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대패 풍물공연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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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어떻게 시작할까 고민이 고민을 하던 중 딸과 전설에 대해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줄거리가 나오고 플롯이 절로 뽑아져 나왔습니다.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딸과 함께 나누니 머릿속이 자연 정리되는 듯하면서 오히려 이번 1편은 쉽게 손끝에서 나왔습니다. 상사병, 내가 많이 겪어봐 그런것일지는 몰라도 이번 용다리 전설을 쓰면서 글쓰기가 재미있을 것 같네요.
촉석루가 있는 진주성을 방문해보신 분이라면 공북문 서쪽 방향으로 좀 떨어진 곳에 문양이 새겨진 돌 파편들이 널려 있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옆에는 조그만 안내판이 세워져 있지요. ‘용다리전설’이라고 적힌 이 안내판에는 지금은 없어진 용다리에 얽힌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돌 파편들은 그 용다리의 조각들입니다.
적힌 글을 읽어보면, 옛날 벼슬아치 집에 돌쇠라는 머슴이 있었는데 상전인 아씨를 사모했답니다. 옛날에야 신분체제가 확실해서 그럴 수 없음에도 그랬다는 건 언감생심이죠. 그런데 이 아씨도 돌쇠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 서로 얼마나 가슴 아팠겠습니까.
결국, 아씨가 상사병에 앓다가 죽게 되고 돌쇠도 슬픔을 못 이겨 미쳐버린 나머지 목을 매 저세상으로 아씨를 따라갔다는 얘기입니다. 옛날 이 용다리가 있던 개울엔 개구리가 그렇게 많았다고 하던데 짝이 있는 연인이 지나가면 울음이 뚝 그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상사병에 걸린 사람이 이 다리를 두 번 왔다갔다하면 씻은 듯이 상사병이 나았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이번 전설텔링 역시 위의 이야기에 뼈를 덧대고 살을 덧붙여 이룰 수 없어 안타까웠던 남녀의 사랑을 좀 더 세밀하게 풀어나가 볼까 합니다.
· · · · · · · · · · ·
“연화야, 제발 전화 좀 받아라. 니가 오해한 걸 가지고 이렇게까지 하는 건 너무 심한 거 아니니?”
윤석은 문자를 전송하고는 화가 치밀어 핸드폰을 침대로 던졌습니다. 방안을 정신없는 사람처럼 왔다갔다하더니 다시 핸드폰을 주워들고 전화를 겁니다.
“고객님의 핸드폰이 꺼져있어…”
윤석은 장롱문을 열고 늘 입던 외투를 꺼내 들고 학교에 가는 것처럼 가방을 챙겨 방을 나섰습니다. 부모님께는 학교에 간다고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토요일 하루쯤은 집에서 좀 쉬든가 안 하고…, 아침도 안 먹고… 한 술이라도 뜨고 가지….”
윤석의 귀에는 어머니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윤석은 연화가 아르바이트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기웃거리거나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만 합니다. 서로 사귀기 시작하면서 연화가 내세운 조건 때문입니다. 절대 일하는 곳엔 찾아오지 않기. 연화는 그렇게 크지 않은 마트에서 토요일과 일요일에 하루 8시간씩 일을 합니다. 반대로 집안형편이 괜찮은 윤석은 따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데 황금 같은 토, 일요일에 애인인 연화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것이 늘 불만이었지요.
윤석은 아무리 일하는 곳은 찾아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어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당장 해명하고자 찾아왔지만 막상 연화의 일터에 찾아와서는 얼굴을 들이밀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두어 시간을 그렇게 마트 앞을 왔다갔다한 윤석은 마음속으로 연화에게 할 말을 다해버린 듯했습니다.
점심때가 되자 연화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여긴 오지 말라고 했잖아!”
“그래서 안 들어갔잖아. 왜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씹는데? 내가 뭘 잘못했다고?”
윤석은 그동안 가라앉았던 화가 다시 치밀어올랐습니다.
“적반하장이네. 지난주 은서랑 둘이 동물원 갔다며? 뭔데?”
연화 역시 윤석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지난봄 대학 입학 후 두 사람은 우연한 기회에 오랫동안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었는데 이때 서로 호감을 느끼고 계속 사귀어왔지요. 생활 여건이 좀 차이가 났지만 뭔가 서로에게 끌리는 무언가 있었어요.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함께 시간을 보내다 헤어졌지만 바로 또 보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집으로 가다 보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 헤어진 곳으로 돌아오면 서로 마음이 통했는지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았지요.
연화는 윤석의 얼굴도 보기 싫다는 듯 홱 돌아서서 진주성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봐야 할 거 아냐?”
윤석이 연화를 뒤쫓아가며 손목을 잡았습니다.
“들으나 마나 한 이야기 아냐? 그럼 내가 알기 전까지 왜 내게 그 이야길 하지 않았는지부터 말해봐.”
연화가 손목을 뿌리치며 쏘듯한 눈을 하고 말했습니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니가 신경 쓸 만큼 중요한 일도 아니고….”
“중요하지 않다고? 그렇다면 더 이상 너랑 사귈 이유도 없네. 양다리 걸치는 게 네 취미라면 다른 아이들이랑 놀지 그래? 난 깨끗하게 빠져줄게.”
“그게 아니라니까. 그냥. 우연히 그렇게 됐어. …. 설명하자면 복잡해.”
윤석은 갑자기 말을 줄였습니다. 자꾸 변명하면 할수록 일이 더 꼬이게 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연화는 윤석을 한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몸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뭔가 이상한 기운이 몸을 끌어당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몸이…, 왜 이러지?”
“여, 연화야!”
윤석은 연화의 손을 잡았습니다. 연화의 몸이 공중에 떠올랐습니다. 고목나무 옆으로 뭔가 둥근 형태로 아지랑이 같은 것이 빙빙 돌면서 연화의 몸을 끌어당겼습니다. 윤석은 연화의 손을 더욱 꼭 잡고 끌어당겼습니다. 그러나 윤석의 힘으론 역부족이었습니다. 이상한 곳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에 윤석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바로 죽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연화의 손을 놓을 수도 없었습니다.
‘이런, 줸장!’
윤석은 연화의 손을 잡은 채 그대로 웜홀 속으로 빨려들어 갔습니다.
숲에서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큰 기와집 담장 너머로 보이는 작은 방문에 여인의 그림자가 비치고 있습니다. 조금씩 그림자가 흔들리기도 합니다. 머리를 빗고 있던 여인이 갑자기 쓰러집니다. 그때 방에서 이상한 기운이 뻗쳤는지 등잔불의 몇백 배나 되는 빛이 방 밖으로 번져나오는가 싶더니 지진이 난 것처럼 집이 울렁였습니다.
이와 거의 동시에 행랑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 사람이 이방 저방에서 뛰쳐나왔습니다. 정자관을 쓴 양반과 그의 부인, 그리고 이 집의 하인들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갑작스런 지진과 이상한 현상에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마, 마님! 아씨 방에 불이 난 듯합니다요.”
하인 한 명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제야 딸의 방을 본 양반과 부인은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방문을 열어젖혔습니다. 딸이 머리를 빗던 모습 그대로 쓰러져 있었습니다.
“화연아, 얘가 무슨 일이야! 얘, 곱단아 냉수 좀 가져오너라.”
방으로 쫓아 들어간 부인은 화연을 한 팔로 받쳐 앉으며 뺨을 톡톡 쳤습니다.
“음….”
화연은 게슴츠레 눈을 뜨면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이제 정신이 드느냐?”
화연의 아버지 이 군수(郡守)가 딸의 얼굴을 살피며 말했습니다.
“네, 아버지. 괜찮습니다.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는데 이제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혹시라도 모르니 내일 날 밝거든 의원을 부르자꾸나.”
어머니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딸의 얼굴을 만지며 말했습니다.
같은 시각, 행랑채.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쓰러진 돌쇠의 몸에서 이상한 빛이 감도는 모습을 본 행랑아범은 한동안 열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얘, 얘, 돌쇠야. 일어나봐!”
초록빛이 돌쇠의 몸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 함부로 손을 대지도 못한 채 뒤로 물러앉은 상태였습니다. 초록빛이 서서히 빠지자 행랑아범은 발로 돌쇠의 허리를 툭툭 차며 말했습니다.
“돌쇠야, 돌쇠야! 이 녀석이 갑자기 왜 이러나?”
“아이, 어지러워.”
힘겹게 바로 앉은 돌쇠의 눈에서 초록빛이 서서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서 행랑아범이 조심스레 다가가 앉았습니다.
“돌쇠야, 괜찮니?”
“무슨 일이죠? 아직 어지럽긴 한데…. 이상해요. 아저씨.”
행랑아범은 돌쇠의 안색을 살폈습니다. 원상태로 돌아온 듯합니다.
“이제 괜찮아 보이긴 하네.”
“아저씨, 이상한 꿈을 꿨어요. 너무 이상해서 말로 설명할 수가 없어요. 이상한 옷을 입은 아이가 제 몸속으로 들어오는 그런 거였는데….”
“에끼, 이놈아! 잠시 그 순간에 무슨 꿈을 꾼다고 그래. 됐다. 괜찮은 거 같으니 잠이나 자라. 난 밖이 왜 소란스러운지 보고 들어올 테니.”
(다음 주 2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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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면서, 아니 처음엔 전혀 계획에 없었는데 쓰다보니 재미있는 발상이 절로 떠올랐다. 포도청 장교를 코미디언으로 만드는 일이다. 무거운 작품에 잘 등장하는 감초역 배우들을 떠올렸다. 단편소설에서 이러한 설정이 먹힐까?
합천군 초계면 정고봉 선덤바위에 얽힌 전설
(지난 줄거리) 왜구의 노략질이 극심한 때에 조정에선 중신들이 왜구를 강력히 징벌해야 한다는 주장과 일본을 자극하지 말자는 주장이 팽팽하게 엇갈리면서 선조대왕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전회의에 참석했던 류보여는 답답함을 느끼면서 대대로 문신집안이었던 자신의 집안에 무인이 나와 우리 백성을 괴롭히는 왜적을 물리쳐서 공을 세웠으면 하는 바람을 가집니다.
집으로 돌아온 류보여는 인근 관정사 스님이 일러준 대로 조상의 묘를 옮기는데, 아내가 이듬해 범상치 않은 아이를 낳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음을 발견하고 걱정이 들긴 했지만 아이의 이름을 용이라고 짓고 정성껏 키웁니다.
용은 향교에 다닐 때부터 다른 아이들에 비해 덩치가 컸음은 물론이고 아주 똑똑했습니다. 그래서 향교 수업이 끝나면 늘 하던 전쟁놀이에서 항상 대장을 맡아 놀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가 아버지 병환에 쓸 약초를 구하러 산에 간 사이 폭우가 쏟아지자 비범한 무공을 발휘하면서 산에 들어가 어머니를 구출해 나옵니다.
이 사실은 순식간에 전국에 소문으로 퍼지는데 충청도 김 대감이라는 사람이 용을 사위로 삼을 생각에 딸과 함께 합천으로 왔다가 용의 겨드랑이에 있는 날개를 발견하고 고민에 빠집니다.
몇 년이 지난 임진년, 왜란이 일어납니다. 용의 나이 열네 살. 왜군이 부산진성과 동래성을 차례로 함락하자 용은 정인홍이 이끄는 의병에 지원하게 됩니다. 어린 나이지만 용은 정인홍의 휘하에서 왜적을 무찌르는데 큰 공을 세웁니다.
지략과 무공이 뛰어나 용은 머지않아 동료 의병들로부터 ‘장군’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합니다. 용의 활약은 정인홍에 의해 선조대왕에게도 전해집니다. 정인홍은 임금에게 용을 내금위대장으로 발탁하도록 천거합니다. 그러나 이런 파격적인 인사에 반대파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힙니다. 하지만, 선조의 단호함으로 반대파에서 더는 용의 벼슬에 대해 거론 못하도록 합니다.
그러던 중, 충청도 홍산에서 이몽학이란 자가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데 권율 장군에 의해 진압됩니다. 그런데 그 반란에 가담했다 추포된 한현이라는 사람이 반란 배후인물로 홍의장군 곽재우 등 여러 의병장과 충신들을 무고하게 되는데 그 명단에 류용이란 이름도 들어 있습니다. 신하가 올린 이 장계를 본 선조대왕은 화들짝 놀라게 됩니다.
◇ ◇ ◇ ◇ ◇
“역적들의 이 자백은 분명 잘못된 것일 게다. 류용은 아직 어린 나이인데다 정인홍 휘하에서 줄곧 합천과 경북을 오가며 활약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충청도에서 일어난 반란에 가담했을 리가 없다. 게다가 곽재우, 김덕령 같은 충신이 이 반란에 연루됐을 가능성도 없지 않으냐? 다시 신문을 해서 반란자들이 거짓 발고를 하지 못하게 하여 배후를 밝혀내라 이르라.”
선조는 장계를 올린 신하에게 이몽학 사건에 대해 재수사를 할 것을 지시하고 몸을 돌려 용상으로 향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전하, 신 김고언 한 말씀 더 아뢰겠습니다.”
신하들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습니다. 선조는 임금의 말이 끝났는데 누가 또 토를 다는가 싶어 불쾌한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머리를 조아리고 서 있는 사람은 사간원 김고언 대간이었습니다. 김고은 사간원 대간은 용이 향교에 다닐 때 어머니를 구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던 바로 그 김 대감이었습니다.
“류용이란 자가 어렸을 때였습니다. 제가 마침 합천 초계를 지나던 중 유심히 본 적이 있사온데 그는 이번 역모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지는 몰라도 자칫 나라에 근심거리가 될 인물이 될 것입니다.”
“대간께선 무슨 이유로 젊은 충신을 그리 위험인물로 몰아붙이는 것이오?”
선조는 자신이 신망하는 정인홍이 추천한 인물을 다른 신하가 깎아내리는 이전투구의 모습에 짜증이 났으면서도 일면 호기심이 일어 하문하였습니다.
“류용은 신체에 남들과 다른 특징이 하나 있사온데, 그것은 이야기 속 역적 아기장수처럼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린 나이에도 두려움 없이 전쟁터에 뛰어들어 수많은 공을 세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의병들이 벌써 그 어린 아이를 ‘장군’이라 칭하며 떠받든다고 하니 이는 필시 향후 근심거리가 될 게 자명합니다. 일찍 우려를 제거하심이 종묘사직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촉하여 주십시오.”
류용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다는 이야기에 조정 안은 술렁거렸습니다. 대부분 신료들은 아기장수 이야기를 알고 있었고 그러한 인물은 역적이 될 팔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부 정인홍을 두둔하는 쪽 외의 대부분 신하들은 임금에게 류용의 내금위장 임명은 불가하다고 다시 간언을 하였습니다. 정인홍 쪽 신하들은 뜻밖의 소식에 일언반구 말도 못하고 어리둥절해하였습니다.
선조는 이번만큼은 고민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영원한 신하로서의 아기장수라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러한 인물의 운명이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팔자라면 화근이 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선조가 갈등에 휩싸인 채 용상 앞에서 왔다갔다하는 사이 김고언 쪽 신하들이 모두 한목소리로 다시 주청을 올렸습니다. 신하들의 강력한 주장에 선조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류용을 잡아들이라 하라.”
임금의 명령이 떨어지자 한 시진도 지나지 않아 의금부 장졸의 말발굽 소리가 합천으로 향하였습니다.
왜군과의 전쟁이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이른 오월, 합천 초계 정곡마을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온 듯했습니다. 백성들은 다시 농사에 전념할 수 있었고 농군으로, 의병으로 왜적에 맞섰던 농민 중에서 심하게 부상을 입은 사람은 나라에서 파견된 의료진에 의해 치료를 받았으며 부상이 덜한 사람은 이웃의 농사까지 거들며 모를 심었습니다.
“이제 왜적들이 제 나라로 모두 돌아갔을까? 흉악한 놈들, 이참에 우리 조선도 군사를 많이 모집해서 그놈들 나라에 가서 짓밟아버려야 해!”
모를 심던 한 농부가 흥분한 채 함께 있던 다른 농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농부 역시 왜군의 노략질에 치를 떨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나라에서 왜놈들을 치러 가겠다면 나도 당장 곡괭이라도 들고 따라나설 것이야. 나도 전쟁 통에 자식새끼 다 잃었지만 뒷집 오 서방네는 일곱 살 아들래미 하나 남고 다 죽었지 않은가. 복수를 해야지. 나라가 나서서 복수를 해야 해. 안 그러면 대대손손 그놈들이 우리를 괴롭힐 거야.”
그때 수십 기마병과 수백 포도청 나졸들이 요란한 발걸음 소리에 먼지까지 뿌옇게 일으키며 큰길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농부들은 연유를 알 까닭이 없었습니다. 나졸들이 류용의 집을 에워쌌습니다. 포도청 장교가 대문을 들어서며 소리를 쳤습니다.
“어명이요! 류용은 어서 나와 무릎을 꿇라!”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대답이 없자 관리는 다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역적 류용은 어서 나와 어명을 받들라!”
“나리, 집에 아무도 없는 듯합니다. 대청 댓돌에 신발도 없고….”
뒤에 서 있던 나졸들이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장교의 귓등이 발개졌습니다. 어명을 핑계로 부하들 앞에서 어깨와 배에 있는 힘 다 주어 위엄있게 굴었던 장교는 괜스레 안에 아무도 없다고 말한 나졸을 향해 고함을 쳤습니다.
“야, 이 녀석아! 그런 건 진작에 말을 해야지.” 장교는 칼집으로 나졸의 전립(군사용 모자)을 툭툭쳤습니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나졸들이 이번에는 포복절도를 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마실 나갔던 류용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무슨 일이오이까?”
포도청 장교가 류 대감에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습니다.
“대감 의금부에서 용이를 잡아들이라는 분부가 하달되었습니다. 죄명이 역적도당들과 반란을 모의했다는 것이온데 저희로서도 믿기지 않지만 지엄한 어명이라 어쩔 도리가 없사옵니다. 용이에게 순순히 오라를 받으라고 일러주십시오.”
류보여와 부인 성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 얼마나 많은 위험을 감수하며 나라와 백성을 구하고자 충성을 다했던가? 그런데 역적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용이가 역적모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우리 모두가 아는 일이 아니오? 나라에 충성한 것도 죄라면 그것밖에 죄가 없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이오.”
포도청 장교도 입장이 난처했지만 명령에 따라 용을 압송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뒤에서 나졸 한 명이 관리 앞으로 달려 나왔습니다.
“나리, 류용이 마을 뒷산에서 무술연마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모두 뒷산으로 간다. 나를 따르라!”
기병과 나졸들이 모두 뒷산으로 향했습니다. 용은 나졸들이 대거 몰려오는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인가 의아했습니다. 수련을 멈추고 바위 위에 서서 일단의 기마병들과 나졸들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잔말 말고 류용은 어명을 받들라!” 용은 어명이라는 말에 얼른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내일 내금위 대장으로 임명한다더니 이런 절차를 밟는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내심 기분이 좋았습니다.
“역적 류용은 이몽학과 연합하여 조선을 전복할 목적으로 반란을 일으키려 하였으므로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 이에 류용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그 죄과를 달게 받으라.”
청천벽력 같은 장교의 말에 용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죄라니?’ 속으로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봐도 죄라고 할 만한 일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이몽학이라는 사람은 만난 적도,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리, 전 이몽학이란 자가 누구인지조차 모릅니다. 그런데 저더러 그와 역모를 꾀했다니 이건 분명 누군가의 모함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건 나도 모르겠고. 어쨌든 너를 잡아들이라는 것은 지엄하신 어명이고. (아이씨, 나한테 와 이런 일을 시켜가지고…) 나, 나는 그 명령에 따를 뿐이다. 순순히 오라를 받고 의금부로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용은 장교의 말을 듣는 순간 지금 잡혀가면 시체로 나오는 것 외엔 방법이 없음을 눈치 챘습니다.
“없는 죄를 뒤집어씌워 저를 압송하려는 것을 보면 저의 죄가 있든 없든, 또한 밝혀지든 밝혀지지 않든 아무 상관이 없는 일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어명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무엄하다. 감히 어명을 어기겠다는 것이냐?”
“어명이든 동네 사또의 명이든 합당해야 따를 것이 아닙니까? 제가 정인홍 장군 휘하에서 왜적을 물리치는 일에만 나섰다는 것은 나리도 아실 텐데 왜 저를 잡으려 하시는지요? 전 그것이 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모르시는 분이라면 또 이해하겠습니다.”
“참 내, 나보고 어쩌라고? 나야 윗사람의 명령만 받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더냐? 나를 힘들게 하지 말고 순순히 따라나서거라.” 용은 포도청 장교의 말에 더욱 화가 났습니다.
“명령이 중요합니까, 옳고 그름이 중요합니까? 명령 이전에 무엇이 옳은지 그것이 우선이지 않습니까? 저는 여기서 죽으면 죽었지 죄없이 잡혀가지는 않겠습니다.”
용의 확고한 말에 장교도 난처해졌습니다. 뒤에 서 있던 나졸들도 들어보니 용의 말이 일리 있다고 여겼는지 ‘그래, 맞아. 우리가 왜 왜적을 물리치고 공을 세운 용이를 잡아야 해?’하면서 웅성거렸습니다.
“야! 시끄러.”
장교는 나졸들에게 버럭 소리를 지른 다음 용에게 최후통첩을 하다시피 말했습니다.
“용아, 어찌 됐든 난 널 잡아야 하거든. 그러니까 안 잡히려면 지금 도망가는 게 좋을 거다.” 장교는 용에게 이렇게 말하고 뒤에 서 있는 나졸들에게 소리쳤습니다.
“잡아라!”
그 순간 용의 몸이 나무 꼭대기까지 튕겨 오르며 멀리 달아났습니다.
“빨리 쫓아라!”
“아니, 저렇게 빠른데 어떻게 쫓아요?”
“아, 잔말이 왜 이리 많아? 그냥 쫓아가서 잡아와! 용이를 못 잡으면 모두 돌아가서 단체 기합이다. 각오햇!”
용은 순식간에 정고봉을 넘어 천황산 꼭대기까지 피신했습니다. 그러나 용은 집에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걱정되었습니다. 괜히 자신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고초를 겪지나 않을까 마음이 불안해서 더는 숨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용의 집으로 돌아온 관군들은 용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관아로 압송했습니다. 의금부에서 온 장교는 용의 아버지 류보여에게 아들을 역적으로 키운 죄를 물어 고문을 가했습니다. 이 소식이 산에 있는 용에게 전해졌습니다. 하룻밤을 산속에서 지낸 용은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아무 죄가 없긴 하지만 자신 때문에 부모님이 관아에서 고초를 겪는다는 것을 생각하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비명이 실린 밤 공기는 순식간에 용의 가슴을 멎게 할 정도로 차가웠습니다.
다음날 아침, 용은 하인 오 서방을 불렀습니다.
“아저씨, 부탁이 있어요. 당도산 장군설에 가면 유달리 길게 뻗은 쑥대가 있을 겁니다. 갈래가 3개로 난 것인데 그중에서 동쪽으로 난 쑥대를 꺾어서 가져오세요. 그리고 관아로 가서 제가 여기 있다고 하세요.”
“도, 도련님. 무슨 말씀이세요? 관군에게 잡히면 죽음을 면치 못하실 텐데…, 쇤네 그리 못합니다요.”
“아녜요. 제게 다 생각이 있어서 그래요. 그냥 시키는 대로 해주세요.”
오 서방은 용이 시키는 대로 하였습니다. 관군들이 용이 있는 정고봉 중턱까지 몰려왔을 때 용은 오 서방에게 쑥대로 자신의 양쪽 겨드랑이를 툭툭 치라고 했습니다. 오 서방이 용의 겨드랑이를 쑥대 끝으로 툭툭 치자 용의 발부터 몸이 서서히 돌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용을 잡으러 왔던 관군들은 신기한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장교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용을 쳐다보았습니다. 아무도 용에게 가까이 가질 못했습니다. 열 걸음 정도 떨어진 상태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춤거리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나리, 이제 저는 죽습니다. 아버지의 소원대로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고자 했지만 나라님은 저의 충정을 오히려 역적으로 몰아버리는군요. 아무 죄 없는 부모님을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시절을 잘못 태어난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장교와 나졸들은 용의 말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용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니 이 또한 불효막심한 노릇인데 자신이 이러지 않으면 부모님이 고문으로 돌아가실 수도 있으니 어쩔 수가 없었지요. 용의 눈물이 몸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바위로 변한 부분에 홈을 내었습니다. 아래에서부터 바위로 변하던 몸은 이제 목까지 올라왔습니다. 용은 마지막으로 오 서방에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제가 완전히 돌로 변하고 나면 그 쑥대를 다시 원래 있던 자리에 꽂아주세요. 그리고 오늘 보신 대로 아버지께 말씀해주세요. 부탁합니다.”
“도련님!”
용의 모습은 완전히 바위로 변해버렸습니다. 바위는 장군이 위용을 자랑하듯이 근엄해 보였습니다. 장교와 나졸들은 자신도 모르게 바위에 예를 올렸습니다. 묘한 향기를 품은 봄 햇살이 바위를 감쌌습니다. 그러자 눈물이 타고 흘렀던 바위 홈에서 광채가 흘러나왔습니다. 나졸들은 이러한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면서 다시 예를 올렸습니다.
“용이 장군이 죽어서 바위가 되었으니 이 마을만큼은 앞으로 외적의 침입을 받지 않을 거야.”
그해 겨울, 관정사 뜰.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고 있습니다. 박새 한 마리가 관정사 상공을 빙빙 돌더니 장독대에 내려 앉습니다. “삐삐쫑 비비. 삐삐쫑 비비.” 박새의 노랫소리에 마당을 쓸고 있던 성씨 부인의 입가에는 가느다란 미소가 흐릅니다.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초계마을과 들판에 하얀 눈이 하염없이 쌓여가고 있습니다.(끝)
(다음주 해설편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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