 그러다 사랑에 빠졌는데 여자 주인공이 피치 못할 사연으로 절벽에서 떨어져 죽자 남자도 다음 생에는 꼭 함께 태어나서 행복하게 잘 사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천년이 흐른 후 개로 태어났는데... 다시 헤어지는 비극이 생기고 천년 전 서로 만났던 길을 따라 만나기를 오간다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간단한 얘기가 왜 이렇게 복잡하게 됐는지... 하여튼 생각의 가지가 거미줄만큼 복잡해서 나도 감당이 어렵네요. 독자들께선 '경남이야기'에 실린 글로 옮겨가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방문자 수를 올려야하는 숙제가 있어서요.
굳이 제 블로그에서 글을 끝까지 읽겠다 하시는 분이시면 아래의 글을 읽으시면서 스크롤하시면 됩니다.
(전설텔링)환생, 천년후애(千年後愛)(2)
창녕 부곡 노리-임해진 개벼리에 얽힌 전설
전편 줄거리 : 낙동강변 마을 전체가 풍년이 든 어느 해, 노리에 사는 청년인 사달추수와 그의 친구인 달염모가 추수를 하다 강 하류로 지나가는 임해진 족장의 배를 봅니다. 그 배의 뱃머리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머리를 휘날리며 서 있었고 사달추수는 그의 표정이 그렇게 밝지 않음을 느낍니다. 그날 밤, 하류에서 돌아오던 배가 태풍을 맞아 전복되고 임해진 족장의 딸 월아는 익사할 위기에 처합니다. 이때 농작물을 관리하러 밖에 나갔던 사달추수가 이를 발견하고 월아를 구합니다. 혼절한 상태에서 하루 반이 지나도록 월아는 깨어나지 못합니다. 월아는 사천왕상이 자꾸 자신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꿈을 꿉니다. 잠시 정신을 차렸다가 다시 꿈속으로 빨려드는데 이젠 멋진 청년이 자신을 구해주는 꿈을 꿉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렸을 때 꿈속에서 보았음 직한 청년이 옆에 앉아있음을 발견합니다. 이윽고 아버지가 찾아오고 남지 족장도 함께 왔다면서 그에게 시집갈 것을 강조합니다. 임해진 족장을 배웅하면서 사달추수는 남지 족장과 마주칩니다.
사달추수와 눈이 마주친 남지 족장의 얼굴이 일순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이내 살짝 웃는 표정을 바뀌었습니다.
“당신이 월아 낭자를 구해준 사람이오? 고맙수. 내 아내가 될 사람을 구해줬으니 내게도 은인이오. 뭐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하슈.”
남지 족장은 턱을 쑥 앞으로 빼고는 사달추수에게 말했습니다. 사달추수는 눈알을 좌우로 굴리며 건방진 말투로 이야기하는 상대의 모습에 몹시 기분이 상했습니다.
“아가씨께서 아직 몸이 성치 않으니 오늘은 모두 돌아가시지요.”
사달추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지 족장이 큰소리로 끼어들었습니다.
“아니, 무슨 말이오? 여기까지 왔는데 낭자의 얼굴도 못 본단 말이오? 난 잠시 들어가서 낭자를 봐야겠소. 족장께서 허락해주시오.”
남지 족장은 임해진 족장의 팔을 당기며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싶으나…”
임해진 족장은 남지 족장을 본 딸의 반응이 어떨지 상상을 했습니다. 오히려 일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지금 여식의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아…, 다음에 보시지요. 여식이 기운을 차리면 한 번 잔치를 벌여 족장을 초대하리다.”
임해진 족장과 남지 족장 일행은 노리 나루에서 남지 족장의 배를 타고 돌아갔습니다. 이들이 돌아가자 임해진 족장의 딸이 방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얼굴은 여전히 수척한 상태였습니다. 사고를 당해 그렇다기보다 근심 때문에 더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었습니다.
“좀 더 누워있지 않고 어찌 나오십니까?”
“괜찮습니다. 괜히 폐를 끼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런 염려는 않으셔도 됩니다. 어서 몸을 추슬러서 집으로 돌아가셔야지요.”
월아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또 현기증이 들었습니다.
“도련님께서 절 구해주셨는데 전 아직 인사도 드리지 못했군요.”
월아는 마당에 선 채 사달추수에게 허리를 깊숙이 숙였습니다.
“왜 이러십니까? 일어서십시오.”
그때 사달추수의 어머니가 다시 죽을 데워 부엌에서 나왔습니다.
“아가씨, 꼬박 하루 반나절 혼절해 있는 터라 아무것도 먹지 못해 기력이 쇠했을 텐데 이거라도 좀 먹고 기운을 차리지요.”
“네…, 고맙습니다.”
다음날 기력을 되찾은 월아가 사달추수에게 마을 구경을 시켜달라고 했습니다. 사달추수와 월아가 사립을 나섰을 때 달염모가 달려와 숨을 몰아쉬면서 말했습니다.
“아, 아가씨 안녕하세요? 지금 몸은 좀 괜찮아졌습니까?”
월아가 달염모의 갑작스런 출연에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했습니다.
달염모는 수다스럽게 자신을 소개하고 어제 낙동강 하류 쪽으로 심부름을 갔다가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심부름 갔다가 들은 이야기인데 아침에 어떤 여인의 시체가 갯가에 떠내려와 있어서 장사를 지내고 임시로 묻었다고 해요. 오늘 아침 집으로 돌아와 보니 동네 사람들이 사고 이야기를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시체가 아가씨의 유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달염모의 이야기를 들은 월아는 정신이 아찔해짐을 느꼈습니다.
‘아, 유모. 괜히 나 때문에… 괜히…. 미안해. 어쩌면 좋아.’
월아는 달염모와 사달추수에게 유모를 장사지낸 그곳으로 함께 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류 마을로 가는 길에 월아는 그동안 자신에게 있었던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아버지가 남지 족장에게 발목이 잡힌 것은 지난 몇 해 동안 흉년으로 우리집뿐만 아니라 온 부족의 살림이 어려워지자 아버지께서 작년에 남지에서 곡식을 꾸어온 것 때문이지요. 올해 겨우 풍년이 들어 반을 갚을 수 있게 되었는데 남지 족장은 모두 갚기를 원하는 거예요. 다 갚게 되면 우린 또다시 곡식을 꾸어야 하는 처지라, 반은 내년에 이자를 더 쳐서 갚겠다고 했는데… 남지 족장은 저를 자기에게 보내면 모든 걸 탕감하겠다는 제안을 했지요.”
“아니 그런 몹쓸 양반이 있나!”
달염모가 듣다못해 화를 내며 허공에다 주먹질을 하였습니다.
“어찌하실 생각이오?”
사달추수는 월아의 심경을 살피며 물었습니다.
월아는 대답 대신 먼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남지 족장에게 시집을 간다면 저는 살아도 산목숨이 아닐 거예요. 제가 팔려가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지만 그의 노리개로 일생을 살아갈 자신도 없어요.”
월아는 자신이 꾸었던 꿈 이야기도 두 사람에게 했습니다.
“꿈속에서 어느 도련님께서 절 구해주셨는데, 깨어났을 때 그분이 사달추수님과 너무 흡사하여 저 역시 깜짝 놀랐지요.”
사달추수는 월아의 이 이야기를 듣고 괜히 가슴이 콩닥거렸습니다. 물에서 정신을 잃은 이 여인을 구해내면서 제발 목숨만은 잃지 않게 해달라고 신령님께 얼마나 빌었던가. 갯가에서 집으로 올 때 등으로 전해오는 여인의 남은 온기를 가늠하며 또 얼마나 뛰었던가. 하루 반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며 살려내고자 했던 마음이 어느새 연모의 정으로 변하고 있음을 사달추수는 느꼈습니다.
하류 마을에 도착한 월아는 옷가지 등 유품을 통해 그가 유모임을 확인했습니다. 월아는 옆에 두 남자가 서 있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날이 저물도록 강가에 눈물을 뿌렸습니다.
‘아씨, 절대 남지 족장에게 시집을 가서는 안 됩니다. 그의 권력 욕심은 끝이 없어서 아씨께서 시집을 간다고 해도 우리 부족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우리를 자기 발아래에 두려고 온갖 술수를 다 부릴 겁니다.’
월아는 유모의 말을 돌이켜보았습니다.
‘그래, 내가 남지 족장에게 간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지는 않아. 유모의 말대로 우리도 힘을 키워 남지 족장에게 대항해야 해. 아버진 발등의 불만 어서 끄려고 하시지.’
다음날 월아는 사달추수와 달염모의 배웅을 받고 임해진으로 돌아왔습니다. 부족 사람들이 하류 마을에서 유모의 시신을 운구해 평야가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에서 정성껏 장사를 지냈습니다.
월아가 임해진으로 돌아온 후 달포가 지났습니다. 월아와 사달추수는 그동안 마을 사이에 놓인 험한 산을 타고 서로 만났습니다. 절벽 위에서 낙동강을 내려다보며 두 사람은 조금씩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월아는 사달추수를 만날수록 그가 꿈속에서 자신을 구해준 도련님이고 또한 자신과 맺어질 인연임을 확신했습니다. 월아는 다만 남지 족장이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점이 걱정되었습니다. 어쨌든 아버지에겐 남지로 시집가지 않을 것이라고 계속 버티다 보면 아버지도 대책을 마련하시겠지 하는 계산을 하면서도 뚜렷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어서 염려되었습니다.
월아가 임해진으로 돌아온 사실을 알고 남지 족장은 빨리 잔치를 열어 달라고 계속 요청했습니다. 달포가 지나도록 아직 완쾌되지 않았다며 미루긴 했으나 더는 미룰 수 없어 임해진 족장은 달갑지는 않지만 남지 족장을 불러 잔치를 열었습니다. 이날 군복을 입고 잔치에 참석한 남지 족장은 술을 한 잔 들이켤 때마다 월아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월아는 나오라는 기별이 와도 연회장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남지 족장의 무례한 행동과 언사가 계속 되자 임해진 족장은 더는 참을 수 없었던지 한마디 내뱉었습니다.
“족장께서 너무 성급하신 것 같소. 제가 약속을 드리지 않았소? 여식을 반드시 족장께 보낼 것이라고. 여식이 아직 어려 그러니 마음을 돌릴 때까지 좀….”
성질이 불 같은 남지 족장은 임해진 족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뭐라? 준다고 했으면 당장 줘야지. 날 어떻게 보고 하는 소리야!”
남지 족장은 그 자리에서 바로 상을 뒤엎으며 연회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습니다.
“애들아, 지금 당장 월아 낭자를 이리로 데리고 오너라.”
“안 된다. 이놈들!”
임해진 족장이 비틀거리며 일어서자 임해진 병사들이 순식간에 몰려와 길을 막아섰습니다. 분위기가 험상궂게 변했습니다. 남지 병사들과 임해진 부족들이 서로 칼을 꺼내어 겨눴습니다. 누구 하나라도 칼을 휘두르면 피비린내나는 싸움으로 확산될 게 뻔했습니다.
그 시각 사달추수는 월아와 늘 만나던 절벽길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오늘 남지 족장을 불러 잔치를 한다는 얘기를 미리 듣고 알고 있었으므로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별 탈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말일세. 남지 족장의 성정으로 보아 조용히 물러날 것 같지 않아 걱정이네만….”
뒤따라 오르던 달염모가 한숨을 거칠게 내쉬며 말했습니다.
“잠깐, 임해진 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지 않았나?”
두 사람이 귀를 세우는 동시에 점점 장정들의 고함이 크게 들려왔습니다.
“이쪽으로 오는 모양인데?”
사달추수는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남지 병사와 임해진 병사 사이에 맞서 있던 팽팽한 기운을 깬 것은 임해진 족장의 개였습니다. 병사들의 칼날에서 반사된 빛에 흥분한 개가 ‘컹’하고 한 번 짖더니 갑자기 뛰어올라 남지 병사의 팔을 물어버린 것입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서로 칼날을 부딪치며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남지 병사의 팔을 계속 물고 놓지 않던 개는 다른 병사의 칼에 찔려 그 자리에 떨어졌습니다.
연회장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오자 대문 밖에 서 있던 남지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상황이 불리해졌음을 느낀 임해진 족장은 병사들에게 후퇴하라고 명령을 하고 뒷문을 통해 산으로 올랐습니다.
병사들도 임해진 족장의 뒤를 따라 산으로 대피했습니다. 뒤에서는 남지 병사들이 고함을 치며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남지 족장 역시 거구를 이끌고 산을 타고 올라왔습니다. 절벽에 다다랐을 때 수적으로 너무 부족한 임해진 사람들은 항복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지 족장이 절벽에 올라왔을 때 임해진 족장과 병사들은 무기를 버린 채 벼랑 끝에서 남지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감히 나를 능멸하다니! 아무리 월아 낭자의 아비라 하여도 용서할 수 없소. 임해진 족장은 죽음을 각오해야 할 것이오.”
남지 족장의 목소리는 절벽까지 올라오면서 지쳤을 법도 한데 쩌렁쩌렁했습니다. 숲으로 메아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달추수와 달염모는 숲 속에 몸을 은신한 채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한편, 아버지가 임해진 병사들에게 쫓겨 산으로 후퇴했다는 소식을 들은 월아는 걱정이 되어 가만히 방 안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월아는 남지 병사들의 뒤를 따라 산으로 올랐습니다. 월아가 절벽에 도착했을 때 남지 족장이 아버지를 향해 칼을 치켜든 순간이었습니다.
“그만두세요!”
카랑카랑하면서도 슬픔이 담긴 목소리가 산을 울렸습니다.
사달추수는 월아의 출현에 저도 몰래 뛰쳐나가려 하였습니다. 달염모가 그 순간 사달추수를 제지했습니다.
“아버지를 풀어주세요. 제가 족장께 시집가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바로 남지로 따라 가지요.”
갑작스런 월아의 출현에 남지 족장도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러다 이내 입가에 미소를 띠며 월아에게 다가가 손목을 끌어당겼습니다.
“낭자, 진작에 이랬으면 불필요한 사달이 나진 않았을 것 아니오. 낭자가 그리 원하니 이번만은 아버님을 용서하리다. 흐흐.”
남지 족장의 눈에는 음흉한 빛이 돌았습니다.
“임해진 족장을 놓아주거라.”
남지 족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은 길을 열었습니다. 아버지와 병사들이 안전한 곳으로 나오자 월아는 남지 족장의 손을 뿌리치고 절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나, 낭자 왜 이러시오?”
남지 족장이 다급한 마음에 다가서려 하자 월아는 소리쳤습니다.
“더 가까이 오면 뛰어내릴 거예요!”
“월아야!”
임해진 족장이 갑작스런 상황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딸을 불렀습니다.
“아버지, 죄송해요. 이 모든 일이 저 때문에 벌어졌으니 저만 사라지면 해결되겠죠. 부디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분위기가 더욱 심각해지자 숲 속에 숨어있던 사달추수는 더는 이 상황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잠깐! 낭자, 이러시면 안 돼요.”
“아, 도련님. 더는 견딜 수가 없네요. 미안해요. 다음 세상에서 꼭 다시 만나요.”
월아는 몸을 절벽 아래로 뉘었습니다. 그 순간 사달추수도 벼랑 끝으로 달려가 뛰어내렸습니다.
“그래요. 우리 다음 세상에 꼭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아요.”
사달추수는 월아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월아의 눈에는 눈물이 하염없이 나왔습니다. 그 눈물은 사달추수의 얼굴에 닿아 번지고 다시 하늘로 뿌려졌습니다.
(다음주 3편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