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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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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이무기와 처녀 제물(1)
하동군 북천면과 진교면 사이 이명산에 얽힌 전설

 

 

1990년 하동군에서 발행한 <내 고장의 맥>이란 책에 보면 북천면과 진교면 경계를 이루는 산 중에 이명산에 얽힌 이야기 하나가 전해집니다. 이 이명산은 이맹산이라고도 불리며 옛날에는 동경산이라고도 불리었습니다. 북천면 직전리 이명마을 이름도 이에 연유가 된 것이겠지요.

 

이 이명산 꼭대기에는 움푹 들어간 곳이 있는데, 아주 옛날 이곳에 못이 있었다고 해요. 이 못에는 커다란 이무기가 살고 있었는데 성질이 사납고 심술이 고약해서 툭하면 마을을 향해 독을 뿜어서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무기의 횡포에 치를 떨었지만 조상 대대로 이어 살아온 터전을 버리고 떠날 수도 없어서 제발 자기 마을 쪽으로 독을 뿜지 말기만을 바라며 제사를 지냈다고 하네요. 또 자기 마을 쪽으로 독을 뿜더라도 자신이 시력을 잃지 않기만을 바랐지요.

 

이야기는 마을 사람들이 무당의 점괘에 따라 처녀를 이무기에게 바쳐야 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어떤 스님의 도움을 받아 불에 달군 돌을 못에 던져 넣음으로써 이무기를 쫓아낸다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번 전설텔링은 이 전설에 몇 가지 의문과 재미요소를 가미해 새롭게 풀어낸 것입니다. 이무기가 아무리 강한 존재라 하더라도 혼자서는 횡포를 부릴 수 없을 것이라는 점과 처녀가 제물로 바쳐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궁금증, 마을 사람들이 불돌을 던질 때 이무기의 반응은 어땠을까 하는 호기심이 엮여 이야기는 새롭게 꾸며집니다.

 

……………………………………………………………………………………..

“아버지, 너무 무서워요. 이무기에게 먹혀 죽느니 그냥 사람들에게 뭇매를 맞아 죽는 게 나아요. 아버지, 제발 사람들을 말려주세요.”
초가집 방문 밖으로 울음 섞인 처녀의 목소리와 등잔불 불빛이 흔들리며 새어나왔습니다. 사립문 앞에는 초저녁부터 슬피 짖어대던 삽사리도 이제 지친 듯 ‘꾸우~ 꾸우~’하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휘이~”
방문 밝은 창호지에 겨울바람이 한차례 세차게 들이닥쳤습니다. 방안에선 역시 한숨 섞인 50대 남자의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 나오다가 바람 소리에 파묻힙니다.

등잔불이 한 번 더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연지곤지를 찍고 머리에는 족두리를 한 설희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하염없이 신부복 소매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습니다.


“설희야, 이 애비가 죄인이다. 제비뽑기만 잘했어도 니가 이렇게 허무하게 사지로 가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정말 할 말이 없구나. 그렇다고 다들 합의해서 내린 결정을 따르지 않을 수도 없고. 이 애비가 너 대신 가마를 탈 수만 있다면…….”
이 서방의 눈에서도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 부녀의 가슴은 등잔불 심지처럼 타들어갔습니다. 찬바람이 밤새 등잔불을 밝힌 초가집을 맴돌며 울다가 기울어가는 반달을 따라 산 너머로 달려갑니다. 멀리서 닭우는 소리에 깜박 졸던 삽사리가 벌떡 일어나 멍멍 짖습니다.

 

희끄무레 동이 터오자 마을 사람들이 가마를 메고 이 서방 집으로 몰려왔습니다.
“이 서방, 준비는 됐는가?”
“…….”
“어쩌겠는가? 처녀를 제물로 바치지 않으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이무기에게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판인데…. 마을 사람 모두를 위해 자네가 희생한다 생각하게.”
촌장은 밤새 괴로워했을 이 서방과 설희의 심경을 헤아려 조심스레 말을 꺼냈습니다.

 

이윽고 방문이 열리며 밤새 타들어간 등잔불 냄새와 함께 이 서방과 설희가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두 사람의 눈은 얼마나 울었던지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서두르세. 성질 급하고 심술궂은 이무기가 조금 늦는다는 이유로 또 패악질을 부릴지 모르니까.”
가마에 오르기 전 설희는 아버지 품에 안겨 소리내어 엉엉 울었습니다. 나이 열여섯. 한창 꽃다운 나이에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산꼭대기 괴물의 제물로 바쳐질 운명이라니. 설희는 자신의 이 기구한 운명이 너무 한스럽고 세상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이 서방은 설희가 탄 가마가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굳은 듯이 서 있었습니다.

 

설희가 탄 가마는 동네 사람들에 의해 들려져 동경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동경산은 한동안 완만한 경사로 올라가다 산 중턱에 이르러서는 급경사로 접어드는데 가마를 메고 가던 마을 사람들은 이제 힘에 부쳐 오르지 못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아저씨, 가마를 내려주세요. 지금부터 걸어가겠습니다. 이런 숲 속에 있으니 이무기인들 제가 가마를 타고 왔는지 걸어왔는지 알지 못할 거예요.”
설희는 가마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좁은 숲길로 마을 사람들 사이에 섞여 걸어 올라갔습니다. 신부 복장이 걷기에 너무 불편했지만 설희는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이까짓 불편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드디어 동경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멀리 큰 못이 보입니다. 아저씨들이 다시 가마를 내려 설희에게 타게 하였습니다. 설희의 마음도 이젠 모두 체념을 해서인지 오히려 담담해졌습니다. 무시무시한 이무기에게 잡아먹혀도, 그래서 마을에 평화가 찾아올 수만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마를 든 마을 사람들이 호숫가에 도착하자 이무기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촌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이무기를 향해 두 손을 모아 계속 절을 하였습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이무기님께 비나이다. 원하신 대로 오늘 아리따운 처녀를 제물로 바치오니 부디 노여움을 푸시고 우리 마을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이 어리석은 사람들아! 내가 꼭 너희를 혼내고 나서야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겠느냐? 내가 이 산으로 옮겨온 이후 지금까지 조용히 지내려 했다만 신령스런 나의 존재에 대해 조금이라도 불경스런 태도를 보인다면 그땐 온 마을이 재앙을 받으리라. 명심하거라!”

 

이무기의 쩌렁쩌렁한 불호령이 끝나자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조아리고 연거푸 손을 비비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네, 이무기님. 저희가 너무 어리석어 이무기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미처 몰랐사옵니다. 부디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만은 용서하겠다. 앞으로 나에 대한 공경심을 어떻게 나타내야 하는지는 마을 무당에게 이를 테니 그 무당의 말을 따르도록 하라.”
그렇게 말하고 이무기는 가마를 입으로 덥석 물고 물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가마 속에 있던 설희는 갑자기 가마가 공중에 붕 떠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윽고 가마가 떨어지는 것 같더니 물속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순간적인 충격에 의해 설희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설희는 구름 위에 떠 있습니다. 아래로 내려다보았습니다. 구름 사이로 자신이 살았던 마을이 보였습니다. 그러다 어지럼증이 밀려와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구름 아래로 떨어질 뻔하였습니다.


설희는 자신이 이무기에게 먹혀 죽고 영혼이 하늘나라에 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먼저 저 아래 땅에 홀로 남아 아내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딸마저 먼저 보낸 죄책감에 슬퍼하고 계실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절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구름 저쪽에서 뭔가 꿈틀대더니 푸른 비늘로 덮인 용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설희는 온몸이 떨렸습니다. 내가 어차피 죽은 몸인데 왜 이렇게 떨리는 거지? 설희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룡이 설희에게 서서히 다가왔습니다. 자세히 보니 청룡의 모습을 한 이무기였습니다. 머리에 뿔이 없고 수염도 없었습니다. 설희는 이 이무기가 나를 잡아먹은 놈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이무기는 설희의 주변을 꿈틀거리며 몇 바퀴 돌더니 서서히 몸을 휘감았습니다. 설희는 숨이 막혀왔습니다. 뼈가 바스러지는 듯 고통스러웠습니다.


벗어나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발버둥을 칠수록 몸은 더욱 조여왔습니다. 이무기는 혀를 낼름거리며 설희의 온몸에 독을 발랐습니다. 그 독은 몸을 타들어가게 하였습니다. 피부가 따갑게 느껴지자 설희는 자신의 몸을 보았습니다. 이무기처럼 비늘이 생기고 있었습니다.

 

“안돼~!”
잠에서 깬 설희의 눈앞엔 화려하게 장식한 방안의 모습과 하얀 천으로 꾸며진 침대가 있었습니다.
‘어찌 된 거지? 정말 천국이란 게 있었던 건가?’
설희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아무리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려 해도 어찌 된 영문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정신이 들었소?”
설희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다음 주에 2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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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란다고 응답할 사람도 없고, 실체가 있으되 실체가 없다고 우기기만 하면 되는 2013년에 거의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되었습니다. 


책임 있는 사람의 응답도 듣고 실체가 없다던 실체들의 정체를 보고서야 2013년 마침표를 찍고싶은데 그게 안 되니 마음이 도저히 안녕하지는 못하네요.


경남도민일보가 올 한햇동안 도내에서 일어난 굵직한 일들을 지하철 노선처럼(?), 사실은 신문지면 헤더를 대신한 띠로 6면에 걸쳐 편집한 것이 눈에 띄어 올려봅니다.


1월, 

7일 경남지역 초등학교 무상급식 전면 시행.

21일 창원시 청사관련 여론조사결과 발표.

30일 새 야구장 터 진해 육군대학 선정.


2월

6일 부산국제금융고 창원분교 첫 졸업식.

25일 경남도,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

26일 제18대 대통령 박근혜 취임.


3월

4일 하동고전초등학교 60~80대 할머니 7명 입학.

10일 경남FC 홈 개막전 첫 만원사례.

25일 축구계 큰 별 전형두 타계.


4월


2일 프로야구 창원시대 NC다이노스 개막전.

11일 NC다이노스 창단 첫승.

12일 진주의료원 '폐업조례안' 도의회 날치기 통과.

23일 창원시 시청사 조례 개정안 기습처리.


5월

1일 편의점 등 '갑 횡포'에 분노 시선 확산.

7일 부마민주항쟁법 국회 통과.

14일 창원시청사 현 청사 확정 후폭풍.

29일 진주의료원 폐업 신고.


6월

11일 진주의료원 해산 조례 날치기 처리.

26일 남해고속도로 사고차량 운전자 실종 한 달째.


7월

13일 경남은행 지역환원 위한 범도민 결의대회 및 서명 시작.

16일 홍준표 지사 도청출입기자 상대 거액 소송.

29일 천주교 마산교구 신부들 시국선언 '국정원 사태 진실 밝혀라'.

31일 이창희 진주시장 서울시청에서 1인 - 시위 등축제 논란 확산.


8월

1일 NC승률 4할 진입 '후반기 돌풍' 

15일 지역문화계 거목 송인식 관장 타계


9월

7일 창원시 지역 국회의원 간담회서 안홍준 "시의원 총사퇴 해라".

23일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 경남도지사 출마선언 이주영 의원 마산분리법안 발의.

24일 KBO 기자회견 "NC 새 구장은 창원이나 마산에 건립돼야 한다" 창원시 "간섭하지 마라"


10월

2일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

5일 NC다이노스 마지막 경기, 52승 4무 72패 리그 7위로 시즌 마무리.

8일 통영서 바다 추락한 운전자 맨몸으로 구한 김민철 씨.


11월

11일 경남도, 무상급식 예산 74억 원 감액해 제출.

14일 마산역 이은상 시비 옆에 친독재 새긴 민주수호비 설치.

28일 한국민주주의전당 마산 관주 서울에 건립.

30일 밀양희망버스 출발


12월

6일 밀양주민 유한숙 씨 사망.

15일 창원대 도내 첫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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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줄거리) 이번 연재 ‘용다리 연가’는 상황 묘사를 좀 더 디테일하게 하다 보니 연재 편수가 딴 스토리보다 길어졌네요. 대학 1년생인 연화와 윤석이 웜홀을 통해 과거로 빨려 들어가면서 화연과 돌쇠라는 신분 차이가 확연한 두 인물 속으로 각각 들어간 게 1편의 이야기였습니다. 두 사람은 이후 예전과 전혀 딴판의 의식을 지니게 되는데 실제 자신의 영혼과 미래의 영혼이 혼재하게 되지요.


서로 가까이 있게 되거나 살갗이 닿으면 미래의 영상이 머릿속에 비치는데 두 사람은 이것을 즐기게 됩니다. 그러면서 서로 사랑하게 되지요. 그런데 진주 군수의 딸인 화연은 곧 전라도 나주목사의 아들과 결혼하게 될 몸이라는 점이 연화에게나 돌쇠에게 안타까운 현실이 됩니다.


혼인을 목전에 두고 두 사람이 밤마다 만나는 것을 화연의 아버지가 알게 되지만 소문이 두려워 자연스레 해결되길 바라고 지켜봅니다. 하지만 혼례식 전날까지 밤마다 두 사람이 만나자 군수는 화연에게 더는 돌쇠를 만나지 말라고 이릅니다.


다음날, 혼례식이 시작되고 돌쇠는 사랑채 입구에서 외모가 아주 준수한 나주도령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돌쇠는 이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요.


…………………………………………………..


돌쇠는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오름을 느꼈습니다. 이 순간 이후 어차피 아씨를 만날 수 없다면 살아있을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주먹을 너무 세게 쥐어 그랬는지 양 주먹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습니다.

“신랑 입장하시오!”

안쪽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돌쇠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금 신랑에게 해코지했다가는 화연아씨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자 쥐었던 주먹에서 힘이 빠져나갔습니다.

“썩 비키지 않고 무얼 하느냐?”


신랑의 옆에 선 사내가 굵은 목소리로 돌쇠에게 쏘았습니다. 돌쇠는 그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혼례식장으로 들어가던 신랑의 뒷모습을 보던 돌쇠의 눈에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습니다. 돌쇠는 매화나무 위에 올라가 담장너머로 혼례를 지켜보았습니다. 나주도령과 마주선 화연도 멀리 담장 너머로 나무 위에서 쳐다보고 있는 돌쇠를 느끼면서 혼례를 치렀습니다.


이렇게 혼례가 끝나고 화연과 나주도령은 신방에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신방 앞을 오가며 두런두런 얘기도 나누었지만 돌쇠는 멀찌감치 떨어져 아씨가 다른 남자와 있을 신방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오라버니, 여기서 뭐하는 거야? 내 이럴 줄 알았어.”

곱단이 역시 풀이 죽은 채 터벅터벅 걸어오며 신방으로 들어가는 중문 앞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돌쇠에게 말했습니다.


“오라버니도 내가 내일이면 아씨를 따라 나주에 간다니까 슬픈 모양이구나. 하지만 걱정마.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린 다시 만날 테니까.”

돌쇠의 귀에는 곱단이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건성으로 응응하고 대답은 했지만 돌쇠 마음의 눈은 줄곧 신방을 향해 있었습니다. 옆에서 곱단이는 뭐라고 조잘대고, 나름 돌쇠와 헤어짐이 아쉬워 눈물까지 흘리며 말을 하고 있는데 돌쇠는 시간이 지날수록 대답할 기력마저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곱단이는 내일 아씨를 모시고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며 돌아가고 돌쇠는 여전히 초승달 희미한 빛을 밟으며 마당을 왔다갔다 거닐었습니다. 숲속에서 부엉이 소리가 몇 번 울리고 날이 희끄무레 밝아왔습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화연아씨가 나주도령을 따라 멀리 떠납니다. 돌쇠는 눈물로 멍이 든 가슴을 무릎에 파묻은 채 아침해를 맞았습니다.


아침부터 맛있는 음식 냄새가 집안은 물론이고 온동네에 퍼졌습니다. 가솔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잠시 느려지더니 다시 어수선해졌습니다. 아씨가 나주도령을 따라 대문을 나섰습니다. 주인마님을 비롯해 안방마님과 여러 사람들이 배웅을 하고 있습니다.

가마 창문을 열고 뒤돌아보던 화연은 여러 사람 중에서 돌쇠를 찾았습니다. 그러다 바로 담장 너머로 보고 있는 돌쇠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화연의 눈도 잠을 못자 그런지, 밤새 울어서 그런지 벌겋게 핏발이 서 있었습니다.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순간이지만 많은 대화를 하였습니다. 그러다 둘이 동시에 피식 입가에 웃음을 지었습니다. 눈물은 그대로 볼을 타고 흐르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화연아씨가 나주로 떠나고 사흘이 지나도록 돌쇠는 밥을 전혀 먹지 못했습니다. 함께 방을 쓰는 행랑아범은 돌쇠가 곱단이 때문에 넋을 놓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의 운명은 주인을 따라 가는 거란다. 이제 훌훌 털고 일어나거라.”


그런데 이 시점, 집안이 어수선해졌습니다. 행랑아범은 주인마님을 따라 멀리 출타를 했습니다. 한동안 집안 분위기가 숙연해지는가 싶더니 아씨가 나주도령을 따라 떠난 지 닷새가 되던 날에 주인마님과 함께 돌아온 것입니다.


돌쇠는 미칠 듯이 기뻤습니다. 곱단이가 먼저 달려와 돌쇠의 손을 잡고 얼쑤 춤을 추며 기뻐했지만 돌쇠는 곱단이가 화연아씨인 양 덩달아 기분이 좋아 춤을 추었습니다.

화연도 돌쇠를 보는 순간, 서로 얼싸안고 좋아할 수는 없었지만 재회의 기쁨에 마음이 콩닥거렸습니다. 곱단이가 먼저 돌쇠 손을 잡고 저러는 것이, 그간의 관계를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좀 얄밉기는 했습니다.


그날부터 이제 밤마다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두 사람의 계산은 오산이었습니다. 화연은 집으로 돌아온 날부터 방에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엄명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화연아, 다시 돌쇠를 밤마다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아예 말거라. 예전엔 소문이 무서워 그랬다만 만약 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돌쇠를 멍석말이시키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나주로 시집간 첫날 밤, 잔치가 끝날 쯤 친구들과 술잔을 나누던 신랑이 갑자기 숨지는 바람에 청상과부가 된 화연. 돌쇠가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기대감에 신랑을 잃은 슬픔보다 기쁨이 앞서 가슴 두근거렸는데 아버지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가슴에 무거운 바위를 얹은 듯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돌쇠는 밤마다 담장 아래로 나와서 화연을 기다렸습니다. 부엉이가 몇 번을 울고 난 뒤에야 돌쇠는 힘없는 발걸음으로 행랑채로 돌아와 눈을 붙였습니다. 이 같은 일이 매일 되풀이되었습니다.

돌쇠는 곱단이로부터 화연아씨가 벌써 일주일째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돌쇠 역시 제대로 먹지 못했지만 아씨의 건강이 걱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돌쇠로선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화연아씨의 방에서 안방마님의 통곡이 들려왔습니다. 모두 아씨가 결혼하자마자 청상과부가 되어 시집을 떠나 온 게 짐이 되어 남편을 그리다가 몸이 쇠약해져 숨졌다고 수군거렸습니다. 화연이 죽었다는 데도 아버지인 이 군수는 한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군수는 돌쇠에게 화가 났던 거였습니다. 오전 내내 방에서 돌쇠를 어찌할지 속으로 화풀이를 하였습니다. 그러다 그냥 둘이 멀리 보내어 살게 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들었습니다. 이 군수로서는 딸의 돌쇠에 대한 정이 이리 깊은 것인 줄 몰랐습니다. 만나지 못하게 하면 자연히 옛날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화연의 죽음으로 가장 상심이 큰 사람은 돌쇠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식음을 전폐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게 무엇보다 갑갑했습니다. 돌쇠는 화연아씨가 나주도령을 따라 대문밖을 나서던 그때보다 더 슬픔에 북받쳤습니다.





화연의 죽음은 남편의 죽음으로 상심에 빠져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남편을 따라 간 것으로 외부에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장례를 치를 때 나주목사와 전국의 벼슬아치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


셋째날 탈상을 하고 화연의 시신은 상여를 타고 대문밖을 나섰습니다. 가솔과 수많은 사람들이 상여를 따라갔습니다. 돌쇠도 상심한 채 상여를 따라갔습니다.


에호 에~호 에가리 넘자 에~호

세상천지 만물 중에 사립밖에 또 있던가

에호 에~호 에가리 넘자 에~호

여보시오 시주님 내 말 잠시 들어보소

에호 에~호 에가리 넘자 에~호

아버님 뼈를 타고 어머님 살을 빌려

에호 에~호 에가리 넘자 에~호

칠성님께 명을 빌고 석가여래 복을 빌어

에호 에~호 에가리 넘자 에~호

세상탄생 나 가지고 한두 살에 철을 몰라

에호 에~호 에가리 넘자 에~호

부모 은공 내 못하고….


상여가 용다리를 지날 때였습니다. 돌쇠는 다리 아래를 우연히 내려다보게 되었습니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이미 사람이 아닌 듯했습니다. 그런가 싶더니 어느새 물속의 자신이 아씨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씨는 물속에서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아씨!”

돌쇠는 저도 모르게 소리질렀습니다.

“아씨, 가지 마요. 가지 마요. 엉엉.”

돌쇠가 하도 서럽게 울기에 다른 사람들도 상여를 따라 지나가면서 한마디씩 하였습니다.

“아무리 자기 주인의 죽음이 안타깝기로서니 노비가 저리 서럽게 우는구나.”


상여행렬이 다 지나도록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돌쇠가 고개를 들었을 때 눈빛이 이상하게 변하였습니다. 서서히 초록빛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이내 이상한 행동을 하면서 동네를 빙빙 돌아다녔습니다. 돌쇠의 이러한 행동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 다시 초승달이 찬바람에 오들오들 떨면서 구름 뒤로 들어가려던 그때였습니다. 돌쇠는 넋을 잃은 채 용다리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연화야, 제발 돌아와. 사실 난 너만 사랑하고 있어.”

돌쇠가 용다리에 도착해 아래로 내려다보았습니다. 구름에 반쯤 얼굴을 가린 초승달 희미한 그 빛에 물속 그림자가 일렁였습니다.

연화의 모습입니다. 웜홀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 그 때의 두려워하는 모습입니다. 돌쇠의 몸이 서서히 초록빛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연화야~.”

돌쇠는 용다리 앞 고목나무에 기댄 채 초승달만 멍하니 쳐다보았습니다.


그날 밤 숲속의 부엉이는 밤이 새도록 부엉부엉하고 울었습니다. 다음날 마을 사람 어느 누구도 돌쇠의 모습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돌쇠는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다만 곱단이가 매일 밤 고목나무 아래에 와서 하늘을 보기도 하고 물속을 들여다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끝)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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