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텔링)신동대전(傳)(3)
(지난줄거리) 3살 때 떠돌이였던 운암도사에게 맡겨진 신동대는 영축산 기슭 바위굴에서 운암과 함께 기거하며 17년 동안 도술과 무예를 익히며 살았습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운암은 신동대에게 하산하라고 합니다. 세상에 나가서 새로운 삶을 살라는 것이지요.
스승과 마지막 대련을 끝으로 하산한 신동대는 양산읍내에서 시정잡배인 막손이패를 만납니다. 막손은 신동대에게서 촌티가 나자 호락호락하게 여겨 가진 것을 빼앗으려 듭니다. 하지만, 신동대는 막손이패를 하나 둘 힘도 들이지 않고 쓰러뜨리자 한꺼번에 협공을 펼칩니다. 그래도 역시 신동대를 당해내지 못합니다. 막손이마저 신동대의 손가락 끝에 맥도 못 추고 나가떨어지자 무릎을 꿇고 자신과 부하들을 거둬달라고 애원합니다.
막손이 일파를 동생으로 거두기로 한 신동대는 그들이 나쁜 짓을 더는 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다 비무대회가 있어 참가하게 되는데 승부조작을 요구하며 돈으로 심판을 매수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됩니다. 신동대는 자신이 벼슬길에 나서는 것보다 정직하고 무예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무대회 준결승에서 만난 이몽란에게 결승진출을 양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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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형님!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 상대인데 왜 포기하십니까?”
“저 양반, 앞으로 큰일을 할 사람이다.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그러는 것이니 너희들은 잔말 말고 따라오느라.”
신동대는 막손과 부하들을 데리고 ‘선행당(善行堂)’으로 돌아왔습니다. 선행당은 신동대가 막손이 패거리가 사용하던 움막 같은 집에 붙인 이름입니다. 앞으로 착한 일을 하면서 살라는 의미를 담은 택호입니다. 신동대가 처음 집 이름이 ‘선행당’이 어떠냐고 제안했을 때 반발이 만만찮았습니다. 유치하다부터 시작해 다른 패거리들에게 무시당하기 좋은 이름이다, 우리 같은 왈패에게 선행이란 말이 어울린다고 보느냐 등등. 하지만, 이런 논란도 신동대의 한마디에 쏙 들어가고 말았다.
“싫은 사람은 떠나라!”
그렇게 해서 정해진 이름이 선행당입니다. 신동대는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막손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와 시장의 흐름을 바탕으로 급속도로 사회구조를 파악해나갔습니다. 그 절정에서 현장 목격한 것이 비무대회의 심판매수 사건이었습니다. 관리들의 비리가 가장 정정당당해야 할 비무대회까지 엮여 있으니 다른 이권관계에 있는 사안들에는 오죽하랴 싶었습니다.
“자, 모두 이쪽으로 모여라.”
신동대는 짧게 한마디 하고 손끝으로 ‘딱!’ 소리를 내었습니다. 신동대의 한마디에 막손과 부하들은 순간이동을 한 듯 탁자에 모여앉았습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할 일이 좀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쭉 지켜본바 읍내 상인들을 보호한답시고 형성된 검계(劍契) 용호칠웅(龍虎七雄)과 고을수령 간에 이루어지는 모종의 거래를 파헤쳐봐야겠다. 너희들은 검계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가 관아의 사람과 접촉이 있거든 즉시 내게 알려야 한다.”
“그러면, 그, 그 현장을 우리가 확 덮쳐서 고, 공을 세우는 건가요? 두목?”
뚱보 막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막손의 알밤이 막내 머리에 떨어졌습니다.
“아야! 왜 때려요? 두목…? 아니, 형님!”
“야, 이 녀석아! 칼도 없고 무공도 일천한 우리가 무슨 수로 용호칠웅을 상대로 싸우겠느냐? 다 우리 도사 형님께서 알아서 하실 게다.”
막손은 은근히 신동대에 대한 불평을 실어 막내를 타박했습니다. 신동대를 형님으로 모신지 벌써 2주째가 되었지만 단 한 번도 도술이나 무예를 가르쳐주지 않은 것을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용호칠웅, 관군으로 활동하다 각종 비리로 쫓겨나고 나서 저희끼리 조직을 형성하고 수준에 맞지 않은 이름을 스스로 붙인 게 ‘용호칠웅’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자존심이 강해서 남들이 이름 가지고 약간 들먹거리기만 해도 떼로 몰려가 패악질을 해대었습니다. 그래서 상인들이 사실 시정잡배일 뿐이지만 이들 앞에선 입도 벙긋 못하였습니다. 신동대가 보기엔 오합지졸에 불과하지만 막손과 동생들이 그들을 상대할 일도 있겠다 싶어 기본 초식 정도는 가르치기로 했습니다.
“알겠다. 너희도 무예를 배워놓으면 써먹을 데가 있겠지. 하지만, 그것을 나쁜 일에 써먹는 즉시 목숨을 내어놓아야 한다는 것을 한시라도 잊으면 안 될 것이야.”
“넵! 알겠습니다. 사부님.”
막손이 가장 좋아하였습니다. 다른 동생들도 ‘앗싸!’하며 좋아하였습니다. 신동대는 매일 파루를 치는 오경인 새벽 인시(4시)가 되면 동생들을 깨워 산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며칠 간은 자신들도 무예를 닦는다 생각해서인지 힘든 훈련을 잘 극복하는가 싶더니 며칠 되지 않아 도저히 못 하겠다며 엄살을 부렸습니다.
그러나 막손은 신동대가 가르치는 대로 아무리 어려운 훈련이라도 잘 소화해내었습니다. 제대로 배우지 못해 그렇지 막손에게는 무공을 받아들이는 기가 있었습니다. 막손은 매일 하루가 다르게 무공을 익혀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장을 둘러보고 있던 막내가 숨을 헐떡거리며 선행당으로 달려왔습니다.
“막손이 형님, 용호칠웅 아이들이 시장에서 난동을 부리고 난리예요.”
‘이 녀석들 또 시작이군!’ 막손은 짧게 한숨을 쉬었습니다. 사실 막손일파와 용호칠웅 간에는 시장 상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각종 이권에 개입하면서 서로 일종의 경쟁관계를 형성해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쟁관계라고 해도 주먹패인 막손이파는 검을 지니고 다니는 용호칠웅에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마침 신동대가 자리를 비운 터라 막손이 동생들을 데리고 시장으로 달려갔는데 이미 용호칠웅이 온통 들쑤셔놓고 간 뒤였습니다. 상인들의 이야기로는 지금까지 거둬가던 보호비 명목의 회비를 일방적으로 두 배나 올리더니 그 처사가 잘못되었다고 반발하자 이런 난동을 부렸다는 것입니다.
막손은 상인들의 사정을 모두 듣고 돌아와 신동대에게 낱낱이 전했습니다. 신동대는 용호칠웅과 관아 사이에 분명히 뭔가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갑자기 용호칠웅이 회비를 두 배나 올린 것은 급하게 돈이 필요했다는 이야기이며, 급히 큰돈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뭔가 큰 이권이 생겼다는 얘기였습니다.
신동대는 직접 용호칠웅의 뒤를 밟기로 했습니다. 신동대는 그날 밤 막손과 함께 용호칠웅의 본거지 인근에서 잠복을 하였습니다. 땡, 땡, 땡…. 어디선가 인경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통행금지 시각인 해시가 된 것입니다. 그러자 용호칠웅의 근거지인 주택 문이 열리면서 우두머리인 오지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주변을 몇 번 두리번거리더니 그는 빠른 걸음으로 몸을 움직였습니다.
신동대와 막손은 들키지 않게 멀찌감치 떨어져 미행하였습니다. 오지곤이 들어간 곳은 이미 영업을 끝내고 문을 닫은 읍내 제일 기방인 월향관(月香館)이었습니다. 오지곤이 대문 앞에서 몇 번 헛기침을 하자 대문이 삐걱하고 열렸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나리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용호칠웅의 우두머리 오지곤은 월향관 시중 아이의 안내에 따라 안쪽 기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 돈은 준비했는가?”
이렇게 묻는 사람은 다름 아닌 관아 형방이었습니다. 형방은 관내 폭력사건을 주로 담당하다 보니 자연히 용호칠웅 패거리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된 것이지요. 형방은 문 앞에서 주춤거리며 서 있는 오지곤을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말씀하신 것만큼 준비하지는 못했습니다. 상인들이 갑자기 반발을 하는 바람에….”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형방은 노기를 띠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상인들을 다루는 실력이 없고서야 어찌 이번 일을 맡아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내 자네를 다시 보아야겠네.”
“어르신, 그 돈은 조만간 해결이 될 것입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번 명나라에서 들어오는 밀수품들이 정상 수입된 것으로 처리만 해주신다면 두고두고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좌정하시고 소인의 구체적 계획을 들어보시지요.”
형방은 조만간 큰돈이 생긴다는 기대에 속으로는 좋아하면서도 겉으로는 내심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고는 도포 자락을 뒤로 한 번 홱 쳐올리고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일단 이 돈부터 받으시지요. 선금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누가 돈 때문에 이러는가? 일을 진행하다 보면 이리저리 돈이 들어가는 구석이 많긴 하지만, 나야 자네의 수완을 높이 사고 있는 터. 자네가 우리 지역에서 새로운 거상 자리를 꿰차고 시장질서를 바로잡아 준다면 나라를 위해서라도 좋은 일이기에 내가 이렇게 발벗고 나서는 것 아닌가? 으흠.”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펑!’하는 소리와 함께 도사복을 입은 젊은이와 왈패인 막손이 눈앞에서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도사복을 입은 젊은이는 다름 아닌 신동대였습니다. 형방과 오지곤은 아직 신동대의 존재를 알지 못했습니다. 너무 놀라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형방과 오지곤을 향해 막손이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통금 시간도 한참 지났고 모두 잠자리에 들 이 야심한 시각에 두 분이서 거금을 주고받으며 무슨 작당 모의를 하시나, 그래?”
“이놈이 어느 안전이라고?”
용호칠웅 오지곤이 칼을 빼려는 순간, 신동대가 손가락 끝에 도술을 걸어 지풍을 날렸습니다. 그러자 나오려던 검이 다시 철컥하고 들어가서는 오지곤이 아무리 용을 써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신동대는 다시 한 번 형방과 오지곤에게 지풍을 날려 혈을 눌렀습니다. 두 사람은 얼굴이 붉어지면서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던 막손이 더 의기양양해하여 뺀질뺀질한 목소리로 약을 올렸습니다.
“안전은 강아지뿔! 안전 좋아하고 있네. 이제 너희들 불안전이야. 다 죽었어. 너희들 밀수한다는 거 다 들었거든. 이분이 누구냐면, 신동대 도사님이시다. 너희들을 혼내주러 온!”
“원, 원하는 게 무엇이오?”
“우리가 원하는 건 바로 이런 짓거리를 한 놈들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몰지각한 관리들의 비리 때문에 백성은 힘들어하는데, 이런 식으로 비열한 짓을 한 자들이 부자가 된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이지.”
신동대는 형방을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일갈했습니다. 읍내 최고 고수라는 오지곤도 신동대의 술법에 꼼짝하지 못하자 형방은 상황을 알아차렸는지 그 자리에서 바로 꿇어앉았습니다.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딱 한 번 눈감아주시면 반드시 청렴한 관리가 되겠습니다.”
“좋아, 일단 믿어주지. 내일 밀수품에 대한 처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고 제대로 하지 않을 시 이 돈과 밀수품들은 그 이튿날 백성들 앞에 공개될 것이다.”
신동대와 막손은 그들을 그대로 두고 밖으로 나섰습니다. 월향관에서 선행당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작은 언덕을 하나 넘어야 합니다. 신동대와 막손이 언덕 초입에 들어섰을 때 주변에서 인기척이 일었습니다.
“형님, 누군가 매복해 있는 것 같습니다. 살기가 흐르는 것으로 보아 한두 놈이 아닙니다.”
“하하. 막손이 너 많이 늘었구나. 벌써 그런 기를 터득하다니. 걱정 마라. 모두 형편없는 무예를 지닌 자들이다. 용호칭웅 애들 다시는 그런 짓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형방과 오지곤을 봐준 거야. 죄가 더 커진 만큼 이젠 용서를 구하기도 어렵게 되었으니까.”
언덕 위, 개활지로 나서자 복면을 쓴 여섯 명이 칼을 빼어 들고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막손은
“꼼짝 마라. 너희 두 놈, 오늘 여기서 죽어줘야겠다.”
“인명은 재천! 너희들이 원한다고 모두 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상대를 죽이려고 들이댄 놈들이 비겁하게 복면이 뭐냐? 용호칠웅 중 오지곤을 뺀 나머지 떨거지인 줄 알고 있으니 답답하게 베쪼가리 뒤집어쓰고 있지 말고 냉큼 벗거라.”
복면 무리는 내심 깜짝 놀라며 서로 눈치를 살폈습니다. 어떻게 알았지? 하는 거겠지요. 그러다 그 중 한 명이 복면을 벗으며 한 발 나섰습니다.
“용케도 우리가 누군지 알았구나. 그렇다면, 더욱더 살려둘 수 없는 목숨이다. 바로 저승사자를 만나게 해주마. 애들아, 쳐라!”
용호칠웅의 여섯 사내가 일제히 신동대와 막손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습니다. 사대들의 손에 든 검이 달빛에 번쩍이며 거침없이 다가오자 막손은 바짝 긴장했습니다.
“긴장할 것 없다. 녀석들의 움직임만 잘 관찰하거라. 그러면 검의 흐름을 미리 알 수 있을 것이다. 상대의 검을 한 번 피하고 나면 바로 근접 공격을 해야 할 것이다. 두 놈은 니가 맡을 수 있겠지?”
“예, 형님. 두 놈이야 식은 죽먹기죠.”
막손은 신동대가 시키는 대로 검의 일초식을 피하고 즉시 상대에게 몸을 바짝 붙여 주먹을 날렸습니다. 상대도 예상치 못한 공격이라 막손의 일격에 그만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습니다.
“크윽. 동네 불량배 정도인 줄만 알았더니 제법 무공을 쓸 줄 아는구나.”
“이 정도를 무공이라 하는 걸 보니 니놈 실력을 알겠다. 퍼뜩 일어나서 한 번 더 덤벼봐!”
막손은 더욱 큰소리쳤습니다. 막손과 등을 지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신동대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그려졌습니다. 그때 용호칠웅 여섯 명의 공격이 일시에 이루어졌습니다. 막손은 신동대가 가르쳐준 대로 신형을 유지하며 공격을 펼쳤고 신동대 역시 쏟아지는 검 끝을 손에 쥐고 있던 부채로 탁탁 쳐내며 공격을 막았습니다. 신동대의 부채방어술은 단지 방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격해오던 칼끝이 부채에 튕기면서 사내들의 몸까지 멀리 튕겨 날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용호칠웅 여섯 사내가 몇 번을 공격해보아도 신동대와 막손을 당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외상과 함께 내상도 상당히 입은 터라 더는 공격을 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물러섰습니다.
“두고 보자. 선행당 너희들을 가만두지 않겠다.”
“두고 보자는 놈치고 겁쟁이 아닌 놈 없다지! 아이놈들아, 겁먹은 똥개처럼 꼬리를 빼지 말고 어디 다시 한 번 덤벼봐! 하하하.”
막손이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쯤에 용호칠웅 패거리는 벌써 막손의 목소리가 들릴락말락 한 거리만큼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신동대와 막손은 다시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때 숲속에서 신동대와 막손의 뒷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는 그림자가 있었으니…. (다음 주 4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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