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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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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용다리 연가(戀歌)(4)

진주시 진주성 옆 지금은 없어진 용다리에 얽힌 전설


(지난 줄거리) 사랑싸움을 하던 연화와 윤석은 옥신각신하면서 진주성 앞 고목 옆을 지나다 갑자기 형성된 웜홀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고려시대 진주 군수의 집 별당 화연의 방과 돌쇠가 기거하는 행랑채에 밝은 초록빛이 감돌더니 두 사람에게 뭔가 변화가 일어납니다.


돌쇠가 10년을 화연의 아버지인 이 군수의 집에 들어와 솔거노비로 살았지만 화연과 돌쇠는 상전과 하인 이상의 관계였던 적이 없었는데 몸에 변화가 일어난 이후론 서로 스치기만 하여도 이상한 끌림을 느낍니다. 서로 피부가 닿기만 하면 두 사람은 지금까지 본적이 없었던 영상을 공유합니다.


두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매일 밤마다 별당으로 이어지는 골목 담벼락 아래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을 담장 끝에서 지켜보는 그림자가 있습니다. 화연이 그것을 눈치채고 돌쇠에게 이야기하자 돌쇠는 불안해집니다. 천한 종놈이 언감생심 지체 높은 군수의 딸을 가슴에 품었으니 말입니다. 그러한 때에 평소 자신을 잘 따르던, 같은 솔거노비인 곱단이가 찾아와서는 큰일이 났다며 하염없이 울먹입니다.


……………………………………………….


돌쇠는 어젯밤 화연아씨와 자신이 함께 있는 것을 본 그 그림자가 오늘 아침 주인나리에게 고변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불호령이 떨어졌을 테고 그 불호령을 들은 곱단이가 먼저 쫓아와 자기에게 그 사실을 알리는 것이리라. 돌쇠는 자신의 처지를 돌아봤습니다. 상놈이 언감생심 밤마다 상전인 아씨를 마음에 품고 포옹까지 하였으니 목숨을 부지하려 한다는 것 자체가 과욕이리라.


돌쇠는 멍석말이든 곤장을 맞든 그렇게 고통 속에서 목숨이 다하더라도 후회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연유에서 아씨와 이렇게 서로 사랑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밤마다 만나며 짜릿한 사랑을 맛보았고 그것만으로도 행복했기에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여겼습니다.


다만, 돌쇠는 곱단이에 대한 미안함은 금할 길 없었습니다. 오랜 세월 한 집에서 함께 노비로 생활하면서 서로 정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곱단이가 조금만 더 나이를 먹으면 안방마님에게 둘이 혼례를 올릴 수 있게 해달라고 할 참이기도 했으니까 말입니다. 돌쇠의 눈에도 핑그르르 물방울이 맺히더니 귓불 타고 목으로 떨어졌습니다.


“오라버니 지금 당장 이 집에서 도망갈까?”

“도망간다고 해결이 되겠니? 그러고 니가 도망은 왜 가?”

“이제 헤어지면 영원히 오라버니를 못 볼 텐데 그러고 어떻게 살아? 그럴 바에야 산속에 숨어 살거나 아니면 죽는 게 낫지.”

돌쇠는 곱단이가 자신을 위해 이렇게 목숨까지 걸 정도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미안한 마음이 일었습니다.

“무슨 소리냐? 넌 꿋꿋이 살아야지. 내 몫까지 보태서 오래오래 살아야지.”


곱단이는 돌쇠가 그래 당장 이 집을 떠나 멀리 도망이라도 가자고 말해주길 바랐는데 자기 몫까지 살라고 하면서 눈물까지 흘리는 모습에 의아해졌습니다.

“오라버니, 무슨 말 하는 거야? 내가 아씨를 따라 나주에 가게 되었는데 오라버니 몫까지 살라니?”

“……?”

돌쇠는 곱단이 얼굴을 한참 뚫어져라 쳐다보았습니다. 곱단이가 울면서 자신을 찾아온 것이 어젯밤 정체 모를 그림자에게 들킨 것 때문이 아니라 서로 헤어지게 된 것 때문이구나. 그렇게 상황파악이 되고 나니 돌쇠의 입가에는 살짝 미소가 피었습니다.

“오라버니는 나랑 헤어지는 게 좋은 거야? 슬픈 거야? 울었다가 웃었다가. 왜 그래?”

곱단이는 돌쇠가 밉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툇마루에 돌아앉아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더 크게 울었습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어젯밤 아씨가 봤다는 그림자는 사람의 그림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돌쇠는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아 쓴웃음을 또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내일이면 나주 목사의 아들이 장가를 들려고 집에 올 것으로 생각하니 가슴이 다시 갑갑해졌습니다.


내일 있을 혼례 준비를 하느라 온 집안이 어수선하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화연은 종일 방안에만 있었습니다.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불안했습니다. 이미 돌쇠에게 마음이 가버린 터라 아무리 나주 목사의 아들이 멋있는 총각이라 해도 손톱만큼도 화연의 마음에 들여놓을 공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내일이면 그 나주 도령과 혼례를 치러야 하고 그를 따라 나주로 가야 합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화연은 화연 대로 돌쇠는 돌쇠대로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안 보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자정이 되었을 무렵 화연은 방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으흠.”

화연은 댓돌에 놓인 꽃무늬 갖신을 신으려다 헛기침 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아버지였습니다.

“화연아, …….”

이 군수는 딸의 표정을 오랫동안 살피더니 작심한 듯 이야기를 꺼냅니다.

“화연아, 내일이 혼례인데 이제 돌쇠를 그만 만나는 게 좋을 듯하구나.”

화연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버지께서 어떻게 이 사실을? 그러다 그 그림자의 주인공이 아버지였구나 하는 생각에 다다랐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여태 일언반구 말씀이 없었을까?


“벌써 돌쇠를 잡아다가 혼찌검을 내고 싶었다만 혼사를 앞두고 소문이 나서는 안 되는 일. 니가 스스로 자제해주길 은근히 바랐다.”

“…….”

“그런데 니가 오히려 더 돌쇠를 찾는 것 같아 이제 더는 두고 볼 수 없구나. 화연아, 니가 마음을 접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돌쇠를 만나거든 잘 이야기하거라.”


아무리 소문이 나서 안 될 일이긴 하지만 아버지께서 이 정도로 자신과 돌쇠를 생각해주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자신이 깨끗하게 마음을 정리하면 아버지도 돌쇠를 벌주거나 어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안채로 건너가는 것을 보고 화연은 돌쇠가 밤마다 찾아오는 골목길로 갔습니다. 이번엔 돌쇠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돌쇠야, 이런 우리의 만남도 이게 마지막이구나.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겠지. 나도 너의 마음같이 헤어지기 싫지만 나로선 어찌할 수가 없구나.”

화연은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돌쇠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그림자의 주인공이란 사실을 돌쇠가 알게 되면 더는 이 집에서 일할 수 없을 것이란 걸 알기 때문입니다.

“아씨, 전 아씨가 없으면 도저히 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둘이 어디라도 도망을 가서 살까요?”

돌쇠는 이렇게 말하고서 아침에 곱단이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도망간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돌쇠는 가슴이 갑갑해져 옴을 느꼈습니다.


두 사람은 한참을 마주 보고 서 있었습니다. 여전히 멀리서 부엉이 울음소리가 적막을 흔들며 번져왔습니다. 담장 위에 앉아있던 고양이는 지겨운 듯 일어서서 기지개를 한 번 크게 켜고는 담장 끝으로 걸어갔습니다.

“돌쇠야, 우리 다음 생에는 같은 신분으로 태어나서 꼭 다시 만나자.”

화연은 눈물을 훔치면서 별당으로 달려갔습니다. 돌쇠는 우두커니 선 채 달려가는 화연아씨를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한스러웠습니다.


다음날, 점심나절께 나주에서 온 신랑 일행이 도착했습니다. 때맞춰 풍악이 울렸습니다. 음악에 맞춰 무용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춤을 추었고 마을 사람들은 마당에 깔아놓은 멍석 위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했습니다. 사랑채 대청 위에는 이 군수와 나주 목사, 그리고 초청받은 지체 높은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이제 곧 혼례가 시작될 터이니 다들 준비하거라.”

이 군수의 말을 시작으로 마당은 순식간에 혼례식장으로 정돈되었습니다. 돌쇠는 사랑채가 있는 마당으로 들어가지 않고 행랑채 옆 문앞에 서서 불안한 걸음으로 왔다 갔다 하였습니다.

그때 돌쇠는 혼례식장으로 들어서려는 신랑과 마주쳤습니다. 신랑이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외모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질투가 날 정도로 준수한 얼굴입니다.

돌쇠의 가슴이 또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신랑 역시 길을 가로막고 서 있는 돌쇠를 보고 일부러 근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신랑의 길 안내를 맡은 이가 돌쇠에게 목소리를 깔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놈 무엄하구나. 썩 비키지 못할까?”


(다음 주 5편이 이어집니다.)


[관련기사]


 (전설텔링)용다리 연가(戀歌)(1)

 (전설텔링)용다리 연가(戀歌)(2)

 (전설텔링)용다리 연가(戀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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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용다리 연가(戀歌)(3)

진주시 진주성 옆 지금은 없어진 용다리에 얽힌 전설


(지난 줄거리) 연화와 윤석은 대학 1학년 연인 사이입니다. 윤석이 최근에 다른 여자친구와 단둘이 동물원에 간 사실 때문에 연화는 토라졌습니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자 윤석은 연화가 아르바이트하는 일터로 찾아갑니다.


일터엔 가지 않겠다는 약속 때문에 점심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 만났지만 연화는 대화하려 하지 않습니다. 윤석이 뒤따라가며 해명하려 하지만 연화의 화를 돋울 뿐입니다. 그러다 진주성 옆 고목을 지날 때 웜홀 같은 것이 생기더니 연화가 빨려 들어갑니다. 얼떨결에 손을 잡은 윤석. 손을 놓을까 하다 어쩔 수 없이 함께 빨려 들어갑니다.


고려시대 쯤. 진주 군수의 딸 화연과 이 집 노비 돌쇠의 몸에 두 사람의 영혼이 들어가게 됩니다. 다음날 아침 청소하는 돌쇠 앞을 지나던 화연이 알 수 없는 영상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느끼며 비틀거립니다. 이는 돌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후. 화연이 곱단이를 시켜 돌쇠를 부릅니다. 화연은 곱단이를 내치고 돌쇠의 손을 잡습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온몸이 짜릿해지면서 알 수 없는 영상들이 떠오릅니다. 돌쇠 역시 화연과 똑같은 현상을 경험합니다.


이날 밤. 두 사람은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돌쇠가 별당으로 이어지는 골목에 갑니다. 자신도 모르게 발길이 그쪽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화연아씨가 벽에 기대어 서 있습니다. 화연이 돌쇠에게 안아달라고 합니다. 두 사람은 포옹을 하고 이 모습을 담장 끝 어떤 그림자가 보고는 사라집니다.


………………………………………


다음날 아침. 돌쇠는 늦잠을 자고 있습니다.

“얘, 돌쇠야! 해가 중천에 떴다. 그만 자고 일어나거라.”

돌쇠 대신 마당을 쓸던 행랑아범이 행랑채 방문을 열어젖히고 고함을 쳤습니다.

“아이, 오늘 토요일이란 말예요. 학교 가는 날 아닌데 왜 자꾸 깨워요?”

“이 녀석이… 뭐라고 하는 거야? 토요일은 뭐고 학교는 뭐야? 욘석 오밤중에 몽유병 걸린 놈처럼 싸돌아 다니더니 머리가 어찌 된 거 아냐?”


돌쇠가 이상한 말로 잠꼬대를 하고 돌아눕자 행랑아범은 빗자루를 툇마루 기둥에 세워놓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돌쇠야! 이리 늑장거리 하면 밤에 또 잠 못 잔다. 어서 일어나! 오늘 김장독 묻어야 하니까 일이 많다. 어서!”

행랑아범은 이불을 걷어치우고 돌쇠의 허리를 발로 툭툭 찼습니다.

“아이, 좀!”

돌쇠가 눈을 떴습니다. 행랑아범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돌쇠는 행랑아범이 낯설다는 느낌이 들면서 순간 혼란에 빠집니다. 몸을 일으켜 앉은 돌쇠는 머리를 흔듭니다.


“이제야 정신이 드냐? 어서 장독간으로 가봐라. 장쇠는 벌써 들어와 일을 하고 있다. 니가 집에 있는 종놈이면서 일을 더 게을리한다고 불만이 많다.”

돌쇠는 후다닥 이불을 개고 밖으로 뛰쳐나갑니다. 그러다가 기둥에 세워진 빗자루에 걸려 마루 끝에서 휘청거리더니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칩니다.

“저, 저런….”

벌떡 일어선 돌쇠가 행랑아범을 보곤 씩 웃습니다.

“녀석.”


겨울철 하루해는 무척 짧습니다. 찬바람 몇 번 휘휘 불고 감나무 끝에 아직 매달려 있던 까치밥을 뒷산에 있던 까치가 서너 번 오며 가며 먹고 나면 금세 날이 어둑해집니다.

돌쇠가 파김치가 되어 행랑채로 돌아옵니다. 툇마루에 그대로 벌러덩 나자빠집니다.

“이리 들어 오너라.”

잠자는 온돌방 옆 마루방에서 행랑아범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돌쇠는 바로 일어나 마루방으로 들어갑니다. 행랑아범이 새끼를 꼬고 있습니다.

“내일 김칫독 덮어야 하니 늦더라도 오늘 짚방석 다 만들어야 한다. 너도 좀 돕거라.”


돌쇠가 호롱불 옆으로 털썩 주저앉고는 양손에 퉤퉤 침을 뱉습니다. 능숙한 솜씨로 짚을 비벼 새끼를 꼽니다.

“아제, 곱단이에게서 들었는데 화연아씨 얼마 후면 나주로 시집간다면서요?”

“그렇다는구나. 나주목사의 아들이라지.”

“어떤 사람이래요?”

“그걸 내가 어찌 알겠냐? …. 그런데 니가 그걸 왜 궁금해 하누?”

“아, 아녜요.”

돌쇠는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흠칫 놀랍니다.


밤늦게야 짚방석을 다 만든 두 사람은 온돌방으로 건너갔습니다.

“낮에 그 많은 땅을 파고 밤엔 또 짚방석을 만든다고 피곤할 게다. 어서 자자. 내일 또 일이 많으니.”

돌쇠는 하품을 길게 하며 자리에 누웠습니다. 눈이 스스르 절로 감겼습니다.


“하하하하….”

여자의 웃음소리가 왼쪽 오른쪽 위 아래로 옮겨가며 울립니다. 화연아씨의 웃음소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웃음소리가 점점 커집니다.

“아하하하….”

벌떡 일어난 돌쇠는 이마에 맺힌 땀을 소매로 닦아냅니다. 그 웃음소리가 깨어난 지금도 계속 들리는 듯합니다. 기분 나쁜 웃음소리는 아니지만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으니 돌쇠는 피곤해합니다. 다시 누웠습니다. 웃음소리가 잠잠해지더니 이젠 누군가 귀에다 속삭이는 듯합니다.


“윤석아, 이번 주말엔 남강변으로 자전거 타러 가자. 바람이 시원해. 난 니가 좋아. 난 니가 좋아. 니가 좋아…. 좋아….”

돌쇠는 다시 벌떡 일어났습니다.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어제처럼 밖으로 나갔습니다. 초승달이 댓돌 위에 있는 짚신을 하얀 손으로 어루만지는 것 같습니다.

돌쇠는 짚신을 신고는 자신도 모르게 어제처럼 별당으로 향하는 골목으로 걸어갔습니다. 어제 그곳에 화연아씨가 여전히 벽에 기대서 서 있었습니다.





“왔니?”

“예, 아씨.”

“정말 이상하지 않니? 너와 내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예, 소인도 그러합니다. 잠을 자면 꿈속에서 머리 모양과 옷차림이 이상한 여자가 나타나요. 그런데 그 여자의 모습이 아씨와 꼭 닮았어요.”

“나도 그래. 꿈속에 어떤 남자가 자꾸 나타나는데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옷도 이상한 옷을 입었더구나. 그런데 그 남자가 널 꼭 닮았어.”

두 사람은 꿈에서 본 서로의 모습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가끔은 조심스레 웃기도 합니다. 부엉이 소리가 멀리서 들려옵니다. 두 사람은 살며시 포옹을 합니다.


“같이 가!”

뒤따라 열심히 페달을 밟던 연화가 뾰로통해진 표정으로 소리칩니다.

“그래. 같이 가게 빨리 와!”

윤석은 웃으면서 더 열심히 페달을 젓습니다. 남강변 바람이 시원합니다. 촉석루가 멀리 보입니다. 남강 양쪽으로 길을 따라 줄을 서 있던 빌딩들이 뒤로 물러납니다.


“이상하지? 이런 것들…, 성일까? 그런데 모두 떨어져 있어. 집일까? 사람 사는….”

“집인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러나저러나 이 두 사람이 타고 가는 수레는 희한하게 생겼습니다. 바퀴가 앞뒤로 나 있는데도 넘어지지 않네요. 정말 신기한 수레입니다.”

화연과 돌쇠는 서로 껴안은 채 눈을 감고 떠오르는 영상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연화가 한참 뒤처지자 윤석이 그제서야 알아차리고 자전거 속도를 줄이면서 뒤돌아봅니다. 그러다 중심을 잃고 넘어집니다.

“쌤통이다.”

멀리서 연화가 달려오며 웃습니다. 넘어진 윤석도 따라 웃습니다.

“웃으니 예쁘네.”

연화가 윤석이 옆으로 다가와서는 자전거에서 내립니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자전거를 끌고 걷습니다.


“다정해 보이네요. 어느 나라 사람들일까요?”

“글쎄….”

화연은 돌쇠의 품이 따뜻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돌쇠야.”

“예, 아씨.”

“우리도 생각 속에 있는 저 두 사람처럼 다정하게 살 수 있을까?”

화연의 말에 돌쇠는 깜짝 놀랍니다.

“아씨, 며칠 후면 나주로 시집을 가신다면서요?”

“낼 모레면 그 도령이 온다는구나.”

화연은 고개를 돌립니다. 눈물이 벌써 보를 타고 흘러내립니다.

돌쇠가 팔을 풀고 화연의 눈물을 소매로 닦아줍니다.

“시집…. 안 가시면 안 되요?”

“내가 가기 싫다고 안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야옹.”

담장 위에 있던 고양이가 웅크리고 앉았다가 일어섭니다.

화연이 고양이 소리를 따라 고개를 듭니다. 그때 화연의 눈에 담장 끝에 있던 사람 형체의 검은 그림자가 들어왔습니다. 담장 끝에 있던 그림자는 화연에게 들킨 듯하자 쏙 들어갔습니다.

“돌쇠야, 저기 담장 끝으로 가보아라. 누군가 우릴 본 듯한데.”

“네?”

돌쇠는 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상놈이 지체 높은 아씨를 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숨이 끊어질 때까지 멍석말이 당할 일인 것입니다.

“빨리 가보아라. 내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으니.”

돌쇠는 후덜후덜 다리를 떨면서 담장 끝으로 걸어갑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씨.”

뒤따라온 화연도 사람 그림자가 될 만한 것이 없자 자신이 잘못 보았는지 여깁니다.


행랑채로 돌아온 돌쇠는 여전히 마음이 불안합니다. 혹시 아제가 몰래 보았을까 의심이 들었습니다. 낮에 행랑아범이 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슬그머니 행랑아범의 옷을 만져봅니다. 따뜻합니다. 행랑아범은 아닙니다. 만약 그림자의 주인이 행랑아범이었다면 옷이 벌써 이렇게 따스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구일까? 옥봉아제? 외거노비인 옥봉아제가 이 밤중에 일도 없이 올 리 만무합니다. 도둑이 든 것일까? 정말 아씨가 잘못 본 것일까? 돌쇠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면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돌쇠의 눈이 퀭합니다. 방에서 나가 툇마루에 걸터앉아 있는데 곱단이가 걸어옵니다. 얼굴에 온통 눈물이 번져 있습니다.

“큰일 났어. 오라버니, 이제 어떻게 해? 난 어쩌면 좋아? 엉엉.”

돌쇠는 하염없이 우는 곱단이를 옆에 앉혔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진 듯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곱단이는 온몸에 힘이 빠진 채 축 늘어진 돌쇠의 팔을 붙잡고 여전히 엉엉 울고 있습니다.


(다음 주 4편이 이어집니다.)


[관련기사]


 (전설텔링)용다리 연가(戀歌)(1)

 (전설텔링)용다리 연가(戀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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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 진주성 옆 지금은 없어진 용다리에 얽힌 전설

 

(전편 줄거리) 윤석과 연화는 한 대학에 다니는 19살 대학 1년생들입니다. 지난 봄 입학 후 겨울방학을 앞둔 시점까지 서로 잘 지내다가 윤석이 은서와 단둘이 동물원에 놀러간 사실 때문에 연화는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윤석과 대화하기를 거부합니다. 윤석이 연화가 아르바이트하는 일터까지 찾아가 해명하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연화는 무심히 앞서 걷고 윤석은 뒤따라가며 오해를 풀려고 안간힘을 다합니다. 그때, 진주성 인근 고목 옆을 지날 때였습니다. 고목의 가지 아래쪽에서 이상한 기류가 형성되면서 앞서 걷던 연화가 빨려 들어갑니다. 얼떨결에 연화의 손을 잡은 윤석도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고려시대 쯤 되는 과거로 무대가 바뀝니다.

 

진주 이 군수의 집 화연아씨의 방에서 갑자기 환한 빛이 가득해지면서 머리를 빗던 화연이 쓰러집니다. 집 전체가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울렁이자 다들 밖으로 나옵니다. 이 군수와 부인, 하인들은 화연의 방에서 유달리 밝은 빛이 나오자 뛰어들어갑니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화연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행랑채 돌쇠도 비슷한 시기에 화연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함께 있던 행랑아범이 돌쇠의 몸에서 초록빛이 감돌자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두렵기도 합니다. 정신을 차린 돌쇠는 이상한 옷차림을 한 아이가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고 하자 행랑아범아범으로부터 실없는 소리를 한다는 핀잔을 듣습니다.

 

· · · · · · · · · · · ·

 

날이 밝았습니다. 간밤에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이 되풀이되고 있었습니다. 돌쇠는 아침 일찍 일어나 집안의 곳곳을 청소하고 있습니다. 곱단이도 부엌에서 화연아씨의 밥상을 들고 마당을 가로질러 걸어가고 있습니다. 곱단이가 돌쇠 옆을 지나며 혀를 쏙 내밀곤 고개를 홱 돌립니다. 돌쇠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빗자루를 발로 툭 차서 곱단이 쪽으로 먼지를 보냅니다.

 

화연은 곱단이가 차려온 밥상을 본체만체 하더니 무슨 고민이 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섭니다.

곱단아, 잠시 바깥바람을 쐬고 와야겠다. 가자!”

화연이 장롱에서 방한복을 꺼내 입고 방문을 나섭니다. 곱단이도 부랴부랴 따라나서며 한마디 합니다.

아씨, 식사라도 하고 나가시죠. 아씨가 식사를 하셔야 제가 밥을 먹죠. 전 지금 배가 무지 고프단 말입니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 잠시만 나갔다 오자.”

 

화연은 어제 일도 일이지만 혼례를 며칠 앞두고 마음이 뒤숭숭해 도저히 밥을 제대로 삼킬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바깥바람이라도 한 번 쐬고 들어오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댓돌을 밟고 내려선 화연은 약간 쌀쌀하긴 해도 볕이 제법 좋다고 느꼈습니다. 온몸에 햇볕을 느끼며 대문 쪽으로 걸어나갔습니다. 화연 뒤로는 곱단이가 총총걸음으로 따라옵니다.




 

여남은 걸음 떨어진 곳에서 화연아씨가 오는 모습을 발견한 돌쇠가 고개를 숙입니다.

안녕하세요, 아씨.”

…….”

화연은 별 대꾸 없이 돌쇠 앞을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 순간 아주 잠시였지만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알 수 없는 모습들이 떠올랐습니다. 돌쇠를 향해 돌아보던 화연이 한참 멍하니 있더니 갑자기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낍니다. 비틀거리며 쓰러지려는 화연을 곱단이가 부축합니다.

아씨, 왜 이러셔요?”

으응. 괜찮다.”

화연은 곱단이의 부축을 받으며 몸의 중심을 잡습니다. 엊저녁 때처럼 머리가 다시 아파오는 것을 느낍니다.

 

이는 돌쇠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연아씨가 바로 앞을 스쳐지나가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어떤 여자가 이상한 옷을 입고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돌쇠 역시 일순 몸에 중심을 잃었다가 바로 정신을 차립니다.

뭐지? 이런 기분.’

화연을 부축하고 있던 곱단이가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묘한 기분을 느끼지만 금세 화연이 눈치 채지 않게 피식 웃음을 흘립니다.

아씨, 저 배 무지 고파요. 빨리 갔다 와요.”

곱단이가 화연의 소매를 끌듯하면서 대문 쪽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이날 오후 점심을 먹고 난 돌쇠가 행랑채 마루에 걸터앉아 있을 때 곱단이가 다가옵니다. 곱단이는 돌쇠 옆에 거리낌 없이 털썩 주저앉고선 빤히 돌쇠의 얼굴을 쳐다봅니다.

이상해. 오라버니 얼굴이 전과 달라.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은?”

전엔 나한테 툭하면 농을 걸더니 이젠 안 그러잖아. 갑자기 어른이 된 거야?”

돌쇠 스스로 생각해도 오늘 자신의 모습이 어제와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곱단이 옆으로 지나가면 괜히 장난을 치고 싶어서 지푸라기로 손가락 만한 공을 만들어 발치에 던지곤 했으니까요.

 

엊저녁에 아씨 방에 사람들 다 모이고 한참 난리였었는데. 오라버니는 안 보이던데, 어찌 된 거야?”

나야. 그런데 왜, 아씨에게 무슨 일 있었어?”

돌쇠는 엊저녁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곱단이에게 얘기하려다 말을 돌렸습니다.

. 어젯밤 아씨 방에 불이 난 것 같이 방이 밝아졌는데 아씨가 기절해 쓰러졌어. 내가 물을 떠서 가져오니 아씨는 괜찮다고 했지만 한동안 아씨 몸에서 이상한 빛이 나는 듯했어. 올해 환갑이 다 되어가는 옥봉아제도 사람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 처음 본대.”

 

돌쇠는 속으로 놀랐습니다. 화연아씨에게 일어난 일이 어젯밤 자신에게 일어난 일과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오라버니.”

, ?”

돌쇠는 전에 없이 곱단이에게 건성으로 대답했습니다. 이것을 눈치 못 챌 곱단이가 아니지요.

뭐야? 정말~. 하루 만에 사람이 이렇게 변하네. .”

, 미안 미안. 그래 뭔데?”

우리 아씨 있잖아. 얼마 후면 광주에 사는 어떤 도령한테 시집간대. 옥봉아제가 그랬어. 근데 아씨가 날 데리고 가진 않을 거래. 정말 다행이지 오라버니?”

돌쇠는 갑자기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가슴이 갑갑해져 옴을 느낍니다.

 

하아~, 하아~.”

오라버니, 갑자기 왜 그래? 물 떠올까?”

아니 됐어. 조금 있으면 괜찮아지겠지.”

돌쇠는 자신의 감정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화연아씨를 상전 이상으로 여겨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아침부터 이상한 마음이 들더니 시집간다는 말에 이렇게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신경이 쓰인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좀 쉬어야겠다며 곱단이를 돌려보낸 돌쇠는 툇마루에 걸터누워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하늘 곳곳에 조각구름들이 바람을 타고 흘러다닙니다. 조각구름들이 알 수 없는 영상과 겹치면서 묘한 기분에 빠진 돌쇠는 그 자리에서 잠이 들어버립니다.

 

연화야, 정말 왜 그래? 걔하고 난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

너랑 이제 이야기를 섞는 것마저 짜증나. 그러니 제발 내 눈앞에서 사라져 줄래?”

어떤 여자를 따라가며 말하는 사내는 꼭 돌쇠 자신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이 사내가 손을 잡자 돌아보는 여자는 머리를 땋지 않은 화연아씨의 얼굴입니다. 화들짝 놀란 돌쇠가 잠에서 깹니다.

 

오라버니, 화연아씨가 좀 보재!”

곱단이가 사랑채를 돌아 걸어오면서 소리칩니다.

.”

별당으로 걸어가던 돌쇠의 머릿속은 좀전에 꾸었던 그 꿈 때문에 뒤숭숭했습니다.

 

곱단아, 넌 잠깐 나가있거라.”

? .”

아씨가 돌쇠를 불러놓고 단둘이 있었던 적이 없던 터라 곱단이는 이 상황에 당황해 했습니다. 그래도 상전인 아씨의 명이라 어쩌지 못하고 물러갑니다.

돌쇠를 가까이 오라고 한 화연은 또 이상한 기운이 몸을 감싸는 것을 느낍니다.

돌쇠야, 너도 아침에 보니까 나를 만났을 때 이상한 것 같던데 지금 그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지 않느냐?”

, 아씨. .”

돌쇠는 온몸에 이상한 기운이 감도는 것을 아씨 앞이라 억지로 참으며 더듬거리며 대답했습니다.

좀 전에 행랑아범이 아버지께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니 너도 어젯밤에 기절했다면서? 이리 손을 내어 보거라.”

? 아씨, 무슨 그런 송구한 말씀을.”

어제 갑자기 쓰러진 이후로 내가 딴 사람이 된 듯한데 이런 느낌이 너와 관련이 있는 듯하여 그런 것이니 딴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된다.”

 

화연이 돌쇠의 손을 만졌을 때 손끝이 따가워지며 온몸이 짜릿해지는 듯했습니다. 돌쇠 역시 아씨와 손이 닿았을 때 전율을 느끼며 머릿속에선 꿈에서 보았던 그 남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너에게 어떤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느냐?”

아씨도 그러하옵니까?”

그렇구나. 그러하구나.”

화연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습니다. 화연은 어젯밤 자신과 돌쇠에게 어떤 귀신에 씌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고서야 19년을 이집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데다 10년 전부터 솔거노비로 들어온 돌쇠와 그 오랜 세월 함께 있어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된 것은 각자 몸속에 귀신이 들어온 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날 밤. 화연은 돌쇠가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참았습니다. 돌쇠 역시 화연아씨가 보고싶어 가슴이 자꾸 뛰고 있어도 억지로 참았습니다. 그러다 잠이 들었습니다. 어둠은 사위를 적막 속으로 집어넣은 듯했습니다.

간혹 올빼미 소리가 적막을 타고 카랑카랑하게 울렸습니다. 자정이 되었을 무렵 별당의 화연과 행랑채의 돌쇠는 거의 동시에 눈을 떴습니다.

 

돌쇠는 꿈속에 나타난 여자의 얼굴이 화연아씨인 것이 자꾸 신경쓰였습니다. 지체 높은 아씨에 대해 불경죄를 저지르는 것 같아 안절부절못하고 방안을 왔다갔다했습니다.

아이코 아야!”

, 죄송해요. 아제.”

돌쇠가 모르고 옆에서 자고 있던 행랑아범의 발을 밟아버린 것입니다.

안 자고 뭐하냐?”

, 머리가 또 아파서요. 저 바람 좀 쐬고 올게요. 계속 주무세요.”

 

밖으로 나온 돌쇠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초승달이 유난히 예쁘게 보였습니다. 아씨의 웃는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돌쇠는 하늘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별당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습니다.

별당으로 가는 길은 긴 담장을 끼고 이어져 있습니다.

돌쇠는 순간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멈춰 섰습니다.

화연아씨가 담에 기대어 자신처럼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아씨 아니십니까요? 이런 야심한 시각에 어찌 나와계십니까요?”

. 너도 나와 같구나.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날이 춥습니다. 이러다 감기 걸리십니다. 어서 들어가.”

날 좀 안아줄래?”

돌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연은 자신도 믿을 수 없는 말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습니다.

…….”

…….”

 

희미한 달빛 아래 두 사람은 살며시 포옹을 하였습니다. 저쪽 담장 끝에서 그림자 하나가 성급하게 사라졌습니다.

 

(다음 주 3편이 이어집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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