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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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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어떻게 시작할까 고민이 고민을 하던 중 딸과 전설에 대해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줄거리가 나오고 플롯이 절로 뽑아져 나왔습니다.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딸과 함께 나누니 머릿속이 자연 정리되는 듯하면서 오히려 이번 1편은 쉽게 손끝에서 나왔습니다. 상사병, 내가 많이 겪어봐 그런것일지는 몰라도 이번 용다리 전설을 쓰면서 글쓰기가 재미있을 것 같네요.



촉석루가 있는 진주성을 방문해보신 분이라면 공북문 서쪽 방향으로 좀 떨어진 곳에 문양이 새겨진 돌 파편들이 널려 있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옆에는 조그만 안내판이 세워져 있지요. ‘용다리전설’이라고 적힌 이 안내판에는 지금은 없어진 용다리에 얽힌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돌 파편들은 그 용다리의 조각들입니다.


적힌 글을 읽어보면, 옛날 벼슬아치 집에 돌쇠라는 머슴이 있었는데 상전인 아씨를 사모했답니다. 옛날에야 신분체제가 확실해서 그럴 수 없음에도 그랬다는 건 언감생심이죠. 그런데 이 아씨도 돌쇠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 서로 얼마나 가슴 아팠겠습니까.


결국, 아씨가 상사병에 앓다가 죽게 되고 돌쇠도 슬픔을 못 이겨 미쳐버린 나머지 목을 매 저세상으로 아씨를 따라갔다는 얘기입니다. 옛날 이 용다리가 있던 개울엔 개구리가 그렇게 많았다고 하던데 짝이 있는 연인이 지나가면 울음이 뚝 그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상사병에 걸린 사람이 이 다리를 두 번 왔다갔다하면 씻은 듯이 상사병이 나았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이번 전설텔링 역시 위의 이야기에 뼈를 덧대고 살을 덧붙여 이룰 수 없어 안타까웠던 남녀의 사랑을 좀 더 세밀하게 풀어나가 볼까 합니다.

·      ·      ·      ·      ·      ·      ·      ·      ·       ·      ·

“연화야, 제발 전화 좀 받아라. 니가 오해한 걸 가지고 이렇게까지 하는 건 너무 심한 거 아니니?”
윤석은 문자를 전송하고는 화가 치밀어 핸드폰을 침대로 던졌습니다. 방안을 정신없는 사람처럼 왔다갔다하더니 다시 핸드폰을 주워들고 전화를 겁니다.
“고객님의 핸드폰이 꺼져있어…”
윤석은 장롱문을 열고 늘 입던 외투를 꺼내 들고 학교에 가는 것처럼 가방을 챙겨 방을 나섰습니다. 부모님께는 학교에 간다고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토요일 하루쯤은 집에서 좀 쉬든가 안 하고…, 아침도 안 먹고… 한 술이라도 뜨고 가지….”
윤석의 귀에는 어머니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윤석은 연화가 아르바이트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기웃거리거나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만 합니다. 서로 사귀기 시작하면서 연화가 내세운 조건 때문입니다. 절대 일하는 곳엔 찾아오지 않기. 연화는 그렇게 크지 않은 마트에서 토요일과 일요일에 하루 8시간씩 일을 합니다. 반대로 집안형편이 괜찮은 윤석은 따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데 황금 같은 토, 일요일에 애인인 연화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것이 늘 불만이었지요.


윤석은 아무리 일하는 곳은 찾아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어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당장 해명하고자 찾아왔지만 막상 연화의 일터에 찾아와서는 얼굴을 들이밀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두어 시간을 그렇게 마트 앞을 왔다갔다한 윤석은 마음속으로 연화에게 할 말을 다해버린 듯했습니다.


점심때가 되자 연화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여긴 오지 말라고 했잖아!”
“그래서 안 들어갔잖아. 왜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씹는데? 내가 뭘 잘못했다고?”
윤석은 그동안 가라앉았던 화가 다시 치밀어올랐습니다.
“적반하장이네. 지난주 은서랑 둘이 동물원 갔다며? 뭔데?”

연화 역시 윤석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지난봄 대학 입학 후 두 사람은 우연한 기회에 오랫동안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었는데 이때 서로 호감을 느끼고 계속 사귀어왔지요. 생활 여건이 좀 차이가 났지만 뭔가 서로에게 끌리는 무언가 있었어요.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함께 시간을 보내다 헤어졌지만 바로 또 보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집으로 가다 보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 헤어진 곳으로 돌아오면 서로 마음이 통했는지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았지요.

연화는 윤석의 얼굴도 보기 싫다는 듯 홱 돌아서서 진주성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봐야 할 거 아냐?”
윤석이 연화를 뒤쫓아가며 손목을 잡았습니다.
“들으나 마나 한 이야기 아냐? 그럼 내가 알기 전까지 왜 내게 그 이야길 하지 않았는지부터 말해봐.”
연화가 손목을 뿌리치며 쏘듯한 눈을 하고 말했습니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니가 신경 쓸 만큼 중요한 일도 아니고….”
“중요하지 않다고? 그렇다면 더 이상 너랑 사귈 이유도 없네. 양다리 걸치는 게 네 취미라면 다른 아이들이랑 놀지 그래? 난 깨끗하게 빠져줄게.”


“그게 아니라니까. 그냥. 우연히 그렇게 됐어. …. 설명하자면 복잡해.”

윤석은 갑자기 말을 줄였습니다. 자꾸 변명하면 할수록 일이 더 꼬이게 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연화는 윤석을 한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몸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뭔가 이상한 기운이 몸을 끌어당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몸이…, 왜 이러지?”
“여, 연화야!”
윤석은 연화의 손을 잡았습니다. 연화의 몸이 공중에 떠올랐습니다. 고목나무 옆으로 뭔가 둥근 형태로 아지랑이 같은 것이 빙빙 돌면서 연화의 몸을 끌어당겼습니다. 윤석은 연화의 손을 더욱 꼭 잡고 끌어당겼습니다. 그러나 윤석의 힘으론 역부족이었습니다. 이상한 곳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에 윤석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바로 죽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연화의 손을 놓을 수도 없었습니다.


‘이런, 줸장!’


윤석은 연화의 손을 잡은 채 그대로 웜홀 속으로 빨려들어 갔습니다.

숲에서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큰 기와집 담장 너머로 보이는 작은 방문에 여인의 그림자가 비치고 있습니다. 조금씩 그림자가 흔들리기도 합니다. 머리를 빗고 있던 여인이 갑자기 쓰러집니다. 그때 방에서 이상한 기운이 뻗쳤는지 등잔불의 몇백 배나 되는 빛이 방 밖으로 번져나오는가 싶더니 지진이 난 것처럼 집이 울렁였습니다.


이와 거의 동시에 행랑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 사람이 이방 저방에서 뛰쳐나왔습니다. 정자관을 쓴 양반과 그의 부인, 그리고 이 집의 하인들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갑작스런 지진과 이상한 현상에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마, 마님! 아씨 방에 불이 난 듯합니다요.”
하인 한 명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제야 딸의 방을 본 양반과 부인은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방문을 열어젖혔습니다. 딸이 머리를 빗던 모습 그대로 쓰러져 있었습니다.
“화연아, 얘가 무슨 일이야! 얘, 곱단아 냉수 좀 가져오너라.”
방으로 쫓아 들어간 부인은 화연을 한 팔로 받쳐 앉으며 뺨을 톡톡 쳤습니다.


“음….”
화연은 게슴츠레 눈을 뜨면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이제 정신이 드느냐?”
화연의 아버지 이 군수(郡守)가 딸의 얼굴을 살피며 말했습니다.
“네, 아버지. 괜찮습니다.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는데 이제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혹시라도 모르니 내일 날 밝거든 의원을 부르자꾸나.”

어머니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딸의 얼굴을 만지며 말했습니다.

같은 시각, 행랑채.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쓰러진 돌쇠의 몸에서 이상한 빛이 감도는 모습을 본 행랑아범은 한동안 열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얘, 얘, 돌쇠야. 일어나봐!”

초록빛이 돌쇠의 몸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 함부로 손을 대지도 못한 채 뒤로 물러앉은 상태였습니다. 초록빛이 서서히 빠지자 행랑아범은 발로 돌쇠의 허리를 툭툭 차며 말했습니다.
“돌쇠야, 돌쇠야! 이 녀석이 갑자기 왜 이러나?”

“아이, 어지러워.”

힘겹게 바로 앉은 돌쇠의 눈에서 초록빛이 서서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서 행랑아범이 조심스레 다가가 앉았습니다.
“돌쇠야, 괜찮니?”
“무슨 일이죠? 아직 어지럽긴 한데…. 이상해요. 아저씨.”
행랑아범은 돌쇠의 안색을 살폈습니다. 원상태로 돌아온 듯합니다.
“이제 괜찮아 보이긴 하네.”
“아저씨, 이상한 꿈을 꿨어요. 너무 이상해서 말로 설명할 수가 없어요. 이상한 옷을 입은 아이가 제 몸속으로 들어오는 그런 거였는데….”
“에끼, 이놈아! 잠시 그 순간에 무슨 꿈을 꾼다고 그래. 됐다. 괜찮은 거 같으니 잠이나 자라. 난 밖이 왜 소란스러운지 보고 들어올 테니.”


(다음 주 2편이 이어집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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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면서, 아니 처음엔 전혀 계획에 없었는데 쓰다보니 재미있는 발상이 절로 떠올랐다. 포도청 장교를 코미디언으로 만드는 일이다. 무거운 작품에 잘 등장하는 감초역 배우들을 떠올렸다. 단편소설에서 이러한 설정이 먹힐까?




합천군 초계면 정고봉 선덤바위에 얽힌 전설


(지난 줄거리) 왜구의 노략질이 극심한 때에 조정에선 중신들이 왜구를 강력히 징벌해야 한다는 주장과 일본을 자극하지 말자는 주장이 팽팽하게 엇갈리면서 선조대왕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전회의에 참석했던 류보여는 답답함을 느끼면서 대대로 문신집안이었던 자신의 집안에 무인이 나와 우리 백성을 괴롭히는 왜적을 물리쳐서 공을 세웠으면 하는 바람을 가집니다.

 

집으로 돌아온 류보여는 인근 관정사 스님이 일러준 대로 조상의 묘를 옮기는데, 아내가 이듬해 범상치 않은 아이를 낳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음을 발견하고 걱정이 들긴 했지만 아이의 이름을 용이라고 짓고 정성껏 키웁니다.

 

용은 향교에 다닐 때부터 다른 아이들에 비해 덩치가 컸음은 물론이고 아주 똑똑했습니다. 그래서 향교 수업이 끝나면 늘 하던 전쟁놀이에서 항상 대장을 맡아 놀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가 아버지 병환에 쓸 약초를 구하러 산에 간 사이 폭우가 쏟아지자 비범한 무공을 발휘하면서 산에 들어가 어머니를 구출해 나옵니다.

 

이 사실은 순식간에 전국에 소문으로 퍼지는데 충청도 김 대감이라는 사람이 용을 사위로 삼을 생각에 딸과 함께 합천으로 왔다가 용의 겨드랑이에 있는 날개를 발견하고 고민에 빠집니다.

 

몇 년이 지난 임진년, 왜란이 일어납니다. 용의 나이 열네 살. 왜군이 부산진성과 동래성을 차례로 함락하자 용은 정인홍이 이끄는 의병에 지원하게 됩니다. 어린 나이지만 용은 정인홍의 휘하에서 왜적을 무찌르는데 큰 공을 세웁니다.

 

지략과 무공이 뛰어나 용은 머지않아 동료 의병들로부터 장군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합니다. 용의 활약은 정인홍에 의해 선조대왕에게도 전해집니다. 정인홍은 임금에게 용을 내금위대장으로 발탁하도록 천거합니다. 그러나 이런 파격적인 인사에 반대파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힙니다. 하지만, 선조의 단호함으로 반대파에서 더는 용의 벼슬에 대해 거론 못하도록 합니다.

 

그러던 중, 충청도 홍산에서 이몽학이란 자가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데 권율 장군에 의해 진압됩니다. 그런데 그 반란에 가담했다 추포된 한현이라는 사람이 반란 배후인물로 홍의장군 곽재우 등 여러 의병장과 충신들을 무고하게 되는데 그 명단에 류용이란 이름도 들어 있습니다. 신하가 올린 이 장계를 본 선조대왕은 화들짝 놀라게 됩니다.

 

◇ ◇ ◇ ◇ ◇

 

역적들의 이 자백은 분명 잘못된 것일 게다. 류용은 아직 어린 나이인데다 정인홍 휘하에서 줄곧 합천과 경북을 오가며 활약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충청도에서 일어난 반란에 가담했을 리가 없다. 게다가 곽재우, 김덕령 같은 충신이 이 반란에 연루됐을 가능성도 없지 않으냐? 다시 신문을 해서 반란자들이 거짓 발고를 하지 못하게 하여 배후를 밝혀내라 이르라.”

 

선조는 장계를 올린 신하에게 이몽학 사건에 대해 재수사를 할 것을 지시하고 몸을 돌려 용상으로 향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전하, 신 김고언 한 말씀 더 아뢰겠습니다.”

 

신하들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습니다. 선조는 임금의 말이 끝났는데 누가 또 토를 다는가 싶어 불쾌한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머리를 조아리고 서 있는 사람은 사간원 김고언 대간이었습니다. 김고은 사간원 대간은 용이 향교에 다닐 때 어머니를 구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던 바로 그 김 대감이었습니다.

 

류용이란 자가 어렸을 때였습니다. 제가 마침 합천 초계를 지나던 중 유심히 본 적이 있사온데 그는 이번 역모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지는 몰라도 자칫 나라에 근심거리가 될 인물이 될 것입니다.”

 

대간께선 무슨 이유로 젊은 충신을 그리 위험인물로 몰아붙이는 것이오?”

 

선조는 자신이 신망하는 정인홍이 추천한 인물을 다른 신하가 깎아내리는 이전투구의 모습에 짜증이 났으면서도 일면 호기심이 일어 하문하였습니다.

 

류용은 신체에 남들과 다른 특징이 하나 있사온데, 그것은 이야기 속 역적 아기장수처럼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린 나이에도 두려움 없이 전쟁터에 뛰어들어 수많은 공을 세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의병들이 벌써 그 어린 아이를 장군이라 칭하며 떠받든다고 하니 이는 필시 향후 근심거리가 될 게 자명합니다. 일찍 우려를 제거하심이 종묘사직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촉하여 주십시오.”

 

류용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다는 이야기에 조정 안은 술렁거렸습니다. 대부분 신료들은 아기장수 이야기를 알고 있었고 그러한 인물은 역적이 될 팔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부 정인홍을 두둔하는 쪽 외의 대부분 신하들은 임금에게 류용의 내금위장 임명은 불가하다고 다시 간언을 하였습니다. 정인홍 쪽 신하들은 뜻밖의 소식에 일언반구 말도 못하고 어리둥절해하였습니다.

 

선조는 이번만큼은 고민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영원한 신하로서의 아기장수라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러한 인물의 운명이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팔자라면 화근이 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선조가 갈등에 휩싸인 채 용상 앞에서 왔다갔다하는 사이 김고언 쪽 신하들이 모두 한목소리로 다시 주청을 올렸습니다. 신하들의 강력한 주장에 선조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류용을 잡아들이라 하라.”

 

임금의 명령이 떨어지자 한 시진도 지나지 않아 의금부 장졸의 말발굽 소리가 합천으로 향하였습니다.

 

왜군과의 전쟁이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이른 오월, 합천 초계 정곡마을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온 듯했습니다. 백성들은 다시 농사에 전념할 수 있었고 농군으로, 의병으로 왜적에 맞섰던 농민 중에서 심하게 부상을 입은 사람은 나라에서 파견된 의료진에 의해 치료를 받았으며 부상이 덜한 사람은 이웃의 농사까지 거들며 모를 심었습니다.

 

이제 왜적들이 제 나라로 모두 돌아갔을까? 흉악한 놈들, 이참에 우리 조선도 군사를 많이 모집해서 그놈들 나라에 가서 짓밟아버려야 해!”

 

모를 심던 한 농부가 흥분한 채 함께 있던 다른 농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농부 역시 왜군의 노략질에 치를 떨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나라에서 왜놈들을 치러 가겠다면 나도 당장 곡괭이라도 들고 따라나설 것이야. 나도 전쟁 통에 자식새끼 다 잃었지만 뒷집 오 서방네는 일곱 살 아들래미 하나 남고 다 죽었지 않은가. 복수를 해야지. 나라가 나서서 복수를 해야 해. 안 그러면 대대손손 그놈들이 우리를 괴롭힐 거야.”

 

그때 수십 기마병과 수백 포도청 나졸들이 요란한 발걸음 소리에 먼지까지 뿌옇게 일으키며 큰길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농부들은 연유를 알 까닭이 없었습니다. 나졸들이 류용의 집을 에워쌌습니다. 포도청 장교가 대문을 들어서며 소리를 쳤습니다.

 

어명이요! 류용은 어서 나와 무릎을 꿇라!”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대답이 없자 관리는 다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역적 류용은 어서 나와 어명을 받들라!”

나리, 집에 아무도 없는 듯합니다. 대청 댓돌에 신발도 없고.”

 

뒤에 서 있던 나졸들이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장교의 귓등이 발개졌습니다. 어명을 핑계로 부하들 앞에서 어깨와 배에 있는 힘 다 주어 위엄있게 굴었던 장교는 괜스레 안에 아무도 없다고 말한 나졸을 향해 고함을 쳤습니다.

 

, 이 녀석아! 그런 건 진작에 말을 해야지.” 장교는 칼집으로 나졸의 전립(군사용 모자)을 툭툭쳤습니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나졸들이 이번에는 포복절도를 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마실 나갔던 류용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무슨 일이오이까?”

 

포도청 장교가 류 대감에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습니다.

 

대감 의금부에서 용이를 잡아들이라는 분부가 하달되었습니다. 죄명이 역적도당들과 반란을 모의했다는 것이온데 저희로서도 믿기지 않지만 지엄한 어명이라 어쩔 도리가 없사옵니다. 용이에게 순순히 오라를 받으라고 일러주십시오.”

 

류보여와 부인 성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 얼마나 많은 위험을 감수하며 나라와 백성을 구하고자 충성을 다했던가? 그런데 역적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용이가 역적모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우리 모두가 아는 일이 아니오? 나라에 충성한 것도 죄라면 그것밖에 죄가 없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이오.”

 

포도청 장교도 입장이 난처했지만 명령에 따라 용을 압송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뒤에서 나졸 한 명이 관리 앞으로 달려 나왔습니다.

 

나리, 류용이 마을 뒷산에서 무술연마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모두 뒷산으로 간다. 나를 따르라!”

 

기병과 나졸들이 모두 뒷산으로 향했습니다. 용은 나졸들이 대거 몰려오는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인가 의아했습니다. 수련을 멈추고 바위 위에 서서 일단의 기마병들과 나졸들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잔말 말고 류용은 어명을 받들라!” 용은 어명이라는 말에 얼른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내일 내금위 대장으로 임명한다더니 이런 절차를 밟는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내심 기분이 좋았습니다.

 

역적 류용은 이몽학과 연합하여 조선을 전복할 목적으로 반란을 일으키려 하였으므로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 이에 류용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그 죄과를 달게 받으라.”

 

청천벽력 같은 장교의 말에 용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죄라니?’ 속으로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봐도 죄라고 할 만한 일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이몽학이라는 사람은 만난 적도,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리, 전 이몽학이란 자가 누구인지조차 모릅니다. 그런데 저더러 그와 역모를 꾀했다니 이건 분명 누군가의 모함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건 나도 모르겠고. 어쨌든 너를 잡아들이라는 것은 지엄하신 어명이고. (아이씨, 나한테 와 이런 일을 시켜가지고) , 나는 그 명령에 따를 뿐이다. 순순히 오라를 받고 의금부로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용은 장교의 말을 듣는 순간 지금 잡혀가면 시체로 나오는 것 외엔 방법이 없음을 눈치 챘습니다.

 

없는 죄를 뒤집어씌워 저를 압송하려는 것을 보면 저의 죄가 있든 없든, 또한 밝혀지든 밝혀지지 않든 아무 상관이 없는 일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어명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무엄하다. 감히 어명을 어기겠다는 것이냐?”

 

어명이든 동네 사또의 명이든 합당해야 따를 것이 아닙니까? 제가 정인홍 장군 휘하에서 왜적을 물리치는 일에만 나섰다는 것은 나리도 아실 텐데 왜 저를 잡으려 하시는지요? 전 그것이 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모르시는 분이라면 또 이해하겠습니다.”

 

참 내, 나보고 어쩌라고? 나야 윗사람의 명령만 받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더냐? 나를 힘들게 하지 말고 순순히 따라나서거라.” 용은 포도청 장교의 말에 더욱 화가 났습니다.

 

명령이 중요합니까, 옳고 그름이 중요합니까? 명령 이전에 무엇이 옳은지 그것이 우선이지 않습니까? 저는 여기서 죽으면 죽었지 죄없이 잡혀가지는 않겠습니다.”

 

용의 확고한 말에 장교도 난처해졌습니다. 뒤에 서 있던 나졸들도 들어보니 용의 말이 일리 있다고 여겼는지 그래, 맞아. 우리가 왜 왜적을 물리치고 공을 세운 용이를 잡아야 해?’하면서 웅성거렸습니다.

 

! 시끄러.”

 

장교는 나졸들에게 버럭 소리를 지른 다음 용에게 최후통첩을 하다시피 말했습니다.

 

용아, 어찌 됐든 난 널 잡아야 하거든. 그러니까 안 잡히려면 지금 도망가는 게 좋을 거다.” 장교는 용에게 이렇게 말하고 뒤에 서 있는 나졸들에게 소리쳤습니다.

 

잡아라!”

 

그 순간 용의 몸이 나무 꼭대기까지 튕겨 오르며 멀리 달아났습니다.

 

빨리 쫓아라!”

 

아니, 저렇게 빠른데 어떻게 쫓아요?”

 

, 잔말이 왜 이리 많아? 그냥 쫓아가서 잡아와! 용이를 못 잡으면 모두 돌아가서 단체 기합이다. 각오햇!”

 

용은 순식간에 정고봉을 넘어 천황산 꼭대기까지 피신했습니다. 그러나 용은 집에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걱정되었습니다. 괜히 자신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고초를 겪지나 않을까 마음이 불안해서 더는 숨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용의 집으로 돌아온 관군들은 용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관아로 압송했습니다. 의금부에서 온 장교는 용의 아버지 류보여에게 아들을 역적으로 키운 죄를 물어 고문을 가했습니다. 이 소식이 산에 있는 용에게 전해졌습니다. 하룻밤을 산속에서 지낸 용은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아무 죄가 없긴 하지만 자신 때문에 부모님이 관아에서 고초를 겪는다는 것을 생각하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비명이 실린 밤 공기는 순식간에 용의 가슴을 멎게 할 정도로 차가웠습니다.

 

다음날 아침, 용은 하인 오 서방을 불렀습니다.

 

아저씨, 부탁이 있어요. 당도산 장군설에 가면 유달리 길게 뻗은 쑥대가 있을 겁니다. 갈래가 3개로 난 것인데 그중에서 동쪽으로 난 쑥대를 꺾어서 가져오세요. 그리고 관아로 가서 제가 여기 있다고 하세요.”

 

, 도련님. 무슨 말씀이세요? 관군에게 잡히면 죽음을 면치 못하실 텐데, 쇤네 그리 못합니다요.”

 

아녜요. 제게 다 생각이 있어서 그래요. 그냥 시키는 대로 해주세요.”

 

오 서방은 용이 시키는 대로 하였습니다. 관군들이 용이 있는 정고봉 중턱까지 몰려왔을 때 용은 오 서방에게 쑥대로 자신의 양쪽 겨드랑이를 툭툭 치라고 했습니다. 오 서방이 용의 겨드랑이를 쑥대 끝으로 툭툭 치자 용의 발부터 몸이 서서히 돌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용을 잡으러 왔던 관군들은 신기한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장교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용을 쳐다보았습니다. 아무도 용에게 가까이 가질 못했습니다. 열 걸음 정도 떨어진 상태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춤거리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나리, 이제 저는 죽습니다. 아버지의 소원대로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고자 했지만 나라님은 저의 충정을 오히려 역적으로 몰아버리는군요. 아무 죄 없는 부모님을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시절을 잘못 태어난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장교와 나졸들은 용의 말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용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니 이 또한 불효막심한 노릇인데 자신이 이러지 않으면 부모님이 고문으로 돌아가실 수도 있으니 어쩔 수가 없었지요. 용의 눈물이 몸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바위로 변한 부분에 홈을 내었습니다. 아래에서부터 바위로 변하던 몸은 이제 목까지 올라왔습니다. 용은 마지막으로 오 서방에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제가 완전히 돌로 변하고 나면 그 쑥대를 다시 원래 있던 자리에 꽂아주세요. 그리고 오늘 보신 대로 아버지께 말씀해주세요. 부탁합니다.”

 

도련님!”

 

용의 모습은 완전히 바위로 변해버렸습니다. 바위는 장군이 위용을 자랑하듯이 근엄해 보였습니다. 장교와 나졸들은 자신도 모르게 바위에 예를 올렸습니다. 묘한 향기를 품은 봄 햇살이 바위를 감쌌습니다. 그러자 눈물이 타고 흘렀던 바위 홈에서 광채가 흘러나왔습니다. 나졸들은 이러한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면서 다시 예를 올렸습니다.

 

용이 장군이 죽어서 바위가 되었으니 이 마을만큼은 앞으로 외적의 침입을 받지 않을 거야.”

 

그해 겨울, 관정사 뜰.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고 있습니다. 박새 한 마리가 관정사 상공을 빙빙 돌더니 장독대에 내려 앉습니다. “삐삐쫑 비비. 삐삐쫑 비비.” 박새의 노랫소리에 마당을 쓸고 있던 성씨 부인의 입가에는 가느다란 미소가 흐릅니다.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초계마을과 들판에 하얀 눈이 하염없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다음주 해설편을 기대해주세요.)

 

[관련기사]

 

(전설텔링)용의 눈물(1)

(전설텔링)용의 눈물(2)

(전설텔링)용의 눈물(3)

(전설텔링)용의 눈물(5-해설편)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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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합천 초계면 정곡지 상류 선덤바위에 얽힌 전설을 토대로 한 소설이다. 일종의 그동네 스토리텔링이랄 수 있다. 소재가 재미있어 선덤바위를, 일명 장군바위를 선택했지만 사실 그냥 이야기로 끝날 뿐이지 그 지역적 환경을 생각한다면 이것이 시너지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번 용의 눈물은, 제목을 정할 때 대하역사드라마 <용의 눈물>을 떠올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 핵심 주제가 주인공 용의 눈물 때문에 전설이 생긴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이번 스토리는 준비를 하면서 역사적 상황과 인물, 그리고 시대적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다.

 

어쨌든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에 맞춰 역사공부도 되고 이야기 재미도 느낄 수 있게 꾸몄는데... 일부 사람 이름이 많이 등장하고 고사성어가 많아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람도 있었다. 다시 쉽게 풀어쓸까 하다 관뒀다. 한번 쯤 이런 장난(?)을 치는 것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전편 줄거리) 부산포 등 남해안 지역에서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들이 한때 삼포왜란 이후 잠잠해졌는가 싶더니 삼포 개항 이후 다시 조선 땅에 들어와 노략질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에 선조대왕은 중신들을 모아 대책을 논의하는데, 조정의 중신들은 왜구의 난동에 대해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는 쪽과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뉘어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 앞으로 이야기의 주인공인 류용의 아버지가 참석해 있었지요. 용의 아버지 류보여는 끝없는 논쟁에 한숨만 내쉴 뿐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류보여는 대대로 문관을 배출한 자신의 집안에서 어찌하면 무관이 나와 나라에 충성을 할까 고민했습니다. 이때 관정사 스님이 조상의 묘를 당도산 장군설로 옮기면 무관이 태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잘못하면 성장하기도 전에 모함을 받아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도 말해줍니다. 이에 류보여는 아내의 만류에도 조상의 묘를 옮기고, 얼마 후 부인이 태몽을 꿉니다. 용이 승천하는 꿈이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고 산파가 사내아이라는 것을 알려주자 류보여는 뛸 듯이 기뻐합니다. 방으로 들어가 아이를 들어보는 순간 류보여는 깜짝 놀랍니다.

 

◇                   ◇                   ◇                         ◇

 

여보! , 이런 이상한 일이 다 있소. 아기의 겨드랑이를 보시오.”

 

남편의 놀라는 표정에 부인도 덜컥 겁부터 났지만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성씨 부인은 눈을 아이의 겨드랑이 쪽으로 돌렸습니다.

 

아이구머니나!”

 

허어~. 옛날 이야기에나 있을 법한 아기장수가 우리집에 태어났구려. 아기장수는 역적의 운명을 태어났다고 하던데 이일을 어찌하면 좋을꼬?”

 

류보여는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스님 말에 임금을 잘못 만나면 역적이 될 수도 있다고 하였지만 선조의 성품이나 주변의 여러 신하들이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겨 지금까지 별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아들의 겨드랑이에서 비운의 아기장수와 같은 작은 날개를 발견하고서는 불안해지는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감, 아무리 아기장수 이야기가 걸리긴 해도 누가 사람의 겨드랑이를 보는 것도 아니고 숨기고 키웁시다. 나라를 위해 전장에서 공을 세우면 그때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다는 것이 알려져도 사람들은 개의치 않을 거예요.”

 

. 당신 말이 맞소.”

 

류보여와 아내 성씨 부인은 아이의 이름을 이라고 짓고 정성껏 키웠습니다. 용이 아홉 살 나던 해 인근 초계 향교로 공부를 하러 다녔습니다. 집에서 향교까지 거리가 십리(4)나 되었지만 용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공부하러 다녔습니다.

 

용은 다른 동무들에 비해 덩지가 아주 큰 편이었습니다. 게다가 붙임성도 좋아 아이들과 잘 어울렸습니다. 더욱이 똑똑하기까지 하여서 훈장선생님으로부터 늘 칭찬을 들었습니다.

 

향교 수업이 끝나면 용은 친구들과 함께 전쟁놀이를 하였습니다. 향교 동무들을 두 패로 나누어 진지를 지키고 공격하는 놀이를 하였습니다. 처음엔 함께 공부하는 형이 대장을 하였으나 용의 작전에 따라 항상 승리를 거두게 되자 나이 많은 형이 대장 자리를 양보해주었습니다. 그 바람에 용이 대장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용은 무술 실력도 동무들에 비해 뛰어났습니다. 여러 명이 맞붙어 무술을 겨룰 때면 용이 혼자 10명을 해치우는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때엔 순간적이 힘을 발휘해 동무들의 키를 훌쩍 뛰어넘기도 해 동무들이 탄성을 지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용이 등교할 때 어머니와 함께 아침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어머니께서 아버지 병환에 쓸 약초를 직접 캐러 가는 길이라 가는 길까지라도 배웅해드리고자 함이었습니다. 날이 좋지 않으니 다음에 가시라고 말렸는 데도 어머니는 한사코 가야한다고 하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께선 점심 전에 돌아오겠다고 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갈림길에서 헤어졌습니다. 어머니와 헤어진 용이는 향교로 왔지만 무거운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날따라 검은 구름이 낮게 깔리고 바람도 심상찮아서 어머니께서 산길에 다치시지나 않을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눈치 챈 훈장이 말했습니다.

 

용아,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민을 하느냐?”

 

어머니께서 무월산과 국사봉으로 약초를 캐러 가셨는데 하늘을 보니 심한 태풍과 폭우가 쏟아질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 날이 심상치는 않구나. 그러나 걱정을 말거라. 비가 크게 내리면 인근 절에 가셔서 머무시겠지.”

 

.”

 

용이는 훈장님의 말씀에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여전히 눈이 자꾸만 산으로 향하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한시진도 지나지 않아 뇌성 번개가 치면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용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산을 쳐다보았습니다. 먹구름이 산을 에워싸고 있었고 그 속에 번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번쩍이고 있었습니다. 관정사 옆으로 시내에서 흐르는 빗물이 콸콸 소리를 내는 것이 들리는 듯도 하였습니다.

 

스승님, 아무래도 어머니가 걱정되어 제가 국사봉으로 가봐야겠습니다.”

 

아서라. 어머니께선 비가 그칠 때까지 인근 절에서 기다리면 되지만 니가 산을 타고 올라가다가 행여 이 비에 다칠까 걱정이구나.”

 

저는 괜찮습니다. 어머니께서 오전 나절에 집으로 돌아오신다고 하셨기 때문에 아마 지금쯤 산을 내려오고 계실지 모를 일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어머니 마중을 나가야겠습니다.”

 

아직 너의 나이 열 살도 안 되었는데 어찌 어머니를 모시고 산을 탄다는 말이냐? 괜히 어머니께서 너를 보호하시려다 변이나 당하지 않으실까 걱정이다.”

 

훈장선생님, 염려 놓으십시오. 제가 어리긴 해도 거뜬히 어머니를 모시고 산을 내려올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용은 쏜살같이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한달음에 산의 초입까지 달려간 용은 사정없이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에도 개의치 않고 속도를 더 내어 달렸습니다.

 

정곡마을 뒤쪽 불메골에 다다랐을 때 용은 멈췄습니다. 계곡을 따라 황톳물이 콸콸 넘쳐 흘렀기 때문입니다. 용은 그러나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주변 버드나무 잎을 쭉 훑어서 황톳물 위로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버드나무 잎이 구름다리처럼 개울 건너편까지 펼쳐졌습니다. 버드나무 잎이 공중에 떠있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용은 몸을 날려 잎을 밟으며 개울을 건넜습니다.

 

콸콸 넘치는 개울을 건넌 용은 다시 축지법을 이용해 산을 탔습니다. 두 고개를 넘고 국사봉 계곡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내를 건너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자칫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는 날이면 급물살에 휩쓸려 목숨을 잃을 게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어머니! 잠깐 계셔요.”

 

아들의 목소리를 들은 성씨 부인은 주춤하며 고개를 들었습니다. 냇물 건너편에서 용이가 뛰어오고 있었습니다.

 

용아, 위험하다. 그냥 거기 서 있거라!”

 

그 순간 성씨 부인이 발을 헛디뎌 급류에 휩쓸리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용이는 경공법을 이용해 순식간에 넓은 개울을 건너뛰어 어머니를 부축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산에서 위험에 처해있던 어머니를 무사히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초계면 전체에 번지면서 용은 어르신들의 칭찬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합천 초계에 효성이 지극하고 무예가 뛰어난 소년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몇 년 지나지 않아 전국에 퍼졌습니다. 충청도에 사는 김 대감은 정승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 그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어졌습니다.

 

김 대감에겐 비슷한 또래의 여식이 있었는데 사위를 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합천 초계로 딸과 함께 갔습니다. 김 대감은 그런 속내가 있었지만 딸에겐 모른 체 하고 딸과 함께 합천으로 향했습니다.

 

김 대감은 은근히 딸이 그 소년이 마음에 들길 바랐습니다. 김 대감 일행이 초계에 도착했을 때 용은 정곡지 상류 쪽 장사발자국바위 위에서 무술을 연마하고 있었습니다. 딸과 함께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 대감의 입가엔 미소가 스몄습니다. 김 대감 역시 무예에 조예가 깊었기 때문에 소년의 검법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을 금세 눈치챘습니다.

 

. 과연 소문대로군.’

 

딸과 함께 한동안 땀에 젖은 상태에서도 연마를 게을리 하지 않는 소년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김 대감의 낯빛이 갑자기 어두워졌습니다.

 

이런!”

 

김 대감은 용이 땀에 절은 저고리를 벗는 순간 겨드랑이에 난 작은 날개를 보고말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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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로운 페이지를 만들어 3편을 옮기는 것보다는 그냥 이어서 하는 게 낫겠다 싶다. 지난 주 게을러 내 블로그에 옮기지 않았던 탓도 있다. 그래서 지난 줄거리는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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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범상치 않은 아이임이 틀림없다. 장차 나라에 큰 공을 세우거나 아니면 역적의 수괴가 될 터. 좀 더 지켜봐야겠다.’ 김 대감은 멀리서 한참 소년을 관찰하다가 딸을 데리고 충청도로 돌아갔습니다.

 

용의 무술 실력은 일취월장(日就月將)하였습니다. 용이 14살 되던 해가 임진(壬辰)년이었는데 이때 일본에서 대규모 군사들이 쳐들어와 난리가 났습니다. 이를 임진왜란이라고 하지요. 예전 대마도를 본거지로 한 왜구들이 부산 등지에서 설쳐대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부산포로 쳐들어온 왜군들은 파죽지세로 부산진성까지 쳐들어갔습니다. 부산진첨절제사 정발 장군도 갑작스런 왜군의 침입에 성을 사수하고자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중과부적이었습니다. 부산진성을 함락한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는 날이 밝자 바로 동래성으로 진격했습니다. 오전 나절 동래성에 도착한 왜군은 성을 에워쌌습니다.

 

동래성 망루에서 자꾸 물밀듯 몰리는 왜군의 병력을 파악하던 부사 송상현은 최대한 오래 버티는 전략 말고는 다른 수가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요청했던 지원군마저 동래성의 정황을 보자마자 승산 없는 싸움이라 여기고 되돌아간 뒤이기도 했습니다.

 

송상현은 망루에서 적장 고니시 유키나가를 내려다봤습니다. 유키나가는 말에 오른 채 몇 걸음 앞으로 나와 기고만장한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동래부사는 들으라. 너희가 이길 수 없는 전투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터. 싸우겠다면 싸워줄 것이로되 만약 싸우지 않으려거든 길을 열어라.” 유키나가는 말을 끝내고 바로 말고삐를 당겨 말이 앞발을 들게 했습니다.

 

~ 힝힝힝~.” 말이 내지르는 소리가 조선군을 비웃는 듯 들렸지만 송상현은 유키나가보다 더 목소리를 높여 맞받아쳤습니다.

 

싸우다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비키기는 어렵구나. 노략질이나 일삼는 도적들의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어디 보자꾸나!” 송상현은 바로 지휘봉을 들어 공격신호를 보냈습니다.

 

궁수 앞으로! 발사!” 옆에 서 있던 부장이 부사의 신호를 받아 공격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동래성곽에서 일제히 수천 개의 화살이 왜적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동래성 가까이 서 있던 왜군들은 허둥거리며 뒤로 물러났습니다.

 

일본군은 한동안 조선군과 대치하다 성곽이 낮은 동문으로 향했습니다. 왜군은 가슴에 화살을 받으면서도 계속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조선군 역시 왜군의 조총 공격에 겹겹이 쓰러졌습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왜군의 공격을 더는 막기 어려워졌습니다. 성벽을 넘어온 왜군이 안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조선군은 일당 백으로 막아섰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동래성은 함락된 거나 다름없어졌습니다. 송상현은 성내 우물 쪽으로 밀리며 끝까지 항거했습니다. 송상현과 여섯 명의 병사가 남았습니다. 이들을 중심으로 수백 명의 왜군이 둘러쌌습니다. 송상현은 장검 손잡이를 꼭 움켜쥔 채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졌습니다. 그때 왜군들 사이가 벌어지더니 유키나가가 걸어나왔습니다.

 

당신이 부사인가?”

그렇다. 어서 덤비거라!”

이건 끝이 난 싸움이다. 항복하라.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어림도 없는 소리 말라. 내가 목숨을 구걸하고자 왜놈들의 개가 될 성싶으냐?”

개가 되든 소가 되든 살아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좋지 않은가? 주군을 바꾸어 섬기기만 하면 죽는 날까지 평생을 호의호식하면서 살 수 있게 해주겠다.”

당치않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너희와 같을 거라고 여기지 마라.”

오냐. 소원대로 죽여주마! 죽여서 너의 머리를 조선의 왕에게 선물로 바쳐야겠구나. 쳐라!”

 

이때 송상현은 우물 위로 뛰어올랐습니다.

네놈들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송상현은 장검을 거꾸로 쥐고 자신의 가슴에 찔러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우물 아래로 몸을 던졌습니다.

이런! 지독한 놈.”

장군 우리도 따라가겠습니다.”

송상현 부사의 부하들도 따라서 우물 속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거의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라 왜군은 멍하니 쳐다만 볼 뿐이었습니다.

 

동래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조정에 전달되었습니다. 선조대왕은 손톱을 깨어물고 근정전 안을 왔다갔다하였습니다. 지금 이대로라면 전 국토가 왜적에 의해 도륙 날 것이 틀림없다. 그때야 선조대왕은 9년 전 이율곡이 국방강화를 주창했을 때 귀담아들었으면 이번 왜란을 겪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후회했습니다.

 

전하 왜적들이 합천 대야성까지 진격해 오고 있다 하옵니다. 이 정도의 속도라면 사흘 안에 이곳 한양까지 쳐들어올 가능성이 농후하옵니다. 명나라로 피신해 옥체를 보존하옵소서.”

내관이 다급한 목소리로 선조에게 아뢰었습니다. 그러자 선조는 갈등에 휩싸였습니다.

 

왜적의 목표는 내 목일 것이다. 종묘사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가 살아야 한다. 그러나 왜군이 백성을 짓밟고 있는데 나 혼자 살자고 도망을 간다면 백성의 어버이로서 그것도 못 할 짓이다. , 어쩌면 좋을꼬?’

 

그러나 선조가 고민의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신하들은 평양성으로 피신할 준비를 다 마쳤습니다.

 

전하 지금 나서지 않으면 옥체를 보존키 어렵사옵니다.” 내관들은 망설이는 선조의 등을 떠다밀 듯이 하면서 연(임금의 가마)에 태웠습니다. 그날따라 비가 장대같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합천에선 정인홍이 의병을 불러모으고 있었습니다. 14살 건장하게 자란 용이 의병모집 소식을 듣고는 아버지께 자신도 이번 난에 의병으로 참전해 백성과 나라를 구하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네 비록 아직 어린 나이지만 장한 생각이구나. 정인홍 의병장께 전할 서찰을 써 줄 테니 찾아가거라.”

류보여는 아들의 모습에 흐뭇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아들이 전쟁터에서 성과를 올려 무관으로서 나라의 기둥이 되길 은근히 바랐습니다.

 

정인홍을 찾아간 용이 서찰을 전하자 의병장 정인홍은 찬찬히 읽으며 입에 미소를 띠었습니다.

, 네가 그 아이로구나. 너의 생각이 기특하다. 이틀 후 왜군이 포진해 있는 상주를 칠 것이다. 너에게 서른 명을 줄 것이니 선봉에 서서 적의 방어망을 뚫어보거라.”

 

용은 이틀 후 의병 서른 명과 함께 적진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을 입구 숲 속에서 관찰하니 조선 백성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왜군들만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용은 점심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왜군들이 밥을 먹느라 방어태세가 잠시 흐트러지는 때를 노려 일격을 가한다는 계획입니다.

 

때가 되었습니다. 용은 의병 서른 명에게 각기 3명씩 조를 짜서 쥐도 새도 모르게 적을 하나씩 제거해나가는 전술을 지시하고 작전을 펼쳤습니다. 용의 조가 마을 골목에 들어섰을 때 왜군들이 용을 발견했습니다.

 

누구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용의 칼날은 순식간에 8명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뒤따르던 의병들은 용의 전광석화 같은 무술 실력에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용의 작전은 유효했습니다. 적이 방심한 틈을 타서 소리없는 바람같이 처치하는 전술은 왜군 200명을 순식간에 제거하는 효과를 보았던 것입니다. 아군은 어느 누구도 손끝 하나 다치지 않았습니다. 완벽한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서른 명의 의병과 함께 본진으로 돌아온 용은 정인홍 의병장에게 전과를 보고했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좀 나이가 든 의병이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대장님, 이 도련님 무술 실력이 장난 아닙니다요. 눈 깜짝할 사이에 왜군들이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는데, 우린 거의 구경만 했습죠. 대장님께서 직접 보셨어야 했는데. 헤헤.”

 

용은 정인홍이 이끄는 전쟁마다 참전해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정인홍의 의병은 왜군에게 두려운 존재로 각인되었습니다. 왜군들은 산 속에서 정인홍의 의병부대를 만나게 되면 도망갈 궁리부터 하였습니다. 정인홍의 신임을 얻은 용은 늘 선봉장에 서서 왜적을 물리쳤습니다.

 

용의 무공은 날로 높아져 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용의 지도력도 여느 의병장 못지않았습니다. 나이는 비록 어리지만 용을 따르는 아저씨와 형님들이 많았습니다. 어느새 용은 다른 의병들로부터 장군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우리 용이 장군 만세!”

용맹하고도 뛰어난 지략을 지닌 용의 의병 활동은 조선의 의병과 관군에게는 용기를 주었고 반면 왜군에게는 공포로 다가가 전쟁을 전반적으로 유리하게 이끄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마침 남해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이 백전백승을 거두는 바람에 육지에서 그렇게도 설쳐대던 왜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무기와 식량의 보급로를 차단당한 왜군의 전력은 급격히 무디어졌습니다.

 

전쟁은 벌써 4년째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용의 나이 벌써 열여덟, 장성한 어른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처음 왜란이 시작되었을 때 의주까지 피신했던 선조가 다시 한양으로 돌아온 것은 조선의 수군과 의병들의 활약 덕분이기도 했습니다. 선조는 전선에서 올라오는 장궤를 보면서 일희일비하였습니다.

 

여전히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지만 왜군도 이제 지쳐서 처음처럼 강력하게 휩쓸고 지나가는 동력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전쟁 중이긴 하지만 짧게는 며칠, 길게는 서너 달까지 전쟁이 없는 날도 있었습니다.

 

이런 때에 정인홍은 조정에 나가 선조대왕을 알현했습니다. 정인홍은 임금에게 내금위장으로 자신의 휘하에 있는 용을 기용하면 어떻겠냐며 천거했습니다. 선조 역시 용의 무공이나 애국심을 그동안 각종 보고서를 통해 확인한 사항이므로 좋다고 하였습니다.

 

며칠 후 조정에서는 어전회의가 다시 열렸습니다. 선조가 신료들에게 용을 내금위장으로 임명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몇몇 신료들이 반대를 하였습니다.

전하, 류용이란 자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종2품 내금위장을 맡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옵니다. 통촉하여 주옵소서.”

내 듣기로 류용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그 애국충절의 마음을 의심할 바 없고 무공 또한 뛰어나니 짐을 보필하는 데 조금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오. 괜한 반대로 짐의 심기를 불편케 말라!”

선조는 몇몇 신하의 반대를 단호하게 뿌리치고 발표한 대로 이른 시일에 임명식을 거행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용은 더 큰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임용식이 있기 하루 전, 용은 한양으로 갈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각 조정에서 신하가 올린 장궤를 본 선조대왕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습니다.

 

얼마 전 이몽학이라는 자가 충청도 홍산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매 권율 장군이 토벌군을 보내어 진압했습니다. 반란군 중에 생포한 자가 있사온대 반란을 도모한 역적들의 이름을 실토받은바 다음과 같습니다. 최담년, 곽재우, 고언백, 류용, 홍계남, 김덕령’.

그 명단에 바로 내일이면 왕실을 지키는 내금위대장으로 임명할 류용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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