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텔링)신동대전(傳)(7)
(지난 줄거리) 벽천대감이 전국에서 그러모은 뇌물을 왕실에 상납하는 과정에서 신동대 일행이 중간에 급습하여 모든 재물을 빼돌린 사건이 일어나자 의금부는 신동대 체포령을 내립니다. 의금부 종사관을 앞세운 체포조는 신동대가 거주하는 양산 ‘선행당’으로 들이닥칩니다.
여기서 신동대는 비무대회 때 결승진출을 양보했던 이몽란을 다시 만납니다. 이몽란과 한판 대결을 벌이면서 서로 대화를 나누는데, 일단 잡혀갔다가 심문을 받는 중에 벽천대감의 죄를 고변하면 어떻겠느냐는 이몽란의 권유가 현실성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신동대는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오라를 받습니다.
신동대는 의금부에서 심문을 받던 중 이몽란의 말처럼 벽천대감의 뇌물을 수수한 죄상을 고변하나 의금부도사는 억지라며 들은 체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강제로 죄를 인정하게끔 하려고 나장들을 시켜 몽둥이 고문을 가합니다. 그러나 신동대를 향해 내리친 몽둥이가 부러지고 화를 참지 못한 금부도사가 칼을 치켜들자 칼은 순식간에 뱀으로 변하는 등 신동대가 도술을 부려 의금부를 발칵 뒤집어놓습니다.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고 비리에 휩싸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관리들을 그렇게 혼내준 신동대는 비리의 몸통을 찾아 신형을 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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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대가 의금부 지붕 너머로 날아가 사라지자 모두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그중에 이몽란도 있었는데 지금까지 의금부도사의 신동대 심문 과정을 지켜보고 실망을 했습니다. 이몽란은 정의로워야 할 의금부 권력이 정의실현보다는 사사로운 관계에 얽매여 있는 것을 본 것입니다.
‘그래도 의금부라면 법을 집행하는 최고의 기관이지 않은가? 이곳의 금부도사라는 자는 사건의 경위를 조사해볼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로지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사건을 조작하려 하니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이몽란은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당장에라도 전립(무관이 쓰는 벙거지)을 벗어던지고 싶으나 쓸데없이 이목을 끌 이유가 없어 꾹 참았습니다. 며칠 후 이몽란은 양산으로 돌아오고 나서 사또에게 정중히 사의를 표시하고 관복을 벗고 평상복 차림으로 관청을 나섰습니다.
한편, 비리의 몸통을 찾아 떠난 신동대는 고대광실 너른 대저택에 도착했습니다. 이 집은 임금의 사촌 동생인 부은군의 집입니다. 2층으로 된 누각의 지붕 위에서 내려다보니 가옥이 스무 채는 넘었습니다.
신동대는 투시력을 이용해 집안의 물건들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신동대가 찾는 것은 재물을 보관해놓은 창고입니다. 가까운 건물에서부터 멀리 있는 건물까지 하나하나 살펴보았는데, 구석진 건물에선 부은군이 기생들을 불러 술판을 벌이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한참 둘러보다 신동대의 시선이 한곳에서 멈췄습니다. 재물 창고를 찾은 것입니다. 그곳엔 명나라에서 들여온 각종 비단과 동물가죽, 은그릇이며 금촛대,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등 귀한 물건들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날이 어둡긴 했지만 그렇게 늦은 시각이 아니어서인지 하인들이 일을 마무리하느라 마당을 분주하게 오갔습니다. 신동대는 오른손 검지를 펴서 하늘 높이 치켜들었습니다. 그러자 신동대의 손가락에서 회색빛 기운이 연기처럼 피어올랐습니다.
손가락을 창고 쪽으로 가리키자 그 기운은 뱀처럼 허공을 이끌어져 내려가더니 재물창고 문 앞에서 멈추었습니다. 기운의 끝은 또 가느다랗게 갈라져 뻗어나가더니 창고 자물쇠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잠시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자물쇠가 풀리고 창고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하인이 처음엔 창고 앞을 무심코 지나치다가 문이 서서히 열리는 것을 보고는 놀란 토끼눈을 하고 살금살금 창고에 다가갔습니다. 그땐 연기 같은 기운이 재빨리 창고 안으로 들어가고 난 뒤였습니다. 신동대 손끝에서 나온 기운들은 창고 안에서 각양 각종의 재물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그때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도자기 주위로 회색 연기가 스치고 지나가자 갑자기 도자기가 꿈틀꿈틀하더니 돼지로 변해버렸습니다. 또 비단 주위를 지나가자 비단은 뱀으로 변해버렸고 금속으로 만든 함은 두꺼비로 변했습니다. 순식간에 창고에 있던 재물들이 모두 동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때 밖에서 하인은 ‘누가 재물창고의 문을 열어놓은 거지?’ 혼잣말을 하면서 가까이 가다 문득 걸음을 멈췄습니다. 혹시 도둑이라도 든 것은 아닐까, 그러면 잘못하다간 괜히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겠다 싶어 뒤로 물러섰습니다. 그때 다른 하인이 마당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습니다.
“여보게, 차 서방!”
그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그 하인을 불렀습니다. 두 사람은 조심스레 창고 가까이 다가가 문을 살짝 열어젖혔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창고 안에서 돼지, 뱀, 오리, 개구리 등 온갖 짐승들이 밖으로 뛰쳐나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깜짝 놀란 두 하인은 그대로 창고에서 물러서면서 도망을 갔습니다. 창고에서는 동물들이 끝도 없이 빠져나왔습니다. 모퉁이를 돌아 몸을 숨기고 있던 두 하인은 바짝 긴장한 채로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습니다.
“저, 저것들이 대체 뭐야!”
“낸들 아나? 아침나절 김 대감에게서 온 물건들을 넣을 때까지만 해도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말이야. 갑자기 동물들이 왜 쏟아져 나오는지, 이게 무슨 조화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
재물창고에서 나온 동물들은 각기 출구를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밖으로 빠져나갔습니다. 하인들은 숨어서 동물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다가 재물창고에서 더는 동물이 나오지 않자 살금살금 걸어서 가까이 갔습니다. 문 안을 들여다보고는 두 하인은 더 깜짝 놀라며 다리를 후들후들 떨었습니다. 안에 있던 재물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몽땅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제야 두 하인은 고함을 치며 마당을 가로질러 별채로 달려갔습니다. 그곳에는 부은군이 늦게까지 기생을 옆에 끼고 술을 마시는 곳입니다.
“나리, 큰일 났습니다.”
차 서방이란 하인이 별채 앞에서 숨을 헐떡이며 소리쳤습니다.
“웬 소란이냐? 술맛 떨어지게.”
“나리, 누군가 재물창고를 모두 털어간 것 같사옵니다. 안에 있던 재물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졌습니다.”
“뭐야?”
큰일이란 소리에도 느긋한 표정이었던 부은군은 재물창고가 털렸다는 말에 흐트러진 저고리에 신도 벗은 채 재물창고로 달려갔습니다. 횃불을 붙여 안을 들여다보니 하인들의 말대로 비단 자락 하나 남김없이 모두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어이쿠! 어떻게 모은 재산인데….”
부은군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모으긴 백성들 피를 짜서 모았지!”
느닷없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부은군은 소리가 났던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하인들도 일제히 고개를 돌려보니 2층 건물 지붕에서 그림자 하나가 서서히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 덜컥 겁을 먹은 얼굴로 다가오는 그림자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림자가 가까이 다가와 형체를 나타내자 부은군이 버럭 화를 냈습니다. 아무리 눈속임으로 2층 지붕에서 사뿐히 내려왔다고 해도 이제 겨우 이십 대 초반의 나이의 곱상한 사내라 가소롭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네놈은 웬 놈인데 남의 집에 들어와 헛소리를 지껄이느냐?”
“나를 모르시겠소? 신동대 도사. 당신이 죄를 뒤집어씌워 죽이려 했던.”
“네놈이 그 신동대란 놈이냐? 마침 잘 만났다. 너 때문에 내가 입은 손해가 얼마인지 헤아릴 수가 없다.”
“당치도 않소. 오늘 부은군의 재산은 모두 어렵게 사는 백성들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 얼마나 보람된 일이오이까?”
그때 마당 한쪽 끝에서 날카로운 비수가 ‘슈숙’하고 날아들어 신동대의 귓불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순간적이고도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피하지 않았다면 비수는 신동대의 머리를 관통했을지 모릅니다. 신동대가 부은군을 상대하면서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그의 호위무사들이 암습을 시도했던 것입니다. 부은군과 하인들이 마당 한쪽 끝으로 물러서자 호위무사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고도의 검기가 느껴지는 고수들이었습니다. 신동대는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다섯 명의 호위무사들을 훑어보면서 불쌍하다는 듯이 말을 꺼냈습니다.
“이렇게 무예가 뛰어난 사람들이 할 짓이 없어 썩어빠진 관리의 밑이나 닦으며 사느냐? 찾아보면 얼마든지 의로운 일이 있을 터. 진정한 무예가라면 그 검을 의미 있는 곳에 쓰는 것이 마땅하거늘.”
“우린 돈에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정의니 의리니 하는 개뼈다귀 같은 소리는 집어치우고 우리들의 칼을 받아라. 얍!”
호위무사 중 한 사람이 신동대를 향해 검을 쭉 뻗었습니다. 신동대는 몸을 뒤쪽으로 바람에 깃털 날리듯 물러나며 부채로 검의 끝을 툭 쳤습니다. 캉! 호위무사의 검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사의 손에서 벗어나 땅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짱그랑!
이윽고 다른 무사들도 일제히 검을 날렸습니다. 모두 고수들이라 신동대는 이리저리 검기를 피하느라 공격할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휘리릭. 신동대는 그 자리에서 팽이처럼 몸을 회전하며 검기들을 물리쳤습니다. 카강캉캉! 신동대는 회전하면서 부채로 검 끝을 튕겨냈던 것입니다. 검 끝에서부터 시작은 검의 진동이 파동을 일으켜 손잡이에까지 이르자 무사들은 손목에 심한 통증을 느끼면서 결국 검을 놓치고야 말았습니다.
고수들은 공격을 더 잇지 못하고 뒤로 주춤 물러났습니다. 신동대는 팽그르르 돌던 신형을 서서히 멈추고는 뒷짐을 진 채 무사들을 향해 험악한 인상을 썼습니다.
“원래 나는 마음씨가 아주 고운 사람이나 내 충고를 무시하고 나쁜 놈을 위해 칼을 뽑는 자에겐 특별한 선물을 주니 감사히 받도록!”
신동대는 집게손가락을 세워 기를 모았습니다. 손끝에서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올랐습니다. 손가락을 무사들의 발을 가리키자 연기는 먹이를 공격하는 뱀처럼 쏜살같이 무사들의 발을 휘감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부은군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무사들의 발이 돌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으악!”
무사들은 멍하니 자신의 발이 주춧돌처럼 변해버린 것을 보고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뒤로 물러나려 발을 떼려는데 발이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겨우 한발을 떼었으나 쿵! 힘에 부쳐 그대로 발이 다시 땅에 떨어졌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무사들은 신동대에게 사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미처 몰라 뵙고 까불었습니다. 앞으론 우리의 무예를 좋은 일에 쓸 테니 부디 용서하시고 이 마법을 풀어주소서.”
신동대는 무사들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신동대는 고개를 돌려 부은군을 쳐다보았습니다. 부은군은 겨울철 사시나무 떨 듯 와드드드 떨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심하게 떨었으면 딱딱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다듬이방망이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신동대가 그를 향해 걸어가자 두 손을 비비며 애원하는 자세로 변했습니다.
“도사님, 제발 용서해주세요. 이렇게 싹싹 빕니다.”
“어이구, 부은군나리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밤이라지만 눈이 이렇게 많은데 왕실 어른이 체통이 있어야지요. 옷고름도 이렇게 풀어헤친 채 비루하게 용서를 비는 꼴이라니요?”
신동대는 부은군의 옷고름을 단정히 묶어주었습니다.
“이제 곧 석상을 변할 텐데 옷이라도 단정히 입고 있어야 지나가는 사람이 보더라도 손가락질은 하지 않을 거 아뇨? 내가 손가락을 치켜들면 최대한 멋있는 자세를 취하세요. 자, 하나 둘 세…?”
“아, 잠깐잠깐! 거, 도사님이 내게 원하는 게 뭡니까? 다 들어주겠소. 말씀만 하시오. 그러니 제발.”
부은군이 제 목숨은 아까운 줄 알아서 애면글면 사정을 하니 신동대도 못이기는 척하고 조건을 말했습니다.
“부은군의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나는 내 손금보듯 훤히 꿰뚫고 있소. 그러니 행여 속일 생각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오. 일단 가진 모든 재산을 국가 위민시설에 헌납하시오. 그리고 나리께서 거느리는 조정 대신과 관료들에게 일러 부디 청백리로 살아가도록 단단히 주의를 주시오. 만약 그것이 이행되지 않으면 나리의 몸은 서서히 석상으로 변해갈 것이오.”
그렇게 말하고 신동대는 손바닥을 펴서 부은군의 가슴에 대고 회색빛 기운을 삽입하였습니다. 부은군은 한동안 쿨럭쿨럭 기침을 하더니 그 자리에 쓰러졌습니다.
그러고는 신형을 날려 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무사들이 급박한 목소리로 애원했습니다.
“도사님, 우리들을 이대로 두고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마법을 풀어주셔야죠?”
“그렇게 사흘 동안 참회를 하여라. 그리고 마법이 풀리면 바로 양산 선행당으로 찾아오느라.”
신동대는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달빛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신동대가 사라진 후 부은군은 한 시간 만에 깨어났고 이튿날부터 한동안 재물을 밖으로 나르는 움직임으로 부산했습니다. 무사들도 사흘 후 마법이 풀어지자 부은군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양산으로 향했습니다.
신동대가 양산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몽란은 선행당으로 단숨에 달려왔습니다.
“신형, 큰일 났소이다. 왜군이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고 하오. 어제 부산포에 상륙해서는 파죽지세로 이곳까지 왔는데 우리 군은 아무 대비책 없이 밀리고만 있다 하니 어쩌면 좋소?”
“생각보다 빨리 침략을 시작했군요. 왜군에 대항하려면 관군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소. 10년 전 율곡 선생이 그렇게도 10만 군사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음에도 무시하고 준비하지 않더니 결국 힘든 상황에 부닥치게 되는군요.”
“관군만으론 되지 않으니 우리라도 나서서 싸워야 하지 않겠소?”
“당연한 말씀입니다. 나는 선행당 식구들을 중심으로 의병을 모을 테니 이형은 적의 이동경로를 파악해주시오.”
신동대는 막손과 살모사를 시켜 무예 기본은 갖춘 무사들을 한데 모았습니다. 모두 모으니 300명이 넘었습니다. 그중에는 용호칠웅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부은군 무사들도 뒤늦게 합류하였습니다. 또 신동대가 모은 의병에는 월향관 덕수도 끼어 있었습니다. 신동대는 이몽란과 함께 청도로 이동했습니다. 신동대와 이몽란의 의병부대는 왜군이 지나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기습작전으로 적을 궤멸시켰습니다.
왜군 선봉대가 청도전투에서 패하자 이 소식을 들은 왜군장수 고니시 유키나가는 대대병력을 이끌고 재공격을 해왔습니다. 수적으로 열세한 상황에서 의병부대는 목숨을 건 승부를 펼쳐야 했습니다. 산 아래에선 조총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 소리와 동시에 병사들은 연이어 앞으로 꼬꾸라졌습니다.
산 위에서 항전하던 의병들도 활시위를 힘차게 당겼습니다. 핑! 피핑! 조총을 들고 겨누고 있던 왜군들도 연이어 가슴에 활을 맞고 쓰러졌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조총과 활 공격이 오갔습니다. 하지만, 왜병의 수가 너무 많아 대항하기 역부족이었습니다.
신동대는 깊게 고민하는 성격이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신동대는 이몽란을 불러 일단 퇴각하라고 하였습니다. 더는 여기서 버텼다가는 모두 전사하고 말 것이 뻔하였던 것입니다. 이몽란 역시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이형은 일단 대구 쪽으로 가서 전열을 가다듬고 이동 경로를 파악해 잠복해 있다가 기습작전을 펴면서 왜적을 막으시오. 여기선 내가 있는 힘껏 막아볼 테니.”
“무슨 소리요? 신형 같이 갑시다.”
“여기서 시간을 벌지 못하면 얼마 못 가 우리 군이 전멸하고 말 것이오. 내 걱정은 말고 어서 대구로 떠나시오.”
신동대는 이몽란을 떠밀다시피 하면서 보냈습니다. 그때 중년의 의병 한 명이 신동대 가까이 왔습니다. 덕수였습니다. 그는 가만히 신동대를 쳐다보곤 살짝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처음 본 사람의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에 신동대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습니다.
“도련님, 이 전쟁이 끝나고 나면 꼭 어머니를 찾으세요.”
“도련님이라니요? 또 어머니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따당! 그때 다시 아래쪽에서 조총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머리 위로 총알이 지나갔습니다. 아군의 화살 공격이 없자 왜병은 잠시 공격을 멈추더니 다시 총을 쏘았습니다. 역시 산 위에서 아무 반응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고니시 유키나가는 총공격 명령을 내렸습니다.
“와아!”
왜병은 일제히 칼을 뽑아들고 접근해왔습니다. 신동대는 도술을 부려 주변의 돌맹이들을 공중에 띄워 올렸다가 손을 산 아래쪽으로 내쳤습니다. 그러자 돌멩이들이 화살로 둔갑해 쏘아져 날아갔습니다. 돌격해오는 왜군들은 무차별로 날아오는 화살에 다시 기겁하여 몸을 숙였습니다. 돌격을 소리치던 고니시 유키나가 역시 깜짝 놀라 입을 닫고는 몸을 숙였습니다.
“당신은 누구시기에 저를 알고 저의 어머니를 아신단 말이오?”
“전 선친의 호위무사 덕수라고 합니다. 어머니께선 지금 살아계십니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셨지요. 17년 동안 도련님을 찾아헤맸습니다. 이제야 찾게 되었는데 이렇게 전란을 맞게 되어 안타깝습니다.”
“어머니는 어디 계신가요?”
신동대는 덕수와 대화를 하는 중에서 도술을 부려 돌맹이 화살을 날렸고 큰돌은 포탄으로 둔갑시켜 쏘아댔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조선군 병력이 현재 자신의 병사들만으론 역부족이라고 판단하였는지 더욱 많은 병사들을 가담케 하였습니다. 신동대가 내려다보니 왜군들이 쥐떼처럼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이대로라면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신동대는 좀 전보다 더 강력하게 돌멩이와 바위를 쏘아댔습니다.
“마님은 제가 안전한 곳에 모셔드렸습니다.”
“그런가요? 제게도 어머니가 계셨군요. 사부님께선 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거라고 하셨는데.”
“이 전투가 끝나면 제가 도련님을 모시겠습니다.”
“네, 그래요. 어머니를 꼭 만나 뵙고 싶네요.”
신동대는 끝없이 밀려오는 왜군을 향해 마지막 공력까지 끌어올려 도술을 펼치며 대항했습니다. 왜군들은 산을 기어서 올라오면서 하나둘 쓰러져갔고 신동대는 지쳐갔습니다. 옆에서 덕수가 아무리 돌팔매질을 하더라도 한계가 있는 듯 보였습니다. 두 사람은 결심한 듯 큰 바위 위에 올라섰습니다. 덕수의 손에는 해룡검이란 칼이 쥐어져 있었고 신동대의 손에는 언제부턴가 부채 대신 금강도란 칼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왜군이 바로 바위 아래에까지 까맣게 몰려들었습니다. 신동대와 덕수는 서로 마주보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핫! 두 사람은 동시에 바위에서 신형을 날렸습니다. 해룡검과 금강도가 태양의 기를 양껏 머금은 듯 번쩍하였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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