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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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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2편으로 끝내려고 했던 똑딱귀신 이야기가 처음 의도와 달리 3편으로 마무리됐다. 기존 스토리에 다른 옷을 입히는 일은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만큼 어렵지는 않다. 뼈대가 있으니 갈등을 할 필요도 없다. 원 스토리의 핵심을 잘 파악하고 이야기 플롯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어 '왜?'라는 단어 하나만 적용하다 보면 스토리 새롭게 보기가 쉽게 이루어진다. 그런데 간혹 쉽게 전개되지 않을 때 도덕적 고민에 빠진다. 이미 나간 글에 손을 댈 것이나 말 것이냐.





(지난 줄거리) 방앗간을 하는 만복은 고개 너머 마을에 갔다가 친구 천석과 함께 밤늦도록 술을 마십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만복은 돌아오는 길에 고갯마루에서 귀신을 만납니다. 귀신은 자신의 서방님을 혹시 마을에서 본 적이 없느냐고 하는데 만복은 너무 놀란 나머지 기절합니다. 다음날 깼을 때 그곳에서 돌호박을 발견하고 방앗간으로 가져갑니다.


그날 방앗간에 손님이 많이 찾아와 바쁘게 보낸 만복 부부는 일찍 잠자리에 듭니다. 자정쯤 방 밖에서 “똑딱, 똑딱” 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방문을 열어보니 전날 밤에 보았던 똑딱귀신이 서 있습니다. 똑딱귀신은 자신의 남편을 찾아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사연을 이야기합니다.


석수장이인 남편 석근은 경남 창녕으로 일을 떠납니다. 병에 걸린 아내 혜정을 치료하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6개월 후 돌아온다는 약속을 했지만 일은 기한을 넘기고 맙니다. 석근과 함께 일하는 장 서방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6개월 하고도 열흘이 지난 날 석근은 이상한 꿈을 꿉니다. 아내가 갈라진 묘지 사이로 들어가는 꿈을 꾸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김 대감에게 고향에 잠시 다녀오겠다며 삯을 반이라도 쳐달라고 합니다. 일은 돌호박 하나만 남겨놓은 상태입니다.


김 대감은 6개월치 삯을 모두 주면서 고향에 잘 다녀오라고 합니다. 고향에 돌아온 석근은 마을 입구 당산나무 아래에서 아내 혜정을 만납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동네 형들이 찾아와 아내가 없어졌는데도 찾지도 않느냐는 얘길 합니다. 그때 다시 방안을 들여다 본 석근의 눈에는 방금까지 있던 아내가 사라지고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석근은 뒷마당에서 돌무덤을 발견하게 되고 동네 형들이 그건 부인의 무덤임을 일러줍니다. 맨손으로 돌을 들어내고 관에 누운 아내를 발견한 석근은 늦게 돌아온 것을 자책하며 통곡을 합니다. “늦어서 미안해!” 하고 말이죠.


. . . . . . . . . . . .


“남편은 동네 뒷산 양지바른 곳에 저를 고이 묻어주고 정성껏 장사를 치러주었어요. 하늘로 향하는 길이 그때 열렸지요. 아름다운 길이었어요. 양쪽엔 꽃들과 나비, 새들이 가득했어요. 하늘나라로 가야 하는데 저는 차마 가질 못했어요. 너무 슬퍼하는 남편에게 한 번 더 모습을 보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요. 그런데 남편은 장례가 끝나자마자 떠나버렸답니다. 귀신은 자신의 시신이 있는 곳에서 멀리 갈 수 없기 때문에 남편을 따라 가지도 못했지요. 그 이후론 소식이 끊어졌답니다.”


똑딱귀신의 이야기를 듣던 만복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만복의 부인도 참 안 됐다는 표정으로 더 가까이 다가와 앉았습니다.


“남편은 저를 너무나 사무치게 그리워하면서 돌호박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제 영혼이 돌호박에 스며들게 된 것은 그 때문이겠지요.”


똑딱귀신의 추측은 정확했습니다. 당시 아내의 장사를 치른 석근은 눈물을 훔치면서 창녕으로 돌아왔답니다. 석근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리라 생각을 하고 살던 집과 땅을 모두 처분하였습니다. 김 대감에게 모든 사실을 고한 석근은 돌호박 만들기에 전념했습니다.


“똑딱! 똑딱!”


돌을 쪼는 석근의 망치소리는 경쾌하다기보다 처량했습니다. 똑딱, 똑딱 망치소리는 그날 자정이 다 되도록 온 마을에 울려 퍼졌습니다. 김 대감이나 동네 사람들도 석근의 사연을 들은 터라 다 자야 하는 밤에 망치질을 하더라도 이해를 하였습니다.


자정쯤이었습니다. 석근은 마지막으로 돌호박을 다듬었습니다. 이미 석근의 눈물은 돌호박을 흠뻑 적셨습니다. 달빛에 돌호박이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여보, 미안해. 보고 싶어.”


흐느끼면서 석근은 돌호박을 꼭 껴안았습니다. 그때 돌호박에 연푸른색을 띤 은은한 빛이 감돌았습니다.


“헉!”


짧은 비명과 함께 석근은 돌호박 옆으로 꼬꾸라졌습니다. 뒤에서 누군가가 몽둥이를 휘둘렀던 것입니다. 검은 그림자는 석근을 들쳐 메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돌호박에선 석근의 아내 혜정이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돌호박에서 남편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돌호박에서 혼령이 다 빠져나왔을 때 혜정은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그림자를 발견했습니다. 누군가를 어깨에 메고 가는 그림자의 손목에서 빨간 염주가 달빛에 빛났습니다.


혜정은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분명히 남편의 체취가 느껴졌었는데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으니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혜정은 채석장과 석공장을 한 번 휘~ 둘러보고 다시 돌호박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김 대감은 아침 일찍 일어나 새로 지은 집 낙성식을 준비하였습니다. 인근 고을 유생과 동네 사람들을 모두 초청했습니다. 김 대감은 석근이 밤늦게까지 돌을 쪼는 소리를 들었기에 마지막 작품인 돌호박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집사를 시켜 석근을 불러오게 하였으나 김 대감은 하인으로부터 석근이 행방불명됐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허허, 밤늦게 작업을 하더니 집에서 잠을 자지 않고 대체 어디로 간 게야….”


김 대감은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인이 가져온 돌호박을 보는 순간 석근의 문제에 대해선 잊어버리고 작품을 감상하는 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돌호박이야 원래 기껏해야 방앗간 절구용도로 쓰는 물건이지만 정원에 비치해 놓으면 예술적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 변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날 낙성식에 온 사람들은 모두 돌호박을 보고 한마디씩 감탄사를 내뱉었습니다.


“이 돌호박은 제자리를 찾은 것 같군 그래. 고급스러운 게 정원에 딱 어울리지.”

“물확으로 사용해도 될 것 같아. 연꽃을 띄운다면 금상첨화겠네.”


김 대감도 사람들의 이런 이야기를 듣고 흐뭇했습니다. 그날 밤, 김 대감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자정께나 되었을 때 밖으로 나왔습니다. 찬 기운이 감도는 날씨였습니다. 정원의 나무들이 달빛에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김 대감은 자신도 모르게 돌호박 쪽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그때 달빛을 받아 유난히 빛나던 돌호박이 흐느끼는 듯 떨리는 것을 김 대감은 똑똑히 보았습니다. ‘이상하다.’ 김 대감은 속으로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돌호박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돌호박이 서서히 연푸른색을 띠더니 그 안에서 뭔가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김 대감은 몸을 뒤로 흠칫 물러서면서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여인의 모습을 본 김 대감은 호흡이 가빠졌습니다. 평소 심장질환이 있어온 터라 두려움에서 오는 몸의 경직화는 더 심했습니다. 김 대감은 자신의 몸이 생각대로 움직일 수 없음을 느꼈습니다. 귀신이 자신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오자 호흡을 전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서방님 혹시 못 보셨나요?” 슬픔에 찬 목소리였습니다. 김 대감의 동공은 더욱 커졌습니다. 그러나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김 대감의 몸에서 힘이 일시에 빠져나가면서 땅바닥으로 축 늘어졌습니다. 혜정은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냥 사람을 만나면 자신의 남편 소식을 듣고 싶은 것뿐이었는데 이렇게 죽어버리니 말입니다.


한참 후, 김 대감의 부인이 정원으로 나왔습니다. 김 대감을 찾아 나왔던 거지요. 김 대감의 부인은 쓰러져있는 남편을 발견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누구 없느냐? 대감께서 쓰러지셨다.”


혜정은 이러한 상황에서 차마 부인에게까지 모습을 드러내어 남편의 행방을 물어볼 수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온당치 못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혜정은 다시 돌호박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돌호박이 다시 연푸른빛을 띠었습니다. 부인은 순간적으로 돌호박 쪽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부인은 돌호박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꼈습니다. 집사와 하인들이 달려나와 김 대감을 방으로 옮기고 의원을 불러 진맥을 해보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다음날 김 대감의 부인은 돌호박에서 느꼈던 이상한 기운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인을 불러 돌호박을 처분하도록 하였습니다. 아무리 남편이 아꼈던 물건이지만 하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돌호박은 석수장이 장 서방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장 서방은 돌호박이 석근의 분신처럼 느껴져 어딘가 멀리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돌호박에 손을 대면 짜릿짜릿한 촉감이 들면서 기분이 나빠지고 두려워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장 서방은 그날 밤 몰래 고갯마루 길가에 버렸습니다. 그 후 고갯마루에 귀신이 나타난다는 야릇한 소문이 마을에 퍼졌지만 사람들이 그걸 믿거나 동요하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재미삼아 귀신 이야기를 할 때면 들먹이곤 했던 겁니다.


김 대감이 죽고 보름도 지나지 않아 귀신 소문은 잠잠해졌습니다. 그때쯤 만복이 고개 너머 사는 친구 천석을 찾아와 술을 마시고 돌아가는 길에 돌호박을 주웠던 거지요.


“꼬끼오~!”


새벽 닭울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똑딱귀신 혜정은 만복에게 날이 밝는 대로 돌호박을 고개너머 마을로 가져가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그곳에 가면 남편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만복은 아침을 먹고선 바로 지게에 돌호박을 얹어 메고 집을 나섰습니다.


고개 너머 마을로 들어간 만복은 돌호박을 어디에 놓아야 하나 고민에 빠졌습니다. 먼저 주막에 들렀습니다. 주모에게 얼마 전까지 김 대감 새집 짓는데 일하던 석수장이가 어디에 사는지 물었습니다. 만복은 주모에게서 보름 전 김 대감 댁 낙성식 때 행방물명이 되었고 그 이후론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똑딱귀신의 남편은 이 마을에 없는 것이 확실하다. 잘못 온 것인가. 만복은 오늘 밤 똑딱귀신에게 여기선 남편을 찾을 수 없으니 자신이 더 도와줄 수는 없다고 말할 참이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나졸이 나타나 살인사건이 났다고 이야기를 하며 목격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주막에 있던 사람들이 일시에 술렁였습니다.


그 이야기에 만복의 귀는 솔깃해졌습니다. 오늘 밤 돌호박을 가지고 그곳으로 가봐야겠구나. 이렇게 생각한 만복은 밤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밤이 되고 시체가 유기되어 있다는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현장에는 ‘금지’라는 팻말과 함께 금줄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금줄 안쪽에는 시체가 손발이 묶인 채 반듯하게 드러누워 있었는데 의외로 시신의 상태가 깔끔하였습니다.


밤이 이슥해지자 보름달이 떠올랐습니다. 사위가 훤해졌습니다. 돌호박을 옆에 내려놓고 기다리던 만복은 추워진 날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시체가 옆에 있다고 생각하니 상당히 두려워졌습니다. 산속 분위기도 으스스했습니다. 여기저기 귀신이 나타날 것 같기도 하고 곰이나 여우 같은 짐승들이 ‘인간이 여긴 뭐하러 왔어?’ 하면서 툭 나타날 것만 같았습니다.


“똑딱! 똑딱!”


그 소리와 함께 돌호박에서 연푸른 빛이 감돌았습니다. 혜정이 돌호박에서 나와 시체가 누워있는 쪽으로 갔습니다. 만복의 눈에 혜정이 입을 막고 슬피 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 시체가 똑딱귀신의 남편이 맞구나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소원을 해서 만났는데 남편이 죽어있으니 그 속마음이 얼마나 찢어질까 만복의 마음도 무거웠습니다.


어디선가 여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때 금줄 안에 있던 시체에서 혼령이 일어났습니다. 만복이 보기에 두 혼령은 반가워하면서도 슬픈 표정이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셨어요?”

혜정이 석근의 손을 잡으며 물었습니다.

“돌호박을 만드는 동안 나는 당신을 잊지 못해 계속 슬픔에 빠져있었어요. 돌호박을 완성했을 때였지요.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아 잠시 혼절해 있었는데 깨어보니 돌 창고였소. 나를 해한 사람은 7개월 전부터 나와 함께 일한 장 서방이었소. 자신이 빚이 있는데 상당한 금액을 빌려달라는 거예요. 내가 김 대감으로부터 받은 돈과 집을 처분한 돈이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아요. 말이 빌려달라지 협박이었소.”


“이런 나쁜놈을!”

귀신 석근의 이야기를 듣던 만복이 씩씩거리며 화를 냈습니다. 석근은 그때야 만복을 발견하고 다시 고개를 혜정에게 돌렸습니다.

“저를 이곳까지 안내해준 분이에요. 고마운 분이지요.”

석근은 만복에게 묵례를 했습니다.

“그래서요?”

혜정은 남편이 산속에 버려진 연유가 궁금했고 그 범인을 알게 되면 복수를 하리라 생각을 했습니다.


“관두세요. 나 스스로 이것을 원했는지도 몰라요.”

석근은 아내의 혼령에서 악한 기운이 감돌게 되자 어서 말렸습니다.

“사실 난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 와중에 장 서방이 나를 도와준 거지요. 내가 가진 모든 돈을 장 서방에게 주었더니 그는 한 번 더 몽둥이로 내 뒤통수를 내리치고는 이곳에 버렸나 보오. 그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겠지. 한참 지나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지금처럼 깜깜한 밤이었소. 줄을 풀고 마을로 내려가려면 얼마든지 내려가겠는데 사실 그러고 싶지는 않았소. 다시 당신을 생각했지. 당신을 따라가고 싶었소. 그런데 이렇게 당신을 만났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오.”

“혹시 그 장 서방이라는 사람이 빨간 염주를 손목에 차고 있나요?”

“그 사람은 돌 파편이 튀는 작업장에서도 그 염주를 항상 손목에 차고 있었지. 그런데 왜?”

“제가 돌호박에서 나오던 그때 당신을 들쳐업고 가던 사람의 손목에 빨간염주가 반짝인 걸 봤었는데 지금까지 계속 그게 마음에 걸렸어요. 그때 바로 달려갔었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두 혼령의 대화를 듣던 만복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돌호박은 챙겨두었다가 시신의 장례가 치러지면 그곳에 갖다놓으면 될 것이라는 계산도 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서 시커먼 그림자가 달빛에 나타났습니다. 점점 가까이 왔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 이런 산속에 사람이 나타난다는 것은 그가 범인임이 틀림없다고 만복은 생각했습니다. 만복은 바위 뒤쪽으로 숨었습니다.


점점 가까이 다가온 사람은 시체를 확인하는 듯했습니다. 그러고는 두리번거리더니 돌호박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림자는 만복이 숨어있는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친구 천석이었습니다. 만복의 머릿속에는 오만 생각이 뒤섞였습니다. 천석이 만복이 숨어있는 곳으로 다가오자 더는 몸을 숨길 수 없었기에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여보게 장천석! 여기 어쩐 일인가?”

천석은 깜짝 놀랐다가 이내 반가워하는 듯한 표정으로 손을 들었습니다.

“자네야말로 이 시각에 여긴 어쩐 일로….”

천석의 손목에 있는 빨간 염주가 달빛에 유난히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다음 주엔 전설의 현장을 찾아가봅니다. 돌호박(돌확)에 대해서도 좀 알아보고요.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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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요즘 밀양 아랑귀신이야기를 책으로 보고있다. 아랑을 다룬 책은 많다. 옛날에도 많았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다 보니 뿌리가 갈라지듯 해서 어느게 원본인지 알 수도 없다. 뭐 전설이 다 그렇지만...


솔직히 난 귀신이니 유령이니 하는 무서운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50을 넘긴 분들은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월하의 공동묘지라고... 영화가 있다. 1971년쯤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없어진 부산 보림극장에서 그 영화를 아버지와 단둘이 봤는데... 그때 좀 쇼크를 먹었다.


사실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무서운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은 날 언제나 두렵게 했다. 내가 심장이 약한 줄 알았는데... 건강검진 결과 그건 아니었다. 그러면 내 두려움은 어디서 온 것일까...


아이들은 공포심을 만끽하려고 놀이공원 '유령의 집' 같은 곳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내 딸이나 친구의 딸이나... 딸아이들이 특히 그런데... 그 심리를 이해할 수가 없다. 짜릿한 걸로 치자면 번지점프가 제격이지.


어쨌든... 


월하의 공동묘지에서 나온 도금봉이 진짜 귀신인줄 알았던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의자 밑으로 몸을 낮춰 반은 눈을 뜨고 보고 반은 눈을 감고 듣고 하면서 극장 불이 켜질 때까지 견뎠다. 


초대권이 생겨서 영화보러 간다는 아버지 바짓가랑이를 잡고 "나도 영화보고싶어"하고 떼를 썼던 것이 얼마나 후회스러웠던지... 그 이후로 지금까지 귀신 나오는 영화는 거의 안 봤다. 


딸의 강추 작품... 장화홍련도 외면했더랬는데.... 요즘 귀신이야기를 재미있게 읽고 있다. 어쩌면 요즘 이야기 속 귀신들이 좀 많이 착해졌기 때문일 거다. 엉뚱한 면도 있고... 


일본의 애니메이션 '두부요괴'처럼 사람들이 더는 요괴를 믿지 않으면서 사라져 가거나 변질해 온 것 같이 귀신도 그런 과정을 거친 것 같고...


그래서 내가 나답지 않게 귀신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된 것 같다. 똑딱귀신이 전혀 무섭지 않은 그런 귀신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데 한 번쯤 머리 풀고 입에 칼을 문... 그런 귀신도... 난.. 상상력이 너무 과도해... ㅠㅠ


다음 이야기는 '경남이야기'에 실은 똑딱귀신 이야기 '투' !




(전편 줄거리) 산 너머 마을에서 방앗간을 하는 만복이 이웃마을에 사는 친구 천석을 찾아와 주막에서 밤늦게 술을 마시고 돌아가는 길에 똑딱귀신을 만납니다. 똑딱귀신은 창백한 얼굴을 하고 몸은 공중에 뜬 채 점점 만복에게 가까이 다가갑니다. “우리 서방님 혹시 못 보셨나요?”하고 묻는 맨발의 똑딱귀신을 눈앞에 보게 되자 만복은 그만 기절을 하고 맙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만복은 지난밤 헛것을 봤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넘어가려는데 길 가에 버려져 있는, 아주 품질이 좋아 보이는 돌호박(돌확)을 발견합니다. 만복은 그것을 등에 지고 집으로 돌아와 디딜방아에 설치합니다. 그날 방앗간 영업은 평소보다 훨씬 잘 되었습니다. 그날 밤 아내와 함께 잠을 자는 중에 “똑딱, 똑딱”하는 소리가 방 밖에서 납니다. 아내가 잠을 깨어 만복에게 나가보라고 하고, 만복이 방문을 열었을 때 똑딱귀신이 돌호박 위에 떠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너무 두려워 문을 닫으려는 데 똑딱귀신이 자기 이야기를 잠깐 들어달라고 합니다. 자기는 충청도에 사는 돌쪼이(석공)의 아내라면서 말이죠.


“수년 전 우리 부부는 가난하였지만 참 행복하게 살았지요. 남편은 참 건실한 청년이었습니다. 우리 마을에 있던 석조물은 거의 제 남편이 만든 것이죠. 솜씨가 좋아서 동네 사람들로부터 주문을 많이 받았답니다.”

“그럼 저 돌호박도 남편의 작품이겠군요?”

“네, 그렇답니다. 남편이 마지막으로 만든 작품이지요. 어째서 제가 이 돌호박에 기거하게 되었는지, 또 왜 남편을 이렇게 찾아다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3년 전 똑딱귀신이 된 부인은 원인모를 병에 걸려 몸이 많이 아팠습니다. 결혼한 지 3년이 되었지만 자식은 없었습니다. 남편은 늘 바쁘게 돌을 쪼는 일을 했지만 벌이가 넉넉지 않아 아내의 약값을 대기에도 힘에 부쳤습니다. 가끔 아내가 삯바느질로 보태긴 하지만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남편 석근이 큰 결심을 하고서 아내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여보, 아무래도 경상도 창녕을 다녀와야겠소. 창녕 어느 대감 집에 큰 공사가 있는데 석공의 삯을 크게 쳐준다는구려. 여섯 달만 하면 일이 끝난다고 하니 조금만 참고 기다려주시겠소?”

아내 혜정은 여섯 달이나 남편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것에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혜정은 자신의 몸이 아파서라기보다 남편이 오랜 객지생활을 하면서 병이라도 들면 돌봐줄 사람도 없을 텐데 어쩌나 하는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대로 살아도 저는 좋습니다.”

혜정이 석근의 결심을 바꾸어보려고 완곡히 말했지만 석근의 결심을 바꾸어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딱 6개월만 참아주시오. 삯을 받게 되면 당신 병을 완전히 낫게 하고 고생도 하지 않게 해주리다. 부디 그동안 아무 탈 없이 잘 지내도록 하세요.”

석근은 혜정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석근은 솟아오르는 눈물을 꾹 참고 괴나리봇짐을 둘러메면서 일어섰습니다. 혜정의 눈에는 벌써 뜨거운 것이 넘쳐 볼을 타고 흘렀습니다.


동구 밖까지 따라나선 혜정은 남편이 제발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돌아오기를 빌었습니다. 남편은 몇 번이고 되돌아보면서 혜정에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혜정은 그날 이후 뒷마당 장독대에다 정한수를 떠놓고 매일같이 기도를 했습니다.


집을 떠난 지 나흘 만에 창녕 김 대감 댁에 도착한 석근은 행장을 풀고 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석근은 김 대감 집 아래채에 머물며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은 김 대감의 새집 공사 현장을 오가며 일했습니다.

석근은 창녕 토박이인 장 서방이라는 사람과 함께 조를 이루어 일을 했습니다. 장 서방도 창녕에선 제법 솜씨 있는 석공으로 알려진 사람이었습니다.


김 대감은 사흘에 한 번씩 공사현장을 찾아왔습니다. 김 대감은 석근과 장 서방의 석조작품을 보면서 무척 기뻐했습니다. 그러면서 항상 석근의 작품이 좀 더 뛰어나다며 칭찬했습니다. 장 서방은 은근히 질투가 났지만 자신의 눈으로 봐도 석근의 작품이 더 훌륭하기에 아니라고 대꾸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 서방은 그럴 때마다 김 대감에게 허리를 굽실거리며 더 신경을 쓰겠노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처음엔 공사의 진척이 빨랐는데 어느 순간부터 일이 더뎌지기 시작했습니다. 석근과 함께 일을 하는 장 서방이 게으름을 부린 탓입니다. 장 서방은 그날 작업량이 부여되면 종종 석근에게 맡기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석조 물량을 제때에 댈 수가 없었습니다.


석근은 장 서방의 이러한 행동이 김 대감의 비교평가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 챘기에 이해를 해야 한다고 여기고 그날의 물량을 맞추기 위해 열심히 돌을 쪼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장 서방의 이러한 행동은 잦아졌고 노골적으로 변했습니다. 일을 마칠 때쯤 술에 잔뜩 취한 채 돌아오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석근은 장 서방의 이러한 행동이 김 대감에게 알려지면 치도곤을 맞을 일이라 모른 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이 자꾸 밀리게 되고 이러다 6개월이 되어도 일을 마칠 수 없겠다는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하루는 오전에 물량이 정해지고 일을 시작할 무렵 또 말없이 사라지려는 장 서방을 붙들고 석근은 사정하다시피 말을 꺼냈습니다.


“장형, 이제 마음을 푸세요. 이러다 6개월 안에 일을 다 하지 못할까 걱정되오.”

“무슨 소리요? 천하의 진형께서 그런 걱정을 하시다니. 그 재주 좋은 손을 잘 놀려 봐요. 하루에 두 사람 몫의 일을 하는 거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잖소?”

장 서방은 비꼬듯이 말을 내뱉곤 일없다는 듯이 작업장을 나가버렸습니다. 장 서방은 일이 내키는 날이면 하루종일 아무 말도 않고 돌을 쪼았고 내키지 않은 날은 일을 시작하기 전이든 하던 중이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다보니 6개월이 지나도 일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석근은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아내에게 기다리라고 한 기일이 지났기 때문에 자꾸 집 생각이 나서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장 서방은 여전히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일을 나오지 않기도 하고 나왔어도 말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정해진 날에서 열흘이 지났습니다.


하루는 훤한 대낮임에도 천둥소리가 울리곤 해서 마음이 더욱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는데, 그날 밤 석근은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아내가 자꾸 눈물을 흘리며 빨리 돌아오라고 손짓을 하다가 멀리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화들짝 잠에서 깬 석근의 이마에는 땀이 가득 맺혀 있었습니다. ‘? 갑자기’ 하는 생각이 들어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바로 고향으로 달려갈 수도 없었습니다. 일도 앞으로 며칠 더 해야 마칠 수 있고 금방 다녀올 거리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또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석근은 돌호박 하나를 남겨놓고 모든 일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날 밤 석근은 또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아내 혜정이 둘로 갈라진 무덤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가지 말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전혀 듣지 못한 듯 아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안 돼! 가지마!” 소리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석근은 허공에다 손을 허우적거리다 꿈을 깼습니다.


석근은 아무리 꿈자리라고는 하지만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대감을 찾아갔습니다. 돌호박 하나만 제작하면 모든 일이 마무리되긴 하지만 받기로 했던 삯의 반만 일단 달라고 했습니다. 사나웠던 꿈자리 이야기를 하고는 도저히 망치와 정을 손에 잡을 수 없는 상태라며 양해를 구했습니다. 김 대감은 선뜻 그렇게 하라며 모든 삯을 다 주었습니다.




석근은 그날 아침부터 끼니도 챙겨먹지 않은 채 고향으로 달려갔습니다. 배가 너무 고파 걷지 못할 정도가 되면 주막에 들러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는 다시 내달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석근은 이틀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을 어귀에 당도했을 때엔 어스름이 짙게 깔린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아내는 당산나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보! 나요, 나 왔소.”

석근이 달려오는 모습을 본 혜정도 무척 반가운 표정으로 달려갔습니다. 두 사람은 얼싸안고 몇 바퀴고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왜 이리 늦었나요?”

혜정이 반가운 눈물을 흘리며 묻자 석근은 혜정을 꼭 안았습니다.

“미안해요. 사정이 있었소.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지내고 있으니 다행이오. 정말 다행이오.”

석근도 울컥 솟아오르는 격함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눈물이 주르르 흘러 혜정의 볼에 닿았습니다. 혜정은 안긴 몸을 살짝 뒤로 젖히고 석근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많이 수척해졌지만 건강해보였습니다. 혜정은 다시 석근의 품에 안겼습니다.


두 사람은 나란히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집으로 걸어갔습니다. 집은 어둠에 싸여 있었습니다. 금세 밤이 된 것입니다. 방으로 들어간 석근과 혜정은 호롱불을 켰습니다. 불빛에 비친 아내의 모습이 예전보다 더욱 수척해져 있다는 것을 석근은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 많이 수척해졌구려.”

“서방님을 많이 기다렸답니다.”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일터에서 6개월 삯을 모두 받았으니 이제 편안하게 살 일만 남았어요. 이 꽃신을 받으시오.”

석근은 창녕에서 청주까지 한달음에 달릴 듯이 했으면서도 장을 지나칠 때 아내에게 선물할 꽃신을 샀던 것입니다.

“어머, 꽃신이 참 예뻐요. 정말 예뻐요.”

혜정은 그렇게 말하며 길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진 서방 있는가?”

석근을 부르는 마을 형님들이었습니다.

“예, 그간 무탈하였습니까?”

석근은 방문을 열며 마을 형님들을 맞았습니다. 석근을 찾아온 마을 사람은 둘이었는데 모두 얼굴 표정이 어두웠습니다.

“아니, 형님들 왜 그러십니까?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자네는 이렇게 오랜 만에 집에 돌아왔으면서도 아내가 어떻게 된 것인지 묻지도 않는가?”

석근은 동네 형들의 이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당산나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를 만나 지금까지 함께 있었는데….”

석근이 형들에게 방문을 활짝 열며 아내가 앉아 있던 윗목을 가리켰습니다.

“보세요. 제 아내는 저기 저렇게 앉아있지 않습니까?”

“허허, 이 친구 무슨 말을 하는 겐가? 제수씨가 방안 어디에 있다고.”

석근이 다시 동네 형들과 함께 방안을 들여다봤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조금 전까지 함께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던 아내가 갑자기 사라진 것입니다.


“아마도 자네를 학수고대하다 죽었으니 혼령이 바로 승천하지 않았던 것 같네. 자네가 본 것은 분명 제수씨의 혼령일 테지.”

아내와의 재회, 그리고 포옹, 나눈 이야기들…. 너무나 생생했기에 동네 형들의 이야기를 석근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보! 어디 있어요?”

석근은 집 뒤 장독대로 갔습니다.

“여보! 여보!”

“이보게 진 서방, 그 돌무덤에 자네의 내자가 누워있다네.”

“열흘 전이었지. 마른하늘에 천둥이 치던 그날 말일세. 자네가 돌아온다는 날부터 매일같이 동구 밖까지 나가서는 밥도 먹지 않고 종일 기다려왔는데 이날 변고가 났던 게지. 내가 마실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당산나무 아래에 쓰러져 있던 자네 내자를 업어서 의원에게 갔네만….”

옆에 서있던 동네 형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동네 형들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너무 청천벽력 같아서 석근은 이 모든 게 현실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석근은 정신없이 돌무덤을 파헤쳤습니다. 나무관의 뚜껑을 여니 그 속에는 아내 혜정이 하늘색 치마저고리를 입고 누워있었습니다. 눈에서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늦어서 미안해. 늦어서 미안해.”

동네 형들도 석근의 통곡을 바라만 볼 뿐 아무 말도 못한 채 서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석근의 등 뒤로 혜정이 안타까운 시선으로 이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다음주 3편을 기대해주세요.)


[관련기사]

(전설텔링)“우리 서방님 혹시 못 보셨나요?”(1)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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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을 소재를 글을 쓴다는 것은 창작이라는 차원에서 그렇게 의미가 없을지 몰라도 한편으론 재미있는 작업니다.

 

지난 6월, 일로써 시작을 했지만 나름대로 애착을 지니고 하다 보니 벌써 네 번째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한동안 이 글의 저작권은 어떻게 되는지 고민하기도 했다. 고민의 끝은 이런게 별 소용없다는 거다.

 

옛날 이야기꾼들이 들었던 이야기를 제 나름대로 각색하고 윤색하고 때론 그대로 남에게 들려줄 때 자기이름을 박아서 이 전설은 내껍네 한 것도 아니잖는가.

 

일은 일로써, 지금까지 전해오는 경남지역의 전설을 나 어릴적 할머니처럼 여럿 모아놓고 도란도란 들려주는 그런 기분으로 글을 올리고 있다. 경남이야기에.

 

창녕군지에는 영산면 교리에서 전해오고 있는 똑딱귀신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똑딱귀신은 석수장이의 돌 쪼는 소리가 나면 여자 귀신이 나타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멀리 돈을 벌기 위해 떠났던 남편을 기다리다 죽은 아낙의 영혼이 돌호박(돌확)에 서려 귀신으로 나타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전설에 살을 덧붙여 또 다른 맛이 나는 이야기를 만들어보았습니다.

 

다음을 스킵하지 마시고 '꾹' 징검다리 밟고 지나가듯 밟고 가시옵소서.

 

 

 

옛날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께서 마당 한가운데 모캣불(모깃불) 피워놓고 동네 손주 녀석들에게 더 오랜 옛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빈 곰방대 쪽쪽 빨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지금처럼 밤이 되어도 시원해질 줄 모르는 날씨 때문에 동네사람들은 툭하면 짜증을 내며 이웃과 말다툼을 하곤 했지요. 건넛마을에서 방앗간을 하는 만복은 오랜만에 친구를 찾아 이 마을에 왔습니다. 만복은 이 마을 친구 천석과 함께 대낮부터 주막에서 술을 마셨기 때문에 밤이 이슥한 지금은 발음도 제대로 안 되고 말도 엉뚱하게 튀어나올 정도로 거나하게 취했습니다.


낮엔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던 평상 위 배롱나무 붉은 꽃잎들이 주막등의 은은한 불빛에 살랑살랑 춤을 출 때였습니다.


“이제야 바람이 좀 부네 그려.”

만복이 혀가 꼬인 발음으로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요즘은 일을 못하겠어. 빨리 가을이 왔으면 좋겠어.”

천석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빈 잔을 몇 번이고 기울여보면서 응대를 했습니다.

“여보게, 만복이. 우리 한 잔 더할까? !”


“하이고, 우리 오라버니들 오늘 약주 과하신 것 같은데 이제 술자리 파하시지요.”

마침 평상 옆을 지나던 주모가 끼어들었습니다. 만복은 벌써 반은 얼이 나갔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상체를 앞뒤로 좌우로 흔들거렸습니다. 코에선 거친 숨소리가 들락거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만복의 상태엔 아랑곳하지 않고 천석은 주모에게 불만스레 말했습니다.


“주모, 돈 못 받을까 그러쇼? 우리 술값 낼 돈은 있다 이거야? 좋은 분위기 망치지 말고 술이나 더 내오라구!”

천석이 빈 술잔을 술상에 ‘탕’하고 내리치며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지르는 통에 만복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니, 미안하네. 내가 깜빡 졸았나봐! 망치는 내일 바로 빌려줌세. 그래도 내 자네 이야긴 다 듣고 있었다네.”

만복의 엉뚱한 소리에 천석은 황당해했고 주모와 옆의 평상에서 술을 마시던 동네 사람들은 파안대소를 하였습니다. 천석은 다른 사람에게 창피했는지 그 자리에서 바로 일어섰습니다.


“여보게 만복이, 가세. ~. 거기서 엉뚱한 말을 해서는….”

천석은 만복을 부축해서 주막을 나왔습니다. 주모가 뒤따라 나왔습니다.

“술값은 주고 가야지.”

“달아놓으시게. 내일 줌세.”


두 사람은 동구 밖까지 어깨동무를 하고 휘청휘청 걸어 나왔습니다. 천석은 친구 만복이가 자기 마을로 돌아가려면 낮은 고개를 넘어야 하므로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마침 보름달이라 사위는 훤했지만 그래도 오밤중이어서 술 취한 친구가 사고라도 당하지 않을까 염려를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만복이 자네, 많이 취한 것 같은데 그냥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가는 것이 어떤가?”

“무슨 말인가? 우리 마눌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는데 빨리 가봐야지.”

만복은 한사코 집으로 가야 한다며 천석의 만류를 뿌리쳤습니다. ‘뭐 하루 이틀 있는 일도 아니고 오늘은 좀 과했지만 별일이야 있겠어?’ 이렇게 생각하고 천석은 만복에게 재차 밤길 조심하라 이르고 보내주었습니다.


만복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고개를 비틀비틀 걸어올라 갔습니다. 양쪽으로 소나무들이 만복의 어깨를 잡을 듯이 길게 손을 뻗었습니다. 만복은 괜스레 으스스한 기분에 사로잡혔습니다. 고개에 다다를 쯤이었습니다. 고개 쪽에서 “똑딱! 똑딱!”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만복은 이 밤에 무슨 소리야 하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고개에 올라섰을 때 만복의 게슴츠레한 눈앞에 여자모습의 희미한 그림자 같은 것이 서있었습니다. 머리가 쭈뼛해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러자 그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왔습니다.


여인의 모습을 한 그림자가 열 걸음 앞으로 다가왔을 때 만복은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얼굴이 창백한 여인이었습니다. 여인은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겼고 비녀로 쪽을 지었습니다. 만복은 너무 두려워 술이 확 깼고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습니다.


“혹시 우리 서방님 못 보셨나요?”

하늘색 비단옷을 입은 여인은 만복의 눈앞에까지 다가와 가냘프고 슬픔이 어린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만복은 보름달이 이리도 훤히 뜬 오늘 같은 밤에 귀신이 나타날 리 있겠나 싶으면서도 몸과 입이 얼어붙었는지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저씨, 아랫마을에서 괴나리봇짐을 메고 있던 우리 서방님을 보시지 않으셨나요?”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까지 다가온 여인의 하늘색 치마 아랫단을 내려다본 만복은 그 자리에서 까무러쳤습니다. 여인은 공중에 떠 있었으며 발은 맨발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만복은 고갯마루에서 잠이 깼습니다. 엊저녁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어젯밤 그 여인네는 헛것이었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일어서려는데 현기증이 일었습니다. ‘아이고 머리야.’ 만복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며 몸의 중심을 잡았습니다.


고개를 내려가려는데 만복의 눈에 띄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돌호박이었습니다. 흙이 묻어 더러워 보이긴 했지만 아주 잘 만든 물건임을 방앗간을 운영하는 만복은 바로 알아차렸습니다. ‘꽤 잘 만들었는걸. 그런데 이런 걸 버리다니 누군지 몰라도 물건 볼 줄 모르는 사람인 모양이야.’ 만복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돌호박을 등에 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만복은 돌호박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질하니 윤도 나고 곡식 빻는 용도치고는 너무 기품이 있어 허한 방앗간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만복은 디딜방아에 받쳐놓은 낡은 돌호박을 치우고 주워온 돌호박을 놓았습니다. 방앗간 안에는 모두 낡은 장비와 도구들뿐인데 유독 디딜방아에 받쳐놓은 돌호박만이 빛을 발하는 것 같았습니다. 만복과 아내는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날은 방아를 찧으러 오는 손님마다 새로 들어온 돌호박에 대해 한마디씩 했습니다.


“어느 돌쪼이(석수장이)가 만든 것인지 참 잘 만들었다.”

“이런 돌호박은 대감댁 정원에나 어울리겠는걸.”

“돌호박이 꼭 여염집 아낙 같아. 호호호.”


만복은 손님들의 이러한 이야기들이 싫지만은 않았습니다. 만복과 아내는 다른 날보다 더 바빴습니다. 여름이라 비수기인데도 이상하게 뜻밖의 손님이 많이 왔습니다. 만복은 새로 들인 돌호박에 신비스러운 힘이 있나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럴 리 없다고 만복은 바로 머리를 저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해가 지고 밤이 되었습니다.


“여보, 피곤하시지요? 어젯밤도 잠을 설쳤을 텐데. 오늘 일찍 주무시구려.”

만복이 씻고 방으로 들어가니 아내가 이부자리를 펴놓고 말했습니다.

“그래요. 오후 들어 일하면서도 계속 눈이 감겨 애를 먹었소. 하하. 오늘은 오랜만에 일찍 잡시다.”


만복과 아내는 나란히 이부자리에 들어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만복은 코를 심하게 골았습니다. 아내는 만복의 코 고는 소리를 한해 두해 들은 것이 아니므로 이제 오히려 자장가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밤은 깊어갔습니다. 자정쯤 되었을 시각입니다.


 

 

“똑딱. 똑딱. 똑딱….”

만복의 아내가 똑딱 소리에 살풋 잠이 깨어 만복의 등을 톡톡 쳤습니다.

“여보, 밖에 무슨 소리 안 나요? 나가 봐요.”

만복은 여전히 피에 지친 몸을 고쳐 누우며 다시 곤한 잠에 떨어졌습니다.

“똑딱. 똑딱. 똑딱….”

“아, 여보! 밖에 누가 왔나 봐요. 얼른 일어나 나가보세요.”

“오긴 누가 온다고 그래. 문을 안에서 걸어 잠갔는데 어떻게 들어와. 당신이 잘못 들었겠지.”


만복은 귀찮은 듯 다시 반대로 고쳐 누웠습니다.

“똑딱. 똑딱. 똑딱….”

선잠에서 깬 만복에게도 이제는 똑딱 소리가 들렸습니다. 만복은 몸을 일으켜 앉았습니다. 만복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가만, 어젯밤에도 고개를 넘을 때 이 소리가 들렸었는데. 왜 우리 집에서 이 소리가 들리는 거지?’


만복은 덜컥 겁이 났습니다. 아내가 방문을 열치고 내다보라는 등쌀에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면서 오금이 저림을 느꼈습니다. 방문을 거의 다 열었을 때 똑딱 소리는 멎었습니다. 방앗간 안은 고요했습니다. 조금 전까지 계속 울려대던 똑딱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만복이 이상하다 생각을 하고 방문을 닫으려고 손잡이에 걸린 줄을 당길 때였습니다.


“아저씨, 우리 서방님 혹시 못 보셨나요?”

분명히 어젯밤 술에 취해 고개를 넘을 때 보았던 그 귀신의 목소리였습니다. 아니, 그 귀신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문을 다시 열었을 때 돌호박 위에 그 귀신이 떠 있었습니다. 만복의 아내도 깜짝 놀라 까무러칠 뻔하였습니다. 만복이 놀라서 문을 다시 닫으려는 순간,


“잠깐만요, 제발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귀신은 사정하다시피 말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귀신과는 달리 사람을 해치거나 저주를 퍼붓는 귀신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만복은 다시 문을 서서히 열었습니다. 뒤에서 아내가 살짝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습니다.


“저 처자가 이녁이 엊저녁에 보았다던 그 똑딱귀신이우?”

만복은 아내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똑딱귀신에게 사연을 물었습니다.

“그래요, 무슨 사연이 있기에 저승에 가지 못하고 이렇게 구천을 떠돌며 사람들에게 나타나 남편을 찾는지 말해보세요.”

“고맙습니다. 저를 만난 많은 사람이 담력이 약했는지 바로 사망하는 바람에 제 사연을 들려줄 수 없었는데…, 아저씨를 만난 게 천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똑딱귀신은 돌호박 위에 앉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저는 충청도에서 돌쪼이를 하는 사람의 아내로서….”


(다음 주 2편이 이어집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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