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찾아서)알고 보면 더 아름다운 한옥
산길을 걷다 보면 길가에서 바람따라 살랑거리며 유혹하는 예쁜 꽃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야, 예쁜데!’ 하지만 거기까지. 감탄에 이어지는 갑갑함. 그것은 그 예쁜 꽃의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한탄이기도 하다.
이렇게 예쁜 꽃의 이름을 모른다면 그 꽃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싶어 스마트폰을 열어 검색을 한다. 계절에 따른 분류, 잎모양에 따른 분류, 산야초 사이트도 찾아 들어가보고…. 하지만 허탕이다. 호기심에 따른 고통의 시간이 너무 길어진다. 결국 포기하고 돌아서면 남아있는 아쉬움이 하루 종일 사사건건 다른 일들을 방해한다.
한옥도 마찬가지다. 고궁이든, 사찰이든 전통가옥을 보면 고향집에 들어선 듯한 푸근함이 있다. 까칠한 시멘트와 달리 부드러운 황토담이 마음을 진정시켜 주고 직각모서리의 아파트 벽과 달리 굵직한 나무 기둥과 서까래 부연 등의 목재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데 성냥갑 같은 아파트와 달리 한옥엔 다양한 구조물들이 조합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이름에 대한 호기심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냥 지붕이고 벽이고 방이고 마루며 마당이다 라고 한다면, 그 이상의 호기심이 없는 사람에게라면 한옥은 그냥 옛사람들이 살던 집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대들보가 뭔지, 서까래가 뭔지, 또 공포라는 게 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라면 한옥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최근 김해한옥체험관을 찾았다. 사람들이 늘 살고 있고 생활하며 누구든 가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전통가옥이기 때문이다. 전통가옥 하면 오래된 옛날집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요즘엔 도시 아파트 생활에 실증을 느낀 사람들이 도시 근교에 전통가옥을 짓고 사는 사례가 늘고 있다.
김해한옥체험관은 옛날로 치자면 그 규모로 보아 어느 정도 사는 양반집이다. 안채, 별채, 사랑채에 헛간채도 있고 사당까지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이 집에 들어왔으니 구조물의 이름은 뭔지, 왜 그렇게 지었는지 궁금한 것들을 찍어온 사진을 두고 풀어보기로 한다.
1. ‘거안당’ 편액이 달린 안채는 몇 칸?
안채라면 안방 마님이 생활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편액에 ‘거안당(居安堂)’이라고 썼나 보다. 거안당을 사진에 나타난 부분만 보면 가운데 기둥이 2개고 방이 세 개다. 기둥과 기둥 사이를 칸이라고 한다. 정면 3칸이 되는 것이다.
사진에서 좀 더 뒤로 물러나 본다면 ㄷ로 된 집임을 알 수 있는데 정면에서 보아 양쪽에 한 칸씩 더 있다. 그러니 이 안채는 정면 5칸짜리 집이다. 그러면 측면은 어떨까? 가운데 부분만 본다면 두 칸짜리이다. 그러면 여섯칸. 거기에다 양쪽 끝은 한 칸씩 덧붙여 세 칸짜리가 되니 이것도 여섯 칸. 그래서 안채는 총 12칸짜리 건물이 된다.
한옥에서 한칸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한칸의 가로 길이는 8자로 2.4m다. 그러니 방 한칸의 크기는 대략 5.76㎡다. 평수로 치자면 2평 좀 못되는 1.74평이다.
2. 누마루는 무슨 용도로 만들었을까?
누마루란 지면에서 높이 띄워 만든 마루다. 대개 중층건물에 마루를 깔아 구성하는데 조선 후기부터는 사랑채에 누각을 붙여 여기에서 시서화를 즐기거나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옥체험관에는 사랑채뿐만 아니라 안채에도 별채에도 누마루가 있다. 물론 향교나 서원에서 흔히 보는 누마루와는 높이에 차이가 있다. 누마루라는 말은 2층 건물을 뜻하는 ‘루(樓)’와 마루가 합쳐 만들어진 것이다. 그만큼 높아야 하는데 말이다. 게다가 트여있어야 할 부분에 문이 모두 닫혀있으니.
마루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안방과 건넌방 사이에 있는 대청마루, 고주와 평주 사이에 놓인 툇마루, 아궁이 위에 있는 고상마루, 그리고 들고 옮겨다닐 수 있는 들마루. 여기에 툇마루와 헷갈리는 쪽마루도 있다. 툇마루는 마루 끝에 기둥이 있지만 쪽마루는 그게 없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사진에서 보면 왼쪽 마루는 사각나무기둥이 있으니 툇마루인 것이다.
3. 처마에 달린 고리들, 대체 뭐하는 것이기에?
처마 끝에 나란히 대롱대롱 매달린 쇠고리의 용도가 궁금하다. 밤에 어둠을 밝히는 등잔을 얹는 장치일까, 바로 뒤에 조명이 달려있으니 그건 아닌 것 같고. 아니면 몸의 중심을 잡기 위해 달아놓은…, 아니 그러기엔 손잡이가 영 아니다.
끝부분이 말편자처럼 생긴 이것은 들쇠라는 물건이다. 방문을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이 문은 열고 닫고 할 수도 있지만 위로 들어올릴 수도 있는 구조로 된 창문이다. 더운 여름엔 통풍을 위해 위로 들어올려서 이 들쇠에 걸어놓는다.
문을 좀 더 자세히 보면 어떻게 문이 접히고 들어올려지는지 알 수 있다. 문짝과 문짝을 연결하는 돌쩌귀가 4개의 문을 2개씩 짝을 이루게 박혀있고 양쪽 끝 문의 위쪽에 또 돌쩌귀가 장치되어 있다. 그러니 문을 밖으로 접어서 들어올리는 구조다.
4. 전통가옥 아름다움의 극치는 추녀에 있다?
기와지붕을 한 전통가옥에서 가장 눈에 잘 띄고 하늘과 잘 어울리는 곳이 모서리 끝에 있는 추녀다. 대개 추녀 끝에는 풍경도 달려 있어서 바람의 연주를 들려주기도 한다. 추녀는 지붕을 얹을 때 가장 먼저 거는 부품이다.
사진에서 지붕 아래 둥근 나무가 서까래고 사각진 것이 부연이다. 서까래 위에 가로지른 나무가 평고대로 초매기라 하고 또 추녀 끝과 맞물린 평고대는 이매기라고 한다.
그리고 벽 모서리 기둥 위쪽에 직각으로 나무가 걸려 있는 곳을 공포라고 한다. 사찰이나 향교, 서원 등엔 이 부분이 화려하게 처리되어 있지만 이 건물엔 단순하게 처리했다. 어쨌든 기둥의 상단부를 주두라고 한다.
5.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는 한옥위 천장
한옥 처마 아래로 들어가 천장을 보면 대개 나무와 석회흙이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것도 한옥의 아름다움이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천장 가운데 길게 가로질러 놓인 종도리 위에서 서까래 둥근 나무를 양쪽으로 걸쳐 놓았다. 연결부위의 공간은 진흙 위에 생석회를 발라 마무리했다.
대개 서까래 사이도 회반죽을 하여 메우나 체험관 중문 천장은 서까래와 같은 재질의 나무판을 얹어 마무리했다. 이러한 형태의 천장을 연등천장이라고 한다. 천장의 종류에는 격자로 틀을 짜서 반자청판을 끼워 만든 우물천장, 서까래에 달대를 달고 반자대에 종이를 발라 마무리한 종이반자, 측면 이칸 이상의 팔작지붕에 주로 많은 눈썹천장 등이 있다.
6. 어느 골짜기 마을 이름 같은 회첨골
가옥의 구조가 일자형이면 회첨골이란 게 없다. 그런데 옛 가옥의 구조를 보면 ㄱ자나 ㄷ자 형태의 집들이 많다. 이런 집에 기와를 얹으려면 맞물리는 곳은 애매하다. 기와 흐름의 방향이 달라 서로 부딪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딪히는 곳에 골을 만들어 빗물이 흐르도록 처리하는 데 이것을 회첨골이라고 한다. 보통 두 줄로 만든다. 기와에도 암수 기와가 있는데 넓적한 것은 암키와, 반원기둥 모양은 수키와다. 회첨골은 암키와를 두 줄로 처마끝에서 상단까지 얹은 후에 그 중간을 수키와로 얹어 작업한다.
왼쪽 지붕의 물은 왼쪽 골이 오른쪽은 오른쪽 골이 내려보내는 형태다. 그런데 어떤 집은, 드물긴 하지만 이 골이 3개, 4개가 있는 가옥도 있다. 함양의 허삼둘 가옥은 이 골이 7개나 된다고 한다. 양쪽 끝 골 말고는 그냥 빗물을 흘려보내는 것이므로 골을 2개 이상 만드는 것은 실용적 측면이라기보다 미적 효과를 위해 지어졌다고 보면 되겠다.
7. 기와지붕 위에도 벽이 있다?
기와 한옥을 측면에서 보면 ㅅ자 모양으로 기와가 흐르고 그 사이에 벽이 생기는데 이것을 합각벽이라고 한다. 팔작지붕에 있다. 우진각지붕 위에 맞배지붕을 얹은 형태가 팔작지붕인데 사진처럼 삼각형 모양의 공간이 생기는데 김해한옥의 경우 흙과 기와로 처리했다. 합각벽은 벽돌을 쌓고 무늬를 넣거나 나무판벽으로 처리하기도 한다.
참고로 기와에서 맨 윗부분을 용마루라고 한다. 일종의 능선이다. 용마루에서 중간 꺾어지는 곳까지의 것은 내림마루, 여기서 추녀까지 이어지는 것은 추녀마루라고 한다. 또 각종 마루 끝에는 암막새기와를 뒤집어 끝처리한 것이 있는데 이것을 망와라고 한다. 망와와 비슷한 표현으로 망새라는 게 있는데 망새는 망와와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각종 동물모양을 본떠 만들기도 한다. 용머리 모양을 한 것은 용두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리고 김해한옥체험관의 경우 수막새를 사용하지 않은 특징이 있다. 사진처럼 흙으로 끝처리를 했다. 암막새도 없다. 모두 수키와와 암키와, 그리고 망와로만 기와를 얹었다.
8. 디딤돌과 댓돌의 차이가 뭘까?
옛날 집들을 보면 마루 앞에 직육면체 모양의 돌이 놓여있다. 이것은 댓돌일까 디딤돌일까? 쓰임이 비슷하니 댓돌이나 디딤돌이나 같은 것 아니냐는 의문도 있겠다. 엄밀히 따지면, 댓돌은 기단을 구성하는 돌이고 디딤돌은 기단이나 마루에 오르내리기 쉽도록 만든 돌층계다.
댓돌이 기단 위에 덧댄 돌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겠다. 하지만, 대부분 댓돌이나 디딤돌이나 구분하지 않고 용어를 섞어 쓰고 있다. 사진에 있는 것은 디딤돌이라 해도 상관은 없겠지만 엄밀히 따진다면 댓돌이라 하겠다.
9. 한옥을 보면 기둥마다 글귀가 적혀 있던데?
그러고 보면 우리 조상들은 풍류를 알았던 것 같다. 집을 지어도 그냥 지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태어나면 모두 이름을 붙이듯이 집도 이름을 지어붙였다. 김해한옥체험관을 예로 들자면 안채는 거안당(居安堂), 사랑채는 담경헌(談經軒), 별채는 탐미당(耽美堂)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가옥의 모서리 기둥마다 세로로 글귀를 적어놓고 오며가며 마음에 새겼다. 사진에 보면 懷佳人兮不能忘(회가인혜불능망), 아름다운 이를 생각하니 잊을 수가 없구나. 왼쪽은 登東皐叺舒嘯(등동고입소서), 동녘언덕에 올라 가만히 휘파람을 부누나.
언뜻 서로 상관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글귀들을 기둥에 쭉 붙였다 하여 이를 주련이라 한다. 대체로 글씨체가 좋고 덕망이 있는 사람에게 청을 넣어 소원하는 내용이나 덕담을 적기도 하는데 사랑채엔 오언절구나 칠언율시를 자작하여 걸기도 한다.
10. 집 안에 또 무슨 담을 쌓았을까?
한옥을 보면 집 안에도 여러 담이 있고 쪽문이 있어 이곳을 통해 드나드는 구조로 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도 담이 있고 별채와 사이에도 담이 있다. 집 안쪽에 있는 담을 내담이라고 한다.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하는 담은 내외담이라고 하고, 또 담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 담이 있는데 이를 헛담이라고 부른다.
내담에는 주로 중문과 협문이 설치되어 있다. 각 영역의 공간을 에워싸는 담에 있는 것이 중문, 그리고 건물의 외진 곳에 있는 부속건물로 가는 길 샛담에 있는 것은 협문이다. 사진에 나타난 문은 중문이다. 이 담은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하고 있으니 내외담이다.
11. 담장의 무늬는 주로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김해한옥체험관에 나타난 담장무늬는 주로 꽃모양이다. 암키와와 수키와 조각을 적적히 배치하여 만든 문양이다. 한국 전통 가옥의 담벼락 무늬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문양이 꽃이다. 이를 와편담장이라고 부른다.
福(복) 자나 壽(수), 囍(희) 등의 문자를 도안한 벽도 있고 기하학적인 무늬로 꾸며놓은 담벼락도 많다. 태극모양의 담벼락 무늬도 종종 눈에 띈다.
12. 한옥에선 굴뚝도 예술품?
요즘에야 굴뚝이 있는 집이 거의 없을 정도로 주거환경이 바뀌었다. 그래서 오히려 굴뚝이 있는 집을 보면 신기해할 정도다. 가스와 기름보일러 또는 심야전기 보일러로 난방을 하는 집에서 자란 아이들은 굴뚝이 희한한 물건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옛사람들은 방바닥 아래 온돌을 달구고 연기가 빠져나가는 굴뚝에 대해서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높이나 방향에도 신경을 썼지만 모양새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다. 한옥체험관에 있는 굴뚝들은 와편에 황토배합을 많이 하여 고급스러움을 표현했다. 와편의 배열에도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꽃무늬는 나팔꽃 넝쿨처럼 표현했다.
대부분 와편과 황토로 굴뚝을 만들지만 간혹 집의 형태에 따라 옹기로 만든 굴뚝도 있고 널빤지를 이용한 굴뚝, 통나무, 또는 흙으로 만든 굴뚝도 있다.
13. 일반 가옥엔 없고 사당엔 있는 것
단청은 자연현상이나 병충해로부터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칠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단청은 중앙의 황색과 청백적흑, 즉 동서남북 오방 색상을 기본으로 하는 종교적인 의미도 담겨 있어 사찰이나 향교 등의 건물에 많이 쓰이고 권위를 나타내기 위한 건물인 궁궐이나 동헌 등에도 많이 있다.
단청은 가칠단청과 같이 단순한 것에서 점점 화려한 순서로 긋기단청, 모로단청, 금단청 등이 있다. 물론 각 부분의 단청도 더 세밀하게 분류되기도 한다. http://news.gsnd.net/?p=50134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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