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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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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경남이야기 전설텔링에 게재한 것입니다. 상상에서 탄생한 이곳의 배경은 천애절벽과 그 아래로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는 멋진 곳이지만 실상 4대강 사업을 하느라고 환경과 절경이 많이 파헤쳐졌고, 사람 편리하자고 옛 개벼리길을 깎아서 2차로 길을 내는 바람에 개벼리를 걷는 낭만은 없어졌습니다. 대신 이곳에는 자전거 동호인들이 간혹 무리지어 지나다니더군요.

 

전설을 취재하면서 줄곧 드는 생각이 이러한 이야기가 서려있는 곳은 옛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입니다.

 

 

(전설텔링)환생, 천년후애(千年後愛)(4-현장을 찾아서)
창녕 부곡 노리-임해진 개벼리에 얽힌 전설

     
창원으로 통하는 본포교가 있는 부곡 학포리에서 1022번 지방도를 따라 가다 보면 오른 편에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 하나 있습니다. 마을 입구에는 ‘노리마을’이라고 새긴 지명석이 있지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은 들판 가운데 놓인 길을 따라 제법 걸어가야 합니다. 들판에는 비닐하우스도 몇 동 보입니다. 마을까진 왕복 2차로 아스팔트길이 닦여 있습니다. 마을에 들어가면, 이 외진 곳에 집들이 의외로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들 어렵지 않게 사는지 집들도 현대식으로 잘 지어 살고 있습니다. 새로 공사를 하는 집도 있었습니다. 집을 짓느라 두드리는 망치소리, 외지인을 봐도 바로 쳐다보지 않고 먼산을 보면서 짖어대다 금세 딴일에 몰두하는 개, 그리고 바람소리. 마을은 양지바른 곳에 편안하게 누워 낮잠을 즐기는 고양이처럼 마을은 그렇게 평화로웠습니다. 이야기에선 주인공인 사달추수가 살았고 1000년 후 개로 환생해서 살았던 마을이지요.

 

 


창녕 부곡면 노리마을 전경.

 

노리 마을에서 상류 쪽으로 길을 따라 조금 가다 보면 웃곡너머골 마을이 나옵니다. 지난 3편에 나온 이야기의 주인공인 개들을 기념해 만든 개비석이 여기에 있습니다.  비석 앞에는 안내판이 있는데 여기엔 개비에 얽힌 이야기가 적혀있었습니다.

“옛날 임해진과 노리 마을에 성(姓)이 다른 두 마리의 개가 살고 있었다. 두 마리의 개는 서로 좋아하는 사이로 정(情)을 잊지 못해 임해진에서 노리마을로 매일 같이 험한 신길을 오고가며 정을 달랬다.

그러기를 여러번 왕래하고 보니 그 험하고 험한 산에 길이 생기고 말았다. 이 길이 있기 전에는 노리와 임해진을 오고가는 길이 없어 한없이 고생을 했는데 이들 개에 의해 산길이 만들어져 사람들의 불편을 덜어주었다.

개들이 뜻없이 한 일이지만 사람들은 개의 고마움을 잊지 못하여 비를 세웠는데 이를 개비라 전해져 오고 있다. 이곳 비석을 탁본하였으나 노후하여 글자를 식별할 수 없음이 매우 안타까우며 이후 이곳을 개비(犬碑) 또는 개로비(開路碑)라고도 불리어지고 있다.”

죽은 개를 위해 비석을 세우는 사례는 이곳 노리의 개비석 말고도 많이 있습니다. 주인이 술에 취해 잠들었을 때 주변에 불이 붙자 자신의 몸에 물을 적셔 불을 끄고 주인을 살린 얘기가 전하는 전북 고창 개비석, 전북 임실 오수개 비석 등등. 그리고 이러한 사례는 외국에도 있지요. 영화로도 제작돼 잘 알려진 일본의 하치코 이야기, 시부야역 앞에 개의 동상이 있다지요. 미국에서도 종종 충견의 묘비를 세우는 사례가 있습니다. 대개 주인을 위해 희생한 충견의 비석이 일반적인데 노리의 개비석은 개들이 서로 좋아해 만나면서 만든 길이 결국 사람에게도 이롭게 되었다고 해서 세워준 비석이라 특이합니다.

 

 


부곡 노리 옷곡넘어골 입구에 세워진 개비석과 무덤.

 

개비석은 노리 웃곡넘어골 입구인 1022호 지방도로 바로 옆에 세워져있습니다. 그래서 이 도로를 따라 자전거 하이킹을 즐기는 사람들이 오며가며 쳐다보게 됩니다. 지나다가 호기심이 일어 자전거를 세우고 개비석 가까이 가서 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냥 지나치는 이들도 있습니다. 알고 지나가는 이도 있겠고 모르고 지나가는 이도 있겠지요. 간혹 자기 주변에 아주 의미있는 유물이 있는 데도 전혀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사는 곳, 내가 가는 곳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사연을 알고 있다면 훨씬 마음이 풍족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낙동로 1022번길은 자전거 동호회의 단골 코스. 일단의 여성들이 낙동강 경치를 감상하며 자전거를 끌고 가고 있다.

 

이곳 지방도는 자전거 동호인들의 사랑을 꽤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최근 4대강 사업으로 대형 덤프의 왕래도 잦았던 길이기도 합니다. 이 길은 1987년 군부대에 의해 개설되었습니다. 개벼리가 있던 비탈길로 올라가다보면 ‘청학로 개설 기념비’가 나옵니다. 이 비석에 길을 만들게 된 배경이 적혀있습니다. ‘개벼리’라는 말은 개(강) 가의 벼랑(벼리 혹은 비리) 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개비리길이라고도 합니다.

 

“이 길은 태고에 부곡면 청암리(靑岩里)와 학포리(鶴浦里) 사이를 잇는 2㎞의 낙동강변 천애 절벽으로서 창녕군지에 명승지로 기록된 곳이며 사람의 왕래가 거의 불가능하였으나, 두 마을의 견공(犬公)들이 오랜 세월 짝을 찾아 오고가면서 자연스레 오솔길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주민들은 겨우 도보로 왕래하는 길이었다.

 

<개(犬)가 맨 처음 이 길을 열었다고 하여 부곡면 노리 822번지에 개비가 세워져 있다.>

 

이렇듯 수백 년 동안 교통 불편을 겪어 오다가 1986년 11월 육군39사단 1116야전 공병대가 군사작전 훈련용으로 시공하게 되었고, 이에 주민들이 경상남도와 창녕군에 건의하여 예산의 일부를 지원받았으며, 부곡면민들도 물심양면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민·관·군이 합심하여 새마을운동 당시의 정신으로 추진한 힘들었던 사업으로서 그 도로명을 청암리와 학포리의 이름을 빌려 청학로라 하였다.”

 

청학로 개설로 물류 운송이나 교통, 레저 활동에는 많은 이점을 안겨주었지만 절벽길을 따라 다니던 옛 정취가 사라졌음을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 개벼리길을 살리면서 공사를 할 수 없었을까 안타깝네요.

 

 

 


부곡면 청암리와 학포리를 잇는 청학로. 이 길은 육군 39사단에서 1987년 만들었다.

 

개벼리길이 있었던 길을 따라 임해진으로 넘어오면 먼저 ‘소우정’을 만납니다. 소우정은 조선 중기 학자인 소우헌(消憂軒) 이도일의 8세손 이승덕이 말년에 낙향해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도일은 문장과 덕행이 뛰어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았습니다. 17세가 되던 해에 정유재란(1597년)이 일어났는데 이때 부친의 의병에 가담해 곽재우를 도와 전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또 1636년 병자호란 때엔 군량미를 내고 의병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이후 여러 벼슬을 제수받았으나 모두 사양했답니다. 소우(消憂), 근심을 깨끗이 씻어낸다는 말인데 참 적절한 이름을 붙였습니다. 소우정에 서있으면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광활한 경치가 마음 속의 근심을 모두 씻기는 것 같습니다.


 

 

노리-임해진 사이 지방도를 따라 가다보면 낙동강의 잔잔한 흐름과 맞은 편 마을의 모습에서 평화로움을 느낀다.

 

 

 

소우정. 조선중기 학자 소우헌 이도일의 후손 이승덕이 밀양으로 낙향, 선조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로 이곳에선 드넓은 낙동강과 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소우정 바로 아래 강변은 임해진 나루입니다. 지금은 나루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곳은 옛날 해상교통과 물류운송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공사 전 이곳에 10여 가구의 마을이 있었다던데 지금은 사라지고 모두 도로가 되었습니다.

 

 


청학로를 따라 임해진에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으로 보이는 작은 마을.

 

비탈진 곳에 몇 가구 눈에 보입니다. 앞에 연재되었던 글에서 보면 임해진 족장이 부하들을 이끌고 도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뒤편 산으로 도피했다고 상상하시면 되겠습니다.

 

 


부곡 노리와 임해진 마을 지도.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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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전통춤입니다. 지역마다 춤의 양태가 조금씩 차이납니다. 워낙 넓은 땅이니까요. 이 동영상은 몽골 서북부 허워드 지역의 민속춤입니다. 경쾌한 음악에 손과 발의 놀림이 절도있고 빠릅니다. 이 춤을 춘 주인공은 서울서 공부를 하고 있는 홀랑거 씨였는데 이 춤을 대여섯 명의 몽골 여성이 함께 춘다면 아주 화려할 것 같군요. 몽골민속춤 감상해보시죠.


Монгол үндэсний бүжиг. Монголд нутаг нутгийн үндэсний бүжгийн төрлүүд байна. Үнэхээр том газар нутагтай болохоор тэр. Энэ бичлэг нь Монголын зүүн өмнөд хэсгийн Ховд нутгийн бүжиг юм. Маш түргэн хөгжимд гар хөлөө маш хурдан хөдөлгөж бүжиглэдэг бүжиг. Энэ бүжгийн бүжигчин нь Сөүлд дээд сургуульд сурдаг Хулангоо гэдэг охин бүжиглэсэн бөгөөд энэ бүжгийг 6 хүн хамт бүжиглэдэг болно. Монголын нутаг нутгийн бүжгээс танилцана у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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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로 환생한 연인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세 번째 글입니다. 간혹, 우리집 아이가 심각한 표정을 하고서 가까이 다가와 "아빠, 귀신이 있다는 거 믿으세요?" 합니다. "했던 말 또 한다"고 버럭 화를 내지만 아이는 진짜 귀신이 있는 것 같다고 또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냅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귀신은 없다!'고 외쳐도 티비에서도 귀신이 나오고 친구들도 귀신을 봤다는 이야기를 하지 믿지 않을 도리가 없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이야길 하면 '씰데없는 소리'로 치부받으니 늘 헷갈리는 것이지요.

 

너무 쉽게 물러서면 체면이 서지 않아서인지 모르나 또 슬그머니 질문을 하나 꺼내놓습니다.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고 보세요? 없다고 보세요?" 예전보다 정제된 질문입니다. 예전엔 "아빠, 사람에게 영혼이 있어요, 없어요?"했으니까요.

 

그러면 아이에게 되묻지요. "너는 개에게 영혼이 있다고 보니 없다고 보니?" 그렇게 묻고는 한술 더 뜹니다. "그러면 개미에게 영혼이 있다고 보니, 없다고 보니?"

 

아이는 다시 멘붕에 빠집니다. 개까지는 몰라도 개미에게 영혼이 있니 없니 하는 건 생각도 못 해봤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니가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으면 개미에게도 영혼은 있다.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된다면 개미도 죽어서 귀신이 된다."고 말이죠.

 

이번 전설텔링 환생이야기 3편 신라시대 사달추수와 월아낭자가 조선 중기에 다시 태어나 만나서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전 환생을 믿지 않습니다만 이러한 환상여행은 늘 재미있고 정신의 안식을 주는 것 같습니다. 사회비평서보다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나의 그 성향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즐감하시기 바랍니다.

 

참, 삽화를 그리는 아들은 요즘 시험기간이라 신경이 곤두서 있네요. 마음에 안 들면 몇 번이고 '빠꾸' 시켜서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리도록 했는데... 이번엔 좀 아쉽지만 그대로 싣기로 했습니다.

 

 

(지난 줄거리) 오랜 옛날, 창녕 부곡 노리에 사는 청년 사달추수는 하류 쪽을 가던 배의 뱃머리에 선 월아를 처음 보고 표정이 밝지 않음을 느낍니다. 그 배가 하류에서 돌아오는 길에 폭풍우를 만나 전복되고 월아는 물에 빠져 숨질 위기에 처합니다. 추수한 나락을 정리하러 나갔던 사달추수가 이 현장을 발견하고 빗속을 뚫고 헤엄쳐서 월아의 생명을 구합니다. 이틀 후 월아의 아버지인 임해진 족장이 월아가 싫어하는 남지 족장을 데리고 사달추수의 집으로 옵니다.

 

사달추수는 처음 본 남지 족장의 표정과 태도에서 거부감을 느낍니다. 월아는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 사달추수의 집에 머물며 물에 떠내려가 사망한 유모의 시신도 수습합니다. 임해진으로 돌아온 후에도 월아는 두 마을 사이에 있는 험한 산을 오가며 사달추수와 만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임해진 족장은 남지 족장의 요구에 못 이겨 임해진에서 잔치를 엽니다. 남지 족장은 여기에서도 월아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자 행패를 부립니다. 마침내 임해진 병사와 남지 병사 간에 싸움이 일어나고 수세에 몰린 임해진 족장은 병사를 이끌고 산으로 대피하게 됩니다.

 

이때 잔치소식을 이미 들어 알고 있던 사달추수가 걱정이 되어 산으로 왔다가 이러한 상황을 발견하고 숲에 숨어서 지켜봅니다. 한편, 월아는 병사들의 뒤를 따라 산으로 올라갑니다. 절벽 끝에서 남지 족장에 의해 사지에 몰린 아버지와 병사들을 발견하고 남지 족장에게 그만두라고 소리칩니다. 수세에 몰린 아버지를 구해내고 자신은 절벽에서 몸을 던집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사달추수도 함께 절벽을 뛰어내리며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다음 생에서 꼭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자고 약속합니다.


그 일이 있고서 천 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조선 중기쯤 되는 시기입니다. 부곡의 노리마을은 이때에도 풍년이 들어 사람들이 궁핍하지 않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서로 왕래가 끊어졌던 이웃 임해진 마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보름달이 하늘 가운데 휘영청 떠 있던 어느 날, 하늘에서 묘한 기운이 감돌더니 흰색과 노란색을 번갈아 띠던 보름달이 조금씩 검게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보름달이 모두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달 주변에 있던 아주 희미한 빛이 길게 띠를 이루며 노리와 임해진 사이 절벽으로 떨어졌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두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신기해했습니다.


이때 노리와 임해진, 두 마을에는 동시에 강아지가 태어났습니다. 노리에는 농부 박 씨 집에서 키우던 황구가 새끼 5마리를 낳았고 임해진에는 찰방 벼슬을 지내던 신 씨 집 백구가 2마리를 낳았습니다. 황구가 낳은 새끼 5마리 중에 맨 마지막에 나온 놈은 수컷인데 다른 강아지와는 달리 덩치도 컸으며 아주 건강했습니다. 백구의 새끼 중에서도 먼저 나온 강아지가 암컷이었는데 유난히 예쁘고 건강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서 2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남지에 큰 장이 서는 날이었습니다. 농부 박 씨는 2년 된 막내 황구를 데리고 남지장에 갔습니다. 황구는 태어나고서 처음으로 주인을 따라 장에 나간 것입니다.


황구는 사람들의 다리 사이로 지나다니며 시장을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괭이며 호미, 낫 등 농기구와 고기며 생선이며 먹을거리를 사는 박 씨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황구는 낯선 시장의 풍경을 눈에 담았습니다.


식당이 즐비한 거리를 지날 때였습니다. 황구는 이상하게도 가슴이 자꾸 뛰는 것을 느꼈습니다. 주인이 식당에 들러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자기에게 줄 것이라고 해서 이렇게 두근거리지는 을 텐데 말입니다. 황구는 박 의 뒤를 따라 고개를 숙이고 걸었습니다. 앞으로 더 걸어나갈수록 심장박동이 더 거칠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하얗고 부드러운 털을 가진 개가 어떤 남자의 옆에서 꼬리를 흔들며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황구는 숨이 멎는 듯 꼼짝하지 못하고 백구를 쳐다보았습니다. 백구 어느 순간엔가 흔들던 꼬리를 내리고 걸음의 속도를 줄였습니다. 백구도 이상한 느낌을 감지했습니다. 백구도 갑자기 숨이 가빠옴을 느꼈습니다.


‘왜지?’

백구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을 때 그 시선의 끝에는 건강하고 멋있게 생긴 황구가 서 있었습니다. 서로 눈빛이 교차했을 때 황구와 백구의 머릿속에서 어떤 낯설고 묘한 영상이 주마등처럼 번쩍번쩍하며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황구와 백구는 서로의 눈 속에서 아주 익숙한 장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인간으로 살면서 둘이 함께 절벽에서 떨어지는 모습입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우리 다음 생에 꼭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아요.’

‘그래요. 백 년이 흐르든, 천 년이 흐르든, 그때가 언제가 되었든 꼭 다시 만나요.’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듯하지만 너무나 뚜렷한 기억이 망막에 맺히자 황구와 백구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시장 한복판에서 개 두 마리가 서로 마주 보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기며 지나갔습니다.


스무 걸음 이상을 걸었는데도 개가 뒤따라오지 않자 박 씨와 신 씨는 지나왔던 길로 되돌아왔습니다. 이들은 개 두 마리가 너무 심각한 듯 서로 바라보고 있었기에 당장 어떻게 끌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낭자?”

“사달추수님, 이렇게 만나는군요.”

“낭자가 틀림없구려. 사람의 모습이 아니면 어때요. 이렇게 만났으니 다행인 거지요.”

“사달추수님은 어디에 사시나요?”

“노리에 있는 박 씨 집에서 살아요. 낭자는…, 혹시 임해진에?”

“네, 임해진 신 씨 집에 살고 있지요.”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흐른 지 모르지만 서로 태어난 곳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려.”


개 두 마리가 소곤소곤 속삭이듯 소리를 내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박 씨와 신 씨는 계속 두고 싶어도 시간이 촉박해 어쩔 수 없이 자기 개에게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박 씨가 황구의 목을 톡톡 쳤습니다.

“황구야, 가자.”

신 씨도 백구의 목을 살짝 두드렸습니다.

“백구야, 가자.”

그래도 서로 마주 보고 있던 개들이 꼼짝도 하지 않자 박 씨와 신 씨는 허허하고 웃었습니다.

“개들이 서로 눈이 맞은 모양입니다.”

박 씨가 말했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지금까지 어지간한 수컷은 만나더라도 본체만체 하던 놈이…, 댁의 황구는 마음에 드나 봅니다. 허허허.”

신 씨가 대꾸를 하자 박 씨도 한마디 더 합니다.

“이참에 우리 개 사돈을 맺을까요? 하하하.”

초면인 박 씨와 신 씨는 개 때문에 서로 어색한 만남이 일어지자 농을 주고받았습니다.

사달추수와 월아는 세상에 다시 태어나 처음 만났지만 자신들의 의지로 오랫동안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쩔 수 없네요. 우리 전생에서 만나던 곳에서 다시 만나요.”

월아가 사달추수에게 말했습니다. 사달추수는 머릿속에 절벽길을 떠올렸습니다.

‘아, 그곳!’

박 씨와 신 씨를 따라 황구백구는 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날 밤이 되자 개의 모습을 다시 태어난 사달추수와 월아는 서로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났습니다. 마침 거울같이 밝은 보름달이 휘영청 떠있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달이 더욱 훤하게 빛나자 달을 통해 서로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잠들 시각이 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노리와 임해진 사이에 있는 그 험한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길은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서 그런지 예전의 모습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나무도 풀도 전혀 다른 것들이었습니다. 둘은 전생의 기억과 감에만 의지한 채 산을 올랐습니다. 한 걸음 두 걸음 산을 오르다 보니 길은 없어도 서서히 발을 내딛는 장소마다 익숙해짐을 느꼈습니다. 고개를 하나씩 넘고 산 중턱에 올라섰을 때엔 둘은 천 년 전과 똑같은 기분으로 돌아갔습니다.


절벽에 다다랐을 때 멀리 서로의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전생에 만나던 장소에서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니 둘은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월아낭자!”

“사달추수님!”

애틋한 목소리가 고고한 달빛에 스며들었습니다. 둘은 절벽 끝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서로 사랑을 확인했습니다.

절벽 아래엔 낙동강 물이 달빛을 받아 조용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황구와 백구가 된 사달추수와 월아낭자는 그 후로도 매일 밤마다 서로 산에 올라 사랑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다음 주엔 황구와 백구가 된 사달추수와 월아낭자의 이야기 배경이 된 현장으로 찾아갑니다. 기대해주세요.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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