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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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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 만난 날이 1995년 6월 30일이었다. 하얀 옷으로 단장한 멋진 신사였다. 난 처음부터 그가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할 것이라는 예감을 했었다.

 

그의 이름은 액센트 멀티다. 기어는 수동이며 에어컨도 잘 나왔다. 매일 그는 우리와 함께 했다. 특히 나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짝이었다.

 

어떤 때엔 함께 목숨도 잃을 뻔하기도 하고 어떤 때엔 저녁놀이 깔린 강가에서 멋진 지평선을 감상하기도 했다. 그렇게 고락을 함께한 이 친구와 어제 이별했다.

 

보험 재가입 시기에 맞춰 폐차를 계획하고 있다가 마침 임자가 나타나 팔게 되었다. 세차를 하지 않아 멋지다는 표현이 더 이상 어울리지 않지만 오랜 흰색 친구가 새 동반자로 맞이한 사람은 몽골출신의 '다기'라는 사람이다. 자동차를 고쳐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있다고 하니 '흰색신사'는 반가운 새 친구를 만난 셈일 터이다.

 

17년, 큰 아이와 나이가 같다. 큰 아이는 2월에 태어났고 흰색신사는 6월 말에 만났으니 큰 아이보다는 동생이다. 자동차의 평균 보유기간을 보면 오랜 기간 함께 한 셈이다.

 

17년 동안 엔진오일이나 타이어, 스타트 모터를 간 것 말고는 수리한다고 손 댄 것은 없다. 아, 에어컨 프레온 가스 한 번 주입한 적이 있구나. 늘 안전운전을 해서 그런지 지금까지 사고도 거의 없었다.

 

 

가장 컸다고 느끼는 사고가 진해에서 살 때 출근 중에 장복산 구도로를 내려올 때, 그때 김건모의 '스피트'가 흘러나오고 있을 때였다. 당시 그 노래가 한창 인기있던 때였다. 구불구불한 산길 전방에 청설모 한 마리가 길 가운데 버티고 있지 않은가. 순간 오만 한 가지 생각, 이걸 밟고 지나가? 아니면 비키길 기다렸다가 가? 그냥 가자고 결론을 내리고 거의 앞에 도달했을 때 마음이 바뀐 것이 사고를 불렀다.

 

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꺾었는데 차가 왼쪽 절벽아래로 향하는 게 아닌가. 오른쪽으로 다시 핸들을 돌리고 왼쪽으로 돌리고 하기를 여러번. 결국 오른편 우수도랑으로 바퀴가 빠지면서 순간의 위급했던 상황은 종료됐다. 다행히 차는 전혀 부상을 입지 않았다.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그 이후로 김건모의 '스피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2년 전 쯤엔 음료를 실은 트럭이 골목 교차로에서 서행중이던 '흰색신사'의 뒷부분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트럭 기사 말로는 제동불량이라고 했다. 큰도로 교차로 신호대기 때문에 골목 교차로까지 차가 밀려 빠져나갈 수 없었지만 교차로 교통사고라며 보험회사에선 50대 50으로 처리하겠다고 알려왔다.

 

말도 안되는 결론에 강력항의해 70대 30으로 하긴 했지만 이 역시 처음엔 받아들이지 않다가 우리 주머니에서 돈이 한 푼도 나갈 일이 없다는 것에서 합의를 본 것이다.

 

당시 차 수리비가 31만 원 나왔다. 정비소에선 폐차를 하라고 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아직 고장 한 번 안나고 잘 나가는 차를, 멀쩡한 차를 왜 폐차해야 하느냐고 정비소 직원에게 따졌더니, 차 값이 30만 원이란다. 참내. 웃기는 현실을 직면하고 잠시 허탈했지만 수리비를 어쨌든 조금 깎아서 차를 끌고 나왔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폐차를 하거나 매각을 생각했던 이유는 잠시 자동차 없이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다 몇 달 후 다른 중고차를 매입할 계획이, 확실한 건 아니지만 세워져있기 때문이다. 그 차는 오토여서 아내가 몰고다닐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오랜 동안 운전에서 좀 자유로웠으면 하는 바람이 이제 서서히 실행되는 과정이다. 17년 고락을 함께한 '흰색신사' 액센트 멀티와는 이제 작별했지만 새 친구와 잘 지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내도 지금까지 함께 살았던 정이 남아 있어서인지 많이 아쉬워했다.

 

큰 아이는 차량 매각 소식에 "엥! 진짜로?"하면서 못믿겠다는 듯 아쉬워한다. 어쨌든 나는 시원하다. 후련하다. 그리고 아주 조금 섭섭하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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